한국정치/정의당2020. 6. 17. 13:24

 진보정당과 노동조합의 차이는 무엇인가? (2013.July 19)


 필자는 당은 당연히 민주노총과 협력도 해야 하고, 또 민주노총의 한계와 문제점을 비판해야 한다고 보지만, 정당이 노동조합 정치의 자기 정화능력까지 다 무시하거나 뺏을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또 민주노총의 개혁은 노총 자체 스스로 해야 하고, 좌파정당이 해야 할 일은 노동조합에게 떠 넘겨서는 안됩니다. 

 민주노총 자체가 사회주의자나 좌파조직으로 구성된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민주노총과의 협력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당과 노동조합의 차이, 역할 분담에 대해서 다시 토론해야 할 때입니다. 

 아래 도표는 위 주장을 보다더 명료하게 하기 위해서 조금 인위적으로 정당과 노동조합과의 역할 분담을 표로 만들어 본 것입니다.

        정당과 노동조합의 역할 분담    

                                                                                      

 

1.정치활동, 주요임무 

1 주요임무

(1) 진보정당: 전체 직종을 아우르는 재분배(세금), 분배 (노동소득), 자산 소득(빌딩, 토지 지대, 금융자산), 생산 수단에 계급 계층 차별적 요소를 진단하고 좌파 정치 요소를 발견해 낸다.

-> 16개 시도당에서 자기 지역 주민들, 노동자들의 실태 조사에 근거한 정치 실천 기획을 수립한다.
 

(2) 노동조합: 작업장으로 국한해서 노동조합의 정치활동은 노동3권과 관련된 정치활동이다.( 노동조합원들이 다 좌파나 사회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조합원 자격은 반드시 정치적 입장이 좌파일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

 

2. 문제 해결 접근 방식 : 법률,제도 영역에 대한 정치적 전면전
 
(1)진보정당
자본주의에 기초한 한국 민법 체계가 어떻게 계급지배 도구로 사용되고 있는지를 분석해 내고 비판한다. 97년 이후 노골적으로 노동조합 탄압 및 분쇄 도구로 사용되고 있는 노동자나 노조에 대한 회사 재산권 침해 고소, 노동자 노조 재산 가압류, 손해배상 청구에 대한 저항 및 대응. 전 사회적인 여론전을 전개한다. 법률적 지원 팀을 만들어 지속적인 노동조합 방어 투쟁을 전개한다.

 
(2) 노동조합
회사나 현장에서 해당 노동자들은 파업이나 사보타지와 같은 직접 행동에 돌입한다.

 

3. 공론장에서 여론형성과 시민사회에서 정치활동

(1) 진보정당
 노동정치를 급진화하고 좌파적인 방향으로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시민사회에서 일상적인 ‘노동정치’ 여론을 당에서 만들어 내야 한다. 예를들어서 조.중.동의 귀족노조 이데올로기에 대해서, 방어적 차원에서 매일매일 대응하고 저항 담론을 형성해야 한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공격적인 차원에서는 노동자들의 ‘공적 행복’이 무엇인가를 시민사회 속으로 전파해야 한다.

 

(2) 노동조합

노동조합은 보수적 반-노조 이데올로기에 저항하고 노조의 정치활동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지역 공동체와의 연대를 실시해야 한다. 소위 말해서 기업의 사회기여 프로젝트(재벌들의 불우이웃 돕기)를 능가하는 지역공동체 주민 연대 정치 프로그램들을 직접 실천해 낸다.


3. 계급의식의 형성

 (1) 진보정당 

 
한국 자본주의의 특성 중에 중요하게 지적되어야 할 요소는 교육제도이다. 한국의 노동자들의 계급의식 형성(자기 정체성)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바로 지배계급과 기득권 세력들이 공교육은 물론 사교육까지 동원해서 계급의식 형성을 아이때부터 20세까지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좌파 정당의 임무는 실제로 교육제도를 개혁하는 실천과 더불어,이러한 지배계급의 정치적 공세를 뚫어낼 수 있는 사상적이고 문화적인 이데올로기 투쟁을 매일 매일 전개해야 한다.

 

(2) 노동조합

노동조합 가입과 활동 자체가 좌파적이거나 사회주의적 정치활동은 아니다. 그러나 노동조합 활동과 가입은 한국과 같은 낮은 노조 조직율에서는 매우 중요한 정치활동의 전제 조건이 된다. 하지만 노동조합 가입 자체가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이 좌파적으로 자동적으로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노동 3권 자체는 형식적 절차적 (부르조아) 권리이고, 노동 3권이 실현된다고 해서 자본주의 체제 자체나 노동자-자본의 권력관계가 전복되지 않는다. 하지만 노동조합 내부에서 정치 활동은 기본적인 민주주의 정치의 학습이자, 좌파 정치로 발전할 씨앗이라고 볼 수 있다.

 

4. 정치적 경쟁 대상

(1) 진보정당 

좌파 정당의 경쟁 대상은 정치권 내부에서는 새누리당, 민주당 등이다. 노동정치와 관련된 주제들은 바로 새누리당의 노동정치, 민주당식 노동정치를 통해서, 현장에서 노동정치가 걸러지고 변형되고 왜곡되기도 하고 새로운 ‘노동정치’를 생산해 내기도 한다.

좌파정당의 임무는, 노동현안 자체가 현재 새누리당, 민주당이라는 전문 정치 영역으로 이동할 때, 발생하는 노동정치의 변형, 왜곡, 새로운 문제 발생들에 대비하고 그에 맞는 정치적 전략과 전술을 만들어야 한다.

입법 활동은 물론이고, 입법활동이 아니더라도,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노동정치’ 기획들은 다양한 채널들을 통해서 실천되고 있다.

 
 (2) 노동조합 

노동조합에서 경쟁대상은 해당 기업이나 기업주와 고용주이다. 단위 노조건, 총연맹 차원이건 해당 경쟁자들은 일차적으로 고용주와 자본가들,경영자들이다. 아군을 형성하는 방식은 당연히 노조 바깥 사람들과의 연대이다. 노동변호사들, 지역주민들 동조, 여론 형성, 다른 정당들과의 제휴등도 포함된다. 하지만 일차적으로 중요하게 연구해야 할 경쟁 대상은 고용주와 자본가들이다.

 

5. 공간, 글로벌 자본과 자본의 지리적 이동, 노동력의 국제적 이동 : 국제 정치 연대 형성
 

(1) 진보정당

좌파 정당의 연구소에서 해야할 일이 바로 세계 자본주의의 동학과 지배계급의 통치 전략에 대한 분석과 그에 기초한 노동정치의 전략 수립니다. 자본의 이윤율 증가는 반드시 노동조합과 노동자정치의 궤멸 전략과 연계가 되어 있다. 

1970년대 중반 이후 30년간 금융자본은 산업자본으로부터 독립해 역으로 산업자본을 지배해나가기 시작한지 오래다. 아울러 아시아 중국, 인도, 동아시아 국가들의 자본주의 시장제도의 도입으로, 지구 자본주의 질서와 축적 체제는 급변하고 있다. 한국 좌파는 아시아 다른 나라 정치권들과 적극적으로 연대하고 지속적인 교류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2) 노동조합

한국 노동조합, 민주노총도 아시아 국가들의 노동조합과 국제적 연대를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한국 자본이 해외로 이동하고, 반면 아시아 노동자들이 한국으로 이동함에 따라, 아시아 노동자들의 권리와 한국 노동자들의 권리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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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정의당2020. 5. 25. 10:14

 <정의당, 30대 여성에 미래 맡겼다..'포스트 심상정' 뜬 장혜영> 중앙일보 기사를 읽고 든 생각 메모:

기사: https://news.joins.com/article/23784312


이 신문 기사가 왜곡하지 않고 제대로 보도 했다면, 정의당은 20년간 진보정당 운동의 문제점들과 과제들에 대해서, 21대 총선 전략적 실패에 대해서 정밀하게 파악하고 있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8년간, 길게는 2004년 이후, 진보정당이 하나 망각한 사실이 있다. 체력전 문제다. 민주당원은 80만이고, 정의당은 3만 5천(당내 투표자 숫자) 정도 된다. 당 운영을 그동안 민주당식으로 해왔기 때문에, 5년, 10년, 15년, 20년, 35년 장기 마라톤을 할 정치가를 키우지 못했다.


장혜영 의원 리더십은 알려진 바가 없다. 정당 전 활동과 정당 후는 다르다. 다른 프로그램이 개인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하고 당의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기대'를 갖게 하는 것은 좋으나, 똑같은 내용이 벌써부터 반복된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정의당이 청년과 여성의 당이라고 합의된 바도 없다. 두 범주로는 부족하다. 2022년 지방선거에 나가기 위해서는 당내 모든 세대를 막론하고, 깊이와 외연을 넓혀야 할 때이다. 두 카테고리로 한국 진보정당을 운영해나갈 수 있는가?


청년과 여성의 당이라는 두 단어를 내세우는 전 세계 진보정당은 20세기에도 없었고, 21세기에도 희귀할 것이다. 지난 1년간 언론에 보도된 정의당의 청년정당, 청년전략, 여성정당 전략은 이론과 실천에서 재검토될 필요가 있다. 이는 혁신위에서 자료가 나오면 당원들 뿐만 아니라, 언론, 학계, 정의당이 아닌 모든 진보세력들과 다같이 공개토론과 논쟁을 할 필요가 있다.


2018년 8월 10일, 정의당 지지율이 16%로 통합당과 1% 격차였는데, 그 이후로 10%~12%를 잃어버려 현재 4~6%인데, 이 원인이 무엇인가? 만약 이 추락의 원인이 여성과 청년 두 범주 정치를 못해서 발생한 것이라면 그것은 올바른 진단이라고 하겠다. 만약 그게 아닌 다른 수십가지 이유들이 있다면, 그것들을 조사해야 할 때이다.


류호정 장혜영 두 비례대표 후보도 아무런 기획없이 방치되어 있었던 선거를 고려해 본다면, 선거 끝나고도 여전히 그 문제점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류호정 조혜민 문정은 신진 여성정치가들의 잠재력은 선거기간 동안, 정책발표회를 통해 상당히 알려졌다. 문제는 어떻게 조각되어 , 어떤 양식들로 '캐릭터화'할 것이냐이다.


정의당이 한국의 모든 진보적인 개인, 단체, 정당들을 대표하고자 한다면, 지금의 폐쇄성은 과감히 깨부수어야 한다.


그리고 정치는 미래의 '입'와 '선언'으로 하지 않는다. 이미 정의당은 실력표가 프로야구 성적표처럼 대중들에게 다 공개된 상태이다. 공허한 약속 말만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 객관적으로 그리고 솔직하게 지금 남아 있는 정의당 정치가들이, 살아남아, 진보의 씨앗을 다시 뿌릴 수 있는 현명하고 현실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


지금 혁신위 언론보도, 능력과 체력에 맞지 않게 너무 거창하다.


언론보도가 그렇게 중요한가? 지금 문재인 대통령이 정의당을 청와대로 부르지 않고, 민주당, 통합당만 부를 계획이다. 양정철, 임종석, 이인영 등 과거 386 민주당표 정치관, 퇴락한 정치견해 비판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들과 게임하는 건, 정의당의 도덕적 우위나 정치운동의 정당성, 좌파적 신념, 책임정치 강조 이런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 이후, 적어도 5차례, 세부적으로는 10차례 이상, '정의당 혁신위'와 같은 당 혁신위원회는 가동되었다. 그러나 성공한 적은 거의 없고, 리더들도 대충 타협하고 넘어갔다.


신문 기사를 보고 든 생각을 요약하면, 장혜영 의원에게 과도한 정치적 부담을 지우지 말아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6명의 국회의원의 실력은 서서히 보여줘도 늦지 않았다. 지금 속공은 정의당만 지치게 할 뿐이다. 지공이 필요할 때는 지공을 선택해야 한다. 지금 속공해도 지지율 상승하지 않는다.


15명 혁신위원들은 하루 속히 주제별로 분화해서 당원들과 대화하고,


궁극적으로는 진보정당 운동의 철학, 정책에 대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정치가들이, 한 두 번 선거 나가서 떨어지면 그만 두는 정당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장기지속가능한 정치를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상세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언론보도보다 당 내부 내실을 기해야 한다. 이번에는 순서를 뒤바꿔서는 안된다.


혁신위원들에게 제언드린다. 시급한 문제, 2022년 이 불리한 지방선거제도 (2인 선거구제) 하에서 어떻게 정의당이 할 것인가? 3인~4인 선거구제로 개혁이 가능한가? 지역정치가를 배출하기 위해 필수요소인 16개 시도당 정책연구소 자체 운영은 가능한가? 1인 정치가를 장기적으로 후원한 300명 당원 연계는 어떻게 가능한가? 이런 종류의 100가지 고민들을 현장으로부터 정의당 정치가들, 당직자들, 당원들로부터 듣기 바란다.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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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정의당2020. 5. 17. 20:54

진보정당 1호 변호사, 김정진, 18년간 희로애락.  


정의당 "야전사령관" 리더십이 절실한 이유를 말하다.   

 

1부. 정의당, 새로운 정치실험 실천 줄어든 이유는?  총선 이후 한겨레 경향신문이 정의당 특집 기사를 쓰게 된 배경은?   


링크: 1부~2부:  https://youtu.be/jZldsw7Vs5U



오디오 1부~2부 : http://www.podbbang.com/ch/1776409?e=23565889



원시: (질문 배경) 2012년 이후 정의당 당원들의 참여가 당활동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줄었다. 당의 모세혈관이라 할 수 있는 당협과 당내 소모임도 활발하지 않다. 리버럴 민주당과 보수엘리트 정당에서는 상상도, 실천도 불가능한, 온라인 오프라인에서 진보정당 당원들의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정치참여와 방식들이 사그라졌다. 그래서 그 이유를 물었다. 


김정진: 새로운 시도를 이제 잘 안 하는지 구조가 돼 버렸어요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하는데 안타깝더라고요, 정책도 새로운 시도를 잘 안 하려고 그래요.


원시: 그 말이 어떤 말인가요? 예를 들면 좀 이따가 구체적으로 물어볼 텐데요. 


김정진: 그러니까, 지금 세계적으로도 정치체제를 그렇고, 전체적으로 앵그리 보터 (화난 유권자)

현상들이 있는 거고. 트럼프나 샌더스, 제레미,코빈 다 동전의 양면이잖아요. 기성 정당이 사민당이나 보수정당 모두 민의를 제대로 반영 못하니까, 일부 국가에서는 상당히 폭발적인 세력교체 요구가 있는 거고.

트럼프나 코빈 같은 이단아가 등장하고, 경제적으로도 보면 이제 대공황, 2차 대전 이후 형성됐던 제도들이 이제 전면적인 재검토에 들어간 상태인 거 같거든요. 세계적으로 새로운 이론도 나오고 있고, 근데 이제 그 예전 가졌던 생각을 업데이트해야 되는데, 그런 것들이 많이 부족한 거 같더라고요. 의지도 없어 보이고. 


원시: 옛날 방식을 그대로 고수하는 것인가요?


김정진: 사실 이게 반대 방향으로 너무 많이 가 버린 거 같아요. 과거 민주노동당 노선이 이제 사회운동정당 노선으로 방향을 잡았었는데, 별로 유기적으로 결합되지 못했었거든요.

(국회) 원내 활동과 외부활동이 사실 그 때 2개 정당이라고 할 정도로 (당) 조직이 이제 분리 분할되고, 그것과 맞물려서 정파투쟁이 격화되면서, 의도치 않게, 정당노선이 그냥 원내정당 노선으로 돼 버린 거죠. 


아니, 뭐 그것도 의미가 있고. 지금 대한민국 권력이 청와대 국회 있는 건 사실이니까.  그런데 또 너무 그쪽으로 (의원 중심 정당정치로) 가 버린 것 같아요 보니까.


민주노동당 때, 사회운동정당 노선을 거대한 소수 정당노선이라 했었죠. 사실은 원내에서 부족한 것을 외부에서 보충한다는 의미로 메시지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메시지가) 전혀 없어진 상태죠. 사실은 이제 정의당이 뿌리가 약해져 가고 있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상황이 오히려 더 민주당에 포섭되어 가는 과정이 또 더 생겨 버리고. 이런 것들이 좀 기본적인 구조가 아니었나.


원시: 많이는 아닌데, (총선 후) 민주노동당 얘기도 좀 나오고 그래요. 김정진 변호사가 민주노동당 출발할 때부터 일을 하셨잖아요. 


 


(대학 시절, 87년 이후 서유럽과 같은 진보정당이 한국정치에도 필요하다고 생각한 김정진)


김정진:  2002년경부터 했었죠. 


원시 : 최근에 언론에서도 민주노동당 약간 언급되고 있는데, 어떻게 언급이 되고 있나요? 


김정진:  지금 정의당이 여러 가지 곤란에 처하니까, 과거 또 다른 부분인데 민주노동당 초기에는 언론환경이 지금보다 더 안 좋았거든요.  한겨레 신문 같은 경우도 민주당 지지가 아주 강력했기 때문에, 민주노동당에 대해서도 상당히 비우호적인 보도를 했었죠.


지금 오히려 한겨레, 경향신문이 정의당이 뭔가 이제 큰 곤란을 겪고, (의회) 원내에서 축출된다랄지 이런 일이 생기면, 큰 문제라고 생각들을 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기자나 이런 분들이 그래서 자꾸 이제 정의당이 좀 다시 한번 도약해야 된다라고 하면서, 과거 (민주노동당) 이야기를 꺼내고, 이제 검토를 하고, 이런 상황이 조금은 있는 거 같은데. 지금 선거 끝나고. 옛날 민주노동당 때 주장했던 것들이 일부 실현된 것들도 있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까지 시리즈를 보도를 하고 있습니다. 


원시: (한겨레 신문기사) 저도 봤어요. 근데 저도 페이스북에 조국사태부터 한겨레 신문 논조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몇 번 썼어요. 그런데 선거가 끝나니까 정의당에 대해 아주 심층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취재를 했더라고요. 


김정진: 저한테도 연락이 왔었습니다.


원시: 그런 것은 유의미하다고 봅니다.



2부.  2001년 김정진 변호사 민주노동당을 첫 직장으로 삼다.  


원시: 김정진 그때 민주노동당 정책국장으로 출발했는데, 


김정진: 정책부장이었고, 이재영 동지가 정책국장이었고요.


원시: 그러면 어떻게 해서 민주노동당에 취직한 거예요? 

 

김정진: 그 때 이야기부터 하실려고요 ?

 

원시: 개인적인 이야기도 좀 될 것 같은데, 사법시험은 몇 년 동안 하신 거예요? 


김정진: 제가 1996년에 합격을 해서,


원시: 어, 그러면 엄청 합격을 빨리 했군요. 


김정진: 사법연수원 2년을 마치고, 군 대체 복무 3년을 마치고, 민주노동당으로 간 거죠. 


원시: 그럼 첫 직장이 민주노동당이었습니까? 


김정진: 이를테면 맞습니다. 


원시: 그러면 그 때 뭐 계약을 한 거예요? 누구랑 아니면은 누구 소개로 들어간 거예요? 

동기가 뭡니까? 


김정진: 동기는 저도 참 너무 오래 전이라, 사실은 뭐, 우리나라 학생운동 과정은 원시님도 잘 아시겠지만, 이제 1987년 이후에 합법적인 영역에서 활동이 필수적이라고,저는 사실 생각을 했었어요. 그리고 그 87년 이후 진행된 과정이 그 방향으로 가긴 했지만, 사실 상당한 부침이 있었지요. 그리고 당시 사회운동 대다수가 진보정당 노선이라기보다는, 전체적으로 민주당을 지원해서, 민주대연합을 한 다음  민주정부를 수립하자, 이런 노선이었던거죠.  


근데 제가 보기는 이제 우리도 유럽이나 다른 나라들처럼 가야 되는 거 아니냐, 그 방향으로 가는 것이 사회의 변화를 이끌 수 있는 하나의 중요한 수단이라고 생각은, 사실은 1990년대 초중반 때부터 했었어요. 


개인적으로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가 쓰신 글, [한국정치학의 새 구상]이라는 책이 있는데 그 책을 보고 저는 사실은 이론적인 그 뭐랄까, 영감을 많이 얻어서….. 


원시: 책 제목이 뭐라고요?


김정진: 한국 정치학의 새 구상. 개론서같이 쓰신 것인데, 해외 구조주의 정치이론이라던가, 풀란차스, 밀리반드 라던가 


(참고: 사회복지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국가가 상대적인 자율성을 가지고 있느냐, 아니면 자율성이 있더라도 자본주의국가에 불과하냐 등에 대한 논쟁이 1970년대 서구 좌파들 사이에 벌어졌다. ) 


이런 국가론 같은 것도 소개를 많이 해 주시고, 사실은 80년대 사회사상(운동권 이론)은 혁명론으로 귀결이 되는데, 혁명론으로 가면 혁명주의자가 되어서, 세상을 뒤집어 엎어야 하는데, 제 감각으로 봐서는 그건 뭐, 그 시절에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럼 방법은 뭐냐 ? 노조 아니면 정당인데. 근데 제가 노조활동을 할 깜냥은 안되고 그리고 이제 뭐 그런 생각을 하다가 그런 생각을 하다가, 사법시험을 준비하게 되었죠. 


정당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확인하고, 사법 시험 공부 하게 됐고, 사법시험 준비하기 직전에 다른 나라 사례들도 많이 검토를 했었어요.


브라질 노동자당이나, 그 당시에도 사노맹(사회주의노동자연맹) 계열에서 많이 소개했던 필리핀 바얀당(Bayan), 그런 해외 나라 합법적인 진보정당들 활동이나 또는 프랑스 공산당 이탈리아  공산당, 이런 공부를 좀 했었습니다. 


그런 결론을 내리다가 그냥 일단은 사법시험 공부를 하게 됐고, 자격을 따고 나서, 좀 그 관련된 일을 하겠다는 생각을 진즉부터 했었어요.


원시:  혼자 그렇게 생각했다는 거예요?


김정진: 저는 그렇게 생각을 했었던 거죠. 관련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었고.


원시: 이제 그러면 어떻게 그 민주노동당을 찾아가게 되신 거예요? 


정진: 그냥 전화를 했죠. 


원시: 공고도 난 것도 아닌데, 본인이 혼자? 누가 받았어요? 


김정진: 자세히 생각은 안 나는데, 그냥 일반 전화로 했어요. 아마 거기 전화를 받으셨던 분이 아 제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니까 그 때는 그런 복잡한 전화가 오면 다 정책실로 연결을 해 줬거든요. 이재영 국장과 통화를 했죠. 그래서 이재영 국장을 그 후에 만나게 됐고

그게 민주노동당을, 2001년 경이어요. 민주노동당에 변호사들 모임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이제 정책자문단 같은 거 했던 말인데, 이름이 뭐 있었는데 기억이 안 나네 하도 오래돼서 그때 그 변호사님들하고 인사를 하고 알게 됐고요.


원시 : 그 때 구성원이 누구예요?


김정진: 이덕우 변호사님이 좌장이셨고, 그리고 사법연수원 다니셨던, 지금 저기 정의당에도 계시는 박갑주, 법률지원단장 하셨고, 지금 교육청 감사관은 가셨던가? 이민종 변호사님 그리고 이제 경제정책 쪽으로 김석연 변호사님, 이런 분들이 계셨어요. 김석연 변호사님이 개인 사업 때문에, 지금은 활동을 많이 안 하시는데.


그래서 이재영 국장을 만나게 됐고, (민주노동당에서) 일하고 싶다고 했는데, 처음에는 이재영 국장은 좀 심드렁했어요.


 


(왼쪽부터 박창규 정책부장, 김정진 정책부장, 이재영 정책국장 – 민주노동당 정책실 사람들 ) 


원시: 아 심드렁~, 얼마 있다가 그냥 그만두지 않을까?


김정진: 그런 거 보다는 이제 당장에 필요한 것들이 이제 그런 당내에서 뭐

저를, 그 변호사가 들어온다고 해서, 그렇게 여건이 되지 않았다고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그래 가지고. 


원시: 여건이라는 게 월급 이런 거? 


김정진: 월급도 그렇고, 뭐 이게 길게 설명하기에는. 그런데, 그 당시 고참들은 알텐데, 민주노동당 당시 상황은 양산박 비스무리한 분위기였습니다. 사람들도 실제 양산박이랑 비슷했고.


원시: 그 말이 잘 이해가 안 가네요? 


김정진: 수호지에 나오는, 그 양산박이 그 근거지인데요, 거기서 봉기를 해가지고, 탐관오리에 맞서서, 모택동이 제일 좋아했던 소설이어요. 어쨌든 그런 분위기여서.  


제가 어떻게 해서든 일을 하고 싶더라고요. 뭐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는 알 수가 없었는데 뭐 일단 마음 먹어본 것, 한번 해보자 ! 그 정도 생각이어서, 그래서 이재영 국장에게 좀 우겨서 어떻게든 일을 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책상도 안 주더라고요. 한 달 동안 책상도 없었어요. 


원시 : 그럼 어떻게 일을 ? 


김정진:  메뚜기 뛰면서 일을 했죠. 빈 자리에서. (메뚜기 : 도서관에 사람이 너무 많아 좌석이 없을 때, 빈 자리가 생기면 원주인이 올 때까지 좌석을 이용하다가 다른 빈 자리를 찾아 옮겨다닌 의미로 메뚜기라고 함) 


원시: 당사가 무슨 동에 있었나요?


김정진: 여의도 두레빌딩이라고요, 증권거래소 근방이죠.


원시: 그러면 그때가 2001년 이라고요? 


김정진: 2001년, 그리고 일을 시작한 것은 군복무 마치고, 4월경부터.


원시: 아 그러면 2002년 지방선거, 서울시장 이문옥 후보나 부산에 김석준 후보. 

그 당시 깨끗한 손이라고 (이문옥 민주노동당 서울시장 후보 팬클럽) 그 웹사이트가 있었죠.


김정진: 그 때 같이 하셨죠? 그때 모임에 한 두 번 갔다 갔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 자발적 흐름들이 있었잖아요. 근데 이제 많이 그런 부분이 없죠.


원시: 그것 좀 아쉬워요. 그 웹사이트가 남아 있었으면 아주 좋았을 텐데요. 왜냐면 민주주의 역사에서 토론 공간으로서, 옛날에는 가장 유명한 게  학교나 공장이나 이런 데서 대자보였잖아요?  70년대 80년대에. 

온라인 공간에서 토론의 공간으로는 처음으로, (물론 천리안 하이텔 시대도 거론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건 당연히 맞고) 웹페이지 생겨 가지고, 해외에 있는 (저 같은) 사람도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 민주노동당과 더불어 만들어진 건데, 그 웹사이트가 남아 있지 않아서, 조금 아쉬워요.


김정진: 그 자료나 글들이 좋은 사료가 됐었을텐데요. 진보누리라는 사이트를 있었죠. 그 글들이 어디 갔는지 모르겠어요. 그 누군가 도메인을 관리하셨을텐데, 그게 다 지금 보면 귀중한 사료인데요. 


원시: 그렇죠. 굉장히 아쉬운데, 개인적으로 제가 쓴 것은 갖고 있는데, 다른 분들도 (그 글들을) 갖고 있으면 좋은데, 그게 인제 굉장히 아쉽더라고요. 앞으로도 그럴 기회가 좀 있을 것 같은데, 이제 그런 게 있으면, 자료도 보관하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김정진: 노회찬재단 쪽에서 들은 얘긴데, 노회찬 의원 활동하셨던, 인민노련과 관련된 자료 성공회대 민주화기념사업회에 보냈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이제 그게 체계적으로 보존 정리가 되어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원시: 저도 아시겠지만, 다른 나라 경우, 그런 활동들을 가지고 관련학과 있잖아요. 정치학과 사회학이나 역사학과나, 다 석 박사 논문을 써서 그거 가지고 밥 먹고 사는, 그런 게 다 영국 프랑스 미국 캐나다, 독일 다 그렇거든요. 우리나라 이야기가, 우리나라 지식사회가 너무 창의적이지 않다. 등잔 밑이 어둡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민주노동당 제가 물어보는 이유가 앞으로도. 진보정당에 첫 직장으로 할 사람들도 있을 거라고요. 그래서 김정진 변호사가 왜 첫 직장으로 민주노동당을 선택했을까, 그게 그 동기가 무엇이었을까 궁금했어요.


김정진: 저도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는가, 잘 모르겠어요

지금 또 20년이나 생각해 보니까, 근데 그때는 뭐 순진 했었던 거 같기도 하고, 내가 믿는 바가 있으면 그 믿는 바에 따라서 맞춰서 뭔가 행동을 해야 된다라는, 물론 사람이 영원히 그렇게 살 수는 없겠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 한번 해보자, 이정도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믿는 게 있으니, 말만 하지 말고,  민주노동당은 어찌 됐든 간에 민주노총 지지, 엄호 하에 만들어진 정당이고, 그 당시에 그런 부분에서 사회적 명분이 있었기 때문에 유럽식으로, 민주노동당이 유럽식 사회민주정당으로 발전할 걸로, 개인적으로 생각을 해서 이렇게 내부적으로 이렇게까지 복잡한지 몰랐었고, (정파 분포나 갈등, 무능력 등을 포함) 이야기만 좀 들었을 뿐이었지, 믿는 바가 있으니, 행동을 하자 그 정도였던 것 같아요.


원시: 처음에는 주변 가족들이나 지인 반응은 어떠했나요? 


김정진: 당연히 반대했죠. 찬성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친구들이나 제 아는 모든 지인들이 다 반대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아 이거는 오히려 진짜 한번 해 볼만 일인가보다' 그렇게

생각했었습니다. 다 반대했고요. 부모님들이 반대한 것은 당연하고요. 잘 아시겠지만, 부모님들이야 옛날 분들이시고.


원시: 그래도 뭐 타협을 했을 거 아닌가요? 그래도 뭐 민주노동당하게 되면, 부모님 세대 기성세대에게 당근을 줘야 되잖아요? 이거 하면 뭐 줄 수도 있다. 뭐 해 줄 수 있다. 이런 뭐 공약한 거 없어요? 


김정진: 타협하고 말고 뭐 그런 세대가 아니시니까.


원시: 그냥 폭력적으로 그냥. 


김정진: 모든 일들이, 저는 그렇다고 봅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다 좋게 좋게 시작할 수가 있겠습니까? 뭐 그런거죠. 


원시: (민주노동당) 사무실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서 가장 친하게 지낸 사람은 ?

 마음이 맞는 사람?


김정진: 제가 뭐 정책실 소속이었으니까, 당시 정책위원회 분들하고 주로 일을 많이 했고, 제 사수가 이제 이재영 국장. 지금 노회찬 보좌관하다가, 지금은 좀 공부를 하고 있는 박창규 동지가 저랑 같이 정책부장이었고, 지금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김윤철 교수가 정치분야 정책위원으로 왔었죠. 그리고 지금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인, 곽주원이 경제분야로 왔었고, 그때 이제 이 분들하고 주로 작업 많이 했죠.



3부. 민주노동당 시절, 가장 잘 한 사업은 무엇이고,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


유투브 링크: 3부~5부:  https://youtu.be/BuJIVsAQz00

오디오 팟빵 3부~5부 : http://www.podbbang.com/ch/1776409?e=23561075


원시: 김정진 국장, 정책 부장님이 그때 참여해 가지고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그래도 이거는 잘했다 할 수 있는, 한 두 가지 정도는? 


김정진: 말씀을 드리면, 저를 포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 기록이라고 생각하고, 

제가 (인터뷰 질의서) 내용을 보고, 인터뷰에 응했어요. 사료라고 생각을 합니다. 사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솔직히 말씀드리는건데, 선출직 공무원을 할 것도 아니고 제가 했던 것을 포장할 필요도 없고요. 


사실 그냥 힘들었어요. 그냥 전체적으로 그 오만 가지 안 한 게 없기 때문에, 오만 것을 다 했거든요. 정책도 그냥 뭐, 사실 제가 변호사니까 법은 좀 알죠. 그런데 노동법은 잘 몰랐어요. 그래서 노동법을 잘 아는 친구들한테 이제 좀 물어봐서 대략 얼개 정도 이해한 정도였고,세법(tax law)은 대학원 때 전공해서 기본 이상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그게 전부였거든요. 사람이 없고 부족하니까 그냥 안 한 게 없어요. 


이재영 국장 말고는, 아마 제가 진보정당에서 일한 사람들 중에, 정말 제일 다양한 종류 토론에 제일 많이 나갔을 거예요. 나갈 사람이 없어서, 다 나가서 땜빵 (땜질) 하는 거였거든요. 솔직이. 다들 모른다고 해서.   


 

(세금, 재분배 문제를 한국 정치 주제로 최초로 올려놓은 민주노동당. 김정진 정책국장이 부유세 토론회 주자로 나섰다. 그러나 당 지도부의 조세 철학 빈곤으로 미완성으로 남아있다.) 


원시: 저도 2002년에 (부유세 토론) 뉴스 듣고 그랬죠. 


김정진 : 사실 힘들었던 기억밖에 없어요. 정책을 만들면, 언론에서 무슨 당시에 언론에서 거의 (민주노동당을) 보도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힘이 없으니까 그렇기도 하고, 언론 환경이 진보언론도 그냥 웬만하면 그냥 김대중 노무현에 방해되는 모든 것들은 다 치워버렸기 때문에, 선거 전에는 (민주노동당을) 조금 보도해주다가, 선거에 들어가면 아예 싹 지워버린, 이런 식 보도를 많이 했었거든요. 정책도 주목을 받는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웠죠. 어려웠기 때문에, 좋게 기억에 남는 일은 별로 없어요.


원시: (듣는 순간 맴찢)  


김정진: 그 정책 관련되어 좋게 기억에 남는 게 별로 없죠. 


예를들어 부유세(wealth tax) 같은 경우, 제가 만들었다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제가 실무적인 작업만 한 거예요. 


외국사례 찾고, 과세 기준 다들 이런 개념을 모르시니까. 이런 거 외국 사례 보고 정하고, 세부 문서를 만드는 정도였어요. 해외 사례도 조사하고, 근데 부유세나 이런 부분들은, 당시 당에서 정책으로 추진하던 것이었고, 의외로 여론의 반향이 있었고. 그게 아마 당시 불평등이 심해지면서 부자에게 세금을 부과한다는 게 사람들한테 좀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거 같아요.


근데 사실 저는 부유세에 대해 별로 좋은 기억이 없는 게, 추진하는 과정에서 너무 힘들었어요. 왜냐면 당지도부는 부유세에 대해서 확신이 없었거든요. 제가 민주노동당 때부터 경험했던 그 당의 리더 그룹들은 이게 참, 저는 그 전에 그 분들하고 인연이 없어서 그런지 몰라도, 특이하다고 생각을 많이 했어요. 


뭐냐면, 아니 세부 정책이나 이런 거는 뭐 모르거나, 어떻게 보면 다 알 필요는 없겠죠. 근데 저렇게 오랫동안 사회운동에 복무했으면서도 노선이나 이상에 대한 확신 같은 게 다들 없으시더라고요. 관성적으로 어떤 이슈에 대해서 대응하는 것뿐이지, 어떤 불평등을 해소해야 하겠다라든가, 또는 이런 부분에 대해서 어떤 철학적 확신 같은 건 없으시더라고요.


부유세 추진에서, 너무 너무 힘들었습니다.  (부유세에 대한 외부) 비판이 당연이 있죠. 모든 정책이 다 명암이 있으니까, 그런데 조그만 비판이 있으면, '아주 그냥 뭐 해야 되냐'이런 식이야 반응이셨어요. 대부분. 


그래서 사실 좀 그때 좀 놀랬죠. 그래서 내가 여기 온 게 온 것을, 오기로 한 게 잘한 거라는 생각이 초기에 들 정도였어요. 



원시: 아, 그랬군요. 제가 세금, 부유세를 비롯해서 세금에 대해서 지금도 기억이 나는데요.  김정진 정책 부장님 증언에 따르면,  (민주노동당) 리더 그룹들이 문제의식이 없었다.  세금은 사실 재분배잖아요, 재분배부터 출발한 거, 정치기본이잖아요. 모든 선거에서요. 미국도 보면 공화당에서는 가처분소득 늘려 주겠다고 세금 맨날 깎는 거잖아요. 


김정진: 그렇죠. 전통적인 주제죠. 


원시: 한국 정치 당시 다른 정당, 리버럴 민주당과 보수당, 한나라당 이런 데서 세금 가지고 정책적으로 논쟁된 적이 없죠. 그러니까 재분배 정책이 최초로 제기되었고, 정치학적으로 그렇고 정치사적으로 굉장히 유의미하다고, 전 그렇게 봤거든요.


김정진: 저도 그런 부분을 하려고 민주노동당에 들어간 것인데,


원시: (리더들이) 관심이 없었다


김정진: 제가 당시 놀랐던 건 이게 이제 제가 얘기를 왜 말씀 드린다면, 이후 진보정당 행보와도 연결이 돼요. 진보정당에 지도급 그룹들 행보를 보면, 사실 정의당도 이것과 연결되어 있는데 제 느낌은, (리더 그룹들이) 기본적으로 원로원이예요. 


이게 뭔가 전투를 하고 지평을 넓히고 재분배를 위해서 몸을 던지고, 그런 게 아니거든요. 그냥 그 때부터 그랬어요. 그때부터 2004년 원내에서 의정활동 잘 했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그 때도 마찬가지고 원로원 유형의 정치를 그 때부터 쭈욱 해왔던 거거든요. 


원시: 지금 말한 원로원 정치, 방금 말씀하신 좀 풀어 줘야 될 것 같아요.

어떤 특질입니까? 


김정진:  어떤 원칙과 소신을 가지고 어떤 뭘 추진하고 있는 게 없어요. 추진하고 이럴 생각이 있는 게 아니고, 그냥 그 대표적 지도 위치를 맡아서, 그냥 관리 정도나 한다고 해야 할까요? 궂은 일은 잘 하려고 하지 않고.  뭐 이런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민주동당 정책 관련해서는 부유세가 기억에 남긴 하죠. 근데 이제 추진 과정이 제가 하여튼 이것을 때려 치고 싶은 만큼, 분개한 일이 여러 번 있었어요. 제가 볼 때는 부유세는 아무것도 아니거든요. 그거 한다고 혁명이나 사회주의가 되는 것도 아니고, 혁명이 일어난 것도 아니고, 세금 조금 더 걷는 정도였어요. 


그때 과세기준을 놓고 논란이 있었는데, 10억 정도면 어떨까, 10억이라고 정한 것은 당시 2002년도 시점에서는 10억 정도면 부자라고 생각을 했었거든요. 근데 강남에 큰 집이 하나 있으면 10억이 되었던 해입니다. 그 2002년 시기가.  노무현 정부 때 20억 되고, 이제 지금 문재인 정부 때 30억, 40억 되어 버렸죠. 그 때 10억 정도를 제시했는데, 그때 당내에서 나온 이야기예요. 


저는 정말 깜짝 놀랬어요. 여기가 민주당이면 그 말이 나올 수가 있는데 강남에 집 한 채 있는 사람은 어떡하냐? 그러는 것입니다. 제 귀를 의심했는데, 아니 왜 그럼 민주노동당을 왜 하는 거지, 이 사람들은? 그런 분위기였던 거죠. 


지도급 인사들이나 그 생각들이 이런 부분들이, 그게 사실 진보정당 리더십 형성에 있어서, 

'이런 거였구나' 이게 무슨 상당히 부정적인 요소로 많이 작용했다고 봐요. 그 이후에도. 그런 식의 리더십을 사람들이 계속 겪다 보니까, 당연시 해버릴 수도 있는 것 같더라고요. 지금도 그게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원시: 아, 지금 굉장히 중요한 그 말씀 해 주셨는데 저도 그때 온라인이지만, 정책을 

제안하면서, 재분배(세금 정치)에서 출발하는데 아까 정치의 기본이라고 말씀했잖아요. 재분배 그 다음, 분배(노동소득)인데, 세금정치 가지고 그렇게 벌벌벌 떨면, 그것보다 더 힘든 노동소득 문제나, 그 다음에 그 다음 단계라고 할 수 있는 자산의 평등화 문제나, 금융자산이나 부동산이나 토지나 주택이나 이런 정책으로 계속해서 발전시킨다라는 것은 엄두를 못 내겠는데요? 


김정진: 그게 그런 정도 생각이라도 있으면 다행이었던 거고요.

사실은 심하게 말하면 민주노동당 강령에는 토지를 국공유화 한다고 돼 있었어요


원시: 예 그랬죠. 



 


(부유세 공약을 내걸었던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버니 샌더스.  순소득 394억 부자에게는 1%의 부유세를, 616억~3080억 부자에게는 2%, 12조 3226억 부자에게는 8%의 부유세를 부과한다는 공약임) 


김정진: 그러니까 그 강령 내용도 인지를 제대로 못하고 계신 분들이 많았어요. 

제가 볼 때는 인지부조화인데.  


원시: 과거 사회주의국가들도 그랬었는데, 헌법에는 그 노동자가, 노동자의 자유를 위해서 존재한다, 그래 놓고, 사실 그렇게 하지 못했죠. 


김정진: 민주노동당 초기에 일들은, 대단히 힘든 일이 많아서 힘든 일도 많았고,

뭐 좀 어두운 면이 더 많았죠. 그게 부유세가 이후에 사실 실종되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한 귀결이었던 것 같아요.  뭐 그 부분에 대한 확신이 없는데 뭘 어떻게 추진 하겠어요? 확신이 있어도 될까 말까인데. 


제가 그래서 오히려 저는 뭐가 기억이 나면, 제가 이제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통틀어서 국회 기자 실 딱 2번을 갔거든요. 기자실에 기본적으로 가기 싫어했어요. 왜냐하면 이제 그 국회 기자실에서 정치적 논평한다는 게 무의미하다고 봤기 때문에, 두 번 정도 갔는데, 그 두 번이 다, 아무도 안 오는 자리에요.


첫 번째 자리는 정책위원회에서 하는 기자회견인데, 개헌을 해서라도 토지공개념을 하자, 라는 이야기를 이제 정책위의장님이 발표하기로 한 거였거든요. 당시 주대환씨가 정책위의장이었는데, 토지공개념 일부 법률에 위헌 결정이 나면서,  과거에 토지공개념을 추진하기 어려운 거 아니냐, 이런, 사실 그게 오해인데, 그 오해가 있으면, 그거를 바꾸기 위해서라도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기 위해서라도, 개헌을 해서라도, 토지공개념을 하자, 라는 설명이었거든요, 그런데 거기 국회의원들 중 아무도 오지 않았어요. 


민주노동당 때 이야기입니다. 지금 그 이야기를 (토지공개념) 민주당에서 하고 있거든요. 문재인 정부 개혁안에 토지공개념이 들어가 있어요.  근데 그게 그 뭐랄까

빛이 나는 자리가 아니었던 거죠. 


두 번째가 황우석 사태 관련 기자회견입니다. 그 때 아무도(민주노동당 국회의원) 안오려고 했어요.  황우석 사태 관련해서, 지금은 녹색당 가계신 한재각 연구원이 황우석 팀의 난자채취과정 연구 윤리, 그리고 난차 채취 절차 이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했거든요.


그것 때문에 거의 민주노동당 당사가 마비될 정도로 항의 전화가 많이 왔었어요. 사실 그때 민주노동당이 잘못한 거 하나도 없습니다. 왜냐면 담당자한테 물어보니까, 그럼 난자를 채취하지 않는 이유, 선진국에서 하지 않는 이유가, 그런 연구를 하게 되면, 난자가 많이 필요하고 난자라는 건 여성의 몸에서 별로 나오지 않기 때문에 배란촉진제 주사를 맞아야 하고 여성의 건강에 아주 안 좋은데, 저소득층 여성들이 난자를 팔게 되고, 그럼 저소득층 여성들이 그 큰 문제가 생긴다는 거죠. 마치 매혈을 금지하는 것과 비슷한 취지더라고요. 


그래서 아니 이거는 진보정당이, 민주노동당이 (황우석) 연구성과와 무관하게 이런 윤리 문제를 무조건 지적해야 한다고 했는데, 난리가 난 거죠.

 

이제, 그 황우석 박사 같은 경우, 민주노동당 때문에, 연구를 못하겠다고 하니까, 그 말을 해가지고, 난리가 났어요.  저도 막 육두문자를 써가면서 항의전화 받으면서 여러사람과 싸웠거든요.  근데 그 한재각 위원이 그 문제에 대해서 추진하면서 해명을 하려고 하는데, 기자회견 하려고 하는데, 아무도 안 오려고 하는 거죠. 거기 갔다가는 몰매를 맞으니까. 그 회견까지 해서 딱 두 번 습니다.


아무도 안 가려고 하는 거는 그때 참석한 거지, 개인적으로 되게 영광이라고 생각했었어요. 제가 지금까지 진보정당 활동에 보람을 느꼈던 게 그 기자회견에 갔을 때입니다. 사실은 (2004년) 원내 진출했을 때보다, 그 때가 더 영광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영광스럽다고 생각했었습니다.


4부.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 명부 작성의 문제점, 그 역사적 기원은 2003년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명부 작성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터뷰 링크: https://youtu.be/BuJIVsAQz00



 


(민주노동당 정책국장으로 일하던 김정진. 가운데 뒷줄 타원 속 )


김정진: MBC 한학수 피디나, 프레시안 강양구 기자가 밝히는데 기여를 했고, 민주노동당 쪽에서 한재각 동지가 연구윤리 문제제기를 했고, 그건 맞아 죽더라도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고 봐요.


아니, 왜 매혈을 금지합니까? 없는 사람 피 팔아가지고, 건강이 더 안 좋아지고, 계속 피를 팔게하면 더 노동을 할 수 없고, 더 가난해지고, 폐인이 되는 게 아니겠어요? 

그래서 그걸 지금 법에서 금지하는거 아닙니까. 헌혈 기부만 되지, 매혈(돈받고 파는 것)은 안되는 거잖습니까? 그게 똑같은 취지거든요. 그거를 당연히 지적을 해야 하는거죠.


그 (황우석 줄기세포) 연구윤리 문제에 대해서. 근데 여론이 안 좋다고 그거를 포기하고 무슨 진보적인 척 한다는 거 자체가, 위선이고 기만이죠. 그러니까 저는 오히려 제가 저도 뭐 그 정도까지 제가 확신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 자리 (기자회견)에 하도 갈 사람이 없어서 제가 그냥 간 거였거든요.  그때가 영광이다, 영광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일보다, 진실과 진보의 가치를 지키는데 기여를 했다고 생각을 해요. 


원시: 아주 중요한 사회적 시기였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 당시 지도부가 굉장히 소극적인 게 지금 2004년 의원 10석이 생긴 이후에 일이죠? 

 

김정진: 그 이후 일이고,  2004년 그게 무슨 큰 기점이 아니고, 이런 것들이 다 연속해있었던 것 같아요. 연속해 있었고, 사실 모든 게 다 초기부터, 그 모든 모순, 문제가 잉태되어 있었던 거죠. 


그때가 마치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황금시기인 양 이야기를 하신 분들이 일부 있어요. 저희 같이 활동했던 분들 중에는. 그런데 저는 거기에 대해서는 입장이, 견해가 다릅니다. 어떻게 문제가 갑자기 생기겠어요? 모순 구조와 갈등구조가 있던 것이 불거진 거지요. 


원시: 방금 전 이야기하는 것 중에서 상당히 이제, 저 같은 경우는 실천적으로 관심이 있었지만, 진보정당, 민주노동당 그 연구대상이기도 해서 굉장히 주의 깊게 자료도 많이 읽고, 그랬던 거 같은데요.  당시에 보면, 민주노동당 당내 비례대표 선거를 2003년 말부터 했었죠? 근데 방금 말한 거, 구체적으로 좀 사례가 될 것 같아요. 


그 민주노동당에 2007년~2008년 분열과정에서 지금까지, 어떤 리더십의 문제당내 민주주의 문제 또는 그 리버럴 민주당이나 보수당과 어떤 질적인 차이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이제 그 이유를 찾아 보면은 그것들 중에 여러가지 원인들이 있을텐데,  2003년에도 저는 좀 찾아 볼 수 있다라고 봐요. 그 비례대표 선거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평가하시는데 모르겠는데 지금도 마찬가진데요,  2020년 그 정의당 당내 선거에서도 그런데, 그 선거 방침이 독일식 지역 비례 혼합형, 연동형 비례대표제 채택을 지향하고 있잖아요? 근데 당내 비례대표 그 투표하는 과정을 보면은 전혀 그런 정신으로 살리지 않아요. 이상하게 투표하는 방식이. 


김정진: 지금하고 계속해서 연결되는 논점인데, 아니 당내에서 비례대표투표 방식을 못하면서, 대 사회적으로 연동형비례대표제를 도입하자고 하는 게 사실 저는 예전부터 설득력이 없다고 봤거든요.


원시: 자기 모순이죠?



김정진: 예. 그러면 그런 지도부나 구성하는 방법이 없냐? 아니 있어요. 저희가 연구했던 브라질 노동당 (빼떼 PT)사례도 있고, 정파명부제 같은 게 있고. 특히 민주노동당은 그거를 실시하는 게 차라리 그것을 실시했더라면, 당이 안 깨졌을 겁니다. 저는 그렇게 봅니다. 근데 기본적으로 자신이 어떤 정파라는 것을 드러내놓고, 활동하는 것을, 대단히 꺼려하는 그런 분위기가 아주 강했던 거 같아요.


특히 지금은 갈라진 자주파 같은 분들이 자기들이 하나의 정파라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하고 공개적으로 인정하기 대단히 싫어하는, 그러면서는 정파로서는 하나의 블록으로서 당내에서 상당히 밀도있게 활동하면서도 그런 게 큰 영향을 미쳤죠. 


그러니까 연동형 비례대표제, 설득력이 없어요. 당내에서도 비례적으로 운영을 못 하고 모든 권한을 당대표에게 몰아놓고, 어떻게 그 다당제, 권력을 나누는 건데, 그런 제도를 대 사회적으로 설득하라고 하겠어요? 그 부분이 가장 지금도 큰 모순이라고 봐요. 정의당에서 진지한 고민을 해야 된다고 봅니다. 


원시: 아직 (정의당 내부모순을) 비례대표 이거를 지금 사람들이 언론에도 그렇고, 당원들도 그렇고요, 굉장히 많이 알려지지 않고 있는 거 같아요. 


왜 그러냐면요 , 정의당을 비판하기 전에, 다른  민주당이나 다른 보수당 있잖아요,

그들과 비교해서 정의당이 그나마 형식적으로 투표를 하기 때문에 그런 거 같아요. 

그 다른 정당은 또 그것도 제대로 안 했으니까.


김정진: 우리나라는 아직도 '공천'이라는 말이 법에 있으니까요. 다른 나라는 이게 사실은 한국의 정당 후보자 산출방식은 이 전략공천, 지금도 말도 안되는, 그 정말 부끄러운,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출대표'라고 쓰지, 공천이라고 하지 않거든요. 그러니까 본질적인 문제가 있는거죠. 


 

(오스트랄리아, 선호 투표 제도 방식, 유권자가 가장 선호하는 후보는 1번부터 최대 4번까지 기입할 수 있다. 김정진 국장이 선호투표제를 2003년 민주노동당 비례대표제도 선거방식으로 제안했었다) 


원시: 구체적인 방식에서요, 이번에 정의당 비례대표, 저는, 2004년부터 2003년 민주노동당 당내 비례대표 명부를 만드는 거 보면서 김정진 정책 부장님이 당시 느꼈던 것과 결이 같은지는 모르겠는데, 위기가 올 거라고 좀 그때도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근데 이제 정당명부를 만들 때, 아 이거는 개방을 좀 할 필요가 있겠구나. 구체적으로 결정할 때, 당원투표 50% 그 다음에 공신력있는 정책위원회 있잖아요, 그 다음, 선거 시민단도 포함을 해야 된다라고 봤어요. 당내 당원투표만 하는 것은 오히려 더 문제가 많았다. 과거사례 볼 때.


 그리고 투표하는 방식도 선호 투표제를 하는게, 총점제를 분야별로, 주제별로 20개에서 30개 넘을 거잖아요 그 비례대표 주제별로. 그러면 자기가 선출 할 수 있는 사람을 당내 행사니까

30명이 다 마음에 들면, 30명도 찍고, 그 다음에 한 명만 한 명만 찍고 이런 방식으로 해야 되는데 1인 1표, 1인 2표,  1인 3표 이런 것도 비례대표 명부 만드는 정신을 구현하지 못한다 이렇게 생각하거든요.  한 가지씩 한번 좀 짚어서 토론 한번 해 볼까요? 


 김정진: 투표 제도라는 것은 다 명암이 있죠. 민주노동당 2004년도 룰을 정할 때 1인

2표제 했죠. 명부를 일반명부 여성용으로 나누고, 1인 2표씩 주는 걸로 했는데

근데 이제 그때는 아마 그런 고려가 제일 컸던 거 같아요.  대략 한 4번, 5번까지 당선되지 않겠느냐, 2002년 지방선거 때 8% 나왔기 때문에, 4번~ 5번까지 되지 않겠느냐,  그래서 당내 모든 세력들이 그 정도로 합의를 했던 거고, 1인 다표를 주자는 안도 있었고, 사실 제가 그 안을 만들어서 올렸던 건데, 선호투표제 안도 있었어요. 그게 조금 복잡해보여도 합리적이거든요. 


원시: OMR카드 쓰면 아주 쉽잖아요? 


김정진: 당연하죠. 어려울 것도 없죠. 다 인터넷으로 투표하는데. 


원시:  그러니까요. 그 때 저랑 대화를 안 나눠도 생각이 똑같었군요? 


김정진: 만약에 사실은 대표 명부를 저희도 검토를 해 봤는데, 독일 사민당, 이런 경우는 그걸 일일이 어떻게 다 투표를 하겠어요? 뭐 다 (의원) 수도 많은데, 다 오랫동안 당내 민주주의도 그렇고, 정당 지도부에 대한 신뢰가 있으니까, 당에서 명부를 작성해서, 당 지도부가 대의원대회를 통과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는 모양입니다. 독일 사민당 같은 경우는 그렇고요. 


만약 당대회에서 부결시키면, 당지도부에 대한 불신임이고. 당대표에 대한 불신임이고, 그런데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독일사민당처럼 할 수 없으니까, 당원 투표를 할 수 밖에 없는데, 투표를 한다면, 사실은 제일 합리적인 것은 선호투표죠. 너무 당연한 이야기인데. 이제 당시에는 그런 제안을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거고.


그 후에, 정의당은 왜 1인 1표가 되었냐면, 상대적 다수파가 1인 3표, 4표를 가지고

상대적 다수파가 거의 60~70% 이상을 가져가 버리는 상황이 돼 버리니까.이제 소선구제 비슷한거죠. 아마 그것을 막기 위해서, 정의당은 초기부터 1인 1표로 룰이 굳어진 것 같아요. 


만약에 비례 당선자가 얼마 몇 명이 당선되는 사람이, 얼마 안 될 것으로 예상하면, 그 제도도 가능하죠. 그런데, 더 많이 당선될 것이라고 예상이 되면, 사실 1인 1표제는 재검토가 필요합니다. 


5부. 2020 총선, 정의당 전략적 패배 원인은 무엇인가? 비례대표경선 문제점. 심상정 대표체제의 구조적 문제점. 토론과 이견이 실종된 정의당, 이제 바꿔야 산다. 집단지도체제가 필요하다. 



김정진: 투표방식도 문제지만, 기본적으로 정의당 비례대표경선은 기본 관점이 되게 잘못됐던 거 같아요. 정당이 정치 기획사가 아니거든요.  


 

(21대 총선,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 명부작성 정책토론회. 준비 소홀과 내용부족으로 유권자들에게 주목받지 못했다. 정책평가단에서 1위로 뽑힌 강상구의 경우는 후순위에 배정되는 등, 절차에서 미숙함을 드러냈다.) 


원시: 그 말씀은 어떤 말씀인가요? 


김정진: 콘테스트 (노래자랑같은 대회를 말하는 것 같음) 하는 데가 아니거든요. 

여기 진보정당이라면, 가치, 계급계층의 이념 노선을 대변해야 하는데, 그것을 대변할 사람들을 뽑을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그런 기획을 가지고, 선거제도나 후보 선출을 접근했어야 하는데, 이것은 무슨 정치기획사처럼, 사람 붐업(boom up)시켜가지고 인기 투표하듯이 되어 버렸다는 겁니다. 물론 투표라는 게, 표를 더 많이 가져가는 사람이 당선되지만요. 진보적 가치를 부여하는 정당에서….. 정의당에서 하는 기본 콘셉은 정치기획사거든요. 이번 선거 자체가. 


원시: 당이 전략적이랄지 지도력을 발휘해야 할 부분들은 안하고, 기후정의와 사회불평등을 

두 가지 가장 큰 슬로건으로 내놓고는, 만약에 진짜 거기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면, 

비례대표 1번, 2번을 그렇게 배치했어야죠. 그런 부분들도 안 맞고요.


제가 관심있게 봤던 부분은, 정책평가단 내용들이 굉장히 중요한데, (정책평가단) 부분에서는 그 점수 (배당)도 0점으로 처리했더라고요.  그 문제와, 시민평가단, 개별후보가 모으면 안되고, 당에서 해야죠. 당이 아니라, 후보 개인이 정의당 간판을 이용해서 국회의원이 되는 과정으로 되어버렸습니다.   


김정진: 제가 세부적인 부분까지는, 당을 떠난 상태에서, 어떻게 논의해야 하는가는 

 정확히 모르겠는데, 일단 밖에서 보기에는, 세부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평가할 부분이 또 있겠죠. 

근데 이제 기본 컨셉이 이게 기탁금을. 


원시: 5천만원이었던가요?


 김정진: 이해가 안됩니다. 금권선거하자는 것도 아니고.  그걸 뭐 물론 지역후보한테 쓰겠다는식으로 얘기하는데, 그런 논리라면, 정의당이 기부금 입학을 찬성해야죠.

왜 기부금법 반대합니까? 없는 사람들, 기부 입학 돈 받은 걸로, 저소득층 지원하면 되죠.

대학생들. 말도 안됩니다. 모든 게 이율배반이고, 말도 안 되는 것 같아요. 


원시: 근데 민주노동당 때도 비례대표 기탁금이 그렇게 있었나요? 


김정진: 그니까 그거는 냈죠.  본선에서 내는 건, 본인 부담이었고, 그 외에는 없었어요. 추천만 받으면 되었어요. 


원시: 그거는 심상정 대표가 답변 해야 될 것 같은데, 2004년에 심상정 대표도 당시에 비례대표 후보였잖아요. 


김정진: 그런 부분들까지 저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안됩니다. 지금도 국회의원 선거, 일반 공직선거도 기탁금이 많다고 생각하는데, 이게 미국에서는 1천 달러 했다가 그게 위헌났거든요. 그 예전에, 다른 나라에서는 거의 그냥 수수료 수준이에요. 1만원 2만원 이런 정도입니다. 우리나라는 지금도 후보들한테 천만원씩 받아요. 국회의원 선거를. 그런데 그것에 대해서 처음에 헌재에서 88년 위헌했다가, 다시 시간이 지나고 화폐가치가 떨어지니까, 지금은 위헌이라고 하지 않는데, 여전히 많은 거죠. 

(*현행 기탁금은 국회의원 1,500만원, 비례후보는 500만원임) 


원시: 부끄러운 일이다 이거죠? 


김정진: 그런 게 한 두 가지가 아니죠. 제가 볼 때는 이성이 마비된 것 같아요. 지금 어떻게 진보정당에서 그런 안을 만들 수가 있어요? 이해가 안가요. 이해가 안 되는 부분입니다. 


원시: 반드시 좀 짚고 넘어가야 될 필요가 있겠다 싶네요. 지금 경선 비례대표 명부 만드는 방식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기탁금 얘기가 나왔는데, 제가 깜빡 잊고 있었는데 잘 지적해주셨네요.  

이게 어떤  정당운동을 한다가 아니라, 어떤 느낌을 받았던 하면은, 이게 회사 취직할 때나 직장에 취직할 때나, 대학교 입학원서 쓸 때나, 이럴 때 개인적인 일이잖아요?  우리가 그렇게 살았잖아요. 마치 그런 거나 똑같이 보이더라고요. 이번 경선 보니까 기탁금 이렇게 내고, 이런 방식들이. 앞으로 대안은 어떠해야 할까요? 


김정진: 제가 볼 때는 비례대표 선출방식만 놓고 검토해야 할 것은 아닌 것 같고요, 당 진로나 노선, 생존가능성 여러가지로 폭넓게 놓고, 당 자체를, 정책, 인물과 노선을 혁신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도적으로는 빨리 집단지도체제로 바꿔야 돼요. 사실 거의 1인 대표 체제에서 집단체제로. 현재 구조로는 다른 정치인이 클 수 있는 구조가 없어요. 당내 구조 자체가 당대표한테 모든 권한과 예산을 다 몰아놓은 상태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당에서 일하면서 성장할 방법이 없어요. 


이게 이제 그렇다고, 지역구에서 당선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진 상황이고, (현 체제를) 집단지도 체제로 바꾸고, 비례명부는 지도부 최고위원회가 얻은 득표에 따라서, 순번을 자동 부여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원시: 그런 제안을 (저번 레디앙 tv에서) 한번 했었죠? 당 대표 권한을 집단체제로

바꾸자. 구체적인 상은 좀 잡히지 않는데요. 예를 들어서 예비내각 (* shadow cabinet)으로 하자는 것인가요? 아니면 어떤 구체적인 방안입니까? 이게?


김정진: 아니 다른 당들은, DJ 김대중이나 YS 김영삼 대통령이 퇴장한 이후에, 다 그렇게 바뀌었어요. 그냥 그 당대표는 대표 최고위원 그런 비슷한 개념입니다. 최고위원들 중에 추대를 해서 대표를 뽑거나, 아니면 따로 투표를 해서, 대표를 뽑기는 하지만, 구조를 보면, 그런 구조거든요.  원내정당 대부분 그래요. 최고위원들 각자가 당무에 대해 결정하는 중요한 결정을 할 권한을 가지고 있는 합의제기관 같은 거예요.  근데 정의당은 당대표가 다 결정하게 되어 있고, 회의는 그냥 다 요식행위가 됐으니까요. 


 


(정의당 전국위원회 모습. 전국위원들이 정치가로서 자율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지식과 정보를 제공받지 못한 채, 당 정책과 노선을 주체적으로 수립할 능력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지난 20년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원시: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습니까? 민주노동당 때도 이랬습니까? 


김정진: 제가 알기로는 진보신당 때부터 이렇게 되었고요, 그 영향으로, 통합진보당, 정의당, 지금 노동당까지 다 그렇게 당헌이 비슷하게 되어 있어요. 근데 이제 민주노동당 집단지도체제가 워낙 난장판이어서, 그 경험 때문에 단일지도체제를 만든 건데, 그게 물론 순기능도 있었죠.


소수정당이 원내에서 살아남는데, 강력한 지도력이 있어서, 살아 남는데, 도움이 되었던 것은 , 그런 점도 있어요. 제가 보기에, 그런데 지금은 이런 식으로 구조를 만들어놓으면, 당대표 말고는 나머지 사람들은 당내에서 성장할 방법이 없는 구조예요. 


그러면은 어떻게 이제 존속가능한 정당이 되겠습니까? 집단지도체제로 바꾼다고 무슨 이게, 당이 다시 살아난다 이것은 아니지만, 하여튼 이런 고민을 좀 해봐야 합니다. 변경할 때가 됐습니다. 지금. 


원시: 그러면요, 예시라도 조금 들어봤으면 좋겠는데요, 집단지도체제 하면 이제 뭐 대략 한 다섯 명에서 10명 사이에 최고위원을 구성합니까 ?


김정진: 예 그렇죠. 다른 당은 다 그렇게 되어 있어요. 


원시: 다른 당이 다 그렇게 하니까, 우리도 하자는 것은 아닐테고, 어떤 장점이 좀 있을까요 ?

 

김정진: 집단지도 체제는, 기본적으로 집단적으로 결정을 하는 거죠. 지금 정의당은 단독 대표제인데, 대표의 잘못이 시정될 시스템이 없어요. 전국위원회나 대의원대회가 있지만, 그것은 드문드문 열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당헌 당규상, 대표에 대해서 제어하거나, 또는 뭐 그 구속력있는 의견을 내거나, 이런 지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어요.  당내에 당직 자체가. 집단적인 의사를 모아내는 것이 집단지도체제입니다. 


원시: (한참 설명을 듣다가, 약간 의아해서) 아니, 그건 아주 그 단순한 이야기인데요, 

그게 이제 구현이 안 된다는 거예요? 이게 그러면 굉장히 심상정 대표…… 


김정진 : 그럼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이게 무슨 심상정 대표 개인에 대해서 그러는 건 아니고. 조국 사태 때, 정의당이 이제 대통령의 임명권을 존중한다고 당대표가 입장을 밝혔잖아요?  워딩이 그렇게 나왔거든요. 


근데 이게 만약에 정의당의 내부의 의견 분포도라던가, 정상적인 정당이라면, 최고위원회가 있으면, 위원들 중에 한 두 명은 이것은 아니다라고, 공개적으로 이야기를 했을 것입니다. 다른 정당들도 다 그렇잖아요? 


그 시점에서 정의당의 가장 큰 문제는, 그런 입장이 있었다는 거, 보다 더 문제는, 이견이 없었다는 게 더 문제예요.  그런 말도 안되는 입장이 나왔는데도, 이견이 없었다는 게 더 이상한 것이거든요.  모든 집단이나 개인이 오류를 저지를 수 있죠. 이견이 안 나오는 거죠. 이견이 나와야 정상적인 사안인데. 


원시: …… 


김정진: 그 때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견이 없었어요. 거기에 대해서. 이견을 제시한 사람이 없었어요. 이게 당의 구조와 관련이 있다. 동등한 자위에서, 이견을 제기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요. 구조상. 당대표가 다 결정하는 거예요. 


원시: 그렇다면, 이게 평가도 안 되고 책임성도 떨어지고, 당연히 그럴 것 같은데요? 


김정진: 오류 시정이 안되는 거죠. 


원시: 오류 시정이 안되죠. 


 

(2004년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1번으로 당선된 심상정 의원이, 총선 이후 노동자 집회에 참가하고 있다. 2012년 이후 노회찬 의원과 대중정치가로서 쌍두마차 역할을 했지만, 진보정당의 장기적 토대를 마련하고 인물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리더십은 미흡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김정진 전 소장은 정의당이 야성을 되찾아야 한다고 역설한다.이를 위해서 정의당은 실종된 토론과 이견 제시 문화가 부흥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

 

김정진: 가장 중요한 건 하나의 의견으로 나간다면, 이거는 이제 전체주의 정당인거죠.

 물론 그게 너무 금도나, 또는 그 기본적인 시스템을 벗어나면 이제 혼란이 오겠지만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면서, 의견이 모아지는 과정이 중요하거든요.  그런 게 거의 없는거죠. 

조국사태 같이 그 그런 상황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견이 안 나오는데, 뭐 그럼 어떤 상황에서 이견이 나오겠어요? 


원시: (설명을 듣다 당황해서…)  지금 하신 그 진단을 들어보니까, 20세기 현실 사회주의 문제점을 지적할 때, 당의 무오류성(the infallibility  of the communist party) 에 대해서 굉장히 많이 비판하거든요. 사실 그러니까 현실사회주의 체제가 말만 마르크스 정신을 이어받는다고 (마르크스는 언론자유의 중요성을 역설함) 했지, 실제로는 공산당에서, 당의 무오류성이라 해서, 비민주적인 게 굉장히 많고, 특히 (당간부들) 허위 보고서 있잖아요. 그런 부분들이 굉장히 많았거든요.  근데 그런 오류인데요.  들어보니까.  이렇게 되면은.  


조국 사퇴 때가 제가 잘 이해가 안 가는데, 한 가지 말씀드리면, 저는 굉장히 중요한 주제라고 봤고 그 제가 볼 수 있는 자료나 관점들, 이런 것들도 그때 글을 많이 썼었는데, 기억나는데, 

정밀한 발표를 정밀하게 진단을 못 했던 거 같아요.


김정진: 토론과 이견이 실종된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제가 보기에는, 논의할 공간도 없고, 기관지도 없고, 조국 사태 때 당대표의 입장 발표가 얼마나, 부적절했고....... 저는 처음 듣고 나서 믿기지가 않았었는데 그 동안 낙마시킨 문재인 정부의 장관이나 국무위원 중에 조국 100분의 1도  안 되는 사람도 낙마시켰어요.  노동부장관 조대엽씨는 무슨 잘못이예요?  조국에 비하면, 제가 보면, 아주 훌륭한 사람이에요. 근데 그렇게 대놓고, 


원시: 근데 뭘로 낙마했죠?   그 분은 뭐가 걸렸죠? 


김정진: 무능이었죠. 동희 오토가 (현대자동차인데) 현대중공업 소속 아니냐 이래가지고. 

그리고 그 당시 아시겠지만 조국에 대한 찬반 여론이 조사를 막판에 나온 것을 보면요 반대가 더 많죠. 더 중요한 것은 반대 그만할 때도 중요한 게 아니라, 모르겠다가  2% 밖에 안되요. 우리나라 정치조사에서 모르겠다가 2% 밖에 안 되는 사안은 박근혜 물러나야 되냐, 이런 거 밖에 없어요. 다 20% 나와요. 전 국민이 의견이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이거는 어떻게 선택을 하든간에  욕을 먹게 되어 있는 사안인데, 선택 안 할 수는 없어요. 정당인데. 


근데 대통령 임명권을 존중한다고 했어요.  근데 그 말을 다시 이야기하면, 제가 이해하기로는, "국민여러분, 저희 사실 정의당이 아니라 기회주의자거든요"라고 말하는 것이나 똑같아요. 그게. 차라리 조국을 지지하든지. 아니면 반대하든지. 이런 거예요. 이게 무슨 설득력 있겠어요? 

 

제가 보기는 2020년 이번 그 국회의원 선거 때 버틴 것은, 당이 30년 정도 싸우고 있어서 버틴거지. 내로남불 이런 내로남불이 없죠. 6411번 버스 이야기하면서, 거기 타는 사람들 정면으로 배신하는 그런 행위인데. 사실은. 


원시: 그런 사례들이, 조국 사태 잠깐 언급하면요, 당내에 온라인이나, 여론이나, 글을 쓴 사람들도 많잖아요? 그런 것들을 심상정 대표나 대표단에서 검토를 안 하는 거예요? 아예 ? 


김정진: 저는 모르죠 뭐. 


원시: 아니 옛날 그 민주노동당 초창기 있잖아요. 2004년 이전에, 2002년, 2003년 그 때는 그래도.


김정진: 당 대표가 검토했는지 안했는지는 사실 중요한 게 아니라고 봅니다. 근데 중요한 게 뭐냐면, 당의 지도급 인사들 중에 거기에 대해서 이견이 나온 게 없는 거예요. 원래 그 자리를 맡고 있는 건 뭔가 잘못 갈 때 이견을 제기하라고 그 자리를 준 것이거든요. 당원들이. 이견이 없는 건 토론과 이견이 실종된 정당이라고요. 민주당도 이견이 있었죠? 


원시: 김해영 의원인가요? 


김정진: 이견이 있었죠. 정의당만 이견이 없었죠. 그 이상한 결정을 했는데도. 구조의 문제다. 

당헌 당규에 모든 권한을 당대표에게 몰아 넣었어요. 그런데 이것을 초기에 당이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는, 상황을 타개하는데, 도움이 되겠지만, 지금은 바꿀 때가 됐다. 이대로 계속 가면 세대교체로 불가능하고 그냥 뭔가 잘못되어도, 시정할 방법도 없고 제 2의 조국 사태는 또 생길 거다라는 거죠. 이게 진작에 검토 좀 해 봐야 됩니다. 당에 계신 정의당 옛 동지들한테, 촉구를 많이 하는데, 노선과 조직을 검토할 때가 됐어요. 지금. 지금 논의해서 오늘 시작하지 않으면 기회를 놓치지 않을까 걱정이 되요. 


원시: 총선과 관련해서, 지금 평가 작업을 하고 있죠.그런데, 너무 조용한 거 같긴 한데 왜 이렇게 분위기가 총선 끝나고, 조용할까요? 


저는 개인적으로요 지쳐 버렸어요. (총선 전부터 온라인에 글 쓰고, 인터뷰하느라 육체적으로 지침) 


 

(민주노동당 권영길, 정의당 노회찬 전 의원을 배출한 경남 창원 성산 선거구. 민주당은 정의당과의 단일화를 거부했고, 결과는 통합당 강기윤 후보 당선이었다.)


김정진: 다 지쳤죠. 선거결과가. 지역구 선거 결과를 보면 1년을 활동했건, 20년을 활동했건, 선거를 몇 번 나왔느냐 무관하게 표가 나와버렸고, 그게 사실은 인제 그런 지가 오래됐어요 .2004년에도 안 그랬던 게 아니에요. 근데 이런 부분들이 이제 평가를 수행하고,뭔가 문제제기해야 하는데, 이제 다들 제 느낌에는 소진되어 고갈된 거 같아요. 


원시: 실제로 이제 많은 사람들이 이제 지쳤다는 부분들은 인정을 해야 될 거 같고, 현재 지쳤다는 말은 과거 20년간 지친 부분도 있고, 이번 총선 같은 경우도 위성 정당 때문에, 어떤 그 방어 있잖아요. 수세적으로 무슨 막, 저부터가 임진왜란 때 행주산성 갔다 온 느낌이에요


김정진: 민주당의 의도는, 아시겠지만, 정의당을 의회에서 축출하는 것이었어요. 제가 보기에는. 경남 창원 성산은, 정의당 뿐만 아니라 범민주 유권자의 공통의 요구사항입니다. 왜냐면 (민주당과 정의당이) 단일화 하지 않으면, 미래통합당에 지니까. 거기는 진보유권자들의 공통 요구사항입니다.  이건 뭐 만약에 정의당 후보가 약세라고 해도 단일화 하지 않을 방법이 없어요. 근데 실세인 양정철이 내려와서 단일화하지 말라고 하고 간거나 마찬가지니까. 총선 직전에. 


인천 연수구도 구 인천연합 분들이 상당히 새가 있는 지역이고, 거기도 전통적으로 단일화하는 지역입니다. 단일화 방식이 한군데, 한군데 내지 두 군데 정도를, 민주당 후보로 안내는 식으로 단일화를 많이 했거든요.  근데 이번에는 아예 논의 자체를 거부했어요. 민주당 송영길씨가 나서서 그렇게 했다고 해요. 이것은, 똥물 발언이나, 혼을 내줘야 한다는 발언이나, 

원내에서 정의당 축출하려는 그런 시도였거든요. 사실 거의 성공할 뻔했고…..


 

(정의당 전주시 갑,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한 염경석. 김정진은 염경석은 진보정당의 의병이라고 했다. 하지만 게이틀링 기관총 앞에 착검돌격 의병 활동 방식에 대해 점검이 필요하다고 역설)


근데 이제 아마 막판에, 유권자들이 동정표 일부 돌아온 거 같아요. 정의당 없어지면, 자기들 보기에 큰 일 날 것 같으니까.  한겨레 경향이 좀 지원사격 해주고, 지지층들이 결집을 한거고.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지금 9%가 최소 판돈이어요.  저희 금고에 어떤 경우에라도 흔들리지 않은 최소 판돈이 있으니까, 이것을 기초로 어떻게 할 건지 잘 궁리들을 하셔야 할 것 같아요. 잘못하면, 최소 판돈도 계속해서 까먹겠죠.  


원시: 굉장히 좀 시급하죠.  사실은 지금 이게 정당이 있는데요  (이번 총선은) 느낌에 옛날 길거리에서 돌던지고 화염병 던지고 그때 있잖아요. 그런 의병을 하고 온 느낌이라니까요. 


김정진: 그니까 제가 말씀드렸지만, 전주에 한 당원 분이 계신데 선거에만 6번 나왔어요. 국회의원선거 4번, 도지사 선거 2번. 


원시: 염경, 이름이 좀 어려운데, 염경석 염경석. 


김정진: 사회보험 출신이시고 국회의원 4번 2번 나오셨거든요. 이번 비례를 나오셨는데, 순번이 썩 좋지 않으신거죠.  그래서 근데 지금 위기 상황이 되니까, 비례후보 사퇴하고, 지역구로 또 나가신 거예요. 그건 거의 적들은 게이틀링 기관총(* Gatling Gun)을 쏘는데, 착검돌격 한 거든요, 그렇게 착검돌격을 다 표 나온 게, 3~4% 나온 것입니다. 대부분 그래요. 20년 동안 활동한 사람이 3~4% 나오니, 그 결과에 대해서 엄중하게 생각들을 다 하시겠지만 , 해야 합니다. 어물쩍 넘어가려고 하면 제가 보기에는, 이 조직이 유지가 안 될 거예요.



6부. 정의당에게 기회는 한 번 더 올 것이라고 예상하는 김정진 변호사. 토론과 이견제시가 실종된 정의당, 이대로 가면, 기회가 한 번 더 와도, 잡지 못한다. 


오디오 팟빵 6부~7부 : http://www.podbbang.com/ch/1776409?e=23565909

유투브 링크: https://youtu.be/rs8uEKVKE1A 


원시: 김정진 전 정책연구소장님인데, 당 안에 있을 때, 이런 문제제기를 좀 하신 적이 있나요? 


김정진: 부끄럽습니다.  저도 가만히 있었죠. 


 

(지난 10년간 지방의회에서 리버럴 민주당과 보수당이 차지하는 비중이 78.7% -> 88.7% -> 90.5%로 늘어났다. 양당에게 유리한 2인선거구 때문이다. 3~4인 등 다자 당선이 가능한 선거구획정이 필요하다.)

 

원시: (질문 배경: 진보정당의 강점이 되어야 할 풀뿌리 민주주의 실천은 2012년 이후 더 약화되었다. 지방행정에 대한 당적 연구와 실천은 부족한 채, 몇몇 국회의원의 언론 기사가 정의당 활동으로 등치되었다. 민주당,통합당과 다른 정의당만의 정치가 있는가?) 


이제 조금 다른 질문 하나 던져 볼게요.  국회의원 (선거) 중심으로 당이 지금 계속 운영되고 있어요. 보면은 2004년 10석 얻은 후로, 말은 지방선거에 하자 그래 놓고, 실제로 일상적인 정치활동이나 당 재정 지원이나 정책지원 같은 거 보면은 거의 없죠? 아니 두드러지게 않아요. 그 측면에서는 한번 혹시 고려, 생각을 해봤는지요? 당위기나, 당운동이 잘 발전되지 않는게? 


김정진: 그 관성이 있죠. 그런데 지방선거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2018년 지방선거는, 지금 총선보다  더한 선거였거든요. 미래통합당이 그냥 완전히 져가지고 드러나지 않았지만, 정의당 후보가 더 큰 타격을 입은 선거가 2018년 지방선거예요.  


3인 선거구 같은데, 이제 주로 노려서 나갔는데,  수도권에서 몇 분이 계세요. 3번째 나가서 세 번째에 겨우 당선되었어요. 그러니까  아니 물론 구의원 중요하죠. 그런데 3번이면, 12년이거든요.  12년씩 해야할 일이겠는가, 문제가 있는 거예요.

 

지방에서 뿌리를 내려서 한다는 게 정치구조가 바뀌지 않는 상황에서 너무 너무 힘든 일인 거예요.


원시: 지금 방금 굉장히 중요한 지적을 하신 거 같아요,  방금 말씀하신 게 그 구로에 김희서 구의원 말씀하시는거죠? 


김정진: 거긴 재선이시고, 관악에 이기중 구의원, 거기는 3번째 나와서 된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민생당에 갔지만, 임한솔씨도 3번을 나와서 구의원이 된 거예요. 임한솔 씨 경우에도,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정치인이 무슨 땅 파먹고 사는 사람도 아니고, 권력욕이 있으니까, 이 판에 선거 나오는 거 아니겠습니까? 언제까지 기다리겠어요? 자기 윗 세대들은 뭐 아무것도 되는데.  마음이 급했다는 거겠죠. 


원시: 김정진 변호사는 18년 했잖아요? 


김정진: 저는 뭐 선거 나갈 사람은 아니니까……


원시: 아니 선거를 나가라, 안 나가라가 아니고, 아니 뭐 그런 말씀드리는 게 아니고, 


김정진: 제 지론이 있습니다. 서생은 서생의 길이 있고, 정치인은 정치인의 길이 있고, 

그리고 똘마니는 똘마니 길이 있다. 그게 제 지론입니다. 각자 역할을 잘 해야 된다.

 

원시: 앞에 두 개 (서생, 정치인)은 이해가 가는데, 똘마니는 어떤 겁니까? 


김정진: 그냥 그 자체로 이해해주십시오. 이것만 더 말씀드리면, 아이디어 정도지 답이 있는 건 아니에요. 근데 답이 없는 사람과 집단일수록, 얘기라도 많이 해 봐야 되거든요.


그러면 뭐가 나올 수가 있습니다. 거의 그냥 그런 소통과 토론과 이런 경로가 전혀 없는거죠.  이 답답한 상황으로 언제까지 버틸 수가 있을까? 일단 저는 뭐 저희 세대가 그냥 이대로 사그라드는 게 역사의 요구라면, 그럴 수 있어요. 그런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남는 게 후속세대가 뭐가 있으면은 좋은 일인데, 새로운 노선이나 인물이 우리 이후에 나오면, 우리가 무슨 회한이 있겠습니까 ? 그냥 이대로 사라지는 것 뿐이지. 그럴 것 같지도 않은 거예요. 이후에 뭐가 누가 나올 수 있는 구조로 아니고.


 

(2004년 총선 결과를 지켜보는 민주노동당 당직자들. 30대 초중반 열정으로 뛰어든 진보정당 운동, 이제 그들은 50대에 접어들었다. 김정진은 지속가능한 진보정당의 토대를 만들지 못했던 지난 18년간 진보정당 지도부의 정치적 무능력을 지적했다. 철학, 정책노선, 인물 육성 모든 것을 재검토해야 지속가능한 정당을 만들 수 있다고 그는 인터뷰 내내 말했다)


원시: 농담으로 하는 이야기 했는데, 민주당 386이건, 80살까지 할 겁니다. 정치를. 


김정진: 김종인씨가 아주 좋은 롤 모델일 거예요. 1930년 생인데, 지금 만으로 80세잖아요? 많은 정치인들이 김종인을 롤 모델을 보고 있는지도 몰라요. 나도 저 때까지 해야지. 


원시: 실제 그렇습니다. 왜냐면 수명도 늘어났고, 지금은 전대미문의 사회가 됐거든요.


김정진: 이제 지금 건강 관리도 잘 하면 뭐


원시: 그러니까 이게 약간 옆으로 샜는데,제가 (1989년) 천안문 사태 던졌던 질문이 뭐냐면요, ‘중국은 왜 할아버지들만 정치를 하지?' 였어요. 혁명 1세대가 1949년에 중국 인민공화국 만들어서, 89년에 천안문 사태 , 40년 동안, 그 뒤로도 등소평이 은퇴한게 1990년대이니까, 이게 저게 맞다가 아니라, 서구도 68세대들이 그랬듯이 , 한국도 그럴 확률이 굉장히 높다고 봅니다. 


김정진: 한 세대가 장악을 하면, 그 밑 세대는 정치적 과실을 누릴 수 없어요. 민주당 586 세대가 장악했으니까, 그 밑에 세대에게 떨어질 게 아무것도 없어요. 세대교체가 그렇게 단선적으로 일어나는 거 같더라고요.  최대한 단선적으로 이렇게, 띄엄띄엄 일어나지 지속적으로 일어나는게 아니고,  


원시: 그러니까 이제 진보정당이 만들어 가지고, 제가 제일 아쉬운 게 어떤 거냐면

계속해서 굉장히 세대간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게, 다른 정당에 비해서, 굉장히 강한 특질이 될 수 있었거든요. 근데 그거를 못 살리고,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 2008년과 2009년에도, 당시에도, 아 2009년 이군요. 노회찬, 그 단일후보가 나와서, ' 아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억지로라도 김정진, 김종철, 강상구 세대, 그 급에서 후보가 나와야 된다. (경선을 해야 한다고 했는데) 근데 받아들이지 않더라고요. 사람들이. 


김정진: 사실 이런 비유를 드는데요. 호남에 유력 정치인이 별로 없어요. 간만에 이낙연씨가 나온건데, 그 이유는 아주 단순합니다. 영남에 비해서 차이가 아주 많이 나잖아요? 김대중이 대통령에 너무 늦게 되어서 그래요. 진보정당도 마찬가지라고......권력이란

게 나눌 수 있는 게 아니어서, 분할불가. 


그 권력자들은 자기에게 위협이 되지 않을 사람, 세대만 그 정치적으로 성장시켜요. 

차이가 많이 나는 거죠. 김대중도 비슷했던거죠. 김대중 때도, 민주당 586은 당연히 위협이 안돼. 차이가 많이 나니까, 30년 정도 차이 나잖아요 .


원시: 굉장히 안타깝죠. 사실은 70년대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이 되고 유신체제가 아니었더라면 가정을 하면은 20년이 늦춰진 거잖아요. 김대중 김영삼이 대통령이 된 게.


김정진: 세대 교체라는 것이 순탄한게 된 적이 없더라고요. 결국 주체의 문제고. 

제가 걱정하는 상황은, 그냥 마지막으로, 제가 뭐 당내 문제에 대해서 제가 이 정도 의견인 것뿐이지, 지금 당내 하시는 분들이 알아서 해야 될 문제이지,저야 뭐 (당) 바깥에서 불이나 때는 정도지. 이제 그거는 조금 고려를 해보셔야 될 거 같아요. 제 옛 동지들이 이 라디오를 들으면 진지하게 생각을 해봤으면 하는 게 뭐냐면, 정의당을 포함해서 진보정당 운동의 한 번의 기회가 더 있을 것 같아요. 국민들이 한 번은 더 줄 거 같거든요. 


2004년, 2012년에 이어 한 번은 더 줄 거 같은데,근데 이제 지금이 변화된 상황,

경제도 엄청나게 바뀌고 모든 뉴노멀(새 정상화) 이라고 할 정도로, 2차 세계대전 이후 형성되었던 모든 상식이나 정책은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 같거든요. 정치도 바뀌고 있고. 급진화하고 있고.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가 지금 지지율이 높지만, 한 순간이에요. 경제에는 장사 없습니다. 아시겠습니다만. 


원시: 동감입니다


김정진: 그럴 때 노선과 임무를 일신해서(새롭게 해서) 사람들한테 뭔가 보여줘야, 한 번의 기회가 올 거거든요. 근데 지금 이대로 계속 있으면, 기회가 와도 못 잡을 것 같아요. 제가 제 옛동지들이라, 기회가 왔은데도, 못 잡을까, 그게 걱정입니다.  기회를 못잡으면 얼마나 원통하겠습니까?  국민들에게도 안 좋은 일이고. 


원시: 제가 그 페이스북에서도 아니 그 이야기는 사실 벌써 십 몇 년째 하고 있는 거 같은데요,

이제 저는 이제 얼른 언론에 난 소식만 보잖아요.  정의당 소식을.  그런데 심상정 대표가 아침 여섯시부터 나와요. 라디오 방송에서부터 그래가지고 밤 자정까지 나오세요. 나머지 정치인이 누가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가끔씩 가다, 정의당 국회의원들 몇 명 나오는데, 잘 부각이 안 되고, 그랬던 거 같아요. 지난 4년 동안에. 


저번에 강상구 후보가 정치토론 비례대표 정책 토론할 때,  동시에 제가 페이스북에 올렸거든요.  동영상 장면을 페이스북에 잘라서  올렸는데, 그 강상구 후보가 토론 잘 하잖아요? 그런데 거의 노출이 안 된단 말이죠. 대중들한테. 그런 건 좀 개선이 되어야 될 것 같은데, 확실하게. 


김정진:  계속 드리는 말씀인데. 모든 권한, 인적 물적 권한이 당대표에게 집중되어 있다니까요. 

구조가 그래요. 당 대표 이외에는, 여기서 정당이 속해 있다는 거에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구조예요. 구조 자체가 그래요. 당헌 당규가. 


원시: 그러면 이제 그 부분들을 사실은 좀 고칠 필요가 있고, 왜냐면, 정의당이 굉장히 폐쇄적이라고 느껴져요. 외부에서도 많이들 지적을 해요. 그 부분들에 대해서는. 그러니까 '저기 (정의당) 가서 내가 일을 해 봐야 되겠다'  

김정진 변호사가 저는 오늘 처음 알았네요. 96년에 그 시험에 자격증을 따서 변호사 합격을 해서 2002년 거기(민주노동당) 가서 일 한번 해 봐야 되겠다, 이런 좀 매력적인 공간이 돼야 되잖아요? 


근데 어떤 느낌을 받냐면요, 지난 민주노동당 분열 이후로, 그런 부분이 강화되었는데  '사람을 반가와하지 않는 당이야' 이렇게 표현하면 너무 부정적인가요? 


'사람을 아 우리 이런 운동을 해야 되는데 ,어 당신이 필요합니다. 여기와서 뭘 해 주세요 합시다' 권유하고, 반가워하고, 그런 분위기가 많이 사라졌어요 굉장히 옅어졌어요.

그 이유가 뭘까요?  


김정진: 사회적 기반이 계속해서 약화되고 있어서 생긴 현상이 아닐까 싶긴 해요. 이게. 사회적 기반이라는 게, 사회전반에 가지는 전체적인 진보 역량인데, 민중노동당 창단 단계에서 민주노총이 가졌던 도덕적 영향력이나 권위 이런 것들이 지금 민주노총 하고 비교해 보면, 반에 반에 반도 안되죠. (25%도 안된다는 것임) 조합원수가 문제가 아니라, 도덕적 권위나 영향력이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민주노동당 창당 초기에 비하면, 그런 것도 하나의 반영이 아닐까 해요.  

 

그런 소극성이라고 하는 것을 느끼셨다고 하면, 어떻게 보면 사회적 고립이 계속 강화되었다고, 그런 과정인 것 같아요. 자꾸 이제 민주당에서 못 벗어나는 거죠. 오늘 벗어나면 그냥 진짜 어떻게 될 거 같으니까. 당원 여론조사를  해보면 지금은 알 것 같긴 한데.


언젠가 제가 정책연구소 소장되기 전에 라고 제가 들었었는데, '민주당과 합당해야 한다는 당원들 여론도' 엄청나게 높았다고 해요.  민주노동당 때라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거든요. 당원 구성들도 바뀌었고, 구성이 바뀌었다는 건, 이제 전체적으로 한국사회 진보역량이 줄어들고, 그 진보정당들이 민주당 헤게모니 하에 재편돼 가고 있는 과정인 거예요. 사실은 지금이 . 그래서 정의당 입지는 점점 약해지고 있는거죠. 


이번 선거 때, 창원이나 울산같은 경우에 이제 막 민주당 후보가 단일화도  안 하고,민주당이 당선이 되고, 이런 일들이, 그런 거 그 사람들이 다 예전에 노동계 인사들이란 말입니다. 근데 이제 민주노총만 민주당으로 가지 않은 것 뿐이지, 민주노총 내부에도, 상당수 그런 흐름들이 있는 거고요.

 

(민주노동당 당원들과 노회찬 의원이 브라질 노동자 정당을 방문했다. 2000년 창당 당시 민주노총이 민주노동당의 물적 인적 토대 역할을 했지만, 지난 20년간 민주노총의 사회적 영향력이 줄어들었다. 한국 진보정당이 해결해야 할 이중적 숙제가 되었다. 분화되고 이질적인 노동 사회와 진보정당의 새로운 주체 형성이라는. 김정진 변호사는 오른쪽에서 두번째.) 


원시: 캐나다 상황과  똑같이 되는 거죠. 캐나다 하고, 가장 큰 노총(* 과거 CAW, 현재 유니포 Unifo) 에 평조합원들 조합원들이 캐나다 리버럴리스트 당을 가장 많이 찍어요.

그 다음에 사민당 계열인, 신민주당(NDP)를 찍고. 그렇게 된 지가 꽤 됐어요.


아마 그거 옛날에 이영일 선생과도 몇 번 이야기를 했었는데. 제도화 되면서 그런 경향들은 생기는 거 같고. 근데 이제 그게 어쩔 수 없는 그런 게 아니고, 내부에서, 경쟁과 협동 문화, 이런 것들이 제대로 좀 만들어 지지 않아서 그런 거 같은데요? 


보통 평범한 직장인들 같은 경우, 정치권이 아닌 곳, 공무원들이나 직장에서는, 가장 중요한 게 승진이잖아요?  직장 내에서.  그러면은 정당 내부에서 몇 년 일하면,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그런 부분들을 계속해서 만들어내야 되거든요.  그 아까 이제 계속 말씀하신 당 대표의 어떤 관한 문제 [독점 문제점]  또는 토론이나 자유로운 토론의 부족,  이제 지적하고 그랬는데, 진보정당이,  한국에 있는 다른 어떤 조직에 비교해서 이 당에서만 할 수 있는 매력

이런 게 흐려졌거나, 계속 만들지 못한다, 이게 이제 현상적으로 나타난 진단이라고 저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런 논의들을 계속 해야 되는데 안하고, 


김정진: 고령화 문제도 있습니다 . 지역구 후보자 평균 연령을 내봤는데, 50대가 제일 많아요. 

이제 나이가 드니까, 하기 싫어지잖아요. 


원시: 그런 부분도 있죠. 굉장히  고생했고.


김정진: 뇌 전두엽 노화가 와서, 


원시: 새로운 걸 하기도 싫고, 그럴 것 같아요. 연령문제를 좀 크게 보시는군요? 


김정진: 그렇죠. 저희 같은 사람도 하기 어렵죠.  어차피 안 되는 걸, 뭐 하려고 해, 이렇게 되잖아요.  새로운 시도라는 게, 될 지 안 될지 잘 모를 때 하는 거지. 안 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어떻게 새로운 시도를 하겠어요? 그런 거 비슷한 거죠. 


원시: 그러면 '야 이 했던 것들에 대한 보람' 이런 거, 근데 이게, 그 김정진 변호사님도 지금 이야기했던 것 중에 하나가 기회는 한두 번 올 것 같다. 


김정진: 한 번일 것 같아요. 


원시: 하하. 딱 한번? 


김정진: 세 번 이상 안 줄 것 같은데


원시: 어떻게 변화될지 그거는 잘 모르겠어요.  저도 그거 예측은 좀  불가능한데요. 


김정진: 한국 정치를 예측하는 게 어려운 일이고, 


원시:  그 다음에 이제 제가 저번에 김종철 후보랑 이야기할 때 몇 번 이야기했었는데

우리가 볼 때는 지금 제 많이 노쇠화되고, 진보정당 구성원들이요. 그렇지만 다른 나라와 상대적으로 비교해 봤을 때는, 이런 정치적 운동 경험을 가지고,진보정당을 만들어 가지고, 소수지만 의회에도 진출하고 또 지지율이 이렇게 한 10% 안팎으로 되는 그런 정도 정당은 많지는 않아요. 최근에 들 수 있는 게 독일 좌파당 (링스 파타이: Linkspartei) 하나 들 수 있겠네요. 독일은 한국과 다르지만, 선거제도가 워낙 소수 진보정당에게 유리하게 되어 있으니까요. 


김정진: 70-80년대부터 형성된 사회운동에 그 자기장 안에 있는 것이거든요. 

제가 민주노동당 와서, 딱 들었던 느낌이 '아 여기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으로 가지 않는, 소위 말해서 운동권 세력들이 다 모였구나' 웬만한 정파들이 다 들어와있다. 개인적으로 들어와 있던 게 아니고, 세력으로 민주노동당에 들어와 있었거든요. 다 모여있었어요. 그 사회운동 에너지가 상당부분 민주당으로 가버렸지만, 이쪽으로도 온 거죠. 한 20% 정도는. 제가 보기에는. 


근데 그 에너지가 지금 거의 소진되어가는 과정인 거 같아요. 막바지가 아닌가 싶어요

사실은.  무슨 새로운 뭘 만드는 것도 아니고요.


원시: 살릴 방법은 없는가요?  살릴 방법이나 그 저기 뭐죠 재활 공장장이 필요할 것 같아요. 


김정진: 궁하면 통한다고.  또 어떻게 될지 두고 봐야겠습니다. 봐야겠죠. 근데, 

하여튼 기회를 한번 올 거 같아요. 제가 보기에는 기회가 한번 올 것 같은데, 

다들 너무 기운이 빠져서 못 잡지 않을까 이런 걱정이 있고요.


7부. 18년 진보정당 근무, 김정진의 ‘희로애락’은 무엇이었는가? 가장 보람을 느꼈을 때. 그리고 정의당 막스 베버 ‘책임정치’ 강조는 잘못되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라디오 링크: https://youtu.be/C9YXOWvDY8E


 

(김정진 변호사는 민주노동당 초창기를 수호지에 나오는 ‘양산박’ 사람들이라고 표현했다. 그가 가장 보람을 느꼈을 때는, 민중의 언어를 간직한 사람들로부터 걸려오면 전화를 받을 때라고 했다. ) 


원시: 저는 근데 이제 그 제가 질문서를 좀 만들면서, 개인적인 질문하고, 그런 게 이유가 뭐냐면, 이거는 너무 한가하다 라고 들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사람들 관계 있잖아요.


당 운동에서 팀워크, 뭐 이런 것들이 결국에는 사람들이 팀을 만들어 가지고, 프로야구도 1년에 144 게임이죠 , 그걸 해내야 되는데, 정의당, 팀웍이 좀 약하지 않나 싶어요. 사람들간에. 그런 부분들을 좀 길렀으면 좋겠다, 저는 좀 그런 생각이 드는데. 그래서 제가 이것 좀 여쭤보려고요

질문한거예요.  그래도 18년을 했어요, 진보정당을.  이런 이야기를 좀 짧게라도 한번 해 봤으면 좋겠어요.


가장 기뻤을 때나, 슬펐을 때나, 화났을 때, 김정진의 희로애락은 ? 


김정진: 근데 그런 게 별로 없습니다. 잘 안되는게 99가지고, 잘 되는 게 ..... 1가지. 

어쩌다 한 건 될까 말까인데. 기뻤을 때가 얼마나 많겠어요? 


원시: (너무 충격적인 대답을 듣고 나서, 다시 시도) 원래 겸손하고, 공부 좀 잘 하고, 

이런 이미지는 좀 있는 거 같은데, 자기를 표현하고 좀 잘 안 하는 편입니까? 


김정진: 저요? 자기 표현요? (허허) 표현할 게 별로 없는데요.


원시: 제가 좀 아쉬웠던 게 뭐냐면, (김정진 변호사가) 토론을 잘 하세요.  그리고 대중성이 있다고 그 때 생각했거든요. (2004년을 말함) 민주노동당 때 토론회 나가서, 라디오 토론도 몇 번 하고 그랬죠.  TV 토론 잘 기억이 안 나고, 라디오 몇 번 생각나는데요.


김정진: 제가 나가고 싶어서 나간 건 없고요, 나갈 사람이 없어서, 나간거고.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김정진 변호사는 사람들이 알아듣기 쉬운 말로 진보정당 정책들을 설명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는 국회의원 0명 시절에 각종 토론회에 불려나갔다고 한다. 김정진과 같은 역량들을 노회찬 심상정 이후 세대로 현실화시켜내지 못한 진보정당은 등잔 밑이 어둡다.)


원시: 저는 스포츠, 운동을 좋아하니까, 야구나 축구나, 큰  경기에 나가봐야 해요. 

저는 지금 당 운동이 굉장히 잘못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아까 계속 일관되게 ..... 


김정진: 아니 그러니까, 그 김종철 후보가 잘하는 건, 뭐 본인 자신도 있지만.  노회찬 의원도

원외 시절에는 그렇게 말을 잘 하지 않았어요. 근데 어느 원외 시절에도 그래도 민주노동당을 좀 인정해주는 언론노조쪽 방송인이 있어서, 그래도 노회찬(당시 사무총장)을  한 번씩 나오게 해 줬거든요.  자꾸 나오면서 실력이 쌓인 거거든요.  그러면서 주어진 시간이 짧으니, 어떻게든 한마디라도 뇌리에 박히게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그래서 촌철살인도 더 발전시키신 것이고

우리 김종철 동지도 마찬가지거든요. 원외 정당일 때, 부대변인 대변인 하면서, 그 갈고 닦은 게 있는 거예요.


방송이야 이런 데서도 막 그냥 보통은 원래 2,3일 전에 질문지 주고, 이제 준비하고 다 나오거든요. 제가 알기로는 김종철 후보는   5분 전에 섭외해서 나간 적도 있어요. 누가 빵꾸 내가지고. 그런 경험이 쌓여서 다 거기까지 간 거든요.


아까 하루 아침에 절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국회의원이 무슨 연습해서 배워서 할 수 있는 게 아니예요. 준비된 사람이 해야지요. 


원시: 제가 인터넷 방송국 당내에 만들자고 제안했었는데, 잘 아실텐데요.  그 이유가 노회찬 전 의원이랑 고 이재영 국장이랑, 말 한마디, 문장 하나, (2004년 대선 때) 그런 고민들을 많이 했었잖아요. 과거에. 저도 모니터링도 많이 하고 그랬었는데. 비유, 비교나 정책도 잘 소화해야 하고, 이제 그런 부분들이 사실은 김종철 지금 후보나 김정진 변호사 같은 경우, 강상구 후보도 마찬가지죠. 그런 부분들이 더 많이 노출되고, 그랬더라면, 훨씬 더 좋았겠다. 저는 그런 생각이 좀 들어서요. 아쉬워서.  


김정진: 전 선거 나갈 생각은 없으니까요. 저는 서생의 길이 있다고 생각하고, 


 

(민주노동당 노회찬 사무총장과 당시 30대 중반이었던 김종철 등이 총선준비를 하고 있다. 서로 다른 세대가 마음을 열고 자유롭게 민주적으로 토론하는 문화가 진보정당만의 캐릭터가 되어야 한다. 토론과 학습이 실종되고, 팬클럽으로 전락해가는 진보정당은 미래가 어둡다고 김정진은 역설했다.) 


원시: (*인터뷰 내내 ‘서생’이라고 표현했지만, 그건 내 생각과는 달랐다) 선거 나가라는 게 아니라, 정책 토론회는 나가야 할 것 아닙니까? 역할분담을 해야지요. 


김정진: 지금 또 하나 정의당에 잘못된 게, (국회의원 후보) 나가실 분들이 너무 공부를 안해요. 

예전에도 그랬지만 더 심해져 가지고, 진짜 걱정입니다.  제가 걱정하는 일은 아닌데,


원시: 진짜 걱정입니다. 


김정진: 기분 좋았던 일은, 그냥 그 제가 하나 일화를 말씀드리면, 기자회견 건은 영광스러운 것이고, 기분 좋았던 것은, 2002년도 이후에 가끔 밤에 당사에서 일을 하고 있으면, 누군가 전화를 하세요. 그냥 시민이요. 대선 즈음해서, 저도 그런 전화를 받았는데, 원래 사람의 말투를 들어보면, 이분들의 어떤 계급적 성분이 추측이 되잖아요? 배우신 분들은 아니고. 


다 얘기를 하면서, 권영길 대표님 얘기 잘 들었다고 '우리 같은 사람들 심정을 알아 주는 거 같다' '아 그리고 YH 그분도 있냐고, ' 그런 얘기를 하면서 (YH는 최순영 ). 그 연령대 들어보면, 

목소리가 최소 5~60대, 그때 5~60대니까 원래 진보 쪽을 찍지 않는 분들이시다. 근데 이분들이 상당히 진보 쪽에 상당히 호감을 가지면서 그렇게 전화를 하고, 그리고 재밌는 거, 꼭 말미에 꼭 그걸 물어봐요. 


근데 북한은 어떻게 생각하냐고, 그게 항상 걸리는 거죠. ‘아 저희는 모든 형태의 독재

반대합니다. ‘ 그렇게 답변해주면, 그 말을 듣고, 너무 좋아하시면서, "아, 그렇죠~" 

그래서 그런 분들이 지지를 확인하는 게 사실은, 개인적으로 되게 행복하더라고요. 


진보정당은 어쨌든간에 민중의 당이어야 되거든요. 민중을 지지 옹호하고, 민중의 당, 그게 1번입니다.  책임정치는 그 다음인 거고, 민중의 당, 우리가 이제 민중의 당으로 한 발 더 가까이 가는구나. 그럴 때가 기분이 좋더라고요. 그런 걸 확인할 때.


원시: 그럼 화가 날 때는? 


김정진: 지도급 인사들이 소신없이 외부의 의견에 휘둘릴 때, 이때 화가 나고,


원시: 사례를 그래도 한 두 가지는 이야기해야 되는데요, 해 주셔야 되는데.


김정진: 사례는 아까 앞에서 말씀 드렸잖아요. 

그리고 슬플 때는, 뭐 동지들 먼저 보낼 때가 슬프죠. 제 사수가 이재영 동지, 

오재영 동지, 노회찬 동지 등등등 많죠. 

산재. 산재죠. 


원시: 정치적 산재라는 거죠? 


원시: 제가 기억나는 것 중에 하나가 뭐냐면, 고 이재영 실장, 이제 많은 사람들하고 직접 통화를 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가끔씩 이재영 실장과 통화를 한 적이 있었거든요. 근데 이재영 어머니께서 임대 아파트에 사셨어요. 그래서 내가 놀란 게, '야, 정말 이 분은 진보정당 정책가인데, 생활하는 것과 정책이 똑같네' 그게 생각나네요.

 

김정진: 그렇죠. 아까운 분이시죠. 


원시: 이재영 국장, 장점이 뭐였냐면, 이분이 무슨 박사과정 공부한다, 교수랄지 그런 분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자기 관점을 가지고 굉장히 많은 사람들을 네트워크 하는 게, 굉장히 뛰어 났던 거 같아요.  제가 볼 때는. 같이 일하시면서 볼 때는 어떠했나요? 제가 옳게 본 건가요? 


김정진: 제 사수였죠. 그런 능력도 뛰어났고. 사실 돌아가시고 나서, 정확한 나이 하고 그걸 알게 됐어요. 그런 걸 전혀 물어 보는 사이가 아니었거든요. 대학교 1년 다녔다는 것도, 그게 무슨 대학교 다녔는지도 몰랐고, 1년 다니다가 바로 (노동) 현장으로 갔으니까. 근데 돌아가시고 나서 알았는데, 정책가이자, 조직관리자 이념가이자, 이론가이자 , 그렇죠. 다재다능하셨고,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줬죠. 


원시: 좀 귀여우셨어요.  너무 웃겼던게, 이름 부를 때, 원시 동지 동지 해서, 

그래서...... 


김정진:  공식적인 매체라서 제가 다 이야기는 못하고요, 재밌는 얘기 나중에 사석에서 해줄게요. 재미있는 이야기 많습니다. 


 

(인민노련, 전노운협 조직에서 노동운동을 했던 노회찬과 이재영은 민주노동당이 대중적인 진보정당으로 발전하는데 기여한 운동가들이었다. 김정진은 학생운동->노동운동에 기초를 둔 지난 20년간 진보정당 에너지는 이제 새롭게 수혈되어야 한다고 본다. ) 


원시: 공식적인 매체는 아닌데...... 그냥 하는 건데. 그래도 좀 수위를 낮춰가지고.  기억나는 게 어떤 게 있냐면, 좀 마음이 짠하고, 여기 있으면서 계속 이제 진보정당에 글도 쓰고, 공부를 열심히 했던 이유 중에 하나가 뭐냐면, (2002년 대선 때) 당시 이재영 국장이 결혼하기 전이었잖아요? 근데 거기 무슨 권영길 후보 선본 아파트에서 제가 잔 적이 있었어요. 


(이재영 국장이) 술 먹고 하는 이야기가, 제가 그 이야기를 물었어요. 아니 왜 권영길 대표는 내가 TV 토론 모니터링을 열심히 해가지고 드리고 그랬는데, 비교나 비유를 적재적소에 이렇게 잘 못하시냐 그랬더니, '아 원시 동지 글은 노회찬 스타일과는 잘 맞는데, 권후보랑은 잘 안맞아' 그러면서 술먹고 혼자 이야기하다가 자고 그러던 기억이 나네요. 


 희노애락 했었는데. 잠깐 그런 얘기 하셨잖아요. 민심이 천심이다. 그걸 확인하시는 거 잖아요. 사실 정치학의 아주 기본 있잖아요. 맹자에서도 했던 이야기 ‘민심이 천심이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그런 사람들의 목소리를, 그리고 그들과 같이  정치하는 거잖아요. 


김정진:  그분들을 대변하는 거죠. 그게 1번이고, 대의제 본령이 리프리젠트 (represent)아닙니까? 

그 대변을 먼저 해야 그 다음 이야기가 되는거지. 대변도 못하면서, 무슨 딴 얘기 하는 거 자체가 사실은 최장집 교수의 악영향이라고 봐요. 좋은 정당, 아니, 좋은 정당 중요하죠, 좋은 정당, 

만들기 위해서 과정이 필요한 건데, 좋은 정당 줄줄 외우고, 책임져야 좋은 정당이 아니거든요. 

저는 상당한 해악을 미쳤다고 봅니다. 


막스 베버  공부하는건 좋은데, 지금 정의당에서 당협에서까지 그걸 읽어요. 당협에서까지 그걸 읽을 책인가 싶어요.  막스베버 이론을.  그냥 그런 얘기를 했다 정도 알면 되지. 희한한 현상입니다. 그게 또 정의당이 진보 야당으로서, 야성을 상실케 하는 하나의 원인이 아니었나, 그렇게 봅니다.  개인적으로.  대단히 좀 특수한 현상이더라고요. 


 

(막스 베버는 1895년 “민족국가와 민족경제정책”연설에서, 독일 노동자계급은 독일을 이끌어나갈 정치적 능력이 결여되었다고 비난했다. 위대한 권력 본능이 독일 노동자계급에게는 결여되어 있고, 정치적인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정치적인 변화를 별로 희구하지도 않고, 인습과 관습에 순치되어 있기 때문에, 독일 노동자처럼 정치적인 학습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정치리더가 되면, 가장 파괴적인 집단이 된다고 주장했다.) 


원시: 그렇게까지 하는 줄 몰랐었거든요. 근데 이제 얼핏봐도 모순이고요, 왜냐면 이번 선거 때 , 정의당 후보들이 고 노회찬 의원의 6411 번 버스를 모두 다 이야기했어요. 새벽 다섯시에 구로동에서 출발해서 강남으로 가는 버스, 청소노동자,  다른 여러가지  건물 , 큰 빌딩에서 일하시는 노동자들을 (정의당이) 대변해야 한다는 게 그 사람들한테 선행상 받자, 이게 아니잖아요. 그들과 같이 정치를 하는 건데.


막스 베버 같은 경우는 당시에, 독일 노동자들이 독일 사민당 (SPD)에 많이 가입하고 그랬었는데 베버가 그걸 굉장히 냉소적으로 봤어요. 독일을 건설하고, 러시아 팽창주의를 막고, 영국이나 프랑스보다 뒤처진 독일을 ‘강한 독일’로 만드는 데 있어서, 독일 노동자나, 사민당을 주축세력으로 보지 않았어요. (노동자에 대한) 묘사라는 것도, 굉장히 이기적인, 물질적인 이기적인 그런 부분에 만족하는 존재로, 독일 노동자를 서술하고 그랬거든요. 


(막스 베버를) 어떤 심오하게 다르게 해석할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막스 베버 책에는 그렇게 써져 있어요. 왜 그렇게 막스 베버를 공부하고, 물론 공부하고 그런 부분들은, 저는 다독을 좋아하기 때문에 다다익선이라고 생각하는데, 당에 중요한, 어떤 진보정당에 철학적인 어떤 기둥,

이런 걸로는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생각하는데요. 


김정진: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죠. 제일 이해가 안 되는 것 중에 하나가 그거더라고요. 정말 트럼프, 보리스 존슨, 샌더스, 코빈, 이게 다 아웃사이더들인데, 이제 정치 전면에 등장하는 배경에

기존 정치체제가 그 사람들이 원하는 바를 해결해 주지 못하고, 정치 엘리트들이 자기들한테 사기친다 그런 생각때문에 양대 정당인 국가에서 그런 현상이 일어났고, 그게 아닌 나라에서는 새로운 정당이 시리자니, 포데모스니, 만들어지는 것 아닙니까? 


이제 지금 우리와 같은 비슷한 상황이라고 봐요. 지금 뭐 문재인 정권 70% 지지율, 민주당180석 이러지만, 고용보험 기초를 놓겠다고, 어느 세월에 기초를 놔요? 1인당 GDP가 3만 달러 됐는데.  하려고 마음 먹으면, 못할 게 뭐예요? 사실. 


제도적으로 여러가지 뭐 가치 충돌하고, 또는 뭐 기술적인 문제가 있죠. 그거는 더 복잡한 문제는 노태우 정권 때도 다 했는데 그걸, 더 복잡하고, 더 기초도 안되어 있는데도 다 했는데, 노태우 정부는 토지공개념 같은 거를.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사실은 민심에 이반되고, 보수정당 쪽에서 제대로 된 극우 포퓰리스트가 나오면, 어떻게 될지 몰라요. 저는 한국도 마찬가지로, 파도 위에 올라가 있다고 봅니다. 


정의당이 그 민심의 파도를 대변해서, 동력을 만들 생각을 해야지, 희한한 상황이었던 거 같아요. 이유는 잘 모르지만. 왜 이렇게까지 막스 베버 이론을 당협에서까지 보는지는 미스테리더라고요. 좀 그만 봤으면 좋겠어요. 


그보다도 어떻게든 코로나 경제위기 속에서 고통받는 민중들을 어떻게 대변하고 조직하고 투쟁하고 그걸 제도로 만들어내고 민주당 정부 잘못을 지적하고, 이 활동이 집중해야지,

책임을 지진 않고, 다들 그냥 순해지기만 한 것 같아요. 그냥. 



원시: 그런 배경이 있을 거라고 저는 이해는 하는데, 추측은 하는데요. 

(2012년 ) 통합진보당 그런 사건을 겪고 나서 자기들의 그 정치 행동을 반성하면서, 문제의 원인이 있잖아요, 원인을 잘못 진단하지 않았나 싶어요. 


TV 화면에 정파들끼리 싸우고 중계방송 되었잖아요? 김정진 변호사는 그 때 거기 없었죠?

 

김정진: 그 때 통합에 반대했었죠. 


원시: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의 심정은 뭐냐면, '이런 일이 왜 생겼을까 ?' 

제 추측인데요. '이런 일이 왜 생겼을까?'  "(막스 베버가 지적한) 확신= 신념, 자기 신념만이 옳다. 


내 독선, 다른 어떤 다른 대중들에 대한 책임, 책임이란 말, 이런 것보다는

어떤 이념적인 확신에 차서 행동한 결과가 그런 폭력적인 분열, 분열로 이어졌다. 

잘못된 진단과 잘못된 처방이라고 보여지는데요. '책임'이라는 단어에서 어떤 '구원'을 발견한 것 같아요. 


김정진: 심리학적 분석까지 하셨구만요. 


원시: 그것이 아니면 그거 어떻게 책임정치 그 부분에 꽂혀서, 그렇게, 사실은 이거는

사회학 개론에서 다루는 거거든요. 근데 이거 가지고, 깊게 다룰 부분들을 굉장히 많습니다.


김정진: 그건 공부하시는 분들이 하시면 되죠. 


원시: 그래서, 전 프랑크푸르트 학파 들어보셨죠?

그래서 어 이건 무슨 막스 베버의 합리성 부분과 칼 마르크스의 그런 '(자본주의) 비판' 부분에 대화를 시도하는구나, 저는 처음에 그런 줄 알았어요. 깜짝 놀랬네요.



8 부. 청년들에게 진보정당 운동을 권유할 만한가?

오디오 팟빵 8부~10부: http://www.podbbang.com/ch/1776409?e=23565919

유부트 링크: 8부~ 10부 :  https://youtu.be/5iWldZSM3h0


원시: 우선은 추천할 만 합니까? 


김정진: 이 일을 하자고? 


원시: 예


김정진: 10년 전 같으면 하자고 했겠죠. 아무것도 모를 때이니까. 지금은 사실 뭐. 

'지금 밖에서 성공해서 당으로 들어와라, 그래야 받아준다' 이런 말이 나오는 당이 되어버렸는데. 


원시: 방금 그 말이 이제 진단이 굉장히 이제 (진보정당) 다시 출발점이 된 거 같아요. 

여기까지 진짜 흘러왔고, 이게 어떤 현실적인 출발점인 거 같아요.  제가 이제 당원이라디오, 

그 사실은 최초의 팟캐스트라고 볼 수 있죠. 우리 정당사에서. 


그때 같이 하신 분들 숫자가요, 거의 20~30명 정도 되요. 그래서 4년을 할 수 있었어요. 이것이 쉽지는 않거든요. 왜냐면 지금 당원이라디오에서 나경채 후보, 김종철 후보,  그 다음에 정종권 레디앙 에디터 인터뷰했잖아요? 그거 한 번씩 하면은, 준비해서 한 편을 만드는 데까지 12시간 정도 걸려요. 


김정진: 꽤 오래 걸리는군요. 


원시: 근데 그거를 4년 동안, 혼자 했다면 못하죠. 엄청난 많은 당원들의 자발적인 어떤 협력,

이런 것들에 근거해서 했는데, 이런 부분도 사실은 제가 관여해서 참여해서

기획해서 해서 그랬다는 게 아니라, 사실 당내에 제도화되고, 안착화되고 이제 그렇게 해야죠. 

그런 부분 좀 아쉬워요.  


칼라 TV 도 마찬가지고, 조대희(컬트조) 당원하고 처음에 시작했었는데, 기본 캔셉이 그때 "시민에게 마이크를 주자" (당 지도부가) 연설 하지 말고,  kbs 전국노래자랑이 가장 장수프로그램이잖아요.  


그게, 그런 무대만 만들어주자. 그런 컨셉으로 해서 우리 진중권 선생이 (송해 역할을) 아주 잘 했고, 사람들하고 말하고, 그 컨셉을 아주 정확하게 소화를 해줬어요. 이런 긍정적인 경험 때문에 진중권 선생이야 당연히 예술철학 공부한 사람이잖아요.  자기 공부 영역이. 저는 사회정치 철학이고, 정치경제학, 이런 부분이니까, 다르단 말이예요. 


그러나 그런 좋은 경험 때문에, 지금도 뭐냐면은 어떤 끈끈한 그런 부분들이 있어요. 그런데 (조국 사태 논란으로) 진중권 당원이 탈당해버렸어요. 너무 아쉽다. 그거는 왜?  우리 당이 그 정도 차이는 서로 표현할 수가 있을텐데, 그래서 제가 아까 당 분위기 있잖아요? 너무 사람 관계 쉽게 흩어지고 깨지고 그렇지 않나? 그런 질문을 던졌던 게.  


 

(2010.01.21.중앙일보. 심상정 대표가 진중권 탈당에 대해 포용적인 자세를 보여주지 못했다)


김정진: 진보정당 운동 분립의 역사가 담긴 상처는 큰 거 같습니다. 제가 봐도 이래저래 큰 거 같고. 이제 구성원들의 큰 상처를 남긴 것도 사실이고. 근데 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정당 구성원 개개인, 지금 돌이켜보면, 한국 사회운동이 가지고 있다는 큰 입장 차이를 해소할 방법이 없었던 거 같아요. 


근데 이제 당을 같이 만들면서 그 차이가 전혀 뭐 좁혀지지 않았고, 게다가 이게 극단적으로 극화된 거는, 제가 보기에는 이제 민주노총이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 게 아니라, 그 정파대립의 한 축이 되어버리면서, 민주노총 내부 대립구조까지 (당에) 얹혀지는 상황이 돼 버렸거든요. 


조절이 불가능한 상황이 끝까지 가버린거죠. 이제 결국 파국을 맞아서 헤어졌는데 (2008년) 그런 것에 대한 재검토없이, 그냥 정치적 필요 때문에, 어쨌든 선거 대응하기 너무 어렵고 작으니까 그런 것에 대한 고려나, 반성없이, 필요 때문에 합친 것이 더 큰 파국을 맞았던 것이 아닌가? 


근데 이제 그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도 도저히 해결이 안되는 문제였다는 생각도 들어요. 지금 방금 말씀하신 게 2012년 통합진보당. 김정진: 바깥에서 보기에는 그렇게 보여지더라고요.

 

원시:  노회찬 의원 가지고 같이 일을 해왔었잖아요? 근데 이제 김정진 변호사와 

어떤 의견 교환, 소통은 잘 되었나요? 노회찬 의원과 김정진 변호사 사이에. 


김정진: (허허) 노의원이 훌륭한 분이시긴 하지만, 그렇게 저하고 그런 얘기를 자주 나누고 

그런 사이는 아니었지요.  인간관계에 있어서 되게 신사세요. 포멀 (예의)하시고, 반말도 안하시고

필요한 일 있을 때 얘기하는 거지.


 

(김정진변호사에게 노회찬이란 어떤 존재였는가를 물었다. 그는 말을 아꼈다. 고인에 대한 예의인 것 같다. 인터뷰 후에 김정진은 노회찬 전 의원이 토론이나 회의 등을 민주적으로 잘 운영했던 정치 지도자라고 평가했다.) 


원시: (노회찬 의원이) 대중들에게 알려진 것과 실제 많이 다르죠. 


김정진: 저 하고 뭐, 그런 이야기를 할 게 있겠습니까? 


원시: 지론 여러가지 이야기했었는데, 그런 부분에 대해서 진짜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이게 좀 통하고, 뭔가 주고 받고 이런 관계들이 많이 형성이 되어야지, 그게 실제 시합에 나갔을 때 이길 수 있는 팀이 된다라고 보거든요. 결국에는 사람이 하는 건데, 바깥에 발휘하는 충격있잖아요. 임팩트, 내부 조직 (당 내부) 응집력 이게 굉장히 저는 취약하다고 봤어요.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김정진: 역설적으로요. 끈끈했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겁니다. 


원시: 그건 또 뭡니까 ? 


김정진: 이 길이라는 게, 너무 힘들고 그리고 다 챙겨 줄 수도 없고, 버리고 가는 거죠.

저희 같은 무명, 소졸 그 말을 알죠. 그렇게 죽어가는 게 이유이기도 하고, 

무명 용사들이기도 하고. 실제로 너무 젊은 나이에 돌아가신 분들이 있으니까.

그거는 너무 이게, 이제 참 마음에 큰 짐이고, 끈끈한 관계 별로 믿지 않습니다. 

그걸로 여기까지 온 것도 아니고요. 그래서 그랬으면 이 목타고 태평양 건너는 식으로 하는데

어떻게 건너겠어요? 


원시: 김정진 변호사가 진보정당 운동 하면서, 굉장히 비유를 많이 하시는 거 같아요. 


김정진: 외부자가 보기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그렇게 된 거 같아요. 


원시: 제가 어떤 걸 느꼈냐면요, 레디앙 TV(편파tv)  저는 알아 듣겠더라고요,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를. 근데 이런 생각이 한편으로는 들었어요. (정의당)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들었을 때는, 저런 이야기를 정말 그 육하원칙에 의거해서 이해할까? 김정진 변호사가 18년 동안 진보정당 운동을 하면서 답답한 일이 많았구나, 라는 걸 제가 느끼는거죠. 


김정진: 많죠. 안되는 것이 더 많았으니까요. 


김정진: 다만 마지막 기회가 있을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아쉽습니다. 동지들이 노선과 인물을 일신해서 기회를 잡기를 바라는데 다들 너무 지쳐서 그럴 수 있으려나 모르겠어요.


 

(김정진 변호사는 18년간 진보정당 경험을 통해, 로베르트 미헬스의 ‘과두제의 철칙’에 대해서 언급했다. 진보정당 안에서도 소수 상층 정파 리더, 혹은 당대표 등에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체험했고, 당 전체 기구가 그런 소수 권력자들의 동원체계로 이용되는 것을 보면서 김정진은 미헬스를 언급했을 것이다. ‘철의 법칙’ 표현은 막스 베버도 좋아하고, 미헬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직접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좌파의 민주주의론이 아닌 미헬스를 언급한 김정진의 문제 의식은 한국 진보정당이 처한 현주소라고 해석해야겠다) 


원시: 최근에 페이스북 글이나 아니면은 나름대로 스타일이 있어요? 김정진 변호사 스타일이, 근데 그런 스타일이 우리 당 안에서 조각돼서 결과물로 드러내지 많이 드러내지 못했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근데 지금 당이 살기 위해서는,  어떤 개성을 굉장히 살려주는 당이 된다고 생각하는데.


김정진: 원시님께서는 어쨌든 정치학 사회학 공부를 많이 하셔서, 사실 저는 예전에는 심각하게 생각을 하지 않았었는데 막스 베버보다, 로버트 미헬스 (Michels)가 더 맞지 않느냐, 과두제 철칙이거든요. 독일사민당 운영하는 것을 보고, 정당이 과두제에 사로잡혀서 당시 1차 세계대전 그 즈음에 노동자들이 새롭게 또 혁명에 대해서 급진적 행동을 나섰는데,

독일 사민당 지도부는 그것을 억제하고, 이런 거에 대해서 대단히 비판적이다가, 결국 이 사람이 무솔리니 편으로 가버렸잖아요. 


사실 저는 20대에는 미헬스 결론을 심각하게 고려를 하지 않았어요. 미헬스의 통찰력이 결국 더 맞는 생각이 아닌가? 마지막 기대를 조금만 갖고 있는데, 가능한 일인가 싶기도 하고요. 정당이라는 게 조금 더 민주적이냐 아니냐, 사회가 기본적으로 과두제인데. 


원시: 저는 그 부분에 대해서 어떤 생각이 드냐면, 정치적 리더십을 형성하는 과정이 예술이어야 하죠. 민주주의적 예술이어야 되는데, 지금 이제 제가 받는 느낌은 뭐냐면, 김정진 변호사가18년 동안 했던 경험들을 사실은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이종범이 프로야구 선수 생활 한 연수랑 똑같잖아요. 좌절도 있고, 근데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정당도 화해의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분열과 대립이 있었을 때. 화해의 계기 있잖아요.


저는 그런 부분에서 굉장히 세련된 어떤 문화를 만들어내지 못했지 않은가, 그런 생각이 들거든요. 어떤 의견이 다를 수 있고, 서로 싸울 수 있고 어떤 지위를 놓고 경쟁을 하고 있잖아요. 그럴 수 있어요. 그런데 프로야구도 (투수가 타자) 머리를 맞추면 퇴장 당하잖아요? 투수가, 그냥 동업자 의식은 있어야죠. 그래야 팬들은, 관중이 오고, 야구장을 찾아오고 한마디로 말해서 장사가 되는 거잖아요. 프로야구가.  근데 왜 화해를 못하죠 ? 사람들끼리. 


김정진:  권력은 화해하지 않죠.


원시: 아니면 권력은 화해하지 않는다, 그거는 우리 진보정당 정치철학으로 될 수 없죠. 

이 이야기를 말씀드린 이유는, 영화 세븐 사무라이(Seven Samurai) 영화 아시죠?  


김정진: 7인의 사무라이, 예전에 봤는데. 


원시:  김정진 변호사 같은 사람들이 나오는. 그 캐릭터 중에 있어요. 김정진 변호사가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지지 않고, 잘 모르고 그러는데, 나는 김정진변호사를 굉장히 대중적인 캐릭터라고 생각해요.

그 영화 말미에, 무슨 이야기가 나오냐면, 세븐 사무라이 중에 다 죽고, 두 명인가 세 명인가 살아남아요. 그 주제가 그거잖아요. 겁많은 농촌 사람들이 도둑떼가 마을로 처들어오면, 처음에는 다들 도망가고 그랬는데, 세븐 사무라이와 힘을 합쳐 가지고, 도적떼를 물리치는 게 주제인데, 주제는 간단해요, 근데 그 대장이 마지막에 하는 이야기가 인상적입니다.

그들, 그 겁쟁이 동네 부락 농민들 무덤 앞에서, 그 대장이 하는 이야기가, 우리 사무라이가 주인이 아니라, "당신들이 해낸 것이라고" "당신들이 주인공이라고" 말해요. 

진보정당이 (사무라이 대장이 말한 것) 그렇다라고 보는데,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했어야 될 게. 


김정진: 그런 마인드 있죠.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7인의 사무라이 마지막 장면. 도적떼로부터 마을을 지키려다 죽어간 농민들 무덤 앞에 선 사무라이가 농민들이야말로 진정한 주인공이라고 말하고 있다.)


원시: 김정진 변호사가 그 마인드가 있다고 보는데요,


김정진: 아니 그럼요. 전국에 흩어져 있는 무명용사가 그런 마인드가 있죠. 근데 이제 그거야 위기시에 한번씩 하는 거고. 지금 상황에서는 끝난 것 같고, 저 같은 서생이 할 일은 이제 더 이상 없죠. 


다만 이제 당내 정치인들이 어떻게 행보를 잡아 나가는가, 그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냥 하던 대로 하면 제가 보기에는 이제 앞으로 쉽지 않을 거고요. 그래도 뭔가 노선과 임무를 혁신하려고 하면, 기회가 한번쯤 더 있지 않을까 이 정도는 제가 예측을 해봅니다. 


원시: 자꾸 이야기하는 게 김정진 변호사더러 뭘 하라는 게 아니고, 그 차원의 문제가 아니고, 18년 동안 했던거 자체가 그 시대를 같이 해왔잖아요. 아까 말한 대로 이제 권력 문제가 굉장히 어떤 제가 느끼기에는, 일종의 정치적 좌절감 이런 부분들이 갖고 계신 거 같아요. 


김정진: 좌절할만한 그런 것은 없는데, 그냥 안타까운거죠. 제가 뭐 되고 싶은 게 있어야 좌절하는거죠. 그게 문제일겁니다. 아무래도. 그거는.


원시:  제가 80년대 민주당 586, 지금 진보정당 하는 사람들 다 마찬가지인데, 우리가 옛날 이야기를 많이 안 하는데 요즘은요, 뭐 꼰대다, 재미없다, 이제 김어준 식으로 하는 게 이제 자리 잡고 있잖아요.제가 그 문화를 아주 잘 알긴 하거든요. 고등학교 때, 제가 선생들하고 많이 싸우면서, 그 B급 C급 문화를 아주 잘 알고는 있어요. 


옛날에 학생운동 절반은, 80년대 90년대 초반까지도, 제사 지내는 것이, 김정진 변호사님도 잠깐 생각해보세요. 그 때.  학교에서 보면, 거의 다 추모제, 추모제, 제사였어요. 


김정진:  그렇죠 그 많은 사람들이 희생이 되었으니까요. 


원시; 그게 다 제사여요. 근데 저는 개인적으로 그 제사가 너무 싫었어요. 

문익환 목사가 "무슨 열사여" 하는 연설 있잖아요? 너무 듣기가 싫었어요.

 

김정진: 3년 상도 아니고, 10년씩 하니까. 


원시: 근데 지금 우리가 다시 이제 그 때 복기를 해 보면 어떤 거냐면, 개인이 뭐가 된다, 또는 아주, 현실적으로는 살아 나가야 하니까, 여러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는데, 결국에 역사라는 커다란 흐름에 있어서 (아직도) 그런 연속이 있지 않나요?  제사를 그렇게 안 지낼 뿐이지.  우리가.  지금 정당을 만들어 놨으니까.

 

김정진: 근데, 이제 그 힘이 소진되어 가고 있는데. 뭔가를 못 만들어 놓은 거, 저거 지금 제가 보기엔 그런 객관적으로 보면, 그런 거 같아요. 그런 그 에너지가 소진되어 가는데 뭔가를 못 만들어냈고,동력도 떨어졌고,저희 세대가 그냥 사라져 주는 게 역사 순리적으로 당연한데, 그렇다고 그게 이후 세대들한테 저희가 사라진다고 해서 기회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더 답답함이 있을 거예요. 


원시: 이종범 선동열은 은퇴 한다고 한국프로야구 없어지지 않잖아요? 


김정진: 그쵸. 제 경험이라는 게 그렇게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의 사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오늘  솔직하게 말씀 드렸는데, 


원시: 6개월 정도 직장생활 해도요, 책 1권을 씁니다. 200페이지~ 300페이지를 써요. 

근데 18년 동안 하셨으니까, 그거 딱히 특별히 뭐 김정인 변호사를 과장되게 평가해서

그래서 그런 게 아니라, 그런 노하우나 누적된 그런 부분들이 다른 나라정당 같으면은요, 다 그 책 출판하고 그래요.  아니 다른 정당도 그럴걸요. 아마 우리나라에. 저라도 대화를 해야겠다. 

그래서 한거고. 당직에서 물러나기로 결정한 것은 언제인가요? 


김정진: 2019년 작년 7월에 정책연구소장을 그만 두었고요. 


원시: 임기가 끝나서 관둔 것인가요? 아니면? 


김정진: 대표가 바뀌고 해서 그만 뒀습니다. 임기가 끝나서 관둔 건 아니고요. 

근데 제가 그만둬서 곰곰이 생각을 해 보니까, 이제 서생은 진퇴가 분명해야 하고, 

제가 할 일 없더라고요, 기여할 것도 없고. 그렇다고 여기서 남아서 뭘 할 생각 있었던 것도 아니고 더 이상 뭐 할 일은 없는 거 같다. 그런 결론을 내린 겁니다. 


원시: 아니 그게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진보 정당에서 몸을 담았던 사람들의 피와 땀, 또는 어떤  죽음, 이런 가치들이 한국 그 월급쟁이나 노동자들의 가치가 사회적으로 아직도 제대로 인정받고 있지 못하는 것처럼, (진보정당) 내부에 있는 사람도 그렇고, 가치평가 잘 안 하는 거 같아요. 그래서 제가 계속 좀 집요하게 묻는 거예요.  그거를. 


당 한국 안에서 보는 거랑, 내가 바깥 해외에서 보는 거랑 차이가 있을 수 있어요. 

분명히 그러니까 이런 얘기를 해요. 페이스북에 뭘 썼더니 '원시 당신은 정의당에 대해서 애정이 과하다' 현실을 알면, 당신 그렇지 않을거다. 그런 댓글이 있어요. 근데 이런 댓글은 2002년~2003년2004년, 이럴 때 우리가 온라인에 '깨끗한 손'이나 진보누리 등,  민주노동당 지지하는 이런 데서는 찾아볼 수 없는 그런 문장들이거든요. 


나는 변한 것도 없고, 똑같고, 사람들이 실망할 수도 있고, 분명히 결과가 없을 수도 있고 그러는데, 그런 부분들을 너무 쉽게 사장시키지 않으냐, 그런 차원에서 제가 계속 질문을 던지는 거예요. 


김정진: 무명용사의 숙명이죠. 그냥 조용히 사라져 주는거죠.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관계없죠. 먼저 간 동지들이 알아 주겠죠. 그걸로 족합니다. 그 뜻을 아시는 분들 할 거고, 모른다고 해도 할 수 없고.누구도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냥 먼저 간 동지들한테 미안하고.그 뭐 제 입장에서는 그런 것들이 다 지엽적인 것이예요. 


무명용사, 서생의 길이 있을 뿐이고, 저희가 똘마니처럼 살 수는 없잖아요. 운동권이 돈과 권력이 없지 가오가 없습니까? 똘마니는 똘마니들의 길이 있으니까.  정치인들과 똘마니들이 공생관계. 그렇게 사는건데.  누가 알아 주고 뭐 그건 뭐 중요한 건 아닌 거 같아요.



9부. 김정진 변호사가 제안하는, 진보정당 리더가 갖춰야 할 덕목과 능력은 무엇인가? 과감한 선택과 노선 전환을 할 수 있는 “야전 사령관”이 필요하다. 


대화 링크: https://youtu.be/5iWldZSM3h0


 

(그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는 것일까? 아니면 실패라고 규정하는 것일까? 김정진은 대화 중에 무명용사, 서생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했다. 아테네 소크라테스도 나이 40이 넘어 중무장을 하고 조국 아테네 방어 전쟁에 출전했다. 진보정당을 그는 ‘친정’이라 불렀다. 평소 그가 잘 쓰던 호민관, 민중의 당의 방어 전쟁에 그는 다시 돌아올 것인가?) 


원시: 김정진 변호사 개인적인 거 아니라, 당의 문화로 자리잡으면 안 될 거 같거든요.


김정진: 그건 당 지도급 인사들이 알아서 하시겠지요. 


원시: 방금 말씀하신 게, 우리나라만 이런 문화가 있는 건 아니에요. 방금 말씀하신 거 있잖아요.

그거 인간 사회는 다 있는 거 같고, 사마천 사기에 나오는, 굴원(屈原)있잖아요? 

굴원이 그랬던 것처럼, 자기 일이 안되어서, 낙향하는 거 있잖아요? 이런 문화, 선비 문화, 

사 (士)계층의 문화가 있는데,  원래 스타일이 좀 그래요? 개인적으로 ?


김정진: 굴원이야, 다시 중용해달라고 그런 거 아니었겠어요? 그걸 (어부사 漁父辭) 왜 쓰겠어요? 

그거를 다시 등용해달라고 쓰는거지. 이렇게 이해하는데. (허허)


제가 진보정당 운동활동을 하면서, 몇 가지 원칙까지는 아니고, 몇 가지 지론이 있습니다. 공(貢)을 다투지 않는다. 그리고 업무 자체만 보지, 그 업무를 요청한 사람이 어떤 정파인지 따지지 않는다. 


원시: 좋은데요?


김정진: 그런 두 가지 목표였어요. 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뭐 걸어온 길이라든가 뭐 나중에 필요하면 사료 정도 의미는 있을 수 있겠죠. 기록으로 남길 수 있을 거고 뭐 어차피 옛 친정이니까 잘 됐으면 하죠. 


그 사람이 그 질긴 인연을 끊을 그냥 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근데 이제 제가 할 수 있는 거 당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한 거 같고요. 더 이상 기여할 만한 것이….. 동지들이 이게 깃발 들고 나섰으면 하는 바램이고, 그 정도 얘기하는 정도죠. 불이나 때면서, 그 정도인 거 같습니다. 정당활동을 하지 않더라도, 서생으로 해야 할 임무가 있죠. 지금 코로나 위기 때에, 발언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원시: 예전에도 잘 하셨지만, 글 쓰는 것이랄지, 아니면 이제 인터뷰, 해보니까 재미있어요. 

대중적으로도 통할 것 같고, 시너지 효과라는 게 다른 게 아니라, 김정진 변호사도, 굉장히 많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실제 일을 해 보셔서, 말할 필요도 없는데 자기랑 잘 맞는 사람들을 만들어나가는 어떤 과정이 있을 거 아닙니까?  이게 그게 잘 돼야만 당 활력도 생기고

정당 운동이라는 게 매력적인 그런 부분들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경험은 좀 없습니까, 뭘 같이 해 가지고 뭐 하면 된다.


김정진: 같이 해서 같이 괴로웠을 뿐입니다. 뭐 된 게 없다니까요. 허허. 

그렇긴 한데, 이런 식으로 하면 되는 경우가 있구나, 그런 경험들은 좀 있죠. 대중운동과 의회정치를 결합시킨 게 이런 방법이 있구나 라는 것, 쉽지 않은 경우지만, 그런 경험이 라든가 


원시: 이런 당대표나 당 리더가 갖춰야 할 것은? 덕목, 덕목이면 덕목이고, 능력이면 능력이고, 

그래도 김정진 변호사 생각하는 것,


김정진: 젊어져야죠. 


원시: 나이가 젊어져야 해요? 그러면 뭐 30대 40대 뭐 이런 정도로. 아니면 50대, 


김정진: 가능하면 더 젊어지면 좋고요. 젊어져야 되고, 왜 자꾸 군대 용어 써서 죄송한데, 

야전사령관 같은 사람이 해야죠.


원시: 야전사령관, 그게 뭐예요? 뭐 어떤, 직접 현장에 막 다니면서 뭐 그런 거예요? 


김정진: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한 선택과 노선 전환을 할 수 있는 그런 야전사령관 같은 사람. 새로운 거 하다 보면 실수하기 마련이거든요. 그걸 못 참아내면, 그 과정을 못 고치거든요.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봅니다. 그런 리더십이 형성될 지는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원시: 지금 총선 끝나고, 일정에 대해서 잠깐 궁금했는데요. 당 대표단 체제나, 당 리더십 같은 거, 시도당위원장, 이런 재편이나, 이런 논의들은, 그럴 필요성은 있습니까? 


김정진: 저는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데, 당내에서 지금 논의가 아직은 뭐 거의 없는 거 같아요. 회의를 하는 거 같은데, 어떻게 할지는 두고 봐야 할 것 같아요. 


원시: 이런 부분들은 후보에 올려놓고, 토론도 하고 어떤 그 토론을 통해서, 새로운 시도를 해볼 필요가 있다. 이렇게 제안을 하셨는데, 거기까지 제안을 하고, 


김정진: 이제 당에서 뒤집어 엎던, 그대로 하든, 알아서 하셔야죠. 정치인의 역할이죠.



원시: 그러면 이제 지금은 개인적인 일을 하시고, 빚은 다 갚으셨나요? 


김정진: 허허. 아직 남았습니다. 


원시: 우리들이 갖고 있는 어떤 진보정당 일하는 게 예전에 뭐 군사독재 타도운동 이것보다도 어떻게 보면, 더 힘든 측면이 있는 거 같아요. 가시적인 성과가 이제 보면은, 주로 이제 선거를 통해서 드러나잖아요. 이게 아까 야전사령관, 야전사령관 이게 되려면, 보급로가 있어야 되는데, 

식량보급로가, 그래서 제가 물어봤어요. 김종철 후보 저번에 인터뷰하면서 어떻게 그러면은 지금 선거에서, 지금 당선이 잘 안 되고 있는 상황이고 그러면은 진보정치가 어떻게 지금 길도 내야 하고, 또는 활동할 수 있는 그런 재정적인, 정책적인 어떤 후원 시스템을 만들어야 되는데

그 부분에 대한 어떤 대안은 지금 지난 18년 동안 경험을 통해서 볼 때.


김정진: 뭐 없는 거지요. 알아서 하라는 것이지요. 그걸 만들었으면, 여기까지 못 왔다니까요. 허허. 그냥 그 말이 맞습니다. 사람 갈아 넣어서 온 정당이고, 그게 진보정당이었어요. 그 와중에 너무 많은 사람이, 젊은 나이에 가 버렸죠. 그래서 이제 다들 ..... 사람 갈아 만들어서 만든 거니까.  


원시: 진보정당이 이렇게 되면, 다음 세대한테 권유할만한 정당운동이 안 되는데. 이거 큰일 났네. 


김정진: 제가 그런 얘기 여러 번 들었어요. 젊은 열심히 하는 활동가들이 열심히 할 맛이 안 난다. 자기 지역에서 선배들은 선거 여러 번 나왔어도, 당선되지도 않고, 외부에서 온 사람들이 국회의원 되는데, 왜 내가 여기서 열심히 할 수 있겠는가,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원시: 진짜 그렇네요.  어떤 내적 동력이 있어야 될 텐데요. 동기부여나, 이게 진짜 심각한 문제로 올려놓고


김정진: 선거 결과가 이렇게 나온 건, 어쩔 수 없는데 근데, 이게 극적인 효과가 있는 거예요. 이게 당내에서 거의 이견이 없고 가장 검증된 두 명의 후보가 있었는데,


 


(정의당 안팎에서 기대를 모았던, 강상구, 김종철 후보는 비례대표 후순위에 배치됨에 따라 낙선했다. 그럼에도 TV토론회에 정의당 대표로 나가 선전을 펼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식상한 세대교체가 아니라, 세대별 무지개 연대가 절실해 보이는 정의당은 관성적인 리더십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원시: 강상구, 김종철 후보 말이죠. 


김정진: 순위는 후순위를 받고, 토론회에는 그 두 사람이 나왔어요. 토론회에 당선 예상자들이 나온 게 아니라, 이게 보여 준 게 뭐냐면, 드라마틱하게 보여 준 거여요. 이대로 오래 못 간다는 거예요. 그게 단순히 당원이 뽑았으니까 좋은 거다. 그것은 뭐 당연히 당헌 당규에 위반되지 않았죠. 이대로 어떻게 오래 갈 수가 있겠어요? 그 두 분은 정말 대인배 (大人輩)예요. 제가 보기에는. 대인배니까 참고 하는 거지. 


근데 이거를 정말 진지하게 생각을 해 봐야 된다니까요. 그래서 뭐 다른 방법이 없지 않냐 근데 그  얘기는 안 하고 ,그냥 다 넘겨서 아무  얘기도 안 하고,그냥 뭐 열심히 하자,이런 식으로 결론날 가능성이 제가 봐서 한 90%되요. 답이 없으니까, 뭐 그렇게 될 수도 있겠죠.


근데 진작에 고민을 해봐야지. 안 해 보면, 안 하면, 지금 지역구도 2004년도 그래도 평균 지역구에서,  7~8% 됐어요 지금 3~4% 밖에 안 되고, 20년 한 사람이 그렇다니까요. 


그 다음에 2016년 지난번 총선 나온 사람도 이제 몇 명 안되요.  뭐냐면 두번 (출마) 나올 수가 없는거예요.  진지하게 검토를 해 봐야 되거든요. 지금 이 구조로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좀 진지하게 검토를 해봐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답이 없으니까 다들 뭐 그럴 수 있겠죠.



원시: 저희들이 총선 전후로 문제제기를 저부터 시작해서 많이 했었고 조금 다행인 거는

경향신문이나 한겨레 신문에서 좀 다뤄주는 것 같아요? 최근에. 




 

(21대 총선 이후, 한겨레 신문이 정의당에 대한 특집 기사들을 내보고 있다. 20년 전 진보정당 명성을 되찾아야 한다고 지적하는 게 눈길을 끈다. 김정진 변호사는 정의당에게 다시 한번 정도 기회가 찾아올 것이라고 말한다. 정의당은 그 기회를 잡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김정진:  그 이유는 이제 좀 격세지감인데요. 이제 이분들이 진정으로 민주당 정권이 걱정이 되는가 봐요. 진짜 말아먹지 않을까. 제가 봐도 그럴 가능성이 상당히 큰데, 이제 그러면 정의당도 망하고, 뭐 이렇게 상황이 되면 이제, 대안이 없다. 이거 어떻게 될까, 정의당 없어지면 심각한 문제가 생길 것 같고 이런 내부적으로 그럼 공감대가 있는 거 같아요. 그런 것도 잘 활용해서 활동을 해야겠죠. 


원시: 이번 선거 결과를요, 그 이야기 조금 실무적인 거니까,피곤하실테니까, 조금만 더 했으면 좋겠는데요, 이번 선거는 전략적으로는 실패했다고 보거든요. 그런 견해들도 있고, 

저 개인적으로 좀 그렇습니다. 김정진 변호사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김정진:  사실 제가 보기에 의회에서 축출될 상황이었어요.


원시: 지도부의 당 선거 총선전략 자체가 결과로서 6석이 결과로 나왔다. 9.6% 비례 받았다, 이 부분에 대한 김정진 변호사 평가에 대해서는 아주 공감이 많이 되는데요.

30년 동안 누적된 역사적인 표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예요. 


김정진: 정의당이 잘못 하면 없어질 것 같은데, 애들 없어지면 안 돼 !  그냥 (위성정당) 떳다방 나오고 그러니까, 유권자들이 이거 너무 한 거 아니냐, 이런 여론이 일부 형성되었건 것 같아요. 


원시: 그러니까 이제 그 자체 능력이라기 보다는 그런 누적된 어떤 사회정치 운동이나

시민들의 역량, 이게 지금 그 (정의당) 보호벽이 된 거지요. 


김정진: 동정표 아무도 못얻었습니다. 너무 자족적으로 되면 안되는데, 허허.


원시: 그런 또 유머감각이 있구만요. 아니 근데 원래 성격이 자조적인 건 아닌데, 

진보정당 하면서, 그 자조적인 거 많이 늘었죠? 솔직이 말해 보세요. 


김정진: 나이 드니까 그렇게 된 거 같아요. 이렇게 해도 안되고, 저렇게도 안 되니까 어제 궁리만 하다가 이렇게 할까, 궁리의 역사였거든요, 그래서 이래도 흥, 저래도 흥 이렇게 된거죠. 

그래서 나이 들면 꼰대 그 말이 맞는 거 같아요. 이제 정의당에서 젊은 당직자들에게 민주노동당 때 이야기를 하면, 그렇게 싫어한다는 거 아니에요. '라떼는 말이야' 이렇게 들리나 보더라고요. 근데 정치인이 (역사를) 좀 참고를 해야죠. 


원시: 그건 잘못된 문화라고 생각하는데. 뭐냐면 저는 개인적으로 굉장히 이제 한국 진보정당은 2007년부터 심지어는 2020년 현재 지금13년간,굉장히 암흑의 터널을 걷고 있다고 보거든요.

그러면 저는 역사책을 굉장히 많이 봤어요. 이런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고 타개할 수 있을까? 

답답함을 역사 책을 보면서 배우는 거예요. 주로 많이 봤던 게, 반동혁명 (counter-revolution)에 대한 것입니다. 


 

(반동 혁명을 다룬 책들, 마르쿠제 ‘반동혁명’, 아노 메이어 ‘구체제의 완강함’, 아노 메이어 ‘유럽 반동 혁명의 동학’) 



원시: 왜 구체제는  오래 끝까지 살아남는가? 민주노동당에 관련된 책이 별로 없거든요. 물론 제 잘못이기도 한데, 쓰기도 하고 그랬어야 하는데. 영어로도 알리고 그렇게 해야 되는데.


김정진: 몇 권 있는데, 잘 안보죠. 통합진보당 해산시, 헌법 재판관들이 민주노동당 관련 책들 사서 그걸 다 봤다는 거 아닙니까. 허허. 


원시: 방금 그 이야기는 재미있네요. 


김정진: 장상환, 조현연, 최기영 씨가 쓴 책 다 봤대요. 


원시: 재미있네요. 그건. 그건 칼 마르크스가요, 독일 김나지움에서 역사 점수가 낮아요. 문학이나 이런 거 잘 했는데, 


김정진: 고등학교 때에. 


원시: 예. 역사 공부 힘든 거예요. (마르크스가) 나중에 늙어 가지고 공부하면서

역사 공부를 제일 많이 한 거지요. 영국 정치 경제 사료 공부한 거니까요. 운명이죠. 

역사공부가 그만큼 힘들다는 것입니다. 저도 느낀 게 뭐냐면, 역사 공부가 제일 힘들어요. 왜냐하면 답이 없어요. 그냥 다 읽어야 하니까요.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어요. 


김정진: 관련자들의 기억이 희미해지고, 지금. 한국은 기록을 잘 안 남겨요. 지금 민주노동당 관련 문서들이 통합진보당 쪽으로 갔다가, 해산 된 이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아무도 몰라요. 


원시: 그러니까 그거는 진짜 문명국가 아닌데요? 


김정진:  한국이 그 기록 보존, 기록 보관 이게 정말 약하다는 거 아닙니까. 민주노총도 그랬다고,  전노협부터, 그 이전부터 노동운동 단체 쭈욱 있을 거 아녀요. 그걸 총 계승 발전한 게 민주노총인데 그 문서가 실은 다 내려왔대요. 민주노총 만들면서, 앞에 문서를 다 버리고,그냥 자료집 만들고, 앞에 그 원자료를 다 버려버렸다는 거예요. 제가 그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원시: 그러면 안 되는데.


김정진: 그나마 성공회대 보관실에 넣어 놨는데 실제 제대로 정리를 안 돼 있다고 하고, 그렇더라고요. 그런 일이 진짜 많아요. 


원시:  한국 사람들이 철학도 좋아하고, 도(道) 도 좋아하고, 도...도를 아십니까. 문화가 이게 굉장히 특이한데, 실제 생활은 진짜 자본주의 원리가 굉장히 많이 작동되고 있긴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근데 특이한 그런 그 뭐죠, 학자나, 학문에 대한 이런 희구(希求 )도 있어요. 재미있는 현상인데요.


근데 저도 어렸을 때 철학 공부를 시작해서, 하나 정의를 내리라고 하면요, 철학은, 다큐먼트 있잖아요? 역사 (기록), 그런 다큐먼트가 지층처럼 쌓여가지고, 나중에 우리 과학시간에 보면, 그 층이 갈라지잖아요. 이게 지층이, 모양이 형성되잖아요. 누적돼 가지고. 철학은, 또 문명도 그렇지만, 다큐멘트에 누적적인 붕괴가 철학이거든요. 그게 없으면은 어떤 아까 뭐 이념이나 노선이나 철학이나 그런 건 불가능한데. 기초 작업이 굉장히 부실하다는 거예요. 


김정진: 진보정치 붙은 거, 그 자료가 다 어디로 갔는지 물어 봤어요. 그거를. 그 후로 어떻게 되었는지, 모른대요.  노회찬 의원 사진도 민주노동당 때 사진이 별로 없어요.


그때는 누가 사진실에 모아놓고, 뭐 그러지 않았으니까. 그게 자료가 이어지지 않으면서, 서버 같은데, 아마 있었을텐데, 그래서 정의당 이후 사진이 주로 많고, 민주노동당 때 사진이 별로 없어요. 그게 그런 것 같더라고요.


10부. 인터뷰를 마치며, 김정진 변호사와 대화. 



 


(2016년 정의당 정책연구소에서 김정진 변호사는 살찐 고양이법과 같은 불평등 해소책을 연구해오고 있다. 최근 그의 연구주제는 자산재분배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접근이다. 정당을 떠났어도 그의 진보정책 연구는 계속되고 있다. 그의 말대로 독행기도 獨行其道 시간이다.)

 

김정진 변호사가 좋아하는 맹자 구절:


得志 與民由之 (득지 여민유지: 뜻을 얻으면, 인민과 더불어 천하의 대도를 실천하고) 不得志 獨行其道 (부득지 독행기도: 그 뜻을 얻지 못하면, 혼자서 그 도를 실천한다) 此之謂 大丈夫 (이런 자를 가리켜, 대장부라 한다)


원시: 그래도 아직도 살아 계셔


김정진: 맹자의 대장부론 있지 않습니까? 


원시: 맹자 읽으셨어요?


김정진: 드문 드문 봤죠. 제일 좋아하는 대장부론인데


원시: 호연지기, 맹자를 아시니까 반갑네요. 


김정진: 대장부로 내 마지막 보면, 득지 여민유지 (得志 與民由之) 뜻을 얻는다면, 민중과 함께 행하고, 부득지 독행기도( 不得志 獨行其道 )뜻을 얻지 못한다면

홀로 그 도로 행한다. 차지위 대장부야. (此之謂 大丈夫) 이렇게 나오거든요. 

맹자가 자기 이야기한 것 같아요. 


맹자가 전국시대 말기에 쓴 고담준론이 말기에 통하겠어요? 통일이 되고 나면 모를까. 

그럼 맹자 말이 먹혔겠죠. 그게 나중에 한나라 때 가서야.  그게 이제, 맹자가 할 말이 없으니까, 

마지막 그 얘기한 거 같긴 해요. 자기는 독행기도 한다고. 맹자 이야기는 아무도 받아주지 않았거든요. 공자는 한두 명 받아 준 사람 있었는데, 독행기도 하는거죠 뭐. 


원시: 그 구절을 기억하시는구먼요, 맹자를 제가 거 철학과 간다고, 십팔세에 그걸 한자를 다 찾아서, 통독을 한 적이 있어요. 근데 맹자에, 오십보 백보도 나오고, 그 다음에 방심(放心) 있잖아요. '야 방심하지 마라' 그거 사람들이 닭이나 개나, 그런 것을 잃어버리고는 울고 서글프다고 하는데, 마음을 잃어버리고는 서글퍼하지 않는다고 맹자가 비판해요. 


잃어버릴 방, 마음 심자거든요. 그 방심 고사도 맹자에 나온 이야기인데. 그 심이 사단 (四端) 인의예지( 仁義禮智 )를 말하는건데, 그 4단을 잃어버리지 말라는 거죠. 정말 맹자를 재밌게 읽었는데, 짜임새, 수준, 여러가지로 재미있었어요. 


김정진: 유교가 국교가 되면서, 후세대들이 많이 다듬었을 거예요. 논어도 흐름이 이야기가 쭈욱 이어지잖아요. 근데 다른 제가백가 경전들은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마이너이니까. 

최근 제 관심사만 하나 알려드릴게요. 사실은 제가 어제 그 자산 대비 재산 재분배에 대해서 조금 연구를 하고 있어요. 


원시: 좋은데요 


김정진: 아까 얘기했던 도큐먼트 검토가 안 끝나서….. 그  시대가 곧 도래하지 않을까, 그 방향으로 가야 되지 않을까 생각은 하고 있는데, 재산 재분배를 예전처럼 몰수하자 이런 건 아니고, 재산이라는 게 단지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재산이라고 볼 수 있거든요. 사용할 수 권리도, 넓게 봐서 재산 부채에도 들어가고, 부채도 조정할 수 있는 거 잖아요. 그러면 그런 고민을 좀 하고 있습니다. 


원시: 그거는요, 그 주제가 제가 연구하는 주제와도 많이 닿아있고, 그거 말 꺼내기가 굉장히 힘들잖아요. 사실은. 우리가 거기까지 지금 가려고 지금 노력을 많이 하고 있는데 이거는 뭐 10년 20년 30년 단위고,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좋은 주제고요.

암튼 (김정진 변호사) 스타일대로 가세요. 이게 내가 할려고 했던, 뭐냐면은 이런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굉장히 시험에 강한 사람으로 불가피하게 자라 왔잖아요?  시험, 혼자 뭐 막 해가지고, 혼자 다 할 수 있잖아요. 근데 인생에서, 김정진 변호사 시험에 떨어본 적 별로 없죠? 


김정진: 꽤 있는데요. 


원시: 살면서 얻는 교훈이 되었다 라는거죠. 이거는 정말 사람들이랑 같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 혼자 할 수 있는 시험과 같은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김정진 변호사: 맞는 말씀입니다. 


원시: 김 변호사 가족들이나, 다른 사람들이나, 다 마찬가지인데요, 그렇게 다들  답답하게 볼걸요? 내가 당장 한국(사람들)이  얼마나 빨리 결과를 내놓길 바래요? 


김정진: 그죠. 


원시: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안 살아왔기 때문에, 이거 저번에 나한테 핀잔을 주는 사람도 있어요. 정의당이 뭐 진보정당이냐 라고? 당신이 그렇게 뭐 활동하는 거 자체에 의미가 없다라고 폄하를 하는 거지요. 그럴 정도로. 


김정진: 정치기획사였던 거여요.


원시: 그런 이야기를 엄청나게 많이 들었어요. 그래가지고. 마음이 안 좋았어요. 아...

 

김정진: 금권정치 하고 뭐가 다르냐 이거죠. 그런 식으로 해 버리면 , 5천만원 기탁금이야 그렇다 치고. 공직선거 기탁금 자체가 그걸 못 모으면 선거에 못 나간다는 이야기인데, 도대체 저는 제가 살아온 진보정당에서, 듣도 보도 못한 일이예요. 그것도 별 이견없이 통과되었다고 하니까, 더 놀랬어요. 정치기획사니까 그렇게 할 수 있죠. 돈이 필요하니까요. 


원시: 이렇게 돼 버리면, 어떻게 되냐면요, 저한테 물어봤던, 내가 일부러 페이스북에 옛날에 알았던 사람들과는 따로 연락을 안 하거든요. 그 사람들 어떻게 알고 온 사람들은 할 수 없는데. 어떤 몇 마디를 들었어요. '아 (정의당) 이게 뭐하는 거냐고' 

사람들이 볼 때, (정의당이) 상식적이지 않다라고 보는 거 같아요. 


김정진: 아무튼 그건 평가가 필요한 대목입니다. 


원시: 그리고 나는 개인적으로 김정진 변호사가 대중정치를 하지 않았으니까, 

나는 개인적으로 할 말이 굉장히 많아, … 이렇게 김정진 변호사가 이렇게 말없이 관두고, 


김정진: 서생은 진퇴가 분명해야 하고, 그만 둘 때는 조용히 그만 두는 것입니다. 


원시: 그것은 존중하는데요, 이게 지금 이제 희망의 요소를 말해야 하니까요. 사람이 살아가는 개인적인 것, '나도 그랬을 것 같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마찬가지고요. 근데 나는 옛날 2003년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만드는 것 보고, '이 동네는 좀 특이하구나' 그때 그렇게 생각을 하고 그랬는데요,  그래서 김정진 변호사 이야기를 100% 공감을 해요. 그냥 공적인 측면을 말하는 것이예요. 그리고 그 사람들을 보면 그럴 거예요. 뭐냐면 그런 게 잘못 알려지거나, 잘 알려져야 하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고, 막 이런 게 느껴지니까, 거슬리잖아요. 

장시간 시간내줘서 고맙고요, 사료로 전부 남겨야 해요. 




김정진 변호사 (전 정의당 정책연구소장, 전 민주노동당 정책국장) 

인터뷰 날짜, 2020년 5월 11일 월요일 오후 8시 

대화 및 질문자: 원시


 


김정진 전 정의당 연구소장 약력


1996년 제38회 사법시험 합격, 

1997-1999년 사법연수원 재직, 

2002-2004 민주노동당 정책부장 

2004년 민주노동당 총선 선대본 법률지원단장 

2004-2005 민주노동당 법제실장 

서울대 법과대학원 박사과정 수료(세법전공)

2010-2011 진보신당 부대표

2015 노동당 중앙선관위원장

2016-2019 정의당 정의정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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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정의당2020. 5. 13. 07:43

Nakjung Kim

February 20 · 

415 총선, #정의당, 진보정당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구준모, 이효성님에게, 기고글에 대한 감상평입니다. 토론이 실종되거나 약화된 진보정당,정의당인데, 앞으로 토론을 활성해보자는 취지입니다.


구준모님 비판과 대안제시에 대해서, 동감 부분이 많다. 그러나 ‘독일식 지역-비례 혼합형(연동형)’ 으로 선거법을 개편하려는 시도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으로 흘러서는 안된다.


우선 이효성님 글 “지역 없는 비례강화, 무너지는 진보정치”, 구준모님의 지적에 앞서, 한 가지 언급할 것은, 2000년 민주노동당 이후, 한국진보정당은 지방선거(의회/행정), 특히 지역 행정경험을 누적시키지 못하는 오류를 범했다. 필자 역시 진보정당의 집권전략으로 국회의원 선거도 중요하지만, 우위에 놓아야 할 것은 ‘지방선거’라고 지난 18년간 제안했지만, 내부 분열과 리더십의 약화로 실천되지 못했다. 이효성의 글에서 이 부분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입법부 권력 진입과 행정부(시,구청장,군수,도지사등) 권력 진입이 서로 협조체제가 되도록 만들어야 하고, 지난 18년간 이런 좋은 모델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에, 지난 4년간 정의당은 ‘의원 중심’으로 당을 운영하고 말았다.


두번째, 국회(입법)으로 돌아오자. 지역구 의원과 비례대표 의원을 대립시키지 말아야 한다. 선거법 개정과정에서, ‘석패율제’ 도입만 주제화되고 말았고,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민주당이 제시한 ‘지역구와 비례대표 이중등록제’를 수용했어야 했다. 이것은 이미 “독일식 지역-비례 혼합형 MMP”에서 도입한 제도이다.


2020년 415 총선을 앞두고, 과거에는 지역구 후보로 나선 정치가들이 비례대표 후보로만 등록한 것은, 당 전체 전략적 오류이기도 하지만, 이중등록제 부재로 생긴 현상이기도 하다.


그리고 정의당이 적은 당이라도, 비례대표 후보 명부는, 최대 47명까지 작성해야 한다. 만약 비례대표 정원이 250명이 되었을 때는 250명 명부를 작성해야 한다.


세번째, 심상정 대표단 (전국회의 결정방안)이 ‘독일식 지역-비례 혼합형 (연동형)’을 당론으로 정해놓고, 그 명부를 작성하는 방식은 오류를 범하고 있다.


2004년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명부 작성부터 2020년까지 동일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비례대표는 순번 정하기 ‘경쟁’으로 그쳐서는 안된다.


당과 정책연구소, 당원이 협력해서, 정의당이 해결해야 할 10대 거대과제, 20대 중점사업, 100대 입법을 먼저 발표하고, 그 다음 그것을 입법화할 정치가들을 ‘비례대표’ 명부에 올려야 한다.

아직 정당이 적지만, 예를들어 ‘노동’이라는 주제분류를 해놓고,그 내부에서 ‘순번 정하기’ 경쟁은 가능하다.


지금처럼 10~20가지 주제도 넘은 것을 하나로 섞어서 경쟁 순서를 정하는 것은 2020년을 끝으로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비례대표 후보자 작성 방식으로 당원 1인 1표제는 어울리지 않는다. 선호제 투표-총점제도 바꿔야 함)


2020년 총선 7주를 앞두고도 정의당은 기본 슬로건, 가장 중요한 10대 과제들도 명료하게 각인시키고 있지 못한 상태이다. 그 이유가, 개별적인 비례대표 후보자들이 알아서 선거운동을 하게끔 방치해버렸다.


비례대표 후보자들은 정의당은 정책의 ‘화신 = 아바타’이다. 이 47명의 아바타들이 지역 후보들을 도와서 선거운동을 해야 한다.


네번째, 이효성 기고문의 지역강화, 지역 뿌리내리기, 지방 의원과 행정 (시장, 군수,구청장) 집권 경험의 강조는 당연히 정의당의 당론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심상정 대표 취임사 발언은 타당성이 떨어진다. 진단이 잘못되었다. 비례정당이 나쁜 것이 아니다. 꾸준히 비례대표 국회의원 숫자도 늘려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국회는 특정 직종 10개가 90%이상 의원을 차지하고 있다.


비례대표 국회의원만 보유하고 있어서 문제가 아니다. 또 비례대표 후보 숫자를 250명까지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하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일관성을 갖춰야 한다.


심상정 대표 발언 “비례정당의 한계를 뛰어넘어 진보집권의 지역토대를 확충”은, 지방 선거 전략을 중시해야하고, 정당 정치 사업와 정치가 배출도 여기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말로 바꿔져야 한다. 두루뭉술, 비례정당의 한계를 뛰어넘겠다는 말은 무의미하다.


2004년부터 민주노동당이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20명 넘게 배출했다. 그러나 국민들 속에 각인된 이름이 몇명인가? 4년간 철저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비례대표 의원이 되어도, 리버럴 민주당과 보수파 의원들을 이길 수 없다.


심상정 대표 발언은 이렇게 교정되어야 한다. “정의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1명은 리버럴 민주당, 보수파 의원 10명과 싸워도 이길 수 있는 실력있는 의원이어야 하고, 당은 그런 정치가를 생산해내야 한다”라고.


다섯번째, 비례대표 국회의원들의 4년 활동에, 에너지를 공급할, 정치 연구소, 정책연구소가 강화되지 않으면, 정의당 국회의원실도 리버럴 민주당 의원실, 보수파 의원실처럼, 중소기업 사장님과 직원들로 전락할 것이다.


중앙당 정책실과 의원지원실이 정의당 국회의원들의 활동이 당의 자산으로 남기 위해서는,현재와 같은 의원 활동 양식을, 철저하게 중앙당-지원-연계 시스템으로 변혁되어야 한다.



구준모

January 16

대표는 당원도 아닌 사람들에게 비례 순번을 줄 수 있는 권한을 달라고 하고, 부대표는 권력과 인기만 좇다가 구의원직도 내놓고 탈당해버리고,,, 그리고 비례순번을 놓고 비전도 정책도 없이 세몰이만 시작된 현 상황은 선거제 개편-비례대표 올인 노선에 따라 만들어진 자중지란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의 가장 큰 책임은 심상정 대표에게 있다. 지역과 사회운동이라는 기본을 다시 새겨야 한다. 지금이라도 방향을 틀어야 한다.


정의당의 ‘비례 올인’은 지역 위축을 낳는다 정의당은 21대 총선을 앞두고 당내비례후보 선출선거 경쟁이 한창이다. 지난달 말 패스트트랙 통과 후, 정의당은 국회의석을 크게 늘릴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민주당의 어깃장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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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없는 비례강화, 무너지는 진보정치

정의당의 ‘비례 올인’은 지역 위축을 낳는다 정의당은 21대 총선을 앞두고 당내비례후보 선출선거 경쟁이 한창이다. 지난달 말 패스트트랙 통과 후, 정의당은 국회의석을 크게 늘릴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민주당의 어깃장으...

정의당의 ‘비례 올인’은 지역 위축을 낳는다 정의당은 21대 총선을 앞두고 당내비례후보 선출선거 경쟁이 한창이다. 지난달 말 패스트트랙 통과 후, 정의당은 국회의석을 크게 늘릴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민주당의 어깃장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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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정의당2020. 5. 13. 07:26

Nakjung Kim

February 26 · 


한국진보정당 정책 공부, 정의당 편. 비례대표 후보 2차 정견발표회를 보면서 노트하다.


(내 시청 기준은 4가지다. 


[1] 대중성,소통,공감능력


[2] 정책 이해,실현방법제시 


[3]당성,정당운동 기여도 


[4] 집단 대표성 )



I. 오늘 발표 주제: 국회의원이 된다면 제 1호 입법안 발표.


II. 의미: 5분이라는 시간적 제약이 있었지만, 비례후보자들이 당내 민주주의를 실천하면서, 당원과 유권자들에게 투명하게 정책과 '자격조건(왜 내가 국회의원이 되어야 하는가)'을 발표함. '직업,직능' 대표 부문은 연구할 주제들,입법화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은 유의미함.


III. 후보자 개선점: 37명이 5분 안에 정견발표하는 것은 불충분.

코로나19 긴급상황이라는 악조건이지만, 1차발표,JED발표와 큰 차이가 없는 후보자 정견발표가 많은 편.

(*칭찬: 이 와중에 1차,2차발표와 다르게 준비한 후보들도 있음)


IV. 대표단,선거전략팀 개선점:


 (a)정의당 정치철학과 '청년정치'의제와 접합점이 너무 느슨함. 현재 한국 청년담론,세대론의 내용적 빈곤 반영. 


(b) 특정부문 숫자가 너무 많고, 다른 부문은 부족.


(c) 비례후보는 당 정책과제의 총결정체를 실현하는 것인데, 당 지도부와 정책단의 기획력이 아쉽다. 후보들에게 너무 떠 맡긴 느낌이다.


(d) 특히 1인 1투표제라는 투표방법으로 인해서, '인기투표'에 그칠 확률이 많다. 향후 1인1투표방식은 채택하면 안됨.(이후 평가가 절실히 필요함)


(e) 후보들에 대한 '설계' '디자인'에 대해서, 선본팀에 대한 당의 지원도 필요해 보임. 비례후보 명부작성은 앞으로는 선거 6개월~5개월 전에 끝내는 게 필요해보임. 시간이 너무 촉박함.



V. 현재 대안은 후보자들과 후보 선본이 유투브나 소셜 미디어를 이용해서, 후보들을 잘 알리는 수밖에 없다.


비례대표 후보단을 '하나의 팀'이라고 선포는 했는데, 하나로 꿰뚫는 '일이관지'하는 축이 뭔지 아직은 불투명해보인다.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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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정의당2020. 5. 11. 18:15

정의당에 대한 전우용 교수의 오진과 오해 (메모) 

민주당,통합당의 정의당 비판이 타당하면 수용하고 그래야 한다. 그러나 전우용 교수의 정의당 진단과 평가는 설득력이 결여되어 있다. 


전우용 교수의 페이스북 글 요지는 다음과 같다. 정의당이 2020년 총선에서 경제적 불평등과 같은 '구 좌파 (구 정치)' 주제보다는, 여성,청년,기후정의,동물권과 같은 '신 좌파(신 정치)'로 기울어져, 유권자들이 정의당에 대해 혼란을 겪고 말았다. 21대 국회에서 정의당이 무게감있는 진보정당 역할을 할 지 의문이 든다.


(1) 전우용 역사학자는 서유럽을 보면서, '경제적 불평등, 분배정의, 군사 안보'와 같은 구정치,구좌파 주제가 발전하고 난 다음, 신 정치(뉴레프트 주제들)이 등장한다고 봤다. 그런데 환경운동,녹색연합 운동이 출발한 게 1980년대 말, 90년대 초라는 점을 '역사적으로' 탐구하지 않은 탓에, 전우용 교수는 이러한 '구 정치' 다음 '신 정치'라는 기계적인 이분법에 빠졌다. 


서독의 '녹색당'과 같은 뉴레프트 주제, 환경과 평화 주제가 한국에서도 벌써 30년 넘은 역사를 가지고 있음을 전우용 역사학자는 인식해야 한다. 

기후정의, 코로나 19 위기와 같은 의학의 영역에서도 '불평등'은 존재하고, 구 정치와 신정치는 착종되어 더 복합적인 정치 문제로 등장함을 전우용 역사학자는 인지할 필요가 있다. 


(2) 한국 지성사라고 할까? 문학사, 역사학, 철학, 사회과학 역사에서, 1960년대~1970년대에서유럽의 '신 좌파' 흐름들과 사회적 저항 시를 담은 포크 송, 서구 록 음악을 한국사람들이 수용했다. 


기존 마르크스주의와 소련 사회주의 추종자들과 달리, 미국/서유럽의 노동자계급은 문화적으로 경제적으로 미국 자본주의 체제에 동화되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체제에 포섭되지 않은 '변방인들, 배제당한 사람들, 아웃사이더, 유색 인종, 실업자' 와 반전운동 (베트남 전쟁 반대 등) 선봉에 선 학생들과 청년들이 미국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본 마르쿠제 (Marcuse)의 아이디어도 한국에 소개되었다.


프랑스 앙가주망, 장 폴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철학이나 문학 등도 기존의 구 정치보다는 신 정치 내용을 많이 담고 있다. 찬반을 떠나, 사르트르는 소련 마르크스주의를 '게으른 마르크스주의'로 비판하며, 사상과 언론의 자유를 탄압하는 소련 체제를 격렬히 비난했다. 


1980년 518 광주항쟁 이후, 전부는 아니지만 대다수 한국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은 소련사회주의 교과서와 북한 주체사상 교과서를 반독재 반제국주의 투쟁의 기초 안내서로 받아들였다.


전두환-노태우 군사독재 타도 운동은 실천적으로 진지했고 격렬했으나, 그 이론적 철학적 지적 분위기는 세계사와 동시대 국제정치로부터 동떨어져, 특이하게 고립적이고 폐쇄적이었다. (이 부분은 이후 상술함)


(3) 이러한 실천과 이론의 괴리에도 불구하고, 한국 민주화 운동, 시민운동, 신좌파라고 할 수 있는 생태, 여성 운동 등은 80년대부터 꾸준히 성장해왔다.


그리고 실천적으로도 구정치(구좌파) 의 주체인 노동자, 농민들이 환경오염의 직접적인 피해자이기 때문에, 구좌파와 신좌파의 '공통 분모'는 그 차이에 비해 상당히 크다고 볼 수 있다.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여성+사회주의 = 마르크스주의적 페미니즘, 생태+ 마르크스주의 = 생태 사회주의 (ecosocialism)이라는 융합 좌파 상품이 존재한다고 선전하고자 함이 아니다. 이들 패러다임 간에는 상충, 갈등요소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공통 분모만 강조해 아무도 깰 수 없는 '합금'이라고 과장할 필요도 없다. 


오히려 한국 좌파, 진보정당의 특질은, 70년대 박정희,80년대 전두환 노태우의 '독재정치'와 구별되는 '다원주의적 민주주의' 정신이, 행동과 조직화의 원천이다. 학생과 여성들의 머리카락과 신체를 국가 경찰과 군인이 함부로 깎아버리고, 개인 공간 (personal space)를 동의없이 구타, 처벌하고, 획일적인 이데올로기 (반공, 반북)를 암송하지 않으면, 감옥에 가두는 체제에서, '다원주의와 관용'은 저항의 원동력이 되었다.


70년대~80년대 한국 학생운동은 단지 '반독재 저항 투쟁'만이 아니었고, 기득권과 기성세대 문화와 이데올로기를 거부하는 '세대 간 투쟁'과 문화투쟁도 포함하고 있었다. 

  

한국은 5천만의 인구를 가진 커다란 나라이다. 서유럽의  UK,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규모이다. 진보정당과 좌파정치의 발전경로가 서유럽이나 미국의 그것과 같을 수 없다. 역사에서도 정치와 마찬가지로 국가별로 '비동시성'과 '동시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서유럽이 구정치 먼저 하고 신정치는 나중에 했으니까, 한국도 그럴 것이라고 막연히 대입하는 것은 기계적인 종속적인 사고방식이다.


4. 정의당이 발전하지 못한 이유는, 구정치를 덜 발전시키고, 신정치만 해서가 아니다. 신정치 내용이건, 구정치 내용이건, 그 깊이와 뿌리가 아직 허약하기 때문이다. 진보정당으로서 정의당, 그리고 지난 20년간 진보정당이 노동자 시민들의 기대보다 그 발전 속도가 더딘 이유는, 전우용 교수의 견해와 달리, 다른 100가지 넘는 이유들이 존재한다. 이에 대해서는 따로 서술하겠다.



관련 글 (1) 구 좌파, 신 좌파란? https://bit.ly/3bsRS41


(2) 생태운동과 결합 : 신좌파와 구좌파 공존 https://bit.ly/2LhqHhV 


(3) 노동-생태 공통분모를 찾아라 : https://bit.ly/3bjXA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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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정의당2020. 5. 11. 12:01

기본소득 반대의 기본적 이유들


[번역] 캐나타 온타리오주 반빈곤 운동가 존 클라크의 문제의식


By 레디앙 외신 번역팀(원시)    2020년 05월 06일 03:27 오후




캐나다 온타리오주, 빈곤추방운동가

존 클라크가 기본소득에 비판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캐나다 복지체제에서 기본소득은 오히려 신자유주의적 착취와 복지삭감 긴축정책을 유지 강화할 것이라고 그는 주장해 오고 있다. 그렇다면 그 근거는 무엇인가 ?


존 클라크는 캐나다 토론토에서 30년 넘게 도시빈곤추방운동을 펼치며, 홈리스 보호, 젠트리피케이션 문제 비판, 빈집 점거운동, 공공임대주택자 권리 운동을 조직해 오고 있고, 대학에서도 초빙강사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펼치고 있다.


존 클라크의 문제의식과 논의 주제는 실천가로 평생 살아온 그답게 명료하다. “정부 지원금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왜 도입되었고 어떻게 기능하고 있는가?”이다. 그는 사회복지국가 황금기(1945-1975)에 형성된 잉글랜드 사회복지체제를 몸소 체험했고, 영연방의 하나인 캐나다의 복지제도의 명암을 잘 알고 있다. 필자는 존 클라크와 함께 토론토 시립 공공임대 아파트에 거주하는 시민들의 요구사항을 조사하고 이를 시청에 접수시킨 적이 있다.


특히 캐나다는 한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연금, 실업보험, 장애인복지, 공공교육, 노조권 등 사회복지 프로그램이 신자유주의 이전 시기에는 훨씬 더 나았고, 그 이후에도 나은 편이다. 그럼에도 존 클라크를 비롯한 토론토 좌파들뿐만 아니라 나이 든 시민들은 1990년대 이후 캐나다에도 신자유주의 폭풍이 몰아쳐서, 특히 교육-의료-공공주택 제도가 과거와 비교해 엄청나게 퇴락해 왔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진단에 대해, ‘아직 한국은 캐나다나 과거 잉글랜드에 비해 사회복지 제도가 뒤처진 편이니까, 한국과 캐나다는 상황이 다르다’는 식으로 배타적으로 접근하는 것 대신, 왜 존 클라크는 캐나다 복지국가 상황 속에서 우파건 좌파건 ‘기본소득’에 대해 비판적인가를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쟁점]


▲ 존 클라크는 신자유주의 공격을 꺾을 수 있다고 믿는 기본소득 주창자들의 주장이 오히려 도덕적 해이이고 방향타를 상실한 대응이라고 비판한다. 그렇다면 좌파의 기본소득이 실현되었다 해도 현 체제에 경제 정치적 변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과연 존 클라크 진단이 타당한가 그렇지 않은가 쟁점이 될 것이다.


▲ 캐나다 온타리오의 경우, 우파 정당인 ‘진보적 보수당 PC’ 정치가들 중에서도 기본소득을 제안해오고 있다. 존 클라크가 보기에는 신자유주의 체제는 그대로 유지 심지어 강화되면서, 동시에 ‘현금=기본소득’만 나눠주는 정책은 현 체제와 양립가능하다. 그렇다면 그가 ‘기본소득’ 대신 제안하는 반신자유주의 운동의 내용인 노동자권리, 생활임금, 소득지원을 포함한 사회복지 프로그램의 강화와 ‘기본소득’은 서로 보완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은가? 이것도 쟁점 토론 주제이다.


▲ 존 클라크는 기본소득 재원인 ‘세금’이 결국 노동자들의 세금에서 나온 것인데, 그 세금의 운용과 개혁은 기득권의 대규모 양보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그렇다면 결국 조세제도의 개혁과정 역시 신자유주의 체제의 개혁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게 존 클라크 생각이다. 결국 재분배와 분배를 둘러싼 정치투쟁 영역들의 다변화가 필요하게 될 것이고, 이러한 투쟁과정 속에서 사회복지정책 제도와 법이 노동자들에게 양적으로도 충분하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것이 될 것인가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존 클라크의 기본소득에 대한 비판, 그 주장의 역사적 배경과 전제:


잉글랜드 빈민법 탄생 배경, 농촌의 붕괴로 도시 노동자 탄생했다.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적게 주고, 노동조건이 열악했는데, 이를 개선하는 데는 미흡했다. 왜냐하면 빈민법 자체가 저임금 기반 사회적 구조를 바꾸는 게 목표가 아니라, 저임금 노동력의 공급을 원활하게 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복지국가 소득지원 정책도 본질적으로는 잉글랜드 빈민법과 다르지 않다고 존 클라크는 주장한다. <번역자>





존 클라크 




기본소득을 반대하는 기본적 이유들


(원문 링크)

http://johnclarkeblog.com/node/37


1. 소득 지원이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어떤 기능을 하는가를 고찰해보자.


기본소득을 비롯한 소득지원 정책들을 다시 유행시키자는 제안들을 평가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자본주의는 봉건제 타도로부터 생겨났다. 잉글랜드 농민들은 자기 토지를 빼앗기고 도시로 나가 임금 노동자가 되었다. 그리고 산업예비군인 실업자들이 늘어났고 이로 인해 사회적 저항들이 발생했다. 잉글랜드 빈민법들(the English Poor Laws)은 그러한 사회적 분노 표출을 제어 관리하기 위해 도입되었지만, 잉글랜드 민중들에게 절대적 생존에 필요한 정도 그 이상을 제공해주지 않았다.


그런데다 잉글랜드 빈민법은 그 수혜 대상과 지원 대상 숫자를 가능한 한 줄이려고 했고 지원 조건들도 의도적으로 처벌적 성격이었고, 수혜자들의 자존감을 상실하게 만들었다. 빈민법은 충분한 사회적 지원을 보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굉장히 낮은 임금을 받고 최악의 노동조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산출하는 그 체제는 고스란히 유지되었다. 현재 복지국가의 소득지원 체제도 항상 잉글랜드 빈민법의 본질적 원리와 발상 위에서 형성되고 있다.


2. 1970년대 신자유주의 도래


197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목표는 노동자의 착취를 강화시켜 과거 초창기 자본주의 시대처럼 이윤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임금인상 억제와 저임금 불안정 일자리의 엄청난 증가를 통해 소득지원제도를 체계적으로 점점 더 퇴락시켰다. 이러한 신자유주의 목표를 현실화하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저임금 불안정 일자리로 내 몰린 노동자들로부터 고용주들과의 단체협상 권한을 부여해줄 수 있는 어떤 다른 소득 자원들을 박탈해버리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질서 체제가 더 공격적으로 발전함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도 사회복지 체제를 억압하려는 세력들이 늘어났다.


3. 사회적 힘의 균형 문제


기본소득 제안자들은 이러한 (노동자 임금 억제, 불안정 일자리 증가, 노조 약화) 신자유주의 공세에 타격을 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기본소득 옹호자들이 현재 소득지원 방식은 양적으로 불충분하고 질적으로도 처벌적 성격을 띠고 있는 사실을 올바로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솔직하게 말해서 그들이 제시하는 대안은 ‘신념에 기초하고 있는 명제’일 뿐이다.


사회정책 설계 차원에서 결함이 있어서 이것을 수정하자는 차원이 아니다. 자본주의 이윤 창출이라는 토대 위에서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진 정치적 아젠다가 현실에서 잘 실현되어 오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문제다.


소득지원 제도의 퇴락은 197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시기 동안에 우리가 경험한 정치적 패배들 중의 하나이다. 우리에게 불리한 사회적 권력 균형 때문에 이러한 신자유주의 흐름을 막아내지 못했고, 이것은 우리의 정치적 무능력이었다.


당신이 소득지원 체제의 ‘등록상표’ 라벨을 바꾼다고 해도, 이러한 생각해 볼 문제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듣기에는 기분 나쁠 순 있지만 솔직하고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신자유주의 아젠다의 전략적인 명령을 에둘러 돌아갈 수 있는 어떠한 사회(복지) 정책도 있을 수 없다.


4. 신자유주의 함정이다.


기본소득이 실패한 노력보다 더 나쁘다. 더욱이 기본소득은 신자유주의의 목표 달성에 기여할 수도 있다. 우파들이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불안정 노동력, (자본 이윤창출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쉽게 고용하고 쉽게 해고하는 노동력이 점점 더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본소득 정책이 갖는 의미는 노동자들의 임금을 보충해주는 것은 일반 세금 재원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저소득 노동자의 임금의 원천은 다른 노동자들이 납세한 세금이 되는 것이다. 자본가와 고용주는 정부 보조금을 받게 되고, 이는 다시 노동자들의 저임금 체제를 유지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이런 방식은 노동자의 생활임금 투쟁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노동자들이 최저임금을 인상해달라고 요구해도 정부는 그 요구를 반드시 수용하지 않아도 되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복지예산 삭감과 사유화(privatization 민영화)와 관련된 현안들에 대해서도 공적 서비스, 사회적 자원들은 화폐로 교환되는 상품 대상으로 되어버린다. 사회복지 프로그램과 공공 서비스는 현금과 교환될 것이다.


진보적 기본소득 옹호론자는 이러한 우파식 기본소득이 현실에 존재하지만 진보적 입장은 ‘우파적’ 기본소득과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현실적인 권력관계, 우파와 진보파의 힘 관계를 고려해보자. 기본소득이 어떠한 구체적인 형태로 현실에 자리 잡을지를 결정하는 것은 ‘꿈과 희망’이 아니라, 사회적 권력 균형이다.


노동자를 절망시키고 저임금 노동자를 증가시키는 소득체제를 유지하는 목표는 현실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고, 기본소득이 현실에 뿌리내리지 않은 우회로라는 개념에도 발견된다.


5. 그런데 왜 좌파가 기본소득을 지지하고 있는가?


필자 역시 기본소득을 옹호하는 좌파의 논거들을 경청했고, 자료들을 공부했다. 좌파가 반동적인 구상(기본소득)을 지지하는 것은 신자유주의 시대를 뒤덮어보려는 시도이긴 한데, 도덕적 해이이고 방향을 상실한 방식이다.


생활임금 확보와 공공서비스 향상을 위한 투쟁에 대한 우리 자신감이 점점 더 떨어졌다. 왜냐하면 신자유주의 역풍이 워낙 거셌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안정한 저임금 노동체제를 수용하면서, 조세로부터 임금을 어느 정도 원하는 선까지 채워주자는 기본소득 개념이 등장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사회복지 프로그램과 공공서비스는 더 악화되었다. 그래서 이를 보상하기 위해서 정부의 현금지불(기본소득)이라는 구상이 나온 것이다.


슬프게도, 이것이 합리화된다고 해도, 기본소득은 신자유주의 체제와 화평하게 지내자는 시도에 지나지 않는다. 슬픔의 크기만큼, 또 기본소득은 별 소용없는 정치적 노력이다. 왜냐하면 글로벌 자본주의는 타협할 의사와 관심도 없이 자기 갈 길을 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즉각적으로 행동해야 할 것은 노동자 권리, 생활 임금, 소득 지원을 포함한 강력한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위해 투쟁하는 것이다. 이것은 힘든 투쟁이다. 우리가 이상적인 상황에 놓여있지 않고 이는 엄연한 현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적들의 이해관계를 돕는 사회정책 (기본소득)에 희망을 거는 것은 심각한 잘못이다.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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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정의당2020. 5. 11. 11:52

진보정당 1세대 정의당 김종철


[당원이 라디오] 2020 총선 대변인이자, 비례대표 16번 후보


By 원시/ 정의당 평당원. '당원이 라디오' 운영자  


  2020년 04월 29일 02:50 오후




김종철, 그는 정의당 2020 총선 대변인이자, 16번 비례대표였다.


필자는 그와 인터뷰를 4월 14일 총선 전날 하기로 했다. 김종철은 언론에서는 포스트-386 진보정당 정치가로 소개되지만, 실은 진보정당 1세대 정치가다. 유시민은 이해찬이라는 평민당 의원 보좌관으로 정치에 입문했고, 김종철은 민주노동당이라는 당의 ‘정치가’로 데뷔했다는 차이가 있다. 2006년 서울시장 민주노동당 후보로 출마한 이래, 정몽준, 나경원, 어색하게도 고 노회찬과의 경쟁에서 줄줄이 패배했다. 지난 20년간 김종철의 낙선의 이면지에는 진보정당의 명암과 희로애락이 아로새겨져 있다.


4월 14일 저녁 7시 인터뷰 시각, 김종철의 또 한 번 낙선이 예고되었던 날이다. 그는 정의당 비례대표 16번이었다. 위성정당이 없었더라면 아슬아슬하게 당선도 가능했을 번호 16. 만약 선거법이 제대로 개정되었더라면, 김종철은 지역 후보와 비례 후보 동시에 출마했을 것이다. 동작구 후보로 출마하지 못한 이유는, 지역과 비례 후보를 동시에 등록할 수 있는 독일식 ‘이중등록제’, 일본식 석패율제를 4+1에서 통과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총선 총괄 대변인, 정의당 TV 정책 토론회로 녹초가 된 그에게 선거법 개정과정, 진보정당 20년 정치가로서 김종철, 정의당의 발전 방향에 대해서 물었다. (아래 요약은 실제 인터뷰를 축소시킨 것이고, 순서도 바꿨다)



2006년 민주노동당 서울시장 후보 당시의 모습


1. 진보정당 20년, 김종철, 그에게 진보정당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원시: 아마도 주변에서 민주당 박용진처럼, 정치를 할 것이면 민주당에 가서 하라는 의견을 듣지 않는가 ?


김종철: 예전 같았으면, ‘(진보정당에서 다른 정당으로 옮기는 것을) 뭐하는 거냐?’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에 가서 보수화되지 않는다면 뭐라고 하고 싶진 않다.


그러나 ‘내가 민주당과 같은 곳으로 가지 않는 건’, 정당 정치의 중요성 때문이다. 그 동안 정치를 하면서 내린 결론은, 어느 개인이 기성 정당에서 ‘혼자 뭔가 할 수 있다는 건’ 불가능, 환상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정당 자체가 대중의 무기이다. 이 (진보) 정당을 키우는 것이 지름길이지, 다른 정당으로 가는 건 관심이 없다.


원시: 정의당에 대해서 심상정 개인정당이라는 지적도 있고 그렇지만, 한국 진보정당처럼 그 동안 학생운동, 노동운동 등 사회운동에 기반해서 만들어진 정당은 현재 세계 정치 무대에서도 그렇게 많지 않다. 한국 진보정당이 성공하면 세계사에 남을 것 같은데요?


김종철: 뭐든지 처음에 한번 해보는 게 흥미로운 일이죠.


원시: 주관적인 생각이 아니라, 불가능할 것 같지 않은데요?


김종철: 한국 사회가 워낙 다이나믹한 곳이니까요. 그렇게 되려면 정당 안 정치인들을 어떻게 키우느냐가 중요할 것 같다. 정당이 이론, 사상, 노선을 만들어서 정치인들을 단련시킬 필요가 있다. 또 인간 정치인으로서 그 사람을 오래 버티게 해주려면, 당원과 활동가 구조가 중요하다. 당의 종합적 발전 전략이 필요하다.


원시: 주변 사람들이 ‘김종철 정치가’에 대한 기대 때문에 부담감은 없는가?


김종철: 부담이 있는 게 정치인으로서 좋은 것이다. 토론회 나가는 것 자체가 가장 긴장되고 부담된다. 토론회에 내보는 것 자체가 기대가 있는 것이니까, 부담감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된다.


원시: 프로야구 팀도 선발 투수, 구원투수도 스무 명이 넘지 않느냐 ?


김종철: 사실 팀이 있어야 집권도 가능하다.


원시: 여의도 정치판에서는 다른 정당 같은 경우는 ‘없는 것도 과장해서 개인정치가를 선전한다’, 그에 비해서 김종철은 있는 능력도 제대로 알리지 않는다는 평가가 있다.


김종철: 개인 성격 같기도 하다. ‘내가 대안이 없는데, 막 있는 것처럼 하는 게 (나에게)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정치인을 분류하자면, 지붕이나 창문 같은 정치가 스타일이 아니라, 서까래 주춧돌 같이 ‘밑에서 방어해주는 스타일’에 가깝다. 그런데 정치인은 앞에서 나설 때도 있어야 하는데, (내 스타일이) 애매할 때도 있다.


원시: 그게 오히려 더 장점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김종철: 그런데 이번 총선 총괄 대변인으로 일하면서 다른 젊은 대변인들과 같이 일한 경험이 있다. 참 편하게 일했다. 그런데 그들이 다 알아서 라디오 인터뷰도 하고 논평도 잘 발표했다. 물론 그들이 코로나19와 관련된 경제 문제 같은 것에 익숙치 않는데, 그런 주제에 대해서도 내가 방향을 잡아주고 팩트 등을 지원해주면, 그들이 굉장히 잘 해 냈다.


그런 것을 보면서, 팀이 잘 만들어지면, 내가 뭔가 맡은 역할을 잘 해 낼 것 같다. 그런데 혼자 나가서 북치고 장구치고 하라면 잘 못할 것 같다. (웃음)


원시: 대변인들을 잠시 소개해달라.


김종철: 조성실, 정호진, 강민진, 김창인이다. 나중에 찾아보면 알겠지만, 다른 정당 논평과 비교해서, 내용이 아주 좋았다.


원시: 조성실 후보 같은 경우, 비례대표 정책 발표회를 들어보니까, 독일형 사회복지 모델에 대한 논문 내용들과 많이 유사함을 발견했다.


김종철: ‘정치하는 엄마’ 활동을 했고, 의원 비서관 경험도 있다.


원시: 진보정당 내부에, 서로 다른 (정치) 세대들 간의 협동에 대해서는 오래 전부터 강조를 해왔다. 이를 실천에 옮길 수 있는 계획은 무엇인가?


김종철: 비공개든 공개든 세미나도 많이 하고, 당 정책 노선에 대한 토론회도 더 조직하고, 왁자지껄한 당을 만들고 싶다. 그래야 당원들도 시민들도 정의당에 대해 많이 관심을 가질 것이다. 그런 방향으로 기여를 하고 싶다.


원시: 현 부산시 김석준 교육감으로부터 1명의 정치가를 키워내기 위해서 당원 300명의 후원이 필요하다고 들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김종철: 신입당원이 당의 의무교육 과정을 이수하도록 당 프로그램을 충실하게 만들어야 한다. 현재 정의당 당원들 중에 당 활동에 참여하는 비율은 5~10%이다. 나머지 90% 중에서 60%는 당비만 내고, 그 나머지 30%는 당비도 드문드문 내는 상황이다. 앞으로는 당원들에게 자기 역할을 주고, 소명의식을 갖도록 해야 한다.


원시: 정치가들의 대중 접촉면을 넓히면서 자신감을 높여갔으면 좋겠다.


2. 415 총선, 통합당과 민주당의 위성정당 창당과 정의당 대응


원시: 민주당 위성정당 창당 예견 못했나?


김종철: 당시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 준비하느라, 적극적인 입장 표명이 힘들었다. 솔직이 민주당이 위성정당을 만들 줄은 몰랐다. 그런데 민주당이 더불어시민당을 만들면서, 위기 관리를 아주 잘 했다. 많은 논란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인데, 더불어시민당에 민주당 자당의 후보들을 후순위에 배치하기도 하면서 그러한 잡음들을 줄여 나가는 것을 보면서, 선거를 잘 한다고 느꼈다.


원시: 정의당과 시민단체가 위성정당을 헌법재판소에 제소하기도 하면서 저항운동을 하고 있는데, 이는 시민불복종 차원에서라도 해야 한다고 본다. 총선 이후 선거법 개정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가?


김종철: 민주당이 연동형 자체를 없애자는 입장을 취하지는 못할 것이다. 사실 위성정당을 만들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석패율제를 도입하거나, 비례대표를 내는 당은 지역구 후보를 다 내야 한다는 조항을 만들면 된다. 이러한 단순한 조항도 민주당의 의지가 있어야 가능하다.


원시: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선거법 개정 과정을 보면, 민주당은 개정 의지가 없어 보였다. 김종철 후보가 실제 선거법 협상과정에 참여하면서 본 민주당 태도는 어떠했는가?


김종철: 민주당은 석패율제도에 대해 완강히 반대했다.


원시: 지역-비례 후보 동시 등록하는 이중등록제는 왜 민주당이 반대했는가?


김종철: 이중등록제를 허용하면, 정의당이 지역에서 후보를 많이 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민주당의 지역 후보에게 불리하기 때문에, 민주당이 ‘이중등록제’ 채택을 반대했다.


1+4 협상에 참가한 정당 국회의원들은 ‘석패율제’가 지역구와 비례대표제의 완충장치 역할을 할 수 있는데도, ‘석패율제’에 거의 관심이 없었다. 이번 협상과정에서, 현직 국회의원들이 정치 판세를 잘 읽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들이 자기 지역구가 유지되고, 거기에 출마하면 다들 당선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자기 자신에 대해 과신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원시: 코로나 19 위기와 재난지원금 논의 과정에, 1963년 10월 대선이 떠올랐다. 박정희 공화당 후보가 서울에서 7:3으로 민주당 윤보선 후보에게 졌지만, 전국에서는 15만 표 차이로 당선되었다. 그런데 박정희가 전남에서만 20만표 이상 윤보선에게 이겼다. 63년 그 해 여름 태풍 셜리 때문에 남쪽 지방에 큰 수해를 입었고, 박정희는 미국에서 원조 받은 20만톤 밀가루를 (경상,충청,전라) 수해 피해지역에 무상으로 공급했다. 그런데 이번 코로나19 재난기금 논의가 맨 처음 나왔을 때, 통합당 황교안은 그 제안에 반대하는 것을 보고, 총선은 이미 끝났다고 봤다.


(‘통합당’의 총선 승부가 기울게 된 계기점을 어떻게 봤는가?)


김종철: 사람들이 문재인 정부에 대해서 비판적인데, 반대로 통합당에 대해서도 별로 신뢰를 하지 않는다. 황교안 대표가 카리스마가 없다. 치고 나갈 때는 젊잖게 나가고, 쓸데없는 부분에 화를 내고, 황교안이 개인적으로 인기가 없다. 민주당이 야당 복이 있고, 문재인 대통령이 실수를 잘 하지 않는다. 하지만 코로나19 위기가 없었다면 민주당이 상당히 힘들었을 것이다.


3. 정의당 선거 전략과 당 활성화를 위해 필요한 것은?


원시: 정의당 선거 전략에 대해서, 민주당만 빼고, 위성정당 빼고, 이런 주장들이 있었다. 홍세화 선생도 그런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구호들은 소극적이고 방어적이지, 적극적이지 않다. 과거 민주노동당에 투표하라는 적극적인 독려와는 달리 소극적 방어적이었다.


김종철: 그 지적이 타당하다. 그래서 위성정당을 비판하되, 정의당은 ‘원칙을 지키자’로 정했고, 코로나 19로 피해를 당한 소상공인들을 직접 면담하러 다녔다. 그 후로 정의당에 대한 지지율이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원시: 정의당에 대한 언론사 기자들의 몇 가지 평가들을 들어보면, 당내 토론이 죽었다, 거의 활성화되지 않았다. 의원 중심 당 운영에 그쳤다는 비판이 많다. 노회찬 심상정 차세대를 발굴하고 키우자고 제안한 지도 10년이 훌쩍 넘었다. 앞으로 정의당의 활성화를 위해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김종철: 그것을 위해서는 당 이론, 사상에 대한 관심을 갖는 정파(의견그룹)도 필요할 것 같다. 그리고 당 정책 대회도 열어서 새로운 당내 스타들도 나오도록 해야 한다.


원시: 이번 2020 총선 정의당 <비례대표 tv 토론회>에 참가한 강상구, 김종철에 대한 평가가 좋은 편이다. 그런데 평소에 tv 토론회에 자주 나오지 않는 것 같다.


김종철: 강상구는 정의당 교육연수원장, 김종철은 원내대표 의원 비서실에서 일해서, 토론회에 나갈 기회가 많지 많았다.


원시: 예전에 당내 인터넷tv 등을 만들어서, “제 2의 노회찬 1000명을 만들어야 집권이 가능하다” 이런 제안을 한 적이 있다. 이런 (미디어) 운동을 할 의향은 있는가?


김종철: 많이 있다. 라디오, 유투브 매체가 텍스트보다 영향력이 강하다. 그래서 바쁜 현대인들에게 정보라도 우리 당의 입장을 제대로 전달할 필요가 있다.


원시: 민주노동당 김종철 대변인 시절, ‘김 대변인이 아주 쉽게 정치 해설을 해준다’는 평가 있었는데, 그 동안 꾸준히 누적되었다면 더 좋았을텐데 라는 아쉬움이 남아서, 이런 제안을 다시 한다.


김종철: 이번 비례대표 정책tv 토론회에서 ‘강상구와 제가 좋은 평가를 받은 편이어서’, 당에 꼭 필요한 인식을 많이 남겼다. 이를 바탕으로 뭔가를 더 해볼 생각이다.


원시: 정의당 비례대표 정책 토론회에서, 김종철 후보가 준비해온 정책이 인상적이었다.


예를 들어 충북 제천시가 인구가 17만인데, 서울 강남구와 비교했을 때, 굉장히 많다는 것을 김종철 후보가 준비해와서, “저도 하나 배웠다.”


김종철: 균형 발전에 관심이 많았다. 지방 균형발전을 위해서, 지방에 돈을 많이 내려보낸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구나, 그것을 알게 되었다. 비례대표 정책을 나름대로 준비를 많이 해갔는데, 결과적으로 별로 도움이 못되었다. 당 내부에서 문제점들이 있었다. 선거법이 늦게 통과되면서, 선거 후보 검증 기간이 너무 짧았다.


그런데다 비례대표 후보가 선거인단을 모집하느라 다른 일을 할 여력이 없어서, 정책을 알릴 시간도 없었다. 또한 2월 18일 후보 등록 이후 겨우 12일간 검증기간이었는데, 코로나 19와 겹쳐서 당원들이 비례대표 후보 정책 토론들에 많은 관심을 가지기가 힘들었다. 선거인단을 통한 세몰이 흥행에만 당이 관심이 있었지, 정작 어떤 후보가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자긍심을 높이고, 검증을 높이지 못했다. 당이 평가를 받아야 할 대목이다.


대화 날짜 : 2020년 4월 14일

인터뷰 진행: 정의당 평당원 원시

주제: 김종철 정의당 총선 대변인과 대화

유투브 인터뷰 : 김종철 편. (이전 정종권 인터뷰 편 링크)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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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정의당2020. 5. 11. 11:46



살아남은 진보정당 386,

그들은 과연 새로운 대안인가?

[당원이 라디오] 정의당 386, 정종권을 만나다

By 원시/ <당원이 라디오> 운영자    2020년 04월 15일 01:54 오후









조국 사태를 지나면서, 한국 민주주의 정치에서는 민주당 386세대 이외에, 다른 정치가들은 없는가,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그리고 살아남은 진보정당 386, 그들은 과연 민주당 386과 어떻게 다른가? 2000년 민주노동당이라는 리버럴 민주당과는 다른 진보정당이 출범한 지 20년이 넘었다. 고 노회찬, 심상정은 386세대는 아니다. 그렇다면 진보정당에 그들의 30~40대를 내던진 386들은 지금 어떤 정치를 하고 있고, 국민들에게 어떤 정치적 희망을 보여주고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진보정당 386 정치가를 찾아나서기로 했다. <당원이 라디오> 프로그램의 일환, 그 1번 타자로 정종권 당원과의 대화를 진행했으며 이후에도 이어질 예정이다. 정리는 원시.



날짜: 2020년 4월 5일



인터뷰 진행 및 토론 : 원시 (原始). 인터뷰 대상 : 정종권 정의당 당원


I부. 정종권의 20년 진보정당의 길 



II부. 415 총선 : 통합당, 민주당, 정의당 총선 전략 토론과 총선 예측 링크) 



III부. 김종배 정의당 비난에 대한 정종권 비판 



정의당 당원 정종권



I 부, 정종권의 20년 진보정당의 길



“진보정당 담론과 토론을 생산하기 위해 레디앙 매체에 전념하고 있다. 진보정당에서 팟캐스트, 유튜브 먼저 실천했으나 제도화시켜내지 못했었다. 재정, 인력난에도 김어준-유시민을 넘어설 미디어 기지를 만들어보겠다” – 정종권


원시: 지난 20년간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정의당 당원 활동을 이어 나가고 있다.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위원장, 그리고 진보신당 부대표를 역임했다. 그 이후 정의당 당원이면서 온라인 진보매체 ‘레디앙’ 편집장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왜 레디앙 언론운동을 하게 되었는가?


정종권: 지난 2012년 이후, 8년간 레디앙 편집장을 하며, 진보정당 바깥에서 정의당이 제대로 수행하고 있지 못한 담론 정치, 팟 캐스트, 유투브 등 미디어 정치 활동을 하고 있다. 나름대로 사명감을 가지고 버티고 있는데, 돈, 조직, 사람 등에서 자원이 부족한 편이다. 정의당 지도부가 온라인 공간에서 ‘미디어 정치’의 중요성을 잘 모르고 있어서, 파트너십을 형성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원시: 그런데 사실 팟캐스트, 유투브 등 미디어 정치 분야에서 진보정당, 우리가 더 원조격이지 않는가?


정종권: 팟캐스트 (당원이라디오), 칼라tv 등도 우리가 선구적으로 했었다.


원시: 그런데 왜 그런 미디어 정치가 당내 제도화, 안착화가 되지 않았는가?


정종권: 무지 탓이었다. 그 중요성을 알고는 있었으나, 제도화 대중화시키지는 못했다.


원시: (2008년 광우병 반대 촛불시위 당시) 칼라tv 같은 경우, 저와 조대희 당원이 기획하고, 150명 넘는 자원봉사자 당원들이 참여했었다. 또 당원이라디오 인터넷 팟캐스트도 당원들이 25명 이상 참여하기도 했다.


정종권: 그랬죠. 당시 저도 칼라tv 사무실도 마련해주고 당 차원에서 지원했었다. 진중권, 정태인, 박성훈 당원도 참여했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당시 저도 그런 미디어 사업에 지지 지원해준다는 입장이었지, 그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노회찬 심상정 등 지도부도 마찬가지였다. 무지 탓이었다.


원시: 김어준류 미디어의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정종권: 이명박 박근혜 정권하에서 김어준식의 냉소, 비아냥 등은 속시원함도 있었지만, 민주당이 집권당이 된 이후에는, 적와 아로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고, 진영논리에 빠져버렸다.


원시: 김어준을 포함해서 유투브 정치 방송자의 문제점은, 소크라테스처럼 ‘대화를 통해 진리를 함께 찾아나가는, 진리의 발견’이 아니라, 그냥 ‘정치적 프레임’만 강조하고 있다.


정종권: 그게 진영론이다. 민주당이 야당이고 새누리당 류가 집권당일 때는 권력에 대한 견제, 비판, 조롱의 언어도 필요한데, 집권당이 되었을 때는 그것만 해서는 곤란하다.


원시: 그런데 심상정 대표를 비롯해서 정의당 의원들이 김어준 방송에 많이 출연한다. 어떻게 정의당에 도움이 되나?


정종권: 김어준 방송의 참여 자체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우리의 틀, 프레임, 내용이 있느냐 없느냐이다. 그러나 이것과 별도로, 정의당의 독립적인 방송국, 유투브 활동, 미디어 활동이 필요하다. 민주노총의 경우도, 중요한 사안이 생겼을 때, 민주노총이 우호적인 작은 매체들(레디앙 등)보다는 큰 언론사에 그 내용을 먼저 준다. (진보와 좌파의 독립매체가 있어야 함을 강조)


원시: 이제는 정의당 의원들이 큰 언론사에 출연한다고 해서 정의당 지지율이 상승하는 건 아니다. 중요한 건, 정의당의 정치적 내용 (컨텐츠)이 있느냐이다. 정책 수립과정도, 당 정치가들이 직접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그들 목소리들을 아래로부터 들어야 한다. 2008년 노회찬 심상정 대표에게 제안했던, ‘민생 다이얼’과 대화 같은 팟캐스트를 당에서 직접 운영해야 한다.


정종권: (정책) 생산, 유통, 교환 모두 다 중요하다. 왜냐하면, 김어준, 소셜미디어, 유투브 등을 장악하고 있는 사람들이 정책 생산자보다 더 발언권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의당은 컨텐츠 생산뿐만 아니라, 유통과정도 취약한 편이다. 당 컨텐츠도 대중의 반응을 듣고 힘을 받고 그러는데, 그런 과정이 결여되어 있다. 정의당이 이 점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II 부, 415 총선 정치 토론: 통합당, 민주당과 정의당의 총선 전략 비교




문재인 정부 코로나19 위기 재난, 초기 대응에 문제점도 보였고, 그 이후 좋은 평가를 받곤 있지만, 공공의료강화 정책에는 아직 미흡하다 – 정종권


원시: 미래통합당의 제1당 가능성은 거의 없다.


정종권: 과거에도 통합당은 1당이 될 가능성이 적었는데, 코로나19 위기 이후 더 낮아졌다.


원시: 그런데도 민주당이 엄살을 피우는 이유는 뭔가?


정종권: 통합당 전신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이 2018년에는 10%대였는데,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에 대한 높은 기대, 그리고 그 기대가 일정하게 실망으로 변하면서, 또 조국 사태 이후 통합당 지지율이 올라갔다. 그 이후에 민주당이 다시 공포 마케팅을 시작한 거다.


원시: 코로나19 재난기금이 적긴 하지만, 문재인 정부 시책에 대한 평가가 나쁜 편이 아니다. 영국 보수당 보리스 존슨 총리는 해고 없는 기업에 임금 80%까지 보전해주겠다고 발표했다. 반면 문재인 기재부와 노동부의 재난기금은 과거 선별복지 방식을 그대로 사용했다. (많은 논자들이 전국민에게 재난기금을 보편적으로 나눠주고, 고소득층에 대해서는 연말에 세금으로 환수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정종권: 코로나 19 재난 수습 과정을 우선 좀 살펴보자.


문재인 정부가 올 1월 정도에 ‘다 수습되었다’고 일찍 발표해버렸다. 그 이후에 코로나19 급증하자, 신천지 탓으로 돌리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의 코로나19 때문에, 경제적 피해를 당하는 자영업자, 노동자들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책은 약한 편이다. 아직도 기재부의 시장 논리가 관철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발생한 경제위기에 대한 대책이 과감하지 못하다.


코로나19와 관련한 공공보건의료정책에서도 문재인 정부의 정책적 관점은 문제를 드러냈다. 민주당 비례대표 선정 과정에서 현재 대한의사협회(의협) 사람이 비례대표 1번 후보가 되었다. 민주당 내부에서 보건의료 공공성을 강조하는 정책가를 후보로 내려 했으나, 대한의협에 밀렸다고 한다.


원시: 코로나19 위기 국면에서, 황교안 정치가 낙후되었고 센스가 없다. 제가 최근 1963년 10월 대통령 선거 예를 자주 언급하고 있다. 요즘은 영남은 박정희 전두환-노태우, 호남은 김대중 지지 이렇게 알고 있는데, 63년 대선에서 박정희가 겨우 17만표 (정확히는 15만 6,026표) 차이로 민주당 윤보선 후보를 이겼는데, 전남에서 박정희가 얻은 표가 그 차이를 넘었다 (28만 4912표 차이로 박정희가 윤보선을 앞섬) 이렇게 박정희가 이긴 이유는, 그 해 여름 태풍 셜리 피해 이후, 박정희가 미국에 60만톤 밀가루를 원조무상 요구했다가, 20만톤을 지원받아 영남,호남 피해지역에 무상으로 지원했다. 대선 승리 요인들 중에 하나다.


정종권: 또 전라도 지방에서 윤보선이 박정희를 좌익경력을 폭로했는데, 그게 오히려 역풍을 불러왔다는 설도 있다.


원시: 황교안과 통합당은 박정희를 계승한다고 말은 하면서, 실제로는 코로나 19 재난 지원도 반대하고 있으니 이해가 하지 않는다. 자기 정체성이 뭔지 모르겠다.


원시: 지금 여론조사를 기초해보면, 심지어 서울 수도권, 충청 강원 중부권까지 민주당이 우세하고, 호남은 석권할 것같다. 통합당은 자칫 잘못하면 지역당으로 전락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경북 대구는 이기고, 부울경 다수 승리 전망)


정종권: 2016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부울경에서 8석을 얻는 선전을 했다. 2020년 총선에서 심지어 부울경 8석을 다 잃는다고 가정해도, 호남에서 국민의당에 넘겨준 의석을 다 가져오기 때문에, 민주당이 통합당을 이길 확률이 크다.


위성정당에 대해서는 어떻게 볼 것인가?


정종권: 불과 한달 전만 해도, “미래통합당이 1당 되면 국회의장도 넘어가고 문재인 대통령 탄핵도 추진 될 것이다. 그래서 탄핵을 막기 위해 민주당을 지지해달라”고 했다. 공포 마케팅 수준이었다. 지금은 문재인 탄핵 언급하는 민주당 정치인이 없다. 정치 협잡질에 가깝다.


원시: 정치의 역할이 무엇인가? 불안감을 집단적으로 줄여나가는 게 정치다.


독일사람들이 많이 쓰는 단어지만, ‘앙스트(불안)’, ‘존재의 불안’들에 대해서, 정치란 우리들의 철학적, 지적, 경제적, 문화적 능력을 동원해서, 불안감을 조직적으로 체계적으로 줄여나가는 능력이지 않나?


전두환 노태우 군사정권도 민주화운동을 하면 ‘북한이 쳐들어온다’는 공포, 불안 조성 정치를 했다. 따라서 반제국주의 운동도, 민주화운동도 안된다는 논리였다. 그 전두환 노태우와 싸웠던 민주당 386들이, 지금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정치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정치행태가 전두환 노태우 방식과 똑같지 않는가?


정종권: 흑백논리 맞다. 반대당이 성과가 있으면, 그게 국민에게 재앙이다는 식의 논리이다.


전두환 노태우 군사 정부는 정통성이 없었다. 그래서 학생운동이 무조건 반대했었다. 통합당에 대해 ‘토착왜구’ ‘친일’ ‘재벌’ 등 이런 라테르가 달라졌을 뿐이지, 정치 경쟁자인 통합당을 악마화시키는 정치의 틀을 만들고 유지하고 강화하고 있다.


그래서 모든 논리를 ‘미래통합당이냐 아니냐로 환원시킨다. 저들은 악마고 사악하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과거의 민주-반민주 구도에서 이제는 반통합당이냐 아니냐 식으로 이분법의 정치는 이어지고 있다. 통합당도 마찬가지이기에 통합당, 민주당 모두 서로 적대적 공존을 한다.


원시: 20년, 30년이 흘러, 이제 참 새옹지마같다.


정종권: 정의당과 같은 제3 정당은 민주당과 통합당에 대한 양비론이어야 한다. 물론 필요한 시기에는 협상하기도 하지만, 독립적이라는 게 전제이고 첫째 원칙이다. 돌이켜 평가하면 정의당 내부에서 민주당류와 구별되는 제3세력의 독립성에 대한 자각이 부족했다고 본다.


원시: 위성정당을 이야기하기 전에, 1987년 유월항쟁 이후, 헌법 개정과정, 대선 당시, 대통령 선거법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했었나?


정종권: 당시 대학 1학년이어서 전두환 독재 타도 외치고 길거리에서 데모했었다. 7~8월에는 노동자 연대 투쟁했었다. 그런데 헌법 개정 내용에 대해서는 잘 몰랐고, 2년 3년 지난 후에 87년을 평가하면서 그런 내용들도 살펴보게 되었다.


원시: 87년 당시 프랑스식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제도에 대해서 알고 있었는가? 학생운동권에 나온 자료들을 보면, 결선투표제도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었다.


정종권: 당시 대통령 직선제만 되면 다들 자기(야당 후보들)가 당선된다고 생각했으니까 아마 별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원시: 87년 헌법개정, 대선 탓일까요? 지금도 민주당, 문재인 정부가 ‘선거법’ 개정에 대한 의지가 별로 없었다고 본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정종권: 민주노동당이 2000년 1인1표 제도를 위헌 소송할 때, 당시 민주당은 별로 관심이 없었다. 당시의 선거법 체제에서 이득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2017년 대선 이후에도 선거법 개정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그럴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진보진영에서 끈질지게 요구를 해왔다.


원시: 위성정당에 대해, 민주당원들도 3가지 흐름이 있는 것 같다. 40% 정도는 확고하게 “통합당에게 당할 수 없다”는 입장이고, 20~30% 정도는 “위성정당이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번에는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고, 20~25%정도는 “위성정당은 답이 아니고, 정의당 관점이 옳다”는 입장으로 나뉘는 것같다.


정종권: 민주당은 통합당이 의석을 뺏어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는 생각이다. 40%에 해당하는 민주당 입장은 더불어시민당으로 가고, 두번째 경향은 좀 찜찜하니 열린민주당을 지지하는 경향이 있다. 세번재는 정의당으로 기우는 것 같다.


통합당이 만든 위성정당(한국당)을 비난하면서, 민주당도 똑같이 위성정당을 만드는 똑같은 나쁜 짓을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민주당이 시민당을 만든 이유는 “악마 통합당이 의석을 한 석이라도 가져가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으며 그러한 악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민주당도 통합당이 했던 방식대로 할 수 밖에 없다”는 식으로 스스로 ‘반칙’에 대해 정당화했다.


이런 걸 고려하면, 민주당이 통합당보다 더 나쁘다. 통합당은 ‘우리가 패스트트랙 선거법 개정에서 배제되었다. 그래서 위성정당을 만들어 선거판을 개판으로 만들겠다’는 알리바이라도 있다. 그러나 민주당은 패스트트랙 선거법 개정 주체이면서도, 자기가 만든 법을 스스로 부정하고 있다. 이것은 통합당보다 더 나쁜 정치 행위라고 본다.


또 연동형 비례대표제도를 만들어 소수정당도 배려한다는 노무현 정신도 민주당은 배신했다. 열린민주당은 역시 ‘친박연대’와 같은 가짜 정당이다.





III부. 정의당의 위성정당 참여 반대를 비난한 김종배 MBC 시사평론가에 대한 정종권 비판





김종배 정의당 비난에 대해 정종권은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첫번째는 위성정당 참여 자체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취지를 정면으로 부정하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통합당 반칙 따라 하지 않으면서, 위헌적 위성정당도 피하면서, 연동형 원래 취지인 소수정당 국회 입성을 도울 수 있는 방침이 있다. 이것은 위성정당 창당이 아니라, 민주당이 소수정당에 투표하라고 지지자들에게 호소하면 된다. – 정종권


원시: 김종배 주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김종배는 정의당이 민주당과 선거연합을 통해 ‘비례용 선거연합당’을 만들지 않았던 것을 정의당의 소탐대실이라고 비난한 바 있다. 그리고 정의당이 소수진보정당들과 같이 비례선거연합정당에 들어가서, 소수진보정당의 이익을 관철시키는 맏형 역할을 했어야 했다. 그런데 정의당은 비례용위성정당에 들어가지도 않았고, 소수 진보정당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았다. 세번째는 정의당은 의회정치만 하지 말고, 정의당답게 현장 정치, 아스팔트 정치를 통해서, 사회운동의 직접적인 목소리를 의회에 전달해야 한다.


정종권: 김종배의 정의당 비난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


김종배는 (준)연동형 선거제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비례용 위성정당을 만드는 것 자체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도 도입 취지와 정면으로 충돌하고 그 취지를 파괴 무력화시키는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


정의당이 비례용 선거연합정에 참여하지 않은 이유는, (연동형 선거제도 원칙 때문이지, 정의당 의석숫자를 많이 늘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연동형 선거란, 정당투표율에 기초해서 의석을 배분받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민주당이 소수정당의 비례대표 당선을 지지하는 방식은, 민주당 주도 비례선거연합방식이 아니어도 된다. 민주당이 위성정당을 만들지도 않고, 통합당의 반칙을 똑같이 범하지 않고, 소수진보정당의 비례당선을 돕는 길이 있다.


미래한국당의 편법과 독식을 막기 위해서, 민주당이 비례대표를 내지 않거나, 아니면 소수 진보정당에 투표하라고 독려하는 방식이 그것이다. 민주당이 소수 진보정당(민중당, 녹색당, 정의당 등)을 지지하라고 말하면 된다.


두번째 비난에 대해서는, 소수 진보정당들간의 통합 논의는, 이번 선거와 별도로 일리가 있는 이야기이지만, 지금 총선 국면에서 할 이야기는 아니다. 또한 진보정당 간 통합을 둘러싼 역사가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는 별도 논의가 필요한 사안이다.


원시: 그런데 정의당이 녹색당이나 다른 정당에 통합 제안을 했나요?


정종권: 심상정 대표가 선거 전에 비공식적으로 녹색당 미래당 등에 통합 언급을 했다고 들었다. 그런데 이것은 절차적으로 문제가 많다.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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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정의당2020. 5. 11. 11:41

인터뷰 : 나경채 정의당 광주 광산갑 후보

[당원이 라디오] 정의당 발전 위해 필요한 3가지

By 원시/ 정의당 당원. <당원이 라디오> 운영    2020년 04월 07일 02:26 오후



정의당 당원들이 당원들 스스로에게 묻고 대답하는 라디오 인터뷰 <당원이 라디오>를 운영하고 있는 레디앙 독자 원시님이 정의당 나경채 광주시당 위원장(광주 광산갑 국회의원 후보)과의 대화 내용을 기고 글로 보내와서 게재한다. <당원이 라디오> 유튜브 링크를 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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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 나경채 후보(광주 광산갑 정의당 후보)가 가장 잘 준비했다고 생각하는 공약은 무엇인가?


나경채: 광산구 송정 ktx역 주변에 3일과 8일 5일 장터를 열자. 5일 장터 주변에 차 없는 도로를 만들자. 자가용 없는 거리를 만들고 문화 공연도 하자. 다른 후보들 공약은 주로, 복합환승, 선도투자지역 등 건설개발 사업들이다. 그것 대신 기후위기 시대에 차 없는 도로, 공기 쾌적하고, 보행자 권리를 제안하고 있다. 차 없는 거리 만들기에 대한 주민들 반응이 점차적으로 좋아지고 있다.


원시: 송정역이, 광주 타이거즈 프로야구를 보기 위해서 전국에서 오는 역이 아닌가? 송정역 주변에 5일 장터가 생기면, 그곳이 야구와 문화가 어우러질 수 있겠는데요?


나경채: 서울에 사는 지인에게 전화가 와서 “광주 타이거스 야구 보러 왔다, 나올래” 그런 전화가 오기도 한다. ktx 역에 내려서 5분 안에, 5일 장이 있는 곳이 송정 ktx 역으로 전국에서 거의 유일하다. 광산구 주민들에게 송정역의 의미는, 광주시내 가기 위한 거점 역할이다. 송정역 근처 5일장이 생긴다면, 문화적 경제적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원시: 독일 베를린 교통체계는 에스-반 (S-Bahn), 지하철 (U-Bahn), 버스, 고속열차(ICE) 연계 체계가 좋다. 광주는 어떠한가?


나경채: 대중교통통합공사 설치하자. 철도가 ktx(공기업)와 민간회사 SRT로 분리되어 있는데 하나로 통합해야 한다. 지하철(공기업), 버스 (준)공영, 다 제 각각 분리되어 있다. 정의당은 대중교통통합 시스템을 만들자고 제안해오고 있다.


원시: 광주는 자전거전용 도로가 있는가? (대화 중에 20만 km는 2만 km임, 오류 수정)


나경채: 광주는 서울과 달리 평지가 많다. 자전거 타기 좋은 도시다. 자전거를 이용하다 보면, 동네 상권 활성화에도 도움이 된다. 우리 동네 상점들을 이용하게 된다. 서울의 공공자전거 시스템 이름이 “따릉이”인데, 광주 자전거 공공자전거 2019년 만들었는데, 그 이름이 “타랑께”이다.


2016년 총선과 2020년 총선, 광주 유권자들의 표심은 어떻게 다른가


원시: 2016년 국민의당이 광주에서 8석 전부 석권한 후에, 왜 광주 시민들 바람이 왜 싸늘하게 식었는가?







나경채: 2016년 이전에 광주 민주당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불만이 누적되어 왔다. 광주 유권자들이 민주당이 무능하고 오만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새로운 정당인 안철수와 국민의당에 기회를 준 것이다. 그런데 총선 이후 국민의당과 안철수가 광주 시민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그래서 광주 시민들이 아주 냉정하게 판단하고 있다.


정의당의 경우, 2018 지방선거에서 정의당이 2위였다. 광주시의원은 전체 23석 중에 22석은 민주당, 1석은 정의당이다. 국민의당 대신, 정의당에 대한 광주시민들의 기대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원시: 그럼에도 왜 광주 시민들이 2016년 총선에서 국민의당을 밀어줬듯이, 정의당을 더 확실하게 밀어주지는 않고 있는가?


나경채: 정의당과 민중당으로 나뉘어져 있다. “너희들끼리 분열해 있는데, 너희들이 아직 사랑받을 준비를 못하는 것 아니냐”라는 광주 유권자들의 지적이 있다.


민주노동당이 잘해왔다면, 2016년 국민의당에 대한 광주시민의 지지가 진보정당으로도 올 수 있었다. 단기적으로는 정의당과 민중당 통합이 어려운 점도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준비를 해야겠다.


원시: 정의당과 민중당이 신뢰 구축을 위해 노력을 하고 있는가?


나경채: 민중당 광주 당원이 4천명이고, 정의당은 1천 500명이다. 광주에서 민중당과 정의당과 관계가 전국적으로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나경채 후보는) 2012년 통합진보당 분열과 갈등에 직접 간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민중당과 정의당의 신뢰 형성하는데 기여를 할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있다. 울산 북구에서 민중당 강진희 후보가 정의당 김진영 후보에게 후보 단일화를 양보했다. 만약 울산 북구 김진영 후보가 당선된다면, 민중당과 정의당 화합에 기여를 할 것이다.


원시: 2016년 총선에서 국민의당과 안철수가 광주 8석을 석권한 이후, 우익뿐만 아니라 진보적인 사람들도 “이제 광주 518에 대한 부담, 빚을 덜어내는 느낌이다” 이런 반응들이 있었다. 이런 판단이 광주 유권자들의 민심을 제대로 파악했다고 보는가?


나경채: 광주가 민주·인권·평화 도시인데, “광주라면 이래야 한다”는 레퍼토리에 식상함을 느낀 광주 시민들이 있다. 민주화에 기여했지만, ‘우리는 왜 이렇게 배고픈 거야?’ 큰 공장들이 광주로부터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 삼성전자, 위니아 (세탁기) 등, 금호타이어는 외국회사에 팔려서 그런 민심이 생겨났다.


원시: 민주노동당 때부터 각 지역 유권자 특성을 파악하는 데 실패했다. 광주 유권자 특성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


광주형 일자리, 현재 상황과 이후 어떻게?


원시: 광주형 일자리, 왜 교착국면에 빠졌는가? 앞으로 정의당 해법은 무엇인가?


나경채: 노사민정(노동자+회사+시민+정부)의 대타협안의 결과물이 광주형 일자리였다.


그런데 착공식 이후에, 현대자동차 측이 노동자들의 경영참여 (노동자-사측 공동 경영)안인 ‘노동이사제’를 거부했다. 노동계는 자동차 제조업 노동자들의 임금보다 낮은 방안을 수용했음에도, 현대자동차 기업 측은 노동자-회사 공동결정제도를 수용하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을 수용했지만, 현대자동차측은 ‘노사공동결정제도’를 인정하지 않았다.


균특법 (국가균형발전특별법)에 근거해서, 노사 공동참여가 있어야만 광주형일자리 사업에 ‘국비’를 투입할 수 있다. 정부가 현대차 사측을 설득해서 노동이사제를 수용하도록 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문재인 정부가 아직까지는 나서지 않고 있다. 그래서 나경채와 정의당이 이를 실현시키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또 하나의 문제는, 광주형 일자리 자동차 생산기종의 문제다. 내연기관 자동차 생산이 아니라, 전기 자동차 생산을 해야 한다. 광주는 (수평면) 직달일사량이 전국에서 가장 많은 도시라서, 태양열 발전 에너지 사업을 하기 좋은 곳이다.


원시: 통합당과 민주당의 경제성장율 중심의 경제관, 정치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지 않는가? 1990년대부터 서유럽과 미국 캐나다 등은 연간 성장율이 2~3%였다. 한국 자본주의 구성도 이러한 나라들과 유사해졌는데도, 민주당과 통합당은 성장율에 연연해하고 있다.


나경채: 언제까지 성장만 이야기할 것인가? 경제성장 개념 대신 ‘경제 성숙도’를 중요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원시: 프랑스 드 골 정부 하에서 ‘인간의 조건’ ‘왕도’ 소설로 유명한 앙드레 말로가 문화부 장관을 역임했었다. 그 중점 사업은 파리에 있는 역사적 유물과 건물들을 수리 보수하고, 청소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파리가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었고, 역사적인 도시가 되었다. 광주도 파리와 같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정의당은 총선을 계기로 어떻게 변화하고 발전해야 하나


원시: 광주 정의당 지지율을 어떻게 올릴 것인가?


나경채: 비-민주당 유권자 비중이 30% 정도 된다. 정의당 후보들은 광주에서 이렇게 흩어져 있는 30%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실천하려고 한다. 민주당에 대한 대안적인 사람과 세력이 ‘정의당’임을 알리려고 한다.


특히 민주당의 위성정당들에 투표하는 것은 광주시민들의 자존감을 훼손하는 행위다. 광주가 경제적으로 가난하더라도, 80년 광주항쟁의 도시인데, 민주주의에 대한 자존감을 지키는 길은, 민주당 위성정당에 투표하지 않는 것이다.


정의당에 대한 지지율을 높이면서, 지역 후보들도 그 정당 지지율의 절반 이상을 얻는 게 목표다.


또한 광주 출신 정의당 비례후보가 두 명이다. 3번 강은미, 11번 문정은 후보다. 11번 문정은 후보가 당선되기 위해서 광주 유권자들의 지지가 필요하다. 두 명 국회의원이 탄생하면, 광주에서 민주당과 정의당이 당대당으로 경쟁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는 것을 알려나가려고 한다.


원시: 정의당 발전하기 위해서 필요한 3가지는 무엇인가?


나경채: 첫 번째는 코로나 19 위기 기간에, 정의당 내부에 정책적 혼란이 조금 있었다고 본다. 정의당보다 앞서, 민주당 김경수 지사, 이재명 지사가 재난기본소득을 발표했는데, 정의당이 정책적으로 선수를 뺏겼다고 본다. 위기 시대에 정의당의 정책적 능력이 더 강화되어야 한다.


두 번째, 조국 사태 과정에서 정의당이 교훈을 얻어야 한다. 정의당의 독자적인 독립성, 정체성이 또렷이 부각되지 못했다. 민주당과 통합당과도 타협을 할 때는 해야 한다. 그러나 정의당 독자적인 정체성까지 잃어서는 안 된다. 타협을 하더라도 당의 독립성이 높아야 한다.


세 번째, 정의당은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진보정당이 되어야 한다. 고 노회찬, 심상정 이후 세대를 생략해서는 안된다. 강상구, 신장식, 김종철 후보 역시 고 노회찬 심상정 의원만큼 단련된 정치인들이다. 심상정 대표가 이러한 정치가들을 어려워하거나, 세대 생략을 해서는 안 된다. 세대 생략 시도는 우리 당의 자원을 낭비하는 것이다.


심상정 이후 세대를 고민할 때, 당에서 노회찬 심상정 의원과 고난의 행군을 같이 해온 정치가들을 적재 적소에 배치해야 한다. 청년세대를 발굴하는 것과 동시에 해야 한다.


원시: 나경채 후보가 전국 정의당 당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나경채 : 위성정당 출현 이후, 정의당이 어려움을 겪었지만, 지금은 점차 회복하고 있다.


선거 초반부터 원칙을 지키는 것이 노동자를 지킬 수 있다고 믿었다. 선거 끝까지 이 기조를 지켜나가자.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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