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history)/5공_전두환_1980-8740 518 광주항쟁. 숫자로 보는 518 광주민주화 운동 (중앙일보 보도) 언론보도. 518 광주항쟁 아직도 현재 진행형...숫자로 보는 5.18 민주화 운동 중앙일보입력 2018.05.17 06:30박해리 기자 구독당시 계엄군에 구타 당하는 시민(왼쪽). 당시 전남 도청앞 금남로에서 수많은 군중과 버스에 탑승한 시민들이 계엄군과 대치하고 있다. [연합뉴스]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지 올해로 38년째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5.18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지지 못한 수많은 의혹들이 남아 있다. 아직도 현재 진행형인 5.18 민주화운동을 숫자로 살펴봤다.24세 vs 52세5.18 최초 공식 사망자 고(故) 김경철 씨(왼쪽). 5.18 당시 발포 명령을 거부해 직위 해제 된 후 고문을 당하고 후유증으로 숨을 거둔 고(故) 안병하 경무관 [연합뉴스]5.18의 최초 공식 사망자.. 2024. 11. 6. 이한열 열사 37주기 이한열 37주기. 이한열 37주기 추모식…"민주유공자법 제정 필요" 한 목소리 박지현 기자 2024.07.05 오후 2:30 (광주=뉴스1) 박지현 기자 = 1987년 군사정권에 항거하는 시위 도중 경찰의 최루탄에 맞아 숨진 故 이한열 열사의 37주기 추모식이 광주에서 열렸다. 이한열기념사업회와 광주전남추모연대는 5일 오후 광주 북구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서 '37주기 이한열 추모식'을 거행했다. 추모식에는 유족과 강기정 광주시장, 우상호 전 의원 등 연세대 동문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추모식은 민중의례,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이한열기념사업회 이사장 인사말, 추모사, 내빈 인사, 추모 공연, 유가족 인사, 헌화 순으로 진행됐다. 추모식에 앞서 추모객 30명은 민족민주열사묘역 8묘역를 찾아 .. 2024. 7. 9. 518 광주항쟁 당시 언론보도. 5월 27일 계엄군 광주 도청 장악, 시민군과 총격전. 동아 1면 '광주 계엄군 전격 진입' 제목 518 광주항쟁 당시 언론보도. 5월 27일 계엄군 광주 도청 장악, 시민군과 총격전, 다수 시민군 사망. 5월 27일 계엄군 광주 도청 장악, 시민군과 총격전. 동아 1면 '광주 계엄군 전격 진입' 제목 2024. 5. 22. 518 광주항쟁. 당시 언론보도. 5월 26일. 동아 일보 - 광주사태 9일째 518 광주항쟁. 당시 언론보도. 5월 26일. 동아 일보 2024. 5. 22. 518 광주항쟁 당시 언론보도. 5월 24일. 김재규 사형 동아 1면. 518광주 축소 왜곡 보도. 조선일보 518 광주항쟁 당시 언론보도. 5월 24일. 김재규 사형 동아 1면. 518광주 축소 보도. 사회면 7~8면. 간첩 관련 보도 1면. 조선일보 1면 2024. 5. 22. 518 광주항쟁 당시 언론 - 시위 참여자 목소리는 거의 보도 하지 않음. 1980.5월 23일. 동아 1면 "광주 사태 수습 움직임" 518 광주항쟁 당시 언론 - 시위 참여자 목소리는 거의 보도 하지 않음. 1980.5월 23일. 동아 1면 "광주 사태 수습 움직임" 오인광주... 새질서 찾기 진통 : 2024. 5. 22. 518광주항쟁 당시 언론보도. 5월 22일 동아 1면 "광주 데모 사태 닷새째" 518광주항쟁 당시 언론보도. 5월 22일 동아일보 1면 광주항쟁 일지 보도 2024. 5. 22. 518광주 당시 언론보도. 5월 21일 동아일보 518광주 최초 보도. 518광주 당시 언론보도. 5월 21일 동아일보 518광주 최초 보도. 5월 21일, 동아일보 1면에. "계엄사령부는 지난 18일부터 광주 일원에서 발생한 소요사태가 아직 수습되지 않았다"고 발표.조속히 평온을 회복하겠다고 짧게 발표. 2024. 5. 22. 518광주항쟁 당시 언론보도. 5월 20일 - 광주 뉴스 없어. 동아 1면, 김재규 사형 확정. - 518광주항쟁 당시 언론보도. 5월 20일 5월 20일 동아일보 석간에도 광주 518 뉴스는 전혀 보도되지 않았다. 광주 뉴스 없어. 동아 1면, 김재규 사형 확정. 2024. 5. 22. 518 광주항쟁 당시 언론보도. 보도통제. 1980년 5월 19일 동아일보- 김종필 김대중 연행 보도. 518 광주 뉴스 전무. 518 광주항쟁 당시 언론보도. 보도통제. 1980년 5월 19일 동아일보 김종필 김대중 연행 보도. 518 광주 뉴스 전무. 2024. 5. 22. 1980년 5월 18일 경향신문 1면. 전두환 신군부가 김대중을 '소요', 김종필을 '부정축재'로 체포 1980년 5월 18일 경향신문 1면. 전두환 신군부가 김대중을 '소요', 김종필을 '부정축재'로 체포 2024. 5. 22. 518 광주 항쟁 다룬 영화. 송암동. 2023년 05.17 언론보도 518 광주 항쟁 다룬 영화. 송암동. 2023년 05.17 언론보도 개울가 놀던 11살 겨눈 총구…광주 민간인학살 ‘송암동’ 영화로 ‘송암동’ 이조훈 감독기자 김은형수정 2023-05-17 11:41영화 예고편 갈무리. 훈프로 제공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보통 도청 중심으로 알려져 있죠. 사진이나 영상자료들도 그렇고요. 송암동 민간인 학살 사건은 사진 한장, 비디오 한컷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번 작품을 극영화로 구성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적 이유입니다.” 다큐멘터리 (2020)의 이조훈 감독이 개울가에서 놀던 11살 어린이까지 무차별 학살당했던 광주 ‘송암동 사건’을 조명한 극영화 을 완성했다. 영화는 광주 시내는 피로 물들었지만 아직 고요하고 평화롭던 1980년 5월24일의 광주 .. 2024. 5. 21. 국민의힘 도태우 공천 탈락, 광주 518 역사 왜곡. 대구 촛불행동 국민의힘 당사 앞 시위. 국민의힘 도태우 공천 탈락, 광주 518 역사 왜곡. 왜 이런 왜곡이 아직도 가능한가? ------------------- 도태우의 이력 시민단체, '5.18 망언' 도태우 공천 철회 촉구···도태우, '사과문 SNS 계정' 비공개 전환 김은혜 입력 2024. 3. 13. 14:58 국민의힘이 대구 중남구 선거구에 도태우 후보 공천을 유지하기로 한 가운데 비판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대구 촛불행동은 3월 13일 오전 국민의힘 대구시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비판이 일자 떠밀리듯 한 5줄짜리 짧은 사과문은 말장난에 불과했다."라면서 "정제되지 못한 개인 발언들이라고 의미를 축소했다"고 비판했습니다. 또 "대법원의 일제 강제 동원 배상 판결을 비판한 친일적 역사 인식, 극우성향 사이트의 글을 SNS에 공유하.. 2024. 3. 17. 1212 군사쿠데타 전사자, 정선엽 병장. 1997년 12월 김대중 김영삼의 합의로 전두환 노태우 범죄자들을 사면한 것도 오류다. 김오랑 소령의 이름은 기억하고 있는데, 정선엽 병장의 이름은 정확히 알지 못했다. 전두환 노태우 정호용, 허삼수 허화평 장세동 신군부의 범죄를 더 일찍 단죄하지 못한 게 아쉽다. 1997년 12월 김대중 김영삼의 합의로 전두환 노태우 범죄자들을 사면한 것도 오류다. 언론보도. 12·12' 육군본부 지키다 전사…44년 지나도 여전한 슬픔 최재영 기자 작성 2023.12.12 20:28 오늘(12일)은 12·12 군사 반란이 일어난 지 44년이 되는 날입니다. 당시 반란군에 전세가 기울었는데도 끝까지 맞서다 숨진 군인, 고 김오랑 중령과 고 정선엽 병장을 추모하는 행사가 곳곳에서 열렸는데요. 서울의 봄 영화가 흥행하면서 이들의 마지막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남아 있는 가족들은 여전히 고통을 호소하고 .. 2023. 12. 13. 1212 군사쿠데타 수괴, 광주 시민 학살자, 전두환은 죽어서도 갈 곳이 없다. 파주 11개 시민 단체 전두환 유해 장산리 전두환 유해 안장 결사 반대. 전두환의 유해가 서울 연희동 이순자 자택에 있다. 전두환은 유언으로 북한이 보이는 곳에 묻어달라고 했다. 그런데 문산 장산리 주민들은 전두환 유해를 반대하고 있다. 1212 군사쿠데타 주범, 518 광주민주화 운동 당시, 시민 학살 범죄를 저지른 전두환은 죽어서도 갈 곳이 없다. 전두환 유해가 문산에 웬말이냐. 장산리 전두환 유해안장 결사반대 학살범 전두환은 파주에 오지 마라. 2023. 12. 8. 전두환이 죽었어도 역사에 진실을 남겨야.전두환, 광주 진압 Good Idea 남김. 1980년 5월23일 ‘광주권 충정작전 간 군 지시 및 조치사항’에는 ‘閣下(각하)께서 “Good idea(굿 아이디어) 언론 보도. 광주 518 진상 규명 및 책임자 처벌. 전두환이 죽었더라도, 1980년 518 광주 진실을 알려야 한다. --------------- 5·18조사위원장 “전두환, 하나회 출신들과 별도 지휘·보고체계” 입력 : 2023.10.13 16:36 수정 : 2023.10.13 17:14유새슬 기자 “하나회 출신 부대장들의 부대, 진압 작전 투입” “핵심 측근들, 발포 관련 전씨 주도성·중심성 증언” “아직 중간조사 단계…내년 6월 최종보고서 공개”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 이석우 기자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진압과 발포 책임이 전두환씨에게 있다는 결론에 다다를 것으로 보인다. 조사위는 4년간의 조사 활동을 올해 말 마무리하고 내년 6월 최종 보고서를 공개할.. 2023. 10. 15. 전우원이 광주 518에 대해 사과하는 이유.(이순자가 전우원에게 보낸 카톡) 전우원이 광주 518에 대해 사과하는 이유. 전두환이 광주 518을 왜곡했는데, 이러한 진실은폐가 역사적 사실로 둔갑하는 것을 막고자 한다. 이순자가 전우원에게 보낸 카톡. 너의 기억의 출처는 모두 16년 전 우리집을 떠난 너의 어머니의 것으로부터 온 것인듯 하니 한번 물어보렴. 마약에 손을 대고 해롱데는 것도 모자라 할아버지 얼굴에 먹칠을해? 51.8때 태어나지도 않은 너는 주제넘게 아무데나 나서지 말고 자신에게 떨어진 일이나 잘 처리하도록 해라. 너의 기억의 출처는 모두 16년 전 우리집을 떠난 너의 어머니의 것으로부터 온 것인듯 하니 한번 물어보렴. 마약에 손을 대고 해롱데는 것도 모자라 할아버지 얼굴에 먹칠을해? 51.8때 태어나지도 않은 너는 주제넘게 아무데나 나서지 말고 자신에게 떨어진 일이나.. 2023. 5. 19. 43주년.광주 518 민주화 운동 기념식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2023년 5월 18일. 김수인 학생이 해석하는 광주 518 민주화운동. 이 학생이 말하는 518 광주가 마음에 다가온다. 518 광주 항쟁 주체들을 한국 민주주의 운동의 주인공이 아니라, 단순히 '희생자' '피해자'로 그 의미를 축소시켜서는 안된다. 이렇게 '피해자'로만 해석하는 경향이 생긴 것은, 김대중, 김영삼 등 당당시 전두환과 싸우던 정치가들이 대선을 위해 광주 518을 정치적으로 이용했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에게 보상금과 상장을 주는 것으로 광주 518의 진실이 다 해명된 것으로 착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수인 학생의 말의 의미를 다시 새겨본다. 김수인 (제 12회 전남 청소년 역사 탐구대회 대상 수상자) 인터뷰 "현대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마음가짐은 바로 강렬하고 성숙했던 오월 정신이라고 생각하고, 518 민주화운동 관련 유적지를 찾아가거나 뉴스를 보는 등.. 2023. 5. 18. 윤석열 518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장면, 주먹을 쥐고 부르다. 각 정당 대표들 노래 부르는 방식이 다르다. 뉴스를 보다가 윤석열 대통령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518 기념식장에서 불렀다. 광주 518 민주화 운동을 호남표를 가져오기 위한 하나의 정치전술로, 득표 전술로 이용하는 것을 그만 둬야 한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와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주먹을 쥐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 등 보수인사들은 옆에 사람들과 손을 잡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다. 2023. 5. 18. 마지막 전두환 모습. (한국일보 홍인기 기자) 2021 july 7. 연희동 골목 산책하던 전두환 한국일보 홍인기 기자가 찍은 전두환 2021 july 7. 연희동 골목 산책하던 전두환 재판 출석 대신 연희동 골목 산책하던 전두환 맞닥뜨린 사진기자의 취재수첩 출처 한국일보(hankookilbo.com) 117,114 views Jul 7, 2021 #전두환 #단독 #포착 #단독 #포착 #전두환 사자 명예훼손 혐의를 받는 피고인 전두환(90) 전 대통령이 재판 당일인 5일 재판에 출석하지 않는 대신 여유롭게 집 앞 산책에 나선 모습이 한국일보 카메라에 포착됐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골목을 여유있게 산책하던 모습을 포착한 당시 상황은 어땠을까? https://youtu.be/A2DDyIhyjU4 2023. 4. 17. 조선일보 라면 60년사, 잘못된 제목, 임춘애는 라면을 먹지 않았다. 조선일보 라면 60년 역사 기사야 당연히 한국 언론이라면 보도해야 할 내용이다. 그런데 제목을 '임춘애 헝그리 정신'과 라면을 연결시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1986년 아시안 게임 육상 800 미터, 1500미터, 3000미터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임춘애가 '라면'을 먹고 달렸다는 보도는 오보였다. 전두환 군사독재 시절에나 통용되었던 '헝그리 정신'을 잘못 강조하는데서 비롯된 '오보'다. 임춘애가 스스로 말하길 "삼계탕을 가장 많이 먹었다"고 했다. https://bit.ly/378GFWz 1986년 아시안게임 육상 3관왕, 라면소녀 임춘애 진실, 삼계탕 제일 많이 먹었다. 1.가난한 고등학교 2학년 학생, 임춘애가 라면먹고 뛰었다고 언론에서 보도되었다. 임춘애가 밝힌 진실은? 육상 훈련하면서 제일 많이.. 2023. 4. 15. 이전 1 2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