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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49

윤석열 내란죄와 법의 해석- 한국 민주주의 발전 수준을 비교해야 하지 않은가? 윤석열의 '내란죄'와 전두환-노태우의 '내란죄'를 비교 한국 민주주의 발전 수준을 비교해야 하지 않은가? 윤석열의 '내란죄'와 전두환-노태우의 '내란죄'를 비교하는 글들이 언론에 많이 소개된다.당연히 비교를 해야겠지만, 44년 전과 현재 한국 민주주의 발전수준은 그 격차가 크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전두환이 군대를 동원해 '국회'를 장악한 것과, 윤석열이 국회를 침략한 것이 '동일한 행태'이긴 하다. 그러나 민주주의 발전 수준이 높은 현재 관점에서, 윤석열의 국회침략과 국회의원들과 정치인 체포 계획은 1979년 전두환 쿠데타보다 더 심각하고 위중하다.1979년 1212 군사쿠데타-518광주 학살까지 '내란죄'로 인정하기까지 수많은 투쟁들이 있었고, 엄청난 희생이 있었다. 그러고도 아직까지도 '역사 투쟁'을 벌이고 있긴 하지만, 어느정도 성과를 거뒀다.비유가.. 2024. 12. 11.
윤석열의 실패한 내란, 계엄령 선포. 한국 민주주의의 결함을 점검할 시기. 역사는 단순 반복은 아니다. 육사는 반드시 장태완, 안병하를 가르쳐야 한다. 한국 민주주의 시스템 어떤 부분이 썩어버렸던 것일까? -아시아에서 가장 민주주의 수준이 높은 나라가 한국이다. (미국,유럽 대학의  정치학 교과서에 일본,한국을 그나마 자기들 리그로 인정해준다. 이게 좋든 싫든)  그리고 주변 국가를 보라. 러시아 푸틴 장기집권, 시진핑 진시황제수준, 평양 군주제에 가까운 체제, 유럽 지정학도 아닌 고립된 '육지섬'나라 한국에서, 부족하지만 '다원주의적 민주주의'가 작동하고 있다. 양당 체제의 보수성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도 물론 있다.1980년 518광주 시민들이 전두환 계엄군에 항복하지 않고, 도청에서 싸웠기 때문에, 1212 쿠데타 세력인 전두환-노태우를 '내란죄'로 감옥에 넣을 수 있었다. - 1212 군사쿠데타 전두환과 맞서 싸운 장태완 장군, 그리고 광주시민들에.. 2024. 12. 11.
윤석열이 여인형 방첩사령관에게 정치인 체포 구금하라고 지시. 방첩사 지하 벙커 확인 윤석열은 이승만의 국회의원 폭행, 박정희와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의 국회의원들 협박, 전두환의 김대중 체포와 김영삼 가택 연금을 그대로 흉내냈다. 윤석열도 민주당 국회의원들, 심지어 한동훈 국힘 대표 등 자신의 정적들을 체포 감금하려는 계획도 세웠다. 윤석열은 엄청난 범죄를 계획했고, 법정 최고형을 받아야 한다. 한국 민주주의는 박정희 군사독재, 전두환 1212 군사쿠데타와 518 광주 학살 등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투쟁들을 통해 발전해왔다. 윤석열은 한국 민주주의 시계를 이승만 독재와 박정희, 전두환 군사독재 시절로 되돌리려고 했다.  오늘 국회 국방위에서 밝혀진 사실. 윤석열과 적극적으로 내란을 공모한 여인형 방첩사령관이, 윤석열의 지시를 받고, 국회의원들과 정치인들을 체포해서 방첩사 지하벙커에 감금하.. 2024. 12. 11.
윤석열 내란죄. 대통령제 폐지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윤석열은 왜 국회를 침략했는가? 1961년 516 군사쿠데타, 72년 유신 박정희 '국회 해산권', 1981년 전두환 '국회해산권' 흉내낸 윤석열. 87년 폐지된 대통령의 '국회해산권' 승산도 없는 어리석은 윤석열의 '계엄령 선포'의 목적은 무엇이었는가? 그 의문이 하나씩 풀리고 있다.윤석열은 왜 국회를 침략했는가? 1961년 516 군사쿠데타, 72년 유신 박정희 '국회 해산권', 1981년 전두환 '국회해산권' 흉내낸 윤석열.  윤석열이 노렸던 것은 1987년  6월 항쟁의 성과로  폐지된 대통령의 '국회해산권' 의 복원이었다.  1987년 제 6공화국 헌법에 의거한 '대통령제'는 이제 폐지해야 한다. 대통령이 '계엄령'을 멋대로 선포할 수 있게끔 만들어준 것도 87년 대통령제의 헛점 때문이다.  나는 이동관이 작년 11월 에 '국회해산권'을 대통령에게 돌려주자고 주장했을 때, 그냥 시대착오적 미친 소리에 불과하다고 콧웃음을 쳤다. 그러나 이동관 발언 1년 후, 윤석열이 어설프지만 .. 2024. 12. 8.
국민들이 윤석열의 계엄군에 극도로 분노하는 이유, 518 광주 계엄군 총칼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기 때문. 국민들이 윤석열의 계엄군에 극도로 분노하는 이유, 518 광주 계엄군 총칼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기 때문.  민주주의 역사를 망각한 윤석열의 최후는 참극적 코메디다. 윤석열은 왜 계엄군의 대검달린 총을 잊어버리고, 계엄군을 국회에 침투시켰는가? 윤석열의 두뇌 속에는 역사적 교훈방은 삭제되었다. 대통령의 두뇌 피질에 김건희의 돈과 땅, 사적소유권만이 단단하게 덧칠되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윤석열의 두뇌피질 회로는 새롭게 설계되어, 김건희의 사적소유권 껍데기를 깨려는 사람들은 '반 국가단체 범죄자'로 인식된다. 또한 윤석열은 정적에 대한 병적인 혐오 때문에 광주518 계엄군의 총칼을 잊어버렸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계엄군의 총칼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참다 못해 사람들이 '윤석열 내란수괴 체포하라.. 2024. 12. 7.
윤석열의 위헌적인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회에 출동했던 1공수여단장 이상현의 반성문 제출, 그리고 어떤 무장을 하고서 출동했는가 증언. 1979년 1212 군사쿠데타 당시 박희도가 1공수여단장. 이상현 1공수여단장 반성문 제출.12월 3일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후, 이상현 1공수여단장은 어떤 상황인지 모른 채 국회로 향했다."이게 군사적인 상황인지 테러리스트 상황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국회) 내부로 들어가서, 인원(국회의원)을 밖으로 내보내라는 임무를 받았습니다. 이상현 여단장은 상부로부터 (김용현 전 국방장관) 실탄을 챙기라는 지시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1공수여단 대원들에게 실탄과 공포탄 모두 지급하지 않았습니다. 이거는 테러리스트 상황이 아닐 것이다. 실탄, 공포탄도 들고 가지 말고. 탄약고에 그냥 보관하고 있다가 현장에서 운용 지시하면, 그때 불출해라라고 지시했고, 저만 제가 한 실탄 500여발을 제 차량에다가 우발 상황을 대비해 가지고 왔죠. 작전의 이상함을 간파한 이상현 여단장은.. 2024. 12. 6.
518 광주항쟁. 숫자로 보는 518 광주민주화 운동 (중앙일보 보도) 언론보도.    518 광주항쟁 아직도 현재 진행형...숫자로 보는 5.18 민주화 운동 중앙일보입력 2018.05.17 06:30박해리 기자 구독당시 계엄군에 구타 당하는 시민(왼쪽). 당시 전남 도청앞 금남로에서 수많은 군중과 버스에 탑승한 시민들이 계엄군과 대치하고 있다. [연합뉴스]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지 올해로 38년째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5.18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지지 못한 수많은 의혹들이 남아 있다. 아직도 현재 진행형인 5.18 민주화운동을 숫자로 살펴봤다.24세 vs 52세5.18 최초 공식 사망자 고(故) 김경철 씨(왼쪽). 5.18 당시 발포 명령을 거부해 직위 해제 된 후 고문을 당하고 후유증으로 숨을 거둔 고(故) 안병하 경무관 [연합뉴스]5.18의 최초 공식 사망자.. 2024. 11. 6.
노벨문학상 한강 소설 '소년이온다' 독후감. 소년이온다 (한강 소설) 독후감 1. 아들 동호와 걸었던 광주천변로. 소년 동호는, 엄니, 쩌기 밝은 디는 꽃도 많이 피었구만, 뭐헌다고 캄캄한데로 간가, 쩌쪽으로 가아, 꽃 핀 쪽으로 엄니,이렇게 그늘로 걷던 엄마에게 말했다.‘소년이온다’의 제 6장 ‘꽃 핀 쪽으로’을 먼저 읽어보길 권유합니다. 바쁜 분들이나, 518광주항쟁에 대한 책,다큐멘타리,영화를 어느정도 접한 분들에게는. 그리고 ‘책 내용’이 너무 힘들어서 중간에 관두신 분들도, 6장은 마음을 누그러뜨리면서 읽을 수 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제 6장이 ‘소년이온다’ 중에서 가장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동호 엄마의 심경을 잘 그렸기 때문입니다. ‘동호’는 광주도청 시민군 막내였던 당시 16살 문재학입니다. 소설에서 동호엄마는 세 사람의 죽음을 마.. 2024. 10. 18.
518 광주항쟁. 도청 발포자 - 미 국무부 작성 - 1996년 공개 '체로키' 작성자 로버트 리치. '발포 책임자는 현지 지휘관, 그 위에는 전두환일 가능성' 진술. 아직도 518 광주 항쟁 당시, 광주 도청 앞 계엄군 집단 발포 책임자를 '전두환'이라는 서류증거를 찾고 있다.사건의 정황과 정치적 범죄자는 전두환이지만, 구체적인 서류와 문서를 아직도 찾는 중이다. 518 광주항쟁. 도청 발포자 - 미 국무부 작성 - 1996년 공개 '체로키' 작성자  로버트 리치. '발포 책임자는 현지 지휘관, 그 위에는 전두환일 가능성' 진술.   [단독] 5·18 담긴 美 비밀문건 작성자 "집단발포 명령은…" 입력 2024-05-18 20:07 |옛 전남도청 앞에서 있었던 계엄군의 집단발포. 5·18 진상조사위의 4년에 걸친 조사에서도 이를 누가 명령했는지는 끝내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5·18과 관련해 미국 국무부에서 만들었던 비밀 문건의 실제 작성자를 MBC 취재진이 미국에서 .. 2024. 5. 22.
518 광주항쟁 당시 언론보도. 5월 27일 계엄군 광주 도청 장악, 시민군과 총격전. 동아 1면 '광주 계엄군 전격 진입' 제목 518 광주항쟁 당시 언론보도. 5월 27일 계엄군 광주 도청 장악, 시민군과 총격전, 다수 시민군 사망. 5월 27일 계엄군 광주 도청 장악, 시민군과 총격전. 동아 1면 '광주 계엄군 전격 진입' 제목 2024. 5. 22.
518 광주항쟁. 당시 언론보도. 5월 26일. 동아 일보 - 광주사태 9일째 518 광주항쟁. 당시 언론보도. 5월 26일. 동아 일보 2024. 5. 22.
518 광주항쟁 당시 언론보도. 5월 24일. 김재규 사형 동아 1면. 518광주 축소 왜곡 보도. 조선일보 518 광주항쟁 당시 언론보도. 5월 24일. 김재규 사형 동아 1면. 518광주 축소 보도.  사회면 7~8면. 간첩 관련 보도    1면.           조선일보 1면 2024. 5. 22.
518 광주항쟁 당시 언론 - 시위 참여자 목소리는 거의 보도 하지 않음. 1980.5월 23일. 동아 1면 "광주 사태 수습 움직임" 518 광주항쟁 당시 언론 - 시위 참여자 목소리는 거의 보도 하지 않음. 1980.5월 23일. 동아 1면 "광주 사태 수습 움직임"                 오인광주... 새질서 찾기 진통 : 2024. 5. 22.
518광주항쟁 당시 언론보도. 5월 22일 동아 1면 "광주 데모 사태 닷새째" 518광주항쟁 당시 언론보도. 5월 22일 동아일보 1면 광주항쟁 일지 보도 2024. 5. 22.
518광주 당시 언론보도. 5월 21일 동아일보 518광주 최초 보도. 518광주 당시 언론보도. 5월 21일 동아일보 518광주 최초 보도.   5월 21일, 동아일보 1면에. "계엄사령부는 지난 18일부터 광주 일원에서 발생한 소요사태가  아직 수습되지 않았다"고 발표.조속히 평온을 회복하겠다고 짧게 발표. 2024. 5. 22.
518광주항쟁 당시 언론보도. 5월 20일 - 광주 뉴스 없어. 동아 1면, 김재규 사형 확정. - 518광주항쟁 당시 언론보도. 5월 20일  5월 20일 동아일보 석간에도 광주 518 뉴스는 전혀 보도되지 않았다.   광주 뉴스 없어. 동아 1면, 김재규 사형 확정. 2024. 5. 22.
518 광주항쟁 당시 언론보도. 보도통제. 1980년 5월 19일 동아일보- 김종필 김대중 연행 보도. 518 광주 뉴스 전무. 518 광주항쟁 당시 언론보도. 보도통제. 1980년 5월 19일 동아일보  김종필 김대중 연행 보도. 518 광주 뉴스 전무. 2024. 5. 22.
1980년 5월 18일 경향신문 1면. 전두환 신군부가 김대중을 '소요', 김종필을 '부정축재'로 체포 1980년 5월 18일 경향신문 1면.  전두환 신군부가 김대중을 '소요', 김종필을 '부정축재'로 체포 2024. 5. 22.
중앙일보 최민우 "한동훈식 6.29 선언은 가능한가" 문제점. 629에 상응하는 정치선언이 무엇인가, 조기 대통령 선거, 아니면 '거국 중립내각' 1. 보수 일간지들이 갈지자 행보다. 중앙일보 논설들도 조선일보처럼 '결기'와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다. 그리고 과거 역사와 비교도 어설프다. 중앙일보도 이미 윤석열 정부는 1987년 전두환 호헌조치로 파악하고 있는 것을 보면, 윤정부는 이미 실패했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오로지 국민의힘 총선승리를 위한 지령을 내린다. 2. 백담사를 준비했나? 윤석열-김건희가 전두환-이순자이고, 한동훈이 노태우와 비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중앙일보의 바램은 윤석열이 전두환처럼 '한동훈'에게 권력을 조기에 이양하고 뒷좌석으로 물러서는 것이다. 과연 윤석열이 중앙일보의 말을 들을까? 한동훈식 629 선언이란, 윤석열을 비판하는 모든 정치세력에게 '당근'을 주는 것인데, 그 '타협의 당근'이란 무엇인가? 한동훈과 노태우를.. 2023. 12. 22.
방통위 이동관의 KBS 장악 일지 - 문화일보 기자 박민을 KBS사장으로. 전두환 신군부의 허문도 허삼수 시절로 돌아감 방통위 이동관의 KBS 장악 일지 - 문화일보 기자 박민을 KBS사장으로. 전두환 신군부의 허문도 허삼수 시절로 돌아감. 한상혁 해임 -> 방통위 개편 -> KBS 이사회 개편 -> KBS 김의철 사장 교체 -> 박민 문화일보 기자 KBS 사장 낙하산 한상혁 해임 -> 방통위 개편 -> KBS 이사회 개편 -> KBS 김의철 사장 교체 -> 박민 문화일보 기자 KBS 사장 낙하산 https://youtu.be/RcDveDy_Rbc?si=XnSoj0R4m04CA8EY 국회 통과된 ‘방송3법’ 개정안, 핵심은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편’ 2023.11.09 16:39 입력 김기범 기자 9일 국회 본회의에서 야당 의원들이 표결 결과를 보고 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퇴장했다. 노란봉투법과 방송3법은 이날 야당 단.. 2023. 11. 15.
원희룡이 전두환에게 세배할 때, 전두환 발언과 덕담의 수준. 원희룡은 학생운동시절, 전두환 타도를 외쳤고, 자기 정치의 출발점은 518광주항쟁, 아니 518민주화운동이라고 했다. 원희룡과 같은 사람들은 정치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례인가? 아니면 지극히 드문 사례인가? 10% 내외일까? 많은 사람들이 던지는 질문이고, 아직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 정치적 변절인가, 아니면 사상적 전환, 전향인가, 이런 거창한 이야기 범주가 아니라, 그냥 '생계'형 정치인에 불과한 것인가? 기독교,이슬람 교도였다가 개종하거나 비신자가 되었을 때와 같은 정신적 상황인가, 아니면 다른가? 아니 이러한 종교적 개종이라는 신과의 나와의 독대라는 심오한 뜻보다는, 권력 그 자체에 대한 극진한 선호도라고 할까? 뭐 나름 '우쭐', 혹은 '추앙' , 사회적 인정에 대한 타는 목마름으로, 매일 .. 2023. 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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