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 노트 Notes on the Politics of Korea

고등 시절 두세번 읽은 책들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사마천의 사기다. 사람은 자기가 만든 법 때문에 자기가 다치고 죽기도 한다. 

상앙이 그러한 사례다. 상앙의 군주였던 진나라 효공이 죽자, 상앙의 정적이었던 효공의 아들(공자) '건'은 상앙을 '모반자'로 몰자, 상앙은 변방 '함곡관'까지 도망간다. 거기에 있는 객사 (여관)에 은신하려 했지만, 객사 주인이 말하길 "우리 상군(상앙)의 법에 따라 여권이 없는자를 여관에 머물게 하면 연좌제로 벌을 받는다"고 말하며, 상앙을 손님으로 받지 아니했다. 

상앙 : 商鞅; 기원전  390 – 338  


상앙은 자기가 만든 법 때문에 함곡관에 머물지 못하고, 위나라까지 도망갔다. 


나중에 결국 진나라 군대가 상앙과 그 군대를 정나라에서 패퇴시키고, 상앙을 체포했다.  


진나라 효공의 대를 이은 혜왕은 상앙을 거열형 (車裂刑 dismemberment )에 처했다. (거열형:오마분시: 다섯 수레에 사람의 머리와 사지를 묶고 다섯 필의 말이 그것들을 끌어당기게 하여 사람을 찢어죽이는 형벌)



1. 상앙의 상관은 위나라 재상 공숙좌였다. 공숙좌가 위나라 혜왕에게 그 후계인으로 '상앙'을 추천했다. 그러나 위 혜왕은 거절했다.


2. 상앙(공손 앙)은 진나라 효공의 신하 '경감 (경씨 성을 가진 태감)'의 추천을 받아, 퇴짜를 맞다가 겨우 벼슬 '좌서장'에 오른다. (20등급 중 11등급)


3. 상앙은 구법을 버리고 신법을 만들어 성공한다. 법률 위반시 강력한 처벌을 내린 덕분이다. 10가구를 '십'으로 5가구를 '오'로 짜서 서로 감시하고 고발하도록 한 '연좌제'법이다.


4. 세법 공평부과, 도량형 통일, 왕자들에 대한 강력한 처벌 (나중에 공자 건과의 앙숙이 된 이유)


5. 위나라 공격, 공자 '앙'을 속여, 위나라를 격파시킴. 위나라 양혜왕이 공숙좌의 추천을 무시한 것을 후회함.


6.진나라의 은사인 '조량'이 상앙에게 쓴 조언을 했다. 오고대부 별칭을 가진 '백리해'의 인정 (따뜻하고 온후한)정치를 상앙이 따라 배워야 한다고 조언함.


"백리해는 진나라 재상이 되어, 피곤해도 수레를 앉아서 타지 않았고, 더워도 수레 덮개를 띄우지 않았다. 국도 행차시에도 호위 수레를 거느리지 않았고, 무기를 가진 호위병도 없었다"

"백리해 (오고대부)가 죽자, 진나라 인민들이 눈물을 흘렸고, 아이들도 노래를 부르지 않고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러나 상앙은 조량의 조언을 듣지 않았다.

조량은 상앙에게 경고했다. "진나라 효공이 죽으면, 당신을 체포해 죽이려는 자가 많을 것이다"

조량은 상앙의 정치를 '겁박 정치' '폭력과 위압 정치'로 묘사했다.


조량은 상앙의 '보디 가드' 정치를 이렇게 묘사했다. 수십대의 수레들이 상앙의 수레를 뒤따르고, 창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상앙의 수레를 호위했다.


이러한 보디가드 정치는 백리해의 소박한 정치와 대조되었다.


상앙은 진나라 수상으로서 강력한 인민통치 '법'을 만들고, 이를 실행하기 위해서 왕자들을 본보기로 형벌을 주고, 얼굴에 먹물을 새겨넣는 악독한 처벌을 했다. 백성들은 이러한 처벌을 두려워해 상앙법을 따르고, 이를 어긴자를 고발했다. 하지만 인민들의 마음까지는 상앙이 사로잡지 못했고, 그들의 원성은 자자했다.



사망: 거열형, 오마분시 (다섯말이 머리와 사지를 찢어서 죽임)

#사마천, #사기열전, #상앙,


(The Martyrdom of St. Hippolytus by Dieric Bouts)




참고 서적: 사마천, 상군열전

인터넷 자료:


https://en.wikipedia.org/wiki/Shang_Yang


Shang Yang (Chinese: 商鞅; c. 390 – 338 BCE), also known as Wei Yang (Chinese: 衞鞅) and originally surnamed Gongsun, was a Chinese philosopher and politician. He was a prominent legalist scholar.[1] Born in Wey, Zhou Kingdom,[1] he was a statesman and reformer of the State of Qin during the Warring States period of ancient China. His policies laid the administrative and political foundations that would enable Qin to conquer all of China, uniting the country for the first time and ushering in the Qin dynasty. He and his followers contributed to the Book of Lord Shang, a foundational work of what has modernly been termed Chinese Legalism.[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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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r achtzehnte Brumaire des Louis Bonaparte
MEW 205

루이 보나파르트가 1851년 12월 2일 쿠데타 이후 실제 한 일은.


현실에서는 노동자 협회를 해산시켰다. 그리고 미래에 뭔가 대단한 약속을 해줄 것이라고 했다.

"현실 노동자 협회들의 해산, 그러나 미래의 협회 기적에 대한 거창한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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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전주인이 남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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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merkungen. p. 620
p.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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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kjung Kim


July 12, 2018 · 


(메모)한국 대기업 소유권, 3대 4대 세습 경영은 고려시대 문벌귀족의 토지 독점과 유사하다. 이탈리아 사상가이자 외교-책사 마키아벨리는, 한개의 머리를 가진 군주보다 여러개 머리들을 가진 대중들(people)이 더 현명하다고 말했다. 회사, 공장, 학교 운영도 이런 마키아벨리 주장이 통용되지 말란 법이 있는가? 


- 회사 직원들의 머리들 총합이 삼성 이재용 머리 하나보다, 아시아나 박삼구 머리 하나보다 더 똑똑하고 지혜롭다.

개인소유 기업이 아닌 다른 대안을 찾을 때이다. 과거 20세기 사회주의 경제활동의 오류를 답습하지 않는 자본주의 양식보다 더 민주적이면서 더 효율적이고 더 지속가능한 생산 유통 소비 양식들을 개발해야 한다.



짐 스탠포드가 자본가의 소유 기업과 다른 공공기업, 비영리 기업 10개를 소개했다.


1. 라보 은행 - 네덜란드 협동 은행. 5만 5천명 고용. 청정 에너지 대출. 2008년 금융 공황 당시에도 끄떡없이 버티고 오히려 수익을 산출한 것으로 유명.



2. 메채할리투스 - 핀란드 "숲 행정부"라는 뜻. 국영 기업 3000명 고용. 산림 관광업 주관.



3. 토론토 공동 주택 조합 (하우징 코업) - 캐나다 토론토 시영 기업. 16만 토론토 시민들에게 저렴하게 주택 공급.



4. 스타트 오일. 노르웨이. 국영 석유 회사. 이윤을 공공 사회투자로 사용. 그린하우스 가스 감축 기술 투자.



5. 템아섹 홀딩. 싱가포르.50개 이상 기업을 운영. 싱가포르 국가자본주의 특성. 연간 소득 320억 달러. 싱가포르 경제 발달 주관.



6. 등산 장비 코옵 . 캐나다. 소비자 협동조합. 등산 장비. 야외 스포츠 용품 판매. 친노동 친환경 지향 . (* 내 가방 10년 넘게 쓰고 있음)



7. 몬드라곤 협동조합 . 스페인. (*국내에 많이 서개됨. 최근 비판적 평가도 나오는 중). 150개 제조업 금융 소매업 기업. 8만 노동자.



8.그라민 은행. 방글라데시. 소규모 미시 신용 역할. 저금리로 노동자들에게 대출. 1976년 무하마드 유누스 교수 제안. 800만 이용. 97%가 여성. 전국 2568개 지점 운용. 1억 1천만 달러 규모. 2006년 유누스 노벨상 수상.



9.재건 기업. 아르헨티나. 2001년 경제 위기 이후 파산한 공장들을 노동자들이 인수했다. 200개 기업 1만명 노동자가 일하고 있다.



10. 레가 코옵. 이탈리아. 500만 회원. 25만 노동자 고용 소비협동조합. 협동은행 운영.




출처: 저자. Jim Stanford

제목: Economics for everyone. A short guide to the economics of capitalism. (2008) "모두를 위한 경제학 : 자본주의 경제학에 대한 짧은 소개서" 

P.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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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ndix B:


Part Four : Book Seven


Argot

I.              Its Origin


Les Miserables by Victor Hugo (trans. By Norman Denny, Penguin  1976)

Les Miserables (written in 1862)


 

피그리티아 (게으름)은 정말 나쁜 단어다. 그것은 한 세계, 도둑질을 뜻하는 지하세계 (la pegre)를 포함한다. 그리고 게으름은 배고픔을 의미하는 la Pegrenne인 지옥을 포함한다. 따라서 게으름은 두 아이 엄마다. 한 아이는 도둑질하는 아들이고, 다른 아이는 배고픈 딸이다.


우리는 어디에 와 있는가? ‘은어라는 세계에.

은어란 무엇인가? 그것은 한 민족이자 동시에 관용구 도둑질이다. 민족의 두 가지 요소들인 인민과 언어라는 측면에서 도둑질이다.


34년 전, 이 심각하고 을씨년스러운 역사의 해설자가 도둑과 똑 같은 의도를 품고서  은어를 사용하는 도둑을 한 작품에 등장시켰을 때, 이것은 대중들의 분노와 의분을 일으키며 인기를 누렸다.

뭐라고 ! 은어 !’

그러나 그것은 소매치기와 감옥의 언어이다. 즉 지하세계의 언어이고, 이 사회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것의 언어이다




http://bit.ly/2UC8YY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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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lan Westin, The John Birch Society: "Radical Right" and "Extreme Left" in the Political Context of Post World War II,

(Bell, Daniel. edit. The Radical Right. (Anchor books: New York), 1961. pp.238-268



출처: https://futureplan.tistory.com/entry/미국-극우-단체-존-버치-소사이어티-전두환은-사죄하라물러가라-외친-광주-동산초-학생들 [한국정치 노트 Notes on the Politics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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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우주의 변화에 따라 사람도 변한다. 인간보다 우주가 더 크다. 
우연은 현실이다. 
인간의 의식이 파악한 '우연'이란 얼마나 적은 지식 덩어리인가.

그렇다면 인간 의식은 어디까지 흘러갈 수 있을 것인가?

우리 인간과 지구에서 삶과는 전혀 다른 시간대에도 다른 공간에서도 인간계와 비슷한 일들이 벌어졌다가 사라지기도 했을 것이다.

이러한 미궁은 몸서리치는 공포감과 경각심을 자아낸다. 


Foreword 서문
물고기는 민물에서 왔는가, 아니면 '소금물'에서 왔는가 논쟁중이다.
저자 호머 스미스는 '민물설'의 주창자이고,
R.H Denison 데니슨은 '소금물'설을 주장한다.

Fresh water habitat theory 
Salt-water habitat theory 

1.

"생명체에는 ‘목적’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한 후에, 우주에서도 ‘목적’이 있을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논자들은 인간의 인성이 있으니까 별들과 성운(바깥 우주에 있는 거대한 가스와 먼지 덩어리)을 초월해버리는 ‘인성’도 존재한다고 추정한다. 
난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한다.  

생명체에서 ‘목적’이란 그 분자 구조로부터 비롯된다. 인간에게 ‘인성’도 이와 같다.
그리고 이 두가지 모두 소용돌이치는 물질과 에너지의 분수 속에서 '획'하고 지나가는 일시적인 유형들이다. 이러한 물질과 에너지는 수십 억년 동안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고 빠른 속도로  통과할 수도 없을 정도로 깊은 우주 속으로 은하계를 분출해왔다."
  
"인간은 가장 고등한 척추동물이기 때문에, 다른 척추동물들이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다. 어떤 욕구와 지식을 가지고 있더라도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할 때는, 그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나는 무엇을 하고자 한다 (의지 표명)’
그리고 왜 그것을 하고자 하며 어떻게 하려고 하는가를 알 때, 그는 비로서 자기자신을 철학자로 만든다."


From fish to philosopher -p.224 

There are those who say that the human kidney was created to keep the blood pure, or more precisely, to keep our internal environment in an ideal balanced state.


This I must deny. I grant that the human kidney is a marvelous organ, but I cannot grant that it was purposefully designed to excrete urine or to regulate the composition of the blood or to subserve the physiological welfare of Homo sapiens in any sense.

Rather I contend that the human kidney manufactures the kind of urine that it does, and it maintains the blood in the composition which that fluid has, because this kidney has a certain functional architecture;

And it owes that architecture not to design or foresight or to any plan,
But to the fact that the earth is an unstable sphere with a fragile crust, to the geologic revolutions that for six hundred million years have raised and lowered continents and seas, to the predaceous enemies and heat and cold, and storms and droughts;

To the unending succession of vicissitudes that have driven the mutant vertebrates from sea into fresh water, into desiccated swamps, out upon the dry land, from one habitation to another, perpetually in search of the free and independent life, perpetually failing, for one reason or another, to find it.


There are those who say that they can extrapolate from purpose in the organism to purpose in the cosmos, from personality in man to a personality transcending the stars and nebulae.

생명체에는 ‘목적’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한 후에, 우주에서도 ‘목적’이 있을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논자들은 인간의 인성이 있으니까 별들과 성운(바깥 우주에 있는 거대한 가스와 먼지 덩어리)을 초월해버리는 ‘인성’도 존재한다고 추정한다. 
난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한다.  

This, I must question.
Purpose in the organism issues from its molecular structure, as does personality in man;
And both are transient patterns in the swirling fountain of matter and energy that in a few thousand million years has spewed galaxies in inconceivable numbers and at inconceivable speeds into the impenetrable depths of space.

생명체에서 ‘목적’이란 그 분자 구조로부터 비롯된다. 인간에게 ‘인성’도 이와 같다.
그리고 이 두가지 모두 소용돌이치는 물질과 에너지의 분수 속에서 획하고 지나가는 일시적인 유형들이다. 이러한 물질과 에너지는 수십 억년 동안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고 빠른 속도로  통과할 수도 없을 정도로 깊은 우주 속으로 은하계를 분출해왔다.  

It is scant modesty for man, even if he is the ‘highest vertebrate,’ to presume that he can predicate the cosmic plan on the intensity of his joy or pain, or cement the stars together with even his highest aspirations.

No less than his lowly predecessors, he continues in the search of the free and independent life, for it is in the nature of all life to move into that equilibrium where the totality of desire is balanced against the totality of restraint. 

But because he is the highest vertebrate he can do what no other vertebrate can do: when, out of whatever desire and knowledge may be his, he makes a choice, he can say ‘I will…’
And knowing how and why he says ‘I will ‘ he comes into his own as a philosopher.

인간은 가장 고등한 척추동물이기 때문에, 다른 척추동물들이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다. 어떤 욕구와 지식을 가지고 있더라도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할 때는, 그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나는 무엇을 하고자 한다 (의지 표명)’
그리고 왜 그것을 하고자 하며 어떻게 하려고 하는가를 알 때, 그는 비로서 자기자신을 철학자로 만든다.

































 너무 더워서 너무 건조해서 여름에 잠자거나 쉬는 동물: Estivator
반대로 겨울에 너무 추워서 쉬는 것 Hibernate

Estivating lungfish:

여름에 자는 동물:  (너무 무덥고, 건조한 날씨나 시즌에 잔다)

Estivate:

 

to spend the summer, as at a specific place or in a certain activity.

Zoology . to spend a hot, dry season in an inactive, dormant state, as certain reptiles, snails, insects, and small mammals.

 

 

동면하다: hibernate:

Zoology . to spend the winter in close quarters in a dormant condition, as bears and certain other animals. 

 

Compare estivate.

to withdraw or be in seclusion; retire.

to winter in a place with a milder climate: Each winter finds us hibernating in Flori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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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sen über Feuerbach



 


3


Die materialistische Lehre von der Veränderung der Umstände und der Erziehung vergißt, daß die Umstände von den Menschen verändert und der Erzieher selbst erzogen werden muß. Sie muß daher die Gesellschaft in zwei Teile - von denen der eine über ihr erhaben ist - sondieren.


Das Zusammenfallen des Ändern[s] der Umstände und der menschlichen Tätigkeit oder Selbstveränderung kann nur als revolutionäre Praxis gefaßt und rationell verstanden werden.


 


포이에르바흐에 대한 테제


3번.


:주변상황(환경:조건)의 변화와 교육에 대한 유물론적 입장 (학설)이 잊어버리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그 주변상황이라는 것도 인간에 의해서 변화되는 것이고, 교육자 스스로도 교육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다.


따라서 그 유물론적 입장은 사회를 두 부분으로 분리한다 – 즉, 그 두 부분들 중에 어느 하나가 다른 것에 비해서 우월하게 된다.


 


주변상황의 변화와 인간활동 혹은 자기변화, 이 두가지의 일치는 오직 „혁명적인 실천“으로서 이해되고 또 합리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


 


 


[해석]


 


마르크스가 포이에르바흐에 대해서 비판을 하는데, 인간의 활동/실천을 “객관적으로“ 중요하게 다루지 못했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관념론 Idealism 이 오히려 인간의 감각적, 실천적 측면을 발달시켜왔다.


2010/10/18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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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코뮤니즘이 급속도로 발전해 나가다. 독일 코뮤니즘의 급진전 

Rascher Fortschritt des Kommunismus in Deutschland ( I ) Friedrich Engels, 13. Dezember 1844

......


 Wir hoffen jedoch, daß uns in kurzer Zeit die arbeitenden Klassen unterstützen werden, die immer und überall die Stärke und den Hauptbestandteil der sozialistischen Parteien bilden müssen und die durch Elend, Unterdrückung und Arbeitsmangel wie auch durch die Aufstände in den Industriegebieten Schlesiens und Böhmens[76] aus ihrer Lethargie gerissen worden sind. 


Lassen Sie mich bei dieser Gelegenheit ein Bild von Hübner, einem der besten deutschen Maler, erwähnen, das wirksamer für den Sozialismus agitiert hat als hundert Flugschriften. 


Es zeigt einige schlesische Weber, die einem Fabrikanten gewebtes Leinen bringen, und stellt sehr eindrucksvoll dem kaltherzigen Reichtum auf der einen Seite die verzweifelte Armut auf der anderen gegenüber. 


Der gutgenährte Fabrikant wird mit einem Gesicht, rot und gefühllos wie Erz dargestellt, wie er ein Stück Leinen, das einer Frau gehört, zurückweist;


 die Frau, die keine Möglichkeit sieht, den Stoff zu verkaufen, sinkt in sich zusammen und wird ohnmächtig, umgeben von ihren zwei kleinen Kindern und kaum aufrecht gehalten von einem alten Mann; 


ein Angestellter prüft ein Stück, dessen Eigentümer in schmerzlicher Besorgnis auf das Ergebnis warten; 


ein junger Mann zeigt seiner verzagten Mutter den kärglichen Lohn, den er für seine Arbeit bekommen hat; 


ein alter Mann, ein Mädchen und ein Knabe sitzen auf einer Steinbank und warten, daß sie an die Reihe kommen; 


und zwei Männer, jeder mit einem Packen zurückgewiesenen Stoffes auf dem Rücken, verlassen gerade den Raum, einer von ihnen ballt voll Wut die Faust, während der andere die Hand auf des Nachbarn Arm legt und zum Himmel zeigt, als ob er sagt:


 Sei ruhig, es gibt einen Richter, der ihn strafen wird. 


Diese ganze Szene spielt sich in einem kalt und ungemütlich aussehenden Vorsaal mit Steinfußboden ab; nur der Fabrikant steht auf einem Stück Teppich, während sich auf der anderen Seite des Gemäldes, hinter einer Barriere ein Ausblick in ein luxuriös eingerichtetes Kontor mit herrlichen Gardinen und Spiegeln öffnet, wo einige Angestellte schreiben, unberührt von dem, was hinter ihnen vorgeht, und wo der Sohn des Fabrikanten, ein junger Geck, sich auf die Barriere lehnt, eine Reitgerte in der Hand, eine Zigarre raucht und die unglücklichen Weber kühl betrachtet. 


Dieses Gemälde ist in mehreren Städten Deutschlands ausgestellt worden und hat verständlicherweise so manches Gemüt für soziale Ideen empfänglich gemacht. 


Zur gleichen Zeit hatten wir die Genugtuung, daß der hervorragendste Geschichtsmaler unseres Landes, Karl Lessing, sich zum Sozialismus bekehrte. 


Tatsächlich nimmt der Sozialismus schon jetzt in Deutschland eine zehnmal stärkere Position ein als in England.


 Gerade heute morgen habe ich einen Artikel in der liberalen „Kölnischen Zeitung" gelesen, dessen Verfasser aus verschiedenen Gründen von den Sozialisten angegriffen worden war; 


er verteidigt sich in dem Artikel, und worauf läuft seine Verteidigung hinaus? 

Er bekennt sich selbst zum Sozialismus, mit dem einzigen Unterschied, daß er mit politischen Reformen beginnen möchte, während wir alles auf einmal haben wollen.


 Und diese „Kölnische Zeitung" ist in bezug auf Einfluß und Verbreitung die zweitgrößte Zeitung Deutschlands



(English Translation)


We, however, hope to be in a short time supported by the working classes, who always, and everywhere, must form the strength and body of the Socialist party, and who have been aroused from their lethargy by misery, oppression, and want of employment, as,well as by the manufacturing riots in Silesia and Bohemia.


79 Let me on this occasion mention a painting by one of the best German painters, Hübner, which has made a more effectual Socialist agitation than a hundred pamphlets might have done.


 It represents some Silesian weavers bringing linen cloth to the manufacturer, and contrasts very strikingly cold-hearted wealth on one side, and despairing poverty on the other. 


The well-fed manufacturer is represented with a face as red and unfeeling as brass, rejecting a piece of cloth which belongs to a woman; 


the woman, seeing no chance of selling the cloth, is sinking down and fainting, surrounded by her two little children, and hardly kept up by ar old man; 


a clerk is looking over a piece, the owners of which a e with painful anxiety waiting for the result; 


a young man shows to his desponding mother the scanty wages he has received for his labour; an old man, a girl, and a boy, are sitting on a stone bench, and waiting for their turn; and two men, each with a piece of rejected cloth on his back, are just leaving the room, one of whom is clenching his fist in rage, whilst the other, putting his hand on his neighbour's arm, points up towards heaven, as if saying: 


be quiet, there is a judge to punish him.


 This whole scene is going on in a cold and unhomely-looking lobby, with a stone floor: only the manufacturer stands upon a piece of carpeting; whilst on the other side of the painting, behind a bar, a view is opened into a luxuriously furnished counting-house, with splendid curtains and looking-glasses, where some clerks are writing, undisturbed by what is passing behind them, and where the manufacturer's son, a young, dandy-like gentleman, is leaning over the bar, with a horsewhip in his hand, smoking a cigar, and coolly looking at the distressed weavers. 


The painting has been exhibited in several towns of Germany, and, of course, prepared a good many minds for Social ideas. 


At the same time, we have had the triumph of seeing the first historical painter of this country, Charles Lessing, become a convert to Socialism. 


In fact, Socialism occupies at this moment already a ten times prouder position in Germany than it does in England. 


This very morning, I read an article in a liberal paper, the Cologne Journal,3 the author of which had for some reasons been attacked by the Socialists, and in which article he gives his defence; 


and to what amounts it? He professes himself a Socialist, with the only difference that he wants political reforms to begin with, whilst we want to get all at once



.....




Carl Wilhelm Hübner, Die Schlesischen Weber, 1844 (칼 빌헬름 휩너, 슐레시안 직조공,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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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마르크스의 주장과 명제에 다 동의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가 마르크스주의를 부활시키기 위해서는 마르크스가 진정으로 무엇을 하고자 했는가를 이해해야 한다. 마르크스주의란 한 방법이고, 이론적 사고 체계이며, 동시에 마르크스주의 추종자들에게는 권위를 지닌 원전 총서들이다. 

그런데 이런 마르크스주의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경향 때문에 늘 난관에 봉착했다. 그 경향이란 이런 태도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아 마르크스는 이렇게 주장했어야 했어’라고 자기들이 먼저 결정해 놓고서, 그 다음에 이미 선택된 관점이 옳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마르크스 텍스트의 권위를 들이댔던 경향이다.  

마르크스 사상의 진화적 발전 과정을 깊이 학습함으로써, 우리는 이러한 절충주의의 문제점들이 더 증폭되는 것을 통제해왔다. 그런데 알튀세는 마르크스의 장점이 그 저서들에 있기 보다는,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했어야 했어’라고 자신의 해석을 덧붙일 수 있도록 허용해 준 것에 있다고 봤다. 

하지만 알튀세의 이러한 발견은 위에서 언급한 ‘통제’가 결여되어 있다. 다시말해서 알튀세의 마르크스 해석에는 심층적인 마르크스 사상의 진화에 대한 연구가 결여되어 있다.


Chapter 15.  the structure of capital 자본의 구조 

Moreover the revival of Marxism requires a genuine willingness to see what Marx was trying to do, though this does not imply agreement with all his propositions. Marxism, which is at once a method, a body of theoretical thinking, and collection of texts regarded by its followers as authoritative, has always suffered from the tendency of Marxists to begin by deciding what they think Marx ought to have said, and then to look for textual authority for the chose views.


Such eclecticism has normally been controlled by a serious study of the evolution of Marx’s own thought.  M.Althusser’s discovery that the merit of Marx lies not so much in his own writings, but in allowing Althusser to say what he ought to have said, removes this control.

 

It is to be feared that he will not be the only theorist to replace the real Marx by one of his own construction. Whether the Aluthsserian Marx or other analogous constructs will turn out to be as interesting as the original is , however, quite another question.

1966 (51)

(Eric Hobsbawm, Revolutionaries, (London:Abacus), 1973, 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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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urice Meisner, The Deng  Xiaoping Era: An Inquiry into the fate of Chinese Socialism 1978-1994, (New York: Hill and Wang), 1996,  p.192  등 샤오핑 시대: 1978-1994 중국 사회주의 운명에 대한 연구

The social results of Market Reform :

"Without the industrial revolution that took place during Mao’s time, the economic reformers who rose to prominence with Deng Xiaoping would have found little to reform.p.192

 

(1)   마오쩌둥 집권 시기 이룩한 산업 혁명이 없었더라면, 등샤오핑의 경제개혁가들이 성취할 수 있는 개혁내용들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마오쩌둥의 산업화 정책이 이후 등샤오핑의 중국 경제 개혁의 토대가 되었다.

이는 서방 학자들과 미디어가 마오의 계획경제를 비판하고 등샤오핑의 자본주의 시장경제 도입과 대조시키는 것과는 다른 입장이다.

(2)   메모

1949년 중국 정부 수립 당시, 중국 제조업 규모는 벨기에 보다 적었고, 생산량도 벨기에의 5분의 1 정도였다. 1970년대 중반에 이르러 중국은 세계 6대 산업국가로 등극했다. 마오쩌둥 집권 시기 (1949-1976) 중국의 산업규모는 30배 증가했다.

1 5개년 계획 (1953-1957)은 매년  18% 성장했다.

문화혁명 기간 (1966-1976)에도 연간 10% 경제성장을 달성했다.

 

(3)   P.191 각주 (7)

독일 경제성장율 33% (1인당 17%) (1880-1914)

일본 경제성장율 43% (1인당 28%) (1874-1929)

소련 경제성장율 54% (1인당 44%) (1928-1958)

중국 경제성장율 64% (1인당 34%) (1952-1972)

자료 출처: Data drawn from Simon Kuznets, Economic Growth of Nations: Total Output and Production Structure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71)

 

 (4) 농업 정책 실천이 어렵다. 이론과 실제 차이. 

마오쩌둥은 소련 스탈린의 농업 정책을 비판했지만, 정작 중국의 농업도 제조업 발달과 비교해서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1958년 마오는 스탈린 산업정책은 농업을 희생시키고 도시 산업화를 달성했다고 비판했다. "연못에 있는 물고기를 잡느라, 연못 물을 다 빼 버렸다"고 비난했다.


중국의 현실은 어떠했는가?

"1949-1978 기간 동안에, 중화학은 90배, 경공업은 20배 성장했으나, 농업은 단지 2.4배 성장에 그쳤다. 

그런데다 중화학 분야 발전은 농업이나 경공업의 기술적 변화의 필요에 기여하는 방향보다는 중화학 산업 그 자체 필요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이뤄졌다.  이러한 산업 부문간 불균형 발달의 원인은 중국 정부의 투자 정책에서 찾아볼 수 있다. " 

"Yet the advice was not heeded in the actual world of Maoist China. Over the years 1949-78, the gross output of heavy industry increased 90-fold whereas light industry increased 20-fold and agriculture only 2.4-fold. 

Moreover, the heavy industrial sector developed in a manner that tended to serve the needs of heavy industry itself rather than the needs for the technical transformation of agriculture or the development of light industry. 

These imbalances were partly the result of state investment policies.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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