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철학2021. 7. 2. 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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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그냥 운동권입니다.  (부제: 스틸 러빙 유)

현재 청년담론은 가혹한 현금 채찍으로 귀결될 것이다.

  

운동권의 본질은 새 얼굴 발굴이었다. 프로야구 신인선발보다, 신동가수 발견보다 운동권의 정치적 우정을 목표로 한 새 얼굴과 새 몸에 대한 갈구는 더 컸다.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도,미래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이상과 실천능력이 더 커지면 커질수록 더 갈구는 ‘더 배고플’ 것이다.

 

운동권의 두번째 본질은 후배를 독립적이고 자율적 사고의 주체로 간주하고, 그들의 창의적 실천의 원동력인 자유정신을 적극적으로 현실화하는 조직을 만드는데 있다. 

조인성의 ‘비열한 거리’ 조폭 조직, 우랑우탄 조카가 힘이 세져 삼촌 대가리를 돌로 치는 세계와 달라야 하다. 윗사람이 ‘지위’를 주고, 아랫사람이 명령에 복종하는 패거리가 운동권의 본질이 아니다. 

자유를 향한 독립정신과 창의적 실천을 위한 공동학습과 토론이 운동권의 본질이다. 실천,학습,토론을 프로야구선수보다 더 지독하게 연습해야 하는 숙명이 운동권의 정체성이다.

 

이런 기초적인 운동권의 ‘가,나,다’를 다시 말하는 것도 씁쓸하다. 리버럴 민주당 586들은 1998년 김대중 정부 이후 본격적으로 ‘젊은 피’로 수혈되었다. 2011년 박근혜가 수혈한 젊은 피 ‘이준석’도 민주당 젊은 피와 본질적으로 같다.

 

1998년 이후 23년간, 민주당 586들은 ‘민주주의’를 공고화(consolidation)한 게 아니라, 국회의원직을 ‘공고화’, 콘크리트쳤다. ‘새로운 얼굴’ 발굴은 안중에도 없었다. 왜냐하면 운동권일 때는, 백골단 전경에게 같이 맞을 수 있는 ‘후배들’이 필요했지만, 이제 맞을 일이 없기 때문이다.

 

2000년 민주노동당 이래, 현재 정의당까지, 국힘과 민주당과 다를까? 2000년부터 2004년까지는 새 얼굴 발굴에 박차를 가했다. 국회의원 0석에다 너무 절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4년 이후, 2012년 통진당사태까지 진보정당들도 민주당과 차별점이 흐려졌고, 그 정치적 패배주의 문화는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운동권에게 ‘의무’였던 새 얼굴의 발굴과 그 정치적 자율성의 확장, 이런 정치적 임무를 사보타지하거나 자기지위 확보보다 부차시했던 자들이, 부랴부랴 ‘청년 정치’를 부르짖는다 하여, 그게 성공할 리는 없다.

 

그냥 매년 매계절 매달 매일, 한 사람이라도 당원 1명이라도 절실하게 대하는 게, 그게 운동권이고, 스틸 러빙 유,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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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철학2021. 6. 29.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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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좌파는 ‘평등 equality’만 외치고, ‘자유 freedom’는 추구하지 않는다라는 잘못된 사고방식을 버려야 한다. 진보정당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이념은 ‘자유’이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이윤추구의 ‘자유’가 아니라, 8시간 일하는 사람들이 일터, 집터, 놀이터, 쉼터 등 자기 삶의 공간에서 공적 행복을 달성하기 위해 스스로 계획하고 공동체 구성원들과 협력하며 실천하는 ‘독립적 자율적 의식’이 자유다. 이것이 정치적 좌파가 추구하는 자유이다.

 

윤석열 대선 후보가 말한 ‘자유 민주주의’는 리버럴 민주주의 (Liberal Democracy) 이다. 한국 헌법에서 ‘자유 민주주의’ 개념은 ‘리버럴 민주주의’가 아니다. 헌법의 ‘자유’ 개념은 국힘 보수파, 민주당 리버럴 이외에도 사회주의 지향의 ‘자유’ 개념, 다시 말해서 생산수단과 기술혁명의 소유권에 대해 노동자와 공동체구성원의 목적의식적인 권한을 현존체제보다 더 강화하자는 맥락에서 ‘노동자의 자유’를 의미할 수도 있다.

 

윤석열의 자유 개념은 불명료하다. 다만  ‘정부의 권력 한계를 그어주는 것이 자유의 역할이자 개념이라고 말한 것으로 보아, 그의 ‘자유’ 개념은 민주당도 한국 진보정당도 다 동의하는 ‘정치적 자유’ 개념을 포함하고, 더 특징적인 것은 ‘개인 소유권’에 대한 강조로도 보인다. 윤석열은 자유 개념을 모호하게 말한 셈이다.

 

한국의 ‘자유’개념들 중에 가장 잘 알려진 단어는 박정희,전두환,노태우 군사독재의 ‘저항’과 ‘투쟁’을 통해 쟁취된 ‘정치적 자유’ 개념이다. 그러나 1987년 6월 항쟁은 ‘경제 생산수단,유통, 소비수단’에 대한 소유권의 민주화’를 실천하지는 못했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 하에서도 그 경제민주화는 좌초되었고, 수많은 핑계를 대며, 결국 선거용으로 퇴락했다. 서울 등 도시 공간에서 ‘주택’의 소유권 중심 정책은 보수당과 차별성도 거의 없었다.

 

윤석열은 1) 민주주의는 자유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2) 자유는 정부의 권력 한계를 그어주는 것이다. 정치학 좌우파 교과서들에 따르면, 윤석열의 위와 같은 자유와 정부 역할은, 사회복지국가 개념이나 사회주의 이전에 나온 고전적인 리버럴리스트의 ‘야경 국가 nightwatchman state’ 개념에 가깝다. 윤석열의 ‘자유’는 개인의 사적 소유권을 뜻하고, 국가는 개인의 사유 재산을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리버럴리스트의 신조라고 해석된다.

 

역설적이게도 ‘야경 국가 - 나핫베히터슈탓트 (Nachtwächterstaat)’ 단어는 칼 마르크스의 경쟁자이자 협력자이기도 했던 독일 사회주의자 라살레가 썼던 표현이었다. 라살레는 부르주아 리버럴리스트의 ‘적은 정부, 제한된 역할만 하는 정부’, 즉 부르주아 정부가 경찰,군대,법원과 같은 사유재산 지킴이 역할 정도에 그친다는 것을 비판했다.

 

물론 윤석열은 성장과 복지 두가지를 동시에 달성하는 ‘지속가능한 성장’ 개념을 주창하면서, 고전적 리버럴리스트나 신자유주의주의자의 ‘적은 정부론’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라는 ‘빠져나갈’ 통로는 만들어놨다.

 

윤석열은 ‘자유’ 개념은 앞으로도 모호함의 벽에 부딪힐 것이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오류와 자기모순은 명확하지만, 그리고 조국-윤석열-추미애 드라마의 실패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윤석열의 ‘자유’ 개념이나 ‘민주주의’ 개념의 모호함이 면책되지 않는다.

 

윤석열은 ‘나의 자유’개념은 대한민국 헌법의 ‘자유’ 개념과 같다고 항변할 지 모르지만, 누구의 ‘자유’인지, 명료하게 밝히지도 않았고, ‘자유’ 실현을 위한 정책의 기초적인 뼈대도 설명하지 않았다.

 

예를들어서, 노동자의 ‘자유’, 비정규직 청년 여성의 자유, 성소수자의 자유, 한국에서 피부색깔이 다른 외국 노동자와 이주 결혼자의 자유, 사투리 쓴다고 차별받는 지역주민의 자유 등, 구체적인 정치적 맥락에서 ‘자유’ 개념을 윤석열은 거의 말하지 않았다.

 

얼핏 들으면, 1970년대 박정희의 ‘자유 수호’와 차이점도 없어 보인다. 윤석열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인정하고, 사실상 윤석열의 주장은 김대중 대통령 정치노선과 유사해보이기 때문에, 아마 윤석열은 ‘반공 자유’ 개념이 자기 자유개념은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오늘 윤석열은 노동자와 여성의 자유보다는 사장님 회장님의 ‘이윤추구’ 보장에 혼신의 힘을 다 해온 국민의힘의 가치와 자신의 가치가 유사하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윤석열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고려했을 때는, 윤석열의 자유 개념은 앞으로도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오락가락 애매모함을 반복할 것으로 보인다.

 

 

(1890년. 월터 크레인. 노동자 메이 데이. 세계의 노동자에게 헌정. 맨 위 중앙에 '자유 Freedom',

우애 Fraternity, 그리고 평등 equality 단어가 보인다. 세계 노동자의 자유, 우애와 연대, 평등을 위한

노동자 메이 데이다) 

 

 

 

 

 

 

1926년 메이 데이. 월터 크레인의 그림이 사용되었다. 제목을 직역하면, "협력하는 다같이 잘 사는 나라"이다.  노동자를 위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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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철학2021. 5. 15.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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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라이트인 황경식 교수는 존 롤즈의 '정의론'을 가르쳤다. 자기 모순이다.

 

[문화]    게재 일자 : 2011년 01월 20일(木)

 

한국인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철학자’ 물으니…

 

소크라테스-공자-율곡 이이 꼽았다 

 

우리 국민은 가장 먼저 생각나는 우리나라 철학자로 ‘율곡 이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동양 철학자는 ‘공자’, 가장 먼저 생각나는 서양 철학자로는 ‘소크라테스’를 꼽았다.

 

이같은 결과는 한국갤럽이 ‘철학’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자료와 철학 교수 4명의 해석을 곁들인 국내 최초의 철학탐구서 ‘한국인의 철학’에 소개됐다.

 

한국갤럽은 2009년 12월부터 2010년 1월까지 전국 만 19세이상 남녀 1503명을 개별 인터뷰해 국내 최초로 ‘철학에 대한 우리 국민의 여론조사를 실시했으며 이를 토대로 철학교수 4명의 해석을 대담 형식으로 재구성해 1년여 만에 책으로 내놓았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우리나라 철학자로는 ‘율곡 이이’와 ‘도올 김용옥’이 각각 7%, 그 다음은 ‘퇴계 이황’과 ‘다산 정약용’이 각각 5%였다.

 

하지만 우리 국민 76%는 생각나는 철학자가 ‘없다’고 응답했다.‘우리나라 철학자들의 부끄러운 성적표’는 서양과 동양 철학자들에 대한 응답과 비교된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서양 철학자로 ‘소크라테스’가 41%로 압도적이었고, ‘아리스토텔레스’(15%), ‘플라톤’(6%), ‘칸트’(5%), ‘데카르트’(2%), ‘니체’(2%)순이었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동양 철학자는 ‘공자’(46%)와 ‘맹자’(33%)를 합쳐 79%였고 ‘노자’(5%), ‘순자’(2%), ‘간디’(2%)순이었다.

 

이태수(철학과) 서울대 교수는 “우리 철학이 조선시대 이후부터 대학이란 울타리 안에만 머물렀다는 점을 아프게 지적하는 결과이고 오늘을 사는 철학자들의 부끄러운 성적표”라며 “소크라테스가 한국인의 뇌리에 깊이 각인된 것은 일본식 서양철학 교육의 흔적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황 교수는 “소크라테스를 철학의 아버지라고 하고 예수·석가·공자 등 다른 성인과 다른 점은 소크라테스가 어떤 질문에 대한 정답을 주는 대신 발상의 전환과 지적 자극을 통해 과제를 주었는데 이것이 철학의 본질이다”고 설명했다.

 

‘철학’은 예나 지금이나 ‘배고픈 학문, 가난한 전공’이라는 고정관념도 여전했다. 자녀나 가족 중에서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겠다고 할 경우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물은 결과 ‘지원하겠다’는 응답자는 10%에 불과했고, ‘말리겠다’는 반대 의향자는 33%로 철학 전공에 대한 사회의 낮은 기대 수준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우리 국민은 또 철학하면 가장 먼저 ‘점’을 떠올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철학’하면 무엇이 떠오르는지 물은 결과(2개 중복응답) 응답자의 21%가 ‘점·운세·관상 등 점과 관련된 말’을 떠올렸다.

 

그 다음으로 ‘어렵고 재미없다’(20%)였고 ‘진리, 가치관 등 철학적 관념’(16%), ‘공자 등 철학자’(15%)순이었다.

 

‘철학=점’이라는 응답이 많이 나온 데 대해 황경식(철학과) 서울대 교수는 “우리나라 ‘철학’이 가시화된 예가 유일하게 ‘철학관’이기에 일반인에게 철학에 대한 오해가 생긴 것”이라고 분석했다.

 

황 교수는 “과거 우리 사회 점술은 일반인에게 삶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카운슬러 역할도 했다”며 “미래에 대한 다양한 선택 가능성을 제공해 주제자의 결단을 묻는다는 점에서 미래가 이미 확정된 것으로 보는 다른 나라의 점술과 달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특히 우리 사회 도덕성 수준을 묻는 질문에 ‘매우 높다’는 응답은 단 1%, ‘높은 편’ 26%로 우리 사회 도덕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비율은 27%에 불과했다.

 

반면 ‘낮은 편’은 58%, ‘아주 낮다’는 11%로 부정적 평가가 69%였다. 도덕성을 낮게 평가한 응답자 1033명에게 이유를 물은 결과 ‘국민 개개인의 이기주의’(35%)와 ‘지도자들의 부정부패’(34%)가 69%로 국민과 국가지도자 모두에 책임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정충신기자 csju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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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철학2021. 5. 14.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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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586들의 정치가 노무현 시대에 한번 망하고, 문재인 시대에도 또 망하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들 중에, 

한가지를 언급하자면, 죽음의 시대적 가치에 대해서, 바꿔 말하면, 삶의 의미와 행복에 대해서 그 민주당 586들은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주당 586들의 행복관이 정치 실천에서 드러나지 않았다. 

 

진보정당을 지지해온 나와 진보정당 586들 역시 큰 범위에서는 이러한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지난 20년의 세월, 관성과 타성에 찌든 정치를 타파할 때이다.

 

 

돈은 왜 언급하지 않았을까 ? 

 

돈이 있어야 행복하고, 남을 도와줄 수도 있고, 사회적으로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들 하지 않은가?  인간에게 부여된 실제 생명의 시간, 그 시간을 어떻게 무슨 내용으로 채워야 하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답변을 지금까지 죽어간 모든 인간이 하고자 했을 것이다. 돈을 부정하자는 게 아니라, 아니 더 적극적으로 사고해야 한다. 그것이 가지는 지위와 역할에 대해서. 

 

이런 질문들과 답변은 개인 혼자 할 수 없다. 누가 '남의 눈치 (가족,친구,남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삶)'를 보고 살고 싶어하겠는가? 이것은 한 개인을 뛰어넘는 사회적이고 역사구조적인 문제이다. 머리를 맞대고 '협동하는 머리'와 '공동 실천'이 없으면 해결이 불가능하다.  

 

 

브로니 웨어는 오스트랄리아 말기 환자 돌봄 간호사였는데, 브로니가 재직하면서 죽음을 앞둔 환자들과 대화하면서 적은 기록이다. 



1.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삶이 아니라, 내 자신에 충실한 삶을 살 수 있는 용기를 가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2. 너무 일만 하고 살지 말았어야 했다. 

3. 내 감정들을 표현할 수 있는 용기를 가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4. 내 친구들이랑 계속 연락하고 지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5. 내가 생각하는 행복을 내 스스로 더 추구하고 실천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브로니 웨어는 오스트랄리아 말기 환자 돌봄 간호사였는데, 브로니가 재직하면서 죽음을 앞둔 환자들과 대화하면서 적은 기록이다. 

1.I wish I’d had the courage to live a life true to myself, not the life others expected of me

2. I wish I hadn’t worked so hard

3. I wish I’d had the courage to express my feelings.

4. I wish I had stayed in touch with my friends

5.  I wish I had let myself be happier

 

출처 

 

The Top Five Regrets of the Dying By Bronnie W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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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철학2021. 1. 30.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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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과 토론의 자유에 대해서


고전적 자유주의자였던 존 스튜어트 밀은 '생각과 토론의 자유'를 인간의 정신적 행복이라고 했다.  아래와 같은 네 가지 이유에서  의견의 자유, 의견을 표현할 자유는 인류의 정신적 행복이다.  

 

 첫째는, 어떤 주장이나 의견이 있으면, 말하게 하라. "어떤 주장이나 의견이 표출되지 못하고 침묵을 당했을 때도, 우리는 그 주장이 '참'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만일 이런 사실 조차 부정한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무오류성을 외치고 있는 셈이다." 


 둘째는, "침묵당한 의견이 설령 '참(진리)'와 거리가 있을지라도, 그 의견은 일말의 진리라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주제에 대한 지배적인 혹은 다수의 의견이, 완벽한 참(전체 진리)은 아니기 때문에, 그 완벽한 참은 어떤 반대 주장과의 충돌을 통해서 성립될 수 있을 것이다." 


 셋째는, "이미 확고하게 받아들여진 의견이 참일 뿐만 아니라, 전체 진리일지라도, 만약에 우리가  그 의견을 격렬하고 진지하게 조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의견의 합리적인 논거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은 채, 어떠한 편견들에 사로잡히게 된다." 


 넷째는, " 지식체계나 믿음체계 (doctrine) 자체는 효력을 상실하거나 약화될 수 있고, 사람들의 행위나 성향에도 강하게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권위-교조적 교리(dogma)는 단지 형식적인 공언에 지나지 않고, 효력도 없다. 도그마는 우리의 이성이 근거를 제시하는 것을 방해하고, 개인의 체험이 진지하고 참된 신념으로 발전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 1859  (역, NJ 원시) 2004


- John Stuart Mill, On Liberty 1859 , (New York: Cambridge University Press),1989, p.53 



 

존 스튜어트 밀의 핵심적인 생각.

우리의 주장이나 의견이 충분히, 자주, 두려움없이 토론될 때만이 그것은 '죽은 도그마'가 아니라 '살아 숨쉬는 진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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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철학2021. 1. 9.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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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본성 논쟁은 늘 흥미롭고, 계속해서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 영원히 얻을 수 없는 답이지만.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한 사람이 태어나서 살아가면서 몇 가지 행동들과 몇 가지 사회적 관계들을 맺으며 살아갈까? 

시간적 공간적 제약조건들을 풀어버린다면, 최대한 만들어 낼 수 있는 장면들은 무엇인가?

선한 존재다, 악한 존재다, 협동이 먼저다, 경쟁이 선차적이다, 존재가 본질에 앞선다 등은 한 가지를 먼저 정해놓고 그것을 제 1원리로 삼을려고 하는데,

문제가 늘 발생하는 건, 시간의 흐름 속에서 굴곡과 변화가 생긴다는 것이다. 좋은 쪽이건, 진보하는 방향이건, 퇴보하는 쪽을 선택하든지 간에, 

그래서 제 1원리를 강조하거나 전제할 때도, 주의할 점은 여러가지가 있다.

인생살이는 늘 경쟁도 있고, 협동도 있고, 선도 있고 악도 혼재해있다. 

정치도 마찬가지고, 인간활동 전반이 그러하다. 여기에서 사람들이 쓸 수 있는 단어는 정치적 지혜의 발동인데, 이것 역시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체현하기 때문에, 누가 하느냐에 따라 '작품의 결과'가 달라진다.



협동 가능 조건들_버스를 미는 사람들_빙판_왜_2021_01_07.mp4


맹자는 방심 (放心)하지 말라고 말했는데, 그 말은 4단의 마음을 '버리지 말라. 잃어버리지 말라'는 뜻이다. 맹자도 마르크스도 이분법과 대조법에 능한 저자인데, 사람들에게 하나와 둘, 두개, 두 개 쌍으로 보여주는 이 단순한 화법은 눈이 두개, 귀가 두개, 두 파편의 조합과 균형 자체가 인간의 모습이기 때문에, 두 가지 비교는 늘 극적인 효과를 낳는다. 


맹자의 화법은, 사람들이 닭과 개를  기르다가, 이것들을 잃어버리면 울고불고 하는데, 자기 마음, 인,의,예,지를 기르지 않는 것은 부끄러워하지 않음을 극명하게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아리스토텔레스 자연학과 세계관을 거부한 현대 과학과 우리들은 대부분 목적론을 다 수용하지 않는다. 다만 아직도 굉장히 강력한 세계관으로 우리들 곁에 남아있다.

목적론이 정치적으로 위험할 때도 있고, 또 행동의 동력이 되기도 했다. 


<참고> 세계관. 목적론.


이런 맹자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의 본질에 대한 이해와 지식, 즉 4가지 원인들은 다 일종의 '목적론 teleology' 세계관이다. 사람과 자연, 이 모든 우주질서를 설명할 때, 그것의 궁극적인 '목적'과 '기능'이 뭔가를 규명하고 정의하려는 세계관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인들, ( material, form, efficient, final ) cause, 이렇게 영어번역어를 보면 (고대 그리스어에서 영어로), 물질, 형식, 효과(실제 효력), 최종 원인 이렇게 되는데, 예전에는 물질을 질료 hyle, 형식을 형상 eidos, 작용 (kinoun), 목적 (telos) 이라고 한국어로 번역했던 거 같다. 지금은 고대 그리스어 배우고 가르치는 학동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러한 목적론, 틸리오로지가 맞건 틀렸건, 좋은 설명이건 아니건간에, 이러한 사고방식이 몇 천년 전부터, 수백만년 전부터 인간 생존기로부터, 실천들로부터 배운 게 아닐까 한다. 


이러한 맹자나 아리스토텔레스의 강의 대상은 '왕의 후보, 군주'인데, 결국 왕이 되려면 왕이 가져야할 덕목들은, 맹자의 4단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가로서 탁월함 arete)  이나, 다 각고의 연습과 훈련을 통해서 현실화된다. 



아리스토텔레스 '피식스' 설명은 아직도 흥미롭다. 불분명하기도 하고. 

(1) 물질: 물질적 원인. 청동. 청동으로 만든 동상. 


(2) 형식, 형태: 형식적 원인. 형식 (형태). 사물이나 인간이 '바로 그것' '바로 그 사람임'을 설명할 때, 동상의 '형태' '형식'


eidos 이 말은 플라톤의 이데아 idea, 즉 모든 존재의 실체를 뜻하는 것인데, 삼각형의 '이데아'는 참된 지식, 참된 앎인다. 삼각형에 대한 정의이기도 하다.


삼각형은 3개의 변과 3개의 꼭지점으로 이뤄진 다각형이다. (A triangle is a polygon with three edges and three vertices) 

형태,형식을 뜻하는 에이도스가 뭔지는 아직도 불분명하지만, 이러한 어떤 '존재' '실체'에 대한 참된 앎,지식, 그것에 대한 '정의'와 연관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어떤 사물의 기능, 책상의 기능, 말의 기능 (이동 수단, 전쟁용 말), 도공의 기능은 그것들을 정의할 때도 필수적인 요소들이다. 그렇다면 '목적인 final cause,텔로스'와 에이도스 차이점과 공통점이 생기게 마련이다. 


(3) 효력 결과 발생자. 행동자. kinoun 키눈.  원하는 결과를 발생시키는 원인. 변화 혹은 쉼의 제 1차적 발생자. (the primary generative cause) 청동 동상을 만들어내는 장인. 조언을 해주는 사람. 아이의 아빠. 


(4) 목적인. 텔로스. 최종적 원인 (목적인) 뭔가 행동을 할 때 세우는 목적. 걷기의 목적은 건강. 정치의 최종목적. 인생의 텔로스. 강아지의 텔로스. 


In Physics II 3 and Metaphysics V 2, Aristotle offers his general account of the four causes. 


This account is general in the sense that it applies to everything that requires an explanation, including artistic production and human action. Here Aristotle recognizes four kinds of things that can be given in answer to a why-question:


The material cause: “that out of which”, e.g., the bronze of a statue.


The formal cause: “the form”, “the account of what-it-is-to-be”, e.g., the shape of a statue.


The efficient cause: “the primary source of the change or rest”, e.g., the artisan, the art of bronze-casting the statue, the man who gives advice, the father of the child.


The final cause: “the end, that for the sake of which a thing is done”, e.g., health is the end of walking, losing weight, purging, drugs, and surgical tools.

   

https://plato.stanford.edu/entries/aristotle-caus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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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철학2020. 12. 13.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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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간과 행복, 노동시간 단축과 자유,

노동시간과 정치참여


 https://bit.ly/3qPV4i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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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철학2020. 12. 6.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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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Aug.25.

· 

돌이켜보니, 벗을 사귀는 것을 참 등한시 했다. 더군다나 벗의 '덕'을 벗삼기는 더더욱 제대로 실천하지도 못했다. 사람은 자기가 말해놓고도, 자기가 글을 써놓고도, 그것도 지키지 못하면서 살 때가 많다.


 너무 바깥으로 돈 것 같다. 사람은 스스로 안으로 도는 시간이 많아야 하는데.  최근 취직을 준비하는 졸업반 어느 한 분과 대화를 했다. 


그에게 정치정당이란, 조직이란, 정치적 벗이란 무엇일까? 20년 전 난 또 무슨 생각을 했을까? 돌이켜보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또다른 미래를 준비하면서 쓴 글이다. 


<나를 안다는 것, 그리고 조직의 존재 이유> NJ 





Wonshe

Comments

조찬형

어디를 가면

글 자세히 볼수 있을까요~?



Nakjung Kim

조찬형/ 아이쿠 아름이 아부지..ㅋㅋ 아니 책은 아니고요, 제 메모입니다. 아마 제가 학생운동하는 후배들을 위해서 쓴 메모였습니다. 몇 페이지 안되요. 제 블로그에 전문을 올려놓을게요.



Yongsun Ryu

강호의 도리가 땅에 완전히 쳐박힌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보통 감정의 병폐 속에서 살기에도 바쁜, 그런 지겨운 시대에 살고 있어요...



Joohyun Yoon

취직하게요?ㅎㅎ


Nakjung Kim

Joohyun Yoon it was written in 1994.



아라으르

왜 이건 블로그에 안올려줘요?



정영운


천하(사람들)"이", 병폐(인정통환)"을"...오타(?)인 듯 합니다. ㅎㅎ, 제가 사는 세상은 벗들을 그리워하며 가끔 만나는 세상이라 이런 글월을 보노라면 가끔 미안합니다.



Nakjung Kim


정영운/하하...꼼꼼히 읽으셨네요. 인정통환이라는 단어를 쉽게 풀어서 설명한 단어가 병폐입니다.

어디로 이사가셨나요? 산골로 아예 들어가셨나?



정영운

음...저는 창원 진해 용원에 그대로 살아요. 원시님의 우회적 비꼼을 겸허히 받아들입니다. 다만 자유주의적인 삶을 살고 있고 내 공동체에만 의미 부여를 해서요.



Nakjung Kim

정영운/ 자유주의적이라는 말이...liberalist 인데요, 원래 그 말은 tolerant 종교적으로 타 종교에 대해서 관용을 베푸는, 정치적으로도 다른 견해를 가진 이들에 대해서 시민내전을 벌이지 않고, 인정해주는 그런 의미도 ...영국역사에서 기원해서...



Nakjung Kim

liberalist 지금이야, 한국의 민주당 정치적 입장 정도로 좁게 쓸 수 있거나, 혹은 일상에서 자본주의 체제를 인정하고 ? 산다? 그 정도로 좁게 쓸 수도 ...

근데 기본적인 가치관과 정치적 입장표명 혹은 표현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정영운


원래 영국에서의 리버럴은 재산권 가진 사람들이 자기 재산 마음대로 쓰는 , 자본가들의 경제적 자유를 중시하는 이들을 말하고 미국의 자유주의는 조금 진보적인 사람들, 폴 크루그먼이나 케네디 같은 사람들을 말한다고 하는데, 제가 쓰는 자유주의는 말 그대로 자유롭게 산다는 뜻입니다. 음...용어를 조심해서 써야 겠네요. : )



정영운

정치적으로 지지하는 정당은 원시님 계신 정당이었는데 지금은...글쎄요 입니다. 정치적 입장에 대하여 원시님처럼 일관적이지 않아요.



Nakjung Kim


정영운/ 많은 분들이 탈당도 하고, 지지를 철회했다고 들었습니다. 2011년 노회찬 심상정 탈당이후에는 탈당자가 적었는데, 오히려 그 이후에 보여준 모습들 때문에 많이들 탈당했다고 들었습니다. 자세한 건 조사를 해봐야죠...


Nakjung Kim


정영운.그래도 궁금하네요. "글쎄요?" 이렇게 말씀하신데는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요? 문제점이나 어떤 실망 요소같은거요?



정영운

멋지고 당당하게 사시는 분들에게 폐가 되지나 않을까 우려되어 조심스럽네요. 노동당으로 바뀐 이후는 문제점이나 실망를 지적할 정도로 들여다 보지 않았어요. 내 삶에 와 닿지 않는다고 할까요 그게 가장 큰 것 같네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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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철학2020. 12. 6.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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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Sep.23


신자유주의에 대한 한 문화(철학적?) 비평, 그리고 문제점.


류용선님이 메모를 해서 읽어봤는데요, 


1. 한병철 노동자 개념은 모호하고 자의적일 수 있다.


한병철 글쓴이 주장은 <신자유주의> 하에서는 착취당하는 노동자가 있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 스스로를 자기가 알아서 죽이는 노동자가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노동자는 자유로운 고용주나 자영업자인 셈이다. 


한병철의 노동자 개념은 (자기 스스로를 착취하는/이 자본주의 체제나 신자유주의 체제가 요구하는 가치와 기준들을 달성하기 위해서) 자기를 착취하는 selbstausbeutender Arbeiter 이다. 


그런데 같은 자동차를 생산하는 공장 라인에서 오른쪽 바퀴 조립하는 정규직은 100을 받고, 왼쪽 바퀴 조립하는 비정규직은 50을 받는다는 현실을 고려하면, 한병철 노동자개념이 독일에 국한된다고 해도 여전히 문제가 남지만, 한국 현실을 고려하면 '착취' 개념 자체가 자의적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크다. 


2. 한병철의 대안과 진단은 '마음'을 다스려라는 종교적 가르침일 가능성이 크다. 


다음은 한병철 주장이다. 


누가 시켰건, 자기가 선택했던, 신자유주의 체제가 강요했던, 그걸 자기가 내면화했던, 나는, 우리는, 노동자는 자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하는 '자기 사장님,  리틀 이건희이다 (자유로운 경영자 freier Unternehmer)' 누가 나를 고용하게 강제로 야간작업 시키고 임금 떼먹고 덜 주고 그러는 게 아니라, 내 스스로가 고용하고 내 스스로를 달달볶는 주인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가와 노동자라는 전통적인 계급이해 관계 대립도 없고, 계급투쟁도 생겨나지 않는다. 내가 알아서 잔업하고 내가 알아서 6시에 일어나서 영어학원 다니고, 내가 알아서 전세금 빼서 뉴욕으로 시카고로 자격증 따러 유학간다는 것이다.


 내가 알아서 오후 10시까지 잔업하고 내가 알아서 내 딸 아들 학원비 벌러 잔업한다는 것이다. 모든 게 내가 다 알아서 내가 다 스스로 고용주이고 기획자이고 경영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Burnt-OUT 될 때까지 일도 하고... 


[소결] 한병철 논리에 따르면, 자기 자아를 갉아먹는 자기 착취가 있을 뿐이다. 이제 해결책은 내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는 ... 그런 방향일 가능성이 크다. 이것은 내가 한병철의 기사를 보고 든 주관적인 '추측'이다. 


3. 사고방식의 뿌리는 어디일까? 추측해본다.


이런 한병철의 기본적인 생각은,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 그리고 이들보다 선행적으로 이 문제들을 진단한 에드문트 훗설 Husserl, 혹은 그 제자 Heidegger 에서 비롯될 확률이 아주 크다.


 한병철의 생각은 간단한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주조해낸 개념 '도구적 이성 (instrumental reason)'의 내면화이다. 


우리 모두가 계산적이고 합리적이고 목표 달성을 위한 '도구적 이성'을 철저하게 내면화시킨 것이다. 자기 자신, 사랑, 형제애, 자매애, 연대정신, 친구와의 우정, 동료를 위한 희생, 측은지심, 정의감 등 도구적 이성이 작동하지 않는 모든 인생 영역까지 완전히 균질적으로 '도구적 이성'이 점령했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Edmund Husserl 이, 1차 세계대전을 보고, 서유럽 문명이 가진 참사, 고대 아테네부터 내려온 진,선,미라는 '덕 virtue' 중에, 자본주의 사회 이후 서유럽 문명이 오로지 기술적 합리성 (데카르트, 갈릴레이, 뉴튼의 세계관이 가지고 있는 기술적 합리성)이 그 3가지의 균형적 발달을 깨뜨려 버렸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자연지배와 정복 논리를 인간사회에 적용시켜버린 그 세계관 자체를 반성하고 있는 것이다. 


4. 한국 사회에 대한 한병철의 오진단:  한병철은 97년 신자유주의적 IMF 통치 (긴축 통치) 이후, 한국 사람들이 체제순응주의 (Konformismus)에 빠져서, 우울증과 burn-out (지쳐빠짐, 진이 빠짐)을 동반한 순응주의와 사회적 합의 때문에, 저항이 일어나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97년 이후 한국 정치적 상황에 대한 잘못된 진단이다. 


한병철은 혁명, 자기-공격성 (Selbstaggression)등 정치적 용어와 심리적 용어를 동시에 쓰지만, 그것들 사이에 어떠한 연관이 있고, 실제 사회적 세력이 어떻게 어떠한 정치적 문화적 경제적 심리적 자원들을 동원하고 있는지에 대한 분석이 결여되어 있다. 


5.한병철이 진단 문제점: 


한병철은 신자유주의는 '억압적'인 게 아니라, 'verführend' = seductive ( 단순 번역은 '유혹하는', 그 의미는

 1) 사람을 비이성적인 일이나 사물에 관심을 가지도록 한다 

2) 원래 의도와는 다르게 사람을 유도하다 ; 못된 길로 빠지게 만들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역사적 현실을 고찰해보면, 영국 Thatcher (대처) 광산노조 파괴, 미국 Reagan 미 항공관제사 노조 파괴 등, 그리고 아르헨티나, 칠레, 한국 등에서 벌어진 군사, 경찰력을 동반한 노조 탄압, 시민운동 탄압, 96년 노동악법 날치기 통과와 같은 법률 도입, 그리고 복지국가 모범 국가라고 하는 스웨덴에서도 세금 제도를 두고 우파와 좌파간의 싸움이 30년 넘게 계속되었다는 역사적 사실들을 고려해 보면, 한병철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이해는 '몰' 역사적이다. 


5. '전체 자본주의화' 용어의 문제점 


공유와 공동체 sharing und community 에 대한 한병철의 비판은, 공유 경제도 내가 돈을 가지고 있어야 남들과 바꾸는 것 아니냐? 돈이 없으면, 즉 남에게 줄 것, 교환할 것이 없으면 '공유'도 못한다는 역설을 꼬집고 있다. 


그래서 이것을 '공동체의 전체-자본주의화 total-kapitalisierung'이라고 명명한다. 이러한 사고 방식은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가 말한 <the eclipse of reason: 이성의 일식/사라짐) 이런 진단과 유사하다. 


지금 사회적 경제나 협동조합, 그리고 공유경제 선전, 어떤 측면에서 자본주의 체제의 강화나 보충 역할도 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돈'은 순수 악마도 아니고, '돈'은 사람이 스스로 만들어낸 '힘'이다. 한병철은 '돈'과 '자본'이 어떻게 구별되는지 설명하고 있지 않다. 


사고 방식은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 식의 '계몽의 변증법'에서 비롯되지만, 출구와 대안은 흐릿하다. 마르쿠제의 '부정적 비판의식 Negative Critical Thought' 을 되살리자는 방향은 아니다. 


마르쿠제 Marcuse 가 제시한 대안, 자본주의 논리가 경제, 정치, 생활문화, 대중문화까지 완전히 침식하려고 기를 쓰고 달려들 때, 이러한 자본의 총체적 지배에 저항하는 우리들의 힘은 어디서 오는가? 


그것은 자본의 총체적인 사물화와 지배 안에서 '사적인 나 개인의 공간'에 머무르지 말고, 기술합리성이 아닌 다차원적 이성능력을 발굴하고, 1차원적 사회를 강요하는 현 체제에 '위대한 거부' 선언을 하는 것이다. 


한병철의 대안은 이러한 사회적 실천과 집단적 자각을 전제로 하는 마르쿠제 식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6. 어떤 고리가 빠졌는가? 


 한병철의 인간, 사회에 대한 설명에서, 개인과 사회의 연결지점, 정치,경제,사회적 존재로서 인간과 사회에 대한 관계, 그 설명들이 많이 빠져있다. 


그리고 Total-Kapitalisierung 전체-자본주의화 개념처럼, 잘못 사용된 경우도 정정되어야 한다. 자본주의 이윤추구의 논리가 이 사회 모든 영역을 우리 마음 모두들 다 침략하고 정복할 수는 없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비관'의 재탕이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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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oliberales Herrschaftssystem:Warum heute keine Revolution möglich ist


Der Kapitalismus vollendet sich in dem Moment, in dem er den Kommunismus als Ware verkauft. Der Kommunismus als Ware, das ist das Ende der Revolution.

 (Foto: dpa)

Warum ist das neoliberale Herrschaftssystem so stabil? Warum gibt es kaum Widerstand dagegen? Trotz einer immer größer werdenden Schere zwischen Reich und Arm? Für eine Erklärung ist es wichtig zu verstehen, wie die unterwerfende Macht heute funktioniert.

Gastbeitrag von Byung-Chul Han

Als es vor einem Jahr in der Berliner Schaubühne zu einer Debatte zwischen Antonio Negri und mir kam, stießen zwei Kapitalismuskritiken frontal aufeinander. Negri schwärmte für Möglichkeiten des globalen Widerstandes gegen das "Empire", das neoliberale Herrschaftssystem. Er präsentierte sich als kommunistischer Revolutionär und bezeichnete mich als skeptischen Professor. Emphatisch beschwor er die "Multitude", die vernetzte Protest- und Revolutionsmasse, der er es offenbar zutraute, das Empire zu Fall zu bringen. Mir erschien die Position des kommunistischen Revolutionärs zu naiv und realitätsfern. So versuchte ich, Negri zu erklären, warum heute keine Revolution mehr möglich ist.

Warum ist das neoliberale Herrschaftssystem so stabil? Warum gibt es so wenig Widerstände dagegen? Warum werden sie alle so schnell ins Leere geführt? Warum ist heute keine Revolution mehr möglich trotz immer größer werdender Schere zwischen Reichen und Armen? Für eine Erklärung ist ein genaues Verständnis notwendig, wie die Macht und Herrschaft heute funktioniert.

Wer ein neues Herrschaftssystem installieren will, muss Widerstand beseitigen. Das gilt auch für das neoliberale Herrschaftssystem. Zur Einsetzung eines neuen Herrschaftssystems ist eine setzende Macht notwendig, die oft mit Gewalt einhergeht. Aber diese setzende Macht ist nicht identisch mit der das System nach innen hin stabilisierenden Macht. Es ist bekannt, dass Margaret Thatcher als Vorkämpferin des Neoliberalismus die Gewerkschaften als "Feind im Inneren" behandelte und sie gewaltsam bekämpfte. Gewaltsamer Eingriff zur Durchsetzung der neoliberalen Agenda ist jedoch nicht jene systemerhaltende Macht.

Die systemerhaltende Macht ist nicht mehr repressiv, sondern verführend

Die systemerhaltende Macht der Disziplinar- und Industriegesellschaft war repressiv. Fabrikarbeiter wurden durch Fabrikeigentümer brutal ausgebeutet. So führte die gewaltsame Fremd-Ausbeutung der Fabrikarbeiter zu Protesten und Widerständen. Möglich war hier eine Revolution, die das herrschende Produktionsverhältnis umstürzen würde. In diesem repressiven System sind sowohl die Unterdrückung als auch die Unterdrücker sichtbar. Es gibt ein konkretes Gegenüber, einen sichtbaren Feind, dem der Widerstand gilt.

Das neoliberale Herrschaftssystem ist ganz anders strukturiert. Hier ist die systemerhaltende Macht nicht mehr repressiv, sondern seduktiv, das heißt, verführend. Sie ist nicht mehr so sichtbar wie in dem disziplinarischen Regime. Es gibt kein konkretes Gegenüber mehr, keinen Feind, der die Freiheit unterdrückt und gegen den ein Widerstand möglich wäre.

Der Neoliberalismus formt aus dem unterdrückten Arbeiter einen freien Unternehmer, einen Unternehmer seiner selbst. Jeder ist heute ein selbstausbeutender Arbeiter seines eigenen Unternehmers. Jeder ist Herr und Knecht in einer Person. Auch der Klassenkampf verwandelt sich in einen inneren Kampf mit sich selbst. Wer heute scheitert, beschuldigt sich selbst und schämt sich. Man problematisiert sich selbst statt der Gesellschaft.

Das unterworfene Subjekt ist sich nicht einmal seiner Unterworfenheit bewusst

Ineffizient ist jene disziplinarische Macht, die mit einem großen Kraftaufwand Menschen gewaltsam in ein Korsett von Geboten und Verboten einzwängt. Wesentlich effizienter ist die Machttechnik, die dafür sorgt, dass sich Menschen von sich aus dem Herrschaftszusammenhang unterordnen. Ihre besondere Effizienz rührt daher, dass sie nicht durch Verbot und Entzug, sondern durch Gefallen und Erfüllen wirkt. Statt Menschen gefügig zu machen, versucht sie, sie abhängig zu machen. Diese Effizienzlogik des Neoliberalismus gilt auch der Überwachung. In den 1980er-Jahren hat man heftigst gegen die Volkszählung protestiert. Sogar die Schüler gingen auf die Straße.



Kommunismus als Ware, das ist das Ende der Revolution

Byung Chul Han

Byung-Chul Han, geboren 1959 in Seoul, lehrt Philosophie und Kulturwissenschaft an der Universität der Künste Berlin.

 (Foto: Merve-Verlag)

Aus heutiger Sicht wirken die notwendigen Angaben wie Beruf, Schulabschluss oder Entfernung zum Arbeitsplatz fast lächerlich. Es war eine Zeit, in der man glaubte, dem Staat als Herrschaftsinstanz gegenüberzustehen, der den Bürgern gegen deren Willen Informationen entreißt. Diese Zeit ist längst vorbei. Heute entblößen wir uns aus freien Stücken. Es ist gerade diese gefühlte Freiheit, die Proteste unmöglich macht. Im Gegensatz zur Zeit der Volkszählung protestieren wir kaum gegen die Überwachung. Freie Selbstausleuchtung und -entblößung folgt derselben Effizienzlogik wie die freie Selbstausbeutung. Wogegen protestieren? Gegen sich selbst? Diese paradoxe Situation bringt die amerikanische Konzeptkünstlerin Jenny Holzer mit ihrem "truism" zum Ausdruck: "Protect me from what I want."

Es ist wichtig, zwischen setzender und erhaltender Macht zu unterscheiden. Die systemerhaltende Macht nimmt heute eine smarte, freundliche Form an und macht sich dadurch unsichtbar und unangreifbar. Das unterworfene Subjekt ist sich hier nicht einmal seiner Unterworfenheit bewusst. Es wähnt sich in Freiheit. Diese Herrschaftstechnik neutralisiert den Widerstand auf eine sehr effektive Art und Weise. Die Herrschaft, die Freiheit unterdrückt und angreift, ist nicht stabil. Das neoliberale Regime ist deshalb so stabil, immunisiert sich gegen jeden Widerstand, weil es von der Freiheit Gebrauch macht, statt sie zu unterdrücken. Die Unterdrückung der Freiheit provoziert schnell Widerstand. Die Ausbeutung der Freiheit dagegen nicht.

Nach der Asienkrise war Südkorea gelähmt und geschockt. Da kam der IWF und gab den Koreanern Kredite. Dafür musste die Regierung die neoliberale Agenda gewaltsam gegen Proteste durchsetzen. Diese repressive Macht ist die setzende Macht, die häufig auf Gewalt zurückgreift. Aber diese setzende Macht unterscheidet sich von der systemerhaltenden Macht, die im neoliberalen Regime sich sogar als Freiheit gibt. Für Naomi Klein ist der gesellschaftliche Schockzustand nach Katastrophen wie der Finanzkrise in Südkorea oder Griechenland die Gelegenheit, die Gesellschaft gewaltsam einer radikalen Neuprogrammierung zu unterwerfen. Heute gibt es in Südkorea kaum Widerstände. Es herrscht dagegen ein großer Konformismus und Konsens mit Depression und Burn-out. Südkorea hat heute weltweit die höchste Suizidrate. Man wendet Gewalt gegen sich selbst an, statt die Gesellschaft verändern zu wollen. Die Aggression nach außen, die eine Revolution zur Folge hätte, weicht einer Selbstaggression.

Heute gibt es keine kooperierende, vernetzte Multitude, die sich zu einer globalen Protest- und Revolutionsmasse erheben würde. Vielmehr macht die Solitude des für sich isolierten, vereinzelten Selbst-Unternehmers die gegenwärtige Produktionsweise aus. Früher standen Unternehmen miteinander in Konkurrenz. Innerhalb des Unternehmens war dagegen eine Solidarität möglich. Heute konkurriert jeder mit jedem, auch innerhalb eines Unternehmens. Diese absolute Konkurrenz erhöht zwar die Produktivität enorm, aber sie zerstört Solidarität und Gemeinsinn. Aus erschöpften, depressiven, vereinzelten Individuen lässt sich keine Revolutionsmasse formen.

Man kann den Neoliberalismus nicht marxistisch erklären. In ihm findet nicht einmal die berühmte "Entfremdung" von der Arbeit statt. Heute stürzen wir uns mit Euphorie in die Arbeit bis zum Burn-out. Die erste Stufe des Burn-out-Syndroms ist eben die Euphorie. Burn-out und Revolution schließen sich aus. So ist es ein Irrtum zu glauben, dass die Multitude das parasitäre Empire abwirft und eine kommunistische Gesellschaft installiert.

Die Ökonomie des Teilens führt zu einer Totalkommerzialisierung des Lebens

Über den Autor

Byung-Chul Han lehrt Philosophie und Kulturwissenschaft an der Universität der Künste Berlin. Zuletzt erschien von ihm: "Psychopolitik. Neoliberalismus und die neuen Machttechniken".

Wie steht es heute mit dem Kommunismus? Überall wird Sharing und Community beschworen. Die Sharing-Ökonomie soll die Ökonomie des Eigentums und des Besitzes ablösen. "Sharing is Caring", "Teilen ist Heilen", so heißt eine Maxime der "Circler" im neuen Roman von Dave Eggers, "The Circle". Die Pflastersteine, die den Fußweg zur Firmenzentrale von Circle bilden, sind durchsetzt mit Sprüchen wie "Sucht Gemeinschaft" oder "Bringt euch ein". Caring is Killing, sollte es aber eigentlich heißen. Auch die digitale Mitfahrzentrale "Wunder Car", die jeden von uns zum Taxi-Fahrer macht, wirbt mit der Idee der Community. Es ist aber ein Irrtum zu glauben, dass die Sharing-Ökonomie, wie Jeremy Rifkin in seinem jüngsten Buch "Die Null-Grenzkosten-Gesellschaft" behauptet, ein Ende des Kapitalismus, eine globale, gemeinschaftlich orientierte Gesellschaft einläutet, in der Teilen mehr Wert hätte als Besitzen. Im Gegenteil: Die Sharing-Ökonomie führt letzten Endes zu einer Totalkommerzialisierung des Lebens.

Der von Jeremy Rifkin gefeierte Wechsel vom Besitz zum "Zugang" befreit uns nicht vom Kapitalismus. Wer kein Geld besitzt, hat eben auch keinen Zugang zum Sharing. Auch im Zeitalter des Zugangs leben wir weiterhin im "Bannoptikum", in dem diejenigen, die kein Geld haben, ausgeschlossen bleiben. "Airbnb", der Community Marktplatz, der jedes Zuhause in ein Hotel verwandelt, ökonomisiert sogar die Gastfreundschaft. Die Ideologie der Community oder der kollaborativen Commons führt zur Totalkapitalisierung der Gemeinschaft. Es ist keine zweckfreie Freundlichkeit mehr möglich. In einer Gesellschaft wechselseitiger Bewertung wird auch die Freundlichkeit kommerzialisiert. Man wird freundlich, um bessere Bewertungen zu erhalten. Auch mitten in der kollaborativen Ökonomie herrscht die harte Logik des Kapitalismus. Bei diesem schönen "Teilen" gibt paradoxerweise niemand etwas freiwillig ab. Der Kapitalismus vollendet sich in dem Moment, in dem er den Kommunismus als Ware verkauft. Der Kommunismus als Ware, das ist das Ende der Revolution.

© SZ vom 01.09.2014/mike



기사 출처 https://bit.ly/33OKsa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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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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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철학2020. 10. 27.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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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에서 '진화론'은 삶의 진.선.미와 달리 그 뱡향이 없다는 게 특징적이다. 정치와 문화적 삶에서, '진화론'은 굉장히 신중하고 비판적으로 다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배자와 가해자의 범죄가 침팬지 힘자랑 게임으로 퇴락하고 만다. 


생물학적 사회진화론, 사회적 다윈주의 용어 "우월한 유전자" 보도, 조선일보, 이건희 손녀 보도, "이건희 장례식장서 가장 주목받은 사람은..." 기사를 보다가.


'우월한 유전자' 라는 단어는 인종차별주의다. '엄친아' 라는 말도 은폐된 생물학적 사회진화론 용어이기 때문에, '우월한 유전자'라는 단어와 함께 사용해서는 안된다. 타고 태어날 때부터 사회적 지위와 개인적 능력이 탁월하다는 '결정론'을 내포하고 있는 단어가 '우월한 유전자' 이다. 


경제적 부, 정치적 권력, 사회적 신분이 중산층 이상인 자를 가리키는 '엄친아'라는 단어도 이와 유사하다. 


'돈 없는 너희 부모를 탓해라. 부자 부모를 가진 것도 개인 능력'으로 치부된다.


TV 광고나 일상 생활에서, 친구와 연인끼리도 '우월한 유전자'라는 단어를 쓰고 있는 현실을 보면, 1997년 IMF 긴축독재 이후, 한국 일상 생활에서 얼마나 신자유주의 논리가 삶 그 자체가 되었는가를 보여준다.


이재용 딸, 이씨, 인터넷 반응을 차용, '우월한 유전자'

초웃 로즈메리 홀 (Choate Rosemary Hall) 이라는 비싼 사립 고등학교를 다녔다고 소개. 생활비를 제외하고 1년 학비가 6만 달러가 넘는다 (6천 800만원).

전 세계에서 교육 차별이 심한 나라가 미국이다.  


한국의 교육 개혁의 모델이 전혀 될 수 없는 것 중에 하나다. 우리는 1년 학비가 6천 800만원인 고등학교가 아니라, '0원'인 공교육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100세 시대에 최소한 대학 4년까지는 무료 자유 교육 시스템을 형성해야 하는게 시대정신이다. 


또래 아이들이나 국민들이 이런 특권층을 부러워하는 것으로 보도하는 조선일보의 기사를 보면, 기자 정신은 실종되고, 사장님 회장님의 '종'으로 전락해버렸다.


세습 신분을 고착화하는 한국 자본주의의 씁쓸한 단면이다.


21세기에 다시 타고 태어난 '신분을 타파하라'고 외쳐야 하다니.


 


 





이건희 장례식장서 가장 주목받는 사람은…

김강한 기자


입력 2020.10.26 10:15



지난 25일 별세한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빈소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함께 온 이 부회장의 딸 이원주양이 주목을 받고 있다. 마스크를 써 얼굴을 반쯤 가린 상태였지만 또렷한


눈매와 오뚝한 콧날이 드러나면서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우월한 유전자가 입증됐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원주양은 2004년 생으로 올해 16세다.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있는 용산국제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코네티컷 주에 있는 명문 보딩스쿨 ‘초트 로즈메리 홀’에 진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원주양은 과거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올린 사진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공개되면서 관심을 모았었다.


사진 속에는 이양이 다른 10대 청소년들처럼 친구들과 어울리며 즐거운 일상을 보내는 모습이 담겨 있다. 그러나 이들 사진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현재는 계정을 탈퇴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양은 어릴 때부터 발레를 배웠다. 국립발레단 부설 아카데미에 다니면서 ‘호두까기 인형’ 무대에서 역대 최연소로 호두까기 인형 역을 맡기도 했다. 그는 초등학교 5학년때는 한국발레연구학회 콩쿠르에서 동상, 6학년때 한음무용콩쿠르에서 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빈소에 들어가는 이양의 모습을 본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아버지인 이재용 부회장과 어머니인 임세령 대상그룹 전무의 장점만을 섞어 놓은 얼굴” “연예인급 외모” “성인이 되면 어떻게 성장할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장례식장에 신고온 힐은 어느 브랜드 제품인지 궁금하다" 등의 반응이 나오고 있다. 이 부회장과 임 전무는 2009년 이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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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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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자연과사람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저희 블로그도 들러 주세요 ^^
    오늘하루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

    2020.10.29 12:10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