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정의당2020. 3. 21. 18:11

주진형도 문제지만, 더 중요한 건 대중적 진보정당을 표방한 정의당의 리더십이다.


민주당의 기생 정당인 열린민주당은 3월 8일에 급조되어, 2주만에 당원 2만 4444명의 선거인단을 모았다. 정의당을 민주당의 기생정당이라고 비난했던 주진형은 민주당의 기생정당이자 비례용정당인 열린민주당에 '열린' 마음으로 국회의원에 입후보했다. 한겨레 신문과 자신의 페이스북에, '선거법 개정'에 대한 컬럼을 쓰곤 했는데, 그 내용은 비전문적이며 너무 부실했다. 식칼 들고 히토오 히로부미 처단하러 나가는 단타 의병의 행색이었다.  

한국의 대중적 진보정당 중에 가장 규모가 큰 정의당의 당권자 숫자는 3만 5960명이다. 정의당 이외에 녹색당, 노동당, 민중당 등 진보정당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진보정당원 숫자는 최소한 5만명은 넘을 것이다. 

비참한 힘관계를 드러내준다. 민주당 기생정당인 열린민주당은 2주만에 당원을 2만 4444명을 동원했다. 그 속도가 박정희와 전두환의 '통일주체국민회의' 소집 속도와 똑같다. '모여 !' 그러면, 전국에서 버스타고 왔고, 이제 휴대전화 앱이면 정당 뚝딱 제조할 수 있다.

정의당의 주축들 중에 한 조류는 2000년에 창당한 민주노동당이다. 20년 걸려 만든 진보정당원 숫자가 3만 5969명인데 비해, 리버럴 민주당의 기생정당인 열린 민주당은 2주만에 2만 4444명을 만들어냈다. 엄청난 조직력인가? 아니면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붕괴와 같은 부실정당인가?

정의당 역시 안타깝게도 선거법 개정에 적극적이었지만, 비례대표 후보 선출과정에서 유권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겨주지 못했다. 미래통합당과 민주당이 비례용 갈취정당을 만들어 한국 민주주의를 훼손할 때, 정의당이 대안으로 우뚝서고 범진보정당들의 구심이 될 기회를 조금 놓친 거 같아 안타깝다.

정의당을 민주당의 기생정당이라 비난했던 주진형과 그 행보는 부차적이다.

정의당은 리버럴 민주당과 보수파 미통당이 아닌 제 3의 진보정당이 한국 민주주의의 대안이라고 생각하는 유권자들에게 더욱더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어야 한다. 비판을 회피하고 안으로 위축되지 말고, 자기가 편한 사람들 위주로 정치하는 좁쌀 리더십을 탈피해야 한다. 

 







그림 1


그림 2. 정의당 당권자 숫자가 3만 5960명이다.



김의겸-최강욱, 열린민주당 비례후보로

윤다빈 기자입력 2020-03-21 03:00-

20명 발표, 온라인투표로 순번 정해

주진형-황희석-김진애 등 포함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전북 군산 총선에 출마하려다 무산됐던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이 민주당 출신 손혜원 의원과 정봉주 전 의원이 이끄는 열린민주당의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 명단에 포함됐다.


열린민주당은 20일 김 전 대변인을 포함한 남성 9명, 여성 11명 등 비례대표 후보 20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이들의 비례대표 순번은 22∼23일 온라인 투표를 거쳐 확정된다. 열린민주당은 당원 1000명으로부터 비례대표 후보로 3명씩 추천받았다. 이 중 일정 이상의 추천을 받은 인물을 대상으로 개별 접촉하고 공천 참여 의사를 타진해 명단을 선정했다.


부동산 투기 논란에 휘말려 대변인직에서 물러난 김 전 대변인은 지난해 12월 민주당 예비후보로 전북 군산 출마를 선언했으나 민주당 지도부의 만류로 불출마하게 됐다.



남성 후보로는 최강욱 전 대통령공직기강비서관,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사장, 황희석 전 법무부 인권국장(검찰개혁추진지원단장), 안원구 전 대구국세청장, 서정성 광주시 남구의사회 회장, 방송인 김성회 씨, 조대진 변호사, 황명필 울산 지역 노사모 활동가 등이 포함됐다. 최 전 비서관의 경우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 입시 비리에 연루된 혐의로 기소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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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후보에는 김진애 전 의원, 조혜영 전 여성신문 편집국장, 정윤희 도서관위원회 위원, 국령애 사회적기업 다산명가 대표, 허숙정 전 육군 중위, 이지윤 전 서울시설공단 이사장, 피아니스트 김정선 씨, 교육 전문가인 변옥경 씨, 교사 출신 강민정 씨, 김종숙 사회복지법인 곰두리재단 용인시 대표, 한지양 노무사 등이 이름을 올렸다.


윤다빈 기자 empty@donga.com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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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ㅇㅇ

    여당의 당원수가 수백만인데 겨우 2만명을 모은 기생정당으로 자뻑하는건 너무 악의적이네요.

    2020.03.21 22:56 [ ADDR : EDIT/ DEL : REPLY ]

한국정치/민주당2019. 9. 11. 10:19

조국 논란은 마치 기본적인 논리학 연습을 하는 것 같다. 

[교훈] 임기응변, 언발에 오줌누기식이 아니라, 장기적인 대안, 철저한 준비과정이 집권의 필수덕목이다. 차세대 주인공들에게 주는 살아있는 정치 교과서이다.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었다. 조국 기자간담회에서 검찰은 검찰 일을, 검찰 상급부서인 법무부는 법무부 일만 하는 게 해법이라고 한 점이. 조국 말이 조국을 또 잡고 있다. 국민들이 보기에는, 이승만 정권부터 현 정부까지 듣도보도 못한 엇박자, 문재인 대통령 리더십 붕괴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아니면 스네이크 박처럼 이후락과 김형욱을 경쟁시키고, 육사 5기 김재춘과 육사 8기 김종필을 경쟁시키고, 8기 동기 김형욱과 김종필을 경쟁시키는 이이제이 정책인가?


문재인-조국 양 지도자 모두 '검찰은 검찰 일을, 법무부는 법무부 일을' 하면 된다고 말했지만, 현실은 법무부와 검찰의 알력이 생중계되고 있다. 그것도 24시간 안에. 시청자는 혼란스럽다. 


법무부 고위층이 '윤석열 없는 특별수사팀'을 제안했다가, 윤총장이 거절했다는 보도가, 문재인 임명 발표 이후 바로 나왔다. 이런 점을 보면 문재인 대통령은 스네이크 박 전략 모형이 아니라, 관제탑이 없는 중구난방 이착륙 비행기장이다. 

조국 장관은 '가족 수사'에는 관여하지 않겠다고 하고, 법무부 제안자는 '조국 장관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 하고, 문재인 대통령은 검찰은 검찰 역할을, 법무부는 법무부 일을 각각 수행하면 된다고 한다.

 


동양대 최성해 가짜 학력, 나경원 아들 특혜시비, 장제원 아들 범죄는 부차적인 주제다. 지금 핵심은 문재인 리더십의 실추과정에 있다. 물론 자유한국당의 푸어 퍼포먼스 듀오 오누이 황-나의 자살골들이 앞으로 수없이 터져줄 것이기에, 지지율 걱정은 안해도 될 수도 있다. 게다가 국회선진화법 위반으로 자한당 국회의원들이 윤석열 검찰총장의 칼을 기다리고 있기도 한다. 아니러니하다. 


정치 검찰, 검찰의 정치화, 정치의 사법화라는 단어보다, 문재인 리더십의 실추라는 말이 현재 국면을 더 잘 설명한다. 





출처: 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878555&pDate=20190910


법무부 고위 간부, 검찰에 '윤석열 배제한 수사팀' 제안


[JTBC] 입력 2019-09-10 20:08 -


[앵커]


조국 법무장관이 취임하면서 검찰이 현직 장관과 관련된 수사를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인가에 관심이 모아진 바 있습니다. JTBC 취재결과 조국 장관 취임식이 있었던 어제(9일) 법무부 고위 간부들이 검찰 고위 간부들을 접촉해서 윤석열 검찰총장을 배제한 특별수사팀을 구성하자는 제안을 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한창 수사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검찰총장을 수사 지휘 라인에서 빼자고 제안한 것은 이례적입니다. 검찰은 이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서복현 기자입니다.


[기자]


법무부가 검찰에 제안한 것은 조국 법무부 장관과 관련한 수사 지휘 라인의 변화였습니다.


윤석열 검찰총장을 조 장관 관련 수사 지휘에서 배제하는 별도의 특별수사팀을 구성하자는 것입니다.


정부 관계자는 법무부 고위 간부들이 각 직급에 맞는 검찰 고위 간부들을 차례로 접촉해 총장을 배제하는 특별수사팀 구성을 제안했지만 검찰이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법무부는 문무일 검찰총장 시절의 강원랜드 특별수사단 방식을 추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다만 당시는 문 총장이 직접 별도의 수사 지휘도, 구체적인 수사 상황을 보고받지도 않겠다고 한 바 있습니다.


이번 법무부의 제안은 어제 조국 법무부 장관의 취임식 당일에 이뤄졌습니다.


검찰총장이 지휘 중인 사건을 놓고 법무부가 총장이 배제된 수사팀을 따로 꾸리자는 의견을 낸 것은 이례적입니다.


검찰에 이러한 제안을 했던 법무부 간부 중 1명은 평상시 여러 고민을 하면서 해왔던 말을 얼핏 한 것이라며 공식적으로 한 얘기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조국 법무부 장관은 이런 것을 지시한 적도 없고 전혀 모른다고 했습니다.










현직 법무장관 가족 수사…'총장 배제' 제안-거부 왜?




[JTBC] 입력 2019-09-10 20:19 수정 2019-09-10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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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어떤 맥락에서 이런 제안이 나온 것인지 취재 기자와 한걸음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


서복현 기자가 옆에 나와 있습니다. 일단 어제(9일) 제안이 있었다는 얘기죠? 구체적으로 시점이라든가 이런 것은 어떻게 됩니까?


[기자]


어제 오후에 조국 법무부 장관의 취임식을 전후해서 취임식이 오후 4시 반에 있었는데요.


이때를 전후해서 법무부 간부들이 이런 제안을 검찰에 한 것으로 취재가 됐습니다.


[앵커]


법무부 간부가 제안을 했다. 그 법무부 간부가 누구인지는 지금 취재원 때문에 얘기하기는 좀 어려울 것 같고. 어느 정도 위치에서 제안이 간 것입니까?


[기자]


저희가 추가 취재를 해서 검찰을 접촉한 간부들을 확인을 좀 해 봤습니다.


그런데 법무부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봤을 때 상당한 무게감이 있습니다.


특히 1명이 아니라 2명의 고위 간부가 각각 검찰을 접촉한 것으로 확인이 됐습니다.


역시 다른 고위 간부도 업무를 보면 법무부에서 큰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앵커]


두 사람이라는 얘기잖아요. 두 사람이 각각 다른 검찰 관계자를 만났나요, 한 사람을 만났나요? 


[기자]


일단 각각 만난 것으로 취재가 됐습니다.


[앵커]


그런가요? 


[기자]


각각 접촉한 것으로 취재가 됐습니다.


[앵커]


강원랜드 특별수사팀을 예로 들었다고 했는데 그 정도면 얘기는 구체적으로 나온 것 같습니다. 그러면 기존에도 이런 사례가 있기는 있었다는 얘기인가요? 


[기자]


네, 과거에도 있었지만 이번 경우와는 좀 차이가 큽니다.


강원랜드의 경우 문무일 검찰총장이 직접 판단을 해서 수사를 지휘하지 않고 최종 보고만 받는 특별수사팀을 꾸렸습니다.


같은 방식인 특임검사 역시 과거를 보면 주로 검찰총장이 판단을 해서 지시하는 형태로 진행이 돼 왔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윤석열 검찰총장이 한창 수사를 지휘하고 있는 상황에서 총장을 배제하는 수사팀을 그것도 상급 기관인 법무부가 제안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습니다.


[앵커]


법무부는 지금 수사팀 말고 왜 별도의 수사팀을, 그러니까 특별수사팀이라는 이런 명칭이 있으니까 그것을 제안을 했는가. 사실 그게 궁금하기는 합니다. 


[기자]


일단 JTBC 취재진이 법무부의 입장을 좀 들어봤습니다, 왜 그랬는지요. 


그랬더니 이 특별수사팀 검토는 이미 지난주부터 해 왔다고 했습니다.


[앵커]


임명되기 전부터.


[기자] 


그러니까 조국 장관이 취임되기 전 그러니까 박상기 장관 때부터 해 왔다는 것인데요. 


이유는 조국 장관이 임명될 경우 법무부와 검찰의 충돌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법무장관이든 검찰총장이든 일단 수사에서 빠지는 게 낫지 않겠냐는 차원이었다고 합니다. 





[앵커]


다시 해석을 하자면 조국 법무장관은 자신이 이 수사에 대해서 보고받지 않겠다, 그러니까 거기서 빠져 있겠다고 얘기했기 때문에 자칫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이 맞서는 모양새가 되지 않도록 그러면 검찰총장도 좀 빠져달라 이런 제안이었던 모양이죠?


[기자]


그렇습니다. 하지만 가족이 이미 기소된 법무부 장관과 또 그 수사를 책임지고 있는 검찰총장을 같은 선에서 놓고 비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다른 수사도 아닌 현직 법무부 장관 관련된 수사이기 때문인데요.


그런 면에서 법무부가 총장을 수사 지휘 라인에서 배제할 걸 제안한 건 수사의 동력을 약화시키려 한 것이다 이런 의심을 충분히 받을 수가 있습니다.


또 윤석열 검찰총장이 보름 가까이 지휘를 하면서 조 장관의 부인까지 기소한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앵커]


검찰이 외압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이런 얘기인가요?


[기자]


우선 어제 조국 장관의 취임사의 한 대목을 직접 들어보시죠.


[조국/법무부 장관 (어제) : 법무부의 검찰에 대한 적절한 인사권 행사, 검찰개혁의 법제화, 국민 인권보호를 위한 수사 통제 등 검찰에 대한 법무부의 감독 기능을 실질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법무부는 검사의 인사권. 그러니까 인사 발령을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취임사가 있던 당일에 법무부의 제안이 있었기 때문에 검찰로서는 받아들이는 무게감이 훨씬 더 클 수가 있습니다.


[앵커]


상식적으로만 그냥 보자면 조국 장관이 누차 자신과 관련된 수사에 대해서는 보고를 받지 않겠다. 그러니까 참견하지 않겠다. 다시 말하면 압박을 넣지 않겠다라는 얘기잖아요, 그 얘기가. 그러면 공개적으로 몇 차례 얘기를 했는데 취임 첫날에 그런 지시를 과연 했을 것이냐? 그럴 것 같지는 않은데. 법무부는 뭐라고 얘기를 합니까?


[기자]


일단 말씀하신 대로 어제 저녁 조국 장관이 첫 간부회의를 열었는데요.


그때 지시사항을 공개된 내용인데 이 내용을 한번 보겠습니다.


보면 법무부 장관은 본인이나 가족 관련 사건의 수사나 공판 상황에 대해서는 검찰로부터 보고받거나 검찰총장을 지휘하지 않을 것.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또 해당 법무부 간부들은 조 장관의 특별수사팀 지시 같은 건 없었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요.


하지만 법무부 고위 간부가 나섰다는 것만으로도 그 적절성을 놓고 논란이 될 수 있습니다.


[앵커]


설사 법무부의 그 고위 간부들이 백번 양보해서 선의로 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적절한 것은 아니었다? 


[기자]


검찰의 외압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대목이 있는 부분입니다. 


[앵커]


이런 상황에서는? 


[기자]


네. 


[앵커]


알았습니다. 서복현 기자였습니다. 수고했습니다.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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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민주당2017. 2. 8. 20:43


정당의 통일성과 일관성을 생각하다


- 감동하다가 식어버린 이유


고민정은 스승 신영복을 말했고, 전인범 특전사 사령관은 “문재인은 빨갱이가 아니죠? 전 확신합니다”라고 했다. 논리적 모순을 찾아야 하는 내 직업병일 수도 있겠지만, 뭔가 앞뒤가 맞지 않아 보였다.  신영복을 스승이라고 한 고민정과 전인범의 말은 어울리지 않았다. 민주당이야 이념적 흐름들이 다양하고, 또 한 정당 내부에서 서로 긴장하고 경쟁하거나 상충할 수도 있는 정치적 노선들도 공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좋은 신호는 결코 아니다.


사실 고민정의 문재인 캠프 합류 뉴스보다는 그 남편과의 사연이 더 크게 보였다. 눈시울이 뜨거웠다. 이름도 어려운 무슨 난치병을 가진 시인 남편에 대해 고민정은 ‘존경할 만한 사람’이라고 했다. 존중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 시대에, 또 사랑하는 연인들 사이에도 ‘존경’이라는 말이 많이 줄어든 이 세태와 대조적으로, 고민정의 ‘존경’ 언급은 품격있는 고전적인 클래스였다. 


이런 뉴스 때문에 고민정이 읽는 ‘문재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듣게 되었다. 고민정은 문재인과의 첫 만남을 소개했다. 고 신영복 선생의 영결식장이었다. 고민정은 신영복을 자기 스승이라고 언급했다. 신영복은 1968년 통혁당 사건으로 "빨갱이"로 몰려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를 가둔 건 516 군사쿠데타 이후에도 김종필 박정희의 좌익전력도 의심하고 세탁하려고 했을 정도로  반공사상이 투철했던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이었다. 신영복 선생은 “빨갱이” 죄목으로 20년간 감옥살이를 해야했다.   


고민정과 많은 이들이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 사색>이라는 책에 감명을 받는 이유는 꼭 신영복 저자가 정치적으로 좌파여서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신영복 선생은 1988년 출소 이후 줄곧 ‘연대’ 정신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는 우파보다는 좌파라는 일관성 노선을 걸었다고 볼 수 있다. 신영복 선생이 애초 자기 전문 분야인 경제학보다는 노자 장자 사상과 유가 사상을 통해 한국 사람들의 삶을 설명하려 했다. 기존 좌우 프레임과는 다르다고 볼 수 있다.하지만  그 일관된 사상적 기초는 “함께 맞는 비 (연대)” 정신이었다. 


그런데 전인범 특전 사령관은 무대 위에 올라오자 마자, “문재인이 빨갱이가 아니라는 것을 확신한다. 한미 동맹을 강화시켜 국민의 안전을 지켜내겠다”고 했다.


도대체 소련과 미국의 냉전 종식은 1989년 몰타 회담에서 그 시작점을 알렸다. 28년이 지났다. 소련은 러시아로, 중국은 미국을 대체할만큼 강대국으로 떠올랐다. 이런 변화된 국제정치 힘관계에서 한국의 안보 개념은 재정립될 필요가 있다.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자립적이고 실용적인 외교 노선을 정립해야 한다. 미국의 무기 수출국가가 아니라 한반도를 평화구역으로 만들 궁리와 실천을 해야 한다. 그게 진정한 안보 아닌가? 


보수 유권자를 향해 “문재인은 빨갱이가 아니다”를 외치는 게 이러한 변화된 국제질서를 반영한 정치적으로 유의미한 발언인가? 정치적 후퇴이고 퇴행이다. 


민주당 문재인의 영입인사가 어디 전인범, 고민정 이 두 사람뿐이겠는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우연찮게 이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이 한 무대 위에 올라가 있는 것을 보고, 민주당이 너무 급해 보인다. 보수적인 유권자들 때문인가? 


고민정과 난치병 시인 조기영과 감동적인 아름다운 사연에 잠시 눈시울이 뜨거워지다가, 전인범 특전사령관의 발언을 듣고 나서, 갑자기 그 뜨거움이 식어버렸다.



사진 출처 동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39biUMaFJmU&t=3946s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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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이 입을 열었다. 인터뷰한 시사저널을 고발한다고 했지만, 많은 진실이 담겨져 있다. 몇 가지 인상적인 주제들을 써본다. 


1. 김종필은 516 혁명이라고 썼다. 그러나 516은 군사 쿠데타이다. 


(참고: 김종필,김형욱은 육사 8기이고, 김재춘 등은 육사 5기생들이다. 5기생들이 당시 중령급이어서 부하들을 거느리고 서울 주요 거점을 장악하고, 8기생들은 실무를 담당했다. )

참고 : 박정희와 육사 5기 김재춘, 8기생들 김종필과 김형욱의 긴장과 갈등에 대해서

클릭 -> http://bit.ly/2hDmT96


2. 박정희 성격 묘사, 김종필은 박정희가 약한 사람이라고 했다. 약했기 때문에 의심이 많고, 의심이 많아서 부하들을 잘 믿지 못했다고 말했다. 맞는 말로 들린다. 박정희의 정치 행태를 추적해보면 그렇다.


3. 육영수 여사는 인색하고 자비심이 부족한 사람이었다고 김종필은 폭로했다. 자기 어린 딸이 굶고 있어도 모른 척 하고 밥도 주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육영수 여사 아버지는 자기 동네에서 '육X지 '라고 불리웠다. 그만큼 욕심이 많다는 것이다. 육영수도 아버지 닮았다고 회고했다. 육영수 이미지는 언론에서 조작한 것이라고 김종필은 말했다.


4. 박근혜는 천상천하 유아독존 성격이고, 다른 사람들은 다 자기 아랫 사람으로 대한다고 했다. 고집이 워낙 세서 아무도 그 고집을 꺾지 못한다고 회고했다.


5. 지금 최순실 박근혜 게이트에서도 박근혜는 절대로 자발적으로 대통령직을 내려놓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종필 자신을 찾아오지 않는 것을 봐도, 얼마나 박근혜가 꽉 막힌 사람인가 알 수 있다고 토로했다. 


6. 최태민과 박근혜 사이 아이가 있다고 말한 적은 없다고 한다. 와전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박근혜가 최태민 말만 믿고 그대로 따라해서 문제가 많았고, 둘이 방에 들어가 하루 종일 뭐하는 지 알 수도 없다고 했다. 


7. 3선 개헌은 김종필이 처음에는 자기도 반대했으나, 박정희가 "임자만 살려고 하나? " 그렇게 말해서, 삼선개헌 운동을 하고 다녔다고 고백했다. (*참고 이만섭 전 의장은 삼선 개헌에 당시 반대하고 나서 박정희로부터 축출당하고 공천권을 뺏겼다)


8. 안철수가 김종필에게 문안을 자주 간다. 안철수는 착하고 순수하다. 

이에 반해 이정현 현 새누리당 대표는 형편없다. (박근혜 종복이라서 김종필을 알현하지 않는 듯 하다) 


9. 문재인은 '문제적 인간' 문제아라고 규정했다. 


10. 반기문은 충청도라서 자기가 지지한다고 했다. 젊었을 적에는 급진적이었으나, 반기문이 그건 '어린시절 이야기'라고 넘겼다고 말했다. (* 믿어지지 않지만, 반기문이 청년시절 급진적이었다고 하니, 무슨 급진성인지 알 수는 없다.)



출처: http://v.media.daum.net/v/20161114130305432


(2016년 김종필 ) 



(2001년 김종필과 박근혜, 아직도 서먹서먹한 사이라고 한다)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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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탕아

    김형욱도 육사 8기임
    제대로 알고 쓰시길.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2017.01.01 22:35 [ ADDR : EDIT/ DEL : REPLY ]
    • 탕아/하하...그럽시다. 댓글 고맙습니다. 김재춘이 5기인데, 김형욱이라고 잘못 쳤군요. 김형욱과 김종필이야 같은 8기이고, 친한 친구였다가, 박정희와 권력다툼에서 서로 정적이 되었다고, 김형욱 <회고록>에 서술되었는데.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 또 댓글 남겨주세요.

      2017.01.02 01:47 신고 [ ADDR : EDIT/ DEL ]
  2. 디디

    김종필씨 말에 소름이 돋네요. 박근혜는 진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보임

    2017.03.01 04:31 [ ADDR : EDIT/ DEL : REPLY ]
  3. 디아블로

    좀 잘알고 씨부려 빨갱이새끼야

    2017.04.24 13:06 [ ADDR : EDIT/ DEL : REPLY ]
  4. 호식

    긴운장 작성하는데 고생했습니다.잘읽어습니다

    2017.12.13 12:48 [ ADDR : EDIT/ DEL : REPLY ]

1977년 10월 28일 박근혜 어록, 2016년 10월 최순실 국정 농단 및 부정 축재 예언하다.


1977년 10월 28일, 충청도 청주에서 열린 새마음갖기 운동 충북도민 궐기대회에서,  박근혜는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흐르는 물은 부패하지 않지만, 아무리 맑은 물도 한 곳에 정지해 있으면 상하고 (부패) 만다"


1. 구국선교단과 새마음갖기 운동본부의 차이점은 ?


1977년 1월 21일. 최태민은 새마음갖기 국민운동 본부를 발족한다. 대한 구국선교단에 이은 두번째 최태민과 박근혜의 공동 정치 작업이었다. 


최태민의 새마음갖기 국민운동 본부의 목표는 국민의 도의심을 고취시켜 국민들의 정신을 개혁시키는 것이었다.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다. 1975년 박근혜의 정치적 데뷔 시절 최태민이 구국선교단의 정치적 구호와 목표가 1977년 새마음갖기 운동과 차이가 그것이다. 

 

최태민이 새마음갖기 운동의 기치로 내건 것은, 구국 선교단의 반공 멸공이라는 극우적 이데올로기나 반-북한 반 중국 친미와 같은 냉전 사상, 기독교 십자군대 창설과 같은 정치-군사적 표어가 아니었다. 오히려 국민들의 일상 생활과 의식을 윤리적으로 통제하고 각성시키는 노선으로 전환했다. 


최태민은 새마음갖기 운동 본부 발족식에서 느닷없이 경로사상, 충효 사상을 내걸고, 노인들을 위한 병원을 개설한다고 하고,경로 마을을 짓자고 했다.


2. 시민사회 동원화 방식


최태민의 새마음갖기 조직은 어떠한 단체와 조직들을 움직이고 동원했는가? 이러한 시민사회 조직적 동원 방식은 대한구국선교단과 유사했다.


- 대한 구국 봉사단,

- 구국 여성 봉사단,

- 서울시 의사회

- 서울시 한의사회,

- 한국 예술 문화 단체 총연합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1976년 구국선교단 활동시, 최태민과 박근혜는 한국노총도 위 시민단체들과 단합대회에 참가시켰다.  


<자료1> . 1977년 1월 21일자 신문, 새마음갖기 국민운동 본부 (본부장 최태민) 1월 19일 발족.





<자료> 1977년 10월 29일 자,


충청도 청주에서 열린 새마음갖기 운동 충북도민 궐기대회,  박근혜 발언.


"흐르는 물은 부패하지 않지만, 아무리 맑은 물도 한 곳에 정지해 있으면 상하고 (부패)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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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민은 박근혜가 박정희 후계자가 되길 바랬을 것이다. 최태민에게 김재규의 10.26 반란은 최악의 적이었다. 최태민의 구국선교단이 1975년 세상 바깥으로 나올 수 있었던 계기는 당연히 민주적 정통성이 없는 박정희 유신체제였다. 


따라서 당시 최태민과 박근혜의 정치는 어떤 독립적인 세력이라기 보다는 박정희 체제의 혹과 같은 조직이었다. 차지철 박정희 비서실장이 독일 나치 SS 근위대 흉내를 낸 것과 또 다른 종류의 정신넋나간 정치 행태가 바로 최태민의 구국선교단이었다. 


물론 최태민의 꿈은 박근혜를 근혜양 퍼스트 레이디 대행에서 대통령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최태민의 딸 최순실은 박근혜 정부 출범 전부터 정치,외교, 국방, 경제, 문화, 행정부 인사까지 깊숙이 개입했다. 이러한 최순실의 정치 행태의 '기원'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최순실은 최태민을, 박근혜는 박정희를 흉내냈다.  과연 최태민은 포괄적인 정치 기획을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최태민의 구국선교단이 내세운 공식적인 정치 입장들을 당시 신문을 통해 알아보자.


1. 1975년 4월 23일자 동아일보 7면, 조그마한 기사. 


최태민은 박근혜를 앞세워, 구국선교단 총재가 되었다. 박근혜 당시 나이는 23세 (만)였다. 구국선교단 선언문에서는 냉전 체제 하에서 북한과 중국을 주적을 내세웠다. "김일성의 중국 방문은 전쟁을 도발하기 위한 노골적인 행위이니, 일부 정치인 재야인사 종교인 학생들은 극한 투쟁이나 정치 혼란만을 꾀할 것이 아니라, 반공 기치 아래 뭉치자"고 말했다.


- 최태민 구국 선교단에서 지목한 내부 적들은 바로 박정희 유신독재에 저항했던 대학생, 재야인사, 야당, 민주화 운동을 하던 종교인이었다. 

- 반 유신독재 , 반 박정희 세력이 북한과 중국 편이라고 최태민은 주장했다.

 




2. 1975년 5월 12일자, 경향신문, 


최태민의 구국선교단이 임진각에서 기독교 초교파 구국 기도회를 개최했다. 5천명이 참가했고, 박근혜도 참석했다. 


당시 대학가는 박정희 유신체제 반대로 휴강하고 있었고, 이에 대한 신문기사가 박근혜 사진 옆에 실렸다. 


최태민은 "승리를 위해 경제력 배양과 아울러 사상적 무장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기독교인들이 십자가를 짊어지고 총화단결해 하나가 되자"고 했다. 

- 자유와 양심을 사랑하는 정의사회 구현 

- 공포의식과 사회불안감을 타파하고 사회윤리의식을 정화하여 '명랑사회 건설'

- 조국의 통일과 복음국가 건설 등 5개 항이었다.



(정의사회 구현은 제 5공화국 전두환 기치,

명랑사회 건설은 독특하다. 딴지일보도 아니고.

복음국가 건설은 이명박 정권과 유사하다)


- 당시 박정희 정권은 기독교는 물론이고, 불교 세력까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안보 기원 법회"를 개최하게 했다.







3. (국방 외교 정치 개입) 


1975년 5월 22일, 최태민은 그의 부하들을 이끌고 병영 생활 체험을 한다.





4. 1975년 6월 15일. 최태민 구국선교단, 전국 조직화 박차를 가하다. 인천 2000명 


"나의 행복, 내 가족만의 행복을 위한 기도는 진정한 기도가 아니다"  "기독교인들이 민족과 조국을 위해 " 기도해야 한다고 주창하다.







.

1975년 6월 22일, 40만명이 박정희 유신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동원되었다.


대한 기독교 장로회 등 18개 개신교가 참가했다.


"온 국민이 방황, 허용, 부정의 잠에서 깨어나라고" 기도했다.


"자유 위해 나라 지키자" 




5.  구국 선교단 군사 조직을 표방하다. 


1975년 6월 23일, 최태민 구국선교단 자신감 보여주다.

20만 구국십자군 목표로 설정하다.


구국선교단 십자군 창설하다.


서울에 사령부를 두고, 각 시도 단위로 군단, 각 개체, 회단위로 분단을 조직, 매주 토요일 정기적으로 기본군사 훈련을 실시한다.





6.  1975년 8월 8일자 신문, 


최태민 구국선교단 강화 특수 군단 발단.

멸공대, 기동대, 전도대 각각 500명씩 1천 500명 군단 대원 발족식을 하다.


- 위기에 처한 조국을 구하자 (*이는 박정희 유신 독재가 저항에 부딪히고 있는 것을 '위기'라고 함)


- 기독교인들이 순국하는 자세로 조국을 지키자


- 기독교의 선과 미로써 조국 성업에 총매진하자.








7.  1975년 10월 31일자, 최태민 구국선교단, 통일 표방, 학계를 조직화하다


최태민은 형식적으로 대한구국선교단 부설 조국 통일 문제 연구원을 만들었다. 

통일문제연구소 원장에 한태수 박사 (한양대 정법대학장)가 임명되었다. 







8.  1975년 12월 10일자 , 동아일보.


최태민 구국선교단과 서울시 의사회가 "야간 무료 진료 센터"를 열었다. 그러나 실제 의료 혜택을 볼 수 있으려면, 최태민의 구국선교단 소속 목사의 추천을 받아야 한다.

영세민 대상은 새마을 취로 사업 대상자이고, 구국 선교단에서 지정한 교회의 목사가 그 영세자를 추천해야만 야간 무료 진료 센터에서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구국선교단의 조직을 확대하고, 조직원의 정체성을 강화하기 위해서 "야간 무료 진료 센터"를 만든 것이다.


- 시민사회에서 의사회를 조직하고, 간호사등 노동력을 동원해냈던 구국선교단, 최태민.

박근혜와 박정희 지원과 허가없이 서울시 의사회를 움직일 수 있었겠는가?






사진 자료: 부산 (멸공이라는 단어가 보인다) : 친절, 청결 


야간무료진센터, 1976년 5월 15일 개원

부산시 의사회

부산시 본부

부산직할시 십자군 부산 ...

차량: 대한 구국 선교단 야간 무료 진료 센타 

차량 번호는 : 가 7528 


부산: 무슨 동? 인지는 모름. 




8.

1976년 박정희와 최태민, 박근혜


구국선교단 야간 진료 센터를 방문했다던 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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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2016. 2. 13. 14:29

박근혜 통치스타일은 박정희의 '군사작전'을 흉내낼 뿐이다. 전두환-노태우는 스네이크 박정희의 '변신술'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다. 최근 현대사 책들을 다시 검토하면서, 50년대~70년대 선배들의 투쟁에, 그들 중 일부는 이후에 변절했다할지라도, 총에 맞고 죽어간 감옥에 투옥된 선배들을 다시 생각해 보고 있다. 2016. January 20 at 12:27pm · 

박정희는 그 '동지들(육사 5기, 육사 8기)'도 집권연장의 '폭죽'으로 사용해 하늘에 아름답게 날려버렸다. 결국 그 동지들 총 맞고 박통이 박살나버렸지만. 그야말로 배우 황정민 50배를 능가하는 변신의 귀재, 스네이크 박정희의 '화해의 죽음'은 '죽음의 전설'이었다.

역사 책 속에서 다시 깨닫는다. 박근혜 덕택에 말이다. 전두환-노태우는 박정희 체제 하에서 18년간 '군사작전 (블리츠-크리크 Blitzkrieg)식 적군 및 경쟁자들 섬멸작전을 배웠다. 전두환-노태우가 박정희에 비해 소심했던 것은, 동지들의 총 맞고 죽지 않기 위해 '돈다발'을 동지들에게 자주 자주 찔러주면서 박정희처럼 '직접적 섬멸'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전에 난 미 노스캐롤라이나 미 해병대 라이언 상사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중동에 대 테러전쟁에 참여한 전쟁 베테랑이다. "(전쟁터에서 죽음에 대한 공포) 무섭진 않냐?" 는 질문에 "적을 꼭 죽여야겠다고 쏘는 건 아니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쏘는 거다"

군사작전식 정치라는 것은 '먼저 쏘기다'.

 두 박통들은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적을 섬멸하고 블리츠클리크로 집중포화해서 콕 꼬집어 죽이는 것일 뿐', 꼭 그들이 인간적으로 미워서 그러는 건 아니다. '내가 이 전쟁터에서 총을 먼저 쏘지 않으면 적의 총탄에 내가 죽기 때문이다' 그게 박정희식 정치였다. 적도 동지도 1초, 3초, 2년, 10년 가는 것일뿐, '내가 살기 위한 군사작전'만 있을 뿐이다.

박근혜 말대로 '저런 건 슬픔도 아니다'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벌꿀 (꿀벌)처럼 열심히 매일 매일 적들과 경쟁자들을 섬멸하기 위해서 벌꿀 벌꿀을 따야 한다. 쉴 새가 없는 것이다. 유병언 죽음의 쇼도 해야 하고, 정보기관 '손발'도 필요하면 천국 지옥으로 파견보내고, 온라인에서도 'Blitzkrieg' 팀을 만들어서, 혼외 자식이 있는지 없는지, 적을 섬멸 타격할 모든 자원을 가동해서, 화염방사로 자존심과 자긍심을 불태워 씨를 말려야 한다.

꼭 그들이 인간적으로 미워서가 아니다. 그들의 정치적 이념은 이렇다. "산다는 게 다 전쟁터이고, 내가 배반하지 않으면, 내가 먼저 쏘지 않으면 내가 죽기때문이다." 이런 정치적 가치와 이념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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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는 1961년 516 군사쿠데타 당시, 장도영 참모총장을 앞장 세웠으나, 3개월 후 반혁명분자로 실각시키고, 미국으로 망명보냈다.





박정희는 516 군사쿠데타 주력 군대였던 육사 5기 (오른쪽 김재춘)와 육사 8기 (왼쪽 김종필)를 서로 충성 경쟁시키면서, 처음에는 김종필을 중앙정보부 창설 책임자로 내세우다가, 그 다음에는 육사 5기 대표격인 김재춘에게 자유민주당 창설을 맡기고, 김종필의 '공화당'과 경쟁을 부추긴 후에, 최종적으로 김재춘을 내쫓고 김종필을 등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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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 : 왼쪽, 김형욱: 가운데 ) 



박정희는 육사 5기 김재춘 등을 권력에서 배제한 이후, 육사 8기인 김종필과 8기생 김형욱을 다시 등용하고 서로 경쟁시킨다. 이북 출신이자 반공반북주의자였던 김형욱은 중앙정보부장을 6년간 재임하면서 동백림 사건, 인혁당 사건, 통혁당 사건 등을 발표했고, 심지어 박정희와 김종필의 좌익 경력을 문제삼고 이를 세탁하기 위해 노력할 정도였다. 그러나 박정희는 김종필과 김형욱 어느 누구 편도 들지 않고, 둘 다 견제하고 둘 다 용도 폐기했다. 
이후 김형욱은 미국에서 유신독재 박정희 타도를 외치다가, 1979년 10월 살해당했다. 
군사 쿠데타 주역들 내부에서 서로 매도하고 서로 죽이는 결과를 낳고, 참혹한 배신과 배반의 역사를 남겼다.





박정희는 1961년 516 군사쿠데타 당시 육사생도였던 전두환과 노태우 (육사 11기)를 집권 내내 지원했고, 이들은 영남 출신 육사 장교 모임인 '하나회'를 윤필용과 더불어 만들었다. 

박정희는 군사쿠데타 주역이었던 육사 5기와 육사 8기를 견제할 차세대 육사 11기를 내부에서 키웠다. 전두환은 1961년 516 군사쿠데타 친위 시가지 행진을 벌였고, 그 이후 박정희에 대항하는 육사출신 선배들 (육사 5기, 육사 8기)과 경쟁하면서 자파인 '하나회'를 키워나갔다. 이로써 1979년 박정희의 사망 이후, 1212 군사쿠데타를 감행할 물리적 군사력을 전두환은 보유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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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민주당2016. 1. 21. 01:56

(채현국 할배 스타일) 청년들아, 구직하는 청춘들아 똑똑히 보아라, 4월 13일 4년 연봉 50억짜리 구직 시험치는 사람들이 어떻게 취직하는지를! '연봉' 이아니라, 국민이 낸 혈세라는 차이가 있지만! 자기소개서를 쓰는 것을 잠시 멈추고, 413 구직자들의 경쟁율에 응시하라!





( 채현국 선생의 어록, 413 총선 구직자들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


[논평] 이철희소장 출사표, 노량진 9급 공무원 시험준비생 공시족보다 절실하지 못하다.


이소장은 핫하게 붙어보고 안되면 ‘쿨’하게 사라진다고 했다. 일견 ‘쿨’해이지만 억수로 ‘언쿨’하다. 공무원 시험보는 청년들을 다룬 ‘공시족’ 다큐멘타리를 보라. ‘핫’하게 시험응시해보고 ‘떨어지면’, “어머니 아버지 저 떨어졌어요” 쿨하게 돌아설 수 없다. 그들은. 


국회의원 직업도 마찬가지이다. 절실해야 한다. 아니 100배 더 뼈저려야할 지도. 이소장은 ‘이념의 빈곤함’은 쿨하게 깠지만, 정작 자신이 주창하는 ‘민생’은 개인정치연구소인 ‘두문’에서 두문불출했다. 생생한 절실함, 민생의 깊이가 보이지 않는다.


두 번째, 이소장이 말한 “복지국가를 이룩한 모든 나라들에는 예외 없이 튼실한 개혁정당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 문장은 틀린 것도 맞는 것도 아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과 미국 캐나다가 복지체제를 만든 것은, 전쟁 범죄자들인 유럽국가들 내부 보수파들이 ‘양보’하고, 진보좌파들과 노동조합들의 목소리가 반영된 것이었다. 


이론적으로도 실천적으로도 복지국가는 보수정당도 다 할 수 있는 것이다. 새누리당도 '잔여 복지 체제'는 구축하고 있다. 그게 50년대~70년대 일부 서유럽 국가의 '보편적 복지체제'는 아니라 할 지라도. 


박근혜가 “아버지가 이룬 경제성장, 이 근혜가 복지로 돌려드립니다” 이 사기전술에 속았다고 해서, 마치 ‘더’민주당이나 통합정의당과 같은 진보정당이 복지국가를 건설할 수 있고, 민주당만이 ‘좋은 정당’이라고 한다면, 이런 자만은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에서 다시 패배할 확률이 높다.


이소장이 ‘더’ 민주당을 살리고 싶다면, 김대중-노무현 정부시절 ‘복지정책’ 대신 삼성경제연구소 보고서 수용했던, 골수부터 새누리당과 정책이 일치한 국회의원들과 과감하게 결별하거나 재정비해야 한다. 

이소장이 민주당 환골탈태를 위한 어떤 ‘결의와 비전’이 출사표에는 보이지 않아 ‘쿨’ 당도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외환은행 헐값에 사들여 5조원 이익보고 '먹튀'한 론스타 (전세계적으로 이런 단기간 이익을 갈취한 사례는 찾아보기도 힘들다. 그것도 국가간에)는 노무현정부시절 발생한 일이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세 번째, 이소장의 ‘이념과 가치’ 폄훼는 정치학의 기본이 아니다. 자기 모순이다. 이소장이 수많은 라디오 폿캐스트에 나와서 정치평론을 무차별적으로 혹은 콕 집어서 집중포화를 날린 그 저격의 ‘눈’에는 이념과 가치가 숨겨져 있는 것이다.


지금 속칭 86 ‘친노’가 이념과 가치를 중시해서 ‘정치 기술과 타협정신’이 부족하다고 말하고자 함인가? 친노를 포함해서 ‘더’ 민주당은 가치와 이념 자체가 모호하거나 새누리당과 구별이 없는 경우가 더 문제였거나 시대를 선도하는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이념과 가치들’을 발굴하지 못한 게 오히려 더 문제이다.


정치학과 실제 정치에서 ‘이념과 가치’는 매일 매일 변화하는 대중들의 희로애락을 반영하고, 그것들과 대화하고 때론 이소장말대로 ‘타협’하고, 때론 ‘싸우기도’하면서, 지지고 볶고 쌩쌩 부르스를 추면서, 신새벽 온 세상이 조용할 때, 어제와는 다른 ‘이념과 가치’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안철수의 ‘이념의 종말’ 타령은 정치학 제 1문제에 대한 ‘범생이’ 오답이다.



정치 행위는 우리 동네 사람들에 대한 ‘공적 서비스’이다. 공적 서비스는 무차별적인 게 아니라, 일의 순서가 있다. 시민들이 낸 세금으로 정치할 때, 그 세금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중요한 일부터 순서를 정해서 그 다음 ‘공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좌우를 막론하고 현대정치의 기본이다.



그 ‘공적 서비스’ 순서, 1번, 2번, 3번,......, N번을 정하는 게 바로 ‘이념과 가치’이다. 선거란 그 ‘이념과 가치’의 경쟁 공간이다. 정치에서 ‘이념과 가치’는 축구로 치면 ‘슈팅 능력’이다. 공을 찰 능력도 없는데, 어떻게 골을 넣는단 말인가? 


손으로 공을 들어서 상대방 골대에 가져다 집어 넣겠다는 것인가? 그것은 ‘언쿨’한 반칙이다. 지금 유권자들이 '그 놈이 그 놈이다' 그러는 이유는 새누리당 민주당 국민의당 의원들이 자기 '친구들'이나 '있는 놈들' 편 들어주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대구, 부산, 광주, 전주 다 동일한 민심이다. 


이철희 소장, 아직도 새누리당과 큰 줄기에서 차별이 많지 않는 ‘더’ 민주당에 들어가, 반칙과 ‘언쿨’이 난무하는 것을 폿-캐스트 중계방송할 게 아니라면, 이철희 소장의 ‘이념과 가치’라는 슈팅능력을 장착하고 그 다음 경쟁대상들과 ‘타협,토론,조정’하기 바랄 뿐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철희 소장은 ‘소고기 묵고 나온 국회의원들’ 이빨 쑤시는 조연에 그칠 것이다.


분패도 절실하게 패배하면 팬들은 박수친다.




신문기사: 이철희 "핫하게 붙어보고, 지면 쿨하게 가겠다" 


박세열 기자 2016.01.20 10:08:2


"시민이 아메리카노 사주는 국회의원 되고 싶어"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32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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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계획2015. 12. 15. 18:57

송호근(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은 한국이 '미래담론'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4대강 같은 엉터리 지리학에 기초한 토목공사가 20-30년 가는 미래담론의 가로막았다. 그 이명박 교수 밑에서 송교수가 브레인역할을 하려다가 실패했지 않았던가?


송교수의 허공에 붕뜬, 빈껍데기 '시민성' 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 첫번째 지금은 구한말도 아니다. 비유라고 해도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누구의 잘못으로 구한말, 조선말기라는 것인가에 대한 설명과 분석이 없다. 정치적 책임성에 대한 논의가 빠지면 송교수의 글은 그냥 국민들 야단치기 종아리 걷어라는 것에 불과하다.


- 두번째, 노동자들이 자기 임금만 올리려고 하니까 '시민성'을 학습할 겨늘이 없다고 송교수는 말한다. 사회학 자체가 '열린 주제 분과 학문'이라는 무궁무궁한 장점이 있지만, 구체성에 근거하지 못하면 '붕 뜬 시인'이 되기 십상이다. 서울에서 자기 집이 없는 시민들은 점점 핵심부에서 주변부로 그 다음에 서울 경계선을 넘어 외곽으로 밀려난다. 노동소득이 부족하면 삶의 근거지가 박탈당하는 게 사회학적 현실이다. 


서울은 3층, 5층 연립주택, 상가 빌딩을 소유해서 '집세, 빌딩 임대세'를 받는 계층이 아니면, 월 400만원 이상의 고소득 노동소득자가 아니면 인간답게 살기 힘들다. 물질적 기초적인 삶의 토대가 무너지거나 그 방어선이 뚫리면, 공동체의 미래를 토론하는 '공적 담론 공간 (동네 카페, 뮤지컬, 도서관, 랑랑 카바레, 노래방, 정당 토론회, 김제동의 톡투유 등)' 참여는 힘들다.

- 송교수 주장이 엄청나게 라디컬한 입장이어서, 비정규직이나 치킨집 짜장면집 자영업자를 비판하는 게 아니라, 민주노총 대기업 노동자들의 집단 이기성을 비판하는 것이라고 하면 저 '시민성'은 달라지는가? 그러나 이들도 노동강도 노동시간을 고려하면 '시민성'을 실천할 비-노동, 비-생산 시간은 많지 않다.

- 세번째, 범주 오류, 그리고 구체성의 상실, 서유럽 역사와 중국-한국사 차이에 대한 설명력 결여. 이 기사에 나타난 송교수의 서양역사에 대한 인식은 오류다.


서구 시민은 '국가'와 대결 속에서 시민성을 획득했는데, 한국(북한)은 국가를 구제하느라 '민족주의'에 처 박혔다고 그는 진단한다.


팍스브리태니카, 팍스아메리카나로 대표되는, 또는 1차, 2차 세계대전의 원인들은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로 대표되는 서유럽국가들의 자본주의, 제국주의, 그리고 '팽창적 민족주의'에서 찾을 수 있다. 이건 역사가들의 공통적 견해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중국을 포함한 조선은 그 서구열강의 '민족주의' 요소가 결핍되어 오히려 주권을 상실하는 '패전국'이 되었다. 35년간 일제 해방운동을 해야하는 게 조선이었고, 가장 큰 과제는 '주권 회복'과 '봉건적 질서 타파'였지 않나?


- 네번째, 하버마스의 '공론 토론 영역 (공론장:Öffentlichkeit )에 대한 기계적 대응과 도식들의 오류: 시민사회의 담론 공간의 발생, 성장, 쇠퇴를 논한 독일 사회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가 말한 것을 송교수는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 


하버마스의 교수자격 논문이 '공론장의 축소와 파괴'에 대한 것이다. 17~18세기 절대왕정 군주에 맞서 칸트 (프러시아) 루소(프랑스) 존 로크 (영국), 토마스 페인 (영국) 등이 '공적인 토론의 중요성과 출판,표현의 자유를 획득'이야말로 계몽주의 정신의 기초라고 역설했다. 이러한 자유로운 이성의 놀이공간, 지적 공간, 공부 공간, 정치적 문화적 공간을 파괴하고 축소시키는 게 무엇인가? 그것은 단순하게 말하면 자본주의 이윤추구와 국가권력의 폭력이다.

- 그렇다면 한국 현대사에서 파쇼적 권력과 무자비한 자본의 이윤추구 세력들과 저항하며 계몽주의의 기초인 '이성의 자유로운 토론' 공간을 확대하려고 노력한 집단은 누구인가?


4대강 만들었던 이명박인가, 아니면 시위 복면자를 테러리스트라고 한 박근혜인가, 대학생들 데모하면 위수령 발동해서 경찰도 아닌 군인들 투하해 총기로 위협했던 박정희인가? 박정희 퍼핏급에 해당하는 전두환 노태우는 생략하자.


- 송호근 교수의 글과 기사에는 '주어'가 명료하지 않다.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하는 지배층의 자기 반성과 정치적 퇴각, 양보 없이 중간층의 '정신'만 회초리로 갈긴다고 해서, 한국의 미래 비전과 담론이 생겨나지 않는다. 잘 해야, 중산층, 교양층들을 시민으로 간주하고, 그들이 '재산축적만 하지말고' 시민사회를 이끌어 달라는 윤리교과서적 주문이다.


- 마치며, 우리는 계몽의 삽을 들어야 한다. 송교수의 말을 듣지 않았던 이명박인지는 모르겠지만, 독일 지형과 강의 구조가 다른, 너무나 다른, (독일은 스위스 알프스가 고지대이고, 북쪽이 저지대이지만, 중앙은 평평한 편이고 경사가 없어 완만하다.그래서 강에 배가 많이 다닌다) 한국 강에 보를 설치하고 운하를 만들어놓고 물을 다 썩게 만들어 버렸다.

다시 계몽의 삽을 들고, 4대강의 썩은 물을 다시 흐르게하자.


기사 출처 : 

http://m.media.daum.net/m/media/hotnews/rankingnews/popular/newsview/20131129135509313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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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대통령 선거에서, 결선투표 제도만 있었더라면, 노태우는 당선되지 못했을 것이다. 결선투표가 있었다면 1차 투표에서 36.7%로  1위였던 노태우는 '과반' 획득에 실패했기 때문에, 제 2차 결선에서 2위였던 김영삼과 다시 재선거를 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1차에서 김대중을 지지했던 27%의 표 대부분은 김영삼후보에게 돌아갔을 것이다.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그랬더라면 김영삼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1988년부터 1992년까지 집권했을 지도 모른다. 왜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은 민정당과의 개헌 논의에서 '결선 투표제도'를 신설하지 않았을까?  회고담 같지만, 그 원인들을 뒤돌아 보자.


1. 김대중과 김영삼, 그리고 민주진영의 '실수'였다. 대통령 선거에서 '결선투표제도'를 빠뜨렸다.


7월부터 9월까지 3개월 동안, 김영삼과 김대중은 6월 항쟁의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 

김대중과 김영삼은 대통령 결선투표 제도를 몰랐는가? 아니다. 그들은 이미 1970년 9월 29일 신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을 치른 적이 있고, 당시 결선투표제도를 신민당 내부에서 선택했다. 


1차 대의원 투표에서 김영삼은 1위를 했으나 47.6%에 그쳐, 과반수 득표율에 미치지 못해 결국 2차 투표를 했다.2차 투표에서 김대중은 대의원들로부터 458표를 획득, 51.8%로 과반 획득, 신민당 대통령 후보로 당선되었다.  (이승만 자유당 시절, 민주당구파 유진산+김영삼계가 민주당신파였던 김대중과 이철승에게 패한 것이다) 결선투표 제도 덕택에, 김대중은 71년 대선에서 두 김씨를 '애숭이'라 표현했던 박정희와 겨뤘다.


 40대 기수론은 김영삼이 69년에 외치고, 정작 후보는 또 다른 40대 김대중이 되었던 것이다. 


87년 6월 시민항쟁으로 전두환 '호헌 선언'을 깨고,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지만, 그 대통령 선거 방식과 내용에 대해서는 정밀하지도 장기적이지도 않았다. 더군다나 1970년 김대중과 김영삼 모두 '결선 투표제도' 경험이 있었고, 1987년에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에 더 아쉬운 역사적 '실수'다. 


2. 세간에 '돌대가리'라고 놀림당한 전두환보다 계략이 뒤졌다.  새 헌법 양당 타협안은 8월 31일에, 국민투표에 통과된 것은 10월 27일이다. 그렇다면 김영삼과 김대중의 후보 단일화 실패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거나, 못했기 때문에, '결선투표제도'를 개헌특위에서 다루지 못했는가? 이건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런 해석도 전두환과 민정당의 87년 정치계획표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정치적 무능'이라는 비난은 피해갈 수 없다. 


실제로 전두환은 4-13 호헌조치 이후, 전민 항쟁이 발생하자, 6-29 선언 이전에 이미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 후보가 분열하면, 민정당 후보가 승리할 수 있다는 계산을 했다. 전두환과 민정당이 6-29 선언을 통해 노태우를 그 후보로 내세운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정치 일정에서 '새로운 헌법' 타협은 언제 완료되었는가? 8월 31일이다. 10월 25일 고려대 집회에서 김영삼과 김대중의 '결별'이 현실화되었고, '직선제 헌법 (제 6공화국 헌법)'은 10월 27일 국민투표로 통과되었다. 


3. 1987년 7월 15일 민주당 (김영삼 당시 대표) 의원들이 '새 헌법' 토론 내용들을 보면, '결선투표제도'나 총선 '비례대표 제도'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었다. 


당시 민주당 의원들이 토론한 내용들을 잠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동학정신을 넣자, 한국 영토를 다시 정하자, 4-19와 5-18 정신을 강조하자, 근로자라는 단어 대신 노동자를 사용하자 등이다.


김영삼 대표는 대통령 선거를 빨리 앞당겨서 실시하고,13대 총선도 대선 이후 1개월 이내에 실시하자는 발언을 했다. '대통령 선거'가 급했고, 자신이 후보가 되어 당선되는 게 급선무였다는 게 김영삼에게 가장 중요했지, '결선투표'나 '대통령 제도 개선'에 대한 실질적인 고민은 없어 보였다.


4.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삼선 개헌으로 다시 대통령에 당선된 박정희는 1972년 유신헌법을 만들 때, 한태연과 갈봉근 같은 법학 교수들에게 프랑스 드골, 스페인 프랑코, 싱가폴 리콴유, 라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대통령 제도들을 연구하게 했다. 


그렇다면 1987년 당시, 왜 김영삼 (민주당 대표) 혹은 김대중은 프랑스 사회당 미테랑이 삼수 끝에 1981년 대통령 선거에서 1차 투표에서는 2위를 했지만, 2차 결선투표에서 1위를 했다는 것을 연구하지 못했을까?


소결론은 다음과 같다.


(1) 1970년 신민당 대통령 후보 당내 경선에서 김대중과 김영삼은 '결선투표' 경험이 있었다.


(2) 1987년 대통령 선거에서 '결선 투표제도'를 새 헌법에 포함하지 못한 것은, 아니 하지 않는 것은, 결선투표가 없는 상황에서도, 혹은 김영삼-김대중의 후보 단일화 없이도, 1위를 할 수 있다고 믿었다. 김대중은 잘 알려진대로, 4자 필승론을 당시 주창했다.


(3) 위와 달리, 그냥 실수였을 수도 있다. 김영삼과 김대중은 결선투표 제도의 중요성을 알고서도, 조항에 삽입하지 않는 '실수'를 범했다. 


5. 교훈과 과제


대통령제도를 유지하는 한, 결선투표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87년과 같은 상황도 막고, 야당 분열이라는 여론도 제도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유럽 대부분 국가들과 같이 '내각제도'와 '수상제도'를 채택하려면 '개헌'을 해야 한다. 87년 제 6공화국 헌법 제도 단점과 문제점들을 여론화시킬 필요가 있다.


자료


1987년 10월 25일 김대중과 김영삼은 사실상 '단일화' 실패를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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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7월 15일, 새헌법에 대한 민주당 내부 토론 내용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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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2월 16일 대통령 선거 결과







1987년 10월 27일 국민투표로 '새 헌법'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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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9월 15일자, 동아일보, 김대중계와 김영삼계 '단일화' 논의 언급, 낙관한다(이용희: DJ) 와 두 분이 알아서 결정해야 할 일이다 (YS 계, 김동영) 등 언급, 구체적인 방안 등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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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어: 결선투표제 (runoff : the two round system : the second ballot)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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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참고 자료: 유신 헌법: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061150

    2015.12.06 18:5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