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음악사1 가수 이난영, 목포의 눈물, 1935. 김해송 고복수 재즈 1936년. 타이거즈 '목포의 눈물' 대중 음악사. 이난영은 생계를 위해 노래를 불렀다. 지독한 가난에 시달리고, 초등학교도 중퇴해야 했던 이난영과 이봉룡 오누이였다. 제주도 청심관이라는 영화관에서 막간 가수로 일하다가 그 영화관 주인의 추천으로 가수의 길을 갔다. 목포 고향집 아버지의 가난과 술주정 때문에 어머니가 제주도 청심관 주인집 가정부를 하고 있었다.목포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제주도로 간 이난영(이옥순)이 경성으로 가게 되어 불사조를 히트시켰다.하춘화보다는 나이가 많고 아이유보다는 더 적은 십대 중반이었다. 이난영의 길에 일제시대와 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온갖 상처 투성이였다. 이난영과 그 오빠 이봉룡 (목포는 항구다 작곡가) 모두 일제 동원령에 굴복했다. 이난영의 남편 김해송 작곡가도 일제 동원령에 협조했다.. 2023. 1. 10. 이전 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