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2021. 5. 10. 13:04

김앤장이 점령한 재판정-변호사도 김앤장, 판사도 김앤장-지난해 임용 경력법관 30% 대형로펌 출신, 후관예우 우려

법원 억지법리로 한국게이츠 노동자 3억5천 손배가압류 인정

 

노조 활동하면 일자리도 재산도 빼앗는 나라

 

자본의 노조혐오 부추기는 법원, 대형로펌과 한솥밥

선출되지 않은 권력 김앤장의 오만 시민사회가 막아야

 

법원은 박해받는 노동자의 절규를 끝내 외면했다. 지난 4월 20일 대구지방법원 서부지원은 한국게이츠 노동자에 대한 회사의 부동산가압류 결정을 다시 한번 인가했다.

 

한국게이츠 노동자는 2020년 6월 26일, 국제먹튀 투기자본 블랙스톤의 일방적인 공장폐업에 맞서 투쟁을 시작했다. 연평균 60억 이상 흑자를 내는 알짜배기 기업이 한순간 문을 닫고 지역사회에서 누렸던 혜택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모두 증발했다.

 

당연히 이를 인정하지 못하고 한국게이츠 흑자·위장폐업에 항의하며 공장 정상화를 요구하는 노동자에게 돌아온 것은 잔혹한 손배가압류다. 재판부는 가압류 이의신청을 인정하지 않고 모든 책임을 노동자에게 몰았다. 게이츠 노동자가 떠안은 손배가압류 규모는 약 3억 5천만 원이다.

 

담당 판사는 판결문에 ‘해산 및 청산과정에서 이뤄진 노동자의 쟁의행위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절차와 방법 등에 있어 정당하지 않으므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적었다. 노동자의 정당한 노동조합 활동에 위법성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측보다 법원이 한 발 더 나갔다.

 

청산과정에서 쟁의행위 자체가 불법이라고 규정했다. 이는 조합활동과 쟁의행위를 구분하지 못한 것으로 법리적 문제가 있는 판단이다. 해고를 다투고 있는 노동자가 조합활동을 통해 부당해고를 주장하는 것이 왜 불법인가?

 

흑자기업을 사모펀드가 노동자와 지역사회의 반대도 무시하고 일방 폐업하는 것이 ‘특별한 사정’이 아니면 도대체 무언가? 법원의 판단은 어딜 들여다 봐도 노조혐오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러한 판단의 배경에 김앤장이 있다. 김앤장 변호사가 대리한 사건을 김앤장 출신 판사가 처리했기 때문이다.

 

해당 가압류 이의신청에 대해 원결정을 인가한 재판관은 2017년 판사 임용 전까지 김앤장 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였다. 대형로펌이 소속 변호사들에게 판사 임용 시 편의를 봐주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결국 판사가 법복을 벗고 대형로펌으로 가고, 대형로펌 변호사가 경력법관에 임용되는 방식으로 사법부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해온 것이다.

 

법관 사건배당 예규는 변호사로 재직한 경력이 있는 법관이 재직했던 법무법인에서 수임한 사건을 배당받지 않을 것을 규정하고 있다. 다만, 퇴직한 지 3년으로 한정하고 있어 그 범위가 매우 좁을 뿐이다.

 

대한민국 사법부를 손에 쥐고 흔드는 김앤장은 없어져야 한다. 김앤장은 회전문 인사로 한국사회 지배구조에 뛰어들어 권력과 그 과실을 탐했다. 또, 자본을 위해 노조파괴를 기획 조종하여 법의 이름으로 인권을 파괴했다. 노조활동이 불법이 아니라 법정을 장악하고 자본의 손배가압류를 편드는 김앤장 법률가의 존재가 불법이다.

 

노조활동을 억압하고 탄압하는 수단으로 쓰이는 자본의 손배가압류도 제동을 걸어야 한다. OECD 국가 중 쟁의행위나 노조활동을 이유로 손배가압류를 거는 곳은 한국이 유일하다.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유럽에서는 파업을 이유로 노동자 개인에 대해 손배가압류를 거는 것조차 상상하기 어렵다. 이미 ILO는 수차례 한국의 손배가압류 문제 해결을 권고했다. 그러나 ILO 핵심협약 3가지를 추가 비준하고 내년 발효를 앞둔 지금도 여전히 한국의 법제도는 과거에 멈춰 노동기본권을 제약하고 있다.

 

대구시민 1만 6천여 명이 한국게이츠 손배가압류 철회와 공장 정상화를 위한 서명에 동참했다. 사법부는 시민들도 알고 있는 진실을 외면 말고 사법정의를 실현해야 한다. 금속노조는 본안제소신청을 통해 한국게이츠의 손배가압류가 노조탄압을 위한 위법행위임을 밝힐 것이다.

 

한국게이츠 폐업과 부당해고가 1년을 앞두고 있다. 이제는 미국계 사모펀드 투기자본 블랙스톤의 무법과 이에 결탁한 사법부의 전횡을 멈춰야 한다. 한국게이츠 문제 해결을 위해 필요한 것은 가진 자에게 한없이 기울어 있는 법정이 아니라 상식이 살아있는 정의다.

 

외국자본투자기업의 먹튀를 막는 법제도의 규제와 한국게이츠 노동자의 원직복직이 정의다. 더 이상 외국자본투자기업이 온갖 이익을 챙기면서 이 땅의 산업과 노동자는 망가트리고 내버리는 역사를 반복하지 말자. 선출되지 않은 권력 김앤장이 국가를 흔들지 못하게 투쟁하자!

 

2021년 5월 9일 전국금속노동조합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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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비교/노동2021. 5. 9. 09:45

평택항에서 산재로 사망한 23살 고 이선호군의 친구입니다.

 

청원기간

 

21-05-08 ~ 21-06-07

 

안녕하세요. 고 이선호군 친구입니다.

 

하루 평균 7명이, 해마다 2400명 이상이 노동현장에서 산업재해로 사망하고 있다지만, 그게 제 친구 선호가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뉴스에서나 보던 산재 사고가 제 친구까지 죽게 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어쩔 수 없던 일이 아니었습니다. 분명히 막을 수 있던 일이었습니다. 무슨 거창한 일을 하던 것도 아니고 제 친구는 그저 잔업으로 안전핀이 뽑혀있는 개방형 컨테이너 안에서 쓰레기(나무 합판 조각)를 줍다가 300kg의 차가운 쇳덩이에 깔려 비명도 못 지르고 죽었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요.

 

1. 무리한 인원 감축

선호는 2월 말까지 항구 내 동식물 검역을 위한 하역 작업을 했습니다. 사고가 발생한 개방형 컨테이너에서 작업은 원래 선호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3월부터 원청 관리자가 바뀌면서 인력 통폐합이 이뤄졌고, 사고가 발생한 개방형 컨테이너(FRC) 작업까지 추가로 맡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선호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작업을 하게 됐습니다.

 

2. 전반적인 안전관리 미흡

해당 작업을 처음 해보는 선호는 사전에 어떠한 안전교육도 받지 못했습니다. 때문에 제 친구는 해당 작업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선호에게 이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 말해줄 안전관리자가 현장에 한 명만 있었더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현장에는 안전관리자, 신호수가 없었으며, 안전장비도 지급되지 않은 위험천만한 상황에서 작업이 이루어졌습니다.

 

3. 구조물 노후화

선호가 작업한 개방형 컨테이너 날개의 무게는 300kg입니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개방형 컨테이너 구조물은 고장 난 것이 아닌 이상 간접적인 충격, 진동에 의해 쓰러질 수 없다고 합니다.

 

4. 초동대응 미흡

선호가 300kg의 쇳덩이에 깔려 숨이 끊어져 가는 데도 회사가 처음 전화한 곳은 119가 아닌 윗선(동방)이었습니다. 한차례도 아니고, 3차례에 걸친 보고 과정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는 동안 선호는 아무런 조치도 취해지지 않은 채 컨테이너 날개에 깔린 채 방치되었습니다.

 

5. 정부의 안전관리 감독 부실

평택항은 국가시설이기 때문에, 이곳 현장의 안전관리 책임은 해양수산부에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이러한 책임에 소홀했습니다. 정부가 사전에 관리 감독을 철저히 했다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을 겁니다.

 

안전관리 미흡, 시설물 불량, 정부의 안일한 태도, 즉각 신고하지 않고 윗선에 보고를 거치는 시스템 등은 산재사고를 불러일으킨 전형적인 원인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예측과 예방이 불가능한 것들이 전혀 아닌데, 하면 되는 건데, 돈 아낀다고, 뭐 좀 더 남겨 본다는 생각 때문에 사람이 죽었습니다. 같은 이유로 사람이 계속해서 죽는데 왜 바뀌지 않는 건가요. 왜 책임자들은 제대로 죗값을 치르지 않나요. 죽음마저 교훈이 될 수 없다면 대체 뭘 어떻게 해야 바뀔 수 있는 걸까요.

 

선호는 이미 죽었지만, 아직도 믿기지 않고 너무 슬프지만, 이런 슬픔은 저희가 마지막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시는 선호와 같은 일이 생겨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선호처럼 위험한 현장에서 일하고 있을 청년들을 위해, 모든 노동자들을 위해 다음과 같이 요구합니다.

 

1. 원청인 ‘동방’에 관리 감독 책임이 있는 정부의 책임 있는 사과를 요구합니다. 국가가 관리하는 시설에서 친구가 죽었습니다. 정부 차원의 입장은 무엇이고 해결 방안은 무엇인지 듣고 싶습니다. 그리고 선호 가족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가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2.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합니다. 선호가 도대체 왜 죽어야 했는지 알고 싶습니다. 제 친구 선호가 왜 죽어야만 했는지 정말 그런 허술한 안전관리 현장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는지, 이미 예견된 일을 하필 우리 선호가 당한 것은 아닌지 알고 싶습니다.

 

3. 다시는 선호와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이번 사건이 ‘동방‘ 회사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선호가 사고를 당한 현장과 비슷한 곳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있을 것입니다. 평택항뿐만 아니라 모든 항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다시는 이런 비극을 겪지 않도록, 모든 항만을 전수조사하고 안전관리에 관한 철저한 대책을 마련할 것을 요구합니다.

 

5월 8일 현재 입관절차만 진행되었고 17일째 평택 안중 백병원장례식장에서 빈소를 유지 중입니다. 빈소 안내판에 새로운 사람들 이름이 오르고, 사라지는데 친구 이름만 17일째 그대로입니다. 가족과 친구들이 향이 꺼지지 않도록 밤새워 곁을 지키고 있습니다. 친구가 차가운 냉동고에서 얼른 나와서 마음 편히 갈 수 있도록, 제발 제 친구 선호에 대한 관심을 잊지 마시고 힘을 모아주세요.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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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자연과사람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
    저희 블로그도 들러주세요 ^^
    오늘하루도 행복한 주말 저녁시간 되세요 ^^

    2021.05.09 18:04 [ ADDR : EDIT/ DEL : REPLY ]

역사(history)2021. 5. 8. 14:00

 

출처 기사 https://bit.ly/3xTHUVF

 

 

 

5·18 '북한군 개입설' 거짓의 뿌리…북 특수군 김명국 추적

 

[JTBC] 입력 2021-05-06 20:45 /

[앵커]

 

지금부터는 41년 전 5월의 광주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뉴스룸은 그날의 진실을 가리려고 하는, 이른바 '북한군 개입설'의 뿌리를 추적해 왔습니다. 북한군이 광주에 침투해서 사실상 5.18을 기획하고, 또 시민군을 조종했다는 이 거짓말의 출발점을 확인해 온 겁니다. 그 중심엔 북한 특수군 출신으로, 2006년에 탈북한 김명국이 있었습니다. 2013년엔 방송에 나와서 자신이 직접 광주에 갔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잠적한 뒤에도 이 주장은 북한군 개입설에 이용돼 왔습니다. 저희 취재진은 석 달에 걸친 추적 끝에 김명국을 찾아냈습니다. 끈질긴 질문에 결국, 그는 사실이 무엇인지 털어놨습니다.

 

우선 북한군 개입설이 그동안 어떻게 퍼져왔는지부터 송우영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기자]

 

북한군 개입설을 처음 주장한 건 탈북자 임천용 씨입니다.

 

임씨는 2006년 북한군이 땅굴을 통해 광주에 잠입했다고 주장했습니다.

 

2008년 자신이 바로 광주에 왔던 북한군이라 주장하는 인물이 나옵니다.

 

김명국, 2013년 한 방송에 등장해 사회적 물의를 빚은 인물입니다.

 

[김명국(가명)/5·18 당시 광주에 있던 북한군 : 우리 나이 되는 사람들은 복무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어요. 광주 폭동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조장, 부조장들은 군단 사령관도 되고 그랬어요.]

 

김씨의 증언은 2017년 책으로 나왔습니다.

 

공교롭게도 이때쯤 전두환 씨 회고록에도 북한군 개입설이 언급됩니다.

 

[전두환 회고록 (1권 406쪽) : 무기고 탈취는 군대에서도 고도로 훈련된 병사들만이 할 수 있는 것으로…(중략)…지금까지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북한 특수군의 개입 정황이라는 의심을 낳고 있는 것이다.]

 

김명국의 증언을 토대로 한 논픽션 책 '보랏빛 호수' 줄거리입니다.

 

1980년 5월 19일 황해남도 장산곶 바다에서 두 척의 배를 타고 북한특수군 50명이 내려왔다.

 

 

 

20m길이의 남한 고기잡이배 모양, 유사 시 자폭도 가능한 특수간첩선이다.

 

5월 21일 새벽 2시쯤 서해안에 상륙했는데, 해변 여기저기 돌들이 널려 있었다.

 

19살이었던 나는 특수군 대장 문제심의 호위병, 5시간 정도를 행군해 광주에 도착했다.

 

23일 오전 바리케이드가 놓인 광주의 큰 건물 안에 들어갔고, 우릴 기다리던 시민군을 만났다.

 

27일 임무를 마친 우리는 휴전선을 넘어 북한으로 돌아갔다.

 

북한군 개입설은 당시 북한이 시민군을 지원했고, 계엄군에도 잠입해 서로 총을 쏘게 했단 내용입니다.

 

적화 통일을 위해 북한이 5·18을 기획하고 조종했단 겁니다.

 

지만원 씨는 "5·18이 북한 특수군들이 일으킨 게릴라 전쟁"이라고 주장해왔습니다.

 

가장 강력한 증거로 주장한 것이 바로 '김명국'의 존재였습니다.

 

최근엔 대학 교수가 교단에서 북한군 개입설을 가르쳐 큰 논란이 됐습니다.

 

유튜브 등 온라인에서도 북한군 개입설을 손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2.

 

https://bit.ly/3b9y8EU

 

단독] 5·18 '논픽션'?…탈북작가 "만든 이야기" 실토

[JTBC] 입력 2021-05-06 20:30 /

 

 

[앵커]

 

이 책을 쓴 탈북 작가 이주성 씨도 직접 찾아갔습니다. 이씨는 그동안 사실만을 담았다고 주장해왔습니다. 그런데 취재진이 만나보니, 본인이 지어낸 이야기를 담거나 관련 없는 일을 5.18에 끼워 넣기도 했습니다.

 

채승기 기자입니다.

 

[기자]

 

광주에 남파됐던 한 탈북군인의 5·18 체험담.

 

탈북작가 이주성 씨는 내용은 전부 사실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일부는 자신이 창작했다고도 말합니다.

 

[이주성/'보랏빛 호수' 저자 : (김명국이 이야기한 적이 없대요.) 맞아요. 그건 맞다고. 그건 내가 만들어냈는데 왜 그걸 넣었냐면. (작가님이 만들었다고요?)]

 

남파된 북한군이 고정간첩을 만난 장소로 묘사됐던 광주 무등산의 사찰 증심사.

 

책에는 북한군을 조직, 지휘한 스님 손성모가 증심사에서 이들을 맞이했다고 나옵니다.

 

[이주성/'보랏빛 호수' 저자 : (그러니까 어떤 근거 자료를 갖고 계세요?) 난 이북에서 그걸 듣고 내려왔거든요. (이북에서 들으신 내용이다?) 네.]

 

손성모는 실존했던 남파 간첩인데, 5·18에 끼워넣었단 겁니다.

 

증거는 "내가 북한에서 듣고 왔다"뿐이었습니다.

 

창작은 더 있었습니다.

 

북한특수군이 작전 중 민간인을 살해했다는 내용도 만들어진 이야기였습니다.

 

[이주성/'보랏빛 호수' 저자 : (북한에서) 5·18을 딱 짚지는 않았는데 북한의 남파된 사람들이 이제 간첩 활동을 하잖아요. 하다가 이제 한국 사람들한테 걸리게 되면 무조건 죽여야 된다. (김명국씨 사건이랑 관계는 없네요?) 관계는 없어요.]

 

결국 논픽션이 아닌 이야기에 또 다른 이야기를 섞은 소설이었습니다.

 

 

 

 

https://bit.ly/2SEA7el

 

단독] 북한군 김명국 "5·18 광주침투설은 내가 지어낸 것"

[JTBC] 입력 2021-05-06 20:26

북 특수군 출신 '김명국'…석 달 추적 끝 '진실 고백'

김명국 "5·18 광주 간 적 없다…논란 커져 겁났다"

 

 

 

[앵커]

 

직접 광주에 갔다는 북한 특수군 출신, 김명국은 2013년 방송에 등장한 이후에 사라졌습니다. 취재진은 석 달에 걸친 추적 끝에 김씨를 어렵게 만났습니다. 처음엔 광주에 갔던 북한 특수군이 맞다고 주장하더니, 이후 계속된 만남에서 그동안의 말을 완전히 뒤집었습니다. 5.18 당시 광주에 간 적이 없다고 말한 겁니다. 그동안 논란이 너무 커져서 뒤늦게 말을 바꾸기가 겁이 났다고 했습니다.

 

봉지욱 기자입니다.

 

[기자]

 

탈북 군인 김명국의 실명과 인상 착의부터 파악한 취재진, 수소문 끝에 김씨를 찾았습니다.

 

[김명국 선생님이시죠?]

 

김씨는 자신이 5·18 때 광주에 갔던 북한특수군이 맞다고 말합니다.

 

당시 19살로 북한군 대장을 호위했다고 합니다.

 

[김명국/북한군 출신 탈북민 : (전남도청)지하에다가 큰 전투를 벌일 수 있는 게 있다고 그러더라고. 그게 그니까 다이너마이트 그다음에 무기 몇 정 뭐 이런 걸 가지고 조장이 말한 것 같아. 우린 들어가지 않았어. 우린 안 들어가고. (1층에 계셨어요?) 아니 우린 바깥에 경계를 섰지. 책에 그렇게 돼 있을 건데, 우린 경계를 섰어.]

 

광주에서 철수하며 한국군과 교전도 했다고 주장합니다.

 

[김명국/북한군 출신 탈북민 : 나는 맞아 철수할 때 그 국군 애들이 막 그래서 총을 쏠 적에 한두 놈 나가 맞아서 나가 자빠지는 건 봤어. 근데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겠어.]

 

취재진은 석 달 동안 4차례 걸쳐 김명국을 찾아갔습니다.

 

[김명국/북한군 출신 탈북민 : 아, 좀 오지 말라니까. 자꾸 이렇게 오겠어요? 진짜?]

 

실랑이 끝에 뜻밖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김명국/북한군 출신 탈북민 : (그럼 제가, 저희가 다신 안 올테니까. 광주에 오신 적이 있으세요?) 없어요. (오신 적 없으세요?) 예. 나는 5.18 (조사위)에 가서 우리 조장한테서 들은 얘기를 했어요. 들었고. 들은 걸 그대로 전달했다고 그랬어요. (그럼 광주에 오신 적은 전혀 없다) 예.]

 

김씨는 최근 518 진상조사위원회에 찾아가 진실을 털어놨다고 합니다.

 

자신은 광주에 간 적이 없단 겁니다.

 

남파 간첩을 키우는 대남연락소 소속 전투원이었던 김씨.

 

진위 파악조차 안 되는 조장의 얘기를 듣고, 자신도 함께 간 걸로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김명국/북한군 출신 탈북민 : (조원들이) 조장이랑 같이 내려왔고. 그 얘기를 우리한테 해줬고. (그게 50명인가요?) 50명인지는 모르겠어. 조가 그러니깐은. 그렇게 조가 나왔다니까 그 인원이 그렇게 된 거야. 그거에 대한 걸 얘기하는 과정에 살이 붙어진 거야.]

 

모든 게 전해 듣거나 지어낸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지만원 등 일부 세력이 자신을 이용했다며 억울해합니다.

 

[김명국/북한군 출신 탈북민 : 솔직히 (내가) 이용당한 거는 맞지 않는가? 나는 뭐 그거로 인해서 일전 한 푼 받은 거 없는데. 내가 무슨 도움받고 한 것도 아니잖아.]

 

2013년 방송 출연도 촬영하는 줄 몰랐다고 해명했습니다.

 

이후 논란이 너무 커져, 뒤늦게 말을 바꾸는 게 겁이 났다고 합니다.

 

[김명국/북한군 출신 탈북민 : 그래서 나도 좀 솔직히 말하면 많이 끌려다녔어요. 내 하나의 결심이 이 나라를 바로 세울수 있다면 내 망신스러워도 내 길을 내가 갈 것이다.]

 

김씨는 조만간 얼굴을 공개하고, 광주 시민에게 사죄하겠단 뜻을 밝혔습니다.

 

[앵커]

 

김명국 씨는 내일 저희 취재진과 단독으로 인터뷰를 진행합니다. 얼굴을 공개하고 그동안 감춰온 진실을 말할 예정입니다.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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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비교/의료2021. 5. 8. 06:46

정치적으로 보수적일수록 백신 접종에 대해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미국.

 

출처: 뉴욕 타임즈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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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2021. 4. 27. 01:22

1971년 3월 7일자

 

김기영 감독이 만든 <화녀>에 출연한 윤여정이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윤여정은 그날 수상식장에 여우주연상이 아니라, 인기상인지 신인상인가를 받을 줄 알고 나갔다고 한 인터뷰에서 밝힌 적이 있다. 심사위원들이 막판에 윤여정으로 수상자를 바꾼 것으로 알려져있다. 물론 <화녀>에서 윤여정의 연기는 탁월했다.

 

김기영 감독이 윤여정에게 '재있는 얼굴 funny face'라고 했다고 한다. 

그만큼 개성있는 윤여정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라고 볼 수 있다.

 

김기영 감독은 신인 배우 윤여정과 함께 작업하면서, 영화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1개월 정도를 매일 만날 것을 요구했는데, 그 이유는 신인 배우였던 윤여정의 표정을 읽어내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만큼 김기영 감독은 아직 연기력이 무르익지 않은 새로운 배우였던 윤여정으로부터 '심리극'을 완성시키기 위해서,윤여정 말투와 표정을 촬영 직전에 연구했었다. 윤여정의 회고담이다.

 

윤여정은 당시 김기영 감독이 매일 만나서 차 마시고 대화하자는 '계약서'에 대해서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자기 친구들인 조영남 김민기 등에게 부탁해서, 약속을 잡아서, 김기영 감독에게 '선약'이 있다고 말하면서, 김감독과의 '면담'을 회피하기도 했다고, 윤여정은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러나 <화녀> 영화 촬영 중에, 김기영 감독이 윤여정의 연기가 불충분하다고 판단이 들면, 윤여정에게, '아 저번에 이런 이야기를 할 때, 웃는 표정, 심각한 표정 등' 을 언급하면서, 김기영 감독이 원하는 윤여정의 연기를 이끌어냈다고 한다.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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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슈윤여정 오스카상 수상
    윤여정, 그 이름은 또 하나의 장르다
    백승찬·심윤지·김지혜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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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21.04.27 21:43 수정 : 2021.04.27 23:03인쇄글자 작게글자 크게
    ‘오스카의 여인’ 윤여정의 빛나는 순간들

    윤여정은 55년간 영화와 드라마와 예능을 넘나들었다. 상을 받기 위해 일하지 않았지만, 한국영화사 전대미문의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이 그의 손에 쥐여졌다.윤여정은 “너무 최고가 되려고 그러지 말자. 그냥 다같이 최중만 되고 살면 안 되나”라고 묻는다. ‘최고’가 부담스럽다고 하니, 윤여정 ‘최중의 순간’을 꼽아보면 어떨까. 배우로서의 재능, 인간으로서의 개성이 드러난 세 가지 순간들이다.
    윤여정, 그 이름은 또 하나의 장르다
    영화 ‘죽여주는 여자’의 소영

    폭넓은 감정으로 극단적인 설정 소화

    <죽여주는 여자>(이재용 감독·2016)는 한국 영화사에서 보기 드물게 단호한 결말을 제시한다. 영화 속 탑골공원의 ‘박카스 아줌마’ 소영은 옛 ‘고객들’의 난감한 부탁을 받는다. 몸과 마음이 뜻대로 되지 않아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잃어가는 노인들이 목숨을 앗아가달라고 간청하는 것이다. 세상만사에 공감 능력이 강한 소영은 그들의 부탁을 들어준다.

    소영이 그 대가로 호의호식하는 것도 아니다. 길고양이 밥주고, 코피노 아이 도와주고, 불전에 시주한다. 경찰이 찾아오니 “거기 가면 세 끼 밥은 먹여주는 거잖아요? 올겨울은 안 추웠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무연고 시신으로 화장된 소영의 유골함을 보여주며 영화는 끝난다. 극단적인 설정을 폭넓은 감정으로 소화해야 하는 역할인데, 윤여정의 연기는 그저 담담하다.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대하는 모든 상황을 저녁 늦게 들어온 딸에게 따뜻한 밥 한 끼 차려주는 것처럼 연기한다.

    윤여정, 그 이름은 또 하나의 장르다
    아카데미 수상 소식에 장안이 떠들썩하다. 카퍼레이드라도 할 분위기다. 가장 침착한 사람은 윤여정 본인이다. “살던 대로 살아야지. 제가 오스카상을 탔다고 윤여정이 김여정 되는 거 아니잖아요.”(수상 직후 기자회견)

    윤여정은 <계춘할망> 개봉 당시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김병익의 산문집 중 한 구절을 외워 들려줬다. “우리에게 괴로워하며 진지하게 정색하고 아프게 따지며 힘들여 셈할 일들이 얼마나 남았겠는가.” 윤여정은 “허망함을 허망함으로 받아들이는 관용”을 훈련한다고 했다.

    개선하는 고대 로마 장군은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라고 속삭이는 하인을 뒤에 두었다고 한다. 소영은 빛과 어둠, 쾌락과 고통, 삶과 죽음을 예사롭게 받아들여 더 넓은 세계를 보았다. 윤여정도 그런 것 같다.

    윤여정, 그 이름은 또 하나의 장르다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의 정유순

    ‘네멋 폐인’ 낳은 절제된 감정 연기

    화투를 치고 프로레슬링을 보면 ‘할머니 같지 않은 할머니’일까. 윤여정의 연기를 지켜봐 온 한국 관객들 눈엔, <미나리> 속 ‘순자’에 대한 상찬이 새삼스러울 수 있다. “전형적인 엄마상을 벗어나는 것이 필생의 목적이었다”는 말처럼, 윤여정이 연기한 엄마는 한번도 ‘그냥 엄마’이기만 했던 적이 없다. <네 멋대로 해라>(2002) 속 ‘정유순’도 그렇다.



    일단 설정부터 파격이다. 유순은 알코올중독에 빠진 남편(신구)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아들 복수(양동근)를 두고 집을 나간다. 10년 만에 아들이 찾아와도 미안한 기색이라곤 없다. 도리어 내가 필요한 건 용서가 아니라 돈이라고 말한다. 혼자 아이를 키우고 생계를 꾸리느라 닳을 대로 닳아버린, 그래서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자존심 같은 건 사치가 되어버린 인물이 바로 유순이다.

    “한눈에 봐도 구질구질한 걸 남자라고 불러들이냐? 제대로 된 놈을 만나란 말이야.” “제대로 된 게… 왜 날 만나니?” 자신의 밑바닥을 본 아들 앞에서 쓴 울음을 삼키며 말하는 유순을 ‘엄마’라는 틀에만 가둘 수 없다. 그는 평생 누구에게도 충분히 사랑받지 못한,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자존을 잃지 않으려는 한 명의 인간이다. 세상 사람들은 “남자들에게 빌붙어 산다”고 손가락질하지만, 이는 경제적 자립도 물리적 안전도 확보하기 어려운 가난한 중년 여성의 등 떠밀린 선택이었음을 윤여정은 조금의 감정 과잉도 없이 설득해낸다.

    돈이 궁한 자신 때문에 아들이 소매치기가 됐음을 알게 된 순간, 늘 꼿꼿하던 유순은 결국 무너져내린다. 윤여정의 절제된 감정 연기가 빛나는 순간이자, ‘네멋 폐인’들이 꼽는 명장면 중 하나다. 윤여정은 연기 비결로 ‘절실함’을 자주 꼽는다. “이혼 후 두 아들과 먹고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연기했다”는 그의 삶이 없었다면, 유순이란 전에 없는 엄마 캐릭터는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윤여정, 그 이름은 또 하나의 장르다
    윤여정, 그 이름은 또 하나의 장르다
    윤여정, 그 이름은 또 하나의 장르다
    나영석 예능 속의 ‘여정’

    인생 자체에서 묻어나는 재미와 의미

    “만나서 반갑다. 나는 여정이라고 해.”

    2013년 11월 tvN 예능 <꽃보다 누나> 첫 회, 윤여정의 인사말을 다시 본다. 작품도 배역도 없이, 그저 윤여정인 채로 카메라 앞에 서기로 한 그의 첫 번째 결심이 그곳에 있다. 당시에는 알지 못했지만, 이날 윤여정은 과감하게도 66년 인생을 통째로 들고 나타났다. “아쉽지 않고 아프지 않은 인생이 어딨어”로 시작해 “그래서 내가 헛소리를 좋아해요”로 끝맺는, 농담과 잠언을 오가는 유머 감각도 물론 함께다. ‘배우’인 그가 ‘예능’이라는 낯선 장르에 도전하며 던진, 이 뜻밖의 승부수 덕분에 우리는 모두 ‘윤여정’을 안다. 배우도 탤런트도 아닌, 노인의 얼굴로 청년의 삶을 사는 흥미로운 한 인간의 삶을 지켜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다.

    나영석 PD에게 윤여정은 그 자체로 재미와 의미를 겸비한 완성형 콘텐츠이자 하나의 장르였다. 윤여정은 <꽃보다 누나> 이후 tvN <윤식당1·2>(2017·2018), <윤스테이>(2021) 등 나 PD의 예능에 연달아 출연한 이유를 “나영석을 믿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나 PD가 누구보다 믿은 것은 윤여정이었을 것이다. 방송 초반 <윤스테이>를 띄운 것은 윤여정의 능숙한 영어 실력이었다. 마른 몸으로 진땀을 빼는 ‘윤 사장’의 위태로운 노력 속에 <윤식당> 시리즈는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다. 결혼 후 이어진 미국 생활 10년, “먹고살기 위해” 무엇이든 해내던 생의 습관은 카메라를 거쳐 ‘윤여정’이라는 콘텐츠로 다시 태어났다.

    여행길의 피로엔 “나 누나 아니고 할머니야” 투덜대고 식당을 내야 한다니 “김치볶음밥도 못한다” 짜증내더니, 결국 도전이란 도전은 다 해놓고 “인생은 한번 살아볼 만해. 재밌어 진짜”라고 말하는 사람. 그의 생이 ‘재밌다’면 74세의 나이로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쥐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가 윤여정이기 때문이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104272143005&code=960100#csidxd5875083ac675ce8791238f0f04703b

    2021.04.28 06:1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역사(history)2021. 4. 21. 18:50

1995년 고소영 기사를 보며. 소비생활이라는 측면에서.  40~50과 20~30 세대 차이보다는 공통점이 더 많다. 그리고 차이점은 20~30세대는 노골적인 '자본주의 이윤추구' 논리가 판치던 시대에 청소년기를 보냈다는 것이다.

 

40~50세대는 제한속도 60km 도로에서 자동차를 운전했다면, 20~30세대는 제한속도 150km라는 자본주의 고속도로에서 '대형 사고' 위험을 안고 인생주행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캐나다, 독일, 영국이 1975년~1995년 사이에 겪었던 세대간 '행복 역전'을 한국은 1997년 이후 지금까지 '동일성'과 '차이성'을 껴안고 있지만, 저 나라들과 유사한 방식으로 '행복 역전' 시기를 경험하고 있다.

26년전, 지금 돌이켜보면, 1995년 당시 서울 생활도, 한국 사람들에게 20세기 들어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가장 풍족한 해였을 것이다. 1997년 외환 위기와 그 이후 '복지 삭감, 노동자 해고 자유, 초국적 자본 투자'라는 IMF 긴축통치는 한국인들에게 '자본주의의 이윤추구 논리'가 얼마나 살벌하고 무서운지를 보여줬다.

 

미 클린턴 행정부 재무부 장관, 전 골드만삭스 회장 출신인 로버트 루빈이 한국인들도, 97년 외환위기 이후, '합리적 소비자,경제인'이 되어야 한다고 했는데, 정작에 2008년 로버트 루빈 류의 미국 금융자본주의는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이후, 금융공황에 빠졌다. 

 

고소영이 외친 슬로건 "평범한 건, 딸 질색이예요", 좋은 의미로 해석하면, '나만의 고유한 개성'을 가진 독립된 인격체가 되겠다는 소망과 다짐이다. 비판적으로 보자면, '내 돈, 실력, 명성으로, 남이 소유하지 못한  명품 브랜드를 소비할 수 있는 화폐 크기'를 보여주겠다는 결의이기도 하다.

 

1970년 이후 세대는, 1960년 중반 세대부터, 소위 '문화 세대'이다. 그 이전 세대와 달리, 활자에서 '영상' 세대로 넘어가는 세대이자, 한국 전쟁 이후, 최초로 '정착 문화'가 본격화되던 세대이기도 하다.  박찬욱, 봉준호 감독이 이 세대에 속한다. 

 

2021년 서울시장 보궐 선거 이후, 20대~30대 (1990~2000년 태생)에 대한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면서, 20대 남자가 보수화되고, 20대 남자들이 전부 반-여성주의인 것처럼, 혹은 20대~30대가 40-50세대와 달리 '주식시장 투자' '영끌 모아 부동산 투자' '비트코인 열풍'에 휩쓸려 나간, 마치 '정신 넋나간 , 영혼없는 수전노'로 묘사를 하고 있다.

 

1960년대~1970년대 세대는 '돈 없이는' 살기 힘든 세대다. 그들 부모는 일제 치하~ 한국 전쟁을 겪어, '주먹밥' '소나무 껍질' 파먹고 살았다고 말해도, 60~70년대 세대는 '어머니 아버지, 한번만 더 하시면, 100번째입니다'라고 심리적 전투를 밥상에서 벌였던 세대이다. 

 

그리고 그들 부모세대와 더불어 1990년대, 97년 IMF 신자유주의 독재치하가 오기 전까지는, 20세기 조선과 한국을 통틀어 최고의 소비시대, 풍요시대를 잠시나마 풍미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30 세대는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부터 자본주의 '경쟁' 논리와, '부자 아빠 되세요' 타령을 보면서 자라났다. '내가 실력없으면, 내 부모라도 재산이 없으면, 패배자가 된다'는 불안감을 전 사회적으로 부추켰다. 

독일 히틀러 나치즘의 이데올로기인 '적자 생존'의 논리를 일상생활에서 20-30세대는 당연시 받아들였고, 이러한 나치즘의 생활용어, '엄친아 DNA, 재벌 3세를 부러워하거나 특권을 자연법 사상으로 승격화시키는 미디어' 등은 '나는 애초에 너희들과 달라' '너는 애초에 나와는 달라'라는 식의 태생적인 신분계급사회 이데올로기를 정당화시켰다.

20-30세대가 이런 나치즘 생활철학을 만들었는가? 아니다. 현재 50-60-70세대가 만들어내고 실천한 것이다. 20-30세대의 부모세대인 50~70세대는 1988년~1997년 10년간 한국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소비생활을 경험한 세대이다. 중하층까지 '전세집에 살아도 자동차'를 소유할 수 있는 세대였다. 

 

이 50~70세대의 특징은 자기 부모세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학력이었기 때문에, 자기 자녀 세대 (20-30세대)에게 가치관, 세계관, 행복관을 더 철저하게 더 일관되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본주의 '브랜드'와, 사회적 권력의 '브랜드'에 사족을 못쓴다는 점이다. 

20~30세대의 온라인 놀이를 보면 알 수 있다. 서울대 철학과 대 부산 고신대 의대, 이 둘 중에 무엇을 택할 것인가? 이런 '선택 놀이'를 하는데, 이들 놀이 밑에는, '가성비'라는 투하 자본과 산출 사이, 투자와 이윤량 차이의 차이를 '산수적'으로 계산하는 능력을 극대화하는 사고가 자리잡고 있다. 

 

20-30세대가 다 획일적인 등질적인 집단인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 20세대도 30세대와 다르고, 그 내부 계급 계층적 균열과 갈등 역시 심각하다. 조잡하게 갈등을 조장하는 '성 대결' 역시 마찬가지이다. 서로 다르다.

 

다만 40~50세대와 그들 자식,조카 세대인 20~30세대가, 소비 생활, 가치관이라는 측면에서 '질적으로 다른' 것처럼, 그리고 공통점보다는, 차이점만 부각시키는 관점은 오류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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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계획2021. 4. 21. 18:12

이런 지주가 있었다. 당시 발음은 '디주' = 지주, 강택진 부부 인터뷰.

자기 소유 토지를 소작농에게 나눠주고, 자기 힘으로 살아가겠다고 다짐한 강택진과 그 아내 이야기다. 1923년이니, 98년 전, 거의 100년 전 미담이다. 

 

사람은 흙에서 나고, 흙으로 돌아간다는 데, 당시 토지 지주 계급사회를 고려해 볼 때, 대단한 결단이 아닐 수 없다.그 이후 이 강택진과 그 가족의 삶은 어떻게 되었는지? 

 

강택진은 만주, 상하이를 돌아다녔다고 하는데, 일제 치하에서 독립운동권이었을까? 아니면 당시 조선 지식인들이 수용했던 사회주의자, 좌익이었는가? 궁금해진다. 

 

강택진 (32세) - 경상북도 영주군 풍기면 금계동 
토지 소유 - 1만 9천평을 소작인에게 분배했다.

 

이유: 자기를 버리다. 소작인들에게 땅을 나눠준 게 아니라, 땅을 세상에 버렸습니다. 

토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 한없이 죄를 짓는 것.

양심의 비판대로 살아볼까 한다.

남의 힘으로 살지말고, 자기 힘으로 살아보려고 한다.

 

박애, 평등, 자유를 실현하고자 한다면 적어도 소유욕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먼저 실천하려면, 계급적 언어를 통일해야 해야 하는데, 내가 실천함으로써 (언어와 행동 통일)이 가능하다.내 아내는 내 뜻을 찬성하고, 어린 자녀에게도 그 뜻을 전달했습니다.


현재 제도 하에서 (토지 소유제도 하에서) 좀 꺼리는 점도 있기 때문에 여러 말씀을 할 수 없습니다만,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나 혼자만이라도 '참 사람'의 '참 살림'을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소유 토디(토지)를 작인(소작농)에게 - 강택진씨 부부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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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2021. 4. 21. 16:52

4월 21일 새벽에 눈이 오다.

 

지난 겨울에는 눈이 적게 내린 편이었는데, 4월 내내 날씨가 저온인데다 급기야 눈이 내리다.

3월에 따뜻한 날씨 때문에, 일찍 자라기 시작한 솔 (=부추) 잎 위에 눈이 쌓이다.

 

파도 심어놨는데, 내일 아침이면 다 얼어버렸을까? 살아남으려나? 

 

2월 초면 매화 꽃이 피던 남쪽 고향 집이 그립다.

3월이면 매화 향기가 집 대문에서 집 바깥으로 난 길까지 퍼지곤 했다.

특히 밤이나 새벽 공기가 조용할 때, 매화 향기는 자유를 만끽하며, 

코에 톡 하고 쏘일 정도였다. 

 

토론토의 날씨는 아마도 백두산 위쪽 간도나 북만주 날씨와 유사할 것이다. 

겨우 내내 밤이면 눈이 오기도 했다. 그 눈은 물이 되고, 물은 이 땅을 비옥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사람이 살기에는 아직도 너무 춥다.

그만큼 에너지를 많이 써야 하고, 그 에너지 소비량도 다른 나라에 비해 너무 많다. 

 

솔잎, 부추잎 위에 눈이 척척 하고 달라붙는다. 

그래도 내일이면 솔잎이 다시 녹색으로 되돌아오리라.

 

강한 향기를 내품는 솔잎으로.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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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arch. = without a leader, 지도자 없는 상태. an (without) + archos (leader)  = 아나키스트 anarchist 동의어

 

anarchism 아나키즘 

 

모든 형태의 국가의 정부는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기 때문에, 서로 협력하는 집단의 자발적인 연합이 그 국가의 정부를 대체해야 한다는 입장.

 

또는 조직된 국가에 저항하는 행위를 아나키즘이라고 함.

 

 

anarchy 아나키  1. 정부의 부재 상태

 

2. 정치적 무질서와 폭력. 무법 상태

 

3.  무질서와 혼란 상태.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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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비교/노동2021. 4. 19.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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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 산울림] 커지는 위험의 양극화

2021 04 19 11 43

 

 

https://bit.ly/3ssTEuo

 

[안전 산울림] 커지는 위험의 양극화

 

www.ytn.co.kr

 

[안전 산울림] 커지는 위험의 양극화

 

[열린라디오 YTN]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20:20~21:00)

방송일 : 2021 4 17 ()

진행 : 김양원 PD

대담 : 손진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안전 산울림] 커지는 위험의 양극화

 

- 산재사망자 50인 미만 사업장은 증가, 반면 50인 이상 특히, 300인이상 대형사업장은 줄어

- 고용노동부 발표 2020년 산업재해사고 사망통계

 

김양원 PD(이하 김양원)> 산업 안전이 모두가 하나로 외치는 울림이 될 수 있도록 마련한 코너입니다, <안전 산울림>. 앞으로 한 달에 한 번씩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서 일터와 제도권에서 해야 할 일들이 무엇일지 짚어보는 시간이 될 텐데요. 오늘은 그 첫 순서로 손진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와 함께 하겠습니다. 손진우 활동가님, 나와 계신가요?

 

손진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이하 손진우)> , 안녕하세요.

 

김양원> , 안녕하세요. ,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산업재해 사망자 수를 절반으로 줄이겠다, 이렇게 목표를 세우고 <국민생명 지키기 3대 프로젝트>의 하나로 제시했는데요. 그래서 2년 전에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이 이루어 진데 이어서 노동계에서 줄기차게 주장해온 중대재해기업처벌법도 통과됐죠. 이제 본격 시행을 앞두고 있는데요.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발표된 통계를 보니까 산재 사망자 수가 줄기는커녕 되레 늘었다는 내용입니다?

 

손진우> , 맞습니다. 그저께죠. 4 14일 노용노동부가 2020, 바로 작년 산업재해사고 사망통계 발표를 했는데요. 지난해, 전체 산재 사망자 수가 2,062명이고요. 그중 산재 사고 사망자가 882명입니다. 2019년과 비교해봤을 때 전체 규모에서도 42명이 늘었고요. 사고 사망자도 27명이 늘어난 시점입니다. 문재인 정부가 2019년 역대 최초로 사고 사망자 숫자 800명대에 진입했다, 라고 굉장히 자평을 한 바가 있는데요. 불과 1년 만에 사실 900명에 가까운 수치에 근접한 숫자로 나타났기 때문에 굉장히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생각이 들고요. 사실 우리가 숫자로 산재 사망자들 한 명, 한 명이 우리랑 같이 이 세상을 살아냈던 함께 숨 쉬었던 노동자들이 돌아가신 것이기 때문에 숫자로 표현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가, 라는 생각을 다시 해볼 수밖에 없는데요. 그런 상황입니다.

 

김양원> 그러네요. 제가 알기로는 작년 같은 경우에 우리가 알고 있는 이천 물류창고 화재사고 등 대형 인명사고들이 있었잖아요? 혹시 작년에 있었던 산재 사망자 가운데 작업장별로 살펴보신 내용이 있을까요?

 

손진우> 지금 발표된 것으로 정확하게 확인을 할 수 없고요. 말씀을 드리면 매년 4 28일이 세계 산재 사망 노동자 추모회 날입니다. 그래서 그날 민주노총을 비롯한 한국노총 그리고 시민사회가 함께 살인기업 선정식이라는 것을 진행하거든요. 그래서 작년에 산재 사망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한 기업이 어디인지를 발표하고 그 기업들이 부끄러워해야 한다, 라는 얘기들을 하게 되는데요. 추정컨대 앞서서 말씀하셨듯이 38명의 안타까운 희생자들을 발생시킨 한익스프레스가 가장 많은 작업장이라고 생각이 들고요. 업종으로 따져도 마찬가지로 건설업이 압도적입니다.

 

김양원> 그래요. 건설 현장에서 아무래도 작업환경이 위험하지 않습니까? 높은 데서 작업하시는 분들도 많고 그래서 그런 건 아닌가, 이런 짐작은 되는데 통상적으로 이렇게 건설 현장에서 산재사망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손진우> 아무래도 안전보건관리 자체가 가장 소홀하기 때문인 것이 문제이기도 하고요. 실제로 작년에 건설업에서 일하다가 돌아가신 노동자들이 458명이나 돼요.

 

김양원> 절반 이상이네요.

 

손진우> , 이번에 발표된 통계에 절반을 넘어서거든요. 그래서 51.5% 정도가 그중에서도 떨어진 사고로 돌아가셨거든요. 그래서 사실 임시가설물이라고 할 수 있는 비계라는 게 있잖아요? 그 비계가 제대로 설치되어 있지 않거나 지붕과 대들보에서 추락해서 떨어지신 분들이 굉장히 많거든요. 사실상 공중 곡예 하듯이 노동자들이 매달려서 일을 하다가 잠깐만 실수를 해도 죽을 수밖에 없는 구조를 그대로 방치한 상태에서 건설 노동자들이 계속 일을 하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에 안타까운 죽음이 반복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요. 떨어진 사고뿐만 아니라 물체에 맞아서 돌아가신 분들, 부딪혀서 돌아가신 분들, 화재로 돌아가신 분들, 이렇게 건설 현장에서 사망하신 분들이 전체 사고 사망자 중에 절반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김양원> 특히 건설 현장 같은 경우에는 점점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연령대도 높아지고 있다고 들었어요. 아무래도 이게 험한 일이다 보니까 젊은 사람들보다는 은퇴를 하시거나 이런 분들이 많이 유입돼서 그렇다더라, 이런 분석도 있던데요. 실제로 그렇습니까?

 

손진우> 실제로 한국 사회가 굉장히 고령화되고 있잖아요? 고령화되고 있는 추세이기 때문에 노동부에서도 이제 더이상 과거에 은퇴해야 할 나이에 집에서 손주, 손녀를 보셔야 할 고령 노동자들이 은퇴해선 안 된다, 라는 얘기를 하면서 고령 노동자라고 부르지 않고 장년 노동자라고 호명하고 있어요.

 

장년 노동자들을 일터에서 일하셔야 된다, 라고 호명을 하면서 계속 노동시장으로 편입을 시키고 있는데요. 이 분들이 아무래도 나이가 드시기 때문에 새로운 안전보건문제에 있어서 대처하시는 능력이라든지 신체적 능력이라든지 여러 가지로 장년이라는 특성이 갖고 있는 신체적인 특성이 있는데, 그렇다면 그에 걸맞게 사실 노동 환경을 변화시켜야 하거든요? 장년 노동자에 친화적인 노동 환경으로 변화시켜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현실들이 이렇게 반영이 되고 있는 것이다, 라고 생각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양원> , 실제로 지난해 기준으로 발표된 산재 통계를 보니까 가장 사망자가 많았던 연령대가 60대 이상이었던 것 같아요.

 

손진우> , 60대 이상 사고 사망자가 전년도에 비해서 18명 정도 증가를 해가지고요. 실제로 63명 정도 돌아가셨습니다.

 

김양원> 그렇군요. 이렇게 건설 현장, 특히나 거기서 일하시는 장년 노동자라고 말씀하셨는데 연세가 있으신 분들인 노동자들의 사망률이 더 증가했다는 것이 참 안타까운데요. 건설 현장의 경우에는 산업장 규모에 따라서도 사망자 수의 차이가 있지 않습니까?

 

손진우> , 맞습니다. 실제로 20억 미만 공사 현장에서 더 많은 노동자들이 죽었다, 라는 통계가 이번에도 발표가 됐습니다.

 

김양원> , 보통은 이제 이 산업장 규모를 사업단위, 금액으로도 하지만 이제 근로자 수로 판단하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이를테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서도 기준으로 했던 50인 이상이냐, 50인 미만이냐, 이걸 가지고 판단해보건대 50인 미만이면 보통 중소사업장이라고 하죠? 중소규모사업장에서 사망한 인원이 전체에 보니까 거의 80% 이상이더라고요.

 

손진우> , 50인 미만 규모 사업장에서 사망한 인원이 714명에서 실제로 전체 81%고요. 조금 더 나눠서 보자면 5인 이상 49인 이하 사업장에서는 전년도보다 늘었어요. 402명 정도 적고요. 5인 미만 사업장, 정말 가장 영세한 사업장에서는 11명 정도 늘었습니다. 그래서 312명이고요. 전체적으로 이분들이 전체 82%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김양원> , 그렇다면 이런 중소규모사업장의 열악한 환경 이런 것들이 산재에서도 그냥 그대로 드러나는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드는데요. 50인 이상은 비교적으로 규모가 큰 사업장일 텐데 이런 데는 산재 사고 사망자 추이가 어떻던가요?

 

손진우> 줄었어요. 50인 이상 299명 이하 사업장은 전년보다 16명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고요. 300인 이상 사업장은 11명 감소를 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아무래도 안전보건과 관련한 인력, 예산을 투입할 수 있는 것들, 안전관리를 할 수 있는 것들이 확실히 사람이 덜 죽는다, 라는 형태로 들어나고 있는 거죠. 이게 위험의 외주화에 아주 단적인 모습들인 것 같아요. 그래서 위험의 양극화가 이런 형태로 나타나는 거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양원> , 반대로 얘기하면 50인 미만에 중소규모사업장은 사각지대가 될 거다, 이렇게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손진우> , 맞습니다.

 

김양원> 산재 사망자 수를 쭉 통계로 돌아보니 결국에는 안전관리예산에 비례해서 예산이 많은 곳은 그만큼 사망자 수를 줄일 수 있었고 안전관리예산이 적은 곳은 상대적으로 사망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분석을 해주셨는데요. , 이제 올해 아직 4월입니다. 올해는 산재 사망자 수를 목표대로 줄이기 위해서 정부와 일터 현장에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손진우> 사실 안타까운 건 문재인 정부가 2018년에 <국민생명 지키기 3대 프로젝트>라는 걸 발표하면서 2023년까지 특히 산재 사망과 관련해서는 전체를 다 줄일 수 없으니까 절반이라도 줄이겠다, 라고 했거든요? 그렇게 따진다고 하면 올해는 한 600명대로 줄여내야 되는데요.목표 숫자 자체를 600명대로 줄어야 하는데 이런 통계들에 대해서 염두를 두신 것이신지 3월 초에 한 700명대로 다시 조정을 했어요.

 

김양원> 원래 목표에서 좀 높였네요.

 

손진우> , 후퇴를 했습니다. 그런 것들을 봤을 때 사실 단 한 명의 사고도 있어선 안 된다, 라는 마음가짐으로 접근을 다시 한번 해야 되지 않겠나, 라는 생각이 들고요. 더 중요한 문제는 사실 굉장히 많은 대책들이 나오고 있는데 그 대책이 빈 구석이 많다는 지적들이 이렇게, 저렇게 제기가 되어 왔던 거지 않습니까? 사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노동자들이 직접 위험 문제에 대해서 제기할 수 있고 참여할 수 있고 노동자의 권리로서 정말 위험하면 작업 중지를 행사할 수 있고 이런 권리 교육들이 잘 되어야 하는데 그런 것들이 진행되지 않고 실제로 안전보건문제에 대해서 개입할 수 있는 구조, 제도적으로 이런 것들을 보장하지 않고 있어요. 그런 것들이 조금 더 마련되어야지 정부 차원에서의 관리, 감독이나 감시 형태로 이 문제를 접근하거나 그것 일색으로 산재 사망 수를 줄일 수 있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 조금 안타까운 현실인 것 같습니다.

 

김양원> 그렇군요. 안전은 권리다. 이런 말도 있던데 노동자들이 스스로 자각하고 행사할 수 있는 안전관리교육이 필요하다. <안전 산울림> 오늘 말씀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손진우> , 감사합니다.

 

김양원> , 지금까지 손진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였습니다.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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