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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history)/6공_노태우_1988-923

화성 연쇄 살인 사건, 무죄, 윤성여, 억울한 옥살이 20년, 국가 배상 18억원 윤성여씨의 인터뷰를 보고 눈물이 흐른다. 이 소박하게 생긴 한 사람의 발언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100억을 보상비로 받은들 감옥에 갇힌 20년 세월을 다시 되돌릴 수 있을까? 윤성여라는 이름을 새겨넣는다. 1988년 살벌한 분위기로 tv 뉴스를 도배했던 그 화성 부녀자 연쇄 살인 사건. 그 후로 다들 잊고 지냈다. 국과수, 경찰, 검찰, 행정부, 어느 누구 하나 제대로 책임지지 못했고 솔직하지 못했다. 윤성여라는 한 힘없는 사람을 희생양으로 삼고 말았다. 공권력 사용이 얼마나 무섭고, 무거워야 하는지를 다시금 깨닫게 된다. 법원 "국가, '화성 살인' 누명 윤성여 씨에 18억 원 배상" 입력 2022-11-16 16:33 | 수정 2022-11-16 17:121 법원 "국가, '화성 살인' 누명 .. 2022. 11. 17.
노무현 의원 2차 국회의원직 사퇴서 제출 . 1990년.7월 13일. 민자당 3당 합당 거부. 통법부로 전락한 국회 비판. 노무현 당시 민주당 의원이 89년에 이어 두번째로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했다. 노무현 사직서 전문. " 5공 청산과 민주개혁의 책무를 부여받고 출범한 13대 국회가 3당 합당의 산물인 민자당 창당 이후, 본래의 임무를 저버리고 반민주악법만을 불법하게 양산하는 통법부(通法府)로 전락하였습니다. 이에 본의원은 이 국회가 국민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판단되어 국회의원직을 사퇴코저 하오니 허락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1990년 7월 13일. 국회의원 노무현. (의안과 접수 번호 2592) 통법부(通法府) 의미? 국회가 민의를 대변하는 법을 만드는 기관이 아니라, 행정부 (대통령)가 만들어 준 법을 통과시켜주는 허수아비로 전락했음을 비난하는 단어임. 2021. 12. 21.
1989.03.21. 노무현 국회의원직 1차 사퇴 제출. 노동자 대중 투쟁이 민주주의 발전의 길. 4월 4일자. 사퇴 철회 후, 의원 복귀까지. 노무현은 대통령이 된 이후에는, 파업하는 노동자들과 거리 시위를 하는 농민들과 사이가 좋지 못했다. 노태우 정권 하에서는 구속된 노동자들을 변론하는 변호사였다.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아직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정치가로서 노무현은 노동자 주체 민주주의 정치에 대한 일관성있는 태도를 견지하지 못했다. 우리는 이러한 한계와 오류가 왜 나타나는지에 대해서는 끈질기게 묻고 답해야 할 것이다. 1989년 3월 21일 제 1차 의원직 사퇴 결정. 노무현 민주당 의원이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하고, 노동자 대중투쟁이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길이라고 천명했다. 국회의 정치적 무능 1) 민정당은 광주 5공청산 특위 불참과 국회무시 2) 국회 상임위 태만. 오히려 노동자 탄압 방조. 3) 서울지하철 파업, 30명 노.. 2021.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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