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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31

윤석열이 여인형 방첩사령관에게 정치인 체포 구금하라고 지시. 방첩사 지하 벙커 확인 윤석열은 이승만의 국회의원 폭행, 박정희와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의 국회의원들 협박, 전두환의 김대중 체포와 김영삼 가택 연금을 그대로 흉내냈다. 윤석열도 민주당 국회의원들, 심지어 한동훈 국힘 대표 등 자신의 정적들을 체포 감금하려는 계획도 세웠다. 윤석열은 엄청난 범죄를 계획했고, 법정 최고형을 받아야 한다. 한국 민주주의는 박정희 군사독재, 전두환 1212 군사쿠데타와 518 광주 학살 등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투쟁들을 통해 발전해왔다. 윤석열은 한국 민주주의 시계를 이승만 독재와 박정희, 전두환 군사독재 시절로 되돌리려고 했다.  오늘 국회 국방위에서 밝혀진 사실. 윤석열과 적극적으로 내란을 공모한 여인형 방첩사령관이, 윤석열의 지시를 받고, 국회의원들과 정치인들을 체포해서 방첩사 지하벙커에 감금하.. 2024. 12. 11.
윤석열 내란죄. 대통령제 폐지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윤석열은 왜 국회를 침략했는가? 1961년 516 군사쿠데타, 72년 유신 박정희 '국회 해산권', 1981년 전두환 '국회해산권' 흉내낸 윤석열. 87년 폐지된 대통령의 '국회해산권' 승산도 없는 어리석은 윤석열의 '계엄령 선포'의 목적은 무엇이었는가? 그 의문이 하나씩 풀리고 있다.윤석열은 왜 국회를 침략했는가? 1961년 516 군사쿠데타, 72년 유신 박정희 '국회 해산권', 1981년 전두환 '국회해산권' 흉내낸 윤석열.  윤석열이 노렸던 것은 1987년  6월 항쟁의 성과로  폐지된 대통령의 '국회해산권' 의 복원이었다.  1987년 제 6공화국 헌법에 의거한 '대통령제'는 이제 폐지해야 한다. 대통령이 '계엄령'을 멋대로 선포할 수 있게끔 만들어준 것도 87년 대통령제의 헛점 때문이다.  나는 이동관이 작년 11월 에 '국회해산권'을 대통령에게 돌려주자고 주장했을 때, 그냥 시대착오적 미친 소리에 불과하다고 콧웃음을 쳤다. 그러나 이동관 발언 1년 후, 윤석열이 어설프지만 .. 2024. 12. 8.
윤석열의 '김건희'에 대한 해석 "육영수 여사가 청와대에서 했던 야당 역할", 순진한 아내(김건희)가 지지자들에게 일일이 전화로 답변한 것은 국정농단이 아니다. 11월 7일 윤석열 기자회견 답변 요지. 윤석열의 '김건희'에 대한 해석 "육영수 여사가 청와대에서 했던 야당 역할", 순진한 아내(김건희)가 지지자들에게 일일이 전화로 답변한 것은 국정농단이 아니다.  문고리 3인방보다 더 막강한 권력을 쥔 자는 ‘전화기’ 검색자 김씨. 윤석열은 사과의 인사를 했지만, ‘왜’ ‘무슨 주제’를 사과하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전화기 탓만 했다.윤석열 7일 기자질문 평가. 제일 눈에 띈 것은 TV조선 김기자의 ‘김건희’ 질문에 대한 윤통 답변이다. 1. 윤석열 답변. 순진한 아내 김건희가 정치에 깊숙이 관여했다고 인정함. “2021년 7월 OO날, 정치선언을 한 후, 권영세에게 국힘 입당서를 제출했는데, (윤석열) 전화번호가 노출되어, 그날 3천개 넘는 문자를 받았다. 내가 .. 2024. 11. 7.
배우 이선균 유작 '행복의 나라'. 1026 김재규와 박흥주. 박흥주 대령의 직장, 중앙정보부라는 특수한 일터에서 갑자기 동료들을 사살해야 하는 명령을 받았을 때, 박흥주 대령의 심정이란 무엇이었을까? 언젠가는 만들어야졌을 할 영화, 혹은 드라마이다. 김재규의 직속부하였던 박흥주 대령은 10.26 당시 그 날 어떤 심정이었을까? 군인이라는 특수직업, 상관의 명령을 그는 어떻게 해석했을까? 그 문제이다. 위계 질서 체계라는 측면에서 볼 때, 박정희는 대통령이고, 김재규는 박흥주 대령의 직속 상관이다.그렇다면 박흥주 대령은 누구의 명령을 따라야했을까?  다른 각도에서도 박흥주 대령을 해석할 수도 있다. 박흥주는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부하도, 박정희의 공무원도 아닌, 시민 박흥주로서, 정치적 사고의 주체로서 박흥주라는 측면을 부각시킬 수 있다. 그러나 정치적 격변과 사건, 혁명과 반란에서는, 한 개인의 사상과 선택 보다는, 그 집합적 행동이 가지는 특질이 개인보다 더 규정적이고, 개인의 생각과 행동을 평가하.. 2024. 9. 16.
차지철 관련 언론보도. 518광주 항쟁 참여자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는 독재자 박정희와 그의 충복 차지철을 저격했다. 그런데 차지철에 관한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그의 전 아내 송희성 여사는 이혼 후, 광주에서 교육자로 일했으며, 1980년 518 광주항쟁에 참여했다고 한다. 이에 대한 언론보도 내용. ------------------------  “차지철 前부인 송희성, 광주 민주회장 지내… 역사의 아이러니”문화일보입력 2023-12-29 11:15  https://munhwa.com/news/view.html?no=2023122901072836050001   1990년대 문화예술인들 모임에서 만난 정주영(오른쪽) 당시 현대 명예회장과 김종원 씨가 반갑게 인사하고 있다. 한상언영화연구소 제공 ■ 회고록 ‘시정신과 영화…’ 낸 1세대 영화평론.. 2024. 9. 14.
영화 '다음 소희', 지난 60년간 개선되지 못한 현장실습생 노동3권, 박정희 정권부터 윤석열 정부까지 일관성 부족. 윤석열 '정부를 기업에 종속시킴' '다음 소희'를 다룬 MBC 스트레이트 보도. 과거 실업계고, 현재 직업계고,특성화고 등 고등학교 3학년들이 일터에 나가서 일하는 '현장실습'의 문제점을 다뤘다. 현장실습의 역사를 보면, 각 정부가 일관성없이, 노동3권을 적용하지 않고, 필요에 따라, 기업의 요구에 따라, 현장실습 정책들을 사용해왔다. 역사적 변천. 1)1963년 박정희가 '현장 실습 제도'를 만들어, 산업화에 필요한 노동력을 쉽게 제공할 수 있도록 했다. 2)전두환 5공, 현장 실습 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렸고, 3) 김영삼 정부는 6개월에서 12개월 (1년)으로 더 늘렸다. 4) 1997년 직업교육훈련촉진법이 제정되어, 현행 '현장 실습' 법적 근거를 마련함. 그러나 노무현 정부 하에서, 현실 문제 발생. 현장실습 고3 학생들을.. 2024. 1. 6.
정의당을 민주당의 기생정당이라 비난했던 주진형은 민주당의 기생정당 열린민주당 비례후보로 출전했다. 주진형도 문제지만, 더 중요한 건 대중적 진보정당을 표방한 정의당의 리더십이다. 민주당의 기생 정당인 열린민주당은 3월 8일에 급조되어, 2주만에 당원 2만 4444명의 선거인단을 모았다. 정의당을 민주당의 기생정당이라고 비난했던 주진형은 민주당의 기생정당이자 비례용정당인 열린민주당에 '열린' 마음으로 국회의원에 입후보했다. 한겨레 신문과 자신의 페이스북에, '선거법 개정'에 대한 컬럼을 쓰곤 했는데, 그 내용은 비전문적이며 너무 부실했다. 식칼 들고 히토오 히로부미 처단하러 나가는 단타 의병의 행색이었다. 한국의 대중적 진보정당 중에 가장 규모가 큰 정의당의 당권자 숫자는 3만 5960명이다. 정의당 이외에 녹색당, 노동당, 민중당 등 진보정당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진보정당원 숫자는 최소한 5만명은 넘을.. 2020. 3. 21.
1026 박정희 사망. 김재규 박흥주 박선호 언론 보도. 1026 관련 언론 보도 자료.  .  .10·26 40주년]① 궁정동의 총소리…엇갈리는 평가2019-10-25 06:00글자크기 변경 공유 댓글[편집자 주: 1979년 10월 26일 저녁, 박정희 대통령이 청와대 인근의 궁정동 안가(安家)에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김계원 청와대 비서실장, 차지철 경호실장 등과 만찬중 김재규 부장이 쏜 총탄을 맞고 숨졌습니다. 우리 헌정사상 초유의 국가원수 피살이었습니다. 연합뉴스는 26일 40주년을 맞는 10·26 사건을 당시 수사 관계자, 변호인 등의 회고록과 증언 등을 토대로 재구성, 그 의미를 되짚어 보는 3건의 기사를 송고합니다. 기사에 인용된 회고록 내용과 증언에는 전달자의 시각과 입장이 반영되어 있는 만큼 진실을 온전하게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알립니다... 2020. 3. 5.
문재인-조국 임명의 논리적 모순, 법무부와 검찰 알력 조장 결과 조국 논란은 마치 기본적인 논리학 연습을 하는 것 같다. [교훈] 임기응변, 언발에 오줌누기식이 아니라, 장기적인 대안, 철저한 준비과정이 집권의 필수덕목이다. 차세대 주인공들에게 주는 살아있는 정치 교과서이다.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었다. 조국 기자간담회에서 검찰은 검찰 일을, 검찰 상급부서인 법무부는 법무부 일만 하는 게 해법이라고 한 점이. 조국 말이 조국을 또 잡고 있다. 국민들이 보기에는, 이승만 정권부터 현 정부까지 듣도보도 못한 엇박자, 문재인 대통령 리더십 붕괴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아니면 스네이크 박처럼 이후락과 김형욱을 경쟁시키고, 육사 5기 김재춘과 육사 8기 김종필을 경쟁시키고, 8기 동기 김형욱과 김종필을 경쟁시키는 이이제이 정책인가? 문재인-조국 양 지도자 모두 '검찰은 검찰 .. 2019. 9. 11.
문재인 영입인사, 고민정과 전인범 특전사 사령관 정당의 통일성과 일관성을 생각하다 - 감동하다가 식어버린 이유 고민정은 스승 신영복을 말했고, 전인범 특전사 사령관은 “문재인은 빨갱이가 아니죠? 전 확신합니다”라고 했다. 논리적 모순을 찾아야 하는 내 직업병일 수도 있겠지만, 뭔가 앞뒤가 맞지 않아 보였다. 신영복을 스승이라고 한 고민정과 전인범의 말은 어울리지 않았다. 민주당이야 이념적 흐름들이 다양하고, 또 한 정당 내부에서 서로 긴장하고 경쟁하거나 상충할 수도 있는 정치적 노선들도 공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좋은 신호는 결코 아니다. 사실 고민정의 문재인 캠프 합류 뉴스보다는 그 남편과의 사연이 더 크게 보였다. 눈시울이 뜨거웠다. 이름도 어려운 무슨 난치병을 가진 시인 남편에 대해 고민정은 ‘존경할 만한 사람’이라고 했다. 존중받지 못하는.. 2017. 2. 8.
516 쿠데타 일으킨 김종필이 본 박근혜 성격 김종필이 입을 열었다. 인터뷰한 시사저널을 고발한다고 했지만, 많은 진실이 담겨져 있다. 몇 가지 인상적인 주제들을 써본다. 1. 김종필은 516 혁명이라고 썼다. 그러나 516은 군사 쿠데타이다. (참고: 김종필,김형욱은 육사 8기이고, 김재춘 등은 육사 5기생들이다. 5기생들이 당시 중령급이어서 부하들을 거느리고 서울 주요 거점을 장악하고, 8기생들은 실무를 담당했다. )참고 : 박정희와 육사 5기 김재춘, 8기생들 김종필과 김형욱의 긴장과 갈등에 대해서클릭 -> http://bit.ly/2hDmT96 2. 박정희 성격 묘사, 김종필은 박정희가 약한 사람이라고 했다. 약했기 때문에 의심이 많고, 의심이 많아서 부하들을 잘 믿지 못했다고 말했다. 맞는 말로 들린다. 박정희의 정치 행태를 추적해보면 그렇.. 2016. 11. 14.
최태민, 박근혜가 발족한 1977년 새마음갖기 운동본부란 무엇인가 1977년 10월 28일 박근혜 어록, 2016년 10월 최순실 국정 농단 및 부정 축재 예언하다. 1977년 10월 28일, 충청도 청주에서 열린 새마음갖기 운동 충북도민 궐기대회에서, 박근혜는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흐르는 물은 부패하지 않지만, 아무리 맑은 물도 한 곳에 정지해 있으면 상하고 (부패) 만다" 1. 구국선교단과 새마음갖기 운동본부의 차이점은 ? 1977년 1월 21일. 최태민은 새마음갖기 국민운동 본부를 발족한다. 대한 구국선교단에 이은 두번째 최태민과 박근혜의 공동 정치 작업이었다. 최태민의 새마음갖기 국민운동 본부의 목표는 국민의 도의심을 고취시켜 국민들의 정신을 개혁시키는 것이었다.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다. 1975년 박근혜의 정치적 데뷔 시절 최태민이 구국선교단의 정치적 .. 2016. 10. 30.
최순실은 최태민 구국선교단으로부터 무엇을 배웠는가? 최태민은 박근혜가 박정희 후계자가 되길 바랬을 것이다. 최태민에게 김재규의 10.26 반란은 최악의 적이었다. 최태민의 구국선교단이 1975년 세상 바깥으로 나올 수 있었던 계기는 당연히 민주적 정통성이 없는 박정희 유신체제였다. 따라서 당시 최태민과 박근혜의 정치는 어떤 독립적인 세력이라기 보다는 박정희 체제의 혹과 같은 조직이었다. 차지철 박정희 비서실장이 독일 나치 SS 근위대 흉내를 낸 것과 또 다른 종류의 정신넋나간 정치 행태가 바로 최태민의 구국선교단이었다. 물론 최태민의 꿈은 박근혜를 근혜양 퍼스트 레이디 대행에서 대통령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최태민의 딸 최순실은 박근혜 정부 출범 전부터 정치,외교, 국방, 경제, 문화, 행정부 인사까지 깊숙이 개입했다. 이러한 최순실의 정치 행태의 '기원'.. 2016. 10. 26.
박근혜 통치스타일은 박정희의 '군사작전'을 흉내낼 뿐이다. 박근혜 통치스타일은 박정희의 '군사작전'을 흉내낼 뿐이다. 전두환-노태우는 스네이크 박정희의 '변신술'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다. 최근 현대사 책들을 다시 검토하면서, 50년대~70년대 선배들의 투쟁에, 그들 중 일부는 이후에 변절했다할지라도, 총에 맞고 죽어간 감옥에 투옥된 선배들을 다시 생각해 보고 있다. 2016. January 20 at 12:27pm · 박정희는 그 '동지들(육사 5기, 육사 8기)'도 집권연장의 '폭죽'으로 사용해 하늘에 아름답게 날려버렸다. 결국 그 동지들 총 맞고 박통이 박살나버렸지만. 그야말로 배우 황정민 50배를 능가하는 변신의 귀재, 스네이크 박정희의 '화해의 죽음'은 '죽음의 전설'이었다. 역사 책 속에서 다시 깨닫는다. 박근혜 덕택에 말이다. 전두환-노태우는 박정희 .. 2016. 2. 13.
[논평] 이철희소장 출사표, 노량진 9급 공무원 시험준비생 공시족보다 절실하지 못하다. (채현국 할배 스타일) 청년들아, 구직하는 청춘들아 똑똑히 보아라, 4월 13일 4년 연봉 50억짜리 구직 시험치는 사람들이 어떻게 취직하는지를! '연봉' 이아니라, 국민이 낸 혈세라는 차이가 있지만! 자기소개서를 쓰는 것을 잠시 멈추고, 413 구직자들의 경쟁율에 응시하라! ( 채현국 선생의 어록, 413 총선 구직자들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 [논평] 이철희소장 출사표, 노량진 9급 공무원 시험준비생 공시족보다 절실하지 못하다. 이소장은 핫하게 붙어보고 안되면 ‘쿨’하게 사라진다고 했다. 일견 ‘쿨’해이지만 억수로 ‘언쿨’하다. 공무원 시험보는 청년들을 다룬 ‘공시족’ 다큐멘타리를 보라. ‘핫’하게 시험응시해보고 ‘떨어지면’, “어머니 아버지 저 떨어졌어요” 쿨하게 돌아설 수 없다. 그들은. 국회의원 .. 2016. 1. 21.
한국과 서구유럽에서 '국가'와 '시민사회' 개념의 동일성과 차이 송호근(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은 한국이 '미래담론'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4대강 같은 엉터리 지리학에 기초한 토목공사가 20-30년 가는 미래담론의 가로막았다. 그 이명박 교수 밑에서 송교수가 브레인역할을 하려다가 실패했지 않았던가? 송교수의 허공에 붕뜬, 빈껍데기 '시민성' 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 첫번째 지금은 구한말도 아니다. 비유라고 해도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누구의 잘못으로 구한말, 조선말기라는 것인가에 대한 설명과 분석이 없다. 정치적 책임성에 대한 논의가 빠지면 송교수의 글은 그냥 국민들 야단치기 종아리 걷어라는 것에 불과하다. - 두번째, 노동자들이 자기 임금만 올리려고 하니까 '시민성'을 학습할 겨늘이 없다고 송교수는 말한다. 사회학 자체가 '열린 주제 분과 학문'이라는.. 2015. 12. 15.
1987년 개헌, 결선투표 제도만 도입했다면, 노태우는 낙선되었을 것이다.김대중과 김영삼, 그리고 민주진영의 '실수'였다. 대통령 선거에서 '결선투표제도'를 빠뜨렸다. 1987년 대통령 선거에서, 결선투표 제도만 있었더라면, 노태우는 당선되지 못했을 것이다. 결선투표가 있었다면 1차 투표에서 36.7%로 1위였던 노태우는 '과반' 획득에 실패했기 때문에, 제 2차 결선에서 2위였던 김영삼과 다시 재선거를 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1차에서 김대중을 지지했던 27%의 표 대부분은 김영삼후보에게 돌아갔을 것이다.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그랬더라면 김영삼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1988년부터 1992년까지 집권했을 지도 모른다. 왜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은 민정당과의 개헌 논의에서 '결선 투표제도'를 신설하지 않았을까? 회고담 같지만, 그 원인들을 뒤돌아 보자. 1. 김대중과 김영삼, 그리고 민주진영의 '실수'였다. 대통령 선거에서 '결선투표제도'를 빠뜨렸다. 7월부터 9월까.. 2015. 12. 6.
50년 전 박정희 하에서 경찰곤봉에 김중배 사망, 2015년 백남기 생명 위독 백남기 농민운동가 뇌 부상을 보며박근혜 하에서는 물대포 맞아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고, 50년전 박정희 하에서는 경찰 기동대의 '곤봉'에 맞아 김중배가 21세로 사망했다. 박근혜는 당시 14세였고, 아마도 10대 시절 청와대에서 들은 이야기는, "데모하는 대학생들은 친용공 세력이고 불순세력 룸펜들이다" 이었을 것이다.50년 전, 1965년 4월 13일 동국대 2학년 김중배가 시위진압 기동대의 '곤봉'에 머리를 맞아 사망했다. 당시 김중배는 반대 시위중이었다. 당시 박근혜는 13세였고, 지금은 63세이다. 65년 4월 13일은 기동대 '곤봉'이 2015년 11월 14일은 물대포로 바뀌었다. 박정희는 64년 한일회담 반대 시위 6-3 데모가 대학가에 격렬해지자, 서울대를 폐교해버리라고 당시 윤천주 문교부장관에.. 2015. 12. 2.
김수행 선생님 별세. 당시 자본 번역의 정치적 의미 김수행 선생님이 마르크스의 을 번역하고 대학 교재로 강의를 했던 그 사회적 의미는 무엇인가? 1980년~1990년대 그 책은 번역서 이상이었다. 사람들 가치관을 흔들어놨고 그 초점을 이동시켰다. 한국에서 직업 차별을 당하고, 장시간 잔업과 철야 노동을 하는데도 그 사회적 공로를 인정받지 못했던 이름없는 노동자들을 ‘정치적 시민’으로 복권시켰고, 박정희 말대로 “조국 근대화의 초석”을 깔았던 한국시민임을 선언한 것이었다. (서울 구로공단 한 회사 굴뚝에 "내가 흘린 땀방울, 조국 근대화 초석이 된다"라고 써져 있었다) 당시 한강의 기적의 상징 수도 서울, 구로공단의 노동자들은 1주일에 평균 50~60시간 넘게 일했다. 자고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시간을 공장과 회사에서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5. 8. 4.
안효상, 금민/ 기본소득 실천을 위해서는 네트워크 형 "통합정당" 리그가 더 낫다 한국 진보정당 조직 원리 문제점1) 1940년 이후~ 1953년까지 한국 현대 정치사와 현대 정당사에 대한 연구 부족 (한국 전쟁 전후 13년 정치사에 대한 연구 필요성과 현재까지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서) 2)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군사 정부 시절 형성된 한국 정당 정치 특성 연구 부재3) 한 국가 운영에 대한 비전이 없는 상태로, 특정 써클 중심으로, 1가지 2가지 주제로 정당을 운영하는 것은, 특정 정치단체나 동아리와 구별이 되지 않는다. 근본적인 원인 탐구 필요: 정치가들 사이 불신이나, 연구소 부재로 인한 학습력 약화, 관성적인 개인의 정치적 경험들이 한 정당의 정치 노선이 되고 마는 조악한 정치 조건. 안효상, 금민/ 기본소득 실천을 위해서는 네트워크 형 "통합정당" 리그가 더 낫다고 봅니다.. 2015. 7. 11.
박근혜 통치, 정윤회는 정말 최후의 보디가드일까? 박근혜식 보수 정치 철학을 수립하지도 못하고, 심리적 보디가드 영화 찍다 임기를 마치다. 박근혜 정치관은 1974년 8월 15일 육영수 총격 사망,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총격 사망에서 비롯된다. 박근혜 정치 심리학의 최고 목표는 무한한 안전지대를 만드는 것이다. 심지어는 박근혜의 정치적 기반인 영남이나 대구 구미도 믿지 않는다. 박정희의 고향 후배 제자인 김재규의 총에 아버지가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다. 박근혜는 22세 어머니를 잃고, 27세에 아버지를 잃었다. 보통 여느 20대 여성이면 연애, 직장, 친구들과의 희로애락을 체험했을 것이다.그러나 박근혜는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20대를 보냈고, 그 상처는 세상 어떤 슬픔도 그 상처의 깊이를 초월하지 못한다. 박근혜는 2014년 평화롭고 제도.. 2014. 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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