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 노트 Notes on the Politics of Korea

박근혜식 보수 정치 철학을 수립하지도 못하고, 심리적 보디가드 영화 찍다 임기를 마치다.


박근혜 정치관은 1974년 8월 15일 육영수 총격 사망,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총격 사망에서 비롯된다. 박근혜 정치 심리학의 최고 목표는 무한한 안전지대를 만드는 것이다. 심지어는 박근혜의 정치적 기반인 영남이나 대구 구미도 믿지 않는다. 박정희의 고향 후배 제자인 김재규의 총에 아버지가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다. 박근혜는 22세 어머니를 잃고, 27세에 아버지를 잃었다. 보통 여느 20대 여성이면 연애, 직장, 친구들과의 희로애락을 체험했을 것이다.그러나 박근혜는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20대를 보냈고, 그 상처는 세상 어떤 슬픔도 그 상처의 깊이를 초월하지 못한다. 


박근혜는 2014년 평화롭고 제도적인 정권 교체시기에도, 청와대에서 무사히 죽지 않고 걸어나가는 꿈을 꾸거나 반대로 목을 치러 들어오는 정치 세력들의 구둣발에 잠을 설칠 수도 있다. 새롬이 희망이 두 진돗개는 이러한 잠재적 심리적 살해 위험을 방어하는 심리적 군대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박근혜가 대통령이라는 것의 정치적 의미는 무엇인가? 한국 지배층이 정치적 경제적 기득권을 어떻게 박근혜를 내세워 이어가고 확대하고 자기 자식들에게 전수하고 있는가를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 박근혜는 이러한 한국 자본주의 - 정치 동맹의 부품으로서 자기 역할을 다 하고 있다.

아버지 박정희의 개발독재 리더로서 기대는 박근혜 옹립자들도 새누리당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측면에서는 한국 지배층 (자본과 결탁하거나 대변자 역할을 하고 있는 지배층)은 사실 박근혜를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 대선 3대 공약 '복지, 경제민주화, 창조경제'는 일종의 정치적 위장전술이었다는 것은 이미 예측가능했다. 2010년 빅텐트론을 들고 나온 386표 민주당계열 인사들에게 경고했듯이 박근혜가 "아버지가 이룬 경제성장, 이 근혜가 복지로 돌려드립니다"로 나오면, (국정원 대선 개입이 있었지만) 대선에서 박근혜에게 지는 건 당연했다. 그러나 박근혜는 박정희에게 많이 배웠다. 삼선 개헌할 때도 "이번이 마지막 표를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는 박정희, 그 이후 유신헌법을 만들어 영구집권을 획책했다. 박근혜는 박정희로부터 국민을 속여도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목적'만 달성하면 된다는 정신을 물려받았다. 이런 '속임수' 계략은 박근혜 몸에 배여있고, 거의 일체화되어 있다. 


박근혜는 이미 국정 조타, 나침반을 잃었다. 세계 경제 슬럼프를 고려하면 딱히 지금보다 경제가 좋아질 기미는 없고, 고용없는 성장도 어려운 판국이다. 이미 박정희식 성장은 포기했고, 그렇다고 해서 정의로운 '분배'도 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다. 박근혜의 목표는 '지금 그대로, 무탈하게, 아무런 총성도 들리지 않고 딱 지금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다. 


박근혜의 '통치 governance' 스타일은 행정부 수장과는 거리가 멀다. 행정부 공무원들도 신뢰대상은 되지 못한다.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와 조응하는 관료주의적 행정에도 별로 관심이 없다. 박근혜는 행정 관료가 아니라, 개인 '보디가드'가 필요하다. 그런 측근 밀실을 만들어놔야 가장 최악의 경우 최악의 죽음을 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국 보수파들의 나약함과 무능을 엿보고 있다. 박근혜는 대선 슬로건 "아버지가 이룬 경제성장 이 근혜가 복지로 돌려드립니다"라는, 핵심 보수 세력 35%를 응집시키고, 그 외곽 세력 중도보수 25%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잃어버렸다. 


왜 그럴까? 두 가지 이유에서이다. 박근혜의 보수철학이 목표를 애초에 세우지 못했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박근혜 개인 통치 스타일이 1974년 어머니 총격 사망, 1979년 아버지 총격 사망으로 대표되는 극단적인 '복수' 정치로부터 자기 자신이 자유롭지 못하고, 그 틀안에 갇혀서, '복수'를 대비하는 '보디 가드' 정치를 너무 열심히 실천해 버렸다는 점이다.


정윤회가 등장하는 이유도 그렇다. <비열한 거리>가 정치 속성이고, 고향 선후배도 부하도 못믿는 세계가 <청와대> 권력이자 정치라는 것을 박근혜는 잘 알고 있다. 진시 황제 순장, 그것도 자발적인 순장을 감행할 <보디가드>가 필요했던 것이다. 


진정한 보디가드는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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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진정한 보디가드는 누구로 판명날까? 이 아무것도 슬프지 않는 여자의 보디가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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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1

  • 2016.sep.20. 진짜 보디 가드는 누구일까?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761792.html


    단독] ‘권력의 냄새’ 스멀…실세는 정윤회가 아니라 최순실

    등록 :2016-09-20 05:00수정 :2016-09-20 14:17

    최순실은 누구

    “권력의 핵심 실세는 정윤회가 아니라 최순실이다. 정윤회는 그저 데릴사위 같은 역할을 했을 뿐이다.”(전직 청와대 관계자)

    “문고리 3인방은 생살이고, 최순실은 오장육부다. 생살은 피가 나도 도려낼 수 있지만 오장육부에는 목숨이 달려 있다.”(청와대 내부 관계자)

    박근혜 대통령의 오랜 ‘말벗’인 최순실씨가 케이스포츠 재단에 깊숙이 개입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그의 역할과 비중이 다시 조명을 받고 있다. 최순실(60·사진·최서원으로 개명)씨는 1970년대 후반 박근혜 대통령이 ‘퍼스트레이디’로 활동하던 시절 측근이었던 최태민(1912~1994)씨의 다섯번째 딸로 박 대통령과는 ‘언니 동생’ 하는 사이이다. 최태민씨는 당시 박 대통령이 주도한 ‘새마음갖기 운동’과 그 조직이었던 ‘새마음봉사단’의 실세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순실씨는 당시부터 아버지와 박근혜 대통령 사이의 가교 역할을 했다”는 것이 주변 지인들의 전언이다. 최씨는 박 대통령이 2006년 서울시장 선거 유세 현장에서 피습을 당하고 병원에 입원했을 때 극진히 간호하는 장면이 목격되기도 했다.
    최씨는 1996년 정윤회씨와 결혼해 같은 해 승마 선수인 딸 정아무개(20)씨를 낳았다. 정윤회씨와는 2014년 5월 이혼했다. 한때 핵심 실세로 불렸던 정윤회씨는 이때부터 박 대통령과 인연이 완전히 끊긴 것으로 전해졌다.

    최씨의 한 지인은 “정윤회씨는 최순실씨와 사이가 좋을 때는 박 대통령과의 관계도 좋았으나 최순실씨와 싸우거나 사이가 나쁘면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홀대를 받았다”고 말했다. 지난 5월 정씨는 최씨를 상대로 재산분할청구소송을 위한 재산명시신청을 냈지만 지난 6일 소송을 취하했다.

    둘 사이의 분쟁 내용을 잘 아는 한 법조인은 “애초 이혼하면서 최순실씨가 재산을 순차적으로 분할 지급하기로 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않자 정윤회씨가 압박용으로 소송을 걸었다”며 “그러나 결국 원만하게 합의를 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최순실씨는 상당한 자산가로 알려져 있다. 100억원대를 호가하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 빌딩을 비롯해, 강원도 평창군과 경기도 하남시 등에 수백억원대 부동산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부동산을 놓고는 “부친 최태민 목사의 돈이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이 있다.

    최씨가 박 대통령과 사적인 관계를 넘어 국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은 2014년 말 ‘정윤회 동향문건 파동’과 함께 한 차례 불거진 바 있다. 2013년 딸 정씨와 관련된 이례적인 승마협회 조사·감사 과정에서, 문화체육관광부의 조사가 최순실씨 쪽에 유리하게 흘러가지 않자 담당 국장과 과장이 경질됐고, 이 과정에 최씨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의혹이다.

    박 대통령이 문체부 장관을 불러, 조사를 진행한 국장과 과장에 대해 “나쁜 사람이라고 하더라”라고 말하며 경질에 직접 개입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승마계에서는 “정씨와 최씨 부부가 (청와대가 직접 경질에 나선) 사태의 배후”라는 소문이 돌았다. 정윤회씨는 개입 의혹을 부인했지만 “부인이 했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그것은 모르겠다”고 답했다. 최씨와 청와대는 이런 의혹들에 대해 공개적으로 해명한 바 없다.

    최씨의 딸은 최근 활동 무대를 독일로 옮겼다고 승마계 인사들이 전했다. 승마 특기자로 입학했던 이화여대는 학업을 중단하고 독일로 아예 거처를 옮겼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최순실씨도 독일과 한국을 오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한 지인은 전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