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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비교/노동

외국인 노동자, 이주 노동자 일터 사망 조사와 대책들. 한겨레 보도

by 원시 2025. 2. 11.

일터에서 노동자가 죽거나 다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일터에서 안전 문제, 노동자 건강권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알려야 한다.

아시아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한국에 와서 안전하게 일할 수 있어야 한다.

 

 

 

언론보도 자료.

 

 

 

버려져 외려 드러난 죽음 ‘암장’...몇 명이 죽는지 아무도 모른다
이지혜,김채운기자


수정 2024-12-03 15:30등록 2024-12-02 05:00


2023년 3월 타이 출신 이주노동자 분추 프라바세눙이 사망 뒤 농장주에 의해 버려졌던 경기 포천의 한 야산. 김채운 기자 cwk@hani.co.kr

시민의 출생과 사망은 국가 공동체가 관리하는 가장 기초적인 통계다. 시민의 ‘존재’를 셈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나라의 가장 위험한 노동을 감당하는 시민, 144만명 이주노동자 중 한해 사망자는 몇명일까?

촘촘한 기록과 행정의 나라 대한민국 어느 문서에서도 이를 정확히 확인할 순 없다. 한국 사회는 이들이 어떻게 일하고 다치고 병들어 죽음에 이르는지 모른다. 알려고 하지 않는다. 기록 없이 ‘암장’된 죽음들 앞에 우리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있다.

고용허가제 시행 20년을 맞아 한겨레는 이주노동자의 감춰진 죽음과 그 이후 장례, 남겨진 사람들, 송출국의 현실을 추적했다. 위험하고 폭력적인 일터, 열악한 삶과 사회안전망의 부재, 은폐와 사기, 애도의 부재와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무신경 등 눈치채지 않으려 했던 이주노동의 거대한 그림자가 타래처럼 끌려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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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사장이 ‘분추 삼촌이 도망갔다’고 했어요. 도망갈 리 없다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도망가는지도 모를 거예요.”(‘분추 주검 유기 사건’ 최초 신고자, 몬캄 싱하라치)

타이 사람 분추 프라바세눙(당시 67살)이 지난해 3월4일 경기 포천시 영북면 야미리 야산 고랑에서 발견되기 전까지 그가 이곳에 ‘살다 죽어’, ‘버려졌다’는 사실은 세상 어디에도 알려지지 않았다. 암장. 남몰래 묻힌 삶이었다. 죽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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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랑에 놓인 주검이 분추라는 것, 10년 동안 미등록 노동자로 돼지 농장에서 일했다는 것, 지난해 3월1일 오전 대동맥 파열로 돌연사했다는 것, 3월2일 농장주와 아들이 모는 트랙터에 실려 300여m 떨어진 야산으로 옮겨졌다는 것, 산 중간 얕게 파인 고랑에 버려지게 됐다는 사실은 경찰의 변사 사건 수사 과정에서 알려졌다. 그가 한국에서 어떻게 일하고 살았으며, 무엇을 바라고 좌절했는가는 그를 스치듯 본 주변 사람들 얘기로 추정만 할 따름이다. 한국에 머문 10년, 숨진 뒤 사흘 동안 분추는 촘촘한 기록과 행정의 나라 대한민국의 어느 문서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 죽음은 특별하지 않다.

지난 29일 국가인권위원회가 공개한 ‘이주노동자 사망에 대한 원인 분석 및 지원 체계 구축을 위한 연구’(이하 연구, 김승섭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연구팀)를 보면, 한국의 행정 시스템에서 사망한 이주노동자의 기초적인 신원 정보(국적, 성별, 나이, 직업, 사망 시점, 의료적 사인, 비자 형태 등)를 파악할 수 있는 ‘아는 죽음’은 2022년 기준 214명에 그친다.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출입국본부)에 사망 사실 정도만 신고된 이주노동자 사망자 수(3340명)의 고작 6.4%다. 이주노동자 93.6%의 죽음을 한국 사회는 제대로 기록하지 않았다. 암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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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숱한 죽음은 대체 어떻게 유실됐을까. 기록 없는 죽음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겨레는 김승섭 교수팀 연구의 도움을 받아 이주노동자의 죽음과 그 이후를 추적했다. 존재 없는 죽음은 존재 없는 삶과 동의어였다.

존재는 아는 죽음, 6.4%

 


연구가 모수로 삼은 출입국본부가 집계한 사망자 3340명은 2022년 노동비자(무비자 포함)로 한국에 체류하다가 숨져 사망 사실이 신고·확인된 외국인 수다. 사망 연도와 국적, 성별, 대략적인 비자 내용, 대부분 ‘기타’로 분류된 간단한 사인만 담긴 자료라, 사망자가 누구이며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음에 이르렀는지에 관한 정보는 전혀 없다.

이 중 6.4%가 그래도 행정 자료에 흐릿하게나마 존재를 짐작할 수 있는 기초적인 신상 정보를 남겼다.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사망 보상을 신청한 169명과 삼성화재 ‘외국인 상해보험’에 업무 외 사망 보험금을 청구한 45명이다. 이주노동자 사망에 대한 경제적 보상 여부를 따질 때만 사망자 정보가 수집된 셈이다.

기록된 죽음은 사고사 등 산재를 신청해볼 만큼 분명한 사망 원인, 등록 이주노동자라는 상대적으로 ‘나은’ 처지를 배경으로 한다. 산재 승인을 위해선 업무로 인한 사망임을 입증해야 한다. 외국인 상해보험은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등록 이주노동자만 가입한다.

분추는 ‘미등록’ 상태였다. 심장 질환으로 ‘돌연사’했다. 게다가 사망 직후 야산에 버려졌다. 6.4%에 속하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지인들 얘기를 들어보면, 분추는 10년 동안 휴일 없이 매일 새벽 5시부터 오후 4시까지 돼지 1천여마리의 분뇨를 치웠다. 분추 사건의 최초 신고자 몬캄 싱하라치(39)는 “(분추 숙소는) 돼지 있는 곳 바로 옆이고, 비닐로만 쳐 놔서 냄새·유독가스가 다 들어왔다”고 했다. 한달 120만~180만원을 받았다. 다만 이런 노동 환경을 객관적으로 입증할 노동 시간, 임금 자료는 없다. 따라서 과로로 분추가 죽음에 이르렀음을 입증하기는 매우 어렵다. 분추의 부인 마리 프라바세눙은 한겨레에 “남편이 과로로 숨졌을 것 같다”면서도 “사장에게 뭘 요구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존재조차 모르는 죽음, 93.6%

214명을 뺀 3126명의 죽음은 알 수 없는 심연에 있다. 신원 정보는 비어 있거나 부정확하며 각 통계 기준도 중구난방이라 죽음에 이른 사정은 추정으로 메워야 한다.

일하다 죽었다면, 우선 산업재해보험 체계에 들지 못한 외국인 노동자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노동 시간 기록 등을 구할 수 없어 산재 신청을 포기한 노동자, 보험에는 가입했지만 존재를 모르거나 보상 신청 방법을 몰라 배제된 이들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애초 산재보험 가입조차 못 한 채, 짐작할 수 없는 다양한 형태로 일하는 미등록 노동자도 적잖을 것이다.


이 가운데 경찰과 보건복지부가 관리하는 변사와 무연고 사망 자료는 그나마 ‘주검’이라는 단서를 남긴 죽음이다. 병원이 아닌 곳에서 사망해, 누군가 발견해 신고하면 변사로 분류돼 경찰 조사를 받는다. 2022년 기준 이주노동자 변사자는 755명으로, 분추의 죽음도 여기 속한다. 다만 분추의 죽음은 ‘농장주에 의해 유기’된 사건의 실체가 지역 활동가와 언론에 알려지며 이름, 나이, 의료적 사인, 유가족의 존재 등이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예외적 사건’이다. 통상 변사자 사인은 자살·타살·과실사·재해사 등으로만 기록될 뿐이며, 심지어 57.5%가 그조차 모르는 ‘기타 사망’으로 적힌다. 특별한 범죄 혐의점이 없으면 경찰은 사망자의 구체적 사인이나 산재 여부 등은 파악하지 않는다.

유족을 찾지 못한 ‘무연고 사망자’도 같은 해 기준 104명이다. 이들의 죽음을 적은 행정 자료 목록에는 이름, 국적, 성별, 직업, 비자 형태가 대부분 비어 있다. 실제 파악이 되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모르는 척하는 죽음’인 경우도 있다. 사망한 이주노동자 유가족과 연락이 닿고도 무연고 사망으로 처리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게 연구에 담긴 현장 활동가들의 증언이다. 사망한 이주노동자의 장례를 치르고 주검을 고국으로 돌려보내는 일련의 과정에는 사망 전 병원비, 안치비, 장례비, 화장비, 운구비 등 상당한 비용이 든다.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유족은 많지 않다. 연구는 “이주노동자의 무연고 사망 처리가 ‘최소 비용으로 시신을 처리하기 위한 대안’으로 형식화되는 것”을 우려했다.

새기지 못한 죽음, 100%

미등록, 돌연사한 이주노동자 분추의 이름은 다른 죽음들처럼 심연으로 향할 뻔한 숱한 고비를 넘어, 충격적인 유기 사건으로 세상에 드러나 한겨레에 적혔다. 아내 마리는 분추와 연락이 닿지 않자 한국에 있는 지인 몬캄에게 연락했다. 몬캄은 돼지 농장을 찾아갔다. “분추가 도망갔다”는 농장주 설명을 믿지 않고 신고했다. 지역 이주 활동가에게 부고가 전해졌다. ‘충격적 사건’으로 보도됐다. 농장주 김씨는 지난 7월 2심에서 시체 유기와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고용한 출입국관리법 위반으로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판결문에 분추의 이름과 의료적 사인(대동맥 파열), 주검 유기 상황이 담겼다. 다만 가까스로 남긴 분추의 죽음에서, 한국 사회는 무엇을 깨달았나.

연구팀은 ‘존재를 아는’ 것으로 분류한 6.4%의 죽음을 포함해 모든 이주노동자의 죽음이 끝내 한국 사회에 교훈을 남기지 못한 점에 집중했다. 근로복지공단과 상해보험 보상 자료가 상대적으로 자세한 신원 정보를 담고 있다고 해도, 사인은 의료적으로만 간단히 기록됐고 일정한 기준도 없다. 노동자의 죽음이지만, 일터의 어떤 환경이 문제였는지 알 수 없다. 이주노동자가 왜 그 일터에서, 몬캄이 본 분추처럼 “도망가는 법도 모른 채” 일해야 했는지 또한 알 수 없다.

애초 모수(3340명)로 삼은 사망자 출입국 행정 자료 또한 전체 죽음의 수로 확신할 수 없다. 사망 뒤 신고 없이 조용히 매장·화장·유기됐다면 이 통계에 잡힐 수 없기 때문이다. 야산에 몰래 버려진 분추 또한 ‘충격적 사건’이 되지 않았다면 모수 자체에 포함될 수 없었다.

2023년 3월 경기 포천의 한 돼지 농장에서 일하다 사망한 뒤 야산에 유기된 타이 출신 이주노동자 분추 프라바세눙의 장례가 고국에서 치러지고 있다. 유족 제공


이주노동자 죽음의 기록을 전방위적으로 수집한 끝에 연구는 적는다.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자료는 이주노동자 사망보다 출입국에 초점을 두고 있으며, 그 외 외교부, 고용노동부, 해양수산부, 여성가족부 등 이주노동자 관련 부처는 이주노동자 사망에 대해 파악하거나 공식 발표하지 않는다. 체류 단속에 따른 이주노동자의 사망, 외국인보호소에서의 사망, 결혼이주민의 친밀한 파트너에 의한 사망 등은 파악되지 못하거나 사망 사실이 분산되어 정확한 사망 이주노동자 수도 알 수 없다.”

분추의 몸은 ‘운 좋게’ 존재는 드러난 채 고국으로 귀환했다. 가족과 마을 사람들은 분추의 영정과 화려한 금빛 제기를 나눠 들고 마을을 돌았다.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는 한해 ○○○○명 죽는다. 빈칸에 들어갈 죽음의 수는 아직 누구도 정확히 적을 수 없다. 한국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는 2023년 기준 144만4천여명으로 추정된다. 한국 정부는 2021년 5만2천명대였던 고용허가제 쿼터를 올해 16만5천명까지 늘렸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김채운 기자 cwk@hani.co.kr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70160.html

 

버려져 외려 드러난 죽음 ‘암장’...몇 명이 죽는지 아무도 모른다

시민의 출생과 사망은 국가 공동체가 관리하는 가장 기초적인 통계다. 시민의 ‘존재’를 셈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나라의 가장 위험한 노동을 감당하는 시민, 144만명 이주노동

www.hani.co.kr

 

 

 

 

2.

돈 벌러 온 한국에서 한 해 최소 173명…왜 스스로 목숨 끊었을까
박고은 기자2025. 2. 11. 06:05


암장, 이주노동자의 감춰진 죽음 ③일터에 남은 사람들

네팔 사람 미노드 라이(당시 30살)는 2022년 8월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가구업체의 기숙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국에 온 지 4년9개월, 비전문 취업비자(E-9) 만료 한달을 앞둔 시기였다. 그가 목숨을 끊기 전 사장은 한번 더 한국에서 일할 수 있는 재입국 특례 고용허가를 내준다고 수차례 약속했다가 돌연 취소했다. 미노드는 중간에 그만두고 싶었지만 그때마다 사장의 말을 믿고 참았다. 임금도 두달 남짓 밀린 상태였다.

미노드의 죽음은 우다야 라이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위원장의 전언으로 전해졌을 뿐이다. 한국의 행정기록에는 남아 있지 않다. 이주노동자 자살의 경우 업무 연관성을 드러내, 그나마 사망 기초정보를 기록하는 산재 사망으로 인정받기 쉽지 않다. 우다야 라이 위원장은 “사장은 위로금을 대사관에 전달했으니 더는 할 말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했다.

‘이주노동자 사망에 대한 원인 분석 및 지원 체계 구축을 위한 연구’(김승섭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연구팀, 이하 연구)를 보면, 2022년 한국에서 숨진 이주노동자 가운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는 ‘최소’ 173명으로 추정된다.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자료로 파악한 31명, 자살 변사자 138명, 무연고 사망자 4명인데, 이마저 자료 상당 부분이 누락되거나 부정확해 극히 일부일 가능성이 크다.

한국에 ‘일하러 온 사람’인 이주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배경은 노동 환경을 빼고 설명하기 어렵다. 경기도 양주에서 일하는 미얀마 사람 마웅마웅(가명·27)도 한국에 온 뒤 세 차례 스스로 삶을 등지려 했다. 2022년 첫 한국 직장인 제조업 공장을 다니던 때였다. “초보자인데도 우리한텐 일을 가르쳐주지 않았어요. 그러다 실수라도 하면 ‘너 생각이 없냐’, ‘뇌가 없냐’ 소리를 질러댔어요.” 한국인이 다수인 직장에선 차별적 폭언이 일상이었고, 일을 하다 갑자기 눈물이 줄줄 흐를 만큼 정신적 어려움을 겪어도 기댈 데가 없었다.

마웅마웅은 살아남았지만, 그대로 목숨을 잃었다면 죽음은 기록조차 남김 없이 ‘암장’됐을 가능성이 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우 변사 처리돼 경찰이 조사를 맡는다. 경찰은 타살 등 범죄 혐의가 있는지 수사하는 데 집중할 뿐, 자살임이 확인되면 사건을 종결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직장 내 괴롭힘 등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기까지 사람의 감정에 영향을 미친 노동 환경은 별도로 파악해야 기초적 사망 기록이 남는 산재 신청이 가능하다. 이주노동자에게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우다야 라이 위원장은 “자살에 이른 배경이 밝혀져야 산업재해 보상신청을 해볼 수 있는데, 경찰이 사건을 종결하면 방법이 없다”며 “경찰 조사가 끝났는데 어느 사업주가 잘못을 인정하며 산재 증거를 내놓겠느냐”고 했다.

연구는 자살 사망의 ‘암장’이 미치는 후과에 주목한다. 이주노동자 자살을 산재로 다루지 않는 건 “사업주에게 정당한 처벌을 가하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주노동자의 입장에서 마땅히 가져야 하는 사회권을 보장받기 위한 권리적 차원의 접근” 또한 외면하게 만든다. 고통스러운 일터의 정신적 압박과 차별도, 이를 완화할 정서적 지원 등 사회적 지원 체계의 부재도 고민하지 못하게 한다는 의미다.

이주노동자 한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 극한의 슬픔과 좌절은 그를 아는 모두의 것이 된다. 2020년 11월 한국에서 외조카 수닐 보렌(당시 25살)을 떠나보낸 네팔 사람 바하두르(가명·41)는 수년이 지난 현재도 자책과 후회를 반복하며 한숨을 쉬었다. “외조카가 한국 오기 전에 나한테 조언을 구했어요. ‘한국에 오면 돈 벌 수 있다. 열심히 하는 만큼 벌 수 있다’ 그랬는데 너무 후회됩니다.”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

 

 

 

 

3.

 

동료 죽음 이틀 뒤 “나와서 현장 치워야지”…변화 없는 ‘지옥’
암장, 이주노동자의 감춰진 죽음 ③일터에 남은 사람들
임재희,김채운기자
수정 2025-02-11 11:08등록 2025-02-11 06:00


2020년 1월31일 오전 폭발 사고가 벌어진 경기도 양주시 ㄱ가죽공장 모습. 타파 로히트 제공
“여기 와서 일해야 할 거 아니야. 내일 가서 현장 치워.”

2020년 2월1일 토요일. 네팔 사람 타파 로히트(가명·33)는 일하고 있던 가죽공장 사장한테서 소름 끼치는 전화를 받았다. 주말에도 ‘일하라’는 채근이야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다만 그가 ‘곧장 돌아가서 치워야 할 현장’인 공장에선 전날 대형 폭발 사고가 벌어졌다. 노동자 2명이 숨졌다. 1명은 그와 같은 이주노동자였다. “폭발 소리에 놀라서 도망치는데 옆에 뭔가 떨어졌어. 사람이었어. 옷도 없고 다 없었어.” 참상을 목격한 그에게 주어진 휴일은 단 하루였다.

동료의 죽음에도 변한 건 없었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은 것처럼, 공장은 멈추지 않고 돌았다. 위험한 노동 환경도, 비인격적인 대우도 여전했다. 죽어도 안 변하는 현실 앞에, ‘사람’은 아무렇지 않을 수 없다. 죽음의 잔상을 떠올리며 트라우마(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렸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 다시 기록되지 못한 죽음, ‘암장’에 이른 이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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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안 된 이주노동자 죽음의 규모를 추정하고, 애도조차 포기해야 하는 부조리한 장례 과정을 짚었던 ‘암장, 이주노동자의 감춰진 죽음’ 3회는 죽음 이후 일터에 남은 이들의 이야기다.

동료의 죽음 이틀 뒤

쾅. 2020년 1월31일 오전 11시24분께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가납리 ㄱ가죽공장에서 굉음과 함께 로켓처럼 연기가 하늘로 솟구쳤다. 관련 판결문 등을 보면, 폭발은 보일러실에서 발생했다. 산업용 보일러가 1671배 팽창해 터져버렸다. 그날 보일러실 업무를 배정받은 나이지리아 사람 오카포르(가명·당시 45살)와 한국인 관리자(당시 68살) 2명이 폭발과 함께 날아가 20m가량 떨어진 곳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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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노동 강도가 약한 보일러실 업무는 그때그때 몸이 가장 아픈 노동자가 맡았고, 오카포르는 당시 손을 다친 상태였다. 보일러는 1994년에 제작된 노후 상태였고, 법이 규정한 대로 이를 운용해야 하는 국가 자격 보일러 관리자는 이름만 등록한 상태였다. 회사가 비용 절감을 위해 외면한 안전의 구멍들을 이주노동자들은 몰랐다.

공장에선 사람이 자주 번갈아 아팠다. 로히트도 일주일 전까지 몸이 아파 보일러실에서 일했다. “내가 나이지리아 사람 일하는 자리에 있었어. 일주일 전에 자리가 바뀌었어. 아니었으면 난 죽었어야 돼.” 당시 공장에서 함께 일한 미얀마 사람 루안(가명·40)도 오카포르를 떠올렸다. “아침마다 9시쯤 회사에서 커피를 마시는데 그날도 오카포르랑 같이 마셨어요. 마음이 진짜 안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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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의 잔상, 오카포르에 대한 기억, 희생자가 나일 수 있었다는 두려움이 뒤엉킨 충격은 컸다. 휴식은 허락되지 않았다. 금요일 사고가 발생하고, 사장은 일요일부터 출근을 종용했다. 로히트는 공장에 나가 소가죽과 털, 기름 따위를 치웠다. 고용노동부에서 공장 출입문에 ‘작업 중지’ 딱지를 붙였지만 무용했다. 사장은 “거기(노동부) 사람이 오면 기숙사 방으로 갔다가, 그 사람 가면 다시 일하러 나오라”고 말했다고 한다.

로히트와 루안 모두 두려움에 밤잠을 설치거나, 잠들어도 폭발이 일어났을 때처럼 깜짝 놀라 깨는 일이 반복됐다. 트라우마였다. 둘은 한달 동안 정신의학과에서 약을 처방받았다. 잔상과 두려움은 5년이 지난 현재도 남아 있다.

지옥으로부터의 탈출

ㄱ가죽공장은 피혁 제조업체다. 죽은 소에서 벗겨낸 가죽을 물에 담가 세탁하고, 화학약품 섞인 물로 털을 제거해 가죽 원단(원피)으로 가공했다.

폭발 사고 이후에도 공장은 위험했다. 폭발 사고 뒤인 2020년 2월17일 관할 노동지청 조사에서도 공장에선 다수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항이 발견됐다. 공장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난간이 없었다. 몸이 끼일 위험이 큰 폐수처리장 컨베이어나 회전축 체인 등에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덮개나 건널 다리도 없었다. 죽음조차 공장의 위험을 줄이지 못한 것이다. 왜였을까.

 

 


지난해 11월 한겨레와 만난 루안(가명)이 가죽공장에서 일하며 손톱이 빠진 동료 이주노동자의 사진을 가리키고 있다. 임재희 기자
이 모든 위험과 공포 앞에도 ‘떠날 수 없는 존재’, 이주노동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장 허락 없이는 사업장 이동이 불가능했다. 로히트와 루안은 “사업장을 바꿔달라고 하면 사장이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했다”고 전했다. 그나마 2021년 4월부터 산업재해로 사망자가 발생한 사업장에선 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이 가능해졌다. 다만 여전히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등록 이주노동자에 한정된 얘기다. 폭발로 죽은 오카포르도 임시체류자격(G-1) 비자로 일한, 미등록 노동자였다.

당시 공장 상황을 살피고 이주노동자들을 지원한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 김달성(69) 목사는 “폭발이 일어난 지 1~2주 만에 고용지원센터에서 새로운 이주노동자를 ㄱ가죽공장에 고용 알선해줬다”며 “미리 신청해놨겠지만, 이런 사고가 난 사업장에 정부가 이주노동자를 계속 보낸다는 사실에 어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루안이 말했다. “가죽공장에서 일한 건 지옥 같았어요. 진짜 지옥.” 지옥에서, 두 사람은 탈출해야 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탈출은 쉽지 않았다. 폭발 사고로 인한 트라우마 정도로는 사업장을 바꿀 수 없었다. 독한 화학약품으로 아픈 몸도, 공장 곳곳 도사린 위험도 역부족이었다. 로히트는 목에 혹이 생겼고, ‘화학약품 탓이라 더는 가죽공장에서 일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의사 소견서까지 받았다. 소견서를 본 사장의 즉각적인 반응은 역시, “그럼 그만두고 너희 집으로 돌아가”였다.

다른 방법을 찾았다. 루안의 경우 폭발 사고 사흘 뒤부터 사장이 법을 어겨 경기도 동두천에 있는 다른 가죽공장(그곳의 정체를 루안은 여전히 모른다)에서 일을 시켰던 게 문제가 됐다. 이주민센터 도움을 받아 이를 노동부에 신고했다. 그제야 2020년 4월 사장은 사업장 변경을 허락했다. 로히트는 목에 혹이 생겨 실제 가죽공장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자 9월에야 공장을 벗어날 수 있었다.

둘은 공장을 탈출했지만, 공장은 여전히 돌아간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김달성 목사는 “고용 연장 권한, 사업장 이동 권한이 100% 고용주한테 있어 ‘주종관계’를 만드는 현재 고용허가제에서는 어느 사업장이나 ㄱ가죽공장이 될 수 있다”고 했다. ㄱ가죽공장에는 2025년 현재도 이주노동자가 배정되고 있다.

임재희 기자 limj@hani.co.kr 김채운 기자 cwk@hani.co.kr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81752.html

 

동료 죽음 이틀 뒤 “나와서 현장 치워야지”…변화 없는 ‘지옥’

“여기 와서 일해야 할 거 아니야. 내일 가서 현장 치워.” 2020년 2월1일 토요일. 네팔 사람 타파 로히트(가명·33)는 일하고 있던 가죽공장 사장한테서 소름 끼치는 전화를 받았다. 주말에도 ‘일

www.hani.co.kr

 

“가장 위험한 노동 맡는 이들, 누군지 알아야 하지 않나요?”
암장, 이주노동자의 감춰진 죽음③ 일터에 남은 사람들
김승섭 교수 인터뷰
이지혜기자

 


수정 2025-02-11 08:11등록 2025-02-11 06:00


타이 사람 분추 프라바세눙, 베트남 사람 즈엉 반응웬, 방글라데시 사람 후세인 바케르, 인도네시아 사람 압둘 나스루딘, 네팔 사람 미노드 라이….

‘암장, 이주노동자의 감춰진 죽음’ 보도를 통해 한겨레는 한국에서 일하다가 병·사고·자살 등으로 숨진 이들의 이름 정도를 겨우 찾아 불렀다. 그의 생애 기억·관계·사랑·표정·성격·욕망·슬픔 등 한 사람을 이루는 복잡하고 구체적인 모습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금 알 수 없다. 그마저 운이 좋은 경우였다. 사망한 이주노동자 대부분은 이름조차 남지 않았다. 대한민국이 생산하는 어떤 행정통계로도 한국 땅에서 한 해 숨진 3340명의 노동자 중 94%(2022년 기준)의 기초적 사망자 정보를 파악할 수 없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내놓은 김승섭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연구팀의 ‘이주노동자 사망에 대한 원인 분석 및 지원 체계 구축을 위한 연구’(이하 연구)는 그 숱한 기록되지 못한 죽음에 천착한 보고서다. 보도의 바탕이 됐다.


연구는 현존하는 행정자료를 최대한 동원해 실제 이주노동자 사망 규모 추정부터, 사고사는 물론 질병·돌연사나 자살 등 다양한 사망 배경에 대한 분석, 복잡하고 값비싼 사망 이후 장례 과정, 사망을 목격한 이주노동자의 트라우마에 이르기까지 이주노동자 사망에 관한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다만 결론 대부분은 ‘정확히 알 수 없다’에 그친다. 최선을 다한 실패로 한국 사회의 ‘무지’를 고발한 셈이다.

한겨레는 보고서 공개 직후인 지난해 12월2일 연구를 이끈 김승섭 교수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다음은 김 교수와의 일문일답이다.



2023년 3월 경기 포천의 한 돼지 농장에서 일하다 사망한 뒤 야산에 유기된 타이 출신 이주노동자 분추 프라바세눙의 장례가 고국에서 치러지고 있다. 유족 제공
―이주노동자 사망 연구는 우리가 무엇을 아는지 보다 무엇을 모르는지를 드러내는 과정이었다. 이주노동자 죽음 규모를 추정하게 된 계기는?

“산업보건을 연구하는 교수로서, 산업재해 통계를 보면서 느낀 불편함이 있었다. 사고성 재해로 인한 사망률은 지난 10여년간 꾸준히 호전됐다. 이 긍정적 변화가 실은 가장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다 숨진 이주노동자가 국가 통계에서 상대적으로 배제돼 나타난 결과 아니냐는 의심이 가시지 않았다.


실제 한국 정부는 매년 이주노동자가 얼마나 다치고 숨지는지에 대한 공식 통계를 내지 않고 있다. 가장 위험한 노동을 값싸게 이주노동자에 맡기고 그들이 만든 음식과 재화를 사용하면서, 막상 그들의 삶과 죽음을 방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연구를 시작했다. 가용한 자원을 최대한 모아 전체적인 그림을 추정해보고자 했다.”

―‘통계 선진국’인 한국에 이주노동자 죽음에 관한 통계가 없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국가가 어떤 집단의 삶과 죽음에 대해 통계를 낸다는 것은 그 집단을 시민으로 인정한다는 의미다. 이주노동자 사망에 관한 지식이 생산되지 않았던 것은 결국 우리에게 ‘앎의 의지’가 없었다는 뜻이다. 많은 송출국 대사관은 한국에서 죽거나 다친 자국 노동자 권리에 대해 목소리를 내면 ‘고용허가제 쿼터’를 잃을 수 있다는 우려로 침묵하곤 한다. 한국 정부가 무지를 유지하고 고통을 방치해도 외교적으로 큰 문제가 없는 구조인 셈이다.”

―사망자 수 추정은 어떻게 이뤄졌나?


“실제로 이주민 관련 현장 활동가들에게 한해 숨지는 이주노동자가 몇 명일지 물어보면, 보통 200∼300명 예상한다. 현장에서 체감하는 숫자가 그 정도였던 셈이다. 2022년 기준 이주노동자 사망자가 최소 3340명이라 답하면 다들 놀란다. 죽음을 체계적으로 기록한 통계가 없으니 활동가조차 감을 못 잡을 정도인 것이다. 그만큼 드러나지 않은 죽음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번 연구에선 이주노동자 사망에 관해 행정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자료는 모두 받았다 . 현존하는 자료로는 최대치인데도,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빠져나가듯 많은 죽음이 빠졌다. 그나마 이주노동자 사망 자료를 가장 폭넓게 가진 곳이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인데, 역시 과소 집계됐을 가능성이 크다. 자신들이 이주노동자 사망 통계를 집계한다는 인식도 없고, 미등록 노동자는 관리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2022년 공사 현장에서 돌연사한 즈엉 반 응웬(왼쪽)의 모습. 유족 제공.
2022년 공사 현장에서 돌연사한 즈엉 반 응웬(왼쪽)의 모습. 유족 제공.
―연구는 ‘데이터의 함정’을 무척 경계하는 것으로 보인다

“누구의 죽음은 기록되어 사회적 애도를 받고, 누구의 죽음은 숫자조차 되지 못한 채 휘발된다. 외국인의 변사와 무연고사는 한국인보다 압도적으로 비중이 컸다. 한국인의 변사는 대부분 자살인데, 외국인의 변사는 과반이 사인을 모르는 ‘기타’로 분류된다. 여기서 ‘기타’는 다양한 원인이 모인 범주가 아니라, 원인을 알려고 하지 않아 생긴 일종의 서류 쓰레기통과 같다. 구체적 이유가 조금이나마 기술된 죽음은 경제적 보상이 연결된 경우 뿐이었다.

사망자 규모만큼 중요한 맥락은 사망자 대다수가 건강한 상태로 한국에 왔고, 젊을 때 숨졌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숨지는 정주노동자는 50살 이상이 압도적으로 많은 반면, 한국에서 숨진 이주노동자는 대부분 50살 이하다. 연령 보정 없이 사망률을 단순 비교할 수 없다는 의미다. 연령을 감안한 산업재해 사망률은 정주노동자와 이주노동자가 최대 3.6배 차이를 보인다. 이조차 언어·문화적 장벽으로 산재 신청 자체를 못한 이들과, 한국에서 일하다 크게 다치거나 병에 걸려 죽음을 앞두고 본국으로 돌아간 이주노동자는 배제된 숫자다.”

―한국 사회에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라면 열악한 조건을 견뎌야 한다는 인식이 뿌리 깊다.

“왜 이주노동자가 ‘미등록’이 되는지 살펴야 한다. 사회적 배경을 삭제하고 왜 ‘허가받지 않은’ 노동을 하냐는 질문은 그 노동의 혜택을 받으면서도 그 노동에 무관심한 한국인의 시각에서 편리하지만, 폭력적이다.

예를 들어 지금 계절근로자로 오는 이주민 중 상당수가 6개월간 임금에 맞먹는 돈을 현지 브로커에게 주고 한국에 온다. 그리고 그 브로커들은 놀랍지 않게도 대다수 한국인이다. 단기계약 월급보다 더 많은 수수료를 내니까 이들은 당연히 계약기간이 끝난 뒤 미등록으로 살아갈 것을 각오하고 온다. 충분한 검토 없이 단기적으로 고용이 필요하다는 현장의 요구에 따라 만든 제도의 대가를 이주노동자들이 치르고 있다.”

이주노동자 사망 관련 연구를 진행한 김승섭 서울대 교수가 지난해 12월2일 오후 서울대에서 한겨레와 인터뷰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한국 사회는 끊임없이 이주노동자를 ‘없는 사람’ 취급하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연구하면서 발견한 것은 이주노동자가 살아서는 ‘미등록’(Undocumented)이 되기 쉽고, 죽을 땐 ‘사인 미상’(Unknown)이 되기 쉽고, 죽고 나면 ‘무연고’(Unrelated) 처리되기 쉽다는 점이었다. 삶과 죽음, 죽음 이후의 과정에서 한국 사회가 계속 이주노동자를 인간의 경계 바깥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이주노동자를 살아서도 죽어서도,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사람으로 만드는 힘이 작동했다.

심지어 죽음과 죽음 이후 장례 과정에서도 이들은 애도 받지 못했다. 마땅히 공유되어야 할 사회적 이야기들이 사라져버리고 있다. 3천명이 넘는 이주노동자의 죽음이 일종의 참사라면,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누가 죽었고 왜 죽었는지 기록하는 것이 최소한의 시작이다.”

―이주노동자의 사망을 ‘예방’해야 하지만, 죽음 이후에야 이들의 고통을 발견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그건 연구하면서 만난 현장 활동가들의 고민이기도 했다. 가장 필요한 변화는 그들이 죽고 다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인데, 실은 죽음이 발생한 뒤에야 겨우, 그조차 드물게 개입이 가능하다. 작업환경 개선이 아니라, 이미 사망한 이주노동자를 위해 사업주의 사과를 받아내고 최소한의 보상금액을 받는데 활동이 집중되고 있어 안타깝기도 하다.”

―부조리한 장례 절차 등 ‘이주노동자의 죽음 이후의 불평등’은 매우 낯선 주제였다. 어떻게 다루게 됐나?

“연구팀에서 함께 일한 활동가가 한국에서 숨진 우즈베키스탄 노동자의 유해를 1년 가까이 보관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였다. 영안실에 계속 모시는 게 부담이 커서 화장을 했는데, 그의 동료와 가족들이 유해를 찾아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슬람 국가에서는 화장하는 것이 종교적 교리에 어긋나기 때문이었다.

그 계기로 이번 연구의 한 챕터를 사망 이후 이주노동자가 겪는 어려움에 할애했는데, 상상도 못 한 수많은 이야기가 쏟아져나왔다. 예를 들어, 경기도민이 숨져 지역 내에서 화장하면 비용이 10만원 안팎인데, 미등록 노동자는 외부인으로 간주돼 100만원을 내야 한다는 식이다. 가장 열악한 사람이 죽음 이후에도 가장 큰 비용을 치르고 있었다.”

돈을 모아 동포의 장례를 치르는 인도네시아 이주민들이 이슬람 성원에 마련된 발인예식장에서 주검을 관에 담은 뒤 기도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커뮤니티 포럼 페이스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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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와 관련해 방글라데시 방문 연구도 수행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꼽는다면?

“방글라데시를 찾아가 한국에서 일하다 본국에 귀환한 이주노동자를 많이 만났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들 대다수는 ‘살아남은 사람들’이었다. 젊은 나이에 한국에서 일해 나름의 부를 축적하는데 성공한 사람들이다. 한국에서 일하다 죽거나, 중증 장애를 얻었거나, 큰 트라우마를 얻은 사람들은 어디에서도 만나기 어렵다. 그런 이들은 귀환 노동자 모임에도 나오지 못한다. 결국 한국에서 고통받은 사람들 이야기는 사라지고,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 이야기만 퍼져나간다. 역경을 이겨낸 계급 상승의 신화처럼 매력적인 이야기가 없지 않은가.”

―한겨레 취재 과정에서 만난 이주노동자는 도전적이고 삶에 대한 열망이 커 보였다.

“이주노동자에게는 살아남아야만 하는, 성공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1960년대에 독일 광부·간호사로 자원한 사람들, 1970년대에 중동 건설현장에 일하러 간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강렬한 삶의 의지와 자기통제 역량이 있는 사람들 아니었을까.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들도 그렇다. 한국에서는 외국인이라는 신분과 언어장벽으로 위축돼서 그렇지, 이들이 자신의 언어로 말하고 행동할 때는 강하고 자신감 있다. 방글라데시에서 만난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은 목소리와 표정부터 달랐다. 어떤 이들은 심지어 ‘꼰대’같기도 하다. 한국에 온 지 7년 된 방글라데시 노동자가 나에게 ‘요즘 방글라데시 젊은 애들은 겨우 사장이 ‘야’라고 한 거 가지고 불만 갖는다’고 흉을 보더라.(웃음)”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을 좋아한다는 점도 의외다. 열악한 노동환경에도 품고 있는 한국에 대한 애정은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어려운 문제다. 많은 이주노동자가 차별과 폭력을 두려워하면서도, 자신의 본국과 견줘 많은게 풍요로운 한국 사회에 살면서 복합적인 감정을 가진다. 게다가 가족들은 한국에서 보내는 돈으로 풍족한 삶을 누리고 있고, 본국엔 일자리도 없으니 일하다 다쳐도 쉽사리 본국으로 돌아가기 어렵다.

특히 한국에 오려고 가족들의 경제적 지원을 받았던 이들은 아무리 힘들어도 돌아가겠단 말을 입 밖에 내지 못한다. 또 한국에서 많은 이주노동자가 위험한 사업장에서 일하는 것은 분명 사실이지만, 몇몇 나라의 경우 이들이 본국에서 찾을 수 있는 노동 환경이 그보다 특별히 더 안전한 것도 아니다.

모든 인간이 그러하듯, 한국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 삶 역시 복잡하다. 한국에서 일하다가 손가락 절단 사고를 당했던 방글라데시 노동자를 만나 ‘한국에 대해 무엇이 떠오르냐’고 물었더니 산재 얘기가 아니라 ‘해 질 무렵에 마시던 소주와 삼겹살을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방글라데시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이슬람 국가인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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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사람 루안(가명)이 가죽공장에서 일하며 손톱이 빠진 동료 이주노동자의 사진을 가리키고 있다. 임재희 기자
―보고서 전반에 이주노동자를 연민의 대상이 아닌, 복잡성을 지닌 한 사람으로 대하고자 하는 태도가 느껴졌다.

“복잡성은 고유한 역사가 있다는 뜻이다. 누군가의 자식으로 태어나 배우고 일하고 사랑하고, 그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한 사람의 존재를 인지하는 일이다. 그 과정은 숱한 모순과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 복잡성이 사라지면 쉽게 타자화되고, 이주노동자의 상실을 애도하기 위한 중요한 이야기들을 함께 지우는 효과를 낳는다. 당장 필요하고 시급한 정책들이 많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계속 문제를 새롭게 인식하고 과제를 바꿔 나가며 길을 찾아야 한다. 수많은 역사가 엮인 복잡한 이야기만큼 해결책도 복잡할 수밖에 없다.”

―이번 연구가 어떤 변화를 불러오기를 바라나?

“이번 연구가 한국인과 이주노동자가 다 같이 이주노동자 사망에 대해 공부를 시작할 좋은 이야깃거리가 되길 바란다. 그래서 이주노동자들도 읽을 수 있도록 요약문을 13개 언어로 번역해 보고서에 첨부하기도 했다. 언젠가는 한국에서 이런 연구를 이주민 당사자가 해야 하지 않을까. 그들은 한국인인 나보다 훨씬 더 용감하게 이주민의 삶과 죽음의 다채로움을 표현할 수 있을 거다. 많이 읽히고 사용되길 간절히 바라면서 불확실성 속에서도 가장 나은 걸 건져 올리려 최선을 다한 보고서다. 이를 통해 이주노동자 삶과 죽음의 복잡성이 함께 인지된다면 정말 좋겠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