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다이트 운동 메모
2018.july 3
사진 제목이 상당히 조롱조이다.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와는 거리가 먼 경제적 실패자"이다. 최근 우파의 핵으로 알려진 시카고 경제학과가, 자기들과는 다른 결을 지닌 다론 아체모글루에게 보통 대학교수 연봉 8배~10가 넘는 연봉 100만 달러(11억 조금 넘음)를 제안했다 한다는 소문이 있다. 영웅 숭배 사회인 미국 고려하면 대학도 프로야구 세계이니 놀라울 것은 전혀 없다.
4년 전에 학계의 권위에 상당히 민감한 캐나다 지인이 why nations fail:the origins of power,prosperity, and poverty (왜 나라들이 실패했는가: 권력, 번영, 빈곤의 기원: 2012)을 들고왔다. 저자는 MIT 경제학과 다론 아체모글루와 정치학자 제임스 로빈슨이다. 이 둘은 공동작업을 한다. 다른 학과끼리 협업은 좋은 일이다.
- 이 책의 전제와 주장은 "정치적 혁명이 부자 나라의 조건이다"이다.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테제를 응용해, 1688년 영국혁명과 같은 정치혁명이 영국의 경제발달(산업혁명)을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이집트 등과 같은 나라들은 이런 정치혁명을 겪지 못했기 때문에 경제성장도 경제발달도 이루지 못한 채 빈부격차만 더 커졌다고 본다. 그럴싸 하고 맞는 부분도 있다.
- 하지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이 타도대상이었고 지금도 그렇게 보지만, 한국의 사례를 보면, 독재 정권 하에서도 경제는 양적 질적으로 성장이 가능하다.
- 이 책의 전제와 주장에 대해 쉽게 동의할 수 없다.
- 그리고 정부의 자본 규제를 주장하는 케인지안이나 포스트 케인지안은 한국의 박정희-전두환 정권의 '사적 자본 통제'를 긍정적으로 해석했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난 이들의 이론적 관점은 아니지만, 이런 입장을 취하는 연구자들은 Acemoglu , Robinson의 전제와 주장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내적 논리 정합성이 생긴다.
-다시 사진으로 돌아온다. 저 사진은 아주 유명한 러다이트 운동을 묘사하고 있다. 이 저자들이 숭배하는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가 아니다. 그래서 아체모글루와 로빈슨이 제목을 이렇게 달았다 "창조적 파괴와는 거리가 먼 경제적 패배자들: 19세기 초반 영국에서 기계를 파괴하는 경제적 패배자들 economic losers"
- 러다이트가 진짜 실패자인가? 그건 가치관 정치적 관점에 따라 다를 것이다. 사회적 과학주의나 과학적 사회주의에 미친 사람들도 러다이트를 시대착오적이거나 비과학주의로 매도할 수는 있다. 하지만 난 러다이트 개인이나 러다이트 운동이나 초기 수준에서 유의미한 점이 있다고 본다. 기계보다 사람이 먼저다. 이런 주장이다. 이윤보다 사람이다라는 주장을 "기계보다 사람이 먼저다"라고 표현한 게 러다이트였다.
정치운동은 이런 시행착오를 거쳐 발전하는 것이다. 러다이트도 운동발전에 기여한 점이 있다.
따라서 러다이트나 러다이트 운동 "경제적 실패자 economic losers"라고만 볼 일은 아니다.
- 아체모글루와 로빈슨은 '제도 institutions'가 지리나 문화보다 더 경제성장, 경제적 분배 몫(1인당 국민소득 등)에 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그 제도들을 만든 정치적 요소들 (정치혁명)이 또한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둘은 그 제도들 안에 내재한 계급 계층 차별적 요소들에 대해서는 심층적으로 분석하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배제했을 가능성이 크다.
- 내가 인간적으로 좋아하는 한국태생 두 경제학자들이 미국내 경제학과에서 수퍼스타인 아체모글루를 칭찬하는 것을 봤다. 내가 팔이 안으로 굽는 게 아니다. 내가 보기에는 내가 아는 두 지인이 대략 170%는 아체모글루보다 똑똑하다.
- 난 한국 연구자들이, 아니 한국 사람들이 미국 '운전면허증'이 없더라도, 거기에 의존하지 말고, 한국이라는 사회과학적 현실에 근거해서, 자유롭게 말하고 토론하고 서로를 검증해 나가는 그런 독립적인 문화를 누렸으면 좋겠다.
-안철수가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를 참 숭배했고, 모든 인터뷰에서 자기를 한국의 슘페터 재림처럼 말했다. 학문들을 융합해버리고, 창조적으로 파괴하는 마술사 정치가 안철수였다. 아주 창조적으로 한국 정치사에서 파괴당하고 말았지만. 안철수 눈에도 러다이트는 루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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