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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2025 개헌_의원내각제

자기파괴적인 계엄령으로 끝난 국민의힘 정권. 어리석은 윤석열과 잘못된 만남 '여소야대' 국회. 프랑스 미테랑은 1986년 '여소야대' 국회에 권력을 이양해주고도, 1988년 재선에 성공했다.

by 원시 2025. 1. 24.

대통령제 폐지를 고민해야 하는 이유. 행정권력과 국회권력이 일치하지 않는, '여소야대' 국회가 몰고 온 구조적인 체계적인 '자해적 계엄령 선포' 


왜 윤석열은 자기파괴적인 계엄령을 선포하고 국민의힘 정권의 생명을 앗아갔는가? 서유럽의 경우, 대부분의 국가는 의원내각제를 기본으로 하고, '대통령제'를 보충재로 채택하고 있다. 한국의 대통령제의 기본골짜는 프랑스 제 5공화국 헌법 (1958년)에 기초하고 있으나, '대통령 선거에서 2차 결선 투표' 조항은 누락시켰다.


윤석열이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인용되어 '파면'될 확률은 99.9999%이다. 윤석열의 자질부족과 한국 대통령제의 단점의 극단적인 결합이 윤석열의 계엄령 선포와 파면의 원인들 중 하나이다.


정당활동과 정치경험이 전무했던 검사 윤석열이 '여소야대' 국회를 정치적으로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없었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윤석열의 선택지는 무엇이 있었는가?


1) 대연정 내각을 만들어라. 2020년 총선결과로 민주당은 180여석, 2024년 총선으로 야당은 192석으로 거대야당이었다. 윤석열은 18개 행정부 장관들 중에 야당에 8~9개를 양보하고, 나머지 10개를 국민의힘에 할당하면서, '거국 내각'을 만들었어야 했다.


2) 1986년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이 결정한 것처럼, '대통령은 사회당 출신 미테랑', 내각 총리는 우파연합 시락으로 구성된 '동거정부' 모델을 따른다. 이렇게 되면, 윤석열은 외교와 국방만 맡고, 국무총리는 민주당 출신이 맡고, 외교-국방을 제외한 행정부 장관 임명을 야당들에 내 맡긴다. 


위 두 가지를 선택했다면, 윤석열은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윤석열은 마음은 '대통령'인데, 그의 몸동작은 20~50명 수사관에게 명령내리는 '검사'였다. 윤석열의 계엄선포문을 보면, 윤석열은 국회와 야당들을 '범죄 집단의 소굴'로 간주했다. 검사 윤석열이 조폭을 검거하는 듯했다. . 

 

 

 

 

 

2. 노태우 사례 - 미테랑식 '동거정부'가 아니라, 합당 방식을 택했다. 

한국에서 1987년 대선에서 36% 득표로 대통령이 된 노태우는 1988년 4월 총선에서 '여소야대' 국면에 직면했다. 

1988년부터 1990년 1월 22일 3당합당 (민자당)까지 한국 정치사에서 '절차적 민주주의'가 그나마 잘 실현된 연도였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김대중의 평민당,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의 야권연대로 인해, 전두환은 백담사로 쫓겨갔고, 5공비리 청문회가 열였다. 

그러나 노태우는 '여소야대' (동거정부) 국면을 해체하기 위해, 1990년 1월 22일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 민정당을 통합해, 216석의 민자당을 출범시켰다. 

1990년 민자당의 탄생은 2025년 현재까지 한국 정치 행태, 유권자들의 전략적 투표 행태에 규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3.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이 '여소야대' 국회를 다뤘던 방식들 - 동거정부 형태 (코아비타시옹) 

 

1981년 5월 사회당 출신으로도 처음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미테랑, 프랑스 역시 '최초 정권 교체'였다. 1981년부터 1995년까지 14년 대통령직에 있었던 미테랑은 1986년 총선과 1993년 총선에서 패배해 '여소야대' 국면을 맞이했다. 이 과정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981년 5월 대선에서 미테랑은 대통령에 극적으로 당선되었다. 대선 1차전에서는 대통령 데쓰뎅이 1위였고, 미테랑은 2위였지만, 2차 결선 투표에서 미테랑이 160만 6천표 차이로 데쓰뎅을 이겼다. 미테랑의 당선 이후, 국회를 해산하고 6월에 국회의원 선거를 실시해, 총 419석 중 사회당이 269석, 공산당 44석을 차지하고, 데쓰뎅의 ‘프랑스 민주연합 UDF’는 61석, 시락의 ‘공화국연합 (RPR)’은 85석을 얻는데 그쳤다. 미테랑 1기에서는 사회당과 공산당 4명이 행정부를 구성했다.

 

그러나 1986년 3월 총선에서는 중도우파연합이 다수당을 차지했다. 총 573석 중에, ‘프랑스민주연합’과 ‘공화국연합’이 연합해 만든  ‘‘혁신야당연합 UOR’이 277석, 사회당은 207석, 프랑스 공산당(PCF)은 35석, 르펜의 국민전선(FN)은 35석을 얻었다.  

 

사회당 출신 미테랑 대통령은 여소야대 국회에 직면해, 두 가지 선택지 밖에 없었다. 대통령을 사임하던가, 아니면 중도우파연합의 시락을 ‘총리’로 임명하고, 행정을 이끌어 나가게 하는 것이었다. 이런 타협책으로써 미테랑은 외교, 국방, 유럽연합 정책을 떠맡고, 시락이 나머지 행정부 일을 맡았다.

 

이러한 열세에도 불구하고, 미테랑은 시락의 ‘사유화 (민영화), 고용정책, 선거법 개정’에 반대하는 등, 그의 존재감을 과시하기도 했다.

 

미테랑은 대중들에게는 ‘아저씨’를 뜻하는 ‘톤톤 Tonton’으로 불렸고, 중재자대통령 이미지를 획득하는데 성공해, 1988년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국연합’의 시락을 누르고 당선되었다. (미테랑 54%, 시락 46%)

 

재선된 미테랑은 86년 국회를 해산하고, 총선을 다시 실시해, 사회당이 262석을 획득해 다수당이 되었다. 그러나 1993년 총선에서 사회당은 53석을 얻고, 데스뎅의 프랑스민주연합’ 213석, 시락의 ‘공화국연합’은 247석을 얻어, 미테랑은 다시 우파와 동거정부를 꾸릴 수 밖에 없었다. 그는 ‘공화국연합’의 발라뒤르를 총리로 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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