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갈루치 인터뷰 "왜 조지 부시는 대북 정책을 강경에서 대화로 바꿀 수 밖에 없었는가?"
원시
http://www.newjinbo.org/xe/66073
2008.04.19 13:40:174089
2008. 4월 18일 금요일 오전 11시 (미 동부시간), 조지타운 대학, 와싱턴 D.C
로버트 갈루치와 인터뷰
로버트 갈루치 "북한 벼랑끝 전술 Brinkmanship 용어 적절하지 않다"
: 로버트 갈루치(Robert Gallucci)는 1994년 북한 강석주와 더불어 제네바 합의를 도출해내는데 나름 역할을 했다.
1. 질문 "밥 Bob, 북한을 지금까지 몇번이나 방문했는가?"
갈루치: 한번도 방문한 적이 없다. 강석주와는 제네바와 뉴욕에서 주로 협상을 했다. 다른 사람들이 그 질문을 하는데, 난 서울은 방문했어도 평양은 방문한 적이 없다.
- 막간 웃음
2. 이명박 대통령이 어제 평양과 서울에 연락사무소 (Liaison)을 설치하자고 제안했는데, 이거 어떻게 생각하는가? 단지 정치적 제스처 아닌가?
갈루치: 자세히는 못들었다. 그러나 만약 그런 제안을 했다면 좋은 거 아닌가? 잘 되기를 바란다.
(* 약간 외교적 발언이라고 생각)
3. 미국이 북한에 대한 강경조치들 (무역적성국가 the Trading with Enemy Act, 테러지원국 제제 Sponsor state of terrorism)을 거둬들일 것으로 전망하는가?
갈루치: 북한이 만약에 핵무기 협상에서 어느정도 진전을 보인다면 (플루토니윰 신고, 폐기 등) 중장기적으로 북한에 대한 강경조치들을 폐기할 것으로 전망한다.
질문: 긍정적으로 본다 이말인가?
갈루치: 그렇다.
4. 1994년 북한의 강석주 대표와 핵무기 실험 및 보유에 대한 협상을 시도할 때, 2006년 10월 북한이 핵무기 보유선언을 할 것까지 예측했는가? 그 당시 정황으로 보아 조금이라도 북한이 핵무기 소유를 발표할 것이라고 생각이나 했는가?
갈루치: 그렇지 않았다.
5. 질문: 사실 클린턴 행정부에서 일한 사람이니까, 그 당시 완전히 핵문제를 해결해 버렸으면 지금 상황까지 오지 않을 수 있었다. 안 그런가? 도대체 뭐가 문제였는가?
갈루치: 2000년 조지 부시 당선 이후, 딕 체니, 존 볼튼, 조제프 같은 강경파들이 평양정부, 김정일 위원장을 신뢰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야 북한이 1994년 제네바 협의에서 이탈했지만, 그렇게 된 데에는 미국 강경파들의 정책 역시 그 원인을 제공했다.
6. 질문: 북한의 외교전술을 서방언론에서는 "벼랑끝 전술 brinkmanship"이라고 한다. 이에 대한 당신 생각은 어떠한가? 강석주와 협상을 하면서, 그 이후 북한 정부를 상대하면서 느낀 소감에 기초해서 이야기해달라.
갈루치: 북한의 외교전술을 '벼랑끝 전술'이라고 명명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incorrect) . 북한은 경수로 건설, 경제지원 등을 최대한 얻어내기 위해서, 그리고 미국의 관심과 조명을 받기 위해서, 강경정책을 쓰는 것이다. 사실 북한은 핵보유를 제외하고는, 그렇게 강한 나라가 아니다. 경제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군사적인 측면에서도 그렇게 썩 강성한 나라라고 볼 수 없다. 그래서 북한 평양정부가 사용하는 전술은 미국으로 하여금 북한을 하나의 국가로 인정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7. 질문: 혹시 존 볼튼, 딕 체니, 럼즈펠드 등 조지 부시 행정부 강경파들이, 갈루치 당신까지도 신뢰하지 않은 것 아닌가? 다시 말해서, 당신이 해왔던 북한과의 외교나 협상을 신뢰하지 않은 것 아닌가, 물론 그들은 당연히 평양정권을 불신했겠지만.
갈루치: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는 북한과의 협상을 하도록 장려했다. 그리고 내가 협상에 나설 때 부통령 엘 고어, 파웰 등이 우호적인 분위기를 조성했다. 반면에 조지 부시 행정부, 특히 강경파들과 일할 때는 여러가지 어려움들 압박들이 많았다.
8. 질문, 밥, 다시 1994년으로 돌아가보자. 당시 김영삼 정부는 "핵무기 보유하는 국가랑, 즉 북한이랑은 대화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그 결과, 평양정부는 빌 클린턴 행정부와 대화채널을 만들고, 남한을 배제시켜버렸다. (소위 통미봉남: 미국과 통하고 남한을 봉쇄하는 전술)
자칫 잘못하면, 이명박의 "비젼 3000"도 통미봉남을 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
갈루치: 두가지로 나눠보자.
먼저, 1994년, 평양, 서울, 와싱턴 사이에 불균형적인 대화구조는 있었다. 그러나 내가 서울을 몇차례 방문했고, 통일 외교 관련자들과 북한문제를 협의했다. 따라서 미국과 남한이 공조를 하지 못했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찬성할 수 없다.
두번째, 1994년과 2008년을 비교, 비유하는 것은 약간 조심할 필요가 있다. 이명박의 3가지 원칙들(비핵화, 개혁개방, 비젼 3000)은 부시 제 2기 대북정책 *콘돌리자 라이스의 협상전술을 가리킴)과 크게 어긋날 것 같지 않다.
(평가) 갈루치 같은 경우는, 평양 - 서울 - 와싱턴 사이에, 다시말해서,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지난 15년간 다소 미국과 남한간의 불협화음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남한을 동맹대상으로 설정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 점을 강조했다.
9. 그럼 미국내 조지 부시 행정부, 제 1기와 제 2기 그 차이점에 대해서 말해보자. 아시다시피, 제 1기는 정권교체 (regime change), 악의 축 (Axis of evil), 독재자 (outpost of tyranny) 표현을 써가면서 북한 김정일 정권을 부정했다. 그러나 제 2기는 라이스로 대표되는 협상 전술이 채택된다. 왜 갑자기 조지 부시 행정부는 북한에 대한 전술을 바꿨는가?
갈루치: 첫번째는, 미국내 중간 선거 결과 때문이다. 2006년 12월이 그 전환의 계기점이었다. 상원, 하원 모두다 공화당이 민주당에게 패배했다.
두번째, 이라크 전쟁에 진전이 없었다. 국내 여론이 안 좋아졌다
세번째, 아프가니스탄 역시 난항이었다.
네번째, 이란과의 갈등이 다시 고조되었다.
다섯번째, 팔레스타인, 레바논, 시리아 문제 등, 중동 평화 문제가 얽히게 되었다.
여섯번째, 북한 역시 핵 개발을 선언했다.
...
일곱번째, 북한 문제가 가장 쉽게 결실을 맺을 수 있는 것이었다. (low-hanging-fruits) 힘을 제일 적게 들이고서, 어떤 정치적 결실을 볼 수 있는 소재가 바로 북한 핵 문제였다는 것이다
10. 6자 회담의 전망에 대해서 좀 물어보고 싶다.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 (vision 3000)으로는, 6자 회담에서 남한 정부 역할이 과거보다 더 적어질 것 같다. 그렇게 되면, 북한이 남한정부를 무시하고, 미국만을 대화상대자로 삼는 것은 아닌가?
갈루치: 북한은 중거리 미사일, 핵무기 개발했지만, 실제로 남한을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니다. 북한은 남한을 위협의 대상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북한은 미국을 체제위협의 대상으로 생각한다. 북한 남한의 경제협조는 중요하다. 정치군사적인 측면에서, 북한에게 미국은 특별한 존재이다. 따라서 정치 군사 문제를 풀 때는 북한이 남한 정부보다는 미국을 주로 대화상대자로 삼는데, 이것은 알다시피 특수한 정치적 관계를 반영한 것이다.
원시: 솔직이 (미국정치인들) 별로 칭찬은 하지 않는다. 암튼 애석하다. 1994년 당신이 참여한 제네바 합의로 북핵 문제가 다시 수면으로 안 떠올랐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나마 밥 (Robert Galluci) 당신은, 남한의 진보적인 사람들에게, 미국 정치인(공무원)치고는, 아마도 최초로 좋은 인상을 심어준 사람 같다.
갈루치: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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