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 노트 Notes on the Politics of Korea

제 3차 북핵 테스트로 미국과 UN다수 국가들은 북한 평양정부에 대한 제재조치를 발표할 것이고, 향후 1~2년 정도 교착 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냉각국면은 대화와 타협국면으로 전환될 가능성도 많다. 


 오바마 2기 정부는  NATO 전술핵 감축 계획과 러시아와의 대륙간 탄도 장거리 미사일 감축, 이란-북한 핵무기 확산에 대한 포괄적 타결책을 내놓을 가능성도 크다. 한국 내부에서 핵위기를 슬기롭게 외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북핵 위기원인들을 역사적으로 따져볼 필요가 있다.


[2008년 4월 로버트 갈루치와의 인터뷰에서 핵심 소개] 


그럼 미국내 조지 부시 행정부, 제 1기와 제 2기 그 차이점에 대해서 말해보자. 아시다시피, 제 1기는 정권교체 (regime change), 악의 축 (Axis of evil), 독재자 (outpost of tyranny) 표현을 써가면서 북한 김정일 정권을 부정했다. 그러나 제 2기는 라이스로 대표되는 협상 전술이 채택된다. 왜 갑자기 조지 부시 행정부는 북한에 대한 전술을 바꿨는가?


갈루치: 첫번째는, 미국내 중간 선거 결과 때문이다. 2006년 12월이 그 전환의 계기점이었다. 상원, 하원 모두다 공화당이 민주당에게 패배했다. 


두번째, 이라크 전쟁에 진전이 없었다. 국내 여론이 안 좋아졌다

세번째, 아프가니스탄 역시 난항이었다.

네번째, 이란과의 갈등이 다시 고조되었다.

다섯번째, 팔레스타인, 레바논, 시리아 문제 등, 중동 평화 문제가 얽히게 되었다.

여섯번째, 북한 역시 핵 개발을 선언했다.

...

일곱번째, 북한 문제가 가장 쉽게 결실을 맺을 수 있는 것이었다. (low-hanging-fruits) 힘을 제일 적게 들이고서, 어떤 정치적 결실을 볼 수 있는 소재가 바로 북한 핵 문제였다는 것이다



북핵 위기의 원인과 해법 : 미국 내 북핵을 바라보는 시각과 대응들


미국은 북핵과 평양 정권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2008년 4월 인터뷰 정리 노트


KBS 스페셜 <이명박과 워싱턴, 그리고 평양> 2008년 4월 27일 방송




kbs 스페셜 2008, April 27 from media_politics_databanks on Vimeo.




이명박 <비핵 개방 3000>에 대한, 미국내 보수 씽크탱크 헤리티지와, 민주당 씽크탱크 브루킹스 입장 거의 대동소이하다.북한에 대한 가장 진보적인 입장 (대화 협상파)에서, 가장 보수적인 입장으로 순서대로 적어보겠다.



(1) 세리그 해리슨 (Selig Harrison)  - 햇볕 정책과 유사 


(2) 로버트 갈루치 – 햇볕 정책과 대동소이 : 미국 민주당내 협상파 


(3) 미국 민주당 계열 브루킹스 연구소, 마이클 오-한론 (Michael O'hanlon) 

4월 16일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인터뷰) 


질문: 이명박 <비핵 개방 3000>과 DJ <햇볕정책> 차이가 없는가? 


마이클 오한론: 차이는 약간 존재하지만, 북한이 6자 회담에 나와서, 핵무기 개발 폐기 선언을 하고 실천한다면, 테러리스트 국가 명단 해제, 금수조치 해제 (미 행정부 차원에서 해결가능)하고, 외교 정상화 (미국 의회 비준 필요)까지 나아갈 수 있다. 


(4) 미국 공화당 계열 헤리티지 재단 연구소, 브루스 클링어 (Bruce Klinger)


마이클 오슬린: 

크리스토퍼 힐, 마카오 소재, 방코 아시아 델타 은행의 북한거래중단 문제를 해결한 것에 대해서, 미국이 너무 북한에 양보했다고 판단, 잘못된 미국 전술이다. 


이명박의 <비핵 개방 3000>은 기본적으로 올바른 전술이다. 그러나, 칭얼대는 손자 응석 (김정일 평양정부의 요구)을 들어주는 할아버지가 될 필요는 없다. 


(5) 네오콘 (American Enterprise Institute) ; 존 볼튼, 마이클 오슬린 (Michael Auslin)


북한 체제는 기본적으로 자유주의체제가 아니므로, 그 정당성을 인정해서는 안된다. 북한의 인권문제를 선결조건으로 내세우다. 조지 부시 행정부 제 2기 대북정책 (콘돌리자 라이스, 크리스토퍼 힐)에 대한 비판 입장. 더 나아가서, 이명박의 <비핵 개방 3000>을 조지 부시가 잘 받아들여서, 북한 평양 정부를 비판 압박해야 한다. 


전 미국 유엔 대사, 네오콘 존 볼튼과 인터뷰 "북한 주민을 구해내라" 


2008.04.19 


4월 14일 월요일. 와싱턴. (존 볼튼 John Bolton 과의 인터뷰) 


0. 원시 질문: 2주간 바빴다고 하던데, 어디 해외 다녀왔는가? 


존 볼튼: 중동 몇개 나라 돌아다니면서 강연회하고 어제 돌아왔다.


1. 질문: 당신 철학을 비춰보건대, 이명박 대통령의 "비핵 3000" 전략을 환영할 것 같은데, 어떠한가? 


존 볼튼 (John Bolton: 전 유엔 주재 미국대사): 현실적인 방안이다. 북한은 핵무기 보유 및 기술 이전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화학, 생물학 무기 역시 개발할 것이다. 따라서 김대중 햇볕정책과는 달리 이명박의 '비핵 3000' 전략은 현실주의적인 것이다.


2. 질문: 이명박 정부가 김대중의 햇볕정책등을 포기하면, 6자회담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겠는가?


존 볼튼: 난 6자 회담의 성공에 대해서 회의적이다. 왜냐하면, 북한은 핵무기 보유와 핵기술 이전을 고집할 것이기 때문이다. 


3. 질문 다시: 아니, 지금 부시 제 2기 대북정책, 담당자인 콘돌리자 라이스는 6자 회담에 대해서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전망을 가지고 있는데, 당신은 6자 회담이 실패로 귀결될 것이라고 본단 말인가?


존 볼튼: 회의적이다. 



4. 질문: 그렇다면, 콘돌리자 라이스 대북정책 (협상 유지 및 타협적 개입정책)은 문제가 있다는 말인가?


존 볼튼: 부시 행정부의 관료주의 체제에서 비롯되는 문제이다. 


5. 질문: 조금 더 분명하게 말을 해달라. 관료주의라는 말이 이 맥락에서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존 볼튼: 부시 행정부가 대북정책에서 일관성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2001년 이후, 취했던 대북정책에서 일관된 틀 (framework), 다시 말해서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는 조건에서 협상하고, 북한의 인권문제 해결을 전제로 원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침착하던 존 볼튼이 약간 열정적으로 답변한다)


아니 내가 보기에는, 왜 남한 사람들이, 같은 동포인 북한 사람들이 굶어죽고, 기아에 허덕이고, 인권을 유린당하는데, 가만히 보고 있느냐? (북한 동포를 해방시켜라 free fellow North Koreans) 


6. 질문: 남한 사람들도 북한 동포들 삶에 관심이 있다. 그래서 남북경협을 실시하려고 개성공단도 건설하고 있지 않은가? 


존 볼튼: 개성공단의 결과물이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 결과물은 북한 사람들에게로 돌아가지 않는다. 북한 독재 권력과 군부로 그 결과물이 귀속되는 것이다. 



7. 질문, 그럼 이번 조지 부시와 이명박 대통령간의 정상 회담에 대해서 전망해보자.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북한 핵문제나 "비핵 3000" 이 주제로 다뤄질 것 같은가? 


내가 보기에는, 이명박의 "비핵 3000" 원칙이나 전략들이, 마치 조지 부시 제 1기 대북정책 "적대적 무시 malign neglect"에 더 가깝지, 조지 부시 제 2기 대북정책과 더 가까운 것 같지 않다. 


이명박은 왜 조지 부시 제 1기 정책을 따라서 흉내내는가? 제 2기 정책과 오히려 갈등을 빚지 않을까?


존 볼튼: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 이명박 대통령이 조지 부시 대통령을 설득시켜야 한다. 그래서 부시 제 1기 대북정책으로 다시 복귀해야 한다. 


8. 질문: 아니 이명박 대통령이 조지 부시 대통령을 설득시킬 수 있다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존 볼튼: (약간 멈칫 멈칫) 근거? 

아니 근거라기 보다는, 내 바람이다. 


질문: 주관적인 바람인가? 

존 볼튼: 그렇다. 


[인터뷰 후기] 


그 악명높은 존 볼튼, 생각보다 단순하고, 약간 싱겁기까지 했다. 인터뷰 내내 약간 형식적이고 아주 외교적으로 발언을 했으며 그 수위는 보통 언론에서 노출된 "강성 보수" 깡패 이미지는 아니었다. 아버지가 동네 소방관이었는데, 이 존 볼튼은 미국이라는 나라를 지키는 소방관을 자임하는 듯 했다. 

(*존 볼튼은 예일대학 졸업) 


존 볼튼은 국민윤리 검증 교과서에는 나오는, 한국 미국은 자유주의 민주국가이고, 북한은 독재 공산주의국가라고 했다. 가치가 비슷한 이명박 정부와 미국 조지 부시는 북한 독재정부를 무너뜨리고, 남한 사람들은 독재하에서 신음하는 북한 사람들을 해방시켜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존 볼튼은, 아직도 강경파로서, 부시 제 1기 강경 대북정책을 옹호했고, 제 2기 콘돌리자 라이스, 싱가폴 회담 담당자 크리스토 힐 등을 기회주의자들, 비일관적인 대북정책 옹호자들로 몰아부치면서 비판했다. 

조지 부시는 자기 말을 들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존 볼튼과 인터뷰하는 동안 느낀 점은, 존 볼튼 등은 구체적인 정보나 사실에 근거해서 대북정책, 한반도 정책들을 수립하는 게 아니라, 정치 이데올로기 차원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 대 공산독재국가 대결구도를 가지고서 한국문제(Korea question)를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과연 차기 미 대통령 후보로 나선 존 맥케인(공화당)은 이러한 존 볼튼의 견해를 어느 정도 수용할 것인가? 



KBS 스페셜 <이명박과 워싱턴, 그리고 평양> 2008.4.27 방송


로버트 갈루치 인터뷰



"왜 조지 부시는 대북 정책을 강경에서 대화로 바꿀 수 밖에 없었는가?"


2008.04.19 http://www.newjinbo.org/xe/66073


2008. 4월 18일 금요일 오전 11시 (미 동부시간), 조지타운 대학, 와싱턴 D.C


로버트 갈루치와 인터뷰 


로버트 갈루치 "북한 벼랑끝 전술 Brinkmanship 용어 적절하지 않다"


: 로버트 갈루치(Robert Gallucci)는 1994년 북한 강석주와 더불어 제네바 합의를 도출해내는데 나름 역할을 했다. 


1. 질문 "밥 Bob, 북한을 지금까지 몇번이나 방문했는가?"


갈루치: 한번도 방문한 적이 없다. 강석주와는 제네바와 뉴욕에서 주로 협상을 했다. 다른 사람들이 그 질문을 하는데, 난 서울은 방문했어도 평양은 방문한 적이 없다. 


- 막간 웃음


2. 이명박 대통령이 어제 평양과 서울에 연락사무소 (Liaison)을 설치하자고 제안했는데, 이거 어떻게 생각하는가? 단지 정치적 제스처 아닌가?


갈루치: 자세히는 못들었다. 그러나 만약 그런 제안을 했다면 좋은 거 아닌가? 잘 되기를 바란다.(* 약간 외교적 발언이라고 생각)


3. 미국이 북한에 대한 강경조치들 (무역적성국가 the Trading with Enemy Act, 테러지원국 제제 Sponsor state of terrorism)을 거둬들일 것으로 전망하는가?


갈루치: 북한이 만약에 핵무기 협상에서 어느정도 진전을 보인다면 (플루토니윰 신고, 폐기 등) 중장기적으로 북한에 대한 강경조치들을 폐기할 것으로 전망한다. 


질문: 긍정적으로 본다 이말인가?


갈루치: 그렇다.


4. 1994년 북한의 강석주 대표와 핵무기 실험 및 보유에 대한 협상을 시도할 때, 2006년 10월 북한이 핵무기 보유선언을 할 것까지 예측했는가? 그 당시 정황으로 보아 조금이라도 북한이 핵무기 소유를 발표할 것이라고 생각이나 했는가?



갈루치: 그렇지 않았다. 



5. 질문: 사실 클린턴 행정부에서 일한 사람이니까, 그 당시 완전히 핵문제를 해결해 버렸으면 지금 상황까지 오지 않을 수 있었다. 안 그런가? 도대체 뭐가 문제였는가?



갈루치: 2000년 조지 부시 당선 이후, 딕 체니, 존 볼튼, 조제프 같은 강경파들이 평양정부, 김정일 위원장을 신뢰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야 북한이 1994년 제네바 협의에서 이탈했지만, 그렇게 된 데에는 미국 강경파들의 정책 역시 그 원인을 제공했다.


 



6. 질문: 북한의 외교전술을 서방언론에서는 "벼랑끝 전술 brinkmanship"이라고 한다. 이에 대한 당신 생각은 어떠한가? 강석주와 협상을 하면서, 그 이후 북한 정부를 상대하면서 느낀 소감에 기초해서 이야기해달라.



갈루치: 북한의 외교전술을 '벼랑끝 전술'이라고 명명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incorrect) . 북한은 경수로 건설, 경제지원 등을 최대한 얻어내기 위해서, 그리고 미국의 관심과 조명을 받기 위해서, 강경정책을 쓰는 것이다. 사실 북한은 핵보유를 제외하고는, 그렇게 강한 나라가 아니다. 경제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군사적인 측면에서도 그렇게 썩 강성한 나라라고 볼 수 없다. 그래서 북한 평양정부가 사용하는 전술은 미국으로 하여금 북한을 하나의 국가로 인정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7. 질문: 혹시 존 볼튼, 딕 체니, 럼즈펠드 등 조지 부시 행정부 강경파들이, 갈루치 당신까지도 신뢰하지 않은 것 아닌가? 다시 말해서, 당신이 해왔던 북한과의 외교나 협상을 신뢰하지 않은 것 아닌가, 물론 그들은 당연히 평양정권을 불신했겠지만.



갈루치: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는 북한과의 협상을 하도록 장려했다. 그리고 내가 협상에 나설 때 부통령 엘 고어, 파웰 등이 우호적인 분위기를 조성했다. 반면에 조지 부시 행정부, 특히 강경파들과 일할 때는 여러가지 어려움들 압박들이 많았다. 



8. 질문, 밥, 다시 1994년으로 돌아가보자. 당시 김영삼 정부는 "핵무기 보유하는 국가랑, 즉 북한이랑은 대화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그 결과, 평양정부는 빌 클린턴 행정부와 대화채널을 만들고, 남한을 배제시켜버렸다. 


(소위 통미봉남: 미국과 통하고 남한을 봉쇄하는 전술) 


자칫 잘못하면, 이명박의 "비젼 3000"도 통미봉남을 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



갈루치: 두가지로 나눠보자.



먼저, 1994년, 평양, 서울, 와싱턴 사이에 불균형적인 대화구조는 있었다. 그러나 내가 서울을 몇차례 방문했고, 통일 외교 관련자들과 북한문제를 협의했다. 따라서 미국과 남한이 공조를 하지 못했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찬성할 수 없다. 



두번째, 1994년과 2008년을 비교, 비유하는 것은 약간 조심할 필요가 있다. 이명박의 3가지 원칙들(비핵화, 개혁개방, 비젼 3000)은 부시 제 2기 대북정책 *콘돌리자 라이스의 협상전술을 가리킴)과 크게 어긋날 것 같지 않다. 



(평가) 갈루치 같은 경우는, 평양 - 서울 - 와싱턴 사이에, 다시말해서,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지난 15년간 다소 미국과 남한간의 불협화음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남한을 동맹대상으로 설정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 점을 강조했다. 



9. 그럼 미국내 조지 부시 행정부, 제 1기와 제 2기 그 차이점에 대해서 말해보자. 아시다시피, 제 1기는 정권교체 (regime change), 악의 축 (Axis of evil), 독재자 (outpost of tyranny) 표현을 써가면서 북한 김정일 정권을 부정했다. 그러나 제 2기는 라이스로 대표되는 협상 전술이 채택된다. 왜 갑자기 조지 부시 행정부는 북한에 대한 전술을 바꿨는가?



갈루치: 첫번째는, 미국내 중간 선거 결과 때문이다. 2006년 12월이 그 전환의 계기점이었다. 상원, 하원 모두다 공화당이 민주당에게 패배했다. 


두번째, 이라크 전쟁에 진전이 없었다. 국내 여론이 안 좋아졌다

세번째, 아프가니스탄 역시 난항이었다.

네번째, 이란과의 갈등이 다시 고조되었다.

다섯번째, 팔레스타인, 레바논, 시리아 문제 등, 중동 평화 문제가 얽히게 되었다.

여섯번째, 북한 역시 핵 개발을 선언했다.

...

일곱번째, 북한 문제가 가장 쉽게 결실을 맺을 수 있는 것이었다. (low-hanging-fruits) 힘을 제일 적게 들이고서, 어떤 정치적 결실을 볼 수 있는 소재가 바로 북한 핵 문제였다는 것이다



10. 6자 회담의 전망에 대해서 좀 물어보고 싶다.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 (vision 3000)으로는, 6자 회담에서 남한 정부 역할이 과거보다 더 적어질 것 같다. 그렇게 되면, 북한이 남한정부를 무시하고, 미국만을 대화상대자로 삼는 것은 아닌가?



갈루치: 북한은 중거리 미사일, 핵무기 개발했지만, 실제로 남한을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니다. 북한은 남한을 위협의 대상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북한은 미국을 체제위협의 대상으로 생각한다. 북한 남한의 경제협조는 중요하다. 


정치군사적인 측면에서, 북한에게 미국은 특별한 존재이다. 따라서 정치 군사 문제를 풀 때는 북한이 남한 정부보다는 미국을 주로 대화상대자로 삼는데, 이것은 알다시피 특수한 정치적 관계를 반영한 것이다. 



원시: 솔직이 (미국정치인들) 별로 칭찬은 하지 않는다. 암튼 애석하다. 1994년 당신이 참여한 제네바 합의로 북핵 문제가 다시 수면으로 안 떠올랐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나마 밥 (Robert Galluci) 당신은, 남한의 진보적인 사람들에게, 미국 정치인(공무원)치고는, 아마도 최초로 좋은 인상을 심어준 사람 같다. 



갈루치: 고맙다. 



KBS 스페셜 <이명박과 워싱턴, 그리고 평양> 게오르기 톨로라야 인터뷰 기초



금강산 박왕자씨 피격은 "북한 군부 강경파, 이명박 길들이기" (1)



원시, 2008-07-12 14:06:00 (코멘트: 10개, 조회수: 488번)



1. 조갑제 (미국내 대북 강경파, 네오콘 존 볼튼 John Bolton과 동일한 입장) 이명박 꾸짖기


조갑제는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 총격사망은 평양 김정일의 지시로 간주하고, 이명박은 강경대응 조치를 취하고 금강산 관광을 취소시켜라고 주문하고 있다. 보수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좌파' 촛불데모보다 더 강경한 '우파' 보수 데모의 따끔한 맛을 보여주겠다고 선언한다. 



이명박의 <국회연설>에서 밝힌, 대북정책은, 조갑제의 눈에는, 김대중 <햇볕정책>과 똑같다는 것이다. 존 볼튼 (전 미국 UN 대사, 조지 부시 제 1기 악의 축 노선을 주창한 네오콘, 대북 강경파)


존 볼튼의 대북 정책에 대해서는 아래 클릭 (아래 인터뷰는 지난 4월 14일, 와싱턴 D.C, 네오콘 총사령부 건물 American Enterprise Institute에서 존 볼튼과 인터뷰한 내용을 기억나는대로 적은 것이다. 조갑제 대북 강경노선과 거의 유사하다. ) 



2. 박왕자씨 총격사망이 순수 우발적인 사고가 아니라면, 그리고 금강산 총격사망 사건을 철저하게 정치적으로 해석한다면, 평양정권과 군부내 강경파의 이명박 실험 및 길들이용일 가능성이 많다. 



북한 군부에는 아직까지도 혁명 제 1세대의 파워가 다른 분야에 비해서 강력하게 남아있는 곳이다. 김정일 위원장도 아버지 김일성의 친구들과 그 연계세력들의 지지를 받아야하기 때문에, 군부내의 강경파의 자율성을 용인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2006년 10월 핵무기 실험 공개 프로젝트 역시 북한 군부 강경파의 목소리가 현실화된 것이다. 



(1) 평양 김정일 정부는, 이명박의 <비핵개방 3000> 노선이,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제 2기 노선(1기는 박지원 구속시키는 행위로 북한에서는 노무현에 대해서 신뢰하지 않음)과 유사하거나 그 노선을 추종하지 않는다면, 이명박 정부와 냉담한 5년의 세월을 보낼 것이다.



2008년 4월 18일, 와싱턴 D.C, 브루킹스 연구소, 러시아 외교관 게으르기 톨로라야와의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KBS 스페셜 4월 27일 방송) 톨로라야 (Georgy Toloraya)는 평양에서 러시아 외교관으로 10년, 남한에서 5년 정도 일한 한반도 외교 전문가로서, 외국 외교관으로는 남북한 동시에 근무한 유일한 고위 외교관이다. 


 

(게오르기 톨로라야, 대 한반도 전문 러시아 외교관)



톨로라야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가 평양, 서울에 연락 사무소 (liaison) 설치 제안한 것은, 외교 관례상 넌센스라는 것이다. 연락 사무소란, 외교가 없는 두 나라 사이에 외교직전에 연락통로로 만드는 것인데 (현재 북한 - 캐나다 관계처럼), 평양정권은 남한을 공식적으로 다른 나라로 간주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김정일 위원장이 연락사무소에 대해서는 이미 거부한 바가 있다고 한다. 



이명박이 인수위에서 '통일부' 폐지 건에 대해서 질문했는데, 톨로라야는 이명박은 대북정책에서 초기 신뢰구축하는 것을 상실했다고 비판했다. 동시에, 자기 정보에 의하면, 현재 이명박 정부내부에는 평양과 대화할 '북한 전문가 (서동만, 김종석 등 김대중, 노무현 정부시절 대북통)' 그룹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제점으로 대두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제는 통일부 폐지냐 존속이냐 것도 있지만, 이명박 정부 내부에, 평양과의 다양한 채널을 만들어나가고 개척할 속칭 '대북통' 사람들이 없다는 것이다. 



톨로라야에게 물었다. 이명박 정부에게 대북정책 조언을 해 준다면 무엇인가? 이 대답은 위와 동일했다. 적어도 김대중, 노무현 시절에 대북 전문가들을 통일부에 다시 끌어다가 쓰라는 것이다. 



원시 질문: 그렇다면 왜 북한에서는 이명박 정부 하, 김태영 합참의장의 '북한선제공격론'에 맞서서, 개성공단 거주 공무원 철수 명령을 내렸는가? 북한 평양정부는 5년 내내 대남 강경정책으로 일관할 것인가?



게오르기 톨로라야: 평양 정부는 아마도 이명박 길들이기와 '테스트' 기간을 가질 것이다. 





Georgy Toloraya (한국과 북한에서 외교관 생활을 한, 한반도 전문가 게오르기 톨로라야 ) 


<후기> 


나 역시 톨로라야와 동일한 생각이다. 그 동안 평양 김정일 위원장과 북한 군부내 강경파(hard liner)의 대남 노선 대미 노선을 고려해 본다면, 이명박 정부의 <비핵 개방 3000>이 확실하게 김대중-노무현의 <햇볕정책> 노선을 베끼지 않는다면, 평양정부는 계속해서 MB정부에 대해서 삐딱한 '불신임' 정책과 '견제 및 실험기간'을 늘이려고 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확실한 '대북 식량원조 카드'와 '경제적 이익 다발'을 챙겨주는 프로그램을 제시하기 전까지.



게오르기 톨로라야는 <햇볕 정책 sunshine policy>이라는 용어도, 김정일 위원장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자존심 상해한다고 말했다. 그럼 대안적 용어가 뭐를 했으면 좋겠느냐는 질문에는, <협조 co-operation> 정도가 좋지 않겠느냐고 했다. 역시 외교관다운 이야기였다. 



금강산 박왕자씨 총격 사망을 이명박 정부가 어떻게 해결해나가느냐, 평양정부의 이명박 테스트 기간을 단축시킬 것인가? 아니면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불신임 기간을 연장시킬 것인가? 열린 문제이다.


 

게오르기 톨로라야는 15년 정도를 북한 (10년), 남한 (4~5년)을 머문 직업외교관이다. 지난 4월 인터뷰에서 대학교수와 연구소 사람들과는 또 다른 정보들을 얻을 수 있어서 좋았다. 


너무 빠른 고민인가? 세계 200 국가에, 진보적인 한국 외교관들을 파견해야 하는 그 시기가 온다면, 우리는 지금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이번 미국 광우병 쇠고기 협상에서 보여준, 이명박 정부의 헛발질과 외교 통상의 무능력을 보면서, <유비무환>, 준비없는 자, 워밍업 없이 축구장에 들어갔다, 10분 뛰고 쥐나고 부상당하고 나오는 그 무기력한 국가대표들의 '헤벌레한' 썩은 미소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곧 우리의 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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