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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history)226

2018. Aug.28. 민정기 "치매 전두환, 회고록 어떻게 썼냐고? 내가 썼다" 민정기 "치매 전두환, 회고록 어떻게 썼냐고? 내가 썼다" CBS 김현정의 뉴스쇼 2018-08-28 10:05 2013년 알츠하이머 진단…진술 어려워 회고록 작성? 全 초고 작성후 완성 맡겨 조비오 명예훼손? "표현 자체는 내가 써" https://youtu.be/w-MmKCbD2Sk ■ 방송 : CBS 라디오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민정기(전 청와대 비서관, 전두환 씨 측) 5.18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는 고 조비오 신부를 '거짓말쟁이, 사탄' 이렇게 비난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가 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제11대 대통령을 지낸 전두환 씨. 어제 첫 재판이 열렸는데요. 끝내 출석하지 않았습니다.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어서 출석이 불가능하다.'.. 2021. 11. 5.
노태우 장례식 "손에 손 잡고" 벽을 넘어서, 서로 서로 사랑하는 한 마음되자. 손잡고. 노태우 장례식 추모곡을 보고서. 역사적 반동세력들이 합법적으로 활개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다. -------- 의무감으로 했었다. 내심 제사 집회를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 수위 아저씨랑 실랑이 벌이고, 그 제문 밤 새워쓰고, 그림 잘 그리는 후배 집에도 못가게 묶어두고, 인쇄소 아저씨는 자다가 속옷 바람으로 프린트하곤 했었다. 대학 뒷산은 제사방 병풍이고, 아크로는 주례, 월례 '제사'였다. 좋은 사람들이라고 기억남은 것은, 같이 제사 지낸 사람들 같다. 시간이 흘러, 지금은 많이 흐릿하다. 그러나 인생도 영화이니, 영화 페이드 아웃은 자연스런 종결이니 그것도 다 받아들인지 오래다. 제 명에 살지 못한 사람들 제사지내다가 학교를 떠났다. 때론 .. 2021. 10. 31.
노태우 사망. 문재인 정부의 비겁함. 보수 일간지 1면. 노재봉의 전두환,노태우 군사쿠데타 찬양. 살아남은 자 이야기. 이루마가 어떤 의미를 부여했는지 모르겠지만. 노래가 없던 시절이 더 진솔했던 거 같다. 프로페셔널하지 않아서. 이 멜로디에도 충분했던. 그리고 세상에 무슨 그런 예측이 있는가? 그만큼 우리 마음이 반동적으로 되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 영화 "꽃잎"에 나온 이정현은 나중에 알고보니 80년 5월 당시 실화였다. 우리의 행동동기, 결심,결행 동기는 다양하다. 선악만이 행동동기는 아니다. 더 포괄적인 삶의 욕구와 에너지가 우리를 행동으로 이끈다. 예측할 수 있다고? 518은 돈으로도 훈장으로도 명예로도 보상할 수 없다. 현재 연관 단체의 똑바름냐 아니냐와 별개로. 전쟁은 철학도,경제학도, 심리학도,역사학도 설명하기 힘든 정신적 상황을 낳는다. 광주 518도 임진왜란과 같은 1주일간 전쟁이었다. 어떤 행동 동기와.. 2021. 10. 30.
이재명, 송영길, 김부겸 민주당 인사들, 노태우 장례 국가장 치르는 이유, 타당성 떨어지는 정치적 변명과 표계산. 역사의식과 과거 민주화 운동 정신을 스스로 부정했다. 노태우씨가 정식으로 1212쿠데타와 518광주 시민 학살에 대한 '사죄'와 '참회'를 한 적이 없다. 누가 노태우의 '참회'를 보았는가? 그 아들 노재헌씨가 범죄자 노태우를 대신해서 광주 518 묘역에 간 것은 한 시민 노재헌씨가 자신의 정치적 행위를 한 것이지, 이게 노태우의 직접적인 사과와 참회를 의미하지 않는다. 민주당 김부겸, 이재명, 송영길, 전해철 등은 자신의 상상 속에서 "노태우씨가 광주 518 학살에 대해 참회를 했으면 참 좋았겠다"는 희망사항만 국민들에게 강변했다. 이재명은 주제를 회피하는 발언을 했다. '과'가 '공'보다 크다는 식으로, 노태우가 '사죄'와 '참회' 여부에 대한 답을 회피했다. 논리적으로도 실천적으로도 어리석은 언어 행위다. 1. 김부겸. "국민들과 함께 고인의 업적을 .. 2021. 10. 28.
문재인과 민주당의 무책임한 '노태우 국가장', 국가장 공표해놓고 조문은 가지 않는다는 문재인의 위선. 이게 광주 민주당 의원들만 '노태우 국가장'에 항의할 일인가? 민주당은 정당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이다. 광주 518을 광주라는 지역으로 좁히고, '특수한 꼴통'이나 '정치적 게토'로 만들겠다는 것인가? 문재인 대통령이 그렇게 자신있게 '노태우 국가장'을 결정했으면, 조문도 가야 한다. 위선과 정치적 비겁함의 극치를 보여준 사건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 '국가장'…문 대통령, 조문은 않기로 [JTBC] 입력 2021-10-27 20:13 정부가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례를 국가장으로 치르기로 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애도를 표하는 한편 빈소에 조문은 가지 않기로 했습니다. 박소연 기자입니다. [기자] 정부는 오전 국무회의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례를 국가장으로 치르기로 의결했습니다. 고인의 '죽음'도 '서.. 2021. 10. 27.
518 시민군 박남선 (전남도청 상황)실장의 노태우 조문. 너무 이르다. 노태우씨의 공식적인 사과 기록이 없다. 공적인 역사적 사건을 개인적인 차원으로 해석해서는 안된다. 광주 시민군이 노태우 국가장에 조문왔으니까, 이제 다 '화해'한 것 아니냐? '뭐 먹고 살기도 바쁜데, 518을 누가 얼마나 생각하고 산다고' 그러나 , 용서는 개인 차원에서 할 게 있고, '개인' 차원을 넘어선 용서와 화해의 영역이 있다고 본다. 내가 이룬 어떤 성과도, 내 손을 떠날 때가 있고, 그게 내 것이 아니라, 나를 초월한 '전체'의 소유가 될 때도 있다. 그 떠날 때를 아는 사람이 미학적으로 아름다운 사람이다. 노태우씨의 아들 노재헌씨가 광주 518묘역을 방문하고 당시 광주시민군에게 용서를 구한 것은 잘 한 일이다. 그리고 전두환 범죄단과 당장 비교되기 때문에 노재헌의 광주 518 학살에 대한 사과는 정치적으로 상징성이 있다. 하지만 노태우씨가 병상이라고 해도, 어떠한 공식적인 사과의 기록이.. 2021. 10. 27.
1987년 10월 26일자, 김영삼과 김대중은 민주당 경선협상에 실패, 각자 대선 후보로 출마하기로. 6공화국 헌법과 법률에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제'를 누락했고, 정당 이념과 정책 중심이 아니라, .. 1. 역사에서 가정. 박정희가 1963년 대선, 1967년 재선 이후, 1969년에 삼선개헌을 하지 않고, 1971년에 대통령에서 물러났다면, 김대중-김영삼은 각각 2번 임기 (총 8년)을 두 사람이 돌아가면서 채웠다고 해도, 1987년 대통령 선거에는 김대중과 김영삼이 더 이상 출마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역사에서 가정은 없다 하지만, 박정희 -전두환 군사반란과 군사독재의 폐해는 고스란히 야당 지도자, 김영삼과 김대중의 한계로 이어졌다. 2022년 대선을 앞두고, 대통령 후보들의 자질이 떨어진 이유는, 김영삼 김대중도 정당의 이념과 정책노선을 내세워 정치를 한 게 아니라, 박정희-전두환 (총통 개념의 독재자)는 아니지만, 권력을 독점했었다. 당내 민주주의나 절차는 부차시 되었고, 당 권력 상층 몇몇 인.. 2021. 10. 26.
윤석열 "전두환이 정치는 잘 했지 않냐?"는 발언이 나올 수 있는 정치적 상황에 대해. 언젠가부터 슬그머니, 1980년 518 항쟁이, '호남'의 문제로 축소되었다. 청산리, 봉오동에 가 본 사람들은 거의 없다. 그래도 청산리,봉오동 전투를 '일제 타도 운동'이라고 생각하지, 청산리,봉오동 주민들에게 미안해야 하고 돌비석이나 닦아주며 키스하면 그만이라고 후대 사람들은 생각하지 않는다. 1980년 518 광주항쟁을 '이제 그만 하면 이제 됐고 enough is enough' 그런 의식을 가진 자칭 진보인사들, 철학자들, 전문가들이 많아졌다. 청와대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 부른 후부터 냉소적인 태도도 늘어났다. 한편 이해도 된다. '니들도 다 똑같지 않냐?'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이 김영삼 전 대통령과 합의해 전두환-노태우를 사면해 준 이후로, 광주 518항쟁은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표대결'.. 2021. 10. 21.
대전 산내 골령골은 한국전쟁 당시 군과 경찰이 7천명 넘는 민간인을 학살. 유해 발굴 누가 죽였고 누가 묻혀있었나? 대전 산내 골령골, 최대 7천명 민간인 시신이 묻혀있다. 이들은 국민보도연맹원을 포함 제주 4-3 항쟁, 여순 사건에 연루된 대전 형무소 수감자들이었다. 국군과 경찰이 이들을 대량 학살하고 시체를 묻은 장소이다. 그 길이가 1km 가 넘는다. 유해 발굴 현장에서 나온 이빨이 아직도 살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고무신이 처연하다. 2차 세계대전과 그 와중에 일어난 국제 정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국내 정치가들의 미숙한 대응, 그리고 소련과 미국 정치적 대립이 발칸 반도에서 한반도 쪽으로 이동하면서 벌어진 국제전쟁의 결과가 바로 이러한 민간인들의 처절한 죽음이었다. https://bit.ly/3o1XkVi 대전 산내 골령골서 유해 천여 구 발굴…대량 학살 실체 드러나 [앵커.. 2021. 9. 25.
원산폭격. 전두환 계엄군은 1980년 5월 27일 광주 도청 시민군을 체포해 '원산폭격'을 시켰다. 원산폭격. 전두환 계엄군은 1980년 5월 27일 광주 도청 시민군을 체포해 '원산폭격'을 시켰다. 부산외대 한 교수가, 조국 교수의 턱걸이 운동 사진에 존경를 표명하며, 원산폭격 동영상을 페이스북에 올렸다고 한다. 소셜 미디어에서 많은 이들이 이 문제점을 지적했다. 부산 외대 교수는 광주 대동고를 졸업했다고 한다. 광주 대동고 학생들은 1980년 518 항쟁 당시, 가장 희생자가 많은 고등학교였다. 5월 27일 새벽 전두환 계엄군이 광주 도청을 사수했던 300명~500명 사이 시민군들을 진압한 후, 생존자들을 체포해, 적국 군인처럼 등에다 '죄목'을 써서 '폭도'라고 적어놨다. 그리고 금남로 주변에 원삭폭격을 시켰다. 원산폭격이라는 체벌과 폭력의 한국 역사, 전두환 군부의 범죄. 2021. 7. 19.
광주 518항쟁, 무명열사 미신원확인자 이제 4명. 행방불명자도 찾아내야 DNA 조사 기법으로 신원을 확인하고 있다. 41년이 지난 현재 이제 신원이 불명확한 사람은 4명이다. 당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 행방불명자가 많았다. 평상시와 다르게, 모든 게 다 단절되어, "뚝 끊겨버린" 시간이었다. 선생님들도 학교에 나오지 않았고, TV도 나오지 않았다. 그 전에는 자주 듣지 못하던 단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담화문', 최규하의 '담화문'이라는 것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다. '유언비어'라는 발음하기도 힘든 네 글자는 뭔가 악당을 떠올렸지만, 그게 정확히 의미하는 바는 몰랐다. 아버지를 비롯해 동네 어른들이 말했다. 광주 518 이후에 광주천변 넝마주이나 거지들 숫자가 많이 줄었다고. 그 때는 그 말의 뜻이 정확히 뭔지도 모를 때였다. 언젠가는 다 꼭 찾아야 할 사람들. - 애도의 .. 2021. 6. 15.
반기문과 윤석열의 차이. 반은 전두환에 90도 인사. 윤은 대학생, 모의재판에서, 전두환 사형구형 정청래 민주당 의원이 윤석열의 정치적 운명은 반기문과 동일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윤석열의 광주 518 항쟁 41주기 기념 논평에 대해, 윤석열은 518 정신을 논할 자격이 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정청래의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반기문은 2019년 고 노신영 장례식장에 광주 학살자 전두환을 마중나와 졸졸 따라다니며, 전두환이 차에 오르자, 그 차를 향해 90도 절을 올렸다. 이에 비해 윤석열은 2020년 5월 18일 기념 메시지에서, 고 조비오 신부 사자 명예훼손 죄로 재판을 받는 전두환에 대해 엄정하게 수사하라고 검찰에 지시했다. 그리고 윤석열은 서울대 법대 재학생 시절, 모의 재판에서 전두환에 사형을 구형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윤석열은 외가인 강원도로 피신했다. 2021년 광주 518에 대.. 2021. 5. 21.
1945년 4월 30일. Hitler Dead 히틀러 사망. American GIs on leave in Paris reading the U.S. military newspaper Stars and Stripes, which has a headline announcing Hitler's death. The German dictator committed suicide April 30, 1945 after the collapse of the Third Reich. 2021. 5. 15.
518 광주항쟁, 북한군 개입설 거짓의 뿌리 - jtbc (펌) 출처 기사 https://bit.ly/3xTHUVF 5·18 '북한군 개입설' 거짓의 뿌리…북 특수군 김명국 추적 [JTBC] 입력 2021-05-06 20:45 / [앵커] 지금부터는 41년 전 5월의 광주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뉴스룸은 그날의 진실을 가리려고 하는, 이른바 '북한군 개입설'의 뿌리를 추적해 왔습니다. 북한군이 광주에 침투해서 사실상 5.18을 기획하고, 또 시민군을 조종했다는 이 거짓말의 출발점을 확인해 온 겁니다. 그 중심엔 북한 특수군 출신으로, 2006년에 탈북한 김명국이 있었습니다. 2013년엔 방송에 나와서 자신이 직접 광주에 갔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잠적한 뒤에도 이 주장은 북한군 개입설에 이용돼 왔습니다. 저희 취재진은 석 달에 걸친 추적 끝에 김명국.. 2021. 5. 8.
1995년 한국 소비의 절정시대, 1972년 고소영 세대 "평범한 건, 딱 질색이예요" - 2021년 49세 1995년 고소영 기사를 보며. 소비생활이라는 측면에서. 40~50과 20~30 세대 차이보다는 공통점이 더 많다. 그리고 차이점은 20~30세대는 노골적인 '자본주의 이윤추구' 논리가 판치던 시대에 청소년기를 보냈다는 것이다. 40~50세대는 제한속도 60km 도로에서 자동차를 운전했다면, 20~30세대는 제한속도 150km라는 자본주의 고속도로에서 '대형 사고' 위험을 안고 인생주행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캐나다, 독일, 영국이 1975년~1995년 사이에 겪었던 세대간 '행복 역전'을 한국은 1997년 이후 지금까지 '동일성'과 '차이성'을 껴안고 있지만, 저 나라들과 유사한 방식으로 '행복 역전' 시기를 경험하고 있다. 26년전, 지금 돌이켜보면, 1995년 당시 서울 생활도, 한국 사람들.. 2021. 4. 21.
조봉암 진보당 조작 사건 증언.1999년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한승격 당시 수사관 조봉암 진보당 조작 사건 증언. 1999년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한승격 당시 수사관 https://bit.ly/2Oy3sER [의혹과 진실 - 한승헌의 재판으로 본 현대사](9) 진보당 사건과 조봉암 (下) ■ 재심 기각 18시간 만의 사형 집행 재심이 기각된 다음날(1959년 7월31일), 변호인단이 다시 한번 재심청... news.khan.co.kr 진보당 사건은 조작됐다"…당시 조사요원 本報에 증언 입력 1999-08-17 23:49수정 2009-09-23 20:22 59년 죽산 조봉암(竹山 曺奉岩)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했던 ‘진보당 사건’은 당국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는 증언이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수사관으로부터 나왔다. 그동안 ‘진보당 사건’의 피해자와 학자들로부터 ‘진보당 사건’이.. 2021. 3. 7.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광주 시민 여러분…” 5·18 가두방송의 주인공 전옥주씨 세상 떠나 전옥주 여사 기사 출처 https://bit.ly/3as6T8C ‘5·18 항쟁의 목소리’ 전옥주씨, 오월 영령 곁에 잠들다 시민참가 호소 ‘거리방송’ 전옥주씨 별세고문·간첩조작·옥살이 후유증 시달려 www.hani.co.kr 출처 : https://bit.ly/3pvQN2a “광주 시민 여러분…” 5·18 가두방송의 주인공 전옥주씨 세상 떠나 16일 급성질환으로 사망 www.hani.co.kr 2021. 2. 17.
[자료] 2020.03.30 .'YWCA 위장결혼 사건 재심 무죄' 백기완에 5천만원 형사보상 'YWCA 위장결혼 사건 재심 무죄' 백기완에 5천만원 형사보상 송고시간2020-03-30 10:15 https://bit.ly/3as7Td3 'YWCA 위장결혼 사건 재심 무죄' 백기완에 5천만원 형사보상 | 연합뉴스 'YWCA 위장결혼 사건 재심 무죄' 백기완에 5천만원 형사보상, 고동욱기자, 사회뉴스 (송고시간 2020-03-30 10:15) www.yna.co.kr (서울=연합뉴스) 고동욱 기자 =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 인물인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1970년대 겪은 'YWCA 위장결혼 사건'에 대해 재심 무죄를 받은 데 이어 5천여만원의 형사보상을 받게 됐다.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6부(오석준 이정환 정수진 부장판사)는 계엄법 위반 혐의에 대해 재심을 거쳐 무죄가 확정된 백 소장.. 2021. 2. 17.
백기완의 길 (2), 1979년 YWCA 직선제 실시 데모, 고문 후유증 ~ 1987년 대선 후보와 김대중 김영삼 단일화를 위한 사퇴. 백기완 선생과 한국 현대 정치사 . 백기완의 길 (2), 1979년 YWCA 직선제 실시 데모, 고문 후유증 ~ 1987년 대선 후보와 김대중 김영삼 단일화를 위한 사퇴. 백기완 선생과 한국 현대 정치사 . 백기완의 길 (2), 1979년 YWCA 직선제 실시 데모, 고문 후유증 ~ 1987년 대선 후보와 김대중 김영삼 단일화를 위한 사퇴. 1. 1979년 YWCA 위장 결혼 집회 사건. 정치적 주장 1979년 12월 24일. 유신체제 철폐, 통일주체회의 대통령 선거 반대, 직선제 실시, 긴급조치 피해자 복직 복교 복권 조치 집회 주체: 양순직, 박종태, 백기완, 이우회, 김정택, 함석헌, 윤보선 등, 당시 재야인사, 기독교 종교계, 구 공화당 국회의원, 전 민주당 대통령 등 다양한 민주화운동 세력이었음.. 2021. 2. 17.
백기완의 길( 1955~1975까지) 농촌계몽, 자유대중당, 민주당, 긴급조치 1호 15년 선고, 석방, 다시 중앙정보부 연행 설 이후, 백기완 선생의 별세 소식이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백선생이 걸어온 현대 정치사의 길은 어떠했을까? 잠시 신문을 찾아본다. 1955년 (23세)부터 백기완 선생은 일간지에 등장했다. 1975년 2월 긴급조치 구속자 석방까지, 백기완 선생 관련 신문 기사들이다. 1955년, 7월 19일자 동아일보. 신흥(新興: 경희대 전신)대 백기완 군 외 31명 학생들이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2주간 강원도 벽촌지방을 순회하면서 문맹퇴치 운동을 벌인다는 기사. (* 동명이인인지 확인 필요) 1963년 2월 28일자. 백기완 (31세), 박정희 군사 쿠데타 이후 시국 수습안 강연회, 자유대중당을 대표해서 백기완 선생이 발표를 하다. 1965년 8월 14일자. 박정희의 한일 협정 비준안이 통과. 1965년 8월 14.. 2021. 2. 15.
1986.02.15. 옛신문. 치안본부 전국 114개 대학 압수수색. 이대 모의수류탄 2개, 서울대 상복 10벌 메모. 옛 신문을 읽다가. 2021년 2월 15일. 35년 전 신문. 동아일보 1면. 전두환 노태우 정권 하에서 대학은 늘 감시자가들이 있었다. 학교 교직원들 자의반 타의반으로 전두환 노태우 검찰,경찰의 협조자들이었다. 잘못된 줄 알면서도 학교 직원들은 전노 독재정권에 협력했다. 압수 수색 용품들이 흥미롭다. 이화여대 모의 수류탄 2개. 서울대 상복 10벌. 35년이 지난 지금, 대학은 어떤 진리와 진실을 추구하고 있어야하는가? 그런 질문을 던지다. 2021.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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