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싸드배치 찬성 입장으로 선회>에 대해서 예리하게 아주 아프게 비판해야 한다.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이다.
안철수 후보 “싸드배치 찬성”으로 돌아선 것에 대해서는 따끔하게 호되게 야단쳐야 합니다.
1) 광주는 518정신을 이어받은 평화 인권 민주주의 도시인데, 싸드배치랑 맞지 않다. 국민의당과 안철수 박지원 등은 짐싸서 광주를 떠나라. 광주가 살아있다면 당신들은, 특검 사무실 청소 아주머니가 전 국민을 속시원하게 해줬던 “염병하네 3창” 들을 것이다.
북한 스커드 미사일 방어에 실효성도 떨어지는 싸드배치. 중국으로부터는 X 밴드 레이더 때문에 주권 위협이라는 외교적 마찰 일으키고 있다. 결과적으로는 북핵 위기 해법도 미사일 방어법도 아니다. 오히려 북한 중국과 군사적 대결만 부추긴다.
평화와 인권의 도시 광주는 싸드배치와 어울리지 않고, 또 광주시민들은 싸드배치를 찬성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광주는 아시아 여러 나라들에 세계적으로도 인권, 평화의 도시로 잘 알려져 있다. 전남대학에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정신을 계승발전시키고 있고, 다른 나라 시민들도 광주 민주화운동 정신을 배우러 광주를 방문할 정도다.
2) 심지어 안철수 싸드배치 찬성은 김대중 “햇볕정책”을 계승한 것은 아니다.
언변이 좋은 박지원 국민의당 후보가 손석희 앵커와 인터뷰에서 한마디로 '어버버버버' 하면서 최악의 인터뷰로 끝나고 말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김대중 정부가 가장 정치적 성과로 내세웠던 '햇볕정책'을 김대중 후계자를 자처하던 박지원 대표가 스스로 왜곡시키거나 '유보' 해버렸기 때문이다.
두번째 박지원 대표는 "싸드 배치가 북한핵과 미사일 개발을 방지하는 적절한 해법이 아니다"라는 손석희 지적에 답변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기존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에서 반복했던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위협), 북한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는 상호주의, "눈에는 눈,이에는 이" 와 같은 입장을 손석희 앵커에게 답변했기 때문이다.
세번째, 국민의당 내부에는 '개성공단' 을 치적으로 내세워는 전 통일부장관 정동영 의원이 있다. 그리고 별명도 "개성-동영"이다. 정동영 의원은 개성공단 재개와 북한과의 협상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박지원과 안철수 후보는 개성공단 재개 어렵다고 손석희 앵커에게 답변했다.
이 모든 급작스런 당론 변화가 대선을 앞두고, 현재 보수층이 안철수 후보를 지지하니까, 안철수 후보가 보수층 눈치보기, 표 끌어모이기 작전 아니냐는 손석희 앵커의 합리적인 '지적'에 박지원 대표는 "어버버버"하고 말았다.
결국 손석희 앵커가 지적하듯이, 김대중 햇볕 정책 핵심은 한국 동맹세력(미국 일본)을 배제하자는 것이 아니라, 남북한이 좀 더 자주적으로 한반도 평화 문제를 해결하자는 취지였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의 독자적이고 자립적인 대북, 대미 정책이 있어야 하는데, 박지원은 트럼프를 추종할 수 밖에 없다는 '종속적' 지위를 인정하고 말았다.
이러한 미국 트럼프에 대한 의존적 태도는 김대중 햇볕정책의 정신이 아니다. 이게 손석희 앵커가 남긴 박지원과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의 "싸드배치 찬성"에 대한 비판이다.
[참고] 손석희 앵커가 언급한 김대중 햇볕 정책의 실체는 다음과 같다. 1993년 7월 9일, 김대중은 새로운 대북 정책 필요성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영국구상"을 발표했다. 이솝우화에 나온 이야기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는 것은 강한 바람이 아니라 뜨거운 햇볕이다."
북한의 유엔가입과 교차승인 등 변화를 적극적으로 인정하자. 기존 한국정부의 대북강경론은 북한의 강경파만 키우고, 협상파를 죽인다는 단점을 제시하면서 경제교류와 상호원조 체제를 갖추자고 제안했다. 북한이 핵개발 포기를 하면 북한과 유럽 및 미국 일본과 외교 수립, 팀스피리트와 같은 한미동맹 군사훈련 중지 등을 맞교환하는 일괄타결 방식을 제안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는, 싸드 배치에 대한 질문을 기자들이 하자, 답변을 회피하고 회견을 멈춰버렸다. 안철수 후보는 민주적 소통 능력이 부족하다. 또다른 박근혜-불통 정치가 나올까 우려된다)
참고할 자료: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와 안철수 후보가, 김대중의 정치적 후계자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김대중이 30년 걸쳐 고민해서 만들었다고 알려진 "새로운 북한 정책"과 "햇볕정책"을 정면으로 부정해버렸다.
햇볕정책이 만들어지고, 어떠한 변화를 겪게 되었는지, 1993년부터 2000년 김정일-김대중 정상회담 이전 1999년까지 그 과정을 신문기사들을 통해 살펴보자.
1 햇볕 정책의 의미 출발점은 시기적으로 누가 빠른지 모르겠지만, 김영삼 정부시절 1993년 5월 한완상 부총리 겸 통일원 장관이 "햇볕정책"의 골격을 언급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완상의 햇볕정책은 김영삼 내부 강경파에 밀려서 현실화되지 못하고 좌초되었다.
2. 1993년 7월 6일자. 김대중 귀국이후, "영국 구상" 발표.
가장 중요한 것은 1989년 몰타 회담으로 냉전 체제 해체 이후, 한국도 기존의 대북강경론을 버리고, 북한과 한국이 "주고 받는 것 give and take'를 실천하자는 취지이다. 그게 김대중의 '영국 구상'이었고, 별칭이 "햇볕정책"이었다.
<참고사항>
Georgy Toloraya (한국과 북한에서 외교관 생활을 한, 한반도 전문가 게오르기 톨로라야 )
<후기>
나 역시 톨로라야와 동일한 생각이다. 그 동안 평양 김정일 위원장과 북한 군부내 강경파(hard liner)의 대남 노선 대미 노선을 고려해 본다면, 이명박 정부의 <비핵 개방 3000>이 확실하게 김대중-노무현의 <햇볕정책> 노선을 베끼지 않는다면, 평양정부는 계속해서 MB정부에 대해서 삐딱한 '불신임' 정책과 '견제 및 실험기간'을 늘이려고 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확실한 '대북 식량원조 카드'와 '경제적 이익 다발'을 챙겨주는 프로그램을 제시하기 전까지.
게오르기 톨로라야는 <햇볕 정책 sunshine policy>이라는 용어도, 김정일 위원장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자존심 상해한다고 말했다. 그럼 대안적 용어가 뭐를 했으면 좋겠느냐는 질문에는, <협조 co-operation> 정도가 좋지 않겠느냐고 했다. 역시 외교관다운 이야기였다.
출처: http://futureplan.tistory.com/entry/북핵-위기의-원인과-해법-미국-내-북핵을-바라보는-시각과-대응들 [한국정치 노트 Notes on the Politics of Korea]
4. 클린턴 행정부 당시 미국 북한 전쟁 일측촉발 당시 강석주와 만났던 미국 로버트 갈루치 핵전담 대사, 조지타운 대학 국제대학 교수이다. 김대중 햇볕정책을 '용감한 결단'이라고 칭찬하다.
5. 1998년 9월 2일. 북한 미사일 발사 ; 대포동 1호 발사 , 한미일과 긴장 관계
8. 김대중 햇볕정책은 동시에 남북 당국자, 정상회담을 추진해나갔다.
서해 교전은 하되, 대화 채널은 계속 유지했다.
10.
공해 international waters 개념이 남과 북한 사이에 문제가 되기 시작하다. NLL 문제 .
11. 국내 정당들 사이에 햇볕정책을 두고 논쟁이 가열되다.
.
13.
자민현의 변웅전 의원이 제기한 "상호주의"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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