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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별/2013

2013 May 8, 주대환의 주장은 잘못이다. <님을 위한 행진곡>이 대중정당 노래로 부적절하다는 주장, 문제점

by 원시 2019. 4. 22.

 

Nakjung Kim

May 8, 2017 · 

 

곧 있으면 #님을위한행진곡 을 청와대에서 또 부를 것이다. 누가 부르든지, 그 의미는 반드시 재해석해주었으면 한다.

 

님을위한행진곡은 518 멘델스존 웨딩마치다. 윤상원과 박기순의 영혼결혼식 웨딩 마치 노래가 바로 님을위한행진곡 이다. 윤상원과 박기순은 1980년 광주항쟁 이전에 들불야학 교사였다.

 

2017년 한국, 280만원 등록금내는 공립학교 고등학생들이 있고, 2천만원 등록금 내는 특별 고등학교가 존재한다.

 

1980년 당시 돈없어 학교 못다닌 들불야학 학생들이 2017년 누구인가 ? 그 대조는 자명하다. 아니 2017년 지금은 1980년보다 더 가혹하고 비정하고, 이를 영속화 구조화시키는 신분차별적 사회가 되었다.

 

박기순은 연탄가스로 죽고, 윤상원은 5월 27일 새벽 전두환 탱크, 장갑차, 헬기에 맞서 싸우다가 광주 도청에서 전사했다.

 

대선을 끝으로 정치권은 이제 청년 멘토장사 중단하라 ! 중고등학교가 신분차별 출발점으로 변질한 이 시점에, 대학생들에게 청년 멘토하는 게 온당한 처사인가?

 

중고등학교부터 자율, 자유와 평등이 숨쉬는 미래 시민 학교로 바꿔야 한다. 우선 고교 등록금 없애는 것부터 출발해야 한다. 정말 솔직해져야 한다.

 

청년들에게 돈 주는 공약 그 다음 단계에서 할 일이다. 변혁이든 개혁이든 기본에 충실하자 ! 청년 멘토 장사 안철수 하나로 족하다. 위선을 넘어 지겹다.

 

#임을위한행진곡 , 정치적 승리자가 되어 자축하는 승리를 정당화하는 축포로 변질시키지 말아달라 !

 

 

 

 

Nakjung Kim updated his status.

 

May 8, 2013

 

주대환 님이 개인적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이 '대중정당'의 노래로 부적절한 이유를 1) 낙관적이고 대중적인 정서라기보다는 패배적이며 2) 소수의 도덕적 우월감(과 고립감)이 묻어나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다수 대중에게 거부감(혹은 거리감)을 줄 수 있다고 했다. 우선은 개인적인 취향은 존중해줘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은 음악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치적 역사적으로 문제점이 많다고 본다. 지난 30년간 진보진영과 운동가들이 얼마나 좁은 세계에서 살아왔는가를 반영하는 한 사례라고 본다. 음악에 대한 전문적인 평가는 할 수 없지만, <임을 위한 행진곡>은 단조이다.

 

그래서 우리가 보통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멘델스존의 결혼행진곡이나, 모짜르트의 <터키행진곡>과 같은 장조가 아니다. 패배적인 것이 아니라 <임을 위한 행진곡>이 어두운 색채를 띤 이유가 바로 이 '단조'에 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왜 대중화 다양화시킬 생각은 하지 않고, <대중성>에 대한 편협한 이해를 정당화시키기 위해서, 이 노래가 비-대중적이고 패배적이라고 해석하는가?

 

왜 <임을 위한 행진곡>은 래퍼 송으로 편곡될 수 없는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서울 시향에서 연주하면 그 운동의 숭고한 정신이 부르조아로 타락하는가? <임을 위한 행진곡>은 바이올린 독주로도, 한갑득류 거문고 연구로, 장윤정의 트로트로도, 2NE1의 댄스 곡으로도 다양하게 불리워질 수 있다.

 

주대환 전 민노당 정책위의장의 <임을 위한 행진곡>에 대한 해석을 보면서, 느낀점은 지난 15년간 20년간 얼마나 진보진영 운동가들이 일상 생활에서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과의 교류가 결여되어 있는가이다.

 

그래서 <대중성>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발생하는 것이다. 어느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유권가 별로 좋아하지 않으면 비대중성으로 손가락질 받는다? 이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인가?

 

대중들이 바라는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계승해야 할 광주정신이나 <임을 위한 행진곡>을 버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다종다양하게 해석되고, 대중들 스스로 싸이의 <강남 스타일>을 패러디하듯이, 그렇게 다양하게 해석되고 편곡될 수 있도록 그런 정치적 분위기를 만드는 게 우리가 할 일이다.

 

이러한 다양한 참여와 해석을 수정주의니 청산주의니 대중 추수주의니 하는 용어로 비판한다면 그런 견해야말로 속좁은 견해이고 비-대중적인 판단일 것이다.

 

왜 우리들 세계를 좁게 해석하는가? <님을 위한 행진곡>은 음악 작곡자 편곡자들에게 부탁하면 얼마든지 다양한 형식 음악으로 연주되고 애창될 있다. 노래를 부를 수 없는 현장이나 조건이면, <님을 위한 행진곡> Jazz 형식이나 관현악 연주곡, 가야금 독주 형식으로도 1~2분 연주될 수 있는 것 아닌가?

 

광주항쟁을 광주와 전라도에 갇히게 하지 말고, 부산-마산 항쟁을 부산 마산에만 갇히게 하지 말아야 하듯이, <임을 위한 행진곡> 역시, 운동권을 비롯한 어느 특정 세력과 사람, 집단의 한 가지 장르 노래로 만들어서는 안된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하게 해석되고 연주되고 색다른 버전이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게 우리가 할 일이고 진정한 <대중성>의 확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