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창고/20112019. 1. 25.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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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립정부 구성은 정답이 있지 않다. 능력과 정책노선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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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6 19:45

[제안 3] 대표자 회의<연립정부> 득보다 실이 더 많은 이유들

원시 조회 수 644 댓글 4 ?

1. 연립정부 안에 대해서는, 민주당의 성격과 내부 구성 인자들의 역학관계,  또 2012년 이후 펼쳐질 세계경제, 국내 정치 경제 상황을 고려했을 때, 제 주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연립정부안, <선결조건> 실천없이는 진보정당 추락가능성이 더 높다 (원시) 


http://www.newjinbo.org/xe/1023517




2. 연립정부안에 대해서, 지금부터 상세한 그림들을 그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몇 가지 가능 사례들을 가정해서 고려해 본다면, 다른 나라들의 <연립정부> 경험들을 고찰해 봤을 때, 행정부 장관에 예를들어서, 노동부, 교육부 등이 진보정당의 몫으로 돌아온다고 가정합시다.




고려 사항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타 부서들과의 조율 문제가 있기 때문에, 특정 어느 부서, 노동부, 교육부 등을 진보정당 출신 장관이 맡아서 일을 한다고 해도, 그 전체적인 정치 생명과 판정은 청와대와 민주당 정권에 의해서 좌지 우지될 확률이 높습니다.  두번째는, 5년 내내 임기를 보장받는 게 중요합니다.  그러나, 몇 개 부서, 노동부, 교육부 등 장관 역임을 대통령 5년 내내 보장받는다 할 지라도, 실제 얼마나 진보정당 정책들을 실현할 지는 불투명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3. 역사적 경험과 교훈:2004년 민주노동당 의원 10인은 당의 통제을 다 벗어났고, 당 중심성을 확보하지도 못했고, 개별적인 의원 활동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지방 자치단체에 도움을 주는 것도, 지방의회와의 연계성도 확보하지도 못했습니다. 민주당과의 연립정부를 수립하고, 내각에 참여한다고 했을 시, 지금 진보정당의 리더쉽을 냉정하게 측정했을 때는, 2004년 민노당 의원들 상황보더 더 악화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4. 따라서 공동 정부나, 연립정부는, 새 진보당의 지방 자치단체장의 정치적 업적, 즉 스스로 정치적 노하우와 국정운영의 경험에 기초해서, 그러한 정치적 힘에 기반했을 때, 실험해보고 시도해야 합니다. 




이러한 정치적 조건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2012년 - 2017년 사이에, 민주당 정권이 들어선다고 가정했을 때, 그 연립정부 하에서, 오히려 한국의 진보정당의 원심력이 가속화되고, 자기 정치적 정체성이 훼손될 확률이 높다는 것입니다.




5. 2012년 총선과 2012년 대선의 결과가 동일하게, 즉 총선과 대선에서 모두 한나라당이 1위를 차지하거나, 민주당이 다 1위를 차지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을, 특히 한국 유권자들의 "권력 균형/견제 투표" 성향이 있다는 것을 고려해야할 것입니다. 대선에서 연립정부 하나만 놓고 전술을 짜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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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4'

꼭지네 2011.05.27 01:03

흠...

 댓글

원시 2011.05.27 08:04

참고자료: 비교정치 - 프랑스 사례, 미테랑 (사회당) 집권 이후 동거 (Cohabitation) 




사민주의(, 소위 제3의 길)을 경계했던 미테랑의 노선과 실제 정치






2004-08-11 22:02:05  (원시) 




민주적 사회주의, 사회민주주의 시리즈 2 




1981년 프랑스 사회당, 미테랑은 공산당과의 차별성을 선언하면서도 동시에 포용정책으로, 우파 후보 데스뗑을 물리치고 대통령에 당선된다. 




알려진대로, 1995년 프랑스 선거에서 우파 자크 시락(Chirac)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미테랑의 오른팔이었던 조스팽이 수상이 되어, 좌-우 동거를 했다. 그러나 최근 선거에서 우파가 대통령과 의회 다수당이 되는 결과가 빚어졌다. 미테랑 노선은 1970년대 1980년대 일이므로, 현재 프랑스 정당 역학관계와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프랑스 사회당 미테랑 노선이나 1981년 대통령이 당선되는 과정에 대한, 그 형식적인 연구는 민주노동당에게 유의미한 정책 자원이라고 본다. 




<1> 프랑스 사회당의 특수성, 다시 말해서, 유럽 다른 나라 사회민주당(사민당)과는 달리, 프랑스 사회당은 프랑스 공산당과 경쟁해야 하고 동시에 다른 우파 정당들과도 싸워야 하는 독특한 위치에 있다. 노조와의 관계도 노동총동맹(CGT)는 공산당계열이고, 미테랑 시절 동맹의 관계에서 최근에는 독자성을 강조하는 프랑스 민주노동동맹(CFDT)과의 관계 개선도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1981년 미테랑이 5월 대선에서 1, 2차 투표에서 당선될 때에는, 두 노조에서 상당한 호응을 받았다. (민주노동당 내부에는 여러가지 좌파흐름들이 많은 것으로 나와있는데, 프랑스 사회당-공산당과의 경쟁관계와 협조관계를 상기할 필요가 있고, 유의미한 논쟁점을 만들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한국은 분단체제가 있고,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공산당이 81년 이전까지만 해도 사회당보다 더 강했다는 것을 염두해 둘 필요가 있다. 분단체제와 남한 지역주의, 레드 콤플렉스 온존=신자유주의와 결합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2> 프랑스 사회당은, 영국 노동당과 다르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실제 1981년 집권해서 행정부를 운영해나가면서, 다른 유럽 국가들의 사회민주주의 체제, 사회복지국가 체제(regime)과 정책적인 차별성이 없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참고 1979년 사회당대회시, 미테랑의 노선, 메쯔 회의 METZ> 




<가> 좌파들과의 연대 강조 (프랑스 공산당과 공조) * 당시 당내 경선주자였던 로카르(Rocard)는 좌파연맹에 대한 회의적 태도, 중도파들에 대한 적극적 입장 주장, 소위 투표자 타겟 설정 방점. 


<나> ‘자본주의와의 단절 break with capitalism’, 국유화, 시장을 통제하기 위한 계획경제, 즉 자주관리 (autogestion) 주창 * 반면 당내 우파에 해당하는 로카르드 (국유화-계획경제에 대한 회의적 태도, 시장 역할 옹호) 


<다> 유럽내 진보세력 단결 호소, 민족주의 발호 비판, 


<라> 정당 내부 정책: 광범위한 캣취 올 catch-all 정당 선언. 당의 통일성과 원리/규칙 강화, 여성 포용정책 확대, 공장에서 사회당 활동 강화, 소규모 지방연방들에 대한 당의 일상사업 강화 (*로카르: 사회당의 중앙집중제 비판, 사회당 제 1 비서 (당직)와 대통령 후보 역할 분리 주장) 




위 미테랑의 노선을 보면, 대중적으로 상당히 인기가 높았던 사회당내 우파 로카르보다 훨씬 더 ‘교과서적 사회주의’에 가깝다. 그리고, 프랑스 사회당 사람들은, 영국식 노동당과는 다르다는 사회주의 계승자로서 자긍심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프랑스 사회당 혹은 미테랑이 ‘사회당으로서 국민들에게 자기 정당 정체성을 말해야 하는 것’과 ‘사회당 정부’가 실제로 행한 정책들 사이에는 격차가 있었고, 결과적으로 다른 유럽 국가 사회민주주의 정당이나 복지국가정책과 별반 큰 차이가 없었다. (*미테랑 행정부에, 공산당 출신 장관이 4명이나 참여하고 있었다) 




프랑스 사회당, 특히 1981 년 당시 미테랑 노선은 소위 ‘민주적 사회주의’와 유사성이 많다. 오히려 로카르는 ‘사회민주주의’ 모델이나 영국노동당과 유사하다. 로카르가 “현 사회주의식 배급제도와 현 자본주의식 시장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하면서 시장제도 옹호를 밝히자, 미테랑측에서는 그 배급제도와 시장제도 사이에 “사회주의”가 존재한다고 로카르를 맞받아쳤다. 그러나, 미테랑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행정부를 운영하면서, 실제 프랑스 사회당의 정책 운신의 폭은 다른 유럽 국가들의 정책처럼 그렇게 크지 않았다. 프랑스 공산당 조르쥬 마르셰(Georges Marchais)로부터는 프랑스 사회당은 잠재적으로 우파들 협력자로 인식당하고, 또한 우파들로부터는 ‘시장’을 통제한다고 공격받고, 당 안으로는 로카르드처럼 ‘ 더 많은 시장 제도로…’라는 노선에 견제를 받았다는 것이다. 




[시사점] 이러한 프랑스 사회당, 그리고 미테랑 노선이 프랑스 정치에서 살아남기 얼마나 힘들었는가, 그리고 정치적 표방과 실제 정책과 행정부 차원에서 오른쪽으로 흘러갈 수 밖에 없었고, 국제정치와 유럽 다른 나라들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는가는 중요한 시사점을 민주노동당에게 던져준다. 여기에서 민주적 사회주의냐, 사회민주주의냐 그런 선언이 실제에서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아직 민주노동당에서 논의되는 개념과 이념차이라는 것은 현실 정치에서 아직 너무 유치함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댓글

원시 2011.05.27 08:05

비교정치: 유럽 국가들 중에서, 한국 대통령 선거제도와 가장 유사한 프랑스 사례: 




왜 선거제도 개혁이 중요한가?




사회당 미테랑, 어떻게 대통령에 당선되었는가? 2004-08-11 22:02:48  (원시) 




사회당 미테랑, 어떻게 대통령에 당선되었는가? 




우선 당시 1981년 5월 대선 분위기는, 우파 정권 갈아보자는 정서가 강했다. 소위 정권교체에 대한 국민적 잠재욕구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 지스카르드 데스뗑의 인기가 하락했다. 경제의 악화, 실업률 증가와, 경기후퇴는 이러한 데스뗑의 인기하락에 부채질을 했다. 또한 우파들 사이에 분열이 일어나서, 데쓰뎅과 자크 시락이 대선에 동시 출마하게 된다. 1981년 4월 26일 제 1차 대선 투표에서, 데스뗑은 (8,222,432표: 28.3%), 프랑소와 미테랑(7,505,960: 25.8%), 자크 시락(5,225,848표: 18.0%), 조르쥬 마르셰(공산당:4,456,922표: 15.3%)를 획득했다. 데쓰뎅과 시락의 분열로, 데스뗑이 1위, 미테랑이 2위로 제 2차 결선투표에 오른다. 5월 10일 제 2차 결선투표에서, 미테랑이 1백 6만 6천표 차이로 데쓰뗑을 누르고 제 5공화국을 종식시킨다. 




1971년부터 프랑스 사회당 미테랑은 공산당(CPF)과의 연맹의 끈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1981년 제 2차 결선투표에서 공산당표와 시락을 찍었던 표를 흡수한다. 프랑스 사회당은 70년대 맑스레닌주의와 결별하고, 소련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견지한다. 동시에, 미테랑은 프랑스 공산당의 현실적 힘을 인정하고 제휴하고, 행정부에 4명의 장관자리를 공산당에 배치한다. 




미테랑 대통령은 1981년 6월 의회선거 (14일-21일)에서, 제 2차 선거 결과, 프랑스 사회당-공산당등 연합(사회당 PS 269석, 좌파급진당원운동 MRG 14석, 프랑스 공산당 PCF 44석)등이 70%를 차지하게 된다. 5월 대선에 이은, 6월 선거에서 사회당의 압승 이유는 두가지이다. 하나는 프랑스 미테랑 개인 인기에 대한 결과이고, 두번째는, 제 5공화국이 제정한 대통령과 의회 다수당과의 일치를 보장할 필요성에 대한 유권자들의 동의 등이다. 47% 가 넘는 유권자들이 의회에서 사회당을 지지함으로써, 대통령으로서 미테랑의 국정운영을 순조롭게 했던 것이다. 제 5공화국의 선거 제도가 1981년에는 프랑스 사회당이 다수당이 되는 데 일조한 것이다. 




<당내 혁신 노선 사례> 




프랑스 사회당, 특히 미테랑은, 당시 사회주의자들에게 놀림받던 ‘사회민주주의, 즉 계급협조, 기회주의, 쇼비니즘’ 노선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자 했다. (*소위 민주적 사회주의 노선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스탈린주의를 거부하고, 좌파들로부터 신뢰받지 못했던 유럽식 사민주의가 아닌, 제 3의 길을 가기 위해서 부단한 노력을 했다. 특히 프랑스 젊은이, 신 중간층 지식인 활동가층에 대한 적극적 유인책을 단행했다. 프랑스 사회당에서 중앙집중제를 비판하고 분권화 시도, 소위 자주관리, 자립, 자율, Leitmotif 를 강조하는 autogestion 주장, 여권신장 및 양성 평등( 페니미즘 확대), 환경운동 활동가를 적극 인입 등. 




미테랑의 대선 승리와 의회 다수당이 되는 과정에서 주의깊게 봐야 할 것은, 선거제도 자체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고, 각 국가별로 그 특성이 다르다는 것을 염두해둬야 한다. 그리고 정치적 동맹이나 제휴는 한 순간이 아니라, 10-20년 간의 신뢰관계 속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즉 프랑스 사회당 미테랑의 정치능력이 공산당에 투표하는 유권자들을 포용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프랑스 사회당에서 당내부를 혁신하고 젊은층들과 신사회운동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점이, 공산당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게 된 배경이다. 프랑스 사회당과 공산당의 격차는 1978년에 4%였는데, 1981년에 와서는 13%까지 급속히 벌어졌다. 이런 격차는 소련패권주의에 프랑스 공산당의 애매모호한 태도와, 당내 혁신 프로그램 부재 때문에 생긴 것이다.




 




 댓글

꼭지네 2011.05.27 13:52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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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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