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비교/노동2020. 5. 16.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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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고등,대학교까지 다 의무교육이 될 날이 곧 온다. 직장에서도 노동3권이 의무화되고, 자율적인 노동조합운영이 의무교육처럼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의식과 이데올로기 투쟁의 영역이다. 이걸 가로막는 건, 직장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강조하고, 명령과 수행복종을 지배적인 일터 규칙으로 삼기 때문이다. 직장 구성원들의 자율성과 업무성취 결과 둘 다 만족시킬 수 있다. 관점의 문제다. 


서울대 식당 노동자들의 파업 승리 사례가 상식이 되어야 한다.

서울대 식당 조리보조원. 조미정, 양문정, 조은혜, 중국과 캄보디아에서 오다.

2019년 10월 파업으로 휴식공간 마련. 작년에 서울대 식당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쉴 공간이 하나도 없다는 뉴스를 보고 한숨이 나왔는데 다행임.

2019년 "임금 인상, 노동 환경 개선 집회, 학교 본부 앞 10일 파업"

서울대 학생들 응원 도움됨.


노동조합이 있어서 좋은점 "우리가 건의할 것이 있으면 대신 나서기도 하고 우리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도 노조예요. 한국으로 귀화하고 한국말도 할 줄 알지만 사실 정확한 것까지 하긴 어렵거든요. 학교 측에 무슨 일이 있으면 노조를 통해서 우리도 알 수 있어요. 또 일하다가 다치면 학교는 우리 요구를 들어주지 않지만, 노조에 대신 이야기를 하면 해결이 돼요. 은혜 씨는 무엇보다 노조가 있어서 마음이 편하다고 해요."


육아와 직장을 병행하는 여성 노동자, 그리고 아시아 이주 여성노동자에 대한 적극적인 연대가 필요하다.



https://bit.ly/2TbSy7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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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2019. 1. 26.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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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7 18:08


(잠시 떠오르다) 어떤 한 표어


원시 조회 수 999



구로공단역은 늘 복잡했다. 지하철에다 그 밑으로는 차들이 많이 다녔다. “다음 정차할 역은 구로공단 구로공단역입니다. 띠로로록”  지금도 이 목소리가 그대로인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어딜 가나 자기가 만난 사람들을 가장 많이 기억한다. 그런데 가끔 공간이나 팻말 이런 것들도 기억에 지워지지 않을 때가 있다. 회사에서 나와 집으로 가는 길목에, 왼편에 큰 회사가 하나 있었다. 그  공장 겉벽은 색바랜 녹색 칠이었는데, 그 위에 커다랗게, 표어가 이렇게 씌여져 있었다. 


내가 흘린 땀 한 방울, 조국 근대화 초석된다. 


처음 그 표어를 보고 놀랬다. 아니 의분이 동시에 일었다. 표어는 학교 건물에나 <반공> <방첩> 혹은 <조국 통일> 이렇게 씌여져 있는 것인 줄로 알았다. 굴뚝 위로 연기가 치솟고 있는 공장 건물에 “내가 흘린 땀 한 방울, 조국 근대화 초석된다” 이런 구호가 있을 줄은 상상하지도 못했다. 분노 그 자체였다. '이렇게 처박아 놓고서'  


회사에서 가장 일 잘 하는 손주임, 삼성전자 수원공장을 그렇게 부러워했던 전문대 나온 이대리도 조국 근대화를 위해서 일한다고 말한 적은 없다. 회사 어느 누구도. 이런 사실보다는, 실은 아침 7시에 일어나서 8시 30분까지 출근하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거의 밤 9시, 10시까지 잔업을 하고, 토요일도 격주로 오후 6시까지 일하고, 일요일도 200% 수당 때문에 한 달에 2회는 일하는 현실이고, 그야말로 여기 회사 사람들은 다 일하는 기계들인데, 이 사람들더러 조국 근대화 초석을 만드는 사람들이라고 찬양하고 있는 것이다. 


어린 시절 동네에서 보고 같이 자란 친구들, 선후배들, 삼촌 고모뻘되는 사람들이 1공단, 2공단, 3공단을 꽉 채우고 있었다. 8시 56분, 57분 출근표 촬콱 굉음과 더불어. ‘서울가서 돈 벌어 온다더니’, 그들이 다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실은 그 표어를 보고,  속으로 ‘여기다 다 처 몰아넣어 놨구나’ 이렇게 중얼거렸다. 서울에 오게 된 동기 자체가 계급적인 것인데, 표어는 애국주의였다. 


매일 출퇴근 길에, “내가 흘린 땀 한 방울, 조국 근대화 초석된다” 표어와 마주쳤다. 이 표어는 내가 지금 어디 있는지, 왜 여기에 있는지를 일깨워주는 역할을 했다. 


그런데 어느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다르게 해석도 해보게 되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내가 흘린 땀 한 방울, 조국 근대화 초석된다” ‘그러니까, 구로공단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산업역군이고 수출 일꾼이다. 그 힘으로 조국의 근대화를 이뤄냈다. 그러니까 그걸 한국의 자본이나 경영자들도 인정하는 것이다.’ 이게 애국주의 고취, 전시 자본주의 선전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그냥 진실을 그들도 엉겹결에 이야기해버린 것이다. 동원의 수단이었는데, 진실을 말해 버린 셈이다. 


여기에 있는 중소기업 자본가들도, 경영자들도, 국가도, 또 그렇게 땀을 많이 흘리는데도 샤워기 시설도 없는 (우리회사 같은 경우)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도, 어느 누구도 박수치면서 아 ‘저 말, 내가 흘린 땀 한 방울, 조국 근대화 초석된다’는 말을 하지도 믿지도 해석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객관적으로 볼 때, 그게 진실이라는 것이다. 마치 성경에 나오는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윤리적인 명령어나,  “인간 역사 발전의 원동력은 인간노동이다” 이런 문장처럼, 부인하기 힘든 그런 말이 되었다. 


 일당 16800원(시급 2400), 복만이형 같은 기술자는 3만원까지도 받았다. 복만 형이 참 부러웠다. 선반기술이 있어서 나보다 땀을 덜 흘리고 돈도 많이 받았다. 그런데, 땀은 많이 흘렸는데, 씻는 곳은 좁다란 부엌, 세수대야 놓고, 비누 하나에 그 많은 사람들이 퇴근 전에 손만 씻었다. 샤워실도 없었다. 땀 방울들을 씻어낼. 


그 때나 지금이나, 내가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축구를 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그럴 때, 엄청 큰 이야기 “조국 근대화”, 심지어 “민주화” “ OO화” 그렇게 생각해본 적은 많지 않다. 그런데, 그 후로는, 그 표어를 문자 그대로 믿고 있다. 그 표어에 물음표를 붙였다가, 느낌표를 붙여보기도 했다가, 이렇게 여기까지 오고 있다.  


“내가 흘린 땀 한 방울, 조국 근대화 초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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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창고/20112019. 1. 25.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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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21 20:00


(잠시) 정말 일 잘하는 이쁜 <미경> 아줌마 서약서를 들고 오다

원시 조회 수 1419 댓글 2 ?

http://bit.ly/eS5Xjx : 겉은 첨단 디지털, 속은 옛 구로공단: 남성 70%-여성 90% 비정규, 월 90만 원

노조-정당사회단체 '노동자의 미래' 출범…지역 비정규직 조직화


위 기사를 읽다. 산업구성이 바뀜에 따라서, <디지털> 단지로 변모한 것 같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지난 3년 내내, 내 고민 중에 하나는, 노동자들 (공장, 사무직 모두)이 어떻게 하면 하루에 10분이라도, 당 게시판에 글 쓰고, 당 뉴스를 접하게 하느냐였다.  잘 안되고만 느낌이다. 2011년인데, 월 90만 원 (최저임금 시간당 4320원, 주 45~50시간 노동시간, 60시간 일해서 120만 원 130만 원) 이면, 그간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그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변한 게 많이 없다. 상대적 박탈감은 오히려 더 클 것같다.


여름에 잠시 일한 회사가 있었다. 미경이 아줌마는 1층 책임반장이었다. 회사마다 꼭 한 사람씩은 일벌레가 있고, 사장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는 경력 20년~30년 된 노동자가 있다. <미경>이 아줌마도 그 전형이었다. 고등학교 수학 선생님보다 더 예뻤다. 여느 아줌마와 달리 마른 편이었고, 젊었을 때는 더 이뻤을 것으로 추측된다. 하루는 서류 몇 장을 가져오더니, 모나미 볼펜을 주면서 뭘 쓰라고 한다. 읽어보니까, <노동 계약서>였다. 그런데 7~8개 조항으로 이뤄진 "서약서"였다. 자세한 것은 기억이 다 안 나는데, 전부다 "뭔 말을 잘 듣고, 잘 따르고, 잘 지켜라."는 것이었다. 마지막 맨 문장은 "순종할 것을 맹세합니다"로 끝났다. 


당시에는 전자부품 회사들이 구로공단에 많았다. 우리 회사는 컬러 텔레비전 브라운관에 들어가는 코일을 만들었다. 이 코일은 빨간색 퍼짐 현상을 방지해주는 역할을 한다. 근데 많은 회사직원들(노동자들)이 이 코일이 무슨 역할을 하는지 몰랐다. 물어봐도 아는 사람들이 몇 되지 않았다. 70여 명 일하는 중소기업체였다. 사장은 얼굴 한번 보지 못했고, 검정 그랜져 차가 회사 마당에 가끔 주차되었다. 하도급업체 사장은 정말 할 일이 많다고 했다. 은행대출, 거래처 로비, 사내 노사관리 등. 지금은 거래처가 한국회사 일수도 있는데, 이 회사 거래처들 중에 하나는 일본 전자회사였다. 


하루 일당 (6300원, 시급 780원 정도) 이었다. 일을 잘하면, 매 3개월마다 일당 300원씩 인상된다고 총무과장이 면접할 때 이야기해줬다. 대강 계산해보니까 한 달 기본급이 20만 원이 채 안 되었다. 200시간을 일해서 19만 원 정도를 받는다는 것이다. 총무과장이 면접 때 이런 요지의 이야기를 했다 "이제 네가 부모님께 효도할 나이가 아니냐? 꼭 돈이 많아야 효도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요새 대학에 보내려면 한 달 30만 원은 있어야 한다.  시골서 농사지어서 30만원 만들기가 어디 쉬우냐? 착실히 열심히 잘 하고 있어라." 이 총무과장이 하도 진지하게 말을 해줘서 아직도 그 검정 안경이 생생하다. 


<미경> 아줌마 서랍에는 반창고, 아스피린, 여성노동자들이 많아서 생리통 약, 머리핀, 과자 등 없는 게 없었다. 뭐가 좀 필요하면, 다들 왕언니 <미경> 아줌마를 찾았다. 이렇게 일만 일만 하는 사람도 있었다. 물량 갯수, 몇 박스 달성 확인하고, 자기가 일하고, 다른 조 일하는 것도 도와주고, 나도 아스피린 한 개 얻어 먹은 적이 있다. <미경> 아줌마는 점심식사도 엄청 빨리 했다. 후루룩 후루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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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 2011.02.21 20:13

4년 전에, OECD 국가 노동자들의 파업 (공기업, 사기업 모두) 비교 자료를 읽었다. 캐나다는 인구 3천 1백만인데, 파업 횟수가 한국 (5천만) 보다 많았다. 한국은 파업할 수 있는 회사들과 노조들만 파업을 한다고 자료에 나왔다. 그니까 위와 같은 70명 노동자 회사같은 곳은 파업이나 노동자투쟁이 정말 일어나기 힘들다. 한국이 강성노조로 세계에서도 유명하지만, 그만큼 노동자 내부 격차가 크고 심각하다는 것이다. 




아니 파업이나 투쟁에 앞서서, 그런 말보다는,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계약서>에 자기가 비정규직 노동자인 줄도 모르고 <서약서>에 도장찍는다. 당에서 무슨 일부터 시작해야 할까? 




요즘은, <사회운동 정당>이다 아니다, <대중정당>이다, 의회주의냐 아니냐, 정치를 발견했냐 안했냐, 원리주의자지, 고립주의자지, ..., 대화는 이어지지 않고, 무슨 말을 해도 글자 그대로 전달되는 법도 없다. 




정치에 앞서, 무슨 혁명 개량에 앞서, 은폐되기 쉬운, 가려지기 쉬운 현실, 일만 일만 하는 사람들의 삶을 조명하는 것 자체가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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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 2011.02.21 20:15

새로운 진보정당, 정당간 통합......뭐가 어떻게 달라질까? 사람들을 노동자들을 청년당원들을 <동원>대상으로 간주하지 않게 될까?


 민주노동당 2007년 대선 몰락, 아니 많은 사람들은, 당원들은 모른다. 민주노동당은 2004년 국회의원 10석을 얻는 과정부터 위기-다이나마이트 탑재 <사랑방 정치> 정당이었다. 여기 당원들도 언론들도 <북한 문제, 종북문제> <패권주의, 정파싸움> 이런 자극적인 거 몇 개 다루지만, 과거 민노당의 간-암 증세들에 대해서, 또 현재 이 <진보신당>의 문제들에 대해서 은폐되어 있는 게 많다. 


2008년 <진보신당>은 정말 다를 줄 기대했다. 노동자들을 돈이나 내고, 투표해주는 "수동적, 피동적" 동원 수단으로 간주하지 않는 일.하.는.사람들의 정당일 줄 알았다. 민주노총 전 이수호위원장처럼 400만표, 600만표 몰아줄께. 그런 거 안했으면 했다. 진.보.신.당. 홈페이지 3년이 지났다. 노동자들, 공장이건 사무실이건, 여성이건 남성이건, 노동자들의 희.로.애.락 이야기는 거의 없다. 


실제로 노.동.자. 노동자 많이 이야기하지만, 그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왔을 때, <진보신당 하루 뉴스 5분, 10분>짜리도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다. 이 직장인들은 피곤하다. 그럼 이들을 취재해서라도 노.동.자들 목소리가 당 1면에, 당게시판에 가득차 흘러야 한다. 언젠가 당을 만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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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법2019. 1. 24.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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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포스트 케인지안 정책인 '임금주도 성장' 이나 '소득주도 성장'을 채택한 이후에, 한국에서도 자본주의적 소유권 문제를 두고 법정 공방이 될 것으로 예측했다. 왜냐하면 리버럴 문재인 정부가 당선 이후 루스벨트 '뉴딜정책'을 실시하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1932년부터 1944년까지 루스벨트는 무려 4번에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기존 자유방임적 자본주의 체제와 사적 소유권을 옹호했던 미국 경제체제에 개혁을 가했다. 당시 미국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연방 대법원 판사 대다수가 뉴딜정책이 자본주의 질서와 사적 소유권을 침해한다고 비난했다. 


나 역시 한국에서도 문재인 정부가 이런 법적 공방에 휩싸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내 예측은 빗나갔다. 문재인 정부는 고용창출이면 삼성 이재용도 용서해줄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물론 현재 한국은 1932년 대공황 이후 미국이 아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한국형 뉴딜 정책을 과감하게 실천하겠다고 공약했다.


루즈벨트의 뉴딜 정책은 다음과 같은 4가지 기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번째 소득과 고용과 관련된 사회안전망 구축, 두번째는 최저 임금법 제정, 세번째는 정부 재정 정책(큰 정부)을 통한 수요 촉진, 네번째는 노동조합의 법적 보호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재정 정책도 '긴축' 노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고, 오히려 초과세수를 낳았다. 그래서 정부 채무를 빨리 갚았다고 자랑하기도 하는 등, 정책의 일관성을 포기했다. 노동소득 격차를 실질적으로 줄여나가는 최저임금 인상안을 마련하지도 못하고, 보수언론과 자유한국당의 최저임금 인상의 집중포화를 맞고, 뒤로 퇴각해버렸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 정책은 사회복지체제의 현대화이고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망가진 복지망의 확충노선이다. 이를 위해서는 자본가, 은행가, 부동산 빌딩주인들이 그들 소유권을 어느정도 양보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본소득성장율과 노동소득성장율 격차는 커질 수 밖에 없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IMF 가 처방한 강력하고 혹독한 '긴축 독재 austerity dictatorship' 이후, 비대하게 성장한 대기업, 은행들, 부동산 소유자들이 기존 부를 사회에 내놓고, 현재 노동소득을 증가시키고 사회복지망을 확충시킬 때만이 문재인의 소득주도성장이 실현될 수 있다. 



1930년~40년대 미국 뉴딜정책 당시 가장 완고하게 저항했던 대법원의 보수적인 판사들은  2018년 한국에서는 조중동 보수언론과 자유한국당에 해당한다. 그러나 문재인은 루스벨트처럼 강력하게 뉴딜정책을 밀어부치지 못하고 있다. 미국 연방 판사들과 달리, 개혁적인 판사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는 한국 상황을 고려했을 때, 문재인 정부 개혁 정책은 너무 더뎠고, 호기를 많이 놓쳤다. 



만약에 한국의 진보정당이 집권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잠시 생각해보다. 문재인 소득주도 성장에 대한 법적 공방을 예상했지만 내 예상은 약간 빗나갔고, "최저임금 인상은 나라를 망친다. 최저임금 인상은 내 입시를 망친다. 최저인상은 내 가게를 망친다. 최저임금 인상은 내 소개팅을 망친다. 최저임금 인상은 내 사업을 망친다"는 최저임금 원죄론만 귀신처럼 떠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망한 나라는 전 지구상에 1 곳도 없음에도. 



II. 사법부와 행정부 권력간의 긴장과 갈등 사례 -



뉴딜 정책을 실행한 루스벨트에 대한 미국 판사들의 태도는 어떠했을까? 


1936년 대선에서 압승을 거둔 루스벨트는 집권 2기에서 뉴딜정책을 보다 본격적으로 확장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뉴딜정책이 자본주의와 소유권을 침해한다고 제동을 거는 연방판사들이 많았기 때문에, 루스벨트는 대법원을 수술하려고 했다. 그 방법은 9명 대법원 판사 수자를 15명까지 늘리는 것이었다. 코트-패킹 플랜을 제안했다. Court-packing Plan (Judicial Procedures Reform Bill of 1937) 


보수적인 왈터 리프먼 판사와 러니드 핸드는 뉴딜정책과 루스벨트에 대한 태도를 서로 달리했다. 결과적으로 루스벨트 사법부 개혁안은 좌절되었지만, 노동조합과 노동자 농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와그너 법 the Wagner Act'은 의회에서 통과되었고, 대법원 판사들 휴즈와 로버츠 (Hughes and Roberts) 도 1936년 대선에서 루스벨트 승리 이후 태도를 바꿔 뉴딜 정책을 지지했다.



1. '조용하고 독립적인' 노선을 걸었던 미국 항소법원 판사로 유명한 러니드 핸드는 1932년 대선에서는 민주당 루즈벨트를 찍지 않고, 공화당 후보였던 후버에 투표했다. 러니드 핸드는 루즈벨트 (FDR) 성격이 너무 감정적이고 비판적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고 자세히 적고 있다. 


그러나 1936년 대선에서는 러니드 핸드가 공화당 후보 앨프 랜던 (Alf Landon)을 찍지 않고, 루즈벨트에 투표했다. 그 이유는 민주당과 루즈벨트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가 아니라, 공화당과 랜던 후보가 대통령 자질이 부족하다고 평가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러니드 핸드의 정치적 전향에 영향을 끼친 것은 하버드 대학 철학자 랄프 바튼 페리 (Ralph Barton Perry) 때문이다. 페리는 "자본주의적 민주적 제도들의  결점들을 바로잡고 구제할 수 있는 것"은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들이라고 주장했다.  


러니드 핸드 판사는 이러한 페리의 주장에 동조했다. 그러나 러니드 핸드는 이러한 말을 덧붙였다 "내가 루스벨트에 투표하는 것은 그를 공화당 후보다 더 좋아해서가 아니라, 앨프 랜던과 공화당을 그보다 덜 좋아해서다"


루즈벨트는 1932년에는 42개 주에서 승리하고 6개 주에서 패했는데, 1936년 대선에서는 46개 주에서 승리하고, 2개 주에서만 패배했다. 투표율도 60.8% 대 36.5%로 6:4 비율로 승리했다. 4 선 가운데 1936년 대선에서 가장 많은 대중 투표를 획득했다.



2. 왈터 리프먼 (Walter Lippmann) 판사는 뉴딜 정책을 밀고 나가기 위해 대법원 판사 숫자를 15명으로 늘리려고 한  루스벨트를 "권력에 술취해서 무자비한 쿠데타를 감행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특히1937년 2월 루스벨트가 미연방 대법원 판사 숫자를 9명에서 15명으로 증원하자는 법안을 낸 후, 보수적인 법관들과 심지어 민주당 내부에서도 반대했다. 


루스벨트가 제시한 근거는 "미국 헌법을 법원으로부터 구원하자, 그리고 법원을 법원 자체로부터 구원하자" 것이었다. 두번째는 미국 사회 경제적 문제에 대한 결정권을 보다 더 젊은 미국시민들에게 부여하자고 루스벨트는 주장했다. 


연방법원 판사 9명 중 6명이 70세 이상이었고, 그 6명 중 4명은 루스벨트 뉴딜정책에 대해 극렬히 반대했다. (버틀러 Butler, 맥레이놀즈McReynolds, 수더랜드 Sutherland, and 반 데밴터 Van Devanter 판사) 


루스벨트는 미국 보통 시민들의 삶을 잘 이해할 수 있는 능력있는 젊은 층을 대변할 수 있는 판사들이 미연방 대법원 판사로 기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뉴딜정책을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권 침해라고 비난하는 판사들 비중을 줄이기 위함이었다.


신중하고 균형을 강조했던 러니드 핸드 판사는 어떠한 태도였는가?


루스벨트 연방대법원 개혁안은 부적절했다. 오히려 법원이 통제불가능한 상태로 몰고 가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대법원의  통치는 사법권의 왜곡이었다. 사법부가 권력을 남용했기 때문에, 사법부에 제동을 걸기 위해서 행정부 (루스벨트)가 왜곡된 방식을 동원하는 것이라는 게 러니드 핸드 판사의 생각이었다.



3. 뉴딜 정책 지지자였던 펠릭스 프랑크푸르터 Felix Frankfurter 와 비교 


 

 프랑크푸르터 판사는 루스벨트 뉴딜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했고, 대법원 판사 숫자를 늘리자는 사법부 개혁안을 찬성했다.


이에 비해 러니드 핸드 판사는 신중한 균형론자 입장을 취했다. 러니드 핸드가 왠만해서는 별로 흥분하거나 화를 내지 않는 '균형론자' 노선을 걸었던 데에는 1933년 농업조정법 (the Agricultural Adjustment Act of 1933) 논란과도 관련이 있다.


대법원은 루스벨트가 농업 축산업 종사자들에게 '과잉 생산'을 막고 소득을 올려주기 위해서 '정부 보조금'을 준 것에 반대했다. 그 이유는 그 재원을 농업 축산 가공업 회사로부터 '조세'인데, 이는 미국 헌법에 위배된다는 논리였다.  자본주의적 소유권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인 집단이 미 연방 대법원이었다. 


루스벨트는 지금 농업 축산업 종사자들이 생산은 많이 하고, 시장에서 가격은 폭락하기 때문에 가장 피해를 많이 당한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서 정부가 나서서 그들 생산물 (소비용 가축부터 밀가루 등 )을 구매했다.


이러한 농업 축산업 보조정책에 반대한 대법원에 대해 루스벨트는 혹독하게 비난했다. 

러니드 핸드 판사 역시 대법원의 농업조정법에 대한 반대는 잘못된 결정이라고 봤다. 


하지만 그는 뉴딜정책에 대한 강력한 옹호자였던 펠릭스 프랑크푸르터에 완전히 동조하지는 않았다. 



(1940년, 좌측 루스벨트, 가운데 프랑크 녹스, 오른쪽 펠릭스 프랑크푸르터 대법원장) 

Supreme Court Justice Felix Frankfurter administers oath of office to Secretary of Navy, Col. Frank Knox. As World War 2 began in Europe, President Franklin Roosevelt organized a bi-partisan 'War Cabinet' including Republicans such as Knox in critical posts. July 11, 1940.





제랄드 군써가 쓴 러니드 핸드에 대한 책 "러니드 핸드 : 그 생애와 판사  Learned Hand: the Man and the Judg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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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al leadership2016. 8. 10.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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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28 02:43

장석준 후보 : 녹색사회주의 몇 가지 비판 (1)

원시 조회 수 932 댓글 0



글을 쓰기 전에, 당대표단 선거 유세 일정이 너무 빡빡해서 이런 토론 글이 얼마나 생산적일지 우려는 됩니다. 다만 미래 토론 주제로 삼자는 의미로 해석해주었으면 합니다. 아울러 진보신당의 현재 역량을 고려했을 때는, 당대표단 선거는 1박 2일 정도 충남 어느 한 도시에 모여서 하루 10시간, 그 다음날 8시간 정도 다같이 발표 토론 질문하는 ‘축제’로 펼쳤으면 합니다.


1. 지향하는 가치관으로서 ‘녹색’과 ‘적색’을 결합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봅니다. 2011년 5월에 김현우 후보가 발표한 글의 내용 (http://blog.naver.com/nuovo21/70043731544 )이나,

또 쟁점과 토론방에서 제가 김현우님과 나눈 토론 내용 등도 유사한 주제라고 봅니다.

http://www.newjinbo.org/xe/1536648


그리고 2008년 3월에, 진보신당 정책실에서 <생태, 평화, 평등, 연대>라는 4대 가치를 내걸어서, 그것들이 기계적인 나열에 그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제가 2개의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생태 - 반자본주의 운동, 노동조합내 노동자의 직접 참여정치 강조 (1980-1986년 독일 녹색당 사례” “생태 우경화보다 노동-생태 공통분모 시급히 찾아야”. 그래서 ‘녹색’과 ‘적색’의 공통 지반을 찾자는 취지가 지난 4년간 전당적인 실천으로 되지 못한 게 아쉽지, 녹색 적색을 연결짓자는 노력은 잘못 된 게 아닙니다.


2. 문제는 최근 진보정의당의 <사회민주주의> 깃발 수립 제안 (노회찬) 및 토론과 동일한 오류가 엿보입니다. 녹색사회주의와 사회민주주의 내용은 서로 차이가 있지만, 정당화하는 방식에서는 동일한 정치적 오류가 있다고 봅니다. 



두 논의다 지난 12년간 민주노동당-진보신당-사회당 등 우리가 실천해 온 정치적 이념과 가치들과 “녹색사회주의”와 “사회민주주의”와의 연관관계에 대한 설명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장석준 부대표 후보께서 올린 <지금 여기의 진보,2012> 녹색사회주의에 대한 글들은 몇 가지 정보들을 담고 있지만, 그 ‘녹색사회주의’가 어떠한 우리의 역사적 맥락에서 나온 것인지 설명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민주노동당 시절 평등-자주 패러다임보다, 또 진보신당에서 평등-생태-평화-연대 가치들(political values) 보다 이제 이념형에 가까운 ‘녹색 사회주의’가 왜 더 나은지, 한국 자본주의 특질을 어떻게 더 잘 설명하고, 그에 근거한 정치적 실천과제들을 어느 누가 어떻게 완수할 것인가?에 대한 설명이 부재하다는 것입니다.


3. 김현우 대표 후보도 이 문제에 답을 해줘야 하는데요, 지금 한국에 ‘녹색당’이 있는 정치적 상황에서, 진보신당이 ‘녹색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게 어떠한 장점이 있는가에 대한 설명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 혹시 답변하셨으면 참고글을 알려주세요)


4. [부대표 2번 장석준] 노동자정당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 녹색 사회주의 생각 http://www.newjinbo.org/xe/5016532


노동 분화 (differentiation) 시대에, 노동 중심성이라는 부적합한 단어를 들고 나온 선본 관계자들이 문제이긴 합니다. 대표 후보자 동영상 토론을 보니까, ‘노동중심성’ 관련된 주제는 단어의 거창함에 비해서 논의가 빈곤합니다. 아니 진보신당에 과거 2008년 민노당->진보신당 분당시 결합하지 않는 노동자들이나, 그게 민주노총 특정 정파건 비-조합원 노동자들이건 결합한다는 의사가 있으면, 당에서 [통합 논의 팀]을 당 절차에 따라 만들어서 입당하게 유도하고 장려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만약에 노동중심이라는 단어가 따로 지시하는 게 있다면, * 노동중심성에 대한 비판은 따로 하겠습니다. )


여튼 노동중심성이라는 잘못 선택된 단어 때문에 그런지 몰라도, 장석준 후보가 내건 4가지 조건들은, 정당과 노동조합의 관계에 대한 설정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반영합니다. 민주노총 출신만 비판할 게 아니라, 노동조합과 당과의 관계 설정을 잘못했던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자기 비판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1) 임금인상 투쟁 문제는 노동조합이나 민주노총 차원에서 선차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고, 이게 전 사회적인 의제로 만드는 일은 당에서 적극적으로 해야 합니다. 장석준님이 쓴 ‘고소득 정규직 임금인상만 신경쓴다’는 불필요보이고, 오히려 ‘노동 귀족’ 이데올로기 담론을 계발하는 게 당의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대안] 당 내에 <노동부>를 만들어서, 노-노 갈등의 원천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 수 있는가? 이 문제를 선차적으로 해결하는 게 당의 정치적 임무입니다. 장석준님이 말하는 ‘증세’나 ‘비정규직 임금 인상 투쟁’은 우리 당의 당론이기 때문에, 새로 들어오는 노동자들에게 요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2) 비정규직 문제 해결은 87년 노동자 항쟁과 유사한 정도의 투쟁이 필요하다고 했는데요, 제가 볼 때 당에서 시급하게 해야할 일은, 87년 노동자 항쟁 “어용노조 박살내고 민주노조 쟁취하자”와 규모가 비슷한 항쟁이 와야 한다고 주창하는 게 아닙니다. 97년 이후 비정규직 투쟁의 성과들을 수집해서, 각 업종별로 도시별로 상이한 조건들에 놓여있는 노동자들을 당에서 어떻게 만날 것인가? 이렇게 세분화될 필요가 있습니다.


(3) 노동자들의 역사적 과제인 사회주의를 달성하는 노동자 정당이어야 한다는 장석준 후보의 이야기는 맞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지난 12년간 정당 운영에서 현재 우리 좌표는 어느정도인가를 적시해야지, 다시 ‘역사적 주체’가 노동자임을 선포하는 것으로는 불충분하다고 봅니다. 사회주의라는 단어가 가지는 정치적 함의가 무엇인지도 해명될 필요가 있겠습니다.


(4) 장석준 후보의 주장, 노동자들이 입시,집값 경쟁에서 스스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 그 대안이 ‘협동조합’이라고 하는 부분은 앞으로 더 많은 토론이 필요해 보입니다. 


노동자들이 생산수단, 기업들, 토지 등을 직접 소유하거나 통제하자는 주장은 우리의 정치적 방향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노동자 전체가 정치적 전위가 아닐텐데 ‘입시, 집값’ 경쟁에서 벗어나라고 하는 것은 대중적 진보(좌파)정당에서 내걸 수 있는 구호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리고 노동자 자주경영이나 생산수단에 대한 직접 통제 및 운용 방식을 ‘협동조합’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직까지 충분한 근거가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위에서 말한 게 (1)-(4) 왜 ‘녹색’ 사회주의인지, 그냥 ‘녹색’은 수식어이고, ‘사회주의’ 말만 되풀이한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5. 태양 코뮌주의 = 녹색 사회주의 (다니엘 타누로) 이야기는, ‘전기가 사회주의다’라는 구호를 연상시킵니다. 장석준님이 타누로 주장을 Gosplan 이 아니라 다원화 분권화된 사회주의라는 말로 요약을 하긴 했지만, 그 밑바닥에는 기술중심 (전기에서 태양에너지로 바뀜)주의가 깔려 있다고 봅니다.


또한 녹색 사회주의 핵심을 ‘참여’와 ‘자치’라고 했지만, ‘참여’와 ‘자치’는 녹색사회주의가 아니더라도 다른 정치체제나 이데올로기에서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아울러 규모 경제 (scale economy)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대안이 길드 사회주의인지도 더 고민이 필요해 보입니다. 칼 폴라니 테제 “사회가 가장 중요하다. 


혹은 사회 제일주의 the primacy of society"를 언급하면서 국가와 자본주의 시장이 아닌 협동조합을 주요한 경제활동 행위주체로 내세우고 있는데요, 소위 신자유주의적 지구화 시대의 문제로 국가 주권 (한미 FTA)의 축소 가능성을 지난 30년 동안 지적해 오고 있지 않습니까? 


미래 사회를 마르크스의 ‘코뮌’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500년, 1000년 사회주의자라는 비난을 듣지 않기 위해서는 현실적 과제들에 대해서 ‘녹색 사회주의’가 해법을 제시해야 할 것입니다. 당게시판에 올린 글들에 대해서는 향후 토론을 이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장석준님도 말씀하셨듯이 ‘집단적’ 토론을 당원들과 같이 해나가길 바라겠습니다.


6. 녹색의 원리와 적색의 원리가 상충되는 수많은 주장들과 실천들에 대한 조사와 이에 대한 해법 제시가 전혀 없다.


생태사회주의 (eco-socialism)이라는 용어는 70년 후반부터 나오기 시작해서 90년대에 퍼지다 요즘은 좀 사그러든 것 같습니다. 생태-사회주의와 ‘녹색 사회주의’가 동일한 말인지 궁금하긴 합니다. 아니면 쉽게 말해서 독일 녹색당 노선과 독일 좌파당 노선을 종합적으로 한 군데로 몰아서 ‘녹색 사회주의’를 하자는 것인지?



여튼 이름이야 뭐라고 하든지 간에, 녹색의 원리와 적색의 원리가 상충되는 부분들이 있고, 마르크스 입장에서 두 원리를 묶는 시도들도 있긴 하지만, 서로 다른 원리가 분명히 충돌하기도 합니다.


장석준 후보가 지지하는 이용길 대표 후보 전직이 자동차 판매 업종인데, 자동차 판매를 잘 해야 복지가 형성되고, 대신 자동차 증가로 엔트로피가 늘어나게 되고, 공기는 더 많이 오염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탄소세나 환경세를 시민들이 더 많이 내야 합니다. 


녹색 적색 원리의 상충 뿐만 아니라, 현재 진보신당 당원들의 삶과도 직결되어 있는 ‘모순’과 ‘갈등’ ‘상충’이 있습니다.


당의 이념으로 어떤 이데올로기를 끌어올 때는, 우리가 주체적으로 우리 구성원들 당원들의 삶의 문제를 직접 해결하거나, 내부 상충 요소들을 충분히 제거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런 맥락에서 장석준님이 말한 ‘녹색 사회주의’ 단어는 더 많은 토론과 조사가 필요해 보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녹색 사회주의’나 ‘생태 사회주의’는 아나키스트 노선으로 갈 확률이 더 크고, 오히려 그게 더 이론적으로 적합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아니라면 독일 녹색당처럼 기존의 사회민주당 정책들을 수렴해 나가는 방향으로 가거나.당게시판에 올린 글만 가지고 아직 잘 갈 길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열린 토론주제로 남기겠습니다. 제가 혹시 오해에 기초해서 비판하거나 지적한 게 있다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협동조합, 민중의 집 문제는 다시 거론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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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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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과 노동조합은 무엇이 다른가? 역할 분담을 명료히 해야

 

2013.07.19 14:21

 


전통적으로 논의되어 정당() 노동조합과의 관계를 지금 심층적으로 다룰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당게시판에 올라온 <노동당> 지지자들의 공통된 특징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정당과 노동조합의 역할 분담에 대한 논의가 없거나, 당이 해야 자기 역할에 대해서 심층적으로 다루지 않다는데 있습니다.


 

<노동당> 지지자들의 글은, 정당의 자기 역할에 대한 부분은 빠져있거나 빈곤하고, 대부분 최근 나온 <한국의 신자유주의와 노동체계: 노동운동의 고민과 길찾기: 임영일 : 노동의 지평 출판사: 2013> 주제들인, 대안적 노조운동의 모색입니다. 9 <대안적 노조운동의 모색> 저술한 정일부(한국 노동운동연구소 부소장)님의 이야기와 동일한 주제인 것입니다. 정일부님이 일과 우리 당이 일은 기계적으로 분리될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당의 노동정치 대한 입장을 서술하지 않는 것은, 정당으로서 해야할 일에 대한 정치적 임무를 다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노동당> 지지하는 분들이 논리적 일관되게 어떤 공통점이 있을 필요는 없지만, <노동당>이어야 하는가? 굳이 <노동당>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공통요소를 발견하기 힘듭니다.


 

한가지 예를들면, 남종석님의 글의 주요한 요지는 <노동당>이어야 하는가를 설명하기 보다는, 현재 진보신당이 민중운동을 추동해야 한다는 추상적인 수준에서 정치운동의 방향만을 제시하고 있을 뿐입니다. 좌파정당으로서 우리 당이 해야할 일을 남종석님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노동당)이란 당명은, 우리의 정체성과 토대를 어디에 두고 있는가를 분명히 함으로써 당의 계급적 정체성을 뚜렷이 있다.” 그리고 진보신당이 민주노총과 노동자 정치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동당> 지지글의 문제점은, 현재 진보신당이 정치적으로 실력이 부족하니까, 노동자들을 찾아서 떠나자, 새로운 여행을 해보자는 의지 표명만을 뿐이지, 실제로 우리 당이 정치 정당으로서 무슨 역할을 해야 하는가? 대한 이야기가 결여되어 있습니다. 아울러 정당과 노동조합의 역할 분담이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가에 대한 의견도 빠져있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노동자 주체들을 찾아 떠나야 합니다. 너무 당연합니다. 문호개방해야 합니다


 

진보신당이 현재 한국 좌파, 진보운동의 중심이 아니고, 자타가 공인하는 지도구심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남종석님의 본래 의도 새로운 진보좌파의 비상을 사고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는 노동자라는 동어반복 (tautology) 이야기할 아니라, 정치정당으로서 진보신당의 노동 정치내용은 무엇이어야 하고, 과거와는 무엇이 달라야 하는가를 주장해야 합니다.


 

필자는 우리 당이 노동자 정치정당 추진위, 변혁모임, 진보적 시민단체나 개인들에게 적극적으로 문호를 개방해서 가급적이면 같은 정당에서 활동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 당의 정치적 임무를 명료하게 해놓지 않고, 외부 손님들을 맞이 하겠다, 혹은 같이 하겠다는 것은 그들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장기적으로 진정으로 하나가 되는 정치 프로젝트는 아니라고 봅니다.

 

<노동당> 당명이 구좌파여서 문제가 아니라, <노동당> 당명을 제출한 우리 당원들이 실제 우리당의 정치적 임무,그것도 노동조합이나 민주노총과 같은 총연맹과의 관계를 어떻게 것인가를 명료하게 하지 못하는데 있다고 봅니다


필자는 당은 당연히 민주노총과 협력도 해야 하고, 민주노총의 한계와 문제점을 비판해야 한다고 보지만, 정당이 노동조합 정치의 자기 정화능력까지 무시하거나 뺏을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민주노총의 개혁은 노총 자체 스스로 해야 하고, 좌파정당이 해야 일은 노동조합에게 넘겨서는 안됩니다.


민주노총 자체가 사회주의자나 좌파조직으로 구성된 아니기 때문입니다. 민주노총과의 협력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당과 노동조합의 차이, 역할 분담에 대해서 다시 토론해야 때입니다.

 

아래 도표는 주장을 보다더 명료하게 하기 위해서 조금 인위적으로 정당과 노동조합과의 역할 분담을 표로 만들어 것입니다



<평화노동당> 제안서에서도 <노동정치> 선언을 설명하면서 이야기했지만, 다시 한번 정당과 노동조합의 역할 분담이라는 측면에서, 진보신당이 지난 5년간 상대적으로 방기했거나 부족했던 정치적 임무를 적어봅니다

 

아래 내용을 남종석님이 모른다는 아닙니다. 재창당을 하면서 좌파정당으로서 우리 당이 무엇을 것인가? 무엇을 수행해야만, 외연도 확충하고 내부 통합도 높일 것인가? 고민해야 하는데, '노동' 패러다임에 대한 고민들, 당에서 해야 역할에 대한 언급보다는, '노동 세력들' 대한 언급과 '노동자 주체' 대한 동어반복적 강조에 그치고 있다는 문제의식의 핵심입니다.

 

                정당과 노동조합의 역할 분담    

                                                좌파 정당 

                                                    노동조합

 

정치활동

주요임무

전체 직종을 아우르는 재분배(세금), 분배 (노동소득), 자산 소득(빌딩, 토지 지대, 금융자산), 생산 수단에 계급 계층 차별적 요소를 진단하고 좌파 정치 요소를 발견해 낸다.

-> 16 시도당에서 자기 지역 주민들, 노동자들의 실태 조사에 근거한 정치 실천 기획을 수립한다.

 

 

작업장으로 국한해서 노동조합의 정치활동은 노동3권과 관련된 정치활동이다.( 노동조합원들이 좌파나 사회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조합원 자격은 반드시 정치적 입장이 좌파일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

 

문제 해결 접근 방식 : 법률,제도 영역에 대한 정치적 전면전

 

자본주의에 기초한 한국 민법 체계가 어떻게 계급지배 도구로 사용되고 있는지를 분석해 내고 비판한다. 97 이후 노골적으로 노동조합 탄압 분쇄 도구로 사용되고 있는 노동자나 노조에 대한 회사 재산권 침해 고소, 노동자 노조 재산 가압류, 손해배상 청구에 대한 저항 대응. 사회적인 여론전을 전개한다. 법률적 지원 팀을 만들어 지속적인 노동조합 방어 투쟁을 전개한다.

 

회사나 현장에서 해당 노동자들은 파업이나 사보타지와 같은 직접 행동에 돌입한다.

 

공론장에서 여론형성과 시민사회에서 정치활동

노동정치를 급진화하고 좌파적인 방향으로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시민사회에서 일상적인노동정치여론을 당에서 만들어 내야 한다. 예를들어서 ..동의 귀족노조 이데올로기에 대해서, 방어적 차원에서 매일매일 대응하고 저항 담론을 형성해야 한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공격적인 차원에서는 노동자들의공적 행복 무엇인가를 시민사회 속으로 전파해야 한다.

 

 

노동조합은 보수적 -노조 이데올로기에 저항하고 노조의 정치활동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지역 공동체와의 연대를 실시해야 한다. 소위 말해서 기업의 사회기여 프로젝트(재벌들의 불우이웃 돕기) 능가하는 지역공동체 주민 연대 정치 프로그램들을 직접 실천해 낸다.

계급의식의 형성

 

 

한국 자본주의의 특성 중에 중요하게 지적되어야 요소는 교육제도이다. 한국의 노동자들의 계급의식 형성(자기 정체성) 가로막고 있는 것은 바로 지배계급과 기득권 세력들이 공교육은 물론 사교육까지 동원해서 계급의식 형성을 아이때부터 20세까지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좌파 정당의 임무는 실제로 교육제도를 개혁하는 실천과 더불어,이러한 지배계급의 정치적 공세를 뚫어낼 있는 사상적이고 문화적인 이데올로기 투쟁을 매일 매일 전개해야 한다.

 

노동조합 가입과 활동 자체가 좌파적이거나 사회주의적 정치활동은 아니다. 그러나 노동조합 활동과 가입은 한국과 같은 낮은 노조 조직율에서는 매우 중요한 정치활동의 전제 조건이 된다. 하지만 노동조합 가입 자체가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이 좌파적으로 자동적으로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노동 3 자체는 형식적 절차적 (부르조아) 권리이고, 노동 3권이 실현된다고 해서 자본주의 체제 자체나 노동자-자본의 권력관계가 전복되지 않는다. 하지만 노동조합 내부에서 정치 활동은 기본적인 민주주의 정치의 학습이자, 좌파 정치로 발전할 씨앗이라고 있다.

 

정치적 경쟁 대상

좌파 정당의 경쟁 대상은 정치권 내부에서는 새누리당, 민주당 등이다. 노동정치와 관련된 주제들은 바로 새누리당의 노동정치, 민주당식 노동정치를 통해서, 현장에서 노동정치가 걸러지고 변형되고 왜곡되기도 하고 새로운노동정치 생산해 내기도 한다.

좌파정당의 임무는, 노동현안 자체가 현재 새누리당, 민주당이라는 전문 정치 영역으로 이동할 , 발생하는 노동정치의 변형, 왜곡, 새로운 문제 발생들에 대비하고 그에 맞는 정치적 전략과 전술을 만들어야 한다.

입법 활동은 물론이고, 입법활동이 아니더라도, 새누리당과 민주당의노동정치기획들은 다양한 채널들을 통해서 실천되고 있다.

 

 

노동조합에서 경쟁대상은 해당 기업이나 기업주와 고용주이다. 단위 노조건, 총연맹 차원이건 해당 경쟁자들은 일차적으로 고용주와 자본가들,경영자들이다. 아군을 형성하는 방식은 당연히 노조 바깥 사람들과의 연대이다. 노동변호사들, 지역주민들 동조, 여론 형성, 다른 정당들과의 제휴등도 포함된다. 하지만 일차적으로 중요하게 연구해야 경쟁 대상은 고용주와 자본가들이다.

 

공간, 글로벌 자본과 자본의 지리적 이동, 노동력의 국제적 이동 : 국제 정치 연대 형성

 

좌파 정당의 연구소에서 해야할 일이 바로 세계 자본주의의 동학과 지배계급의 통치 전략에 대한 분석과 그에 기초한 노동정치의 전략 수립니다. 자본의 이윤율 증가는 반드시 노동조합과 노동자정치의 궤멸 전략과 연계가 되어 있다. 1970년대 중반 이후 30년간 금융자본은 산업자본으로부터 독립해 역으로 산업자본을 지배해나가기 시작한지 오래다. 아울러 아시아 중국, 인도, 동아시아 국가들의 자본주의 시장제도의 도입으로, 지구 자본주의 질서와 축적 체제는 급변하고 있다. 한국 좌파는 아시아 다른 나라 정치권들과 적극적으로 연대하고 지속적인 교류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한국 노동조합, 민주노총도 아시아 국가들의 노동조합과 국제적 연대를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한국 자본이 해외로 이동하고, 반면 아시아 노동자들이 한국으로 이동함에 따라, 아시아 노동자들의 권리와 한국 노동자들의 권리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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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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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잘 읽었습니다 .

    2014.11.27 16:48 [ ADDR : EDIT/ DEL : REPL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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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희로애락 표출, 그것이 노동정치다

2013.07.12 20:22

노동 과정(일터)이 국회다


노동운동과 진보정당 운동이 위기에 빠진 이유는, 노동자들이 자기 일터를 내팽개치고 빈 공간으로 남겨두고, 국회만을 정치적 공간으로 축소시켜버렸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진보정당은 노동자 (조합원)를 재정후원자로 간주했지, 노동자 당원들을 국회 입법자, 행정가가 될 수 있는 정치적 자양분을 제공하지 않았다.


일터(직장)은 단순한 밥벌이 수단, 월급/연봉만 받는 곳이 아니다. 노동과정 속에서 진정한 노동해방이 실현되어야 하고, 노동자들의 자유가 그 과정을 통해서 표현되어야 한다. 노동과정의 좌파적 사회주의자들의 실천은 이미 역사적으로도 많았다. 공장평의회 운동, 토지 점거 운동, 노동자의 자주경영 등이 있었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다.


좌파정당의 장기적 밑천 확보를 위해서, 정치적 저수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노동과정의 정치화가 급선무이다. 한국에서 진공의 사회주의자들의 진격은 있을 수 없다. 보수강성대국 새누리당과 민주당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재분배(세금), 분배(노동소득), 자산, 생산수단 및 토지 모든 분야에서 총체적인 정치적 법률적 투쟁과 게임을 벌여내야 한다.


노동자들의 파업과 해고반대 투쟁에 좌파정당이 연대해야 한다. 그러나 정당의 역할은 파업참가자들과의 직접적인 인적 결합에만 그쳐서는 안된다. 좌파정당은 파업의 문화적, 정치적, 법률적 방패막이를 만들어야 하고, 일상에서 미디어 여론전을 수행해야 한다.


(그림1) 일터 미생 2.jpg

(최근 노동자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웹튠 미생 일부/작가 윤태호: 직장에서 노동자들의 희로애락을 잘 묘사하고 있다. 좌파들에게 중요한 정치적 소재들이다 )


다시 노동과정으로 돌아오자. 왜 노동과정 (일터)의 정치가 중요한가? 그것은 우리가 대안의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이다. 두 번째는 노동정치의 화수분같은 샘솟는 진지를 구축하기 위함이다. 역사적으로 일터에서 노동과정의 정치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20세기 (구)사회주의와 우리가 현재 지향하는 사회주의 (당원들이 말하는 녹색사회주의, 무지개 사회주의, 평등사회노동, 해방당, 사민주의 등)와 무엇이 다른가? 우리가 또다시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주제는 노동자들을 ‘노동 통제의 대상’으로 간주해버리는 것이다. 사회주의 사회에서도 노동자들은 공산당관료나 행정관료의 명령과 지시를 따르는 수동적인 주체로 전락했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20세기 사회주의국가들의 오류가, 지난 12년간 한국 진보정당 좌파정당에서도 그대로 재현되었다. 진보신당의 경우 노동자 당원들 숫자가 민주노동당 시절보다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노동자들은 대부분 당비내는 수동적인 페이퍼 당원이었다. 노동자들이 자기 일터에서 노동과정에 대한 이야기, 자기 일에 대한 자기 표현 (정치,경제,문화적 주장과 표현을 말한다)이 자유롭게 발현되지 못했다.


당의 정책 역시 (재)분배 영역에 해당하는 복지 정책들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복지정책들 당연히 제출해야 한다. 우리의 임무이다. 그러나 그 정책들 역시 (재)분배 영역뿐만 아니라 생산과 노동과정, 직장에서 노동자들이 스스로 말하고 표현한 것에 기초해서 정책을 수립되어야 한다.


유한책임 주식회사가 노동자들의 것이다. 이런 법률적 소유만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된다. 87년 민주노조 운동의 목표는 노동3권 준수였다. 자유대한민국의 헌법과 노동법에 명시된 ‘노동 3권’을 준수하라. 그리고 밑바닥에는 ‘노동자들의 사회적 신분 차별과 무시’에 대한 저항이 있었다. 97년 IMF 긴축통치 이후 한국의 거의 모든 직장과 일터, 공기업, 사기업, 학교, 서비스업 제조업 농업 축산업 할 것없이, 자본의 축적 논리와 이윤추구 괴물이 살벌하게 진격해 들어오고 있다.


일터에서 노동과정에 대한 자기 주인 의식, 자본과 사장 혹은 상관의 명령과 지시만을 따르는 수동적인 객체와 ‘미생’의 지위로서 노동자를 거부해야 한다. 좌파정당의 임무는 이러한 노동자들의 이야기, 일터에서 노동과정에서 노동자들의 희로애락를 정치적으로 승화시키고, 정치 사회 문화 법률적 결정체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슬로건으로 정리


일터가 국회이다.

일터가 구의회이고, 시의회이고 도의회다.

일터가 구청이고 시청이고 도청이다.

일터에서 노동과정에서 노동자들이 스스로 자기 일에 주인이 될 때, 생산수단, 토지, 공공재의 사회화 공동체 소유 역시 실현 가능하다. 평화노동당의 정치적 임무는 일터에서 노동자 스스로 자기 주인이 되지 못하는 게 하는 모든 정치적 법률적 문화적 장벽들과 싸워나가는 것이다.


(그림 2) modern times supervisor 2.jpg

(노동자의 사적 공간을 감시하는 것을 풍자하는 영화 대목: 모던 타임즈 / 찰리 채플린

일터에서 노동자들의 생활을 잘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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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2014. 1. 11.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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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4일 박종철 열사 27주기를 맞아, 좌천당한 윤석열 검사, 권은희 수사과장을 생각하다.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던 경찰 검찰 공무원이 박근혜 독재와 싸운다?


현재는 진행중인 역사이고, 역사는 현재의 시작점이다. 그러나 역사적 사건이 현실에서 그대로 반복되지는 않는다. 박근혜 정통성 부재는 516군사 쿠데타와 닮았고, 박근혜 공약사기 사건은 박정희가 쿠데타 이후 군대로 복귀할 것이라는 거짓말,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이번이 마지막 출마입니다”라고 말해놓고 당선되자 유신헌법을 만들어 영구집권 획책했던 박정희의 거짓말과 닮았다.


그러나 실상을 보면, 박근혜의 친-자본 정책은 관료주의적 자본통제를 했던 아버지 박정희를 서서히 죽일 것이다. 또한 박근혜의 유신독재로의 회귀라는 평행이론이 있지만, 표창원 경찰대 교수, 권은희 수사과장, 윤석열 검사 등이 지난 1년간 보여준 ‘대통령 권력에 대한 저항’과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공정성 실천은 이 암울한 ‘대박’의 얼음장 밑으로 온천수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1987년 1월 14일, 시위하는 학생 노동자 시민들을 잡아 가두던 전두환 파쇼의 용역깡패였던 ‘치안본부’ 대공수사단은 박종철(당시 서울대 언어학과 대학생)군을 물고문해서 죽인 날이다. 경찰과 검찰의 상징적 이미지는 한국 현대사에서 독재와 자본권력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법과 질서’의 이름으로 구속시키고, 손해배상 청구를 통해, 사람 피를 말려 죽게 만드는 고문관의 이미지였다.



( 6월 민주화 운동의 촉매제가 된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 장례식에서 아버지 박정기 옹의 '종철아 잘 가 그래이... 아부지는 아무 할 말이 없대이. 말씀은 많은 이의 눈물을 적시게 했다)

그런데 2012년 12월 대선의 중대선거 범죄 사건를 고발하고 그 진실을 구사한 권은희 수사과장과 윤석열 검사는 기존의 경찰과 검찰의 독재-꼭둑각시가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윤석열 검사는 헌법질서를 파괴하는 중대한 선거범죄자(국정원)를 구속 수사해야 한다고 국감장에서 역설했다. 그런데 그 국감장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은 윤석열 검사가 상명하복 규율을 위반했다고 역공을 취했다. 그리고 그 이후 윤석열 검사는 1개월 중징계를 받았고, 급기야 어제 검찰 인사에서 대구고검이라는 한직으로 좌천되었다. 권은희 수사과장도 사법고시 합격자 출신들은 대부분 무난하게 도달한다는 총경 승진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1987년 1월 14일 한국의 경찰은 민주화운동을 하던 대학생 박종철을 고문 치사시켰다. 그 이후 27년, 한국 경찰과 검찰 공무원 권은희 수사과장, 윤석열 검사 공히 “상부의 위법한 지시는 따르지 않는다”고 말했다. 권은희 수사과장은 “당신이 광주의 경찰이냐”고 욕을 하던 새누리당 의원을 향해 “대한민국의 경찰”이라고 답변하기도 했다.

표창원 교수, 권은희 수사과장, 윤석열 검사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아직 한국 경찰 검찰 수사독립권과 그 제도의 민주화 길은 멀다.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도를 증명해 준 하나의 사건으로 기록될, 권은희 수사과장: 그는 대선 과정에서 국정원의 댓글 사건을 수사하지 말라는 김용판 서울경찰청장의 외압이 있었다는 것을 양심적으로 증언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지 않은가? 민주당 지도부를 비롯해서 진보정당 (심지어 좌파까지도)은 상대적으로 국정원과 국군의 대 시민 온라인 전투 수행의 심각성과 그 위법성에 대해서 둔감하게 대처한 점이.


지금까지 언론에 보도된 대선 중대선거범죄 사건을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사건과 비교해 보자.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다가올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에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발언을 했다.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이 발언을 문제삼아 대통령 탄핵을 했다. 단순히 “지원하겠다”는 미래 의지 표명으로도 탄핵을 당했다. 2012년 대선에서는 국정원과 국군을 비롯한 다른 국가기관들이 명백히 대선에 개입했다는 실제 증거들이 있었다. 만약 현재 야당들이 국회의원 3분의 2 이상 의석을 가지고 있었다면, 박근혜 당선자를 탄핵하거나 당선 무효화를 선언할 수 있다.




(이번 대선 선거 중대 범죄 사건을 알리는데는, 80년대 반독재 민주화 투쟁의 주체들과는 상당히 다르게, 경찰, 검찰, 경찰대학 교수 등 공무원들의 양심적인 업무 수행에서부터 폭발되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사진은 중도보수임을 표방하는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

많은 비교정치학자들이나 법학자들이 지적했듯이 한국이 대통령제가 아니라 유럽정당정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의원내각제를 취하고 있었다면, 현행 의회를 해산하고 선거를 다시 치를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현실과 한국 대통령제도와 국회 제도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현실적으로 취할 수 있는 행동은 무엇인가?



모든 야당들은 의원직을 내던질 각오로 싸워야 한다. 대선 선거 중대범죄 문제를 선차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헌정질서 파괴자들을 엄중 처벌하고 나서 그 이후에 '민생 현안'을 놓고 새누리당과 경쟁해야 한다.


민주당이나 심지어 진보정당에서도 박근혜가 말한 것을 그대로 따라하는 경우도 있다. “국정원이나 국군 사이버 사령부 댓글이 대선 결과에 미친 영향은 지극히 미미하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정신은 결과 지상주의가 아니다.


또 이런 전략전술가들 이야기도 있다. 대선을 다시 할 수는 없다고들 한다, 대선을 해도 새누리당이 이긴다고 한다. 지금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는 부차적인 문제이다. 민주당 후보 문재인이 당선되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에 지금 대선 선거 중대 범죄자 처벌하자는 게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국정원과 국군이 국민을 상대로 심리적 전투를 벌였다는 것이다. 양심과 정치적 자유를 향해 M 16 총알을 난사했다. 민주주의 기본권인 정치의 자유권을 지키자는 것이다. 1961년 516 박정희 군사 쿠데타에서 시작해서 1993년에서야 종식된 군사독재 하에서 수많은 희생과 투쟁을 통해 획득한 그 민주주의 참정권과 자유권리를 지키자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민주당 김한길대표는 ‘대통령 선거 결과 불복’은 아니라고 했다가, 국정원 수사 특검을 2013년 안에 실시하라고 했다가, 갈팡질팡하다가, 결국 새누리당과 '국정원개혁' 누더기 법안 타협해 버리고 말았다. 1월 13일 기자회견에서 특검수용하라고 '공갈포'를 쏠 예정이라고 한다. 많은 이들이 민주당 김한길 대표의 진짜 의도가 뭔지 의심하고 있고, 이번에도 억지춘향처럼 끌려나와 천막 농성 시늉하는 것 아닌가? 불안해 하고 있다.




(법과 질서를 강조하는 보수 우익의 논리 앞에서, 오히려 현행 법대로 수사하다 보니, 국정원 댓글이 선거 중대 범죄였다고 증언하고 있는 윤석열 검사. 그는 국정원 진실 증언으로 1개월 정직 중징계를 당하고, 대구 고검으로 좌천 발령되었다.) 


다른 한편 진보정당이라고 자임하는 정의당, 노동당 등은 대선 중대 선거범죄 사건을 ‘절차적 민주주의’나 ‘87년 6월체제’ 틀에 국한시키고, 일부 민주당 지지 촛불 시민들의 정치적 아우성 정도로 격하시키는 오류를 범했다. 2013년 여름까지 수사가 진행되지도 못한 상황에서 뉴스타파 등 언론보도 정도에서 터져나올 때까지, 국정원 국군의 대 시민 심리전투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윤석열 검사 등이 국감장에서 밝힌 증언은 국정원과 국군 사이버 사령부 등이 2012년 대선에서 ‘헌정 질서’를 파괴하고 대한민국 헌법 자체를 유린했음을 보여주었다.


양심적 시민의 입장에서 13일 김한길 기자회견 하는 날, 민주당 점거라고 하고 싶은 심정이다. 검찰청 경찰성 인사과에 가서 항의 방문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한국정치사에서 검사란, 검찰청이란, 독재 반대, 노동자 해방과 인권을 주장하면 '용공,종북' '빨갱이' '국가보안법' '집시법위반' '손해배상청구'로 시위자들과 노동자들을 구속했던 자들이다. 그런데 그렇게 각인된 검사나 떡검찰청에서, 윤석열 검사같은 '그냥 법대로' 수사하고 보니, 12월 대선은 중대 선거 범죄가 발생했으니, 국정원 직원들 4명을 구속수사해야 한다고, 국정감사장에 나와서, 7시간을 넘게 증언했다.


이런 광경을 지난 40년, 아니 한국 정치사에서 본 적이 있는가? 1월 14일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한 지 27년이 되는 날이다. 1987년 그 날은 치안본부 대공수사단이 박종철을 물고문 전기고문했고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고 하던 날이다. 한국 정치사에서 검찰 검사란, 이렇게 경찰이 고문한 것을 용인하고 명령하던 권력이었지 않은가? 독재의 시녀였던 검사들이 대선선거가 중대범죄이고 선거법위반이라고 전 국민들 앞에 나와서 TV 로 생중계해주고 있지 않은가?




(양심적인 종교인들과 진보정당들이 대선 불법 선거 엄정 처벌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집권 1년도 채 되지 않아 이러한 정권 정통성 논란이 된 것은 유례가 없었다) 


절차적 민주주의건 형식적 민주주의건 민주주의 발전 없이는 노동운동, 좌파정치 성장할 수 없다. 87년 6월 항쟁없이 7월8월 노동자 대투쟁 있을 수 있었겠는가? 노동운동 진보정당 운동없이 민주주의 내용이 심화되고 실질적인 민주화 방향으로 전진할 수 있겠는가? 기계적인 이분법과 도그마화한 선차성 (형식보다 내용, 정치적 민주화보다 경제적 민주화)을 단순도식화하지 말라 ! 절차적 형식적 민주주의 쟁취를 위해서도 수많은 희생과 피가 필요하고 한국사에서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격언성 문장도 있지 않았는가?



박근혜는 특검 수용하지 않는다. 원세훈 김용판 법정 판결 이후에 다시 한번 거짓말과 허언으로 이 상황을 모면하려 할 것이다. 진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전면에 나서서, 현재 모든 야당들 대표는 사퇴할 각오로, 모든 현직 국회의원들은 사퇴할 각오가 없다면, 박근혜의 정통성 시비 싸움에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다.


1987년 1월 14일 전두환 독재의 시녀였던 경찰은 23세의 청년 박종철의 민주화 희구와 그 양심을 물 속에 처박아 질식시켜 죽였다. 27년 이후 그 독재 시녀임을 거부하는 경찰 표창원, 권은희, 검찰 윤석열 검사 등은 공무원의 ‘양심’과 ‘자존심’을 우리들에게 보여줬다.


역사는 단순히 반동으로 복고로 회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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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학규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첫번째 사진설명을 좀 바꿨으면 합니다. 호헌선언이전에 박종철군고문치사사건이 발생했습니다~~

    2014.01.11 15:57 [ ADDR : EDIT/ DEL : REPLY ]
    • 예. 문장이 그렇게 해석될 수도 있겠군요. 전두환 호헌 선언은 아마 제 기억에도 4월이었던 것으로... 원래 문장에서는, 6월 항쟁을 더 촉발시키는 역할을 한 것이 박종철 열사의 죽음이었다. 전두환 호헌 발언 이후에. 이런 의미였습니다.

      2014.01.11 22:01 신고 [ ADDR : EDIT/ DE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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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준 부대표님 “우리의 정권퇴진운동은 복잡한 현대전이다” 읽고


복잡한 ‘현대전’이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밝혀주면 좋은데, 그 문장으로 끝나서 아쉽다. 노동당이 대중적인 정당으로서 각인받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 장석준부대표가 물음은 던졌지만 답은 없다. 장부대표가 현실 진단을 “무조건 친박 3분의 1, 무덤덤한 중간 1/3, 분노한 반박근혜 1/3” 이 진단은 한국의 “영남 인구가 3분의 1”이라는 진단과 동일하다.


노동당은 시대정신이라는 엄청난 큰 화두를 많이 던졌다. 홍세화 대표체제도 그랬고, 이용길 대표체제 역시 마찬가지이다. 2년간 반복되어 이제는 노동당 정치의 특성이 되었다. 정치 정당이라기 보다는 학술단체연합회, 원로 저널리스트 협회, 60년대 <사상계> 잡지사같다. 당원들도 당이 어려우니까 다 진심으로 이해한다. 그러면 이 주 객관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왜 서로 어려우면 지혜를 모으지 않을까? 의문이 든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했듯이, 노동당 전국위의 “박근혜 정권 퇴진운동 결의”는 시기적으로 많이 늦었다. ‘퇴진운동’ 국면에서 노동당의 자기 특성이 뭔지, 지방선거 5개월을 남기고 어떤 ‘정체성’을 만들어 나갈 것인지가 선명하지 않다. 2011년 9월 4일 이후, 진보신당-노동당은 주어진 정치적 기회들을 많이 놓쳤다. 2013년도 마찬가지였다.


대선 이후는 크게 4가지 이슈들이 있었다. 대선 선거 범죄 (국정원 국군 사이버 심리전 수행), 박근혜 공약 불이행, 개성공단 폐쇄-장성택-중/미 센카쿠 일대 충돌사건, 공기업 사유화(통상임금,인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등 투쟁) 등이 그것이다. 2014년이 되었는데도, 이 사건들에 대해서 노동당이 어떻게 개입했고 어떠한 실천적 성과가 나왔는지, 당원들 사이에 공유된 것이 부족하다. 2014년 지방선거의 원동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전국위 ‘퇴진운동 결의문’ 논리적 근거도 오류이다. 결의문 95%는 민중투쟁에 당이 결합한다는 통상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다. 왜 노동당에서 ‘퇴진’까지 내걸었는가는 부족하다. 두괄식으로 말하자면, ‘퇴진운동’ 벌일 수는 있다. 그러나 ‘퇴진’의 근거는 대선선거 범죄로 인한 정권 정당성 합법성 상실이고 그게 더 중요하다.




(한국에서 대자보의 시원: 1980년 광주, 대자보는 1문장으로부터 출발했다. 트럭과 전봇대에 부치던 것에서 출발한다. "전두환을 찢어죽이자 !" 1980년대 '소통 문화'의 출발점이다.)


공기업 사유화, 공약불이행이라고 해서 정권타도구호로 대중운동을 펼치는 것은 주/객관적 능력으로 보아 적절한 전술은 아니다. 당연히 담론전, 여론전을 비롯해서 거리투쟁은 할 수 있지만, ‘정권 교체 regime change'까지 격상시킬 사안은 아니다. ’노동‘ 문제는 최대의 개량투쟁이자 최대의 혁명 투쟁이라는 2중적 측면을 동시에 안고 있다. 후자를 이야기하려면 ’근거‘와 ’주체적 역량‘을 반드시 이야기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자 ’최대 개량‘도 획득하지 못한다.


약간 부언하자면, 만약 대선 국정원,국군 사이버사령부의 ‘심리전’이 없었다면, 굳이 거창하게 ‘박근혜 정권 퇴진’이라고 큰 슬로건을 내걸 이유가 없다. 병렬식으로 공기업 사유화, 대선공약 불이행을 들어 ‘정권 퇴진’시키기는 힘들다. 조합의 파업은 분명한 목표가 있다. 노-사간의 타협에서 우위를 서야 하는 전술이 그래서 중요하다.


반면 박근혜 퇴진이라고 외칠 때는 분명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국정원-국군의 대 시민 심리전과 중대한 선거범죄 때문이다. 이것은 좌파 뿐만 아니라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보수층도 동감할 수 있는 87년 제 6공화국 헌법 정도를 지키는 수준이기 때문에 오히려 광범위한 지지를 받을 수 있다.


수서발 KTX 사유화와 코레일노조 파업은 박근혜 정권을 ‘협상’ 파트너로 상정하고 있는 노조파업이다. 이 노조 파업을 정치적 혁명의 계기로 활용하고 고양시킬 수 있는 좌파는 그런 프로그램을 제시하고 실천하면 된다. 그런데 한국에서 실제로 코레일 파업에 대해서 1) 철도발전 방향 담론 2) 승객/화물 코레일 회사, 그리고 선로(railway)와 역사,역세권을 담당하고 있는 한국철도시설공단(KR)에 대한 좌파적 정책과 담론을 발표하거나, 아니면 실제 거리 투쟁에서 혁명적으로 서울시청을 점거하고 뒤짚어 엎을 수 있는 물리력을 실천한 좌파나 사회주의자가 있었는가? 간단히 말하면 노동조합과 좌파정당의 임무와 정치적 사명을 헷갈리고 ‘조합이 차려준 밥상’ 정당이 숫가락 하나 얹겠다는 형국이었다.


박근혜 정권 퇴진, 사실 거창하다. 그러나 좌파정당은 기회주의적인 민주당 김한길보다 더 정교하게 대선 부정선거국면에 개입 실천해야 했다. 권은희 수사과장 증언 당시 국면만 하더라도 베일이 벗겨지는 순간이었지만, 특히 윤석열 검사의 국정감사장에서 7~8시간 증언과 TV생중계는 한국 정치사에 유례없는 검찰 내부 고발이었고, 현직 공무원이 “대선 중대 범죄=국정원 조직적 범죄”라고 비판하고 나섰다는 점, 이것은 좌파와 민주화 운동, 노동운동 세력을 잡아 가두고 고문하고 조직사건을 터뜨리던 과거 ‘검찰’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윤석열 검사 국감장 증언 이후에, 노동당 성명 담당자에게 문의는 간단히 했지만, 1명이 대변인까지 다 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이라는 사정을 알게 되었다.

주체적 역량이 이러하다면, 장석준부대표가 말한 ‘복잡한 현대전’은 어떻게 펼쳐 나갈 것인가? ‘복잡한 현대전’이라고 형용사 ‘복잡 complex' 라는 단어를 썼으면, 1명이 아니라, 복잡한 ’전술 수행‘ 단위 (task force team) 이 있어야 한다는 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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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2013. 10. 30.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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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메모:


삼성Samsung에게 사회적 책임 기업상을 한겨레에서 줬다는 기사와 그 평을 보고...



사회적 경제,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 협동조합, 죄수의 딜레마를 '협동경제'로 해결하고 말았다는 허수아비 때리기 논리 등이 과거 농협,신협,수협,축협에 대한 역사적 검토없이 진보의 대안인양 하는 판국에, 그리고 '협동조합'하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하실 박정희,박근혜 '근면,자조,협동' 새마을 운동과의 차별성없는 이 판국에,

한겨레신문이나 한겨레 경제연구소만 탓한다고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 


언젠가부터 '전문가'를 자처하는, 마치 청와대 직원인양 무엇이든지 다 해결해버리는 해결사같은 분들이 '무식한 좌파'나 '무지한 진보'의 돌.대.가.리를 후려갈기면서, '집권의지'가 부족하다고 인정사정없이 '욕설' 메니페스토를 발표한 결과가, 이 한겨레 경제 연구소의 작풍이다.



삼성Samsung만 악마화하고 삼성때리기만 한다고 진보나 좌파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삼성이 도대체 어떤 '사회적 책임 경영'을 했는지, 그 논거들은 아래 글에 따르면 참 빈곤하기 짝이 없다.



협동? 협력(cooperation)에 대한 사무엘 보울즈(Samuel Bowles), 허버트 진티스(Herbert Gintis)의 연구 작업들은 1970년대 미국의 교육의 '불평등'을 비판하고 정치경제학적 방법을 가지고 연구하면서 나온 최근 결론들이다. 이것이 무슨 마르크스주의적이네 아니네 하는 것을 논하고자 함이 아니다. 



사무엘 보울즈나 진티스의 작업은 미국의 정치,경제,문화,교육 현실이 그 배후에 있다. 좋은 말들만 수퍼마켓 쇼핑하듯 구매해서, 똥인지 된장인지 구별도 안되는 말들로 프레시안, 경향,한겨레에 성급히 글쓰는 게 진보지식인의 역할은 아니다. 그 피해는 삼성 상주기 이런 사회적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노동자들, 대기업 노동조합원들 공부 안한다고 야단치고, 진보정당원들 무식하다고 끌끌 혀나 차는 게 진정한 꼰대들이 할 일인가? 노조운동 내부 선거하는 것으로 정치를 축소시킨 것 당연히 비판해야 한다. 그러나 당이건 노조건, 한국 현실을 보라. 자식 새끼들 학원에 안 보내면 사회적 왕따당하고, 한달에 150만원 여유돈은 있어야 '대안학교' 보내는 이 현실에서, 잔업하지 않거나 투잡 (두탕)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 현실에서,

인문학 열풍, 누가 그거 불겠는가? 



초, 중, 고, 대학교 다니면서, 억지로 공부하고, 책본 문화에서 자란 한국인들에게, 영어 공부 안하느냐, 왜 지젝 모르느냐? 바우디를 모르느냐? (하버마스 푸코, 라캉은 또 요새 어디갔냐? ) 협동경제학을 모르느냐?



민주노동당-실패 이후 (2004년 이후 지금까지), 당과 지식인 집단은 '우정과 연대'라기 보다는, 한 번 써먹고 마는 일회용 빨대 관계였고, 좌파가 가져야하는 현실과 이론의 긴장, 지적 겸손함은 이미 잃은지 오래다.



누굴 탓하겠냐? 중국 공산당 간부를 탓하겠냐? 일본 아베 총리를 탓하겠냐? 중국, 러시아, 일본, 북한과 비교해서, 세계사에서 아시아 정치에서 지난 30년간 가장 많은 시민들과 노동자들이 정치에 참여 (participatory democracy)해서, 민주주의 내용을 만든 이 South Korea 한국에 대해서, 누굴 탓하겠는가? 대륙의 일부이되, 이 고립된 섬나라에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발생한, 백혈병 환자와 그 죽음을 다룬 영화, 또하나의 가족 포스터) 




한겨레의 이상한 우수기업 선정


2013.10.30  (수) 
한지원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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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한겨레경제연구소가 지난 28일 삼성전자를 한국의 사회책임경영(CSR) 우수기업으로 선정했다. 노조파괴 문건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삼성전자에 우수기업 타이틀을 안겨 준 것이다.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기업 역할의 실제 변화보다는 치부를 가리기 위한 홍보효과 역할로 많이 이용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지난해에는 대규모 정리해고로 문제를 일으킨 한진중공업의 지주회사 한진중공업홀딩스를 한 CSR평가전문기관이 우수기업으로 선정해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강제노동으로 악명을 떨친 아이폰 제조업체 폭스콘은 노동자 집단자살 사건 이후 오히려 CSR 평가점수가 더 높아졌다.



우수기업 선정기준으로 삼은 항목으로 삼성전자를 재평가해 보자. 한겨레경제연구소는 거버넌스·환경·사회 분야 각각에 점수를 매겨 총점으로 순위를 정했다.



거버넌스는 이사회실행구조와 CSR위기관리, 윤리가 평가항목이다. 이사회실행구조 평가의 핵심은 사외이사의 독립적 활동이다. 현재 삼성전자는 사내이사 4명, 사외이사 5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돼 있다. 단순 평가하면 이사회의 독립성이 높다. 물론 세부내역을 보면 그 반대다. 사외이사 5명의 직업을 보면, 삼성전자와 학연·프로젝트로 강하게 얽혀 있는 서울대 공대 교수, 삼성과 바이오 분야 공동진출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차병원그룹 회장, 삼성 비자금 관리건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영업관계로 보면 삼성 그룹의 ‘을’인 신한은행 은행장 등이다. 독립적 활동은커녕 경영진과 공동의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다.



CSR위기관리로 가면 더 황당하다. 삼성전자는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며 이사회에 CSR위원회를 만들었고, 국제전자산업시민연합(EICC) 회원으로 책임을 다하며 총회도 한국에서 개최했다고 자랑한다. 단순 평가시 높은 점수를 받을 것들이다. 여기도 꼼수투성이다. 삼성전자 CSR위원회는 사외이사들만 참여하고 있는 위원회다. 이사회 이사들은 사회적 책임을 위한 기본적 소양은 고사하고 오히려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왔던 사람들이 다수다. 


국제전자산업시민연합은 ‘시민’이라는 이름을 써 마치 시민·사회단체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초국적 전자회사들의 이권단체다. 시민연합의 이사회는 INTEL·AMD·IBM과 같은 미국 전자 기업들로 채워져 있다. 삼성전자는 CSR 관리보다는 CSR 덧칠하기 전문이라고 봐야 적당할 것이다.



기업 윤리에 대해서는 한국 사회에서 삼성에 관해 일정한 합의가 있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떡값·비자금 사건부터 최근에는 삼성테크윈의 군납품 비리, 삼성물산의 금품향응 비리 등 삼성과 관련한 이슈에는 언제나 비리가 따라다녔다. 그런데도 삼성전자는 특별한 윤리 관련 감점을 받지는 않은 것 같다. 삼성전자가 직접 연루된 것이 없다는 게 이유일 게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관점이다. 


삼성전자는 삼성그룹의 사실상 중심이며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에 좋은 것이 삼성그룹에 좋은 일이며, 삼성그룹의 핵심 결정은 삼성전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조정된다. 특히 2011년에 있었던 삼성테크윈 군납비리는 삼성전자가 테크윈의 대주주라는 점에서 직접적으로 관계된 것이기도 하다. 삼성 관련 기업들은 윤리 항목 하나만으로도 사회적 책임과는 거리가 멀다.



사회 분야로 넘어가면 그야말로 삼성전자의 극악한 모습들이 그대로 드러난다. 사회 분야 첫 번째 평가항목은 보건안전이다. 반도체 노동자 집단 백혈병 사태부터 최근 불산누출 사태까지 삼성전자는 행정당국과 사고 당사자에게 압력을 가해 사태를 축소시키려고만 했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을 것이다. 



두 번째 평가항목은 노동조합이다. 최근 공개된 노조파괴전략 문건은 물론이고 에버랜드·삼성전자서비스·삼성에스디아이에서 진행 중인 노조탄압은 익히 알려진 바다. 삼성에스디아이와 삼성전자서비스는 매출액 대부분이 삼성전자를 통해 이뤄지는 사실상 삼성전자 사업부 형태이고, 에버랜드는 삼성의 대주주다. 



세 번째 평가항목인 일자리 창출과 보장 부문 역시 좋은 점수를 줄 수는 없다. 


삼성전자 근속기간은 9.2년으로 대기업 평균(11.7년)보다 훨씬 짧다. 내부의 엄청난 노동강도와 경쟁 때문에 종사자 다수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쫓겨나기 때문이다. 고용 증가율 역시 매출액이나 순이익 증가율에 비하면 3분의 1도 되지 않는다. 



네 번째 평가항목인 공급망 관리(협력사 상생) 역시 마찬가지다. 


삼성전자는 협력사 상생을 위해 상생펀, 글로벌 강소기업 만들기 등을 한다고 하지만 삼성전자와 거래하는 부품사에 가 보면 최악의 노동조건이 지속되고 있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얼마 전 부품사 노동자가 납품기한을 맞추기 위해 잔업·특근을 하다 과로사한 것이 대표적 예다. 


삼성전자의 부품사 노동자들 대부분은 물량이 많은 때는 살인적 잔업을, 없을 때는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휴업을 강요당한다. 삼성전자가 CSR보고서를 통해 알리는 협력사 상생 실적은 현실과 많이 다르다.



한겨레경제연구소는 최근 ‘사회’보다는 ‘기업’에 중심을 두고 사업을 진행하는 것 같다.


 삼성전자의 입장에서 보면 삼성전자가 책임졌다는 성과가 보일 것이고, 시민사회 입장에서 보면 삼성전자가 파괴하는 권리들이 함께 보일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번 삼성전자 우수기업 선정 사건은 평가의 객관성이 문제가 아니라 사회보다 기업을 우위에 둔 평가관점이 문제인 것 같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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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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