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포스트 케인지안 정책인 '임금주도 성장' 이나 '소득주도 성장'을 채택한 이후에, 한국에서도 자본주의적 소유권 문제를 두고 법정 공방이 될 것으로 예측했다. 왜냐하면 리버럴 문재인 정부가 당선 이후 루스벨트 '뉴딜정책'을 실시하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1932년부터 1944년까지 루스벨트는 무려 4번에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기존 자유방임적 자본주의 체제와 사적 소유권을 옹호했던 미국 경제체제에 개혁을 가했다. 당시 미국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연방 대법원 판사 대다수가 뉴딜정책이 자본주의 질서와 사적 소유권을 침해한다고 비난했다.
나 역시 한국에서도 문재인 정부가 이런 법적 공방에 휩싸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내 예측은 빗나갔다. 문재인 정부는 고용창출이면 삼성 이재용도 용서해줄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물론 현재 한국은 1932년 대공황 이후 미국이 아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한국형 뉴딜 정책을 과감하게 실천하겠다고 공약했다.
루즈벨트의 뉴딜 정책은 다음과 같은 4가지 기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번째 소득과 고용과 관련된 사회안전망 구축, 두번째는 최저 임금법 제정, 세번째는 정부 재정 정책(큰 정부)을 통한 수요 촉진, 네번째는 노동조합의 법적 보호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재정 정책도 '긴축' 노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고, 오히려 초과세수를 낳았다. 그래서 정부 채무를 빨리 갚았다고 자랑하기도 하는 등, 정책의 일관성을 포기했다. 노동소득 격차를 실질적으로 줄여나가는 최저임금 인상안을 마련하지도 못하고, 보수언론과 자유한국당의 최저임금 인상의 집중포화를 맞고, 뒤로 퇴각해버렸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 정책은 사회복지체제의 현대화이고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망가진 복지망의 확충노선이다. 이를 위해서는 자본가, 은행가, 부동산 빌딩주인들이 그들 소유권을 어느정도 양보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본소득성장율과 노동소득성장율 격차는 커질 수 밖에 없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IMF 가 처방한 강력하고 혹독한 '긴축 독재 austerity dictatorship' 이후, 비대하게 성장한 대기업, 은행들, 부동산 소유자들이 기존 부를 사회에 내놓고, 현재 노동소득을 증가시키고 사회복지망을 확충시킬 때만이 문재인의 소득주도성장이 실현될 수 있다.
1930년~40년대 미국 뉴딜정책 당시 가장 완고하게 저항했던 대법원의 보수적인 판사들은 2018년 한국에서는 조중동 보수언론과 자유한국당에 해당한다. 그러나 문재인은 루스벨트처럼 강력하게 뉴딜정책을 밀어부치지 못하고 있다. 미국 연방 판사들과 달리, 개혁적인 판사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는 한국 상황을 고려했을 때, 문재인 정부 개혁 정책은 너무 더뎠고, 호기를 많이 놓쳤다.
만약에 한국의 진보정당이 집권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잠시 생각해보다. 문재인 소득주도 성장에 대한 법적 공방을 예상했지만 내 예상은 약간 빗나갔고, "최저임금 인상은 나라를 망친다. 최저임금 인상은 내 입시를 망친다. 최저인상은 내 가게를 망친다. 최저임금 인상은 내 소개팅을 망친다. 최저임금 인상은 내 사업을 망친다"는 최저임금 원죄론만 귀신처럼 떠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망한 나라는 전 지구상에 1 곳도 없음에도.
II. 사법부와 행정부 권력간의 긴장과 갈등 사례 -
뉴딜 정책을 실행한 루스벨트에 대한 미국 판사들의 태도는 어떠했을까?
1936년 대선에서 압승을 거둔 루스벨트는 집권 2기에서 뉴딜정책을 보다 본격적으로 확장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뉴딜정책이 자본주의와 소유권을 침해한다고 제동을 거는 연방판사들이 많았기 때문에, 루스벨트는 대법원을 수술하려고 했다. 그 방법은 9명 대법원 판사 수자를 15명까지 늘리는 것이었다. 코트-패킹 플랜을 제안했다. Court-packing Plan (Judicial Procedures Reform Bill of 1937)
보수적인 왈터 리프먼 판사와 러니드 핸드는 뉴딜정책과 루스벨트에 대한 태도를 서로 달리했다. 결과적으로 루스벨트 사법부 개혁안은 좌절되었지만, 노동조합과 노동자 농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와그너 법 the Wagner Act'은 의회에서 통과되었고, 대법원 판사들 휴즈와 로버츠 (Hughes and Roberts) 도 1936년 대선에서 루스벨트 승리 이후 태도를 바꿔 뉴딜 정책을 지지했다.
1. '조용하고 독립적인' 노선을 걸었던 미국 항소법원 판사로 유명한 러니드 핸드는 1932년 대선에서는 민주당 루즈벨트를 찍지 않고, 공화당 후보였던 후버에 투표했다. 러니드 핸드는 루즈벨트 (FDR) 성격이 너무 감정적이고 비판적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고 자세히 적고 있다.
그러나 1936년 대선에서는 러니드 핸드가 공화당 후보 앨프 랜던 (Alf Landon)을 찍지 않고, 루즈벨트에 투표했다. 그 이유는 민주당과 루즈벨트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가 아니라, 공화당과 랜던 후보가 대통령 자질이 부족하다고 평가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러니드 핸드의 정치적 전향에 영향을 끼친 것은 하버드 대학 철학자 랄프 바튼 페리 (Ralph Barton Perry) 때문이다. 페리는 "자본주의적 민주적 제도들의 결점들을 바로잡고 구제할 수 있는 것"은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들이라고 주장했다.
러니드 핸드 판사는 이러한 페리의 주장에 동조했다. 그러나 러니드 핸드는 이러한 말을 덧붙였다 "내가 루스벨트에 투표하는 것은 그를 공화당 후보다 더 좋아해서가 아니라, 앨프 랜던과 공화당을 그보다 덜 좋아해서다"
루즈벨트는 1932년에는 42개 주에서 승리하고 6개 주에서 패했는데, 1936년 대선에서는 46개 주에서 승리하고, 2개 주에서만 패배했다. 투표율도 60.8% 대 36.5%로 6:4 비율로 승리했다. 4 선 가운데 1936년 대선에서 가장 많은 대중 투표를 획득했다.
2. 왈터 리프먼 (Walter Lippmann) 판사는 뉴딜 정책을 밀고 나가기 위해 대법원 판사 숫자를 15명으로 늘리려고 한 루스벨트를 "권력에 술취해서 무자비한 쿠데타를 감행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특히1937년 2월 루스벨트가 미연방 대법원 판사 숫자를 9명에서 15명으로 증원하자는 법안을 낸 후, 보수적인 법관들과 심지어 민주당 내부에서도 반대했다.
루스벨트가 제시한 근거는 "미국 헌법을 법원으로부터 구원하자, 그리고 법원을 법원 자체로부터 구원하자" 것이었다. 두번째는 미국 사회 경제적 문제에 대한 결정권을 보다 더 젊은 미국시민들에게 부여하자고 루스벨트는 주장했다.
연방법원 판사 9명 중 6명이 70세 이상이었고, 그 6명 중 4명은 루스벨트 뉴딜정책에 대해 극렬히 반대했다. (버틀러 Butler, 맥레이놀즈McReynolds, 수더랜드 Sutherland, and 반 데밴터 Van Devanter 판사)
루스벨트는 미국 보통 시민들의 삶을 잘 이해할 수 있는 능력있는 젊은 층을 대변할 수 있는 판사들이 미연방 대법원 판사로 기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뉴딜정책을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권 침해라고 비난하는 판사들 비중을 줄이기 위함이었다.
신중하고 균형을 강조했던 러니드 핸드 판사는 어떠한 태도였는가?
루스벨트 연방대법원 개혁안은 부적절했다. 오히려 법원이 통제불가능한 상태로 몰고 가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대법원의 통치는 사법권의 왜곡이었다. 사법부가 권력을 남용했기 때문에, 사법부에 제동을 걸기 위해서 행정부 (루스벨트)가 왜곡된 방식을 동원하는 것이라는 게 러니드 핸드 판사의 생각이었다.
3. 뉴딜 정책 지지자였던 펠릭스 프랑크푸르터 Felix Frankfurter 와 비교
프랑크푸르터 판사는 루스벨트 뉴딜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했고, 대법원 판사 숫자를 늘리자는 사법부 개혁안을 찬성했다.
이에 비해 러니드 핸드 판사는 신중한 균형론자 입장을 취했다. 러니드 핸드가 왠만해서는 별로 흥분하거나 화를 내지 않는 '균형론자' 노선을 걸었던 데에는 1933년 농업조정법 (the Agricultural Adjustment Act of 1933) 논란과도 관련이 있다.
대법원은 루스벨트가 농업 축산업 종사자들에게 '과잉 생산'을 막고 소득을 올려주기 위해서 '정부 보조금'을 준 것에 반대했다. 그 이유는 그 재원을 농업 축산 가공업 회사로부터 '조세'인데, 이는 미국 헌법에 위배된다는 논리였다. 자본주의적 소유권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인 집단이 미 연방 대법원이었다.
루스벨트는 지금 농업 축산업 종사자들이 생산은 많이 하고, 시장에서 가격은 폭락하기 때문에 가장 피해를 많이 당한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서 정부가 나서서 그들 생산물 (소비용 가축부터 밀가루 등 )을 구매했다.
이러한 농업 축산업 보조정책에 반대한 대법원에 대해 루스벨트는 혹독하게 비난했다.
러니드 핸드 판사 역시 대법원의 농업조정법에 대한 반대는 잘못된 결정이라고 봤다.
하지만 그는 뉴딜정책에 대한 강력한 옹호자였던 펠릭스 프랑크푸르터에 완전히 동조하지는 않았다.
(1940년, 좌측 루스벨트, 가운데 프랑크 녹스, 오른쪽 펠릭스 프랑크푸르터 대법원장)
Supreme Court Justice Felix Frankfurter administers oath of office to Secretary of Navy, Col. Frank Knox. As World War 2 began in Europe, President Franklin Roosevelt organized a bi-partisan 'War Cabinet' including Republicans such as Knox in critical posts. July 11, 1940.
제랄드 군써가 쓴 러니드 핸드에 대한 책 "러니드 핸드 : 그 생애와 판사 Learned Hand: the Man and the Judg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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