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민주당2019. 9. 11.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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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논란은 마치 기본적인 논리학 연습을 하는 것 같다. 

[교훈] 임기응변, 언발에 오줌누기식이 아니라, 장기적인 대안, 철저한 준비과정이 집권의 필수덕목이다. 차세대 주인공들에게 주는 살아있는 정치 교과서이다.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었다. 조국 기자간담회에서 검찰은 검찰 일을, 검찰 상급부서인 법무부는 법무부 일만 하는 게 해법이라고 한 점이. 조국 말이 조국을 또 잡고 있다. 국민들이 보기에는, 이승만 정권부터 현 정부까지 듣도보도 못한 엇박자, 문재인 대통령 리더십 붕괴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아니면 스네이크 박처럼 이후락과 김형욱을 경쟁시키고, 육사 5기 김재춘과 육사 8기 김종필을 경쟁시키고, 8기 동기 김형욱과 김종필을 경쟁시키는 이이제이 정책인가?


문재인-조국 양 지도자 모두 '검찰은 검찰 일을, 법무부는 법무부 일을' 하면 된다고 말했지만, 현실은 법무부와 검찰의 알력이 생중계되고 있다. 그것도 24시간 안에. 시청자는 혼란스럽다. 


법무부 고위층이 '윤석열 없는 특별수사팀'을 제안했다가, 윤총장이 거절했다는 보도가, 문재인 임명 발표 이후 바로 나왔다. 이런 점을 보면 문재인 대통령은 스네이크 박 전략 모형이 아니라, 관제탑이 없는 중구난방 이착륙 비행기장이다. 

조국 장관은 '가족 수사'에는 관여하지 않겠다고 하고, 법무부 제안자는 '조국 장관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 하고, 문재인 대통령은 검찰은 검찰 역할을, 법무부는 법무부 일을 각각 수행하면 된다고 한다.

 


동양대 최성해 가짜 학력, 나경원 아들 특혜시비, 장제원 아들 범죄는 부차적인 주제다. 지금 핵심은 문재인 리더십의 실추과정에 있다. 물론 자유한국당의 푸어 퍼포먼스 듀오 오누이 황-나의 자살골들이 앞으로 수없이 터져줄 것이기에, 지지율 걱정은 안해도 될 수도 있다. 게다가 국회선진화법 위반으로 자한당 국회의원들이 윤석열 검찰총장의 칼을 기다리고 있기도 한다. 아니러니하다. 


정치 검찰, 검찰의 정치화, 정치의 사법화라는 단어보다, 문재인 리더십의 실추라는 말이 현재 국면을 더 잘 설명한다. 





출처: 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878555&pDate=20190910


법무부 고위 간부, 검찰에 '윤석열 배제한 수사팀' 제안


[JTBC] 입력 2019-09-10 20:08 -


[앵커]


조국 법무장관이 취임하면서 검찰이 현직 장관과 관련된 수사를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인가에 관심이 모아진 바 있습니다. JTBC 취재결과 조국 장관 취임식이 있었던 어제(9일) 법무부 고위 간부들이 검찰 고위 간부들을 접촉해서 윤석열 검찰총장을 배제한 특별수사팀을 구성하자는 제안을 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한창 수사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검찰총장을 수사 지휘 라인에서 빼자고 제안한 것은 이례적입니다. 검찰은 이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서복현 기자입니다.


[기자]


법무부가 검찰에 제안한 것은 조국 법무부 장관과 관련한 수사 지휘 라인의 변화였습니다.


윤석열 검찰총장을 조 장관 관련 수사 지휘에서 배제하는 별도의 특별수사팀을 구성하자는 것입니다.


정부 관계자는 법무부 고위 간부들이 각 직급에 맞는 검찰 고위 간부들을 차례로 접촉해 총장을 배제하는 특별수사팀 구성을 제안했지만 검찰이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법무부는 문무일 검찰총장 시절의 강원랜드 특별수사단 방식을 추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다만 당시는 문 총장이 직접 별도의 수사 지휘도, 구체적인 수사 상황을 보고받지도 않겠다고 한 바 있습니다.


이번 법무부의 제안은 어제 조국 법무부 장관의 취임식 당일에 이뤄졌습니다.


검찰총장이 지휘 중인 사건을 놓고 법무부가 총장이 배제된 수사팀을 따로 꾸리자는 의견을 낸 것은 이례적입니다.


검찰에 이러한 제안을 했던 법무부 간부 중 1명은 평상시 여러 고민을 하면서 해왔던 말을 얼핏 한 것이라며 공식적으로 한 얘기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조국 법무부 장관은 이런 것을 지시한 적도 없고 전혀 모른다고 했습니다.










현직 법무장관 가족 수사…'총장 배제' 제안-거부 왜?




[JTBC] 입력 2019-09-10 20:19 수정 2019-09-10 23:14

JTBC, 3년 연속 시청자평가지수(KI) 1위 방송사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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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어떤 맥락에서 이런 제안이 나온 것인지 취재 기자와 한걸음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


서복현 기자가 옆에 나와 있습니다. 일단 어제(9일) 제안이 있었다는 얘기죠? 구체적으로 시점이라든가 이런 것은 어떻게 됩니까?


[기자]


어제 오후에 조국 법무부 장관의 취임식을 전후해서 취임식이 오후 4시 반에 있었는데요.


이때를 전후해서 법무부 간부들이 이런 제안을 검찰에 한 것으로 취재가 됐습니다.


[앵커]


법무부 간부가 제안을 했다. 그 법무부 간부가 누구인지는 지금 취재원 때문에 얘기하기는 좀 어려울 것 같고. 어느 정도 위치에서 제안이 간 것입니까?


[기자]


저희가 추가 취재를 해서 검찰을 접촉한 간부들을 확인을 좀 해 봤습니다.


그런데 법무부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봤을 때 상당한 무게감이 있습니다.


특히 1명이 아니라 2명의 고위 간부가 각각 검찰을 접촉한 것으로 확인이 됐습니다.


역시 다른 고위 간부도 업무를 보면 법무부에서 큰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앵커]


두 사람이라는 얘기잖아요. 두 사람이 각각 다른 검찰 관계자를 만났나요, 한 사람을 만났나요? 


[기자]


일단 각각 만난 것으로 취재가 됐습니다.


[앵커]


그런가요? 


[기자]


각각 접촉한 것으로 취재가 됐습니다.


[앵커]


강원랜드 특별수사팀을 예로 들었다고 했는데 그 정도면 얘기는 구체적으로 나온 것 같습니다. 그러면 기존에도 이런 사례가 있기는 있었다는 얘기인가요? 


[기자]


네, 과거에도 있었지만 이번 경우와는 좀 차이가 큽니다.


강원랜드의 경우 문무일 검찰총장이 직접 판단을 해서 수사를 지휘하지 않고 최종 보고만 받는 특별수사팀을 꾸렸습니다.


같은 방식인 특임검사 역시 과거를 보면 주로 검찰총장이 판단을 해서 지시하는 형태로 진행이 돼 왔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윤석열 검찰총장이 한창 수사를 지휘하고 있는 상황에서 총장을 배제하는 수사팀을 그것도 상급 기관인 법무부가 제안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습니다.


[앵커]


법무부는 지금 수사팀 말고 왜 별도의 수사팀을, 그러니까 특별수사팀이라는 이런 명칭이 있으니까 그것을 제안을 했는가. 사실 그게 궁금하기는 합니다. 


[기자]


일단 JTBC 취재진이 법무부의 입장을 좀 들어봤습니다, 왜 그랬는지요. 


그랬더니 이 특별수사팀 검토는 이미 지난주부터 해 왔다고 했습니다.


[앵커]


임명되기 전부터.


[기자] 


그러니까 조국 장관이 취임되기 전 그러니까 박상기 장관 때부터 해 왔다는 것인데요. 


이유는 조국 장관이 임명될 경우 법무부와 검찰의 충돌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법무장관이든 검찰총장이든 일단 수사에서 빠지는 게 낫지 않겠냐는 차원이었다고 합니다. 





[앵커]


다시 해석을 하자면 조국 법무장관은 자신이 이 수사에 대해서 보고받지 않겠다, 그러니까 거기서 빠져 있겠다고 얘기했기 때문에 자칫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이 맞서는 모양새가 되지 않도록 그러면 검찰총장도 좀 빠져달라 이런 제안이었던 모양이죠?


[기자]


그렇습니다. 하지만 가족이 이미 기소된 법무부 장관과 또 그 수사를 책임지고 있는 검찰총장을 같은 선에서 놓고 비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다른 수사도 아닌 현직 법무부 장관 관련된 수사이기 때문인데요.


그런 면에서 법무부가 총장을 수사 지휘 라인에서 배제할 걸 제안한 건 수사의 동력을 약화시키려 한 것이다 이런 의심을 충분히 받을 수가 있습니다.


또 윤석열 검찰총장이 보름 가까이 지휘를 하면서 조 장관의 부인까지 기소한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앵커]


검찰이 외압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이런 얘기인가요?


[기자]


우선 어제 조국 장관의 취임사의 한 대목을 직접 들어보시죠.


[조국/법무부 장관 (어제) : 법무부의 검찰에 대한 적절한 인사권 행사, 검찰개혁의 법제화, 국민 인권보호를 위한 수사 통제 등 검찰에 대한 법무부의 감독 기능을 실질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법무부는 검사의 인사권. 그러니까 인사 발령을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취임사가 있던 당일에 법무부의 제안이 있었기 때문에 검찰로서는 받아들이는 무게감이 훨씬 더 클 수가 있습니다.


[앵커]


상식적으로만 그냥 보자면 조국 장관이 누차 자신과 관련된 수사에 대해서는 보고를 받지 않겠다. 그러니까 참견하지 않겠다. 다시 말하면 압박을 넣지 않겠다라는 얘기잖아요, 그 얘기가. 그러면 공개적으로 몇 차례 얘기를 했는데 취임 첫날에 그런 지시를 과연 했을 것이냐? 그럴 것 같지는 않은데. 법무부는 뭐라고 얘기를 합니까?


[기자]


일단 말씀하신 대로 어제 저녁 조국 장관이 첫 간부회의를 열었는데요.


그때 지시사항을 공개된 내용인데 이 내용을 한번 보겠습니다.


보면 법무부 장관은 본인이나 가족 관련 사건의 수사나 공판 상황에 대해서는 검찰로부터 보고받거나 검찰총장을 지휘하지 않을 것.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또 해당 법무부 간부들은 조 장관의 특별수사팀 지시 같은 건 없었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요.


하지만 법무부 고위 간부가 나섰다는 것만으로도 그 적절성을 놓고 논란이 될 수 있습니다.


[앵커]


설사 법무부의 그 고위 간부들이 백번 양보해서 선의로 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적절한 것은 아니었다? 


[기자]


검찰의 외압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대목이 있는 부분입니다. 


[앵커]


이런 상황에서는? 


[기자]


네. 


[앵커]


알았습니다. 서복현 기자였습니다. 수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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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history)2018. 11. 14.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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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는 516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후, 군대로 복귀한다고 국민들에게 발표했다. 그러나 그의 실제 행보는 1963년 대통령 선거 출마에 맞춰져 있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박정희는 1962년 정초에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발표하고, 울산공업 쎈터 시공식을 했다.


연설 제목이 "빈곤에 허덕이는 겨레 여러분"이었다.


울산공업쎈터는 민족의 빈부의 판가름이 날 것이라며, 서독 라인강의 기적인 '루르의 기적'을 초월해 신라의 영성을 재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516 군사쿠데타를 한 목적은 정권야욕이 아니라 빈곤을 추방하고, 번영과 복지를 마련하기 위해 필요한 경제재건을 위함이라고 밝혔다. 울산공업도시 건설은 516세력의 상징적 웅도이며, 국민은 이를 위해 각성,분발,협동하라고 주장했다. 


울산공업도시에는 석유화학, 제삼비료, 종합체철, 화력발전소 등이 건설된다. 자본금은 당시 512억부터 출발했고, 외자도 빌려왔다. 단기간 고용은 10만명이고, 장기적으로 50만명을 고용한다고 했다. 노동자들이 살 아파트 9기, 신규 단독주택 1만 8천호도 건설한다고 발표했다. 


울산공업쎈터 시공은 1964년에 시작되어 1967년에 완공하기로 했는데, 흥미로운 것은 비료공장 사장이 이병철이라는 점이다.



1962년 2월 4일자 동아일보




1962년 2월 2일자 동아일보




이병철 (비료공장) 맡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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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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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광주형일자리 신설은 울산경제 망하는 길"
    이기암 기자 승인 2018.11.14 20:18 -

    현대차지부, 송철호 울산시장에 "광주형 일자리" 반대입장 전달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민주노총 울산본부는 14일 울산시청 정문 앞에서 "광주형 일자리"를 반대하는 울산노동자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민주노총 울산본부는 14일 울산시청 정문 앞에서 "광주형 일자리"를 반대하는 울산노동자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민주노총 울산본부와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는 14일 울산시청 정문 앞에서 “광주형일자리 신설은 울산경제 망하는 길”이라며 울산경제와 자동차 산업을 살리기 위한 울산노동자 결의대회를 열었다.

    금속노조 현대차지부는 “전 세계 자동차산업은 미래차로 달려가고 있으며, 현대자동차 해외공장생산이 70%를 넘어서면서 국내공장 생산과 수출은 계속 감소하고 있다”며 “2014년 한전부지 고가매입 사태이후 현대차 주가는 반 토막이 났고, 차량판매 부진으로 영업이익률은 하락해 경영위기가 엄습해 오고 있다”고 전했다.

    현대차지부는 “현대차 경영악화는 미국, 중국 등 해외공장의 판매부진과 실적하락, 전기차 등 미래 차와 신기술에 대한 연구개발투자 부진으로 경쟁력을 상실한 것이 원인이며, 지금은 경영악화의 원인을 정확하게 진단하여 대책을 세우고, 미래 경쟁력을 위해 연구개발투자에 집중해야 한다”며 현대차에 송철호 울산시장이 강력한 조언을 해줄 것을 부탁했다.

    또 “광주형 일자리 신설로 울산지역 노동자들의 고용은 악화되고 울산경제가 몰락할 것이며 국내 경차시장은 14만대인데 광주지역 10만대 공장 신설은 울산, 창원, 평택, 서산 등 다른 지역 자동차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국내차 생산대수 하락으로 부도위기에 몰려 있는 2,3차 부품 사들은 공장폐쇄의 길로 갈 수 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대차지부는 “지난 11월 1일 제135차 임시대의원대회에서 ‘광주형 일자리 저지투쟁’을 결의했으며 만약 현대차가 정치권의 광주전남지역 패권차지를 위한 포플리즘을 위해 3세경영 세습과 맞바꾸는 잘못된 선택을 한다면 제2의 한전부지 사태로 규정해 자동차산업 동반 몰락 방지, 울산경제 몰락을 막기 위해 즉각 총파업에 나설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현대차지부는 “민주노총 울산본부와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금속노조 울산지부를 비롯한 울산노동계는 광주시와 울산시의 갈등을 원하는 것이 아니며, 울산경제와 자동차산업을 살리기 위한 상식이 통하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며 “송철호시장님이 앞장서 광주형일자리 10만대 공장 건설추진을 막아줄 것”을 당부했다.

    한편, 민주노총과 현대차지부는 ‘광주형 일자리 투자반대’ 항의서한을 송철호 시장에게 전달하려 했으나 송 시장의 부재로 비서실장에게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기암 기자

    2018.11.15 10:4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한국정치/민주당2017. 2. 8.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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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의 통일성과 일관성을 생각하다


- 감동하다가 식어버린 이유


고민정은 스승 신영복을 말했고, 전인범 특전사 사령관은 “문재인은 빨갱이가 아니죠? 전 확신합니다”라고 했다. 논리적 모순을 찾아야 하는 내 직업병일 수도 있겠지만, 뭔가 앞뒤가 맞지 않아 보였다.  신영복을 스승이라고 한 고민정과 전인범의 말은 어울리지 않았다. 민주당이야 이념적 흐름들이 다양하고, 또 한 정당 내부에서 서로 긴장하고 경쟁하거나 상충할 수도 있는 정치적 노선들도 공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좋은 신호는 결코 아니다.


사실 고민정의 문재인 캠프 합류 뉴스보다는 그 남편과의 사연이 더 크게 보였다. 눈시울이 뜨거웠다. 이름도 어려운 무슨 난치병을 가진 시인 남편에 대해 고민정은 ‘존경할 만한 사람’이라고 했다. 존중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 시대에, 또 사랑하는 연인들 사이에도 ‘존경’이라는 말이 많이 줄어든 이 세태와 대조적으로, 고민정의 ‘존경’ 언급은 품격있는 고전적인 클래스였다. 


이런 뉴스 때문에 고민정이 읽는 ‘문재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듣게 되었다. 고민정은 문재인과의 첫 만남을 소개했다. 고 신영복 선생의 영결식장이었다. 고민정은 신영복을 자기 스승이라고 언급했다. 신영복은 1968년 통혁당 사건으로 "빨갱이"로 몰려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를 가둔 건 516 군사쿠데타 이후에도 김종필 박정희의 좌익전력도 의심하고 세탁하려고 했을 정도로  반공사상이 투철했던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이었다. 신영복 선생은 “빨갱이” 죄목으로 20년간 감옥살이를 해야했다.   


고민정과 많은 이들이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 사색>이라는 책에 감명을 받는 이유는 꼭 신영복 저자가 정치적으로 좌파여서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신영복 선생은 1988년 출소 이후 줄곧 ‘연대’ 정신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는 우파보다는 좌파라는 일관성 노선을 걸었다고 볼 수 있다. 신영복 선생이 애초 자기 전문 분야인 경제학보다는 노자 장자 사상과 유가 사상을 통해 한국 사람들의 삶을 설명하려 했다. 기존 좌우 프레임과는 다르다고 볼 수 있다.하지만  그 일관된 사상적 기초는 “함께 맞는 비 (연대)” 정신이었다. 


그런데 전인범 특전 사령관은 무대 위에 올라오자 마자, “문재인이 빨갱이가 아니라는 것을 확신한다. 한미 동맹을 강화시켜 국민의 안전을 지켜내겠다”고 했다.


도대체 소련과 미국의 냉전 종식은 1989년 몰타 회담에서 그 시작점을 알렸다. 28년이 지났다. 소련은 러시아로, 중국은 미국을 대체할만큼 강대국으로 떠올랐다. 이런 변화된 국제정치 힘관계에서 한국의 안보 개념은 재정립될 필요가 있다.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자립적이고 실용적인 외교 노선을 정립해야 한다. 미국의 무기 수출국가가 아니라 한반도를 평화구역으로 만들 궁리와 실천을 해야 한다. 그게 진정한 안보 아닌가? 


보수 유권자를 향해 “문재인은 빨갱이가 아니다”를 외치는 게 이러한 변화된 국제질서를 반영한 정치적으로 유의미한 발언인가? 정치적 후퇴이고 퇴행이다. 


민주당 문재인의 영입인사가 어디 전인범, 고민정 이 두 사람뿐이겠는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우연찮게 이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이 한 무대 위에 올라가 있는 것을 보고, 민주당이 너무 급해 보인다. 보수적인 유권자들 때문인가? 


고민정과 난치병 시인 조기영과 감동적인 아름다운 사연에 잠시 눈시울이 뜨거워지다가, 전인범 특전사령관의 발언을 듣고 나서, 갑자기 그 뜨거움이 식어버렸다.



사진 출처 동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39biUMaFJmU&t=3946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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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이 입을 열었다. 인터뷰한 시사저널을 고발한다고 했지만, 많은 진실이 담겨져 있다. 몇 가지 인상적인 주제들을 써본다. 


1. 김종필은 516 혁명이라고 썼다. 그러나 516은 군사 쿠데타이다. 


(참고: 김종필,김형욱은 육사 8기이고, 김재춘 등은 육사 5기생들이다. 5기생들이 당시 중령급이어서 부하들을 거느리고 서울 주요 거점을 장악하고, 8기생들은 실무를 담당했다. )

참고 : 박정희와 육사 5기 김재춘, 8기생들 김종필과 김형욱의 긴장과 갈등에 대해서

클릭 -> http://bit.ly/2hDmT96


2. 박정희 성격 묘사, 김종필은 박정희가 약한 사람이라고 했다. 약했기 때문에 의심이 많고, 의심이 많아서 부하들을 잘 믿지 못했다고 말했다. 맞는 말로 들린다. 박정희의 정치 행태를 추적해보면 그렇다.


3. 육영수 여사는 인색하고 자비심이 부족한 사람이었다고 김종필은 폭로했다. 자기 어린 딸이 굶고 있어도 모른 척 하고 밥도 주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육영수 여사 아버지는 자기 동네에서 '육X지 '라고 불리웠다. 그만큼 욕심이 많다는 것이다. 육영수도 아버지 닮았다고 회고했다. 육영수 이미지는 언론에서 조작한 것이라고 김종필은 말했다.


4. 박근혜는 천상천하 유아독존 성격이고, 다른 사람들은 다 자기 아랫 사람으로 대한다고 했다. 고집이 워낙 세서 아무도 그 고집을 꺾지 못한다고 회고했다.


5. 지금 최순실 박근혜 게이트에서도 박근혜는 절대로 자발적으로 대통령직을 내려놓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종필 자신을 찾아오지 않는 것을 봐도, 얼마나 박근혜가 꽉 막힌 사람인가 알 수 있다고 토로했다. 


6. 최태민과 박근혜 사이 아이가 있다고 말한 적은 없다고 한다. 와전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박근혜가 최태민 말만 믿고 그대로 따라해서 문제가 많았고, 둘이 방에 들어가 하루 종일 뭐하는 지 알 수도 없다고 했다. 


7. 3선 개헌은 김종필이 처음에는 자기도 반대했으나, 박정희가 "임자만 살려고 하나? " 그렇게 말해서, 삼선개헌 운동을 하고 다녔다고 고백했다. (*참고 이만섭 전 의장은 삼선 개헌에 당시 반대하고 나서 박정희로부터 축출당하고 공천권을 뺏겼다)


8. 안철수가 김종필에게 문안을 자주 간다. 안철수는 착하고 순수하다. 

이에 반해 이정현 현 새누리당 대표는 형편없다. (박근혜 종복이라서 김종필을 알현하지 않는 듯 하다) 


9. 문재인은 '문제적 인간' 문제아라고 규정했다. 


10. 반기문은 충청도라서 자기가 지지한다고 했다. 젊었을 적에는 급진적이었으나, 반기문이 그건 '어린시절 이야기'라고 넘겼다고 말했다. (* 믿어지지 않지만, 반기문이 청년시절 급진적이었다고 하니, 무슨 급진성인지 알 수는 없다.)



출처: http://v.media.daum.net/v/20161114130305432


(2016년 김종필 ) 



(2001년 김종필과 박근혜, 아직도 서먹서먹한 사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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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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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탕아

    김형욱도 육사 8기임
    제대로 알고 쓰시길.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2017.01.01 22:35 [ ADDR : EDIT/ DEL : REPLY ]
    • 탕아/하하...그럽시다. 댓글 고맙습니다. 김재춘이 5기인데, 김형욱이라고 잘못 쳤군요. 김형욱과 김종필이야 같은 8기이고, 친한 친구였다가, 박정희와 권력다툼에서 서로 정적이 되었다고, 김형욱 <회고록>에 서술되었는데.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 또 댓글 남겨주세요.

      2017.01.02 01:47 신고 [ ADDR : EDIT/ DEL ]
  2. 디디

    김종필씨 말에 소름이 돋네요. 박근혜는 진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보임

    2017.03.01 04:31 [ ADDR : EDIT/ DEL : REPLY ]
  3. 디아블로

    좀 잘알고 씨부려 빨갱이새끼야

    2017.04.24 13:06 [ ADDR : EDIT/ DEL : REPLY ]
  4. 호식

    긴운장 작성하는데 고생했습니다.잘읽어습니다

    2017.12.13 12:48 [ ADDR : EDIT/ DEL : REPLY ]

한국정치2016. 2. 13.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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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통치스타일은 박정희의 '군사작전'을 흉내낼 뿐이다. 전두환-노태우는 스네이크 박정희의 '변신술'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다. 최근 현대사 책들을 다시 검토하면서, 50년대~70년대 선배들의 투쟁에, 그들 중 일부는 이후에 변절했다할지라도, 총에 맞고 죽어간 감옥에 투옥된 선배들을 다시 생각해 보고 있다. 2016. January 20 at 12:27pm · 

박정희는 그 '동지들(육사 5기, 육사 8기)'도 집권연장의 '폭죽'으로 사용해 하늘에 아름답게 날려버렸다. 결국 그 동지들 총 맞고 박통이 박살나버렸지만. 그야말로 배우 황정민 50배를 능가하는 변신의 귀재, 스네이크 박정희의 '화해의 죽음'은 '죽음의 전설'이었다.

역사 책 속에서 다시 깨닫는다. 박근혜 덕택에 말이다. 전두환-노태우는 박정희 체제 하에서 18년간 '군사작전 (블리츠-크리크 Blitzkrieg)식 적군 및 경쟁자들 섬멸작전을 배웠다. 전두환-노태우가 박정희에 비해 소심했던 것은, 동지들의 총 맞고 죽지 않기 위해 '돈다발'을 동지들에게 자주 자주 찔러주면서 박정희처럼 '직접적 섬멸'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전에 난 미 노스캐롤라이나 미 해병대 라이언 상사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중동에 대 테러전쟁에 참여한 전쟁 베테랑이다. "(전쟁터에서 죽음에 대한 공포) 무섭진 않냐?" 는 질문에 "적을 꼭 죽여야겠다고 쏘는 건 아니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쏘는 거다"

군사작전식 정치라는 것은 '먼저 쏘기다'.

 두 박통들은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적을 섬멸하고 블리츠클리크로 집중포화해서 콕 꼬집어 죽이는 것일 뿐', 꼭 그들이 인간적으로 미워서 그러는 건 아니다. '내가 이 전쟁터에서 총을 먼저 쏘지 않으면 적의 총탄에 내가 죽기 때문이다' 그게 박정희식 정치였다. 적도 동지도 1초, 3초, 2년, 10년 가는 것일뿐, '내가 살기 위한 군사작전'만 있을 뿐이다.

박근혜 말대로 '저런 건 슬픔도 아니다'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벌꿀 (꿀벌)처럼 열심히 매일 매일 적들과 경쟁자들을 섬멸하기 위해서 벌꿀 벌꿀을 따야 한다. 쉴 새가 없는 것이다. 유병언 죽음의 쇼도 해야 하고, 정보기관 '손발'도 필요하면 천국 지옥으로 파견보내고, 온라인에서도 'Blitzkrieg' 팀을 만들어서, 혼외 자식이 있는지 없는지, 적을 섬멸 타격할 모든 자원을 가동해서, 화염방사로 자존심과 자긍심을 불태워 씨를 말려야 한다.

꼭 그들이 인간적으로 미워서가 아니다. 그들의 정치적 이념은 이렇다. "산다는 게 다 전쟁터이고, 내가 배반하지 않으면, 내가 먼저 쏘지 않으면 내가 죽기때문이다." 이런 정치적 가치와 이념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다.






박정희는 1961년 516 군사쿠데타 당시, 장도영 참모총장을 앞장 세웠으나, 3개월 후 반혁명분자로 실각시키고, 미국으로 망명보냈다.





박정희는 516 군사쿠데타 주력 군대였던 육사 5기 (오른쪽 김재춘)와 육사 8기 (왼쪽 김종필)를 서로 충성 경쟁시키면서, 처음에는 김종필을 중앙정보부 창설 책임자로 내세우다가, 그 다음에는 육사 5기 대표격인 김재춘에게 자유민주당 창설을 맡기고, 김종필의 '공화당'과 경쟁을 부추긴 후에, 최종적으로 김재춘을 내쫓고 김종필을 등용했다. 


(김종필 : 왼쪽, 김형욱: 가운데 ) 



박정희는 육사 5기 김재춘 등을 권력에서 배제한 이후, 육사 8기인 김종필과 8기생 김형욱을 다시 등용하고 서로 경쟁시킨다. 이북 출신이자 반공반북주의자였던 김형욱은 중앙정보부장을 6년간 재임하면서 동백림 사건, 인혁당 사건, 통혁당 사건 등을 발표했고, 심지어 박정희와 김종필의 좌익 경력을 문제삼고 이를 세탁하기 위해 노력할 정도였다. 그러나 박정희는 김종필과 김형욱 어느 누구 편도 들지 않고, 둘 다 견제하고 둘 다 용도 폐기했다. 
이후 김형욱은 미국에서 유신독재 박정희 타도를 외치다가, 1979년 10월 살해당했다. 
군사 쿠데타 주역들 내부에서 서로 매도하고 서로 죽이는 결과를 낳고, 참혹한 배신과 배반의 역사를 남겼다.





박정희는 1961년 516 군사쿠데타 당시 육사생도였던 전두환과 노태우 (육사 11기)를 집권 내내 지원했고, 이들은 영남 출신 육사 장교 모임인 '하나회'를 윤필용과 더불어 만들었다. 

박정희는 군사쿠데타 주역이었던 육사 5기와 육사 8기를 견제할 차세대 육사 11기를 내부에서 키웠다. 전두환은 1961년 516 군사쿠데타 친위 시가지 행진을 벌였고, 그 이후 박정희에 대항하는 육사출신 선배들 (육사 5기, 육사 8기)과 경쟁하면서 자파인 '하나회'를 키워나갔다. 이로써 1979년 박정희의 사망 이후, 1212 군사쿠데타를 감행할 물리적 군사력을 전두환은 보유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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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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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정권은 전두환-노태우를 사면해주고, 사도바울 한화갑을 내세우면서 동서 화해론을 주창했다. 동진 정책의 '카톨릭화'였던 것이다. 그러나 박정희식 구복신앙은 카톨릭식 신의 영접을 악귀로 쫓아버리고 말았다. 김대중은 박정희 기념관이라는 '구복신앙'의 서낭당을 건립하고자 본인의 카톨릭신앙의 토착화에 노력했다. 그러나 순교자의 피가 모잘랐다.


열린우리당의 '박정희 친일 혐의' 과연, 신-동진정책인가 포기인가? 아니면 노무현의 '명패 던지기'식 정면돌파인가? 최근 열린우리당이 추경예산 편성에서 부산시가 개최하는 APEC(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 정상회의 관련 지원금 요청을 거부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지난 총리에서 낙마한 김혁규 전경남지사를 내세워, 기업규제완화를 위한 특별법’을 준비중이다. 아직 특별한 성과를 못내고 있는 김혁규 카드를 계속 붙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가? 김혁규 의원을 16일 제주특별자치법 마련과 재정지원 확보를 위해 당내 마련된 제주특별자치도 추진특위의 위원장으로 임명하고, 부산과 제주가 APEC 개최지 선정 문제로 갈등을 김혁규 의원이 해결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박정희 친일 혐의와 박근혜 비판 노선은 과연 노무현의 신-동진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노무현은 김대중의 동진정책 실패에서 무엇을 배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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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을 비판했던 이유 : 영남-동진정책의 역사 (2001-3-30)


<김대중 정부의 동진정책, 김민석의 화답>


김종필이 98년 대선에서 김대중을 지지한 것은, 그 자신의 정치적 입지점의 강화라는 측면이 있기도 하지만, 김종필은 김대중이 이회창보다는 한국정치의 생리를 잘 안다고 판단했다. 김종필은 '계몽주의적 군주' 박정희 밑에서 죽지 않고 [김형욱, 이후락, 김재규와 비교] 살아남은 투명인간에 가까운 인물이다. 어찌보면 야당을 한 김영삼, 김대중보다 더 정치적 생명이 위태로웠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생리를 몸에 체득한 끝에 '메타포어'의 명수로서 이 땅에 건재하고 있다. 


이회창은 전직이 판사이고, 법조문을 외우던 사람이다. 그는 항시 판단한다. 보편적 입법 논리와 도덕적 판단은 아니더라도, 형식 '선'과 '악'을 가리는 직업 - 마치 반란자들의 목을 치는 지적인 망나니처럼-을 가졌다. 김종필은 안다. 이회창 밑에서는 그 망나니의 선악을 자르는 칼날에 모가지가 싹둑 잘라나갈 것이라는 것을. 김대중은 한국 국민의 정서를 잘 알고 있고, 정치의 생리를 안다. '타협과 상생'의 논리를 터득한 정치적 친구이고, 동업자이다.



                   (97년 김대중 대통령 당선에 기여한 DJP 연합,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


이러한 김대중의 사도 바울, 한화합씨는 목포에서 전두환과 더불어, 불교신자인 전두환과 카톨릭 신자인 사도 바울 한화합씨는 '화해와 상생'의 새로운 법률을, 야단법석에서 여시니, 이는 대구, 경북 인민의 가슴을 울리는 심금이 될 것으로 믿었다.


 박정희 기념관을 지음으로 써 "조국의 근대화 세력 (점진적 민주화론자) "과 " 민주화 세력 (급진적 민주화론자)"이라는 새로운 이념의 씨앗이 제도적으로 현실화되었다. 김대중의 아카데믹 베드로, 한상진이 이것을 유교적 차원에서 철학적으로 승화시키니, 중화(中和)와 화합이 유교의 기본이요, 우리 조선은 유교의 철학적 본고장이고, 유교가 민주주의와 상치되는 부분도 있지만, 다 버릴 것은 아니니, 그 핵심인 중화사상을 받아들여, 조국의 근대화 세력과 민주화세력이 중화되어 일신우일신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파했다. 김대중의 요한 김민석이 정치적으로 승화시켜, 자기의 꿈은, 영남권의 표와 젊은층의 표를 획득하는 것이라고 당당하게 청년학도의 심장으로 갈파했다.


<민주주의가 어렵다. 우리에게 너무 어려운 개념인가 ?>


도대체 민중이란 무엇인가 ? 정형근은 가장 높은 득표율로 당선이 되고, 부산의 사나이, 자존심의 사나이로 남게 되었고, 박정희의 딸이라는 이유로 박근혜가 당선이 되고, [김대중의 아들도 당선이 되고 물론]. 지역주의를 조장하는 세력이 더 문제이기는 하지만, 민주주의란 자신들의 권리와 이해관계를 대변해 주는 정당을 스스로 선출하고, 비판할 능력이 있는 시민들이 있어야 하는데, 아직도 우리에게 민주주의적 시민 개념은 어려운 것인가 ?


<한국 지식인들의 권력지향적 태도의 현실화>


서구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발달의 역사는 자본주의 논리[시장의 논리]와 민주주의의 논리의 상충의 역사였다. 그 갈등의 내면을 다 들여다보기 전에, 최소한 지금 합의점을 형성할 수 있는 부분만 이야기를 한다면, 언론과 사상의 자유 [ 밀 (J.S Mill) , 시민 자유론 On Liberty], 혹은 공론영역의 적극적 부활이 아마 민주주의의 기본 토대가 될 것이다. 시장에 대한 여러 가지 입장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정치적 해결의 기초는 이익집단의 자기 주장, 그리고 그 주장들의 합리적 토론과 정치적 표출을 가능하게 해주는 공론영역의 심화발달이다. 


 아쉽게도 한국사에서 지식인들의 학습동기는 '정치적 권력 획득'과 '사회적 신분 이동', 그리고 그로 인한 개인의 사적인 부의 확대이다. 이러한 지식인 문화의 정치적 현실화는 언론에 그대로 반영된다. (조선,동아,문화,중앙 등 거대한 일간지들이 동일한 논조로 '보수'임을 자처하는 현상은 세계 언론사에 길이길이 남을 것으로 예상된다.)


 조선일보가 만들어낸, 이승만 '아버지론', 박정희 '조국 근대화의 기수: 계몽주의적 군주론'은 이제 한국형 보수주의적 가치가 실질적인 힘을 지니고, 이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렇게 논조를 만들어도 신문은 팔리고, 그것을 읽고 내재화시키는 국민들이 있고, 그것을 더 조장(助長)하는정치적 세력이 있다는 것이다.



                                   (조갑제, 박정희 전 대통령을 근대화의 기수로 칭송하다. 조갑제와 뉴라이트 그룹이 시도한 담론 헤게모니 전쟁, 끝나지 않는 전투는 계속된다) 

 

조선일보의 논조가 공론영역의 발달에 얼마나 큰 기여를 했고, 민주주의 원리에 얼마나 충실했는가 ? 오히려 그러한 박정희에 대한 새로운 향수와 환영(幻影)의 실체화는, 포퓰리즘의 우익적 극치였다. 지식인들이 만들어내고 조장해낸 박정희 신화와 종교는, 현재 정치적 권력 투쟁의 신앙적 표현이고, 권력을 향한 지식인들의 새로운 도전이다. 그리고 그것은 언론 집단이건 학자집단이건 간에, 그 피말리는 인정욕구의 또다른 표출이다. 


[이것은 소위 좌파도, 과거 민주화 운동 경험자들도 예외는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준다] 


 공론영역에서 새로운 이성의 잠재적 가능성을 발견해내고, 이것을 제도적 합리화로 물꼬를 틀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것이 지식인의 임무이지, '나 아니면 안된다는 식'으로 내가 입각하고, 내가 직접 뛰어들어 '조국'을 구원하는 동키호테식의 발상은, 이제 정화할 때가 아닌가. 풍차 밑의 물레를 타는 청개구리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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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4 ] 박근혜 108만표 비밀:야권연대 실효성 지역별 격차 :노-문 단순비교

2012.12.21 06:02:17

대선에서 야권연대의 득표 효과 (정의당 심상정 사퇴, 통진당 이정희 사퇴 효과) 


선거 정치학. 유권자 투표 습관 연구회. 박근혜의 승리는 ‘한국 시민사회의 강고한 보수성’에 기인한다고 앞 글에서 주장했다. 박근혜 새누리당의 정책 참모들은 대부분 친-미 성향의 교수 박사들이다. 미국 대학(정치학과와 사회학과등)에는 선거와 유권자 투표 행태 연구로 밥먹고 사는 교수들이 수백명이다. 진보좌파당을 하면서 제도권 의회와 행정권력에 도전 하면 그 보수적 시민사회 교수들과 경쟁할 수 있는 ‘좌파 선거 연구가들’이 필요하다. 철학, 가치, 방법론, 정치적 해석이 서로 다르지만 선거공간에 대한 연구없이 ‘적진 돌진’이나 조야한 민중주의적 녹슨 칼로는, 보수 강성 한국 정치를 바꿀 수 없다. 우리는 전 당원이 각 지역의 선거 전문가 연구가가 되어야 한다.


12월 1일, 처자(ID)당원이 올려준 대선 여론조사표를 보고, “이번 대선 여론조사는 거의 다 예상을 빗나갈 것입니다. 이탈자, 코어 그룹, 지역별 차이, 연령별 계층별 차이를 제대로 측정하지 못할 확률이 크기 때문입니다 ”라는 댓글을 달았다.

그리고 유권자 투표 성향이라는 주제만을 놓고 볼 때, 이번 2012년 대선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는 “박근혜 스코어 39~42% 핵심 투표자들의 확대 가능성”이었다.

(참고글http://www.newjinbo.org/xe/4790572)


민주당이나 진보좌파당에 선거 전략가의 부재가 드러나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1] 1:1 대결 구도만 만들면, 또 [2] 후보를 부산-경남에서 배출하기만 하면, 그리고 [3] 진보좌파정당 후보들이 사퇴하기만 하면 박근혜를 물리칠 수 있다는 견해는 단견이다. 한국정치에 대한 깊은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을 드러낸다. 박근혜 핵심 스코어 (39~42%: 2자 대결, 3자 대결이건 최소치의 확보. 이 수치는 현재 선거구도에서 확고한 위치를 지니고 있음)를 더 이상 확장되지 못하게 만들어야 했다.


박근혜 승리, 문재인 패배의 제 1원인으로 <이데올로기 형성 실패>를 꼽았다. 제 2의 원인은 박근혜 핵심 스코어의 유지와 확장을 봉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데올로기 :정치 담론> 형성 실패, 그리고 그에 근거한 정책적 차별화 부재로 서울, 경기 수도권의 유권자들을 문재인에게 집중하도록 하는데 실패했다. (*제 3의 원인으로는 민주당 후보의 약함)


그렇다면 한국 선거에서 주요한 변수들로 등장하는 세대 (나이), 지역, 성별, 계급-계층 중에서 아직까지 강고하게 남아있는 ‘지역 투표’는 어떠했는가? 이 지역투표를 보면 야권연대의 실체적 진실이 드러날 것이다. 아울러 야권연대가 각 지역별로 어떻게 차별적으로 드러나는지도 나타날 것이다.


2000년 이후 3회의 대선, 4회의 총선, 3회의 지방선거에서 드러난 지역투표 경향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선거법[비례대표제 확대; 대선에서 결선투표제나 호주식 선호투표제 도입]과 정당법의 개정, 좌파의 지방행정 모델 확보, 노동자들의 도시공간 정치 참여 확대 등이다.


실제 대선 결과를 보자. 박근혜의 108만표 격차 승리. 어디서 온 것일까? 현재 한국 유권자 투표를 결정짓는데 가장 중요한 변수인 지역을 보기로 하자. 우선 2002년 노무현과 2012년 문재인을 비교해본다. 2002년에는 권영길(민주노동당)후보가 3.9%를 획득했다는 점이 2012년과 큰 차이다.


1) 2002년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와 같은 진보진영 단일후보가 없었던 2012년 선거 결과를 평가하기 위해서,

2) 야권 단일화가 과연 보수-단일화 (새누리당 + 충청 지역을 기반으로하는 자유선진당과의 통합: 즉 1997년 김대중+김종필 자민련 DJP 연합과 반대상황)에 미친 효과를 살펴보자.


비교에 동원된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2002년 노무현 득표율과 2012년 문재인 득표율을 산술적으로 비교해보자. 이 비교 가정의 문제점은 10년간 유권자 의식의 변화를 포착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2002년 당시 20세였고 노무현을 찍은 사람이 2012년에 문재인을 또 찍었다는 보장도 없다. 이것도 문제점이다. 2002년 당시 40세이고, 2012년에 50세인 사람은 과연 동일한 투표성향을 보였을까? 이것 역시 불투명하다.

하지만 서울과 서울과 가까운 수도권 유권자들을 제외하고는 유권자 성향이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고, 정치 정당 지지율 역시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2002년 노무현과 2012년 문재인의 단순비교는 의미가 있다. 특히 부산-경남 지역 후보라는 공통점을 감안한다면 말이다.


* 실제 비교: 문재인 대신 노무현이 2012년 대선에 출마했다면,

즉 노무현이 (진보정당 후보: 당시 민주노동당 권영길 불참) 2012년 선거에 출마했다면,


가상 대결: 문재인 대 노무현


2012년 문재인 득표 + 박근혜 득표 숫자를 더한다. 잠정적으로 총유권자 숫자로 간주한다. (문재인+박근혜가 99.6%를 기록). 이 숫자를 2002년 노무현 득표율에 곱한다. 그러면 2012년의 노무현 득표율이 계산되어 나온다. [가정적] 이 숫자를 2012년 문재인 득표 숫자와 비교해서 차이를 낸다. 그렇게 되면 2012년 노무현 대 문재인 가상 대결이 나오는 것이다.


표 1. (B는 2002년 당시 노무현의 득표율 : C는 2012년 문재인 득표율) 

*** 주의: B 2002년에는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 3.9% 득표율이 있음. 


dec 20 문재인 노무현 지역별 득표율 비교표 pk.jpg



표 2. ( 노무현 득표율과 비교시, 문재인이 부산-경남-울산에서 439806표 (대략 44만표 ) 더 획득

그러나 이 문재인 증가분은 충청+전라도에서 감소분과 비교해보면, 거의 0 상태가 되어,

실제 부산-경남-울산에서 야권연대 효과는 있었지만, 나머지 지역에서는 오히려 야권연대의 정치적 효과가 없었다. 


dec 21 노무현이 2012년에 출마했다면 가상대결 문재인 증가분 감소분 계산.jpg 


해설 : 문재인 제주, 강원도에서 유권자 전략 부재, 오히려 노무현보다  감소함

전라도: 야권연대 효과가 없고, 오히려 새누리당 박근혜 표를 더 증가시키는 효과를 발생함.

경기도: 노무현보다 감소함 -> 야권 연대 효과 없거나 미미

인천: 노무현보다 감소함 -> 야권 연대 효과 없거나 미미

경북: 박근혜 대구 달성군 고향, 구미 박정희 표등의 결집 효과 있음. 그러나 실제로 10만표 내외 증가정도

서울: 노무현 51.3, 문재인 51.4%로 거의 차이가 없어, 실질적인 야권연대 효과는 없었다고 해석됨.


위 가상대결 (노무현 대 문재인) 이후, 문재인은 123133 표를 잃어버렸다. 다시 말해서 야권연대를 한 문재인은 야권연대를 하지 않은 노무현에 비해서 대략 12만 3133표를 획득하지 못한 셈이다. 가장 큰 이유는 충청지역에서 거의 31만표에 가까운 표를 잃어버렸고 (이회찬+이인제 등 박근혜와의 보수연합), 다른 지역에서는 야권연대 효과가 없거나 감소하거나 미미했기 때문이다. 부산-경남 지역에서만 실질적인 야권연대의 정치적 효과를 낳았다. 


위 가상대결 이후, 그렇다면 108만표의 비밀은 밝혀졌는가? 아니다. 나머지 96만표 (박근혜 빼기 문재인 = 108만표, 이 108만표 빼기 123133 = 약 96만표) 는 어디서 온 것인가? 지역이 아니라 어떤 다른 변수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면, 이 96만표의 실체는 어디에 있는가? 2002년에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가 3.9% 득표율(957,148표: 대략 96만표)과 정확히 일치한다. 하지만 권영길의 96만표가 전부 2012년에 박근혜에게 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가정은 전혀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이 차액 96만표는 지역이 아닌 어떤 다른 변수로 설명을 해야하는가? (* 답을 아시는 분 ?) 


마지막 96만표 문제:

또 하나의 가정이긴 하지만, [대선2] 가난한 저학력 유권자 박근혜를 선택하다: 알포드 계급투표 지수와 노동정치. 그 글에서 박근혜 투표자 직업군에서 *가정주부: 朴 55.6-文 32.3% . 가정주부 55.6%를 차지하지 않습니까?

제가 보기에는 남편의 다양한 폭력(언어,물리신체적, 심리적...)에 장기간 노출된 40세 이상 가정주부층이나 싱글맘, 과부, 아시아 결혼 이주자 여성들, 새누리당 김성주와 같은 성공욕구가 강한 보수층 여성 등이 55.6%에 포함될 수 있다고 봅니다. 박근혜 에게서 권력의 실현을 기대하고, 현실에서 자기들이 누리지 못한 권한을 박근혜에게서 발견하는 대리체험을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아마 이 범주에 해당하는 층이 수 십만은 될 것으로 추정해봅니다.


소 결론: 


1) 대통령 선거 야권 단일화, 즉 진보정당 후보 사퇴 전술은 현 시점에서 지역 기반으로 하는 정치 연합에 비해서 큰 정치적 효과는 없다. 

 a. 단적인 사례로 2002년 노무현과 2012년 문재인 비교시, 울산은 플러스 4.5% 효과에 지나지 않고, 

 b. 호남지역은 오히려 마이너스 효과를 가져오고 박근혜 새누리당 득표율이 더 올라가는 현상이 발생함

 c. 야권연대론에 대항해, 박근혜 새누리당은 모친 육영수의 고향이 충북 옥천이라는 사실을 이용, 이인제(충남 논산) + 이회창을 비롯한 구 자민련, 자유선진당과 연대를 가져옴. 


* 표는 다음 글에서 제시함. 


2) 결선 투표제가 없는 상황에서, 영남 지역을 핵심 기반으로는 새누리당을 고립시키는 전술은 진보정당 후보 사퇴나 민주당 지지가 아니라, 진보정당을 보다 더 강한 정당으로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새누리당을 고립 해체시키는 다양한 방식을 정치적으로 계발할 필요성이 있다. 민주당과 진보좌파당이 각자의 정치적 영역을 개척해서 새누리당의 눈과 발바닥을 공략할 필요성이 있다.


3) 아울러 진보좌파 정당은 한국 유권자들의 지역투표 성향에 대한 단기, 중기, 장기적 대처법이 있어야 한다. 계급투표가 정착되지 않고 있고, 알포드 계급지수가 현격하게 낮은 한국 선거 행태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통해 현실적인 전략을 짜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좋은 것은 지역 시의회(구의회;광역의회)와 행정(자치단체장)에서 모범을 만들어 보수 유권자들가지도 진보좌파 당원들 일 잘한다고 칭찬을 받는 게 가장 빠른 길이다. 지역 투표와 계급 투표의 접합지점들을 발견해서 그 지역의 정치 현안들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예를들어서 서울-지역과 격차, 서울-토호 세력의 동맹과 부정부패 고리 근절 방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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