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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history)/5공_전두환_1980-87

35주기 박종철 열사. 물고문 치사 사건. 1987년 1월 16일 동아일보

by 원시 2022. 1. 16.

1987년 1월 16일 이후 박종철 고문치사와 진상규명 투쟁 관련 기사.

 

1.

박종철의 삼촌 박월길 증언. 박종철의 이마, 뒤통수, 목, 가슴, 사타구니에 멍이 있었다. 

중앙대 의사 오연상(32세)이 심장이 멎은 박종철을 살리기 위해 '기관에 튜브를 집어넣어 인공호흡을 했다'

캠플 주사를 놓고, 심장 마사지를 30분 했다. 그러나 박종철의 심폐기능이 회생되지 못했다. 눈물겨운 이러한 의료진의 분투가 있었다. 박종철의 어머니 정차순씨는 당시 54세였는데, 병원에서 기절해 실려갔다. 

 

 

2. 1987년 1월 19일자. 동아일보. 박종철 고문치사 경찰 발표.

 

박종철 사망원인은 '물고문'하는 과정에  '경부 압박'으로 인한 질식사이다.

 

박종철에 대한 수사 경위.

1986년 10월 31일. 서울대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인문대 소속. '반혁명책동분쇄 및 제헌의회 소집을 위한 투쟁 결의대회' 시위 주도.

1986년 11월 24일. 서울대 삼민투와 민민투의 배후조직인 서울대 민추위 사건의 수배자인 박종운(서울대 사회복지 4년)을 박종철 하숙집에 1박 은닉. 87년 1월 8일 저녁 도피자금을 제공함.

 

1985년 5월 24일. 사당동 가두시위 가담. 구류 5일.

1985년 6월 1일. 구로동 가두 시위. 구류 3일.

1986년 4월 11일. 신당동 가두시위 주도.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 선고.

1986년 9월 서울대에서 유기정학 (21일) 받음. 

 

 

 

1월 16일 동아일보 11면, 박종철 고문 치사 기사.

 

 

 

 

1987년 1월 19일자. 동아일보. 박종철 고문치사 경찰 발표.

 

박종철 사망원인은 '물고문'하는 과정에  '경부 압박'으로 인한 질식사이다.

 

박종철에 대한 수사 경위.

1986년 10월 31일. 서울대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인문대 소속. '반혁명책동분쇄 및 제헌의회 소집을 위한 투쟁 결의대회' 시위 주도.

1986년 11월 24일. 서울대 삼민투와 민민투의 배후조직인 서울대 민추위 사건의 수배자인 박종운(서울대 사회복지 4년)을 박종철 하숙집에 1박 은닉. 87년 1월 8일 저녁 도피자금을 제공함.

 

1985년 5월 24일. 사당동 가두시위 가담. 구류 5일.

1985년 6월 1일. 구로동 가두 시위. 구류 3일.

1986년 4월 11일. 신당동 가두시위 주도.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 선고.

1986년 9월 서울대에서 유기정학 (21일) 받음. 

 

 

 

 

박종철이 고문당한 치안본부 대공수사 2단 조사실 입체도.

 

 

박종철 고문 경찰들, 조한경, 강진규 등 서대문 경찰서로 후송.

 

 

전두환은 박종철 고문치사에 대해 사과했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 체제, 용공, 친북행위 등에 대해서 강력히 대처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2022년 대선 과정에서 윤석열이 신세계 정용진과 합세해 '멸공'을 외치고, 전두환이 '정치는 잘 했지 않느냐'는 것을 연상시킨다.

 

 

1987년 1월 23일,전국 17개 대학에서 박종철 고문치사 비판 시위가 열렸다. 고려대에서 서울시내 9개대 700명이 박종철군 추모제를 열고 있다. "종철아 ! 잘 가 그래이...아부지는 아무 할 말이 없대이 (박정기)" 플래카드.

 

 

박종철을 고문했던 서울 용산구 갈월동,치안 본부 대공수사단 건물 전경. 점선친 부분이 5층 조사실임.

 

 

박종철 고문에 가담한 경찰들을 후송하고 있다. 

 

 

박종철 고문치사 이후, '고문' 추방 운동이 대대적으로 벌어졌다.

 

 

 

1987년 1월 26일. 박종철 고문 치사를 은폐하려는 전두환 정권에 맞서, 진상 규명을 위한 투쟁이 지속되었다.

 

 

1990년 8월 22일. 박종철 고문치사 및 범인 은폐조작 사건 관련, 피고인들에 대한 무죄판결을 계기로, 홍제동 치안본부 대공분실 앞길에서 시위를 벌이는 박종철의 아버지 박정기 (우), 어머니 정차순 (좌). 

 

 

1992년 1월 22일자. 박종철 5주기를 맞아 시위하는 학생들 시민들을 가로막는 전경들, 그 앞에 서서 박종철의 부친 박정기 선생이 발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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