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학번 최동, 81학번 김순호, 이 두 사람은 인천 부천지역에서 노동운동을 했다. 1989년 이들이 소속된 '인노회' 사건이 발생해, 최동은 경찰에 끌려가 고문 후유증으로 정신분열증을 겪다, 1990년 8월 7일 한양대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반면 김순호는 1989년 인노회 사건 당시, 동료들로부터 프락치 의혹을 받았고, 이후 경찰이 되었다. 그러다가 2022년 논란의 대상이 된 경찰국장이 되었다.
인노회 소속 회원들은 김순호 경찰국장의 과거 행적의 진실이 무엇인지를 33년이 지난 2022년에 다시 묻고 있다.
현대 정치사의 비극 중에 하나이다.
김순호 경찰국장 대공특채한 인물은, 홍승상 경감인데,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거짓 보고서 초안 작성자임.
1987년 박종철 사망 발생, 강민창 치안본부장이 박종철 고문치사를 은폐하면서 "책상을 탁하고 치니 억하고 쓰러졌다"고 발표. 이 거짓 수사 보고서의 작성자는 당시 홍승상 경감이고, 그가 김순호를 경찰 특채했음.
1987년 당시, 홍승상은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 경감.
1989년 인노회 (인천부천민주노동자회) 구속 사건 발생.
김순호는 인노회 부천 지구 소속.
김순호가 홍승상을 찾아가 자수했다고 말함.
인노회 회원들은 김순호가 홍승상에게 '인노회' 조직을 밀고했다고 주장.
1990년 인노회 소속 최동 분신 사망. 그 배경은 아래 최동의 묘비명에 나와있다.
"1980년 성균관대 입학 후, 심산 연구회 결성, 광주민중항쟁 진상규명 시위 주도, 1984년 부천에서 노동운동 투신, 인노회(인천 부천 민주 노동자회)를 결성. 1989년 4월 24일 치안본부에 연행됨. 조사 과정에서 심한 고문과 가혹 행위 후유증으로 9월 집행유예로 출소.
1990년 8월 7일 "천인공노할 치안본부의 만행을 규탄한"는 성명서 작성 후, 한양대에서 분신 사망.
분신 자살한 최동은 성균관대 후배 83학번 김순호를 인노회에 가입시킨 것으로 알려짐.
[단독] 김순호 경찰국장 대공특채는 누가?
입력 2022-08-07 20:14 |
정부가 신설한 첫 경찰국장에 오른 김순호 치안감.
과거 노동운동 현장에서 이른바 '끄나플'로 활동한 뒤 동료들을 밀고한 공로로 경찰에 특채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죠.
그런데 이 의심스런 채용과정을 담당했던 인물이 MBC 취재로 확인됐습니다.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당시, 이런 거짓말을 지어냈던 남영동 대공분실의 장본인이 김순호 치안감의 특채 담당이었습니다.
장슬기 기자입니다.
리포트
전두환 정권 말기였던 지난 1987년 1월.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던 서울대 학생 박종철 군이 숨졌습니다.
당시 강민창 치안본부장은 냉수 몇컵 마시고 친구의 소재를 묻던 중 "책상을 탁하고 치니 억하고 쓰러졌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가혹한 폭행과 고문이 자행된 것으로 드러났고, 이 사건은 87년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됐습니다.
당시 이 사건의 거짓 보고서 초안을 작성한 담당자는 남영동 대공분실의 홍승상 전 경감이었는데, 2년 뒤 '인노회' 사건 직후 김순호 경찰국장의 경찰 특채를 맡았던 인물 역시 홍 전 경감이었습니다.
김 국장은 MBC와의 통화에서, "홍승상 전 경감을 찾아가 '인노회' 이야기를 한 건 맞지만 거래를 하지는 않았다. 거래를 했으면 더 높은 직위를 요구했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경찰 이력에 문제가 될 수 있다며 홍 전 경감이 인노회 관련 진술을 뺴줬다"고도 말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오늘 민주화운동기념공원에선 김 국장의 대학 선배로 함께 인노회 활동을 했던 최동 열사의 32주기 추모식이 열렸습니다.
그는 89년 김순호 국장이 잠적한 직후 치안본부 대공분실에 잡혀가 고문을 받은 뒤 후유증을 겪다 분신 사망했습니다.
당시 체포됐던 인노회 회원들과 마찬가지로 유가족들도 김 국장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최숙희/최동 열사 동생]
"(최동 열사가) 한 달 넘는 동안 자기가 미행당한 것 같다. 결혼식 사진, 이삿짐 사진 자기의 모든 행적이 기록돼 있는 사진을 보여주면서. 그래서 거기에 너무 놀라고 황당했다(고 말했었다)."
추도식 후 인노회 회원과 녹화사업 진상규명위 등 관련 단체들은 공동 성명을 내고, 진상 규명과 경찰국 폐지를 요구했습니다.
MBC뉴스 장슬기입니다.
33년의 수난 겪은 '인노회' "김순호, 행적 명확하게 밝혀달라" / YTN
46,358 views Aug 5, 2022
최동, 후배인 김순호 인노회에 영입…1989년 구속
"경찰이 너무 많이 알아"…후유증 1년 만에 숨져
최동, 민주열사 인정…인노회, 재심 진행 중
인노회 "김순호, 1989년 행적 해명해달라"
[앵커]
김순호 국장과 함께 노동운동을 했던 인천·부천 민주노동자회 회원들은 행적에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다며 명확한 해명이 필요하다고 요구했습니다.
특히 김 국장이 잠적한 시기와 인노회가 큰 수난을 겪은 시기가 겹친다며 이전부터 몰래 공작활동을 해온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했는데, 김 국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습니다.
이준엽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김순호 국장을 인천·부천 민주노동자회로 직접 데려오고 무척 아꼈다는 성균관대학교 한 학번 선배 최동 씨.
김 국장이 잠적했던 지난 1989년 인노회가 이적단체로 낙인찍히면서 최 씨 역시 구속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최 씨는 연행됐을 당시 경찰이 인노회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알아 충격을 받았다고 주변에 말하기도 했습니다.
징역형에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풀려나긴 했지만 후유증으로 심한 정신분열을 겪다가 결국, 1년 만에 분신해 숨졌습니다.
이후 최 씨는 지난 2001년 민주 열사로 인정받았지만, 모두 15명이 구속된 인노회는 재작년에야 재심에서 이적단체가 아니라는 판결을 받는 등 명예회복을 위해 오랜 길을 걸어왔습니다.
[안재환 / 전 인천·부천민주노동자회장 : 오랜 기간 법정투쟁을 통해서 신정길 회원이 무죄를 받았습니다. 구속자 15명이 계속 법정투쟁을 통해서 명예회복을 이루려는 목표를 진행하고 있고요.]
마음에 상처를 지니고 살아온 회원들은 지난 1989년 있었던 '인노회 사건'에 대해 김 국장에게 명확하게 해명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당시 경찰은 부천지역 책임자였던 김 국장이 아니면 도저히 알 수 없는 내용까지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박 모 씨 / 전 인천·부천민주노동자회원 : 거의 조직을 전체를 알 수 없거든요. 이름들 전체까지 알 수 있는 그런 위치가 아니거든요. 그것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지구장이죠. 저는 분회장일 뿐이고 일개. 그 당시 지구장이 순호였었고.]
회원들은 특히 과거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큰 희생을 겪은 끝에 치안본부가 해체됐는데 당시 치안본부에 스스로 찾아가 몸담은 인사가 31년 만에 부활한 행안부 경찰 조직의 첫 수장이 된 건 용납할 수 없다고 반발하고 있습니다.
과거 행적에 대해 명백히 진상을 규명하고,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스스로 반성하고 사퇴해야 한다고도 요구했습니다.
이에 대해 김순호 국장은 YTN 취재진에게 자신은 운동권에 몸담은 경험으로 증거물 분석에 특기가 있었기 때문에 대공 특채가 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1989년 치안본부에 찾아가 자백할 당시 동료를 위험에 처하게 하는 진술은 한 적이 없다고 거듭 해명했습니다.
또 숨진 최동 열사에게는 지난 1989년 당시 자신이 인노회를 떠날 거라고 긴밀히 얘기했다며, 잠적이라는 건 오해라고 덧붙였습니다.
오는 일요일(7일)은 서른 살 나이로 숨진 최동 열사의 32번째 추모식입니다.
해마다 동료들이 모여왔지만 김 국장은 한 번도 추모식에 나타난 적 없습니다.
YTN 이준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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