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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비교/노동

노동자 평의회 (評議會), 또는 노동자 자치 정부. 노동자 평의회란, 노동자들 스스로 생각하고, 의견을 개진하고 토론하고, 실천하는 독립적인 입법,행정 기구이다. 저자. 안톤 파넨쿡 Anton Panne..

by 원시 2024. 3. 6.

1. 노동자 존재의 분화 시대에  노동 정치란 무엇인가?

지난 20년간 민주노동당부터 녹색정의당까지 노동정치의 실패 지점.

 

1) 국회의원 직장으로 변질된  진보정당. 여의도 늪은 썩고 있다. 새로운 샘물의 지류들과 연결시켜야 한다.

 

민주노동당이 2004년 10석 의원을 배출한 후, 20년이 지났다.  분명 정치적 성과도 있었지만, 1만 4천 직종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정당이 되지 못했다. 그런데다 국회의원 되는 게 진보정당 활동의 목표로 '축소'되어 버렸다. 특히 2012년 통진당 해체 이후, 정의당은 의회 참호에 고립되어 드넓은 노동자들과 시민들의 일터와 일상 터전에서, 사적 소유권을 제어하고, 공적 행복의 확장 정치를 실천하지 못했다. 

 

2) 노동자들에 대한 잘못된 태도. 진보정당 대표 정치인들이나 의원들은 1만 4천여 직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보호 대상' 혹은 '약자'로 표현하며, 마치 자기들이 그들을 보호하는 듯한 말과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실제 정당의 주인이 되어야 할 노동자들은 수동적인 투표기로 전락해버렸다. 민주노총 노조원들 역시 2007년 이후, 정치적 나침반을 상실해버렸다.

 

3) 정당의 역할은 무엇인가?

 

단일하고 통일적인 보편적인 노동자 계급의식을 만들어 내기 힘든 조건이지만, 이것을 가로막는 일체의 경제,정치적,이데올로기와의 투쟁을 해야 한다. 

 

정당과 '노동자 자치조직', 정당과 노조, 정당과 시민단체, 정당과 사회운동 관계에 대한 토론과 논쟁은 지난 150년간 지속되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1963년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진행된 국가주도 자본주의화 과정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격차는 100대 80 정도였다. 그러나 1997년 IMF 독재정치 이후, 1만 4천여 직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10가지 ~20가지 계층으로 분화되었고,차별의 벽이 생겨났다. 다 같은 노동자가 아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하청들 사이 임금 격차는 100대 60~50으로 벌어졌다. 

 

이러한 노-노 갈등은 노조가 해결할 수 없다가 아니라, 노조 차원을 벗어난 '전 사회적, 정치적 투쟁' 주제이다. 대기업 노조원들을 때리는 방식은 완전히 빗나간 처방이다.

 

진보정당은 개별노조와 상급 민노총에서 하기 힘든, 노동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절대적 빈곤'과 '상대적 빈곤' 해방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이들이 각 노조 뿐만 아니라, 정당 당원이 되어, 이들 스스로 당의 주체가 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마련해야 한다. 그런데 민주노동당부터 정의당에 이르기까지, 노동자들의 자기 학습과 실천의 공간은 존재하지 않거나, 그 존재가 미미했다. 

 

1980년대~90년대 학생운동가와 노동운동가들이 당시 실천했던 것처럼, 다시 소모임을 조직하고 학습과 토론, 정치적 실천 단위를 만들어야 한다. 왕도는 없다. 

 

4) 1941년~42년 네덜란드 천문학자이자 사회주의자였던 안톤 파네쿡의 '노동자 평의회'라는 노동자 자치정부를 언급한 이유는, 한국 민주노동당부터 정의당까지, 너무 빠른 시기에 '의회주의' 늪에 빠졌고, 소련 공산당 1당 독재처럼, 당 대표자들이 당원들과 소통을 거부하는 비민주적 정당으로 퇴락해버렸기 때문이다. 

 

안톤 파네쿡의 '노동자 평의회'가 결코 만병통치약도, 또 새로운 좌표도 아니지만, 지난 20년간 너무 쉽게 다들 잊어버린 우리들의 정치적 원칙들을 상기시켜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당원들 노동자들 스스로 사고하고, 학습하고 토론하고, 정치적 실천을 기획하는 '자유로운 독립적인 주도권 free initiative' 개념에 주목해 봤으면 한다. 

 

진보정당 대표나 의원들은 노동자들을 '약자' 나 '보호대상'으로 간주해서는 안된다. 그들이 당의 주역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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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평의회 (評議會), 또는 노동자 자치 정부.

 

노동자 평의회란, 노동자들 스스로 생각하고, 의견을 개진하고 토론하고, 실천하는 독립적인 입법,행정 기구이다.

 

저자. 안톤 파넨쿡 Anton Pannekoek.

 

 

1. 1941년~42년 노동자 자치정부를 뜻하는 ‘노동자 평의회’ 제안의 정치적 배경.

 

노동자평의회란 구체제의 정부를 대체하는 노동자 자치 정부이다. 그리고 노동자 평의회는 완전한 자유와 정의가 구현되는 사회로 이행하는 과도기에, 노동자들이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자본주의 질서를 해체하고 새로운 사회적 노동을 조직하는 기구이다.

 

소련은 볼셰비키의 권력 장악 이후, 국유화 과정에서 공산당과 노동자들의 ‘공장위원회’간의 갈등이 심각했다. 볼셰비키는 노동자들의 공장위원회를 폐지해버리고, 공산당 하위 직속 단위로 만들어버림.

 

안톤 파넨쿡은 잉글랜드 의회주의와 소련 국가사회주의의 일당 독재를 비판하고 노동자 자치정부를 제안했는데, 그 명칭이 노동자 평의회 (workers councils)이다.

 

파넨쿡은 이런 노동자 평의회와 잉글랜드의 ‘의회주의’를 대조시킨다. 잉글랜드에서는 경제와 정치를 분리시키고, 소수 정치인,변호사,기술관료전문가가 의회와 행정부를 장악하고 있다.

 

소련 국가사회주의 체제 하에서는 ‘공장위원회’가 탄압받아 폐지되었고, 공산당과 국가관료의 명령이 노동자들의 독립적 자치를 억압했다.

 

2. 노동자 자치기구, 자치정부, 노동자 평의회란 무엇인가?

1) 노동자 평의회는 전달자이다.  노동자들이 스스로 자기 의견, 지향점, 의지를 발표하고, 토론하는 전달자 역할을 한다. 사회적 교류와 토론 기구이다.

 

( 대조 ) 노조와 정당의 대규모화 이후, 전문 정치인들이 주요 현안을 처리하게 된다.

잉글랜드 의회에서 정치인들이 유권자 의지로부터 분리됨에 따라, ‘민주적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자연스럽게 의회 정치인들이 자본가 계급의 이익에 복무한다.

거대 노조, 혹은 독일 사민당의 경우도, 당원이 증가하고 큰 대중정당으로 변모한 이후, 대규모 노조 위원장들과 큰 대중정당 대표들이 노동자들과 당원들로부터 분리 독립되어, 통제 받지 않고 일을 처하게 된다.

 

2) 잉글랜드 의회, 거대 노조 위원장, 큰 대중정당 대표들의 행태와 대조적으로, 노동자 평의회에서는 노동자 전원이 노동의 사회적 기구의 주인이 된다.

 

과거 자기 소유 기업과 일, 타인과 경쟁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협력과 노동자친구들과의 집합적인 노동이 생활과 생산의 주된 작동 원리가 된다.

 

노동자 평의회란 정신적 삶의 총체적인 혁명을 뜻한다.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는 사람들은 자기 비즈니스, 직업, 자기 이해관계, 자기 가족의 이익만을 추구했었다. 그러나 노동자 평의회 조직과 노동의 사회적 조직에서는, 노동자 개인이 전체 생산을 투명하게 꿰뚫어 볼 수 있고, 노동자들의 협력을 통해서 생산을 의식적으로 통제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사람들이 모여사는 사회는 강압적인 기구가 아니라, 노동자 스스로 통제하고 규제할 수 있는 조직이 된다.

 

이러한 실천을 통해서 노동자평의회는 노동자의 마음과 정신을 변화시켜, 과거에 이기적인 좁은 사회에 갇혀 있던 수동적인 노동자가 아니라, 사회 전체 노동과정의 주인이 된다.

 

3) 노동자 평의회는 완벽한 민주주의이다.

 

직장에서 협력하는 노동자들이 그들의 진정한 대표들과 대변인들을 선출할 수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착취자들, 기생계급들, 임대업자들은 이러한 협력하는 노동자들의 자치 조직의 구성원 자격이 없다.

 

(대조 1) 70년 전에 칼 맑스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코뮤니즘으로 전환하는 중간 과정에, 그 이행단계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설정했는데, 처음에는 이 단어가 오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소련 국가사회주의 체제에서 소련공산당 1당 독재 형태로 변질되어 버려, 그 단어가 오용되고 말았다.

 

 (대조 2) 노동자평의회와 자본주의 체제 하의 ‘정치적 민주주의 (의회민주주의)’ 비교.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정치적 민주주의 체제는 소수 지배자들의 집권을 은폐하고 있다. 노동자 평의회 조직은 노동자들이 그들 노동의 주인으로 만들기 때문에, 정치와 경제를 분리시키는 ‘(부르주아) 정치적 민주주의’가 사라지게 될 것이고, 그 대신 사회적 경제가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노동자 평의회는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고, 외부 상황들과 필요에 예의주시해야 하고, 사회 전체 영역들을 책임져야 한다. 노동자 평의회는 현안을 심사숙고해 결정해야 하고, 노조원들은 상호 토론해야 하고 실천해야 한다. 노동자 평의회에서 이런 활동은 정부의 명령과는 차원이 다르다.

 

정부 관료와 공무원들의 지시와 명령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공동의지가 일처리의 원칙이 된다.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정부’는 계급지배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피착취 계급들을 관리하는 역할을 한다.  노동자 평의회 체제 하에서는 이러한 ‘정부’는 사라진다.

 

이제 ‘행정 업무’를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가? 행정이란 노동자들의 특수한 다양한 임무들을 의미한다. 행정 업무에서 중요한 원리는, 노동자들의 공동 대의에 복무하는 노동자들의 지속적인 심사숙고와 토론이다. 이것이 노동자 조직의 생명정신이다.

 

노동자 평의회의 토론을 통한 심사숙고 단계를 거친 결정사항을 어떻게 실행할 것인가? 결정사항 실행 원리는 ‘노동자 평의회’의 도덕적 권위이다. 이 도덕적 권위는 정부의 명령과 강제력보다 훨씬 더 엄격한 잣대를 지닌다.

 

 

4) 노동자 평의회는 생산, 분배, 소비 전 분야를 책임진다.

 

5) 노동자 평의회는 물질적 생산 뿐만 아니라, 교육, 육아,의료와 같은 문화 생활, 예술 과학의 영역에서 노동자들의 ‘자유로운 (독립적인) 주도권 free initiative’를 강조한다.

 

과거 봉건왕조와 자본주의 체제의 정부는 문화,예술과 과학을 그들의 지배를 영속화하고 그들의 영광의 도구로 사용했다.

 

노동자 평의회는 다양한 문화 영역, 예술과 과학 분야의 전문가들의 자유로운 주도권을 장려함으로써, 동료들과 동지들의 자유로운 협력 기구가 되도록 한다.

 

(소련처럼) 중앙 정부의 명령에 정신적 삶이 예속된다면, 우리들의 정신적 삶은 지루한 단조로움으로 귀결될 것이다. 외부의 강제와 명령을 받지 않고, 인간의 추동력의 자유로운 자발성이 정신적 삶을 자극할 때, 우리의 정신은 탁월한 다양성으로 꽃피울 것이다.

 

위와 같은 노동자 평의회의 ‘운영 원리들’을 통해 다양한 형태의 조직들이 만들어질 수 있다.

노동자 평의회는 사회 속에서 다양한 협력조직들의 연계망을 형성한다. 그리고 이러한 협력조직들의 자유로운 주도권에 따라서 노동자 평의회의 생명과 진보가 규정된다.

  

노동자 평의회에서 토론되고 결정되는 모든 것들이 실행력을 갖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의 상호 이해, 의지, 실천이 반드시 필요하다.

 

 

 

출처. 7. 노동자의회 조직 (pp.65-73) 요약 정리.

 

저자- 안톤 파넨쿡 (Anton Pannekoek) 1873-1960. 네덜란드 천문학자, 맑스 연구가. 노동자 평의회 코뮤니즘 (Radencommunisme- 라데 코뮤니스머) 주창자.

– Workers Councils (노동자의회) 1941-42년 독일 나치의 점령 기간 저술됨.

발행-  프리즘 키 프레스 (Prism Key Press), 2010.

www.prismkeypress.com

 

 

      

   

 

 

 

   

 

 

 

https://en.wikipedia.org/wiki/Anton_Pannekoek

 

Anton Pannekoek - Wikipedia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Dutch astronomer and Marxist theorist (1873–1960) Anton PannekoekPannekoek in 1908BornAntonie Pannekoek(1873-01-02)2 January 1873Died28 April 1960(1960-04-28) (aged 87)NationalityDutchAlma materLeiden UniversityKno

en.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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