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에 썼던 글. 2019.nov.7.
1989년 5월, 한겨레 신문 광고를 보다가:
조국 논란 이후, 낙서 겸 메모: '민주당 586'이 부르조아 리버럴리스트임을 전국과 전 세계에 시연해주는 사건으로 남을 것이다. 부르조아나 리버럴리스트는 나쁜 말이 아니라, 그냥 역사책에 나오는 단어 그대로이다. 한때 진보적이었던 그런 의미로.
조국 교수를 비난한다고 해서 '경제,사회,문화,스포츠 민주주의'가 우리에게 떡허니 떨어지지 않는다.
- 뒤돌아 봐야할 주제: 민주당이나 정의당이나, 더 급진적이고 더 날카로운 좌파들이거나, 그 주제는 민주당586의 현재에 죽고 현재에 사는 '미래는 없는' 정치가 왜 아직도 주류 정치인가?이다. 자연사에 대한 두려움일까? 60세 회갑이나 70순 잔치 전에 공로탑이라도 하나 쌓아야 하는 조급증인가?
- 정치와 민주주의는 자동차 기술,수소차처럼 진화하지 않는다. 다른 방식을 취한다. 사실 이것을 강조한 사람들이 과거 80년대 민주당586들이었다. 민주당586의 정치적 뿌리는 80년 광주학살자 전두환과의 비타협적 투쟁에 있다. '파쇼와는 타협할 수 없다'
40년 지나 현실이 이렇다. 전두환과 그 파쇼도둑놈들은 1000억대 부동산 소유해서 부자로 떵떵거리며 '태극기 집회'나가고 있다.
80년 광주에서 많은 시민들이 총맞아 죽었다. 그 이후 학생운동가,시민들이 '전두환 타도'를 외치며 죽었다. 이들은 '현재'를 죽여 '미래'를 살리는 역사투쟁을 했다. '파쇼와 비타협적 투쟁'이 현재 자기 목숨을 죽여 '미래'를 살리는 결단이었다.
2019년 민주당 586의 정치는 '현재'를 죽여 '미래'를 살리는 정치는 거의 없다. '현재'에 살고 '현재'에 충성하고, '현재'만이 살 길이다.
'현재' 내 친구 동문이 장관, 국회의원,공기업 사장되면 '현재'가 좋은 것이다. 왜냐하면 '나'도 살기 바쁘고, 얼마남지 않는 시간에 '이거라도' 달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 정치와 민주주의는 수소차 개발과 같은 방식으로 진화하지 않는다. 맨 앞에 영어로 번역한 문장 원문을 보면 이렇다. "
오늘에 와서야 비로소 지배권력과 보수야당,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지 학자의 손아귀에서 광주를 해방시키고
노동자계급의 관점에서 재정립하고자 한 우리 노동해방문학과 이정로씨의 외침"
1989년 5월, 조국 전장관과 관련된 사노맹 매거진 "노동해방문학 5월호"
Lee jungro(백태
웅) and our magazine, called “the literature for emancipation of labor” has claimed that Kwangjoo Uprising of 1980
should be reinterpreted from working class perspectives that could genuinely liberate Kwangjoo from the distortion of
ruling classes, conservative opposition parties, bourgeois liberalist scholars on behalf of their interests.
His perspective is unanimously echoing among 10 million Korean working brothers and sisters day by day struggling for
the emancipation of them.
이건 1989년 5월 옛날 이야기고, 소시적 과격할 때 한 이야기이다. 아니 새삼스럽게 다 폐기한 글을 가지고 오나?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사람들의 공적 행복을 탐구하고 실천하는 정치나 정치학이나 경제학, 법학, 철학에서는 이런 [노동해방 1989년 5월호]의 주장을 30년, 60년, 100년 단위로 재해석하는 과정을 거친다.
- 내 결론은 시시하다. 1989년 이후, 아니 1989년부터 동유럽과 소련은 해체되고, 구 사회주의 체제는 자본주의나 미국 서유럽 체제에 비해 약점들이 훨씬 많았다는 게 입증된 셈이다.
당연히 소련, 동독도 한번도 가보지 않았던 김문수씨가 '소련이 망해서 나는 사회주의를 포기했소'라고 말할 수 있다. 탈출기는 어느 시대에나 다 있는 것이니까.
조국 교수는 이런 싸구려 김문수씨도 아니었다. 고 노회찬의 후원회장이었고, 또 청문회 장에서는 '나는 사회주의자이자 자유주의자 socialist and liberalist '라고 주장했다.
조국 교수의 말에 쾌감을 느낀 사람들도, 민주당586도 정의당 진보주의자들도 그랬다.
난 조국 교수가 말한 자기 정체성을 존중한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믿고 싶다.
그러나 조국 식 "정치 개혁" "법률 개혁"은 지난 2년간, 또 지금까지 보여준 게 거의 없거나 내용이 부실했다.
조국 전 민정수석은 결선투표제도, 선거제도 개혁 등에 대해서도 굉장히 미온적인 태도를 취했고, 소수자 권리 문제, 집회 시위 자유, 노동자 권리 등에 대해서도 중도우파적 시각을 드러냈다. 1989년 노동해방문학 5월호를 재방송하라는 게 아니다.
지식인으로서 교수로서 청년멘토로서, 조국 교수는 1989년 이후 자기가 변했으면 뭐가 변했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 1989년 노동해방문학 5월호에 나온 '이정로' 필명은 2019년 조국 수호를 외치며 검찰을 비난한 백태웅 교수다.
좌파하다가 우익 파시스트가 된 무솔리니도 있고, 중도-리버럴리스트로 변신한 사람들은 너무 많아 열거하기도 힘들다.
변신과 변화는 그 주체의 고독한 삶의 결단이자 결정이니,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왜 그렇게 변화했는지는, 조국 교수도 백태웅 교수도 설명은 해야 한다.
조국 논란에서, 조국 일가의 '합법 '불법' 논란만큼, 아니 그 보다 더 중요한 주제일 수 있다.
- 30년이나 지난 이야기를 해서 뭐하나?
공적 행복을 다루는 정치나 정치학에서, 30년은 짧은 시간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삶은 5천년 전이나 5천년 후나 그렇게 많이 변화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노동해방' '노동자' '80년 광주' '부르조아 리버럴리스트' 나 이런 단어들은 계속해서 재해석되고 다시 언급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과학철학자 토마스 쿤이 패러다임 paradigm 이라는 말을 그의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언급했는데, 상대주의 논란을 불러일으키긴 했지만, 토마스 쿤의 통찰력은 인문,사회과학에서도 유의미하다.
'민주주의' '노동해당' '노동자 개념 그 자체' '80년 광주' '부르조아 리버럴리스트' 등은 다 패러다임이자, 연구자 집단에 따라 재해석된다.
패러다임이란 '보편적으로 승인된 과학적 업적들이고, 연구자 집단에 모범이 되는 문제/해법을 제공해준다'
- 30년간 엄청나게 변했고, 또 한편으로는 정말 바뀌지 않고 그대로인 것들도 많다. 한국 민주주의가 발전한 것처럼 보이지만, 1997년 환란이후, IMF (복지 삭감 긴축 독재)를 수용한 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20년 통치기간에, '경제 민주주의'는 박정희 전두환 시절보다 더 못하게 후퇴한 것도 있다.
조국 교수와 백태웅 교수에게 듣고 싶다.
"오늘에 와서야 비로소 지배권력과 보수야당,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지 학자의 손아귀에서 광주를 해방시키고(1989)"
-> "오늘에 와서야 비로소 지배권력과 보수야당, 자유주의적 부르조아 학자의 손아귀에서 한국을 해방시키고 (2019), 한국 민주주의를 심층적으로 발전시킬 수는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