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대선에서 압도적으로 1위도 아닌 상황에서, 그리고 당선된 것도 아닌데, 굳이 '적폐수사' 운운할 필요가 있는가?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촛불시위와 탄핵성공으로 집권했지만, 국민개혁의 의지를 '실천'하지 못했다. 그래서 인기가 떨어졌다. 이러한 '개혁 실패'와 정치적 무능을 비판하면서, '보수파'로서 집권 청사진을 밝혀야 할 시점에, 문재인 정부 용어 '적폐수사'를 사용함으로써, 오히려 불필요한 논란만 일으켰다.
또한 중도층과 무당층 유권자들의 눈쌀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선거 전략이라는 측면에서 윤석열의 실수다.
여야 대권 레이스 가열
다시 불안해진 윤석열의 '입'... '적폐 수사' 발언, 소신? 실책?
입력 2022.02.12 04:30 수정 2022.02.12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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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8일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 청와대에서 열린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인사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입'에 대선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집권하면 문재인 정부에 대한 적폐청산 수사를 하겠다"는 윤 후보의 발언에 "정치 보복"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을 포함한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이 폭발하면서다. 윤 후보가 "내 사전에 정치 보복은 없다"며 확전을 피했으나, 발언 진의를 둘러싼 논란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대선 레이스 막판 불거진 돌발변수가 어느 쪽으로 유리하게 작용할지는 아직은 속단하기 어렵다. 국민의힘에서도 윤 후보의 거침 없는 화법이 여권이 결집하는 빌미를 줬다는 점에서 우려가 적지 않다.
확전 자제하는 윤석열과 국민의힘
국민의힘은 11일 윤 후보의 발언이 '정치 보복'이란 여권의 프레임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김기현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적폐 청산을 1호 공약으로 내걸었던 문 대통령이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게 의아하다"며 "불법과 부정이 있으면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해서 처벌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월성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등을 예로 들며 법과 원칙에 따라 규명하겠다는 '원론적인 발언'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반격의 대상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에게 맞췄다. 이 후보가 2017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적폐와 불의를 청산하는 게 정치 보복이라면 그런 정치 보복은 맨날 해도 된다"는 글을 끄집어 냈다.
문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인 비난도 최대한 자제했다. 문 대통령과 측근들을 구분짓겠다는 의도다. 윤 후보가 전날 문 대통령의 사과 요구엔 응하지 않았지만, 두 차례나 "우리 문 대통령"이라며 예우를 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선대본부 관계자는 "문 대통령을 둘러싼 거대한 권력 집단이 '내로남불'의 전형이어서 윤 후보가 정치에 뛰어든 게 아니냐"고 했다.
윤석열이 자초한 논란... 어느 쪽을 결집시킬까
윤 후보가 당장 '강 대 강' 충돌을 피하는 이유는 윤 후보의 '설화 리스크'가 촉발시켰기 때문이다. 다른 선대본부 관계자는 "윤 후보가 언론 인터뷰에서 말할 때 문 대통령을 조준한 게 아니었다"며 "측근들이 일으키는 적폐를 시스템에 따라 처벌한다는 뜻인데, 뜻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것 같다"고 했다. 윤 후보는 8일 국민의힘 정권교체동행위원회 인터뷰 동영상에는 "문 대통령은 정직한 분"이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윤 후보가 대선후보의 발언이 갖는 무게와 정치적 함의까지 고려하지 못한 실책이라는 해석이 많다. 선거 막바지 '문재인 대 윤석열' 구도를 만들어준 것도 민주당 지지층이 결집할 계기를 제공한 셈이다. 만약 지지율에도 영향을 줄 경우에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와의 단일화 국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 국민의힘 의원은 "박빙선거에선 실수를 하지 않는 게 중요한데, 지지율 상승 흐름만 타면 윤 후보가 이를 잊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호재로 보는 시각도 있다. 윤 후보가 문재인 정부에서 쫓겨난 정의로운 검사라는 이미지가 부각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국민의힘 의원은 "청와대와 민주당의 논리는 내가 하면 적폐 청산, 남이 하면 정치 보복"이라며 "민주당이 결집할수록 정권교체 민심도 하나로 모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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