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정치/정의당

노회찬 의원의 명복을 빌며 - 윤동주 시인의 '길'

by 원시 2018. 7. 26.

정치가의 말의 품격보다도 더 소중한 한국 민주주의의 품격을 한 단계로 올려놓았던 노회찬 의원의 명복을 빕니다.


 '나도 힘들어, 우리도 어려워' 그런 한 순간에, 우리는 노회찬을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믿기도 힘듭니다. 모든 것을 혼자 짊어지고 길을 떠나버린 진보정당 마에스트로 노회찬, 그가 밉기도 합니다. 


광주 518 도청문을 굳게 닫았던 사람들처럼, 당신의 양심의 문을 굳게 닫아 모든 적들을 예단해버렸던 그 외로운 선택 앞에, 부담을 나눠 짊어지지 못한 자책감은 길고도 진하게 남을 것입니다. 


'꿈이 뭐냐고 물었죠?' '오지에 가서 봉사활동하는 것'이 노회찬 의원이 하고 싶은 일이라고 했습니다. 


첼로보다도 피리를 잘 불었다는 소년 노회찬, 단아한 어머니를 그대로 본뜬 것 같은 수줍음 많던, 철학을 좋아했던 노회찬은 '세상의 부름'에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 마치 인민 혹은 시민 광대처럼 촌철살인 어록을 남겼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어록이 뭐냐고' 물었습니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한 게 아니라, 만 명만 평등하다' 이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노회찬 의원은 자평했습니다. 


노회찬은 스스로 삶을 응축했습니다. 그 후대세대 주역들을 위해, '만인의 평등'을 앞당길 사람들을 위해 그 길을 개척할 사람들을 위해 또 하나의 길을 터준 것입니다. 너무나 아프게 말입니다.



길 - 윤동주


잃어 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