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야 한국도 살빼고, 몸무게를 줄이고 있고, 먹을 것이 남아서 버리는 사람들 숫자가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더 많다. 한국 전쟁 이후, 아니 그 이전 일제시대, 조선 봉건왕조 시대에도 대다수 민중들에게는 요리나 집안 살림은 '조연'이 아니었다. 삶의 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진지 잡수셨습니까? (식사하셨습니까?)'가 동네의 기본 인사였다.
살림이나 요리를 주로 여자가 담당했고, 그것을 '조연급' 노동이라고 한 것은, 그 시대상을 반영하는 것이고, 그만큼 인류사에 대한 무지와, 또 중요성을 사회적으로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서적 유대감'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살림 노동이나, 요리 노동의 가치에 대해서, 사회공동체 유지라는 측면에서 재해석되어야 한다.
- 전국 자취생들 연합회를 만들어서 이 문제를 공론화시켜야 한다
수박 썰고, 주방 청소했을 뿐 인데… 540만뷰 살림 영상의 인기 비결은?
입력 2021.07.11 17:03 수정 2021.07.11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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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 유튜버 꿀주부가 수박을 먹기 좋게 자르는 다양한 방법을 소개하는 영상. 한 달 만에 6만 회 넘게 재생됐다. 꿀주부 유튜브 캡처
수박 한 통이 순식간에 먹기 좋게 잘라진다. 네모로, 세모로, 얇게. 네모반듯한 수박을 보관 용기에 가지런히 담는 모습을 보는데 왠지 기분이 편안해진다. 수박을 자를 엄두가 안 나서 혹은 귀찮아서 반으로 자른 수박을 파먹어 본 사람이라면, 남은 수박은 어떻게 해야 하나 난처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더 영상에서 눈을 뗄 수 없을 것이다.
집안일의 재발견이라 할 만하다. 청소와 빨래, 식재료 다듬기 같은 살림 영상들이 온라인에서 주목받고 있다. 유튜버 '꿀주부'의 3분이 채 안 되는 이 '수박 한 통 시원하게 자르기' 영상은 올린 지 한 달 만에 6만 회 넘게 재생됐다. 일거수일투족 관심을 받는 연예인도 아니다. 일반인이 쓸고 닦고 밥 해먹고 치우는, 어느 집에서나 벌어지는 모습에 사람들이 '힐링된다'며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설거지했을 뿐인데... "청소는 영혼을 정화하는 일"
유튜버 하미마미가 아침 설거지를 하는 모습을 찍은 영상. 2019년 12월에 올린 이 영상은 540만 회가 재생됐다. 하미마미 유튜브 캡처
'살림 유튜버'들의 영상 주제는 거창하지 않다. 지극히 소소한 일에 간단한 살림 팁을 더한 게 다다. 대파, 양배추 등 식재료의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보관하는 방법, 거칠어진 나무 그릇과 도마를 관리(오일링)하는 방법, 천연세제로 주방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방법 등이다.
살림 유튜버 '하미마미'의 '깨끗한 주방을 유지하는 작은 습관/ 생활 속 일회용품 줄이는 법' 영상도 그의 일상을 담담히 보여줄 뿐이다. 아이를 등원시키고 집에 와서 설거지를 하고, 주방의 기름때를 닦고, 베이킹소다와 과탄산소다로 행주를 소독하고, 김밥을 일회용기가 아닌 반찬통에 담아와 먹는 내용이 다지만 이 영상은 올린 지 1년 반 만에 540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코로나로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살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영향으로 보인다"며 "특히 살림과 같은 일상에 대한 노하우는 한국만이 아니라 외국인도 접근하기 쉬운 공감 폭이 큰 소재"라고 설명했다. 구독자 중에는 실제로 외국인 비율이 상당하다. 많은 살림 유튜버들이 다양한 언어로 외국어 자막을 제공하는 이유다.
살림 유튜버 꿀주부가 나무 도마를 관리하는 모습. 꿀주부 유튜브 캡처
뉴욕타임스(NYT)도 지난 2월 '집순이의 지혜(Lessons From a Homebody)'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 살림 유튜버들을 소개했다. 기사는 "한국 유튜버들이 청소, 요리 등 집을 가꾸면서 느끼는 기쁨을 주제로 영상을 공유하고 있다"며 "살림 유튜버 영상은 코로나19 팬데믹 전부터 있었지만, 작년부터 인기를 더 끌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살림, 조연에서 주인공으로
하미마미가 대파를 다듬어 보관하는 방법을 찍은 영상. 하미마미 유튜브 캡처
이들 영상은 살림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같다. 영상에는 유튜버 얼굴이 나오지 않는다. 오디오는 최소한의 대화로만 구성하고, 잔잔한 배경음악으로 채운다. 제작자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자막으로 처리하다 보니, 보는 사람도 오롯이 살림에만 집중하게 된다. 오랜 시간 주변부에 머물렀던 살림이라는 노동이 조명받는 시간이다.
'하미마미(34)'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이었는데, 영상으로 공유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집안일의 가치에 대해 공감해주고 응원해주는 게 의미있다고 생각한다"며 "아이를 낳고 휴직을 하게 되면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많았는데, 영상을 만들고 자존감이 많이 회복됐다"고 말했다.
살림 유튜버 어느덧오늘이 소프넛으로 천연 세제를 만드는 영상. 어느덧오늘 유튜브 캡처
영상에는 실제로 각국의 언어로 공감과 지지의 댓글이 달린다. "청소가 따분하고 하찮은 일이 아니라 영혼을 정화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해준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우울증으로 무기력한 마음에 동기 부여를 해준다" 등이다.
유튜버 본인에게도 돌봄 노동, 집안일의 가치를 깨닫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육아 휴직을 하면서 살림 영상을 찍기 시작한 유튜버 '어느덧오늘(32)'은 "회사를 다닐 때는 회사 일에 매몰돼 거기서 인정받는 게 가장 중요했는데, 집안일을 하면서 보니까 이건 정말 또 다른 우주고 세상"이라며 "그동안 묵묵히 집안일을 해왔던 모든 엄마들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초등학생 두 아이를 키우는 '꿀주부(41)'도 "살림 영상을 만들게 되면서 스스로도 별거 아닌 일이라고 여겼던 밥 차리고 청소하는 일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며 "제로웨이스트 살림법처럼 작은 실천으로도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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