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철학2020. 5. 7. 17:47

노회찬 "6411버스 노동자"와  베버 "노동자" 관점 차이: 베버가 본 독일 노동자 계급 - 정치적 리더십 소명의식과  권력본능 결여  


1. 몇 년간 정의당의 어떤 모순을 관찰해오고 있다.  노회찬은 " 6411번 노동자 정당이 정의당이다"라고 했지만, 막스 베버는  "독일 노동자들은 정치적으로 미성숙하고, 정치적인 변화를 꺼려하고 인습에 안주하기 때문에, 독일 정치의 미래가 될 수 없다"고 1919년에 주창했다. 


정의당 전체는 아니지만, 일부 당원들과 진보비즈니스 단체의 막스 베버  '책임정치' 바겐세일이 놓치고 있는 것은, 노회찬의 "6411번 버스 노동자"가 투명인간이 아니라 한국 참여민주주의의 주체, 노동해방의 주인이라는 것이다. 

 

정의당이 2020 총선에서 거의 모든 후보들이 '노회찬의 6411 버스'를 자신의 정치노선으로 한번 이상씩은 언급했다. 이런 사실을 감안하면, 형식 논리적으로보면, 정의당은 '노회찬의 6411번 버스 노동자' 관점을 버리던가, 막스 베버의 부정적이고 비관주의적 '노동자 관점'을 버리던가 해야 한다.


막스 베버는 독일 노동자들을 자신이 주장하는 독일 리버럴 민주주의 주체로도 간주한 적도, 그런 정치적 구상을 한 적도 없다. 독일 노동자 계급의 현 상태 (존재: Sein)가 이러하니, 정치적으로 각성된 정치 주체로 되어야 한다( 당위 Sollen)는 것도 연구하지 않았다. 


 한국 노동자들, 모든 비정규직도, 아니 비정규직 50%도 정의당에 투표하지 않는다. 정의당이 그들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정책을 발표해도 투표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현 상태와 정치의식 사이에 존재하는 커다란 간극을 좁히기 위해 연구하고 학습하고 토론하고 실천하고 조직하는 것이다. 그게 진보정당으로서 정의당이 해야할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월급받는 노동자들을 '정의당 한번 찍어주는 팬'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당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정당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야말로 정의당의 '정치 신념이자 확신'이 되어야 한다.


2.  1895년 막스 베버가 프라이부르그 대학교수 취임 연설에서 나타난 "노동자"에 대한 태도와 관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막스 베버가 31세되던 1895년 5월 프라이부르그 대학에 교수가 되어 취임강연을 했는데, 그 제목이 “민족국가와 민족경제정책“이다. 연설 말미에, 베버는 독일 노동자 계급이 독일 미래의 주체가 될 수 없다고 진단했다. 왜냐하면 독일 노동자계급은 경제적 이득을 위해서는 조직적인 투쟁을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독일 노동자들을 좌지우지 하는 저널리스트 집단보다 훨씬 더 미성숙하기 때문이다.


 베버는 로마 역사와 프랑스 혁명 시기 1792-5년 국민공회의 분위기와 독일 노동자 계급을 비교한다. 독일 노동자계급에게는 로마 귀족 카틸리나의 반역 에너지의 불꽃도 없고, 프랑스 국민공회에 불었던 강력한 민족적 열정의 기미도 없다. 독일 노동자들은 정치적 거장의 덕목이나 능력은 없고, 정치적 소-장인(Kleinmeister)에 불과하다. 


정치적 지도력이라는 소명을 부여받은 계급에게 볼 수 있는 위대한 권력 본능이 독일 노동자계급에게는 결여되어 있다. 또한 독일 노동자계급은 정치적인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정치적인 변화를 별로 희구하지도 않고, 인습과 관습에 순치되어 있다고 봤다. 


독일 노동자처럼 정치적인 학습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정치리더가 되면, 가장 파괴적인 집단이고, 따라서 우리들의 정치적 적이라고 막스 베버는 진단했다. 독일 노동자계급이 정치적으로 성숙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부하기 좋아하는 사람이고 인기의 왕관을 쓰고자 하는 안달복달하는 자일 뿐이다. 


3. 정의당 노회찬의 대표 수락 연설에 나타난 "6411번 버스 노동자" 관점


"새벽 4시 5분에 출발하는 6411번 버스타고 강남으로 출근하는 비정규직 청소노동자, 이분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름이 있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그냥 아주머니입니다. 그냥 청소하는 미화원일 뿐입니다. 한 달에 85만원 받는 이분들이야말로 투명인간입니다. 존재하되, 그 존재를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는 분들입니다 (......)


그 누구 탓도 하지 않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만들어 나가는 이 진보정당, 대한민국을 실제로 움직여온 수많은 투명인간들을 위해 존재할 때, 그 일말의 의의를 우리는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상 그동안 이런 분들에게 우리는 투명정당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정치한다고 목소리 높여 외치지만 이분들이 필요로 할 때, 이분들이 손에 닿는 거리에 우리는 없었습니다. 존재했지만 보이지 않는 정당, 투명정당, 그것이 이제까지 대한민국 진보정당의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이제 이분들이 냄새 맡을 수 있고, 손에 잡을 수 있는 곳으로, 이 당을 여러분과 함께 가져가고자 합니다. 여러분 준비되었습니까?"



4.  정의당의 '노동자 관점' - 직장인, 월급쟁이에 대한 관점은 무엇인가,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노동자, 월급쟁이, 학생, 비정규직, 주부, 노인은 현금이나 쥐어주는 단순한 복지시혜 대상이나 불우이웃이 아니다. 선거 때 정의당 찍어주는 팬클럽 회원에 그쳐서도 안된다. 


그들의 일터에서, 휴식터에서, 놀이터에서, 노동의 현장과 노동의 바깥 공간에서 그들의 희로애락이 담긴 말, 글, 행동이 정의당으로 흘러 들어와야 한다. 











참고 자료




1895년 막스 베버, 프라이부르그 대학 취임 강연 - (번역 요약) 원시 


민족국가와 민족경제정책 (Der Nationalstaat und die Volkswirtschaftspolitik) 

뒷부분 pp.30-32 


막스 베버는 비르마르크 체제 하에서 독일 부르주아 계급이 정치적으로 미성숙해서 경제적인 대의도 가지고 있지 않고, 정치적으로도 교육받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어떠한 경제적 요소가 그러한 정치교육을 대체할 수 없다.


그렇다면 부르조아 계급도, 대토지 지주인 융커 계급도 아닌, 어떤 다른 계급이 정치적으로 더 위대한 미래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현대 노동자가 자신있게 부르주아 계급의 이상의 상속자라고 선언하다.

노동자 계급이 독일 정치의 지도자가 될 전망은 있는가? 


오늘날 독일 노동자계급이 정치적으로 성숙하거나, 정치적 성숙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고 누군가 말한다면, 그 사람은 아부쟁이 (쉬마이쉴러)이고, 수상쩍은 인기의 왕관을 쓰고 싶어하는 자일 것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독일 노동자계급의 최상층은 자기중심적인 자산가계급이 인정하는 것보다 훨씬 더 성숙했다. 독일 노동자 계급은 또한 공개적이고 조직적인 경제적 권력투쟁이라는 방식을 통해 그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자유를 정당하게 요구한다. 


그러나 정치적인 측면에서는, 독일 노동자계급은 저널리스트-패거리들보다 훨씬 더 미성숙하다. 그 일단의 패거리들은 리더십을 독점하고 싶어하고 노동자계급에게 그것을 믿게 만들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지위가 강등당한 부르주아들의 영토 안에 머무르면서, 독일 노동자들은 100년 전 추억놀이에 빠진다. 그들의 불안한 정서 때문에, 그들 마음 속에서는, 1792-5년 프랑스 혁명 국민공회 (National Convention) 대표자의 정신적 후계자들이라는 생각이 자리잡기도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독일 노동자들은 그들이 스스로 현실에서 보여주는 것보다 더 위험하지도 위협적이지도 않다. 그들에게는 로마 귀족 카틸리나의 반역 에너지의 불꽃도 없고, 프랑스 국민공회에 불었던 강력한 민족적 열정의 기미도 없다. 


독일 노동자들은 정치적 거장이 아니라 능력이 모자란 정치적 소장인에 불과하다. 정치적 지도력이라는 소명을 부여받은 계급에게 볼 수 있는 위대한 권력 본능이 독일 노동자계급에게는 결여되어 있다. 



노동자들이 정부 공동 운영의 한 축으로서 참여할 때, 자본에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만이 그들의 정치적 적들이 아니다.  독일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노동자들이 자본과의 공통적인 이해관계 공동체를 형성한 흔적들이 거의 없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노동자들의 정치적 성숙함에 대해 묻는다, 왜냐하면 

정치적인 교육을 받지 않고, 사회가 이미 옳다고 정해놓은 것만 하고, 정치적인 변화를 원치 않은 인습에 순치된 사람들이 한 나라를 지도하게 내버려 두는 것이야말로 가장 파괴적인 일이기 때문이고, 독일 노동자들은 이러한 성격을 아직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의 정치적 적이다.  



왜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노동자들은 독일 노동자들과 부분적으로 다른가?  

잉글랜드 노동자들이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기 위해 조직적으로 투쟁하면서 완성시킨 더 오래된 경제교육 때문만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한 정치적 계기가 있었기 때문에 그게 가능했다. 그것은 바로 잉글랜드의 세계 강대국의 지위에 대한 노동자들의 공감 때문이었다.  


이것은 잉글랜드가 지속적으로 정치적 강대국의 과제를 해결하게 만들고,   개인들이 끊임없이 정치적인 학습을 받게 만들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우리 독일인들은 국경선이 위험에 빠질 때나 긴급하게 그 정치적인 학습을 받는다.


큰 정치가 강력한 정치적 권력문제의 중요성을 우리들에게 똑똑히 보여줄 것인가라는 문제는 우리 독일 발전에서도 또한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우리는 독일의 통일은 옛날에 저질러버린 유년시절 장난이었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통일이 독일 세계권력정치의 출발이 아니라 종지부라면, 그 값비싼 비용 때문에 중도포기가 더 나았을 것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독일의 위험한 상황이란, 국가의 권력이해관계의 담지자로서 부르주아 계급이 힘이 없어 보이고, 노동자계급이 부르주아 계급의 지위를 떠맡을 정도로 성숙해질 징조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회의 깊이에 최면걸려 거기에 빨려 들어간 것처럼 바라보는 사람들이 믿는 것처럼, 위험은 대중에 있지 않다.피지배자의 경제적 상태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위로 성장하는 지배계급의 정치적 자격조건에 대한 질문이 사회정치적 문제의 궁극적인 내용이다. 


우리의 사회정치적 활동 목표는 세상사람들의 행복이 아니라, 험난한 미래의 투쟁을 위해 민족국가의 사회적 통합을 달성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통합은 근대 경제발전 과정에서 해체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오늘날 노동운동에 결여된 정치적 의미를 갖게 될 “노동귀족”을 성공적으로 탄생시킨다면, 부르주아의 팔이 아직은 창을 던질 만큼 충분히 강하지 않아 보이지만, 그것은 최초로 더 넓은 어깨 위에 놓여지게 될 것이다. 그 날이 오려면 한참 더 가야겠지만.



Werden andere Klassen die Träger einer politisch größeren

Zukunft sein? Selbstbewußt meldet sich das moderne Proletariat

als Erbe der bürgerlichen Jdeale. Wie steht es mit seiner

Anwartschaft auf die politische Leitung der Nation?


Wer heute der deutschen Arbeiterklasse sagen würde, sie s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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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sch reif oder auf dem Weg zur politischen Reife, der

wäre ein Schmeichler und strebte nach der fragwürdigen Krone

der Popularität.


Oekonomisch sind die höchsten Schichten der deutschen

Arbeiterklasse weit reifer, als der Egoismus der besitzenden Klassen

zugeben möchte, und mit Recht fordert sie die Freiheit, auch in der

Form des offenen organisierten ökonomischen Machtkampfes ihre

Jnteressen zu vertreten. Politisch ist sie unendlich unreifer, als

eine Journalistenclique, welche ihre Führung monopolisieren

möchte, sie glauben machen will. 


Gern spielt man in den Kreisen

dieser deklassierten Bourgeois mit den Reminiscenzen aus der

Zeit vor 100 Jahren - man hat damit in der That erreicht,

daß hier und da ängstliche Gemüter in ihnen die geistigen Nach-

kommen der Männer des Konvents erblicken. 


Allein sie sind

unendlich harmloser, als sie selbst sich erscheinen, es lebt in ihnen

kein Funke jener katilinarischen Energie der That, aber freilich

auch kein Hauch der gewaltigen nationalen Leidenschaft, die

in den Räumen des Konventes wehten.


 Kümmerliche politische

Kleinmeister sind sie, - es fehlen ihnen die großen Macht-

instinkte einer zur politischen Führung berufenen Klasse. 


Nicht

nur die Jnteressenten des Kapitals, wie man die Arbeiter glauben

macht, sind heute politische Gegner ihrer Mitherrschaft im Staate.

Wenig Spuren der Jnteressengemeinschaft mit dem Kapital

fänden sie bei Durchforschung der deutschen Gelehrtenstuben. 


Aber:

wir fragen auch sie nach ihrer politischen Reife, und weil

es für eine große Nation nichts Vernichtenderes giebt, als die

Leitung durch ein politisch unerzogenes Spießbürgertum, und

weil das deutsche Proletariat diesen Charakter noch nicht ver-

loren hat, deshalb sind wir seine politischen Gegner. Und weshalb


ist das Proletariat Englands und Frankreichs zum Teil anders

geartet?


Nicht nur die ältere ökonomische Erziehungsarbeit,

welche der organisierte Jnteressenkampf der englischen Arbeiter-

schaft an ihr vollzogen hat, ist der Grund:


 es ist vor allem

wiederum ein politisches Moment: die Resonanz der

Weltmachtstellung, welche den Staat stetig vor große macht-

politische Aufgaben stellt und den einzelnen in eine chronische

politische Schulung nimmt, die er bei uns nur, wenn die Grenzen

bedroht sind, akut empfängt.


 - Entscheidend ist auch für unsere

Entwicklung, ob eine große Politik uns wieder die Bedeutung

der großen politischen Machtfragen vor Augen zu stellen ver-

mag. 


Wir müssen begreifen, daß die Einigung Deutschlands ein

Jugendstreich war, den die Nation auf ihre alten Tage beging

und seiner Kostspieligkeit halber besser unterlassen hätte, wenn

sie der Abschluß und nicht der Ausgangspunkt einer deutschen

Weltmachtpolitik sein sollte.


Das Drohende unserer Situation aber ist: daß die bür-

gerlichen Klassen als Träger der Machtinteressen der Nation

zu verwelken scheinen und noch keine Anzeichen dafür vorhanden

sind, daß die Arbeiterschaft reif zu werden beginnt, an ihre

Stelle zu treten.


Nicht - wie diejenigen glauben, welche hypnotisiert in die

Tiefen der Gesellschaft starren, - bei den Massen liegt die Gefahr.

Nicht eine Frage nach der ökonomischen Lage der Be-

herrschten, sondern die vielmehr nach der politischen Quali-

fikation der herrschenden und aufsteigenden Klassen ist

auch der letzte Jnhalt des sozialpolitischen Problems. 


Nicht

Weltbeglückung ist der Zweck unserer sozialpolitischen Arbeit,

sondern die soziale Einigung der Nation, welche die moderne

ökonomische Entwicklung sprengte, für die schweren Kämpfe der

Zukunft. Gelänge es in der That, eine "Arbeiteraristokratie" zu

schaffen, welche Trägerin des politischen Sinnes wäre, den wir heute

an der Arbeiterbewegung vermissen, dann erst möge der Speer,

für welchen der Arm des Bürgertums noch immer nicht stark

genug zu werden scheint, auf jene breiteren Schultern abgelegt

werden. 


Bis dahin scheint es noch ein weiter Weg.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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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후후히히하하호호흐흐허허

    이런 컨텐츠를 무료로 몰래 염탐해서 볼 수 있다는 게 충격적입니다. 기자들보다 깊이 있고 학자들보다 열정적인 필진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세계에 대한 해석에 깊이가 있고 열정이 있고 진득한 호기심과 문제의식이 있는 분을 못내 뒤지고 있었어요. 저는 맑스 베버의 대표작만을 읽었고 루카치부터 하버마스까지 역시 대표저작을 한 개씩 일독한 정도입니다. 공부할 때 생각이 나고 그때 그들의 문장을 읽으며 느꼈던 기묘한 열정과 당혹감이 다시 떠오르네요. 감사합니다.

    2020.06.19 18:22 [ ADDR : EDIT/ DEL : REPLY ]
    • 지루한 글일 수 있는데, 읽어주시고 댓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베버, 루카치 책 읽으신 거 메모도 남겨주시고 그러세요....

      2020.07.02 16:05 신고 [ ADDR : EDIT/ DEL ]

한국정치/정의당2020. 5. 1. 01:14

‘소명’ 이라는 단어의 역사성에 대한 메모. 


페이스북에 보면 정의당 당원들 중 일부가 ‘소명으로서 정치’, 확신(신념) 정치와 책임 정치를 구분하는 막스 베버 이야기를 올린다. 처음에는 칼 마르크스와 막스 베버를 연계시켜 이해하려는 제 2의 칼 뢰비트나 루카치,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시도인 줄 알았다. 


요새는 한국이나 미국 유럽 학계가 ‘철지난 지식 상품’으로 간주해서 잘 다루지 않지만, 위르겐 하버마스의 “의사소통행위 이론” 1권 4부 제목이 “루카치에서 아도르노: 사물화로서 합리화”, 1장 제목은 ‘서구 마르크주의 전통에서 막스 베버’이다. 


하버마스가 베버의 합리화 이론을 공부한 것은, 사적 소유에 기초한 자본주의 시장체제는 근본적으로 혹은 급진적으로 개혁될 수 있다는 믿음을 폐기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97년 IMF ,2008년 미국 금융공황,  2020년 한국 자본주의 금융 시장은 라임 등 각종 사모펀드 범죄 혐의로 8개월째 난리인 상황을 고려하면, 자본주의 시장을 ‘합리화 과정’이라는 탐침으로 설명할 수 없음은 너무나 자명하다. 


잉글랜드 자본주의 탄생을 막스 베버는 사회진화론적 ‘합리화’ 과정으로, 칼 마르크스는 ‘노동자의 착취와 소외’가 산출한 잉여가치의 자본으로 환골탈태의 과정으로 설명했고, 이 둘 간의 간극은 아직도 너무 크다. 둘 중에 하나 선택 문제가 아니라, 현실 설명과 비판의 구체성이 더 중요하다.


막스 베버는 마르크스의 ‘자본’이 출간되기 3년 전에 태어났고, 독일 패망 후 2년 후, 지금으로부터 100년전 1920년에 별세했다. 베버는 노동자의 소외나 자본주의 착취구조를 주로 탐구하지 않았고, 당시 유럽 국가들에 노동자들이 정당을 만들 때도, ‘그런 교회는 가담하지 않겠다’고 할 정도로 냉랭한 태도를 취했다. 왜 그랬을까? 막스 베버에게는 다른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막스 베버의 정치적 목표는 동쪽의 러시아의 팽창으로부터 독일 독립을 사수하는 것이고, 프랑스와 영국, 특히 영국에 뒤처진 독일 자본주의화를 가속화하고 리버럴 민주주의 체제를 확립하는 것이었다. 


막스 베버에게 독일 산업화와 리버럴 민주주의 전차는 독일 중상층 리버럴,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국가 공무원들이다. 헤겔이 ‘법철학’에서 밝힌 신 독일 입헌공화국의 주체로 ‘교양있는 공무원’을 설정한 것과 거의 유사하다. 막스 베버는 잉글랜드의 자본주의 발달과 달리, 독일에서는 국가가 직접나서서 산업자본주의를 키워야 한다고 봤다. 독일이 산업자본주의를 잘 발전시킨다면 부르조아와 노동자 계급의 이익-이해관계는 서로 어긋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막스 베버는 독일 노동자와 사민당에 대해 불신했는데,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사민당이 집권하게 되면, 경제가 중앙집중적으로 통제되고 관리되기 떄문에 거대한 관료주의 체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내다봤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유럽과 러시아 지식인들과 노동자들 사이에 퍼진 ‘혁명적 열정’을 위험하다고 비판했다. 1907년 미헬스 (Michels)에게 보낸 편지에서, 막스 베버는 “사민당 (에스페데)에 가담할 생각은 없고, 어떤 당에도 가입하지 않았지만, 부르주아 정당에 가까운 입장을 표명했다”고 썼다.


1919년 1월 28일, “소명으로서 정치” 강연에서 그는 자긍심으로 가득찬 혁명이라는 대의에 들뜬 러시아 인텔리겐차들은 책임감이 없는, 목표도 없고, 불명료한 지적으로 흥미로운 로맨티시즘에 빠져있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막스 베버의 공산당 관료독재 체제가 러시아 등 사회주의에 탄생할 것이라는 예언을 두고, ‘거 봐라 막스 베버가 옳았다’는 찬사가 반공주의자와 리버럴리스트 사이에서 쏟아지기도 했다. 그런데 필자가 보기에는, 칼 마르크스와 그 친구 프리드리히 엥엘스 (엥겔스는 일본인들이 잘못 들어서 엥겔스로 적은 것으로 보임)는 ‘소련에 가서 우리 동상 다 치워, 이것은 우리가 말한 게 아니다’라고 데모했을 것이다.


베버의 ‘소명으로서 정치’를 읽고 취할 점은 배우고, 비판적인 태도도 취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역사적 맥락’ 속에서 ‘소명으로서 정치’를 독해해야지, 이 내용을 한국 진보정당의 ‘정치 윤리’로 승격시켜서는 곤란하다. 독일은 1차 세계대전 전범자 국가이고, 그 ‘책임정치’의 주체들은 누구여야 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당시 조선은 1919년 31독립운동할 때였다.


아울러 ‘소명’이라는 단어도, 막스 베버가 1904~5년에 쓴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말했듯이, 서구 기독교, 카톨릭으로부터 신교의 분리과정, 루터, 칼뱅, 리처드 박스터 등이 ‘소명’을 어떻게 사용했는가를 살펴야 한다.


사실 이러한 ‘소명’ 개념은, 근래 한국 정치에서도 있었다. 이명박이 하느님의 소명에 따라 ‘서울시’를 하느님의 나라로 봉헌한 적이 있다. ‘소명’ 단어는 우파도, 좌파도, 리버럴도 다 쓸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야기가 너무 번져서, ‘소명’이라는 단어의 역사성만 간략히 설명하자.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읽은 진보정당 독자라면, 딱 한 줄 감상평을 남길 것 같다. 그것은 바로, 저임금 노동자의 일도 그 노동력을 착취하는 고용자의 ‘일과 직업’ 모두 ‘소명’에 속한다면, 그 ‘소명’을 명한 신은 누구 편을 들겠는가?


그러나 청교도 금욕주의를 강조했던 사람들의 논리는, ‘그것이 바로 신의 소명’이라는 동어반복을 할 것이다. 사실 이 점은 막스 베버도 책 말미에 지적한다. 가난한 저임금 노동자의 ‘소명’도 신을 기쁘게 하고, 그들을 착취하는 자본가의 ‘소명’도 신을 기쁘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막스 베버는 이 주제를 깊게 탐구하지 않는다. 그의 관심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막스 베버는 왜 ‘소명’을 강조했는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 밝히고자 한 것은, 중국과 인도에도 없고, 이집트와 이슬람 문명권도 없는, 서구 문화의 고유고 특수한 합리주의는 무엇이길래, 자본주의가 잉글랜드와 서구에서 발달되었는가이다.


막스 베버의 주장은 청교도 금욕주의가 서구 자본주의의 탄생을 가능하게 했던 ‘부르주아 행동’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중국, 인도, 이슬람 문명권에는 없는, 서구에서만 경제 기술 과학 군사 법 행정의 ‘합리화’ 과정이 있었다. 도대체 이것을 무슨 단어로 설명을 해야 하는가?


 막스 베버에 따르면, 서구 경제적 합리주의 발달이 부분적으로는 합리적 기술과 법 때문에 가능했지만, 어떤 종류의 실천적이고 합리적인 행동을 채택하느냐는, 행위 주체의 능력과 성향에 따라 결정된다. 그렇다면 그 행위 주체의 성향과 능력을 결정짓는 게 무엇인가? 막스 베버는 경제적 합리적 행위를 기초하는 주술적이고 종교적인 힘, 의무에 대한 윤리적 생각 등이 ‘행동’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결정요소라 주장했다. 


따라서, 중국, 인도, 이집트에는 없는 그 무엇, 서구에서만 가능했던, 자본주의의 탄생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자본주의) 경제 체제 속에 사는 집단의 신념과 태도(에토스),  특정 종교적 사상이다.  그것이 바로 청교도의 ‘금욕주의’이다. 


청교도 금욕주의란 무엇인가?


잉글랜드 청교도 지도자 리차드 박스터의 ‘종교적 금욕주의(절제주의)’는 다음과 같다.신의 의지가 명령한 삶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신의 은총을 받기 위해서, 인간은 자기 맡은 바 ‘일’, 그 ‘노동’을 신이 준 ‘소명’으로 간주하고, 성심성의껏, 양심껏, 아주 근면한 태도로 그 일을 해야 한다. 이것을 가능하게 만든 것이 바로 ‘종교적 금욕주의’다.


프로테스트탄의 윤리 – 절제주의적 삶과 ‘소명’의식이 자본주의 경제 질서 체제를 탄생시키는 과정을 베버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청교도는 ‘소명’을 따르며 노동했다. 우리는 마땅히 그래야 한다. 수도원의 금욕적 삶이 우리 일상에서 관철될 때, 우리 현실 생활에서 지배적인 도덕이 되었을 때, 그 금욕주의는 근대적 경제 질서라는 어마어마한 우주를 창조해내는 역할을 했다” 


진보적인 정치 이론과 담론에 조금이라도 익숙한 사람이라면, 이러한 막스 베버의 자본주의 탄생의 원동력이 ‘청교도의 금욕주의적 삶’과 ‘소명으로서 노동과 직업’의 실천이라면, 임금 노동자와 그들의 삶은 어떻게 설명하느냐라는 질문을 바로 던질 것이다.


그러나 막스 베버는 ‘노동자의 소외와 착취’는 탐사 주제와 또 연구방법론으로도 채택하지 않았다. 


사회과학 연구자들 역시 명료한 자기 정치적 목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특히 막스 베버는 독일 대토지 계급인 융커 (Junker)도 산업 노동자들도 독일 국가 건설의 기관차로 간주하지 않았다. 


막스 베버의 초점은 “근대 서구 정치 경제 기술을 만든 사람들”이었고, 그들은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국가 공무원들이었다. 이것은 중국 인도에도 없고, 이집트 등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다는 게 베버 연구 결론이다.


 


그는 기술, 상업과 무역, 법률 국가공무원들이 한 사회의 일상 생활의 가장 중요한 기능들을 수행했다고 설명하고, 3가지 서구 자본주의의 특질을 1) 회사와 개인 재산의 분리, 2) 합리적인 비즈니스 회계장부 작성, 3) 자본주의적 노동 조직화 (*막스 베버는 노예 노동의 비효율성 지적)로 서술했다. 서구에만 부르주아와 근대 시민 개념이 있었다. 노동자 계급도 서구에만 있었다. 왜냐하면 서구에만 법적인 ‘통제와 처벌 discipline’ 을 통해서 자유로운 노동을 합리적으로 조직화했기 때문이다.  


물론 서구 자본주의 탄생과 정신을 프로테스탄트 윤리, 청교도 금욕주의에서 찾는 베버의 주장과 진단은 많은 비판에 노출되었다. 


왜 한국, 홍콩, 싱가폴, 타이완이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자본주의 산업화와 경제성장이 가장 빨랐는가? 그 이유를 베버처럼 “유교의 근면성 강조와 가족주의’에서 찾으면 될 것이라고 했지만, 막상 한국에 와보니, 인구 30% 가량이 기독교 신자여서 ‘도로 프로테스탄트 금욕주의로’ 였다는 농담이 있다.


사실 책 서두에서도 베버가 직접 밝히지만, 이러한 베버의 자본주의 정신과 기원에 대한 탐구 방법이 나오게 된 것은 몽테스키외 발언 때문이었다. 조선으로 치면 숙종, 장희빈 그 즈음인데, ‘법의 정신’을 쓴 프랑스 계몽주의 시대 사상가 몽테스키외가 잉글랜드 사람들이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가장 잘 만들어놓은 3가지를 언급했다. 그 세가지는 1) 독실한 종교적 믿음과 행동, 2) 상업과 무역, 3) (시민) 자유이다.


여기에 착안해서, 막스 베버는 그렇다면 잉글랜드 사람들이 가장 우월한 무역과 상업, 자유로운 정치 제도를 채택했다는 사실과 ‘독실한 종교적 믿음과 행동’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지 않겠는가라는 가설을 세운 것이다. 그 서술 결과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다. 


물론 자본주의가 발달해 기계 생산 체제로 되자, 이러한 ‘금욕주의’는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게 되어 사람들에게 무시당했다. 그 책에서는 간략하게 몇 페이지 나온다. ‘청교도 금욕주의’는 서구 자본주의 정신이었지만, 자본주의 생산력이 최고조에 달하자, 자본주의는 ‘금욕주의’를 사다리로 쓰고나서, 걷어차 버렸다. 


잉글랜드 청교도 지도자 리처드 박스터는 물질적인 재화나 상품은 마치 아기 천사가 입은 가볍고 얇은 망토처럼, 그 천사의 어깨 위에만 놓여져 있어야 하고, 어떤 시점에는 그 망토는 벗어 던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가혹한 운명의 명령으로 그 가벼운 망토는 쇠로 만든 새장(새 철장)이 되어야 했다.


 자본주의 생산력이 급격히 성장하자, 물질적 재화는 인간을 거꾸로 지배했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그 자본주의를 형성한 종교적 금욕주의는 이제 새 철장을 탈출하고 말았다.‘소명’ 의식이라는 의무감도 이제 죽은 종교적 신념이라는 귀신이 되어 승리한 자본주의 거리를 배회할 뿐이다. 


막스 베버는 책 끝에 새로운 시대의 가치를 갈구하면서, “정신없는 전문가들, 심장없는 감각적 쾌락추구자”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 삶의 목표, 행위 동기, 의미의 상실을 지속적으로 구조적으로 체계적으로 만드는 자, 만드는 경제 사회 체제에 대한 탐구와 물음은 없었다. 이것이 칼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적 시장이란 ‘소외와 착취’ ‘물신숭배’ ‘목적과 수단의 가치전도’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공간이라는 진단과 비판을 내린 것과 베버의 차이다. 


막스 베버 역시 칼 마르크스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합리화의 역설 (가벼운 천사의 망토가 쇠철장이 되고, 그 쇠철장을 탈출해야 하는 인간의 새옹지마, 사회구조의 변증법적 운동) 과정을 설명했다. 


다만 막스 베버는 ‘청교도의 금욕주의’가 서구 자본주의 정신이고, 그 탄생의 원동력이라고 봤고, 칼 마르크스는 베버가 말한 서구 자본주의의 합리화 과정에는 토지를 박탈당한 잉글랜드 도시 노동자들의 피와 땀, 그들의 잉여노동이 베어 있다고 본 것이다.




Weber, Max. (trans.Talcott Parsons) The Protestant Ethic and the Spirit of Capitalism. (New York: Charles Scribner's Sons).1958. 


Max Weber: The Vocation Lectures "Science as a Vocation" "Politics as a Vocation" (trans. Rodnedy Livingstone). (Indianapolis: Hackett Publishing Company). 2004. 


Habermas, Jürgen. Theorie des Kommunikatives Handelns, Band I. (Frankfurt: Suhrkamp) 1981.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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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후후히히하하호호흐흐허허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생각이 많이지는데 정리가 안되네요.

    2020.06.19 18:02 [ ADDR : EDIT/ DEL : REPLY ]
    • 생각나는대로 적으셔도 되요. 그래야 좋은 대화가 되니까요, 저에게도 공부가 됩니다.

      2020.07.02 16:06 신고 [ ADDR : EDIT/ DEL ]

글 창고/20082020. 4. 22. 22:28

2008.06.17 11:51

최장집 촛불데모 진단 비판 : 새로운 술은 새로운 잔에 마셔야 할 때이다

원시 조회 수 1444 


제도의 오작동(최장집)이 아니라, 부패하고 무능한 제도(정당,의회,대통령제)를 바꾸는 게 촛불데모이다


최장집(존칭 생략) 레디앙 기사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10111)를 읽고 스쳐가는 몇가지 생각들을 아래에 쓴다.

 (이외에도 여러가지 논점들이 있으나 시간나는대로 다시 언급하겠음)


최장집은 촛불데모는 현존 한국 민주주의제도의 오작동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촛불데모는 기성 정당정치, 사회제도가 사회갈등, 이해관계 대립, 혹은 긴급한 사회현안들(쇠고기 광우병 문제)을 적시에 해결하지 못함으로써 발생했다. 


다시말해서, 권위주의적 이명박 대통령제도, 허약한 의회 (한나라당, 민주당, 야 3당 + 원외정당 진보신당) 제도들이 기능적으로 원활하게 작동되지 않았기 때문에 촛불데모는 낭만적인 ‘직접민주주의’로 발전되고 있다. 


최장집의 해법은, 이 촛불데모의 에너지가 현존하는 정당정치, 의회, 대통령제도 등을 발전 강화시키게 만드는 일이다. 이러한 과정이야말로 87년 민주화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를 공고하게 만드는 것이다 (the consolidation of Korean democracy)



최장집의 이러한 촛불데모의 원인과 문제해법은 그의 민주주의 이론관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내가 보기에는 최장집의 민주주의 정의는, 로버트 달의 민주주의 정의와 비슷하다. 로버트 달(Robert Dahl)은 미국의 대표적인 다원주의적 민주주의 옹호론자이다.  




로버트 달에게서 민주주의란, 폴리아키 다원주의이다. 다시말해서, 민주주의는 투표권을 지닌 성인남녀들의 공개 경쟁체제이고, 이것만이 다양한 이익집단들의 경쟁을 보장한다. 이러한 여러이익집단들의 공개 경쟁만이 민주주의를 옹호하고 지켜낼 수 있다. 이를 가로막는 것이 민주주의 적이다. 


이러한 로버트 달의 민주주의 정의에 따르면, 이익집단들의 자유경쟁과 규칙준수가 발생하는 공간이 정당정치, 대통령제도,국회 등인 것이다. 최장집이 명료하게 자신의 민주주의 이론의 틀을 밝히지 않았지만, 그의 글속에서 발견되는 민주주의의 개념적 정의는 로버트 달의 폴리아키 다원주의를 전제하고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사실, 시민사회의 촛불데모 에너지를 민주주의 제도를 확대, 발전, 강화시키고, 정당정치를 공정한 게임의 공간으로 발전시키자는 최장집의 주장과 문제 해법을 부정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아니 당연히 진보신당이나 민주노동당도 이러한 촛불데모를 자기 정당의 에너지로, 제도적으로, 법률적으로 ‘폴리아키 다원주의적’으로 끌어들이려고 하지 않겠는가?



여기에서 직접 민주주의와 포률리즘에 대한 논의는 생략하겠다. 최장집의 협소한 어느 한 특정 민주주의관 (로버트 달의 폴리아키 다원주의를 최적 모델로 바라보는 것)으로는 한국 촛불데모의 성격, 발전, 진보정치로 확대 등을 설명할 수 없다고 본다.



첫번째 이유는, 87년 이후에 한국에 존재하는 보수 한나라당, 자유주의 민주당, 그리고 진보정당 (민노당, 진보신당), 대통령제도, 의회제도 등 현존하는 제도질서 자체와 시민사회에 우열을 둬서는 안된다. 둘 필요도 없다. 


그리고 실천적으로 촛불데모에서 고민해야 할 것은, 시민들이 왜 직접민주주의를 외치고 ‘이명박 소환’까지 외치게 되었는가, 이 힘을 어떻게 현행 정치질서들과 제도들을 급진적으로 개혁할 것인가, 또한 한국 민주주의 발전사에서, 촛불데모 참여자들의 정치의지, 참여방식, 조직화 방식들이 어떻게 기존 정치질서를 바꿀 것인가 (대통령제도, 정치 정당 행동 양식, 의회 구조 등) 등이다.



두번째, 지금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 자유주의 ‘통합’ 민주당은, 진보정치의 관점에서 보면, 해체되어야 할 대상들이다. 이명박 보수정권이 분명히 신권위주의적인 것은 일면 맞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의 특성은, 다른 여러가지 특질들을 지닌다. 소수부자 자본주의 체계(oligarch capitalist system)를 만들려는 보수적 정치기획 (MB노믹스, 파탄난 747 경제정책), 친미-사대주의적 생활 습성과 굴욕외교, 근본주의적 기독교 질서 추구 등이 대표적인 이명박 정권의 본질들이다.


 통합 민주당 자체는 호남의 토호들과 수도권의 중도 자유주의 우익들의 패권싸움의 당으로 전락했기 때문에, 이명박과 한나라당의 대항마로 서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최장집의 민주주의론에 입각해서, 직접민주주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기성 정당질서의 기능을 회복하자고 주창하는 것은, 한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가능성과 진보정치의 싹에 서리를 뿌리는 것이다.



세번째, 최장집이 말한 사회운동의 5가지 한계들 (사회운동은 사회갈등과 이해간계 조정역할을 할 수 없다. 사회운동은 정책추구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 사회운동은 국가와 운동간의 충돌을 조장한다. 사회운동은 지속성을 띨 수 없다. 사회운동은 좌-우익 갈등과 같은 시민사회 분열을 가져온다)은, 그의 민주주의 이론틀인 로버트 달의 폴리아키 다원주의에서 지적하는 직접민주주의 문제점들을 나열해놓은 것에 불과하다.


 현재 한국의 사회운동은 제도, 법률, 의회, 청와대 등을 개혁하려는 것을 지향하고 있는 권력쟁탈형 운동이다. 한국의 학생운동, 노동운동, 시민운동 등은 생디칼리스트나 아나키스트 형 운동이 지배한 적이 거의 없다. 왜냐하면, 한국의 파쇼와 민간자본주의, 관료자본주의는 워낙 중앙집권적이기 때문에, 대항 세력 자체가 생디칼리스타 아나키스트 사회운동 노선을 띨 수가 없었다.



그리고, 위에서 최장집이 나열한 사회운동의 한계들은, 자칫 잘못하면, 이론적으로 사회위기는 하나의 기존질서에 적응하지 못하는 ‘변이’ ‘변종’ ‘문제아’ 정도로 간주하는 기능주의적인 태도로 빠질 수 있다.



최장집의 이론틀과 촛불데모에 대한 이해, 문제 해법을, 여러가지 다른 이론적 각도에서 분석할 수 있겠지만, 가장 부족한 점은, 촛불데모 참여자들이 스스로 조직하고 스스로 구호를 만들면서, 스스로를 표현하면서, 이 사회의 주체가 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참여민주주의를 강조하고자 함이 아니다. 


이번 촛불데모는, 미국식 민주주의이론(로버트 달의 폴리아키 다원주의는 실은 미국 정치에도 적용될 수도 없다. 왜냐하면 미국은 다원주의를 진정으로 허용치 않고 별로 다르지 않은 2당 독점체제이기 때문에, 다원주의라고 보기도 힘들다)이나, 유럽의 사민주의 형태들 (행정, 자본주의 시장, 시민사회의 균형을 이야기하는 하버마스 등), 혹은 그람시를 약간 발전시킨 시민사회론으로 설명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본다.



지금 한국의 촛불데모는, 한국의 민주공화국을 라디컬하게 그 내용을 채워나가는 과정이다. 공화주의 민주주의 모델들 중에 하나로, 도시국가나 공동체, 민족단위 국가의 주권(sovereignty)를 강조하는 흐름과, 공화주의 핵심은 공동체 구성원들의 정치참여, 시민으로서 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것을 강조하는 흐름이 있다. 


굳이 사회주의자의 관점이나 직접 민주주의 이론을 끌여들이지 않더라도, 공화주의적 민주주의 이론의 관점에 따르더라도 (아주 교과적으로), 현재 촛불데모는 공화주의의 두가지 흐름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명박의 권위주의에 반항하고 울분을 터뜨리는 것도 있지만, '검역주권'과 주체적인 유능한 외교를 주창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미 FTA에 대한 비판적 경계와 재검토를 요구하는 것을 보면, 국가의 주권을 아직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다양한 계급 계층들의 데모 참여는, 한국의 민주주의 정도가 이미 성숙된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 적어도 '절차적 민주주의'에 어긋나면, 직접 행동하는 시민들이 바로 한국사람들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열린 참여 공간에서, 정치적 좌파가 해야 할 일은, 무진장 열려져 있다고 본다.  



개념이나 특정 이론들은 현실에 부딛혀 깨지는 맥주병이다. 개념의 테이블의 만찬은 즐길 수 있지만, 촛불데모는 희로애락애오욕의 정치적 분출이지, 단순히 즐거움 기쁨 그 자체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촛불데모, 세계사에서 찾아볼 수 있는가? 프랑스 68, 프랑스 1879년 혁명, 독일 1848년 혁명, 동학혁명, 87년 6월 항쟁, 80년 광주 시민군 등 무엇으로 해석하겠는가? 좌파라고 해서 이태리 그람시, 서독.독일의 하버마스, 잉글하트, 로버트 달, 위험사회 강조했다 하여 울리히 벡, 인정투쟁 찾았다 하여 악셀 호네트까지 동원한다. 


아마 그들이 한국에 오면, 새로운 개념들을 찾아갈 터인데. 오래 묵은 습관은 참으로 오래간다. 이러한 각 나라들의 사회운동 경험들과 대화하는 게 오히려 필요한 시점이다. 조금 더 수평하게 대등하게 말이다. 그래야 유의미한 '소통'이 되는 것이다. 이론적으로도 실천적으로도.



아직 촛불데모가 진행중이지만, 몇가지 촛불데모의 성격과 진보정치의 착안점에 대한, 글쓴이의 생각은 아래와 같다.





311 좌빨 촛불소녀의 배후, 그 실체 드러나] 원시



309 촛불데모 밤 지새우는 이유: 2008년 한국의 촛불데모는 '정치적 휴가'이다. 



291 [촛불데모 성격1] 87년 6월 항쟁, 유럽 북미 68혁명 잊어버려야 원시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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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창고/20122020. 2. 15. 20:53

Nakjung Kim

January 2, 2012 · 

- [민주당: 민주통합당] 치어리더 최장집


- 최장집: 이념 Idee 개념에 대한 무지와 오해, 자의적 해석

철학은 개념의 놀이이자, 개념사의 심층적 이해이고, ..., 그건 과거 현재 미래 3차원과의 대화이고, 구체적으로 말하면, 70억 현행 인구들과의 대화이다. 철학자는 그런 의미에서 수퍼 컴퓨터이다. 아니면 "도를 아십니까?" 되거나, "예수천당,불신지옥" 팻말과 별 차이가 없다.


- 제목부터가 (*최장집씨가 주장하는 그 학문의 "과학성")이 결여되었다. 이념이라는 말은 양적인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 소제목 "서구 복지국가는 사회주의 아닌 자유주의 국가" => 도 잘못 사용된, 혹은 30%만 맞는 제목이다. "서구 복지국가는 Liberal Democracy라고 부르며, 자본주의 capitalism 국가이다."


- 소제목 "진보적 자유주의"를 민주당이 수용하라...는 희구인지, 바램인지 모르겠지만, "진보적" 이라는 형용사는 좌파, 우파, 보수파 등이 다 사용할 수 있다. 캐나다 보수파 정당 이름이 "진보적 보수당 Progressive Conservative"이다. 최근 교토 기후협약에서 조지 부시따라 철수해버렸다.


- 87년 민주화 운동은 = 형식적 절차적 민주주의이고, 97년은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다라고 2분법적으로 사유하는 것은, 정치와 인간 역사에 대한 무지이다. 자스민 혁명이라고 불리우는 현재 튀니지, 이집트, 시리아, 그리고,미국, 스페인, 그리스 투쟁을 보라, 그게 꼭 어느 하나의 이슈, 형식적-사회경제적 민주주의 중에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저항이고 혁명인가? 그리고,현재 한국 민주당(통합당)이 절차적 형식적 민주주의 투쟁이라도 제대로 하는가?


- 최장집 "민주주의는 이념이 아니다." -> 오해이다. 민주주의 역시 하나의 이념이다. 민주주의 이념은 다양한 종류들과 형식들을 가지고 있다. 이건 인류역사에서 드러난 사실인데도, 이걸 부정한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 존 롤즈 Rawls 의 <정의론>을 과연 미국 민주당이 수용했는가? 미국 와싱턴 D.C에 있는 160개의 씽크탱크에서 하버드 윤리학 교수인 존 롤스의 <정의론> 책을 수용했다는 보고서는 하나도 없다. 존 롤스의 <공정 fairness>개념과, <무지의 베일에 근거한, 시민들의 평등한 대우> 이 말을 정치적 좌파라면 누가 부정하겠는가? 좋은 이야기이다. 그러나, 정치적 주체들에 대한 분석 없이 <정의론>을 말하게 되면, 한국에서 존 롤스 <정의론>을 대학에서 가르치는, 한국의 뉴-라이트 황경식으로, 보스톤 브릿지를 넘어 한강대교를 건너오면서, 엄청난 좌파가 뉴라이트로 귤화위지되기도 한다. 존 롤즈를 말하려면, 존 롤즈의 칸트 전제 Kantian Premise에 대한 비판들과 생산적인 대화가 필요하다. 적어도 이론적으로 그렇다. 서구 유럽에서 "Kant oder Hegel 칸트냐 혹은 헤겔이냐" 는 고전적인 대립항이 있다. 둘다 계몽주의적, 이성주의적 노선임에도 불구하고, 전자는 론 졸스이고, 후자는 마이클 샌델 (이 사람보다, 알스데이르 맥킨타이어 McIntyre : 스코트랜드 공산주의자 -> 소련 사회주의 실망 -> 미국으로 이민, 아리스토텔레스에 근거한 공동체주의적 이론 + 소생산자 자율 공동체 주장)이다. 마이클 샌델은 존 롤즈에 비해 정치적으로 그렇게 진보적이지 않다. 한국 좌파들에게 아이디어 차원이라도 도움이 되는 사람은 오히려 맥킨타이어지만...


- 동네 베이키리가 7시에 문닫음.


"사민주의, 한국 진보파 이념 최대치" - 레디앙


레디앙은 2012년 새해를 맞이하여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를 '특별 인터뷰' 형식으로 만났다. 최 교수는 올해 치러질 두 차례 선거는 "사회경제적 이슈가 정치 경쟁에 전면으로 등장"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으나, 이런 이슈를 충족시켜줄 정당체제는 형성, 발전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REDIAN.ORG

"사민주의, 한국 진보파 이념 최대치" - 레디앙

레디앙은 2012년 새해를 맞이하여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를 '특별 인터뷰' 형식으로 만났다. 최 교수는 올해 치러질 두 차례 선거는 "사회경제적 이슈가 정치 경쟁에 전면으로 등장"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으나, 이런 이슈를 충족시켜줄 정당체제는 형성, 발전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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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history)2018. 1. 23. 12:56

신문 기사: "막스 베버 전공자인 김 교수에게 있어 근대의 핵심은 종교와 정치의 분화, 학문의 분화, 개인의 분화(개인화) 등 ‘분화’이다. 이런 시각을 갖고 있는 그에게 한국 사회는 여전히 근대적 의미의 분화가 덜된 사회다."


몇 가지 주제들 (1) 종교와 정치는 서로 분리되기도 한다. 특히 1647년~1688년 영국 제 1차 혁명, 2차 혁명(명예혁명) 주제들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종교의 다원성 인정, 그리고 종교와 정치 (행정)의 분리, 의회 권력의 분화 (왕권과 땅 토지 대지주들의 의회 권력분화 및 경쟁) 였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서유럽 국가들은 '정치' 권력과 '종교(기독교)'의 분화 및 분리를 경험했다. 엄청난 피의 댓가로. 


(2) 그런데 현재 독일 수상은 기독교-민주주의-연합(기민련)과 기사련 (기독교-사회-연합)의 앙겔라 메르켈이다. 정치(정당)와 종교(기독교)가 붙어있다. 분리되지 않았다. 종교와 정치의 분화가 발생하지 않았다. 독일도 그렇다면 "여전히 근대적 의미의 분화가 덜된 사회"인가? 신문기사, 김덕영 교수의 논리대로라면, 그 답은 '그렇다'이다.


기사련은 체.에스.우,  Christlich-Sociale-Union in Bayern (바이에른 주에만 있는 정당이다)

기민련은 체.데.우, Christlich-Demokratische-Union in Deutschlands (독일 기독교-민주주의-연합)

여기서 연합이라는 말은 '통일체'를 뜻한다.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통합했다는 의미이다.


(3) 내가 보기에는 한국도 이미 서유럽 기준(영국, 독일, 프랑스 등)으로 보더라도 '근대적 의미의 분화 '가 많이 일어났다.

분화: (Differentiation: 정치, 경제,사회,문화 체계들이 자기 스스로 하부 체계들로 갈라지면서 자기 영토를 넓혀가면서, 전체 체계의 복합성 복잡성을 증가시키는 과정)


물론 독일, 영국, 프랑스, 미국 등과 비교해서 한국이 '분화'가 덜 일어났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아닐 수도 있다. 각각 증명하면 될 일이고 증거를 대면 학문이 될 것이다.  이런 비교 연구도 아직도 유의미하다고 본다. 남의 나라 좋은 사례는 배우면 좋은 거니까. 


하지만, 이제 연구과제는 한국이 지난 100년 넘게 겪고 있는 근대화 과정의 '특질 characteristics'과 그 변화 과정 (dynamics)을 해명하는 것이다. 


예를들어서 독일은 기독교 (종교) 가 명시적으로 정치영역에서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기독교 정당이 국회의원 1석을 차지하고 있지만, 1945년 이후 기독교 정당이 주도적이고 명시적으로 성공한 사례는 거의 없고, 앞으로도 힘들 것이다. 하지만 기독교의 정치 참여는 독일만큼 질적으로 양적으로 높다. 독일과 다른 방식으로 한국 기독교는 정치에 참여하고 있다.

반독재 운동에서 동성애를 반대하는 보수적인 입장까지 다양하다. 교육에서 의료까지 기독교 참여는 활발하다. 


(4) 한국은 5천만 인구를 가진 상대적으로 큰 나라이다. 굳이 따져 북한과 해외 동포까지 합치면 8천만이 되어, 독일과 거의 비슷한 정도의 인구이다. 사회과학의 인식론은 사회과학의 연구대상인 사람들과 사회의 '실천'과 뗄레야 뗄 수가 없다. 인식론은 사회현실 역사적 현실, 다시 말해서 존재론과 분리가 불가능하다. 


한국의 변화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경제, 경제사, 정치, 정치사, 문화, 문화사, 사회, 사회사, 풍속사, 법률의 변천사를 알아야 한다. 사회인식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에 대한 '계몽적 자세'가 이런 한국에 대한 깊은 학습을 대신해주지 않는다. 


(5) 요즘은 직장인이지 지식인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고들 한다.


지식인이라는 단어도 쓰기가 꺼려지는데, 지성인이라는 말은 더더욱 '꼰대'스럽다.
지식 knowledge 를 다루는 것, 단어, 문장, 미디어를 다루는 이 지식노동이야말로, 진짜 뼈골,등골빠지는 노동이다.

('이다'를 '이어야 한다'로 바꿔야 하지만) 


인구 90%이상이 농민이던 시절 선비=지식인 개념을 가지고 있고,직업 숫자가 몇 만, 수 천가지인 이런 복잡, 분화된 사회에서 지식 노동자가 할 일이란, 미몽한 대중들을 '개벽'하듯이 다루는 건 아니라고 본다. 



그렇다고 해서 얇은 지식들로 그것을 새로운 '계몽주의'인양,
출처도 불분명한 책들과 말들을 거칠게 짜깁기 한 것을 '명저'나 '베스트 셀러'라고 하는 것도 '개벽'이라고 부르기에는 수오지심의 부족이다.


참고: 막스 베버에 따르면, 서유럽 자본주의 과정만의 특질, 즉 아시아와 차이점은,

국가 행정과 법, 자본주의 시장, 시민사회의 합리성 증대 (탈 종교, 탈주술화 등)가 진화적으로 발생했다는 것이다.









루터와 칼뱅, 칸트와 헤겔 등을 비교하며 재미있게 강의”

김재중 기자 herm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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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5.10 22:07:03 수정 : 2017.05.10 22:20:42 인쇄글자 작게글자 크게

ㆍ경향시민대학 ‘종교개혁’ 강좌 김덕영 독일 카셀대 교수

ㆍ서구의 근대는 종교개혁서 시작 …루터의 개혁 500주년 재조명

ㆍ지성사는 폭넓게 공부해야…오는 9월 독일 사상기행도 준비 중


김덕영 독일 카셀대 교수가 지난 1일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하면서 웃고 있다. 경향시민대학에서 ‘종교개혁 500주년’을 주제로 강의할  김 교수는  루터의 종교개혁에 대해 “단일 사건으로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큰 의미를 지니는 사건”이라고 말했다.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김덕영 독일 카셀대 교수가 지난 1일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하면서 웃고 있다. 경향시민대학에서 ‘종교개혁 500주년’을 주제로 강의할 김 교수는 루터의 종교개혁에 대해 “단일 사건으로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큰 의미를 지니는 사건”이라고 말했다.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500년 전인 1517년 10월31일 마르틴 루터는 독일 비텐베르크 대학 궁정교회 정문에 라틴어로 쓴 ‘95개조 반박문’을 붙였다. 루터에 의한 ‘종교개혁’의 시작이었다. 루터는 ‘면죄부’를 남발하는 교회 및 성직자의 부패와 축재를 고발하고 교황과 로마 가톨릭 교회의 권위에 정면으로 반발함으로써 종교개혁을 일으켰지만 그 영향력은 종교의 영역을 넘어섰다. 서구 근대의 출발점이 바로 루터의 종교개혁이었다는 것이다.


독일과 한국을 오가며 강의와 저술·번역을 계속하고 있는 김덕영 독일 카셀대 교수(59)의 올해 스케줄은 ‘루터와 종교개혁 500주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김 교수는 오는 15일부터 5주간 경향시민대학에서 매주 월요일에 ‘종교개혁 500주년: 지성사의 영원한 맞수들’을 주제로 강의한다. 


‘근대와 그 시원에 대한 신학과 사회학’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루터와 종교개혁>이라는 단행본 출간도 준비 중이다. 9월 초 경향신문 후마니타스연구소와 함께 프랑크푸르트, 하이델베르크, 뉘른베르크, 바이마르, 비텐베르크, 드레스덴 등 독일 주요 도시와 체코 프라하 등을 방문하는 ‘독일사상기행’도 기획하고 있다.


김 교수는 지난 1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종교개혁은 단일 사건으로서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큰 의미를 지니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면서 “서구의 근대를 주조한 틀이 하나는 아니지만 가장 중요한 틀 중의 하나가 바로 종교개혁”이라고 말했다. 칸트와 헤겔 등 서구 지성사를 주름잡는 걸출한 인물들이 많지만 루터가 활동했던 1500년대부터 논의를 시작해야 제대로 된 지성사적인 논의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독일에서 지식사회학과 지성자, 막스 베버, 게오르크 지멜 등에 대한 연구로 석·박사 학위와 대학교수 자격 취득까지 한 정통 사회학자인 김 교수는 국내 대학에서 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할 정도로 신학에도 조예가 깊다. 김 교수는 “지성사라고 할 때 단순히 철학만 생각하기 쉬운데 사회과학, 문학, 그리고 더 나아가 신학도 서구 지성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분야”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그가 경향시민대학에서 진행할 강좌도 루터와 칼뱅을 대비시키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강좌는 칸트와 헤겔(철학), 괴테와 실러(문학), 마르크스와 베버(사회과학), 프로이트와 융(정신분석학) 등으로 이어진다. 김 교수는 “강좌에서 소개할 인물들은 동시대에 살면서 서로 논쟁했던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며 “인물을 비교하면서 공부하고 강의하는 것은 전부터 즐겨 쓰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막스 베버 전공자인 김 교수에게 있어 근대의 핵심은 종교와 정치의 분화, 학문의 분화, 개인의 분화(개인화) 등 ‘분화’이다. 이런 시각을 갖고 있는 그에게 한국 사회는 여전히 근대적 의미의 분화가 덜된 사회다. 지난해 말 출간한 <국가이성비판>을 통해 지적했듯 한국 사회는 형식적으로 분화는 됐는데 실질적 분화가 일어나지 않은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한국에서는 근대화를 경제성장으로 환원하고 그 주체를 국가와 재벌로 환원해서 ‘국가재벌동맹체제’에 의한 경제성장이 곧 근대화였다”면서 “박정희 정권 이후 김대중·노무현 정권도 이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이번 대선에 나선 후보들 역시 여기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결국 국가재벌동맹체제의 해체가 근대의 완성인데 ‘경제성장’이라는 단기적이고 가시적인 성과에 얽매이는 순간 새 정부도 재벌에 손을 벌리거나 재벌개혁을 뒤로 미루면서 이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는 것이 그의 우려 섞인 예상이었다.


김 교수는 11월 독일에 가서 이듬해 3월까지 대학 강의를 하고 나머지 기간엔 한국에 체류하며 집필과 번역을 하는 일정을 수년째 이어오고 있다. 내년이면 환갑이지만 10년치도 넘는 연구계획을 이미 세워뒀다고 했다.


“좀 유치하게 저를 말하자면 ‘나는 쓴다, 고로 존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학의 주요 이론가 13명에 관한 책을 앞으로 10년간 차례로 펴낼 예정입니다. 올해가 뒤르켐 서거 100주년이고 내년이 지멜 서거 100주년인데 이들을 필두로 할 겁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5102207035&code=100100#csidx3cde75ed2eb9551a389e4fc3bcedc23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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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al leadership2016. 8. 10. 05:03

2015.06.30 13:32

행인 (윤현식) 님/ 탈당하는 당원들 만류하지 못한 이유들

원시 조회 수 150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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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논의와 관련해서, 진짜 행인님이나 당원들, 정책연구원들과 같이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들은, 정의당,노동당,4자 회담 및 새 진보정당 후보들로 떠오른 개인 집단 정당들의 ‘이념, 정책, 정치행위 스타일, 민주적 운영, 청년세대’ 등에 대한 토론입니다. 


전 개인적으로는, 정의당이나 심지어 노동당과도 이념적인 측면에서 정책적인 내용에서 견해가 다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 지형에서는 ‘통합 정당 리그’는 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한 사례를 들면, 최장집-박상훈의 ‘다원적 민주주의’론에 기초한 정당론, 막스 베버 (Weber)의 자본주의 시장에 대한 사회진화론적 접근과 이해, 독일 사민당 (SPD)을 지향한다거나 그 사람들을 돈 들여 초청한다던가, 그런 것에는 홀딱 반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비판적입니다. 물론 노동당 내부 이념적 지형이나 정책 생산도 그렇게 완결성이 높다거나 대중들에게 각인되지는 못하고 있다고 봅니다.  


2012년 이후, 정의당 홈페이지와 노동당 홈페이지에 나온 ‘정책들’을 비교 검토해오고 있는데, 사실 정의당에서 생산되는 정책 양은 노동당 (정책연구원 1~2명)과는 비교가 불가능합니다. 다른 한편, 이념적 차이는 존재하는데, 대중들이 외부에서 피부로 느끼는 차이, 특히 정책이나 성명은 차이보다는 유사성이 더 많습니다.   


행인님, 통화한지도 너무 오래되고, 또 제가 한창 2011년 <당원이라디오>에서 당원들과 토론할 때는, 행인님이 다른 일로 바쁘시고, 행인님이 당에 복귀했을 때는, 제가 다른 연구로 바빠서, 이야기도 제대로 나누지 못해서, 밀린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2002년 민주노동당 서울시장 이문옥 후보 (깨끗한 손) 선거 운동이 엊그제 같은데,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그 시간 흐름이 원운동해서 다시 원점에 서 있는 느낌입니다. 당 사정을 보니, 연탄 눈썹 행인도 이제 백발 도사 눈썹으로 이행할 것 같습니다.


요 몇 년 간 고민이 많이 쌓입니다. 뭔가 고철덩어리 녹처럼 말입니다. 2002년 대선 당시 잠시 한국에 갔을 때, 고 이재영 정책실장이 ‘민주노동당사에 그냥 부담없이 한번 놀러와라고’ 해서 갔다가, 이 실장님과 김정진 부대표가 쇠고기 구워주고 그거 사주면서 “한국 지식인들은 유럽 지식인 좌파들과 달리, 사회 참여와 정당 참여의식이 결여되어 있다”는 일갈을 듣고, 엉겹결에 민주노동당 당원이 되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과거 향수 이야기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겠죠? 미리 미리 행인님에게 물어보고 제 진로도 결정하고 그래야하는데, 제가 그간 게을렀습니다. 제게 당원 가입 권유를 하신 두 분에게 물어볼 처지도 아니고, 어디다 물어볼 곳도 마땅치 않군요. 


이 글은 그냥 행인님에게 하는 넋두리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한국에 있건 온라인에 있건 동일한 이야기를 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행인님은 세라믹 볼펜, 모나미 볼펜 등이 어디서 생산되는지, 누가 그걸 만드는지 아는 분이고, 저 역시 솔직히 중고등학교 시절 사용했던 펜, 볼펜, 만연필 등이 어디서 누가 만드는지 코카콜라 회사 옆에 가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것입니다. 여튼 행인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댓글로 의사소통해왔지만, 그 대화가 기억에 남는군요. 


제목에 쓴 것은, 제 솔직한 심정입니다. 2012년 총선 이후 대선 사이, 그리고 이용길 대표 체제 하에서도 10년 이상 진보정당 열성 당원이나 지지자들이 진보신당과 노동당을 탈당하고자 했습니다. 수치나 데이터를 전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제 주변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행인님에게 알려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그런 탈당 의사들을 듣고, 탈당하지 말라고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하지 못했습니다. 행인님이 잠시 본업 관계로 바쁘셨을 때, 2010-2011년 거의 1년을 <당원이라디오>에서 통합 논의를 해보려고 했습니다. 9.4 당대회 이후, 전 당원들에게 “탈당하지 말라”는 주장을 했고, 심지어 통합파로 분류된 정종권 부대표, 김형탁 사무총장에게는 당게시판에 탈당 만류 글을 주제넘게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2012년 총선 이후는 당게시판에 ‘탈당 만류와 대안 제시’를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당이 선거주의,의회주의, 출세주의, 패배주의에 빠져서가 아닙니다. 구 사회당 그룹, 진보신당 내 몇 개 그룹들로 나뉘어, 당내 협력보다는, 갈등과 권력 장악 욕구만 크게 부각되었기 때문입니다. 정치정당이 갖춰야 할 조건들, 대중적 정치가 발굴, 정책 연구소, 대중들과의 소통을 통한 당원 증가 등보다는, 몇가지 좁다란 노선 투쟁에 다들 사활을 걸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대중적 좌파정당의 조건들 중에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요소에 집중하지 못했고, 그럴 계획이 거의 없거나, 실천 의지가 없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는 대중적 정치가들을 당 안에서 서로 적극적으로 키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내 의견그룹들끼리 불화하고, 서로 소극적으로 견제하는 시간이 너무 많았습니다. 김순자 대선 후보 사건은 수많은 그러한 불화들의 한 사례일 뿐입니다. 


그 다음 노동자들의 삶에 100원, 1000원, 5천원이라도 보탬이 되는 구체적인 ‘정책들’을 만들 정책연구소에 대한 장기,중기,단기적 투자 의지가 없거나,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당대회에서 이 두 가지 주제를 놓고 당원들이 모든 에너지를 쏟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장석준, 이장규, 윤현식 님 등이 정책위의장을 역임했지만, 당 안팎으로 정책 네트워크 하는 모델을 만들어내지는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행인님 전 많이 아쉽습니다. 행인님이 정치적으로 포용해야 하고 연대해야 할 진보연구 교수들 단체 (진보교연)에 대해서 페이스북에서 정치적 적대감을 표출하거나, 과거 오류들을 지적하는 것으로 끝나서 말입니다. 


전 정책 연구는 한국 3천개 직종에 있는 노동자들로부터 나온다고 봅니다. 지식 노동자들의 역할은 그 3천 직종들의 매개자이자 소통 다리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인식이 아니라, 적극적인 실천입니다. 제가 민주노동당 당원이 된 것도, 고 이재영 실장의 이러한 ‘네트워크’ 실천의 결과라고 봅니다. 


제가 ‘노동당의 위기’ 진단 글을 몇 년 전에 당게시판에 올렸습니다. 상투적인 위기 협박이라고 치부되어도 이제는 제가 할 말이 없습니다. 하지만 행인님, 민주노동당의 위기에 대해서 제가 2004년~2005년 사이, 민주노동당의 지지율이 18%에 올라갔을 때, 당 게시판에 10가지 넘는 주제로, “민주노동당은 왜 위기인가? 그 진단”에 대해서 올린 적이 있습니다. 그 맥락은 우리 당원들 중에, 아마 행인님이 잘 아시는 몇 안 되는 분이라고 전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난 6월 28일, 노동당 위기에 대한 진단이, 권태훈 부대표의 ‘막대기 그래프’ 협박으로 간주되는 정도로 해석되었습니다. 전 권태훈, 김종철, 장석준, 강상구 전 현 부대표들의 리더십 형성 실패에 대해서 가혹할 정도로 비판적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위기’에 대해서 진단할 때는, 평당원들 열성당원들 사기를 꺾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 도약’을 위해서 필요한 조건들을 마련하기 위해서가 아닙니까? 이에 대한 합의조차 되지 않아 보여, 정당 운동이 많이 퇴보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탈당 의사를 밝힌 주변 당원들에게, 또 저에게 그럴 문의를 하는 당원들에게도 ‘탈당하지 말아달라’는 적극적인 의사 표명을 할 수 없었습니다. 행인님 힘이 빠질지도 모르지만, 이게 제 주변에 일어나고 있네요.


문제 핵심이 다음 주제라고 봅니다. 


홍세화-이용길 대표체제에서 당대표, 정책위의장, 사무총장, 대변인을 했던 사람들만 교체하면, 제가 위해서 지적한 문제점들이 개선될까요? 행인님 이게 제 머리 속에 맴도는 주제네요. 


제가 ‘노동당의 위기’에 대해서 몇 년 전에 쓴 것은, 최근 윤성희님이 쓴 글 중에 강상구, 김종철 이름에 괄호를 치고, 그 이름들 대신 윤현식, 금민, 이봉화, 김윤기, 최승현, 권태훈 이름을 대신 넣어도, 동일하게 발생할 수 있는 아니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체계적’ 원인들을 발견하고자 하는 것 아닐까 합니다.  


쓰다보니 길어졌습니다. 그래도 행인님 의견을 조금 듣고 싶어서 몇 가지 주제들을 더 적어 보겠습니다. 


제가 내린 이장규-윤현식님의 결론은 아래와 같습니다.


 1년간 쓰신 글과 토론회를 보면서 내린 결론입니다. 2016년 총선을 지금 노동당 이름으로, 그리고 윤현식님을 비롯해서 노동당 사수파(?)분들이 스스로 도전해보고 싶다. 홍세화-이용길 대표 체제하에서 당권파들과는 다른 ‘새 정치’를 해보고 싶다.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이장규님이 누누이 진보결집 (*전 이 용어보다는 통합리그라고 쓰는 게 적당하고 봅니다)을 반대하지 않는다, 또 당원 총투표를 반대하지 않는다. 이렇게 의견을 밝혔지만, 구체적인 정치 일정 발표나 계획을 보면, 특히 총선, 대선, 2018년 지방선거, 보궐선거 등 수 차례 선거 연대를 통해서 ‘신뢰’를 구축하자는 계획을 보면서, 위와 같은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행인님도 2014-2015년 당대표 선거 토론회에서, 2016년 총선 복안으로 ‘거제 1석’ 거점 논리를 제시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거제 상황은 후보, 정당들 간의 역학관계 등 모든 게 2012년 총선과는 다르고 불투명하고 안개 속입니다. 


행인님, 전 소극적인 방어적인 정치 행위는 선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장규님이나 행인님이 속한 <당의미래> 의견그룹에서 적극적인 자기 계획을 발표하고, 2016년 총선도 노동당 단독으로 할 준비를 했으면 합니다. 


2015년은 2011년 9월 당대회와 사정이 많이 다릅니다. 2016년 총선을 비롯해서 당 운영에 대한 생각이 만약 <의견그룹들>끼리 다르다면, 다름을 인정하고, 각 자 계획한 대로 한번 해보는 것도 지금은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만약, 위에 제가 내린 이장규-행인님의 결론에 대한 이해가 잘못 되었다면, 지적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당대회, 전국위원회, 당원 총투표와 같은 당내 민주주의적 질서와 대의기구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구성원들의 정치철학, 정치 의지 (will) 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당명 논의할 때, “평화노동당”을 같이 내걸고 일하신 이건수 강원도당 위원장님, 부산의 김희성 전국위원님과 의견을 나눌 때도, 그 분들이 ‘노동당 해체하지 말고 사수해야 하는 이유들’ 중에, 제가 파악한 것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념적 지형도 있었지만, 녹사연으로 대표되는 과거 당권파에 대한 아쉬움과 비판이었습니다. 그 비판의 핵심은 이렇습니다. “당신들이 해봐서 안된다고 결론내리면 불공평하고, 정당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제 견해는 이건수, 김희성님과 다릅니다. 장석준, 김종철, 강상구 이름들을 거론하고 그들 책임을 거론하는 것도 유의미하지만, 전 그것을 뛰어넘는 시스템의 한계가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 해결 방법으로 <정치조직>을 튼실하게 만들어, 통합 정당 리그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전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제 판단에도 불구하고, 행인님, 이건수님, 이장규님, 김희성님과 같은 이러한 정치적 의지 형성과 결심 역시 정당에서는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런 상황에 부딪혔을 때, 정치 주체들, 그리고 결심을 한 사람들이 자기들이 계획했던 일들을, ‘노동당 사수’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특히 2011년 이후, 혹은 2008년 이후 당에 가입하신 분들이나 10대,20대 당원들 중에는, ‘왜 윗 세대들이 과도하게 자기 경험을 기반으로 당의 위기를 계속해서 이야기하는가?’ 이런 정치적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설득과 소통을 포기하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직접 경험, 자기들의 직접 실천 등 정치 의지 (political will)이 중요하다고 보니까요.  


다른 주제를 하나 말씀드릴게요.


이장규님이 “노동당이 새 정당으로 다같이 가던가, 다같이 가지 말자”고 주장한 것에 대해서 제 의견은 이렇습니다. 2011년 이장규님과의 인터뷰에서도 정치조직을 먼저 건설 (튼실하고 정교한 정파)하는 게 필요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드렸는데, 이장규님은 진보신당이 그 정도 실력이 되지 않는다고 답변했습니다. 


우선 2011년 통합 논의에서는, 저 역시 “진보신당이 통합 논의로 흩어질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이유는 통합 논의가 2016년까지 지속될 것이기 때문에, 정치적 신뢰를 아래부터부터, 지역 하부 조직부터 형성해야 한다고 제안드렸습니다. 그런데 2015년은 2011년과 상황이 많이 다릅니다. 정의당, 통합진보당, 노동당은 열성당원의 정치적 의지와 무관하게 대중적인 신뢰는 형편없습니다. 그래서 각 정당 지도부의 냉정하고 객관적인 자기 반성을 기반으로 새 정당을 논의해야 하고, <통합 정당 리그>를 만들어야 합니다. 


제 생각은, “노동당이 새 정당으로 다같이 가던가, 다같이 가지 말자”보다, 현재 <당의미래>와 같은 의견그룹이 위에서 말씀드린대로, 하나의 ‘정치조직’이 될 수 있게끔 신속하게 정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것이 정치적 선결과제라고 봅니다. 만약 행인님이 보기시에, 현재 <당의미래>로 노동당을 독자적으로 운영할 수 있고,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등 공식적인 제도 정치 일정을 수행할 수 있다면, 더 좋겠습니다만.


이장규님의 인식은 “통합 정당”이 그리스 시리자처럼 연합정당들의 ‘동거 체제’를 보장하라는 것인데, 지금은 수동적으로 기다릴 것이 아니라, <당의 미래>를 하루 속히 사상, 이념, 정책, 대중적 정치가 등을 갖춘 <정치조직>으로 만들어, 그 통합 리그 속에 참여해서, 정치적 주도성을 발휘해야 합니다.


행인님, 지난 4년간 진보신당-노동당 정치활동은 외적인 성과가 적은 채로, 당내 대의기구에서 헤게모니 전투로 얼룩져 보입니다. 


2008~2011년 진보신당의 정치적 성과와 단순비교해도, 노동당 당원들끼리 서로 공유할 성취가 많지 않기 때문에, 이장규님 말대로 “노동당이 새 통합정당에 다같이 가거나, 다같이 가지 말자”는 주장도, 2011년 통합 논의때처럼 강한 정치적 윤리적 구속력이 없어 보입니다. 제가 너무 회의적이고 부정적인 평가를 한 것인가요?


행인님, 만약 이장규님이나 행인님이 발표한대로, <통합정당>에 반대하지 않고 진보결집 필요하다고 본다면, 4자 회담이건 5자, 6자, 다자 회담이건, 적극적으로 <개입 및 참여>해서, 통합 정당 리그 (league)를 어떻게 <당의미래>가 이끌어 나갈 것인가를 고민해주셨으면 합니다. 


만약 2016년 총선을 노동당 단독으로 치를 계획을 행인님이 가지고 있다면, 그 계획을 발표해주시고, 지금부터 준비해도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신속하게 실천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행인님, 전국위원회, 당대의원 대회, 언제부터인가, 결혼하기 싫은데, 억지로 끌려나온 독립적인 총각 아가씨들이 부모님 만족시키러 출정하는 ‘맞 선’ 같은지요? 왜 이렇게 사람들로부터 많이 고립된 정치적 의례로 보일까요? 제 시선에 안개가 끼여서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언젠가 한번, 나중에라도 듣고 싶은 이야기는, 행인님이 우리가 한 우물 파온 정책부서를 박차고, 당대표 선거에 뛰어들었는가? 그 절박한 심정은 무엇이었을까? 이미 밝히신 것도 있겠지만, 저는 행인님 결정 자체가 ‘노동당의 위기’라고 봤습니다. 당 시스템의 붕괴의 한 현상이라고 말입니다. 


행인님, 언젠가는 지금 행인님 머리와 어깨 위에 놓여져 있는 엄청난 정치적 부담, 시스템 축구 토탈 사커, 토탈 정당이 되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눠 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지난 2002년부터 비슷한 나침반을 들고서 행인님과 등산을 해왔는데, 이게 등산인지 하산인지 그 순간은 모르겠으나, 갈래 길에 서 있는 것 같습니다. 


선택 길이 다르더라도, 살아 남아서, 하산 해서, 도토리 묵이라도 같이 나눕시다. 그리고 위에 쓴 제 이야기들이 행인님의 구상과는 다르거나, 제가 오해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일러주시기 바랍니다. 


어딜 가든, 앞으로 몇 년 동안 건강 잘 유지해서 살아 남읍시다. 행인님.   


원시였습니다.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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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파의 <정치의 선차성? the primacy of politics> 단상


 2011.02.09 17:11:30

원시 https://www.newjinbo.org/xe/994047


2011년에 왜 우리는 미국 대학에서 <비교정치학>을 가르치는  어떤 여교수가 쓴 <유럽 정당 역사>를 읽어야 하는가? 

왜 1980년대 한국 운동권은 NL이건 CA, PD건, ND건, SS건, 소련 사회과학 아카데미나, 평양 정부에서 "검인정 교과서"로 만들어낸 <변증법적 유물론>, <사적 유물론>, <과학적 사회주의> < 정치경제학>을 읽었어야 하는가? 박정희시절에 만들어진 검인정 <반공 방첩 국민윤리교과서>와 정반대 형식을 띠고 있는 검인정 교과서들이다. 

마르크스는 정작에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단어를 거의 쓰지도 않았다. 그런데다 <변증법> 번역도 오해의 소지가 더 많다.  무슨 무슨 <법 law >그래서, 우리가 따라야 하는 규칙, 필연적 불변의 진리 이런 뉘앙스까지 있지 아니한가? 80년대 말, 소련, 동유럽 체제가 흔들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독일 등 유럽에서 유학하고 있었던 한국 지식인들이 위 소련, 동독 사회과학 아카데미에서 나온 4종 세트를 번역했다. 왜 그랬나? 한국 운동권들에게 팔린다는 이유 때문에(?) 혹은 역사적 사명감과 80년 광주의 부채 때문에(?), 혹은 요새 막스 베버주의자들의 부활과 더불어 엄청나게 깨지고 있는 "절대적 신념" 때문에? 

마르크스는 <자본: 정치경제학 비판> 1권에서 "나의 변증적 방법", 즉 연구-조사, 그리고 서술의 방법 이런 단어는 쓴다. 그러나 그걸 기계적이고 도식적으로 <윤리 교과서> <종교학 교과서>로 만들어버린 사람들이 여럿 있는데, 그 중에 한 명이 조세프 스탈린이다. (*이런 마르크스 이야기는 나중에 더 하기로 하자)

우리 <진보신당> 당원들은 워낙 <명품> <브랜드> <정통> 혹은 명망있는 "청와대" 이런 네임밸류에 익숙해져서, 마크르스는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구제역으로 파묻힌 돼지, 송아지 취급도 하거나? (연민, 무관심, 체념 등) 혹은 마르크스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당원들에게 "너 좌파지? 너 절대적인 신념 정치에 가득차 있는 무능력한 정치질도 못하는 진보지?" 욕설이나 해대는 게 지적 문화이다. 

누굴 탓해서 뭐할 것인가?  이 69억이 살아가는 이 어마어마한 복잡한 시대에, 자식들 먹여살릴 돈이 없어서, 자기 아버지가 남긴 유산을 좀 받아보려는 마음으로, 네덜란드에 자기 어머니와 외삼촌을 찾아갔다가, 퇴짜맞고 어머니와 외삼촌에 대한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마르크스. 여튼 이런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이 69억 지구인들의 삶을 어떻게 알겠는가? 마르크스에게 그도 모르는 것을 물어볼 필요도 없는 것이다. 
 

본론으로 들어와서, 

 <정치가 가장 중요하다 the primacy of politics>라는 책이 한국에 번역된 모양이다. 저자 셰리 버먼은 65년생으로 비교정치학을 전공하고 유럽정당사와 이데올로기를 주로 가르친다.
 
진보신당에도 <복지파>들이 사민주의 책이라고 해서, 제목부터 잘못 번역된 <정치의 선차성>이라는 책이 써클 내부에서 유행인 것 같다.
 
셰리 버먼 Sheri Berman 의 전제 자체도 문제가 많다. 이 녀교수가 말하는 주제는 이미 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다. 소위 <경제 결정론 economic determinism>에 대한 비판, 좌파로 좁히면 제 2 인터내셔널의 <경제환원주의적 사고: 자본주의 자동붕괴론>에 대한 비판에 기초하고 있다. 이것은 굳이 셰리 버먼이 아니더라도, 좌파 내부에서도, 또 사회과학.인문학 기초교양이 있는 사람들은 다 비판이 가능하다.
 
두번째, 셰리 버먼이 주장하는 <고전적 자유주의>와 <정통교조적 마르크스주의: 카우츠키가 만든 교과서류를 지칭함>가 모두다 <경제 결정론>, 즉 경제가 정치보다 더 중요하다, 이런 주장이었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두가지이다. 엄밀하게 따지면, <고전적 자유주의>는 서유럽의 정치사를 보면, 실제 정치에서는 "국가 (정부, 군대)"가 제국주의자로서 역할을 하던 시절이다. 마치 서유럽 자유주의자들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태리 등)이나 자본가들은 그 국가와 독립된 것처럼 서술하는 것은 오류이다. 이런 프레임 자체 (국가와 경제를 분리하는 것)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두번째, 아무리 레닌이 죽은 개가 되었다하지만, 레닌 역시 이러한 <경제결정론>적 사고를 비판하지 않았는가? 굳이 사민주의자들의 흐름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이미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것도 까먹지 말았으면 한다.
 
그리고, 한국의 사민주의를 "이념" 모델로 말로 안되게 수입하는 사람들이 알아야할 사실은, 서유럽 북미 등에서 관찰되는 사민주의는, 역사적으로 자본주의 태동과 "제국주의"의 탄생, 세계 1차, 2차 세계대전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독일에서 군부와 사민주의자들 <동맹>이 로자 룩셈부르크와 칼 리프크네히트를,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유관순 누나를 죽이던 그 해 죽였다는 이런 역사적 사실은 차치하자. 셰리 버먼의 책을 통해서, 논문들을 통해서, 정보나 자료, 셰리의 주전공이 유럽 정당사이니까, 비교 정치학의 관점에서 접근하면 될 일이다. 이걸 무슨 대단한 <정치적 발견>인양 할 필요가 있는가?
 
그리고 학적으로 따지면 셰리 버먼의 마르크스에 대한 이해 (저술이나 연구방법)는 깊지 아니하다. 북미 비교정치학자들의 이론적 깊이가 대부분 그걸 요구하지도 않는다. 셰리 버먼의 책도 그 예외는 아니다. 




----------------- 우선 여기까지 적고 ----------, 모 신문사 기자와 쪽글대화

모씨: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이념모델로서의 사민주의'를 찾으려고 해봤어요. 대학 때 독일이데올로기, 경철수고, 선언 등등 읽듯이 한번 공부해볼까 했죠. 

여기 도서관에 가서 가장 유명한 스웨덴 사민주의자들 이름 넣고 검색을 해봤죠. 근데 자료가 너무 없어요. 아직은 가설 단계인데, 적어도 한국의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학습'하던 방식과 사민주의가 유통되는 방식은 다른 것 같습니다. (-> 사민당 사람들 만나서 알아볼 향후 과제)...

원시 사민주의라는 말 자체는 크게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각 나라들별로 다 다르니까요. 유럽에 언어가 250개가 넘고, 또 종교와 정당과의 관계도 우리나라와 다르고...캐나다의 경우, 각 주마다 다르지만, 온타리오주는 보수당이 한 40년 독재하면서 top 10안에 드는 정도의 복지모델을 만들어놨음 2차대전이후 - 1990년까지. 정책만 놓고 보면 보수당과 자유당이 큰 차이가 없을 지경이었으니까요. 근데 이게 나라별로 다 다르니까요.


원시 이념모델, 아 그거 좋은 지적이네요. 학생운동권의 학습교재에 대해서는 나중에 한번 더 이야기할게요. 소련에서 나온 변유, 사유 읽어보고 이것은 한국 고딩에서 배운 검정-국민윤리 교과서의다른 버전이구나 해서다 불태워버리고...그냥 단행본을 읽음. 헤겔 마르크스 책들은 다 역사적인 맥락이 있고, 논투 구조로 되어 있어서 생각하는데 도움이 많이 됩니다.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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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철학2011. 9. 27. 17:02

베버 부활?/ 최장집교수 손학규 후원회장, 박상훈 <더 정치적으로?>

원시

http://www.newjinbo.org/xe/993983


 2011.02.09 16:29:40 278 0

아래 글을 마르크스-좌파-우리편, 막스 베버-우파 혹은 리버벌-우리편 아님. 이런 식으로 읽으라고 쓴 글은 아니나...


상식적인 독서법과 <생각하는 법>에 대한 것임.




http://bit.ly/gz6hg6  : 진보학자 최장집교수: 손학규 후원회장 등록 ( 2010-09-10 ) 뉴스, 




1. 최장집교수가 민주당 손학규 대표의 후원회장 등록은 그의 정치철학과 절대적 신념 (absolute conviction)에 따르면 당연하다. 최장집, 임혁백 (고려대학) 등은 97년 IMF 외환위기시, 한국의 자본주의(정경유착, 비합리적인 소비자행태 등) 병폐를 고치기 위해서는 <외부의 충격: IMF 가 한국에 요구한 가장 반-노동자적, 비-민중적, 중하층들에게는 가장 가혹한 정책들임에도 불구하고> 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론적으로 이들의 분석과 비판에는 <정치 제도>는 있지만, 한국 자본주의 시장 <제도>는 결여되어 있거나, 공란이다. 좋은 정치, 좋은 정당, 좋은 의회, 좋은 정치가 등등은 수차례 언급될 것이지만, 그 <좋은 제도>를 누가 어떻게 글로벌, 국내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제약조건들을 뚫고 깨고 만들어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거의 없거나 공백이다. 이론적으로 막스 베버, 베버주의자들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간략하게 말하면, 이론과 실천, 생각하는 것과 말은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이 가는 것이다. 아울러 <진보 Progressive> 라는 말도 "보수적 진보 Conservative Progressive Party 캐나다 집권당 이름이 보수적 진보당"도 가능하고, 미국에서 배우고 돌아온 최장집,임혁백 교수등은 미국 정치학계나 미국정치에서 "진보적인 사람들"은 민주당 "Liberal Progressive 리버벌 프로그레시브"등을 <진보>의 푯대로 삼고 있다. 




아니러니한가? 시급한가? 진보(신)당? 한국의 진보정당이 외치는 <진보>는 뭔가? 












2.  http://bit.ly/brMpf0 :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  [ 정치적 이성과 진보] "탈정치-반권력 담론 진보에 치명적"


( 2010년 7월 23~24일 진보신당 지방의회 당선자 워크숍에서 박상훈 강연내용/ 2010년 8월 14~15일 진보신당의 6.2 지방선거 출마자 워크숍 강연 자료) 




이 글을 읽고 드는 전체적인 생각은, <누구>를 비판하고 있으며, <왜> 비판하는지, 박상훈대표가 주장하는  <이성적인 정치>가 뭔 내용인지, 불분명하다.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즐겨 사용했던 용어들이 <한국말 단어와 문장>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좀 뜬금없이 묻고 싶다. 레디앙 기사 말미에 적힌대로, 이 박상훈대표의 강의를 들으면서 진보신당 시의원?당직자들이 "인상적이고 도움이 됐다"...twitter에도 올렸다. 이게 사실인가? 뜬금없이 멀리서 묻고 싶다. 우선 한가지만 지적한다. 




박상훈의 글 " 정치엘리트 없는 민주주의, 리더십 없는 민주주의에서는 일반 대중들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붕당과 정파의 권력이 커진다는 것, 이는 적어도 필자가 정치학을 통해 배운 가장 기초적인 이론 가운데 하나다." 




<정치학>도 1가지만 있는 게 아니다. <정치학>이든지, <경제학>이든 <사회학>이든지 뭐든지 공부하는 사람은, 누가 왜 언제 어디서 어떤 맥락에서 누구를 향해 주장했는가를 밝혀줘야 하는 것이다. 




그냥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물어보자 <정치 엘리뜨 없는 민주주의>가 뭐냐고?, <리더쉽 없는 민주주의>는 또 뭐냐고?  실은 막스 베버가 서구 유럽에서 (아시아나 아프리카가 아님: 연구대상은 서구유럽 혹은 프러시아 제국 이후 독일임) 자본주의 발달과 <관료주의, 혹은 관료주의화 bureaucritization> 상관관계에 대해서, 호혜적 관계에 대해서 연구한 적이 있다. 그 키워드는 합리성의 증대이다. 그런데, <정치의 일상적 고정화 routinization : Alltaeglich 일상>을 깨뜨리는 요소가 뭐냐?고 물으면서, 베버의 답은 <카리스마>가 있는 지도자가 새로운 의무들 (일상화된 정치에서 관료들이 하지 못하는)을 설파하고 창조하고 요구한다는 것이다. 




이 <카리스마> 요소야말로 근대 민주적 (정치,경제,사회) 질서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이러한 <카리스마적 요소>가 없다면, 일관된 정책수립도 불가능하고, 또 국가정부는 <지도자  (리더, 리더쉽)  없는 민주주의 leaderless democracy >, <소명의식없는 걍 전문가 정치꾼의 통치>로 빠져들어갈 것이라고 막스 베버는 생각한 것이다.  




.... 그러니까, <정치학> 일반이 아니라, 막스 베버가 이야기했다는 <정치 사회학>이라고 박상훈 대표는 밝혀줘야 한다는 것이다. 적어도.  위 박상훈의 <진보신당 강연>은 한국의 <진보정당>의 정치철학으로 되기에는 역부족이거나, 번지수가 잘못된 것 같다. 왜 그런가에 대해서는 (이후에 다시)  하나씩 뜯어서 지적하기로 하겠다. 




한 가지만 다시 지적하자면, 현대 근대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정치적 좌파도 <직접 민주주의>를 문자 그대로 하자는 사람은 없다. 다만 우리가 <직접 민주주의 정신 : 민심이 천심이다 (동양), Vox Populi Vox Dei 민의 소리가 신의 소리이다 (서양)> 이러한 정치적 이상을 현실에서 <도전>해보고 있는 것이다. 박상훈대표의 주장 "정치가 혹은 정치를 직업으로 선택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폭력과 강제를 본질로 하는 권력의 기능을 선용할 수 있는 담대함과 그만한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말은 우리의 정치적 철학이나 노선이 될 수 없다. 미국 정치학 교수들 중에서 막스 베버, 그것도 미국화된 정치사회학의 기능주의 입장에서 파악한 "정치의 본질이나 본성"일 뿐이다.








(막스 베버는 독일 정치를 책임지고 나갈 세력의 자격 조건으로 카리스마를 예로 들었다. 그 이유는 당시 독일의 대토지 계층 융커 Junker와 사회민주주의 주창자들의 핵심세력 도시 노동자들, 이 두 세력 다 독일 정치의 리더가 될 수 없다고 보았다. 그의 대안은 카리스마의 담자지였던 것이다. 이러한 독일 정치 배경을 무시한 채 베버의 리더십 철학만 강조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아니 어느 누가 "정치"를 반드시 "폭력과 강제 violence and enforcement"가 그 본질이라고 했나? 이건 막스 베버가 국가의 특성을 설명하면서 했던 이야기일 뿐이다. 그러면 세상에는 이 지구상에는 역사적으로는 막스 베버가 정의내린 "국가관"만 있는가? 이건 중등, 고등학교 사회 1 교과서에도 나오는 이야기일 뿐이다. 




<직업으로서 정치, 소명의식을 가진 정치가> <신념윤리학이 아닌, 책임 윤리학을 가진 정치가> 이 이야기를 하게된 막스 베버의 상황, 당시 영국과 미국을 따라잡기 위한 신흥 통일독일국가의 발전전략 중에 나온 막스 베버의 이야기이다. 이것을 왜 한국의 진보정당 사람들이, <정치철학>이나 <정치가로서 갖춰야 할 덕목, 윤리>수준으로 승격시켜야 하는가?




좌파니, 마르크스니, 베버니를 다 떠나서, <승격>시키지 말고, 그냥 <독서>의 한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고, 비판적 안목으로 책을 읽으면 안되는가?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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