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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가 이끄는 국민의당이 내부 분열 위기에 몰렸고, 자칫 상황이 악화되면 당의 존립성마다 위태롭게 될 것 같다. 국민의당이 애초에 설정했던 정치적 좌표는 제 3 지대였다. 그러나 새누리당과 더민주당 사이 제 3의 보수적이면서 합리적인 무당파를 지지층으로 만든다는 전략이 실패하고 있다. 그리고 지역적으로도 새누리당의 거점인 영남과 충북,강원 등에서도 지지율이 오르지 않고 있거나 전혀 변화가 없는 반면, 오히려 호남과 광주에서도 지지율이 급속히 떨어지고 있다.


이러한 급속한 지지율 하락 속에서 위기의식을 느낀 사람들은 김한길을 비롯한 서울,경기권에서 출마할 예정인 국민의당 국회의원들과 후보자들이다. 국민의당 내부 분열의 신호탄이다. 


안철수가 죽을 각오로 광야에 나가겠다고 기자회견을 했지만, 국민의당 내부 계파들은 흔들리고 있고, 침몰할 지도 모를 국민의당 호에서 탈출할 계획B까지 짜고 있다. 다선 의원인 김한길의 본능적 생존 방식과 CEO 성공 경험에 휩싸여 정치와 사업을 구분하지 못하는 안철수와의 차이다.  


왜 창당 2개월 3개월 만에, 심지어 총선을 치르기 전에도 국민의당과 안철수는 지리멸렬해졌는가? 안철수의 목표는 대권 도전이고, 나머지 국회의원들은 413총선 당선이 급하기 때문에, 국민의당은 전체적으로 목표점을 일치시키지 못했다. 


두번째는 안철수현상 출발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문제로 남아 있는 '도대체 안철수의 새 정치는 무엇인가?'를 안철수와 국민의당은 그 실체를 보여주지 못했다. 안철수의 정치경력은 너무나 일천하고 짧았다. 그렇다고 해서 안철수와 국민의당이 건실한 '연구소'와 '두뇌집단'이 있는 것도 아니다. 대중운동과 결합된 정당도 아니다. 

 

세번째는 호남의 민심에 대한 안철수와 국민의당이 오판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2017년 대선에서 이명박-박근혜로 이어지는 극우적 정권과 반-노동자적 부자/재벌친화 정권을 교체하라는 신호를 야당들에게 (민주당,정의당 등) 보냈다. 하지만 안철수는 이 호남 유권자들의 신호를 자신이 대선후보가 되는 것으로만 축소해 이해했다. 국민의당 창당 이후 '(더)민주당'을 능가하는 당 혁신의 모양새를, 인적 구성을 보여주지 못한 채 안철수는 빈곤하고 무력한 안쓰러운 '독야청청' 고립의 길을 걷고 있다.


국민의당은 총선 전에 무력화될 수도 있다.




(김한길은 서울 광진구 지역구에서도 당선이 힘든 상황에 몰렸다. 김한길은 '새누리당의 개헌 저지'라는 정치적 목표를 내걸었다. 안철수가 옆 자리에 있어도 '고립 정치'를 하지 말라고 비판하고 있다.)


http://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733870.html?_fr=mt2 김한길은 친노 인사들의 공천을 반대했고, 그게 만족스러우면 더민주당과 국민의당이 통합할 수도 있다고 했다) 





(안철수의 정치적 목표는 2017년 대선 후보로 출마하는 것이기 때문에, 413총선은 일종의 정치적 세몰이 실험대이자 중간다리 역할을 할 뿐이다.)




(1992년 정주영의 통일국민당과 2016년 안철수회장의 '국민의당'의 차이점이 드러난다. 정주영 현대 회장은 박정희-전두환-노태우에게 노동자들을 쮜어짜서 번 돈, 피눈물을 흘리면서 수백억원 정치자금을 헌납하면서 정치를 배웠고, 안철수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IT 산업 원조를 받으면서 정치적 혜택을 보면서 CEO가 되었다. 보수정당의 정치 생리를 정주영은 아주 잘 피부로 느끼고 있었고, 그래서 자기 돈을 쓰면서 최불암, 강부자, 이주일 등을 사오고 현대 기업을 조직적 선거운동원으로 부려먹었다. 그리고 그게 통했고 적중해서 1992년 4월 총선에서 31석을 얻었고, 그해 12월 대선 후보로도 나갈 수 있었다. 


반면에 안철수는 정치 학습 시간이 너무 짧았고, 보수 정당의 생리, 보수적 국회의원들의 생존방식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안철수는 한상진, 최장집 등 교수들을 포진시키거나 윤여준 등 멘토를 빌려왔지만, 현실 여의도 국회 기계 속에서는 전혀 작동하지 않고 녹슬어버렸다.)

 


김종인의 발언은 이미 국민의당 내부 사람들과 '소통'이 있었고, 플랜 B가 있음을 보여준다. 국민의당과 야당 통합을 하려는 궁극적인 목표는 서울과 경기권에서 5~6% 차이로 당락이 결정되는 접전에서 더민주당이 새누리당을 이기기 위함이다. 김종인과 더민주당이 그것을 모를리는 없다. 

안철수 길들이기가 김종인의 단기 목표다.




한상진 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김종인 더민주당 대표를 공격하고 비난했지만, 출발부터 이승만 국부론에서 주저앉은데다 현실 정치에서 새로운 신무기는 가진 게 없다는 게 드러나고 말았다.




'정복군 사령관'이라는 표현 자체가 이미 승부에서 졌음을 한상진 위원장이 자인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복군 사령관이고 오만하다는 말은 관심있는 유권자들이 평할 것이지, 뛰는 실전 선수들이 할 말은 아니다. 한상진의 정신적 무기력의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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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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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민주당2016. 1. 27.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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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민주당 선대위, 비대위 위원장) 인터뷰 - 김주하 아나운서


이 인터뷰 도중에, 시청율을 의식해서였는지, 김주하 아나운서는 "전두환 국보위에 참여한 분이 호남 민심을 얻을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이 질문은 두가지 점에서 잘못되었다. 첫번째는 전두환 국보위 (국가보위 비상 대책위원회, 1980년 5월 창설) 참여 문제는, 호남 사람들 뿐만 아니라, 전 국민이 문제 삼고 비판해야 할 성질의 것이다. 왜냐하면 전두환 노태우 육군 소장들이 79년 1212 쿠데타를 일으키고, 1980년 518 광주학살을 저지르면서 정권 찬탈을 위해 국보위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두번째 김종인이 5공화국 민정당 국회의원으로 정치활동을 시작한 것은 찬/반 논란이 있다. 그러나 독재정권 하에서 경제 테크니션으로 활동한 김종인에게 1212 쿠데타나 518 광주학살의 책임까지 물을 순 없다. 전두환 노태우 독재 정권에 맞서 싸운 사람들이나 민주화운동 참여시민들은 당연히 전두환과 민정당, 그리고 당시 민정당 전국구 국회의원이었던 김종인에 대해서 비판적일 것이고, 또 비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종인은 공식적으로 '국보위 참여'를 사과했는가? 아직 한 적은 없다.

김종인은 공식적으로 6공화국 노태우 정부시절 뇌물수수에 대해서 사과한 적이 있는가? 있다. 집행유예로 풀려났지만 6개월 정도 교도소에 수감되기도 했다. 


민주당은 안철수-김한길-박지원 등 중도보수파들의 탈당 이후, 김종인을 영입함으로써 당의 분열을 막고 있다.

그만큼 민주당 정당의 기초와 주춧돌이 허약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총선 이후 설사 민주당이 좋은 성적이나 '방어전'을 치르더라도

민주당의 기본적인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을 수 있다. 


제 4공화국 박정희 시절부터 정계에 등장해, 제 5공화국 전두환, 제 6공화국 노태우, 그리고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로부터 러브콜을 받았고, 박근혜 정부, 안철수까지 김종인을 끌어들이거나 이용해먹었다. 이승만 정권 당시 초대 대법원장 가인 김병로의 손자, 김종인은 집안 대대로 국가의 '공인'으로서 좌우를 막론하고, 군사 파쇼와 민간 정부를 넘나들며, 박정희와 그 딸 박근혜까지 두루 거치면서 40년 정치활동을 하고 있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김종인이 독일 뮌스터 대학시절 공부하고, 당시 서독에서 배운 '복지국가' 정책들 때문이다. 서구 유럽은 1,2차 세계대전 범죄국가들로서, 내부로는 계급투쟁과 빈부격차로 인한 사회갈등을 가라앉히고, 국제적으로는 상호파괴적인 제국주의 전쟁을 중단하자는 사회적 정치적 외교적 군사적 합의를 이뤄냈다. 그 시기가 1945년에서 1973년 정도 30년간 사회복지 황금기 시절이었다. 


당시 후진국이었고 가난했던 한국에서 서독으로 유학간 김종인이 몸소 체험한 것은 교육, 의료, 실업 보험, 노인 연금 등을 보장한 '가족중심형' 서독 복지국가 체제였다. 김종인은 박정희 군사독재건 유신체제건 간에, <재정학> 전문가로서 욕심이 있었고, 국가정부가 재정 투입을 통해서 교육,의료,주택,고용,연금,국방 등은 물론이고 공공투자까지 책임을 져야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러한 김종인의 정부의 '경제' 참여와 큰 정부론은 1997년 이후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IMF의 신자유주의적 긴축통치에 굴복한 것과는 결이 다르고,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친 재벌' '선 성장 후 분배' '노골적인 노동조합 탄압'과 '해고의 자유' 노선과도 다르다.


그렇다고 해서 김종인은 사회주의자는 아니다.왜냐하면 김종인의 '복지'정책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원활한 작동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고 그는 믿기 때문이다. 

참고: 한상진 "김종인 영입은 독약"이다. 2016.01.26 (한겨레)  -> 한상진은 위와 같은 배경을 모르거나 알면서도 모른 척 하는 것이다. 


http://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727946.html




1월 20일, 2016 


김종인은 항간에서 말하는 안철수 멘토설을 부정했다. 

안철수는 대선 후보가 되기 위해서 민주당을 탈당했다. 그러나 그것은 현명한 결정이 아니다.

명분도 없고, 정당 정치도 아니다.


노무현 정부로부터 김종인은 러브콜을 받은 적도 있다.

전두환 국보위에 참여한 것은, 부가가치세 폐지를 방지하기 위해서였다고 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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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은 부가가치세 폐지 방지를 위해서 전두환의 '국보위'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측에서 김종인을 영입하려고 했다. 



김종인은 6공화국 노태우 정부시절 3년간 청와대 경제수석이었다.

두 차례 뇌물 수수 혐의와 공모로 검찰 수사를 받았다.

아래 사건은 그에 대한 그의 답변이다.






민주당 선거대책위원장으로서 공천 룰을 지킬 것인가?


20% 공천 물갈이는 예정대로 하겠다.






총선 전 야권 통합은 불가능하다.








안철수의 목표는 2017년 대선이 목표다.





민주당으로부터 토사구팽 당하는 게 두렵지 않느냐?

김종인은 그런 것에 신경쓰지 않는다고 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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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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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종인 이분 쎄다는 느낌이 팍. . .잘할것같습니다.

    2016.02.06 12:04 [ ADDR : EDIT/ DEL : REPLY ]
  2. 생각없다는 말 진짜일거라 믿는 내가 바보다.

    2016.05.16 15:37 [ ADDR : EDIT/ DEL : REPL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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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가 말한  '국민의당'의 최고인재들은 누구인가? 그 중에 한 명은 한상진 전 교수다. 11일 이승만 박정희 묘소에 참배한 후에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이 땅에 도입하고 굳게 세우신 분"이라고 이승만 대통령 (1대~3대)을 평가했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은 1954년 11월 27일에 제헌헌법 (1948년 헌법)을 억지로 뜯어고쳐서 장기집권을 하고자 했다. 원래 헌법에 따르면 이승만은 이미 48년~52년  (1대 대통령), 52년~56년 (2대 대통령) 두 번을 했기 때문에, 56년~60년 3대 대통령은 출마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기붕을 비롯한 자유당과 이승만 대통령은 54년 11월 27일에, 초대 대통령에게 국한해서 대통령 중임안을 폐지하자는 내용을 골짜로 한 '개헌'을 국회에서 표결했다.


개헌안 통과는 정족수의 3분의 2였다. 당시 203명 국회의원 정족수의 3분의 2는 136명이었다. 203의 3분의 2는 135.33333 이었기 때문이다. 


1954년 11월 27일 국회 표결에서 찬성 135표, 기권 7표, 반대 60표가 나왔다. 3분의 2에 해당하는 136명에 1표가 부족해서, '개헌'안은 부결되었다. 당시 자유당 최순주 국회부의장도 '부결' 판결을 내리고 국회는 마감되었다. 


그러나 이기붕 (자유당) 국회의장은  203명의 3분의 2인 135.33333 에서 소수점 이하가 반올림이 되지 않는 '의미없는' 숫자라는 수학 논리를 가져온다. 따라서 '개헌안' 표결에 필요한 숫자는 136명이 아니라 135명이라고 우긴다. 이게 그 유명한 사사오입 개헌안이다.


11월 29일 국회를 다시 소집한 자유당은 최순주 부의장이 27일은 표 계산을 잘못했다고 하면서 135명이 '개헌안'에 필요한 숫자라고 발표했다. 당시 이기붕 국회의장은 자유당 당원이자 자기 사설비서였던 정치깡패 이정재 등을 국회 안에 배치시키고, 욕설과 협박을 야당의원들에게 행패를 부렸다. 



1954년 11월 29일 사사오입 개헌 통과는 세계 현대 정치사의 10대 부정 부패 사건에 해당할만큼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치욕적인 순간이었다. 그런데 안철수와 한상진은 민주주의를 정면으로 파괴한 이승만을 반대로 칭찬할 수 있단 말인가?  


한상진 전 사회학과 교수가 54년 세계정치사의 치욕적인 '사사오입' 개헌 사건을 모를리는 없다. 그렇다면 단순히 곡학아세(曲學阿世)일 뿐인가? 






당시 신문 기사들을 간략히 살펴보자.


1954년 11월 27일 '개헌안' 부결 소식을 담은 동아일보 1면과 사설

"개헌안 부결" "아슬아슬한 1표 차이"



동아일보 사설 


"(부결 시킴으로써) 우리 조국의 민주정치의 위기가 수습되었다" 





11월 29일, 다시 열린 국회. 자유당은 정치 깡패들, 이정재 (이기붕 의장 개인 비서 겸 자유당 당원)를 국회 안으로 배치시키는 등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야당 의원들이 다 퇴장해버리자, 국회의장 이기붕이 개헌 통과 봉을 두들겼다. 






11월 30일자 경향신문 1면,  이철승 의원이 국회의장 최순주와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국회서 난투극 !" 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경향신문 12월 1자 사설에서는, 자유당이 정치깡패 이정재를 국회에 투입시켰다는 것을 비판하고 나섰다.

"폭력단이 의장내부에 출현횡행하였다 하는 것은 세계의정사에서도 미증유의 사태일 일뿐 아니라, 아무리 후진적인 이 나라에서도 전례가 없는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동아일보 11월 30일자 논평:

"어느 편으로 결정되어야 할 지 의문시될 때에는 현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라

indubio prostatus quo "

 203명의 3분의 2는 135.3333인데, 자유당식 셈법으로 사사오입해서 0.3333를 버리고, 135명이 '개헌' 가능선이 된다는 주장이다. 



12월 7일자 동아일보 "단상단하" 코너.

유진산이 폭력배 이정재를 국회로 끌어들인 자유당 이기붕의장을 비판했다. '무뢰한'이라는 표현이 있다. 





(419 혁명 이후, 이정재는 재판을 받게 되었으나 1961년 6월 석방된다. 그리고 1961년 박정희 군사쿠데타 이후, 10월에 사형당했으나 일사부재리 원칙에 어긋나는 정치적 사형이었다. ) 



조폭 동원 정치

1957년 5월 25일 서울 장충단 민주당 연설회 :


조폭들과 이정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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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5월 25일  조병옥 (민주당) 연설 방해, 앰프에 불을 지르다.






장충단 공원 연설, 조병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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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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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 선친은 미국에 유학 가서 이승만의 분탕질을 직접 경험하셨고, 안창호 선생님으로부터 이승만의 문제에 대해 들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 유신헌법을 배운 유일한 세대입니다. 종신대통령이 되기 위한 헌법이었는데 세계에서 가장 완벽한 민주주의를 실현한 헌법이라고 배웠습니다. 한상진, 정말 또라이네요. 이 자에 대해 연구를 해야 할 듯합니다.

    2016.01.17 02:5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선친의 경험은 참 중요해 보이는데요. 어떤 증언록이나 기록이 있는가요?

      2016.01.25 00:32 신고 [ ADDR : EDIT/ DE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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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와 그 참모들은 "무위 (無爲)가 유위(有爲)임을 모르다"

잠시 생각해보는 '안철수' - 안철수는 3회만 "제가 양보하겠습니다"라고 했더라면, 당권도 대권후보도 거머쥐었을 것이고, 실제 2017년 대선에서도 지금과는 비교도 안되게 "경쟁력" 수치가 높았을 것이다. (1) 정치는 혼자 하는 게 아니다. (2) 안철수는 누구와 상의하고 토론할까? 


- (결론) 철수에게는 나침반을 준비해온 '영이'가 없었다. 


첫번째 양보 "제가 양보하겠습니다.박원순 털보 " - 서울시장
두번째 양보 "제가 양보하겠습니다. 문재인 후보에게 (흔쾌히)  " - 대선후보
세번째 양보 "제가 양보하겠습니다. OOO 당대표 "

가끔 그렇다. 뭘 하지 않는 게 (무위 無爲)가 뭘 진짜 하는 것,유위(有爲)이다.


10년간 2번이나 나와서 2번 다 낙선한 이회창보다 더 못한 사례가 안철수이다. 안철수는 세번 "제가 양보하겠습니다"그러고 나서 1번만 나와도 당선도 될 뻔했다. 이회창에 비해 얼마나 '쿨'했냐?

그걸 물었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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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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