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비교/국제정치2019. 9. 20. 19:12

한국전쟁으로 인명과 재산이 파괴된 남한 북한과 달리, 미국은 군수산업을 발전시키고 고용을 창출하고, 대서양 중심에서 태평양까지 그 지배를 확장할 수 있었다.




브루스 커밍스, "Dominion from Sea to Sea; Pacific Ascendancy and American Power"

"바다로부터 바다로 제국: 태평양의 우위와 미국 권력"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일본 전쟁이 끝나고,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 주)의 정치군사적 중요성은 줄어들었다.


미국이야, 전통적으로 대서양과 유럽이 가까운 동부가 정치,경제,교육의 중심지였다.


정치는 수도 와싱턴 D.C, 금융과 문화는 - 뉴욕, 교육의 중심지는 보스턴 일대.



그런데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의회 예산은 다시 서부 캘리포니아 쪽으로 쏠리게 되었다.

군수 산업과 밀접한 스탠포드 대학 공대, 그리고 캘리포니아 주립대학들 군수 산업과 관련된 예산 지원을 받게 되었다.



한국 전쟁이 없었다면, 미국 서부의 군수산업, 대학 공대들의 발전은 지금과 다르게 전개되었을 것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군수 산업 발전 과정


(1) 한국 전쟁 당시 예산안 통과

당시 130억 달러에서 540억 달러로 급증함


(2) 캘리포니아 주 군수 공장에서 16만명 고용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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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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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진보정당 조직 원리 문제점

1) 1940년 이후~ 1953년까지 한국 현대 정치사와 현대 정당사에 대한 연구 부족 (한국 전쟁 전후 13년 정치사에 대한 연구 필요성과 현재까지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서) 

2)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군사 정부 시절 형성된 한국 정당 정치 특성 연구 부재

3) 한 국가 운영에 대한 비전이 없는 상태로, 특정 써클 중심으로, 1가지 2가지 주제로 정당을 운영하는 것은, 특정 정치단체나 동아리와 구별이 되지 않는다.


근본적인 원인 탐구 필요: 정치가들 사이 불신이나, 연구소 부재로 인한 학습력 약화, 관성적인 개인의 정치적 경험들이 한 정당의 정치 노선이 되고 마는 조악한 정치 조건. 



안효상, 금민/ 기본소득 실천을 위해서는 네트워크 형 "통합정당" 리그가 더 낫다고 봅니다.

2015.07.10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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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유수같습니다. 안효상 전대표님과 금민님의 '공지사항', 당대회 이후 대책에 대한 글을 읽었습니다. 

전 현재 한국정치 지형과 진보정당들의 어려운 조건에서는, 당대회/전국위와 같은 '절차적' 대의기구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구성원들의 정치적 의지라고 봤는데, 그게 그렇게 말처럼 쉽지 않는가 봅니다.


짧게 제 의견만 '정당 이론이나 실천'과 관련해서 의견을 드리겠습니다. 강남훈 곽노완 선생님과 기본소득의 정치적 결실 및 실천을 이야기하다가, 성남시장 이야기나 미국,브라질 사례, 그리고 캐나다 온타리오 주 보수당 국회의원의 '기본소득' 도입 찬성 등도 짧게나마 토론한 적이 있습니다. 금민 안효상님은 이미 그 내용들의 의미와 한계에 대해서 익히 잘 아실 것입니다. 


정당 형태와 운용에 대해서, 제 생각은 특히 기본소득과 관련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의회에서 '기본소득'을 실천/입법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몬트리올에서 구이 스탠딩(Guy Standing)이 인도에서 '기본소득 =현금' 주고 실험한 보고서와 영상에서 보여준 것도, 그 수혜자들이 피부로 느끼는 게, 그게 100%가 아니고, 더 낮은, 69%, 49%, 39%일지라도요. 


따라서, 전통적인 좌파 방식이었던 '정당'을 가급적이면 '단일한 이념과 사상' 통일을 강조하는 스타일이 아니더라도, 네트워크 형, 즉 각 <정치조직>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게임규칙과 당운영 원칙들을 정해서, 그 테두리 안에서, '네트워크' 연대하는 통합형 리그 (unified League) 형식이 필요하고, 한국 상황에 적합하다고 봅니다. 


특히 '기본소득'정책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하루 속히 금민, 안효상님이 세미나, 강연회 위주가 아닌, 시의회, 행정부에 가서 실천하는 '정치적 조건'을 만드는 게 기본소득의 '내용'을 지금보다 더 '강화'하고 '효력'을 더 뚜렷하게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러한 <정당 형태>와 <기본소득> 과의 관계에 대한 토론은 있었는지요?


제가 볼 때는, 오히려 <기본소득>을 통해 한국자본주의 특성을 연구하려는 금민 안효상님의 정치실천 전략을 논리적으로 따지면, <진보결집?: 전 통합리그라는 표현이 낫다고 봅니다>보다 더 적극적으로 유연하고 폭넓은 '좌파 정당 이론'을 제시하는 게 낫다고 봅니다.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기본소득과 관련해서,조금 아쉬운 부분은, 한국 자본주의 역사와 현실분석과 연계되지 않고, '정책적 효과'나 '재정 확보, 재원'만 논의되는 것입니다. 마르크스의 '임금-노동자 관계'가 아닌 '자산 property'개념과 연계될 정치 분석과 기획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시 토론해보겠습니다. 


오늘은 정당이론과 실천과 <기본소득> 정책 연관으로 국한하겠습니다.


<인도에서 기본소득 실천 사례 발표>


인도 8개 마을, 8개월 동안, 남녀노소 막론하고 5천 500명 주민이 매달 갚지 않아도 되는 현금을 받았다. 그 효과는 무엇이었을까? 영양섭취, 학교 교육 성취도, 여성의 사회적 지위, 경제활동과 보건 위생 측면에서 무엇이 달라졌을까? 인도 주민들은 이 현금을 가지고 자기 생활을 스스로 계획하고 실천함으로써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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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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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재영과 노회찬 민주노동당 사무총장, 보수체제의 미끼가 된 노의원


왜 회고와 정리가 필요한가?  


노회찬 (전) 민주노동당 사무총장이 국회의원이 된 것은 역사적으로 볼 때, 현 한국 보수 정치 체제 ‘여의도 의회정치’가 던져준 미끼였다. 앞으로는? 아무도 모른다. 의회정치에 대한 회의적 발언인가? 아니, 그 반대이다. 노회찬 의원에 대한 비토인가? 아니다. 초점은 민주노동당이 그나마 진보정당사에서 유의미한 점수를 올리던 시절, 그 때는 바로 노회찬 사무총장 임기 기간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이다. 


미국 자본주의 경영학 원칙들 중에 하나가 ‘사업 실패, 부도’도 경력에 속한다는 것이다. 실패의 원인들에 대해서 역사적으로 고찰하지 않으면 제 2, 제 3, 제 4의 거품은 또 발생할 것이고, 산도 칼로 벤다던 항우의 호연지기는 허경영의 마술로 끝날 것이다.


2011년 9월 4일 진보신당 당대회 이후, 당 안팎에 묵시적으로 명시적으로 퍼진 ‘의회 정치’에 대한 반감, 대중적 정치가들에 대한 불신, 정치조직(정파)와 정당 자체에 대한 냉소주의 등은 극복되어야 한다. 


좌파정당은 보수당보다 더 보수적으로 건설되어야 한다. 한국은 3-400만명이 죽고 다치는 한국전쟁(이념전쟁과 국제전쟁 동시 수행)을 경험한 나라이고, 유럽과 달리 이웃 나라 ‘좌파 정당’과 ‘좌파 정부’가 거의 없는 고립된 정치적 지형이기 때문이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고 단언적인 주장만 우선 제시한다) 


그런데 지난 13년간 당들이 너무 많았고, 자주 바뀌었다. 대중적 진보정당으로서 ‘자격’이 없거나 1만년 민주당 꽁무니당 하겠다는 징조이다. 2% 의회해산 악법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13년의 실험과 실천이 왜 실패인가? 당명보다 더 중요한 것은, 2004년 민노당 10석, 2007년 대선, 2008년 촛불정국, 2012년 총선과 대선 정국, 주어진 정치적 기회들을 다 날려버렸다. 야구로 치면 잔루 공화국이었다.


1. 개인적 결론이자 교훈이다. 창당 초기, 그리고 좌파가 대중적 진보정당으로서 한국에 뿌리 내리기 위해서는, 당 사무총장의 역할이 중요하다. 사무총장이 ‘의원’을 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그런 단순 질문이 아니다. 하지만 2004년 4월 비례대표 8번으로 당선된, 노회찬 사무총장의 길은, 장기적인 당 성장 발전에서 볼 때, 오류였다고 본다. 적어도 미래 안목이 있는 정파나 연구소가 있었다면, 노회찬 전 민주노동당 사무총장이 그 직위에서 보다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했어야 했다.


2. 사무총장의 역할이 무엇이기에 그토록 중요한 자리인가?

모든 조직에서 중요한 것은 ‘인사제도’이다. 서구 유럽과 미국-캐나다 대학에서 가르치는 정치학 교과서 중에, 정치철학과 정치이론사의 가장 중요한 주제는 ‘지도자론’이다. 이것은 공자, 맹자의 사상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19세기, 20세기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정당에서 내세운 ‘정당 이론’에서도 중요한 주제를 차지했다.

정치 정당 이념을 실천하고 수정하고 변경시키고 확대시키고 심화시킬 사람들을 찾아 내는, 속칭 ‘인재 사냥꾼 (헌터)’ 역할을 하는 게 사무총장이 할 일이다.


13년간 한국 진보정당, 좌파정당은 발전하지 못하고 퇴행적으로 후퇴했다. 정책은 ‘재분배 세금’ 정책 하나 문제제기해 놓은 다음, 그 다음 수많은 다른 주제들을 심화발전시키지 못했다. 민주당/새누리당과 차별되는 ‘당내 민주주의’와 ‘진성당원제’를 실천하지 못했다. 한국 자본주의를 극복하자는 당이, 연구소를 만들어서 한국/세계 자본주의 동학과 계급분화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전혀 연구하지 않았다. 새로운 대안이 나올리 만무하다. 


알면도 당하는 것이다. 뻔히 쳐다보면서도, 뭐든지 다 알 것 같으면서도 삼진당하는 것이다. 


당에서 사무총장의 역할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자기 계파, 자기 선후배들 챙겨주고, 공정성과 객관성을 상실한 인사제도를 당에서 실천하게 되어 있다. 지난 13년간, 10만 명의 당원들을 모아놓고, 마치 1000명 모아놓은 당나라 군대로 만들어놓은 정치적 참변이 내부적으로 발생했다. 



3. 역사에서 가정, 소용없다. 다 알면서도 미래의 과제를 위해서 다시 써본다.


(고) 이재영과 노회찬 전 사무총장이 한국사회 전체 노동운동 전체 좌파와 진보 대변하지 않는다. 이것도 우리 모두 다 알고 있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은 지난 13년, 그 이전의 역사를 고려해 본다면, 상당히 비중있는 투수-포수 한 조였다.


2012년 그들은 헤어졌고, 이재영이 트레이드 되었는지, 노회찬이 트레이드 되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류현진 투수처럼 추신수처럼 10배, 100배 더 많은 현금을 받고 트레이드 되었다면 다 박수칠 일이지만, 우승 한번 못한 채 트레이드되었던 게 역사적 사실이다.


2003년 11월, 12월, 노회찬 전 사무총장이 비례대표 출마한다는 소식에, 반대 의사를 표명한 적이 있다. 어느 누군가는 ‘당 조직’의 미래를 위해서 기초공사를 다지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냥 ‘당권’으로 모든 문제를 환원시켜서 노회찬 전 사무총장이 ‘당권’을 쥐고 있으라, 이렇게 조악하게 해석하지 말아달라. 


지금도 당 안팎으로, 관악산도 북한산도 백두산도 한라산도 칼로 벨 수 있다는 항우의 호연지기 가진 분들 많다. 그러나 그 산들을 칼로 베놓고, 어디로 옮길 사람들은 있는지? 그 사람들은 어디서 찾아오고,어디에다 배치할 것인지? 사무총장이 할 일이라는 점 한번 생각해주었으면 한다.


4. 노회찬이 국회의원이 된 게 다 잘못이란 말인가?


안티-의회주의자들 노선은 찬성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난 13년, 진보좌파정당은 여의도 ‘국회’라는 공간이 가진 역사적인 파워, 지난 세계사 1688년 영국 의회의 출발에서, 한국만 해도 지난 60년간 의회라는 공간이 가진 그 보수성의 파워에 대해서 너무나 경시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고 이재영 실장이 별세하기 전, 노회찬 전 사무총장과 찍은 사진이 노회찬 틔위터에 있었다. 머리를 빡빡깎은 이재영과 노회찬은 같이 웃고 있었다. 내가 그들의 삶에 대해서는 뭐라 평가할 위치나 자격은 없다. 


그러나 아쉽다. 마치 끝나버린 드라마처럼. 헤어질 때도 아닌데 헤어진 것에 대해서 눈물을 흘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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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비교/국제정치2013. 6. 11. 09:27

실체가 드러나 미국의 이중성. 자유민주주의 정신에 정면으로 위해된 정보수집.


에드워드 스노우든 (전 미정보국 CIA, 미 국가안전국 NSA 직원)의 미국정부의 불법적 정보수집 폭로 사건과 대조되는 오바마-시 진핑 넥타이 회담.


시 진핑 (중국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미국 오바마는 중국이 인터넷,사이버 세계에서 미국의 지적재산권을 훼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사이버-안전(안보) cyber-security 가 미-중 관계에서 아주 중요하다고 오바마가 역설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미국의 재산을 중국이 불법으로 도둑질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에드워드 스노우든이 홍콩까지 망명가서 밝힌대로, 미국은 인터넷 뿐만 아니라 개인의 전화까지, 은행 정보까지, 비밀번호까지도 획득이 가능한 프리즘(PRISM)프로그램을 작동시키고 있었다. 스노우든을 인터뷰한 글렌 그린우드 Greenwood 기자에 따르면, 이 프리즘은 하루에도 수십억개의 이메일이나 전화 통화 정보를 빨아들일 수 있다고 한다. 내 컴퓨터에도 접속이 가능하고, 통장 계좌에 얼마나 있는지도 훤히 다 알 수 있다고 한다.


투명 유리 감옥이다.


스노우든의 내부고발 결심에 대해서, 그린우드 기자는, 개인의 이익보다는 공적 행복과 인권을 더 중시한 결단이라고 칭송했다. 미 공화당은 당장 '범죄자' 스노우든을 미국으로 양도하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스노우든은 가족 친구들과 다시 만나지 못할 수도 있고,그것을 각오하고 홍콩으로 갔다고 한다.



(6월 9일; 인터뷰 중인 에드워드 스노우든: 출처: http://www.guardian.co.uk/world/2013/jun/09/nsa-whistleblower-edward-snowden-why

중국에게 사이버 지적 재산권과 인권준수를 요구하던 미국의 실제 모습이 추악하게 드러나는 순간이다. 사실 페이스북이 2005~6년 사이 미국 캐나다에서 유행하고 있을 때, 이미 미 CIA나 NSA에서 다 개인 정보들과 활동들을 수집하고 있다고 염려하고 있었다. 실제로 마음만 먹으면, 반-정부나 반체제 인사는 '테러리스트'로 구속될 수 있는 현실이다. 미국이나 한국에서나.


주제 1. 국제정치: 미국과 중국 앞으로 사이버 전쟁 어떻게 치를 것인가?


주제 2. 사이버 민주주의 정신 논쟁 방향


주제 3. 군수자본과 인터넷 상관관계를 역사적으로 보자 


에드워드 스노우든의 내부 고발이 미칠 파장. 전 세계 사이버 세계의 민주주의와 인권은 어떻게 신장될 것인가? 누가 사이버 민주주의와 참여를 앞당길 수 있을 것인가? 사이버 스페이스와 인터넷의 상업적 이용, 혹은 개인 이용도, 1960년대 이후 미 국방부 펜타곤에서 발전시킨 군사기술 (군내부 의사소통 및 작전)에서 비롯된 것이다.


미국 실리콘 밸리 (서부 캘리포니아)가 급성장한 데에는 1950년 한국전쟁 발발이 있었고, 미 의회는 2차 세계대전이후 서부에서 동부로 미국방의 중심을 이동중이었고, 국방비까지 삭감하던 차에, 한국 전쟁이 발발해서, 16만명을 신규 고용했다. 그곳이 미 캘리포니아 지역 군수 산업 공장들이었다. 그게 미 서부 실리콘밸리의 토대가 되었다.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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