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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민중 집단적 의지 형성과 조직 (2)


그람시의 고민은 이탈리아에서 어떻게 민족-민중의 집단적 의지를 형성하고 조직화할 것인가였다. 그람시는 이 역할을 이탈리아 공산당 PCI 가 해야 한다고 봤고, 이탈리아 근대사에서 결핍된 자코뱅 세력이 되어야 한다고 봤다. 

프랑스 혁명에서 빌어온 자코뱅 노선이란, 20세기 초반 이탈리아에서 농민들을 프롤레타리아트의 헤게모니 하에 묶어두고 동시에 모든 종류의 경제주의, 생디컬리즘, 자생(자발)주의를 거부하는 것이었다. 이 민족-인민(민중) 집단적 정치의지야말로 이태리 국가의 기초라는 게 그람시의 생각이다.그람시가 이 민민(민족-민중)의지를 강조한 배경에는, 유럽의 국제정치가 있다. 

1815년에서 1870년 이 시기는 유럽의 보수세력과 지배계급들이 유럽 전역의 자코뱅 세력들을 필사적으로 깨부수고 탄압하려고 했다. 그람시를 이러한 보수적 정치 지형을 ‘국제적 수동적 균형체제’라고 불렀는데, 이 체제 하에서 지배계급들은 경제적 기업의 권력을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그람시는 이러한 국내외 정치현상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이탈리아 지식인들이 민민(민족-민중/인민) 정치의지를 발현하는데 공헌해야 한다고 보고, 이탈리아 자코뱅 세력들 (근대 군주= 정당)이 지적 도덕적 개혁 조직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지적 도덕적 개혁이 경제-사회적 개혁과 연결되어야 한다는 게 그람시의 생각이다. 왜냐하면 경제 사회의 개혁(변혁) 역시 지적 도덕적 개혁을 수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람시가 근대 군주로서 ‘정당(자코뱅)’을 강조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민족-민중 집합적 정치 의지 형성과 조직화를 그 정당의 책무로 설정한 배경은 무엇인가? 그의 리소르지멘토(이태리 통일운동)에 대한 평가와 더불어, 그것은 당시 이탈리아 노동자 계급의 상황, 그 고향 사르디니아 남부 농민과 투린과 같은 북부 산업 노동자 관계, 지역 갈등, 사르디니아 민족주의 문제, 반동적인 지주 계급, 위계서열 권위주의 문화가 강한 이탈리아 생활세계 등과 연결되어 있다.


1906년 남부 사르디니아 농민들의 '독립운동'은 북부에서 파견된 군대에 의해 무자비하게 진압당하고, 반대로 북부 투린 지방 노동자들을 탄압하는데는 남부 사르디니아 군대가 동원되었다. 이러한 복잡한 정치 상황, 특히 노동자 계급의식의 성장이 더딘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그람시의 대안은 민족-민중 집합적 의지 형성과 조직화였고, 그 주체로 정당를 설정했다.


원시 .December 31, 2014 at 6:46am · 


민족-민중 집단적 의지 형성과 조직화 (1) 문제 중요성


1987년 대통령 선거 이후, 노태우가 합법적으로 당선되었다.

전두환과 노태우는 1980년 광주 학살자와 1212 군사반란 범죄자였지만, 1987년 대선을 통해서 노태우는 ‘합법성’을 취득하고, 도덕적 ‘정당성’은 결여되었지만 6공화국이라는 정치적 ‘정당성’의 운신의 폭을 넓힐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당시 소위 민민(민족민중)세력은 정치적 도덕적 정당성 모두 결여한 전두환 5공화국과 노태우 6공화국 동일성과 차이을 어떻게 설명하고 어떻게 정치 투쟁을 이끌어 나갈 것인가? 다시 말하면, 전두환 5공화국의 ‘폭력과 강압’, 그리고 본질적으로는 큰 차이는 없지만 유사-파시즘 요소가 가미된 그러나 5공의 무지막지한 ‘폭력과 강압’이 아닌 ‘법적 질서 (김기춘 검사/법무장관)’ 강조와 이데올로기 투쟁을 결합한 노태우 6공화국의 차이을 어떻게 해명하고 이에 대응할 것인가? 이게 큰 문제였다.


80년대 그람시에 대한 개설서들이 몇 권 번역되어 한국에 소개되었다.그람시의 ‘헤게모니’ 개념은 위 문제들을 푸는데 어느정도 실마리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나는 보았다.


당시 내 생각을 간단히 요약하면, 노태우 6공화국이 87년 합법적인 대선을 통해 당선되었지만, 정치적 도덕적 정당성은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이데올로기 담론 (여론전)을 잘 수행하면서 그 6공 체제의 약점을 파고들어야 한다고 본 것이다.


그렇다면 학생운동은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중앙집중적 데모 위주가 아니라, 각 학과로 정치,계급 투쟁의 깃발이 이동해야 해야 한다. 이 둘은 병존,공존도 해야 하지만, 공간의 이동, 방점의 이동 필요성이 생긴 것이다.


운동적 차원에서 외국어, 국제 연대의 중요성에 대해서


전 개인적으로 우리 당원들이 운동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외국어들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영어 뿐만 아니라 아시아 언어들도 하는 게 좋다고 봅니다. 이런 주장의 배경에는, 1991년~1992년 경 서울 구로공단에서 아시아 (인도, 필리핀, 네팔, 방글라데시, 중국 등) 이주 노동자들을 만나고 나서부터입니다. 


사실 당시 많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당시 구로공단 한국 노동자들의 임금은 낮은 경우, 시급이 아니라 일당(하루 8시간 기준)이 5900원~6800원 하는 공장도 있었기 때문에, 장시간 저임금 노동자의 노동 3권 찾기가 중요한 정치적 과제였습니다.


 그런데 한 달 30일 일하고 무조건 (flat rate) 30만원을 받는 아시아 이주 노동자들이 서울까지 온 것입니다. 필리핀 노동자들이 말하길, 이 돈은 자기 나라 임금의 3~5배 가량 된다고 했습니다. ‘국제 연대를 위해서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를 해야 한다는 건 중요한 정치적 실천이 되겠구나’ 그런 생각이 든 것입니다.


2011년 한진 중공업 크레인 85호에서 300일 넘게 농성한 김진숙님이 기억납니다. 그런데 한진 중공업은 필리핀 수빅만에 전 세계에서 3~4위 정도하는 대규모 조선소를 건설해서, 소위 자본의 지리적 이동을 단행했습니다. 뉴스 보도에 따르면 한국 노동자에 비해 필리핀 수빅만 노동자 임금은 6분의 1~ 5분의 1이라고 합니다. 필리핀 노동자들이 산업재해 문제로 투쟁도 했습니다.


 이제는 조선소 노동자 권리 문제도 한국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아시아 노동자들까지 고려하고 그들과 같이 연대해야만 우리의 정치적 과제, 노동해방을 쟁취할 수 있습니다.아시아 노동자들 (이주건 해외건)과 연대하기 위해서는 ‘언어’를 포함한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서로 교류해야 합니다.또한 한국 문제는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북한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나라 말들도 익힐 필요가 있습니다. 정치 정당의 존재 이유는, 한 국가를 경영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Yongsun Ryu 1억 인민의 베트남어에 함 도전해 볼 생각이ㅎㅎ


원시December 30, 2014 at 12:30pm · 먼나라 사람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큰 설득력은 생길 것 같지 않지만....그람시 Antonio Gramsci 를 언급할 때, "나는 지적 능력이 있기 때문에 비관적이지만, (삶에 대한) 의지가 있기 때문에 낙관적이다" 라는 말을 주로 하는데, 실제로 그의 핵심어는 "민족-민중의 정치적 결단과 집단적 의지"이다.



한국 진보정당 메모: - 재편이 아니라 <해체와 재건>이다


- 해체와 재건 문제는 노동당만의 과제가 아니라, 모든 진보정당들과 단체들의 책무이다.

- 각 정당에 <진보정당간 신뢰 회복과 ‘아래로부터 통합’을 위한 위원회>가 설치되어야 한다. 그래야 이 당들이 포괄하지 못한 사람들도 참여가 가능하다.


2012년 총선 이후, 2014년 6-4 지방선거 결과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재편이라는 용어는 약하다. 민중의 요구, 즉 굳이 안토니오 그람시의 핵심어인 “민족-민중의 집단적 의지 (a national-popular collective will)"이라는 단어가 유의미하다면, 이 민중의 집단적 의지는 4개 정당(통진당,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의 내부 입장이 어떠하건간에)의 해체와 재건를 요구하고 있다.


각 정당의 수뇌부들은 이 민중의 집단적 의지에 기초해서 과거의 오류들에 대해서 허심탄회하게 반성문을 제출해야 한다. 각 정당들의 차이와 불신을 깨부수라는 게 민중의 정치적 결단이자 표현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김상철의 “100% 민중정치” 대 “10% 유권자” 정치 대립도 큰 의미도 없어진다. 지금은 오히려 각 정당 내부의 자그마한 기득권이라도 다 내려놓는 게 일의 순서이다.


노동자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정치적 성과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적은 차이들을 최소화하고 녹여낼 수 있는 정치력이 필요하다.WonYong Yi 그람시의 핵심어라면 이탈리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게 영어로 표현되거나, 한국어(한자어)로 표현되는 거랑 차이 있을까요? 굳이 그런데도 그람시의 핵심어라면서 영어로 풀어 준 건, 영어의 권위로 글을 주장하려는 의도를 보여주는 거 같은 심리가 아닐까요?


December 30, 2014 원시 WonYong Yi/ 아 저번에도 좋은 문제제기를 해주셔서 (싱크탱크 주제), 제가 다시 생각할 기회를 가졌는데요, 어떤 방구동구 당원들은 그 의미를 모르고 논쟁적 측면만 강조하던데, 전 오히려 WonYong Yi님의 문제제기가 도움이 되었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1) 이탈리아어는 una volontà collettiva nazionale popolare 뽀뽀라레 /입니다. 


2) 나머지 질문들에 대해서는, 책상위에 있는 책이 영어책과 이탈리어책인데요, 영어책은 번역책입니다, 무슨 권위가 아니라, 그 번역책을 먼저 보고 한글로 번역해서 쓴 것입니다. 

나경채 흠...고민해 보겠습니다

김세규 파괴하라 그라고 창조하라~^^


원시


December 30, 2014 at 8:56am · 


온라인 글쓰기를 뒤돌아보면서, 2014년 12월 30일, 


정치와 스포츠는 다르지만, 적은 승리라도 자주 경험해야만 팀워크가 생깁니다. 적은 승리를 체험하고 성과를 나눠 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사람들과는 공자를 논해도, 정도전을 논해도, 마르크스를 말해도, <지붕뚫고 하이킥 2>의 정치적 기획을 언급해도, 항우의 역발산 기세보다 더 깊은 결의를 논해도, 아무런 느낌이 없다...


메모: 한국 진보정당 손실에 대해서. 어떤 측면에서 당비가 문제의 핵심은 아니다.


아무리 좋은 말, 심금을 울리는 이야기를 하더라도, 제가 하건 다른 분이 하건, 듣던 간에, 같이 도모해서 성공한 경험이 없으면, 마음에 와 닿지 않을 것입니다. 지난 2004년 이후 진보정당이 지속적으로 내리 하강국면을 걸었습니다. 당원들의 집단적 지혜의 분출을 돕는 지도부의 철학, 정치기획, 실천력이 시대의 요청에 못 미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패배의식을 안고 흩어져 버리는가를 보아왔습니다.


진보정당 10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그것도 1만, 3만, 5만, 10만 당원 개개인의 인생을 고려하면 더더욱 큰 시간입니다. 지금까지 진보정당 수뇌부들의 오류로 인해서 생긴 손실액은 대략 5천억원 정도 됩니다. 3000억원은 제도권에서 잃어버린 물질적 재산(국민의 세금)이고, 2000억원은 무형적 재산 손실액입니다.


많은 이들이, 돈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내 꿈과 의지를 펼칠 수 있다고 말입니다. 당비가 인상되면 좋겠다고 하고요, 그 순수한 마음들입니다. 그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한국에서 교육받은 동안, 남들에게 봉사하면서 살아라고 배운 적이 없습니다. 


진보정당은 남들에게 봉사하는 게 자기 인생이 되라고 하는 것이고, 남들 앞에 서는 ‘지도부’, 즉 타인을 주인공으로 만들 줄 아는 능력을 가진 ‘지도부’가 되는 것이 우파 보수세력과 다른 좌파 인생 철학일 것입니다. 본질적으로 좌파란 타인의 인생 시간을 내 인생 시간 속에 차지하는 비중과 비율을 넓히는 것입니다. 우리 일이 다른 사람들 인생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원시 전광철 Yong Hwa Kim 님이 3000억원이 어떻게 나온 금액이냐고 묻질 않으시고^^ 민주노동당 때부터 경험으로 인해서, 심정적으로 동의하나 보군요? 서너가지 항목들이 있습니다. 한국 정치 특수성 (미국캐나다, 유럽과 다른)에 맞는 진보정당 성장 전략을 잘못 수립했기 때문입니다. 수뇌부 자체가 그런 개념들도 부족했고...1) 항목으로 지방의회를 보면 2002년 11석, 2006년 81석, 2010년 (민노+진보신당) 164석, 2014년 55...


원시 나경채 무등산 촌사람이 서울 공기 안좋은데 와가지고 머리카락 다 없어지고 있잖아요? 윤약은 욕은 하더라도 머리카락 약은 좀 제공하고...그러시오. 지방의회 선거 떨어져가지고 업자 신세에나...짠하다 짠해~~~~


원시 Sunghee Yun/님, 언급한 주제들에 대해서는, 짧게라도 제 생각을 드리겠습니다. 윤약님이야 평당원이고 직딩 당원의 표본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피부로 느끼는, 어떤 시간 길이 속에서 말입니다. 그런데 제가 볼 때는, 역사적으로 규정된 문제들이 있어 보입니다.


나경채 ㅎㅎ저에겐 아직 12가닥도 더 남아있습니다. 걱정해 주시니 눙무리;;;


원시 나경채/ 제가 괜히 아는 척 하고 소환한 이유는...별 것은 없습니다. 이번 기회에 많은 당원들에게 "욕"을 공개적으로 많이 드시는 게, 굉장히 미래 자산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어차피 그 누군가 들어야 할 역사적 과제이자 (업보는 너무 문학적인 단어이고), 책무같습니다. 그런 의미입니다.


원시December 28, 2014 at 10:55pm · Edited · 


한국 정치 메모: 국내 뉴스 보다가, 정동영 인터뷰 건은, 구체적인 행보는 더 두고 봐야겠지만, 한국 진보정당이나 좌파들은 적극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 이유는 1) 정동영의 점진적 좌측 행보가 지난 2~3년간 지속적으로 일관되게 있었다는 것이고, 


2) 한국 제도권 정당사에서 민주당 liberalist 에서 좌측으로 이동한 사례는 많지 않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 나름대로 예의주시하고, 대화와 토론을 제안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3) 아주 단순하게 평면적으로 비교할 것은 절대 아니지만, 독일 좌파당이 "지역기반 (동독 PDS 민사당) 중부 독일당"에서 전국구 정당으로 가는 길목에서, 2007년 사민당 우경화를 비판하고 탈당한 오스카 라퐁텐 역할이 컸습니다. 오스카 라퐁텐의 좌파당 합류의 긍정적 시너지 효과에 대해서 진보신당 시절 토론 몇 차례 한 적이 있는데...


4) 캐나다는 한국 정당 구조와 정확히 일치하는데, 유럽 사민당에 해당하는 신민주당 (NDP) 당수 밥-래 Bob Rae가, 1990-1995년 사이, 2차 대전 이후 거의 보수당 독주였던 캐나다에서 제일 큰 온타리오 주에서 최초로 신민주당 출신 주-지사까지 역임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밥-래가 신민주당을 탈당, 자유당(liberalist Party)에 입당하게 됩니다. 이것은 정동영 행보와 반대 사례입니다. 이런 경우는 유럽이나 미국 캐나다에서도 종종 일어나는 일이고, DJ 386 수혈론은 한국에서 대표적인 사례였으니까 굳이 따로 설명이 필요없습니다. 


* 해외 사례는 역사적 배경과 권력관계가 한국과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귤화위지 하지 않기 바랍니다.


한가지 정동영씨에게 주문하고 싶은 것은, 8년 계획 정도는 발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떳다방" 정당이 아니라, 뿌리가 깊은 진보정당으로서 유의미하지 않나 싶습니다.등대정당은 대중정당도 캐치-올-파티도 아니다. 


용어 설명: 캐치 올 파티 catch-all-party 란 무엇인가?


2000년 이후 민주노동당이건, 사회당이건, 진보신당이건, 노동당이건, 모두다 <대중적 진보정당>을 추구하고 있다. 이미 혁명전위적 정당도 아니고, 우리는 브라질 룰라 PT당도 아니고, 독일의 녹색당도 아니고, 김일성 'ㅌ ㄷ'동맹당도 아니고, 베트남 호치민 통일전선도 아니다. 참고할 뿐이지, 그대로 적용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미 한국도 오토 키르히하이머 (O.Kirchheimer) 가 말한 "the catch-all party 특정 부르조아, 노동자계급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정당이 아니라, 보다 넓은 유권자층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정강 정책 정치활동을 하는 정당"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역사적으로 접근하자. 서유럽정당들이 2차 대전 이후에 "캐치 올 정당"으로 갔다고 해서, 우리도 그런 <대중정당>노선을 취하는 게 아니지만, 80년대 반파쇼 반제국주의 대중운동의 성과와 실패에 근거해서, 97년 이후 전세계에서 가장 살벌하게 해고를 자유롭게 해버린 한국자본주의체제에 맞서는 <대중적 진보정당>운동을 우리는 하고 있는 것이다.


<진보신당 연대회의>는 이미 생태, 평등, 평화, 연대 등 4가지 정치적 가치 (이념으로 대별되는 사회주의, 공산주의 이런 단어가 아니라, 정치적 가치 value라는 캣치 올 정당 형식을 띠고 있다)를 표방했다. 800만에 가까운 노조도 없는 비-조직화한 (자유주의 시장질서에서도 보장받아야 할 노동조합 가입도 모르는, 안되는, 탄압받는)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진보신당 역시 비정규직 임금노동자라는 아주 다양하게 존재하는 단일한 계급의 이익을 대변해야 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등대정당>을 의미하지 않는다.



헌법 재판소 통합진보당 해산 이후, 한국정치 여론조사: 


(1) 대전-충청도, 부산-경남, 20대 여론 특징, 박근혜 지지도 오히려 더 하락했다. => 특징적 요소 

(2) 반대로 '중도'라고 자임하는 층에서는 약간 상승,

(3) 대구-경북 등 보수 핵심 지역과 보수층은 박근혜 지지 집결 (강화 현상) 

[질문] 대구-경북과 부산-경남의 차이 이유는 무엇일까? 

자료출처: http://www.realmeter.net/ 리얼미터



원시

December 2, 2014 · Edited · 


이재영 실장과 대화를 올린 이유는 음성 때문이다. 글 이외에는 동영상이나 음성 파일이 많이 남아 있지 않아서이다. 


그가 2011년 당시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 통합을 반대하고 그것이 옳다 그르다 따지자는 것도 아니다. 3년 전과 지금은 상황도 다르기도 하고. 오히려 굳이 고-이재영의 정치적 의미를 찾자면,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 이후 2003년까지 한 정치 기획일 것이다. 정당이 갖춰야 할 필요 조건들이 무엇인가? 


그것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을 하는 이유는, 민주노동당이 성공해서 그 영광(?)을 기리기 위함도 아니고, 무슨 공자가 주나라를 꿈에도 그리워하면서 "극기 복례(현재 혼란한 정치제도를 극복하고 주나라 예법으로 돌아가자는 공자의 주된 정치적 슬로건)"를 하자는 것도 아니다. 적어도 정당이 갖춰야 할 필수 조건들, 최소한의 형식적 조건들을 갖추는 정치 기획을 수립했다는 점을 상기시키기 위해서이다. 이건 꼭 고-이재영 정책실장만이 한 일은 아니지만, 그가 그 중심 실무자였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3가지 형식적으로 반드시 갖춰야 할 정당 조건들:


1. 대중 조직들을 네트워크 했다. 고 이재영은 대중조직 민주노총의 지지를 이끌어내려고 노력했다. 2014년 민노총의 한계가 있다고 한다면, 2가지를 수행해야 한다. 첫번째 2000년 민주노총에 상응하는 어느 대중조직이나 개인들을 포용하던가, 두번|째 민주노총에 적극 참여해서 혁신을 불러일으키고, 그 구성원들의 신뢰를 획득하고,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이도 저도 아닌 민주노총이나 대중조직들에 반대는 안티정치에 불과하다.


2. 새누리당, 민주당 정치인들과 전투 필드에서 겨룰 대중적 정치가들을 끌어들여야 한다. 고-이재영은 대중적 정치가들을 끌어들였다. 지금은 평가가 엇갈린 권영길, 노회찬 등을 붙들어맸다. 2014년 12월, 신뢰 붕괴와 불신시대이다. 무슨 말을 한다고 해서 서로 믿겠는가? 비판도 감정적이고 자의적이고 자폐적인 경우가 많다. 상대방이 없는 대화가 많다. 하지만 정당을 하려면, 진보 유권자 민중들 앞에 내세울 (간접적 대의제를 넘어서 진정한 그들의 대표로) 정치가들을 키우지 않고, 다 영화감독, 국가대표 감독만 하거나, 선포식 아나운서만 해서는 곤란하다.


3. 역사적으로 서로 다른 통로를 통해 조직된 정치그룹들을 네트워크해야 한다. 2012년 통진당 사태이후, 불신은 시대코드가 되었다. 기타 조율이 비뚤어져서, 비틀즈 예스터데이 연주해도, 결과는 영암 아리랑이 연주되는 신뢰 오작동 기타가 진보정당들 현실이다. 그 반대로도 마찬가지이다. 


2000년 이재영 등은 정견이 다른 조직들 부족 연맹체를 묶어서 정당을 만들었다. 장점은 문호 개방적 태도였다. 2014년, 정치조직들간의 불신을 극복하고, 문호 개방적 호방함이 필요하다. 


정당은 자수성가식 중산층 가족과 다르다. 이질적 요소들이 시너지 효과를 내도록 융해하는 정치적 공적 능력이 요청된다. 나만 잘한다고 되는 자수성가, 녹색중심, 노동중심,여성해방중심, 평화중심 등 자기 기준만이 아니라 실천주체들의 서로 역사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향후 공동 실천 기획을 만들어 내는 게 정당 창조의 출발이다.


(보충) 위 3가지도 2004년 국회의원 10석이 생긴 이후, 변형을 겪게 되었다. 물론 부정적인 방향으로 퇴락했다. 특히 정치적 성과물을 분배하고 재투자하는 과정에서, 특권적 집중, 반칙, 게임규칙 게리맨더링, 대중들 수준에 뒤처지지는 현실감각, 무엇보다도 새로운 정치 철학 창조와 유포 실패...... 이런 이유들로, 오히려 위 3가지를 달성했던 이재영에게, 바로 그 성공요소들이 지녔던 정치적 한계로 인해서, 혹은 지난 10년간 그 한계들을 극복하려는 시도들이 좌절되거나 연기되어, 이재영의 아픔은 정치적으로도 신체 병으로까지 악화되었다고 본다.


그의 노력, 성공, 실패와 좌절, 그러나 적어도 그는 과제와 전망은 남기고 갔다. 현실은 2000년 출발점보다 더 어렵고 복잡해 보인다.


버스에서 잠시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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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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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2019. 10. 20.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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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베르사이유 궁전 (The Palace Of Versailles) 


노래: 알 스튜어트 (Al Stewart) 


의역: 원시 2013.05.16 05:59



바스티유 감옥은 불타 연기로 자욱하고,


파리 시내 사람들은 ‘이게 현실이란 말인가?’


믿기조차 힘들다.




왕족들은 모조리 도망가고,


신하들은 종적을 감췄다.


우리는 왕정 대저택들을 불살라버렸다


로베스피에르 이름으로 !




그리고 우리는 아직도 혁명의 그 날이 시작되길 기다려보지만,


‘왜 혁명을 해야 하지?’ 물음만을 던지면서.


시간만 낭비하고 있다.


외로운 베르사이유 궁전에 메아리치는 그 물음만을.




자정까지 이어지는 의회 건물 안,


불빛이 아스라히 새어나오고,


혁명가들은 밤새 내내 토론을 하다.


그러나 혁명은 어디로 향할 지 모르고.




나폴레옹 군대는 남쪽에서 파리로 진격해오고,


마라 (Marat) 당신의 혁명 권력은 끝을 향해 갔고,


우리도 겨우 살아남아 생명만을 부지하다.




그리고 우리는 아직도 혁명의 그 날이 시작되길 기다려보지만,


‘왜 혁명을 해야 하지?’ 물음만을 던지면서.


시간만 낭비하고 있다.


외로운 베르사이유 궁전에 메아리치는 그 물음만을.




혁명 영혼은 지금도 파리 거리들을 배회하고,


그것도 수 백년 간.


‘왜 아직 혁명이 완수되지 않았을까?’ 물음을 던지며.


여름밤 카페에 앉아 싸구려 붉은 포도주를 마시며 열변을 토하다.


적포도주 황갈색 혁명으로 물든 그들의 목소리는,


신호 대기 중인 차들을 불러세우고,


‘혁명을 완수하자고’ 하네.




그리고 우리는 아직도 혁명의 그 날이 시작되길 기다려보지만,


‘왜 혁명을 해야 하지?’ 물음만을 던지면서.


시간만 낭비하고 있다.


외로운 베르사이유 궁전에 메아리치는 그 물음만을.









(1793년 프랑스 혁명가 다비드 마라를 칼로 찔러 죽인 매리 앤 샤를로테 클로데. 집에서 목욕중인 다비드 마라를 무고한 프랑스 백성을 선동한다는 이유를 들어 클로데는 마라를 살해했다. ) 






-The Palace Of Versailles -- Al Stewart





The wands of smoke are rising


From the walls of the Bastilles


And through the streets of Paris


Runs a sense of the unreal





The Kings have all departed


There servants are nowhere


We burned out their mansions


In the name of Robespierre


And still we wait




To see the day begin


Our time is wasting in the wind


Wondering why


Wondering why, it echoes


Through the lonely palace of Versailles




Inside the midnight councils


The lamps are burning low


On you sit and talk all through the night


But there's just no place to go




And Bonaparte is coming


With his army from the south


Marat your days are numbered


And we live hand to mouth




While we wait


To see the day begin


Our time is wasting in the wind


Wondering why


Wondering why, it echoes


Through the lonely palace of Versailles




The ghost of revolution


Still prowls the Paris streets


Down all the restless centuries


It wonders incomplete


It speaks inside the cheap red wine


Of cafe summer nights




Its red and amber voices


Call the cars at traffic lights




Why do you wait


To see the day begin


Your time is wasting in the wind


Wondering why


Wondering why, it echoes


Through the lonely palace of Versailles


Wondering why, it echoes


Through the lonely palace of Versailles




출처: https://futureplan.tistory.com/entry/패배의-직시야말로-새로운-창조의-시작이다 [한국정치 노트 Notes on the Politics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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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노트(독후감)2018. 1. 7.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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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cording to Robert Damton, Linguet is typical of the young men of "Grub Street" - men so desperate to attain the glory of the philosophes and so enraged at their inability to do so that ultimately they helped foment the Revolution


랑게(Linguet : 1736-1794)에 대한 한 해석: 로버트 댐튼의 경우,

랑게는 전형적인 가난한 저널리스트 작가들인 "그럽 스트리트"였다. 이 "그럽 스트리트" 작가들은 18세기 프랑스 계몽주의 철학자 (philosophes) 명성을 추구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러한 영광을 얻지 못했다는 사실에 분개했고, 이러한 좌절감이 프랑스 혁명을 발발시키는데 일조했다. 


랑게 해석 (2) David Bell, Sarah Maza  데이비드 벨과 사라 마자 평가

: 랑게는 국가의 검열을 받지 않고서 재판 서류를 작성할 수 있는 18세기 변호사들 중 한 명이었다. 이러한 법정 변론문은 여론을 형성하는 한 수단이었고 이는 결국 프랑스 혁명을 이끌어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랑게의 정치적 내용과 그 시사점은 무엇인가? 핵심 주제는, 중앙집권화된 행정 국가의 발달 과정에 대한 것이다. 랑게의 문제의식을 해명하다 보면 프랑스가 어떻게 해서 근대 리버럴, 공화 국가를 형성해 나갔는가, 프랑스 국가 특질을 설명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2. 랑게의 정치적 함축이 무엇인가?


19세기에 왜 프랑스는 미국과 달리 리버럴 공화적 국가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100년 이후에나 그것을 달성했는가?

미국 혁명은 고전적 공화주의 사상과 존 로크의 자연법 사상, 그리고 영국식 입헌주의 (British constitutionalism)을 결합시켜 리버럴-공화 국가를 건설했지만, 프랑스는 이를 달성하는데 100년이나 더 걸렸다.


3. p.104 The Civic Republic 시민 공화정


랑게는 '군주제 monarchical leanings' 와 '공화주의 republican leanings' 경향을 동시에 주장했다.

랑게는 어떻게 공화주의를 자기 이론 체계로 들어들였는가? 그는 사회적 불평등이라는 '부정의(불의) injustice'를 바로잡을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을 지닌 주권 (sovereign power)의 형태가 무엇인가를 찾아나섰다.


이 질문에 대한 랑게의 대답은 (1) 아시아의 절대군주 (Oriental Monarchies)는 그 부정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봤고 (2) 시민 공화정 (civic republics)은 그렇게 할 '의지'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다고 봤다. 


고전적인 의미에서 공화주의 (그리스, 로마 제국 하에서) 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공동체 남자 시민들이 정치와 군사 영역에서 그들의 권리와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었다. 그 해당 공화정의 생존 여부는 그 남자 시민들의 '탁월한 능력 arete; virtue' , 즉 시민의 덕의 실천 여부였다. 


4.  gender-bias Anschuung ; 여성에 대한 편견 


하지만 이러한 덕 virtue 도 사치와 부패의 영향으로 '악'으로 타락할 수도 있다.따라서 시민 공화주의 사상가들의 주된 고민은 어떻게 하면 남자 시민들의 덕성을 함양하고, 그 국가가 '독재 정치, 전제주의'로 퇴락하는 것을 어떻게 예방할 수 있는가였다. 


남자 시민들의 덕 (탁월함 virtue)은 공적인 일에 적극적인 참여를 의미했다. 이러한 국가의 공적인 일에 적극적인 참여을 위해서는 두 가지 요소들이 필수적이다. 첫번째는 남자 시민들이 재산을 충분히 소유하고 있어야 하고, 이러한 재정 자립을 통해서 국가의 안녕과 복지에 전념을 다 할 수 있게 된다.


두번째는 남자 시민들의 빈부 격차가 크지 않을 정도로 균등한 재산을 소유해야 한다. 그래야만 민주적 정부 기능을 파괴할 수 있는 급격한 권력 불균형이 발생하지 않는다. 


랑게가 주목했던 주제는 국가 시민들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주권 sovereignty'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이다.


덕 virtue 이 '악'으로 타락하는 경향을 막기가 힘들다. 역사적으로 현재도 그렇다. 


여성의 해방을 근대 계몽 특징으로 본 몽테스키외와 반대로, 랑게는 여성의 '덕'은 사치 때문에 남성들보다 훨씬 더 쉽게 악'으로 타락한다고 봤다. 랑게에 따르면 여성은 가사 일만 하는 게 좋고, 남성들은 공적인 일에 전념해야 국가가 생존가능하다.


"여성은 사치로써 한 국가를 통치한다. 그리고 전제주의는 그 사치와 여성을 통해 확립된다"


5. 랑게, 가부장적 가족 운영과 국가의 정치적 '건강'은 분리 불가능하다.


이러한 공화주의 원리들은 모두다 똑같이 " 잘 만들어진 군주제 " "건강한 군주제"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랑게 주장: '주권의 권위'를 루소 (Rousseau)의 '일반 의지 general will' 수준과 동일하게 묘사했다. 


6. 랑게는 군주제 주권과 공화주의 주권을 화해시켜 하나의 체계적인 이론틀이나 주장을 만들었는가? 

그렇지 못해 보이지만, 그가 1767년에 출판한 '시민법(민법) 이론 Thèorie des loix civiles 은 이 두 가지 각각 특징적인 '덕 virtue'을 설명해보이려고 했다. 



7. 



 


사전적 의미 "Grup Street" : used in reference to a world or class of impoverished journalists and writers

The world of impoverished writers and literary hacks.


- 실제 영국 런던 거리 이름, 밀튼 스트리트 Milton Street 지명, 가난한 작가들이 모여살았음




출처: 

Title: Searching for a "New System" of Government: Linguet and the Rise of the Centralized, Administrative State 
Author(s): Amalia D. Kessler 
Source: Historical Reflections / Réflexions Historiques, Vol. 28, No. 1 (Spring 2002), pp. 93-117 
Published by: Berghahn 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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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history)2018. 1. 5.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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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n are born and remain free and equal in rights. Social distinctions can be founded only on the common utility.


 인간은 태어날때부터 살아가는 동안 자유롭고 평등하게 권리를 누려야 한다. 사회적 차이들을 인정한다면 그것은 오직 전 사회 구성원들의 이익에 부합할 때만 그래야 한다.(사회적 차이들은 오직 공동선 위에서 기초될 수 있다.) 


Social distinctions can be founded only on the common utility.

: social distinctions 은 좋은 의미건 나쁜 의미건, 사회적 구별짓기, 사회적 차이점들로 봐야할 것이다. 

: 사회 구성원 모두의 이익이라는 토대 위에서 사회적 차이들은 정초될 수 있다.


Thomas Piketty "Captial in the 21st century", p.1 


Art. 1er. Les hommes naissent et demeurent libres et égaux en droits. Les distinctions sociales ne peuvent être fondées que sur l'utilité commune.



20세기 사이먼 쿠츠네츠가 생각했던대로, 성장, 경쟁, 기술적 진보라는 균형 힘들이 후속 발전 단계에 이르러서는 계급들 간에 불평등 감소와 더 큰 화합으로 나아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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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토요일 광화문 집회에, 500만 시민이 나와서, 청와대로 가는 모든 입구를 다 차단해버리는 " 청와대 폐쇄" 조치를 내렸으면 한다. Shut Down the Blue House, Step Down Park Keun Hye !


대구 MBC 뉴스에 나오다. 전봉준 투쟁단이라고 한다. 농민들이 트랙터를 몰고 전남 경남 등 전국에서 서울로 올라오고 있다. 쌀값 (정부 쌀 수매 가격)이 20년보다 더 떨어졌다고 한다. 그런데도 정부는 쌀수입량을 늘려 버려 농가에 경제적 손실을 입혔다는 농민들의 증언이다. 


트랙터 전봉준 투쟁단을 보니, 프랑스 혁명 당시, 반동적 왕당파 외국 군대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마르세이유에서 파리까지 하루 16km~18km 씩 행군한 프랑스 청년들이 생각난다. 


백남기 농민(70세)이 작년 서울에서 쌀수입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가 물대포에 맞아 올해 별세했다.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도 없다.


농민들에게 박정희 박근혜 권력에 빌붙어 4000억원이나 되는 재산을 부정축재한 최태민-최순실 범죄 집단은 어떻게 보일 것인가? 6개월 이상을 뼈빠지게 농사 지어서 쌀을 생산하는 농민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수매 가격 하락과 허탈감 뿐일 것이다.


이 트랙터의 분노의 질주, 고속도로 위를 시속 20km 로 달려야 하는 이 트랙터의 고단한 혁명은 도대체 무슨 이론으로 설명을 해야 하는가? 


마음 같아서는, 국민의 혈세로 이 농민들이 지은 쌀을 축내고 있는 박근혜, 그가 무법 천지로 점거하고 있는 청와대를 이 트랙터들이 다 갈아 엎어 버렸으면 좋겠다. 


쌀값, 정부 수매 가격은 적어도 물가인상에 비례해야 한다 ! 

식량 안보와 생태 보호라는 차원에서라도 농민의 쌀 농사를 보호해야 한다 !

백남기 물대포 사망 사건 책임자를 처벌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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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박근혜퇴진

    농민분들 응원합니다! 힘내세요!!

    2016.11.25 23:45 [ ADDR : EDIT/ DEL : REPLY ]

책/노트(독후감)2015. 10. 26.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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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 주역들이 단두대에서 처형되었다. 당시 당통은 35세, 데물랭은 34세, 로베스피에르는 36세였다.왜 그들은 갈라서야했고, 결국 권력과 생명을 뺏아야했는가? 당통은 1793년  공공 안전 위원회 (the committee of public safety)의 '테러' 정치에 반대했다. 그러나 자코뱅 클럽의 상징 로베스피에르와 혁명 군사전략가 카르노는 외국군대들의 침입과 프랑스 내부 반동혁명 위험성 있다는 이유로, 당통의 견해에 반대했다. 

 

<프랑스 혁명 당시 실권자는 카르노, 대중적 상징은 로베스피에르> 

 

1794년 4월 5일, 결국 당통, 그리고 혁명 대변인이자 달필가 데물랭은 단두대에서 처형당했다. 영화 "당통"에서는 로베스피에르가 당통과 데물랭을 설득하려는 장면들, 그리고 데물랭에 대한 '연민'이 잘 묘사되었다. 

 

프랑스 혁명에 반대하는 유럽국가들, 프러시아(독일)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벨기에 등의 침략과 내부 반혁명을 진압하기 위한 '공공 안전 위원회'의 실질적인 권력은 군사전략가인 카르노에게 있었다. 반면 로베스피에르는 그의 탁월한 대중연설과 의회에서 토론과 수사학 때문에, 프랑스 혁명의 '정치적 상징'이었다. 대중적 지도자이자 스타였다. 로베스피에르 역시 '테러'정치는 교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테러 정치의 대표적 사례는, 마라(Marat)의 명령과 책임으로 알려진 '9월 대학살'이다. 1792년 9월 1일 1100명의 죄수들이 처형된 바가 있다.  반혁명군이 베르다(Verdun)를 점령하고, 파리로 진격한다는 소식을 듣고, 혁명군들이 정치죄수들을 처형시켜버렸다.  1793년 9월 '컨벤션'이후 이러한 테러 정치는 제도화되었다.  

 

벨록에 따르면, 로베스피에르가 당통의 목숨을 살릴 수도 있었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로베스피에르는 프랑스 대중들이 '테러' 정치를 원한다고 판단했고, 자신의 대중적 인기를 과신했다. 그래서 당통을 그냥 죽게 내버려둔 것이었다. 

 

<당통은 단두대로 끌려가면서 "다음 차례는 로베스피에르다"라고 외쳤다>

 

 

1794년 4월 5일 당통과 데물랭 등 29명의 지롱드 파는 처형당했다. 1794년 봄은 이렇게 잔인했고, 여름 역시 피냄새는 가득했다. 단대두에 끌려가면서 당통은 "다음 차례는 로베스피에르다"고 외쳤다. 로베스피에르는 다가오는 여름의 비극에서 자신을 변호해줄 수 있는 당통을 스스로 버린 셈이었다. 

 

로베스피에르는 4월 이후, 공공안전위원회의 테러 정치와 그 군사적 시스템을 고치려했지만 실패했다. 공공안전위원회에서 실질적인 권력은 카르노에게 있었다.  6월이 테러는 지속되었고, 로베스피에르는 공공안전위원회의 권력핵심부로부터 밀려나기 시작했다. 7월 마지막 주, 테미도르 (Thermidor)의 2번째 주, 로베스피에르에게는 '독재 권력 남용과 오용' 죄목으로 체포되었다.  

 

하지만 감옥 관리자는 로베스피에르의 '투옥'을 믿지 못해, 그를 '죄수'로 투옥시키지 않으려고 했다. 이 에피소드만 봐도 그가 얼마나 대중적으로 지지받고 있었고, 파리시민들이 그를 얼마나 좋아했는지를 알 수 있다. 로베스피에르의 추종자들은 호텔 드 빌 (de Ville)에 모여 공공안전위원회 타도 계획을 세우고, 그 실행을 위해서는 로베스피에르의 공식 '서명'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는 망설였다.

 

<로베스피에르는 체포 이후, 왜 공공안전위원회 타도 시도를 하지 않았는가?>

 

로베스피에르가 그런 '반란' 서명하지 않은 이유는, 그 반란이 '인민 주권론'과 '인민의 일반 의지'에 위배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서명'을 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고민하던 차에, 공공안전위원회의 지원 하에, 의회 군대가 들이닥쳐 로베스피에르와 그 친구들을 체포했다.

 

1794년 7월 28일 오후 7:30 로베스피에르는 생쥐쓰(Saint-Just) 와 레바(Lebas) 등 21명과 더불어 단두대에서 처형당했다. 아니러니하게도 로베스피에르의 처형 이후, '테러 정치'는 서서히 끝을 맺었다. 벨록(Belloc)의 평가대로, 로베스피에르는 결국 공공안전위원회의 정치 테러의 '도구'에 불과했던가? 

 

<감상> 

 

프랑스 혁명 선언문인,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 조항들을 보면, 당통, 데물랭, 로베스피에르 등의 죽음이 아니러니하다. 

 

8항에 보면, 처벌을 위해서는 반드시 '법적 근거'를 갖춰야 한다. 다시 말해서 사형 등 중형을 실행할 때는 '법 규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자기들이 만들어놓은 '혁명 선언'과 자신들의 죽음, 혁명동지들의 처형은 서로 어긋나버린 것 같다.

 

혁명동료의 관점에서 보면, 11항에 나온대로, 자유로운 생각과 토론이 보장되어야 하는데, 과연 목숨을 내걸고 '혁명'을 한 동지들끼리 그런 자유로운 정치 토론을 했는가? 외국군대의 침략, 반혁명 가능성 하에 11항과 같은 정치 행위는 너무나 낭만적이고 이상적이었을까? 

 

2천년 넘게 존속해온 '왕권'을 타도하고, 그들을 단두대에 세운 그 '정치적 열기' 속에는 늘 '죽느냐 사느냐, 죽이느냐 살리느냐' 그런 정치적 선택 속에서 프랑스 혁명 주체들은 괴로워했을 것이다. 그리고 당통, 데물랭, 마라, 로베스삐에르가 스스로 내세원 '인민주권'과 '인민 의지'는 시대정신으로서 '부패한 독재 왕권'을 타도했으나, 그 과정에서 자신들만의 새로운 '권력 사용'과 '인민의지'의 실천에서는 불완전했을 것이다. 

 

로베스피에르 체포 장면

 

 

권력 3인방, 생쥐쓰, 로베스피에르, 쿠토 

 

 

 

자료: 영화 "당통 Danton (1982)" 

 

 

 

 (단두대로 끌려가는 당통과 지롱드 Gironde 파) 

 

 

 

데물랭과 막시밀리온 로베스피에르, 학창시절

 

(로베스피에르는 학창시절, 루이 16세 앞에서 헌사를 낭독한 적이 있다. )

 

https://www.youtube.com/watch?v=-SP4iii_THQ

 

 

 

 

 

 

 

 

(Mossse;Cameron;Hill;Petrovich. Europe In Review. Chicago:Rand McNally & Company. 1964.)  

.

 

 

 

 

Belloc,Hilaire, The French Revolution. London:Oxford University Press.1966.

(written in 1911)

Lefebvre, Georges. The French Revolution volume 1 :from its origins to 1793.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1962

 

연구과제: 프랑스 혁명 당시, 프랑스와 프러시아,오스트리아 (헝가리 오스트리아), 벨기에, 이탈리아 등 인접 유럽국가들과의 전쟁과 외교 관계 연구.

 

 

당통 (Danton : 26 October 1759 – 5 April 1794 : 35세 

로베스피에르 (Robespierre : 6 May 1758 – 28 July 1794 : 36세)

쿠토 George Couthon 죠지 쿠토 (1755-1794)

카르노 (Lazare  Carnot  라자 카르노 13 May 1753 – 2 August 1823 : 70세

데물랭(Desmoulins : 2 March 1760 – 5 April 1794 34세

마라 (Jean-Paul Marat, May 24 1743 - July 13, 1793 5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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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2015. 1. 4.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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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호 PD (뉴스타파) 페이스북에 따르면, 영화 <제보자> 실제 모델, 한학수 PD가 스케이장 관리직으로 발령이 났다고 한다. 한마디로 쫓겨난 것이다. MBC 안광한 사장이 "보도와 시사는 전문성과 심층성을 높여 경쟁사와 차별이 되는 브랜드 명성"을 꾼꾼다는 1월 1일 신년 인사를 했는데, 한학수 PD, 최승호 PD 쫓아내고 해고하고 어떻게 전문성과 심층성을 높이자는 것인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연말에 본 한국 영화 <제보자> 장면은 1784년 칸트의 외침과 너무나 흡사하다. 그 말은 이명박 정권 이후 한국 언론 현주소는 220년 전 프랑스 혁명 이전 왕권 체제로 회귀한 것과도 비슷하다는 것이다. 한때 탈-계몽주의를 이야기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탈-탈계몽을 이야기 해야 하나? 씁쓸하다. 


1784년 독일 (당시 프러시아) 칸트의 "계몽이란 무엇인가?" 첫 문장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계몽이란, 인간이 스스로 자초한 미성숙함,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계몽이다. 여기서 칸트가 말한 미성년자와 같은 "미성숙함"이란 무엇인가? 칸트는 울부짖는다 "미성숙함이란 우리의 무능력이다.남의 명령이나 지시없이 우리 스스로 지성을 사용하지 못하는 무능력이다" 칸트가 말하고 싶은 핵심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왕과 군주는 이성 (자기 머리) 사용 능력을 가진 시민들이 정치와 종교에 대해 자유롭게 자기 의견을 발표할 수 있도록 허용하라 !


계몽주의 시대의 모토는 권력자의 명령에 굴복하지 않는 용기와 결단력을 가지고 자기 스스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칸트는 더 나아가 개인이 아니라, 공공 대중의 이성 사용 (능력)을 주창한다.


우리가 여기에서 간취할 수 있는 현대 민주주의에서 언론의 역할은 바로, 칸트가 말한 "이성의 공적 사용"이다. 과거 MBC PD수첩, KBS <시사 투나잇>,  현재 <뉴스타파>가 이러한 공론장에서 대중의 이성 능력의 실천이다. 



영화 PD수첩 한학수, 언론 사명을 mbc 사장 앞에서 말하다 from media_politics_databanks on Vim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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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는 <계몽이란 무엇인가?>에서 우리가 스스로 지적 도적적 능력을 믿고 Sapere aude ! (과감히 현명해져라 !)는 것을 믿고, 부단히 노력하라고 역설한다. 아기가 걸음마를 배울 때 사용하는 도구, 보조기 (Gängelwagen :갱겔바겐)에서 벗어나서, 바닥에 몇번 떨어지고 그러면서 자립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1784년, 9월 30일, 칸트 <계몽이란 무엇인가?> 첫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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