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국민담화문 비판 (1) 박근혜의 거짓말 


박근혜 국민담화문은 많은 거짓들로 꾸며져 있다. 이미 조롱거리가 되어 버린 오늘 담화문의 백미, “내가 이럴려고 대통령이 되었는가?” 문장도 역시 그 거짓들 중에 하나이다. 


최순실의 비리나 부정 재산축재, 재벌로부터 돈 갈취, 세금 도둑질, 그 역사적 기원은 어디일까? 그것은 최순실의 아버지 최태민과 박근혜가 1975년에 창립한 대한구국선교단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재 최순실 갈취단의 범죄를 완전히 뿌리 뽑기 위해서는 최태민의 재산 축적과 부당한 권력 남용까지도 진실 규명되어야 한다. 


박근혜가 말한 “내가 이럴려고 대통령했나?” 이 말은 진심이 담긴 푸념과 반성이 아니었다. 실제로 1975년 구국선교단을 만들어 박정희의 후원 하에, 최태민과 박근혜는 박정희 후계자 예행 연습을 했다.


 십자군과 같은 군대조직화, 멸공 구국 기도회와 같은 반유신독재 데모에 대한 맞불 집회 개최, 우익 시민단체들과 동맹 세력 규합, 한국노총과 같은 당시 어용 노동조합과 단합대회 개최, 전국적인 구국선교단, 새마음갖기 운동 조직 건설, 반공을 기본으로 친미 의존 반북반중국 외교 노선 관철을 위한 관제 데모 조직화, 서울시 의사회, 한의사회와 같은 시민단체들을 동원하기도 했다.


두번째, 대국민 담화 발표는 일방적이었고, 심지어 기자단의 질문들도 받지 않았다. 


박근혜는 한국정치사에서 40년간 초등학교 학생 6학년 정도의 학예회 수준의 기자회견을 한 대통령으로 기억될 것이다. 


1975년 23세 나이로, 최태민 등이 이미 다 짜놓은 무대 위에서 정치학예 발표를 하거나, 동원된 군중들과 악수 하는 것이 박근혜가 하는 정치였다. 그게 대부분이었다. 자기 스스로 국민들과 대화하고 질문하고 대답하는 과정들은 대부분 생략되었다. 국민들과 스킨십이라는 것이 대부분 ‘박수’라는 청각적 요소로 둔갑되었다. 피부로 느껴야 할 것들을 박근혜는 ‘귀’에 들리는 박수로 착각한 것이다. 


이렇게 초등학교 6학년 공주님으로 길들여져 버렸다.


1975년 최태민과의 구국선교단 정치 활동 자체가 당시 유신 독재를 보조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박근혜는 처음부터 ‘민주적 대화’나 ‘민주주의적 정치 활동’은 배우지 못했다. 청와대 바깥 한국 국민들은 ‘박수 치는 사람들’에 불과했다.

 

같은 친구이거나 동일한 권리의식을 가진 시민들이라고 박근혜는 지난 40년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대화가 싫은 것이고 귀찮고 어색하다. 


기자들 질문 받지 않은 역사적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국민 담화 이후, 기자들 질문은 받지 않고, 퇴장하는 박근혜 대통령. 몇 기자들이 박근혜가 다가오자 어색한 듯 의자에서 일어나다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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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 보도. 독일 슈피겔지. "모든 게 내 잘못이다" 제목을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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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10월 28일 박근혜 어록, 2016년 10월 최순실 국정 농단 및 부정 축재 예언하다.


1977년 10월 28일, 충청도 청주에서 열린 새마음갖기 운동 충북도민 궐기대회에서,  박근혜는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흐르는 물은 부패하지 않지만, 아무리 맑은 물도 한 곳에 정지해 있으면 상하고 (부패) 만다"


1. 구국선교단과 새마음갖기 운동본부의 차이점은 ?


1977년 1월 21일. 최태민은 새마음갖기 국민운동 본부를 발족한다. 대한 구국선교단에 이은 두번째 최태민과 박근혜의 공동 정치 작업이었다. 


최태민의 새마음갖기 국민운동 본부의 목표는 국민의 도의심을 고취시켜 국민들의 정신을 개혁시키는 것이었다.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다. 1975년 박근혜의 정치적 데뷔 시절 최태민이 구국선교단의 정치적 구호와 목표가 1977년 새마음갖기 운동과 차이가 그것이다. 

 

최태민이 새마음갖기 운동의 기치로 내건 것은, 구국 선교단의 반공 멸공이라는 극우적 이데올로기나 반-북한 반 중국 친미와 같은 냉전 사상, 기독교 십자군대 창설과 같은 정치-군사적 표어가 아니었다. 오히려 국민들의 일상 생활과 의식을 윤리적으로 통제하고 각성시키는 노선으로 전환했다. 


최태민은 새마음갖기 운동 본부 발족식에서 느닷없이 경로사상, 충효 사상을 내걸고, 노인들을 위한 병원을 개설한다고 하고,경로 마을을 짓자고 했다.


2. 시민사회 동원화 방식


최태민의 새마음갖기 조직은 어떠한 단체와 조직들을 움직이고 동원했는가? 이러한 시민사회 조직적 동원 방식은 대한구국선교단과 유사했다.


- 대한 구국 봉사단,

- 구국 여성 봉사단,

- 서울시 의사회

- 서울시 한의사회,

- 한국 예술 문화 단체 총연합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1976년 구국선교단 활동시, 최태민과 박근혜는 한국노총도 위 시민단체들과 단합대회에 참가시켰다.  


<자료1> . 1977년 1월 21일자 신문, 새마음갖기 국민운동 본부 (본부장 최태민) 1월 19일 발족.





<자료> 1977년 10월 29일 자,


충청도 청주에서 열린 새마음갖기 운동 충북도민 궐기대회,  박근혜 발언.


"흐르는 물은 부패하지 않지만, 아무리 맑은 물도 한 곳에 정지해 있으면 상하고 (부패)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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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의 재산은 서울 강남, 강원도, 독일에 있는 회사,빌딜, 땅 등 200억원~300억원 규모로 추정되고 있고, 이를 훨씬 초과할 것이고 보고 있다.  최태민의 자녀들의 총 자산 규모는 2800억로 추정되고 있다.  


신문 기사: http://www.hankookilbo.com/v/b37f0bbc45c74b0684919055716fbbba


최순실의 아버지 최태민과 박근혜는 1977년 새마음갖기 운동본부를 창설하고, 그해 10월에 전국 조직을 완료하게 된다. 


박근혜는 1977년 10월 18일 강원도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재물과 명예의 노예가 되어 인간의 존엄성을 스스로 포기하지 말라"고 역설하고,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반성하는 자세"를 가져야 하며, 비로서 그 때야 맑고 고운 심성을 가질 수 있고 깨끗한 마음을 지닐 수 있다고 연설했다.


국민들에게 물질만능주의에 빠지지 말고 경고했던 박근혜, 그리고 박근혜의 정신적 지주라고 한 최태민, 그 최태민의 후계자라고 불리우는 최순실은, 자기들이 국민들에게 말했던 "물질만능 재산 축적 노예"가 되었다. 


박근혜는 강원도에서 "새마음갖기" 운동 정신을 강조하면서, "물질만능주의의 위험성과 비극"을 역설했다. 40년이 지난 지금, 최순실과 박근혜는 그 "물질 만능주의의 위험성과 비극"의 주인공이 되어, 국민들의 저항을 받고 있다. 


아니러니하다. 


사마천 <사기>에 나오는 상앙이 생각난다. 과거 진나라 최고 권력자였던 상앙 (商鞅) 은 각 마을에 수상한 사람이 나타나면 관가에 신고하도록 하는 법규를 제정했다. 상앙이 권좌에 쫓겨나서 한 마을로 피신했을 때, 그 마을주민은 "우리 상앙께서 수상한 사람이 나타나면 관가에 신고하라고 하셨다" 하면서, 그 상앙을 관가에 신고해버려, 상앙은 체포되고 말았다. 


최순실이나 박근혜에게 이러한 상앙의 자기 모순이라는 역사적 교훈이 그들 눈에 보이겠는가?  7만평 땅, 200억 300억짜리 빌딩, 그 빌딩에서 나오는 '임대 수익'만이 더 크게 보였을 것이다. 또한  국민 세금은 '눈 먼 돈'이고, 그 세금과 예산들을 최순실 자기와 '우주적 기운'을 나눈 사람들에게 나눠주면서 우주적 기운이 "바로 거기 right there, right there"에 있다고 탄성을 질렀을 것이다. 


우주적 기운의 힘을 받아, 청와대나 국토부에서 정보 빼내어, 땅값 빌딩값이 급격히 올라, "우주적 기운"이 땅과 빌딩에서 실현되는 것을 보고 "아 바로 거기야 Right there, Right there" 을 외치는 최순실의 탄성과 포복절도야말로 1977년 박근혜가 비난했던 "물질만능주의의 위험성과 비극"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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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2. 1977년 10월 18일, 새마음갖기 운동을 펼치고 있는 박근혜 






자료 3. 1977년 1월 21일자 신문, 


최태민은 박근혜와 함께, 새마음갖기 운동 본부를 발족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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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최순실 동맹 관계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심리학자 김태형은 "극우 보수와 최순실이 박근혜를 사육해서 대통령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태형의 주장은 박근혜의 적극적인 역할을 놓치고 있다. "꼭두각시 박근혜" 진단은  정치적 권력을 실질적으로 행사해온 박근혜의 몸통을 발가락 손가락으로 축소시킬 우려가 있다. 박근혜식 정치권력은 온 국민들 앞에 두 가지로 나타났다.  제 1기 (육영수 대신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했던 1975년부터 1979년까지)와 1998년 4월 보궐선거부터 시작되어 2012년 대통령이 된 제 2기까지이다. 


<핵심 주장> 


첫번째는 박근혜의 정치적 권력 형성을 1975년 이후 역사적으로 검토해야 하며, 두번째 최태민-최순실과 박근혜의 정치행위 특성은 '정치적 동맹'세력으로 봐야지 그렇지 않고,  단지 '보수 우익의 펫이나 최순실 가족의 꼭두각시'로 해석해 버리면 현재 정치적 책임을 단지 '불쌍한 순수 처녀 virgin 박근혜'와 ' 악마 악녀 아줌마 최순실'로 축소시키고 만다.  세번째는 박근혜 권력의 특징은 한나라당 새누리당의 권력 구조 변동사에서 설명되어야 하고, 집권 전과 집권 후를 서로 구분해서, 최순실의 정치적 개입 전략이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비교 검토해야만 박근혜-최순실 정치적 동맹체 성격이 더 잘 드러날 것이다.


<보충 설명>

(극우보수와 최순실이 박근혜 ‘사육’해 대통령 내세웠다”
[인터뷰] ‘대통령 하기 싫은 박근혜 대통령’ 분석했던 심리학자 김태형, “핵심은 무자격자 정권연장위해 포로삼은 것” )

박근혜는 최태민의 꼭두각시도 최태민의 딸 최순실의 사육 펫이 아니다. 오히려 정치적 권력체인 박근혜와 최태민-최순실 일가는 정치적 동맹체이다. 


박근혜를 최순실의 '사육 애완동물 펫'으로 보는 견해는 정치적 야망과 욕구를 지닌 박근혜를 무시해 버림으로써, 현재 박근혜의 정치적 책임을 면제해줄 수 있고, "악녀 최순실이 순진한 처녀 virgin 박근혜를 꼬득여 미친 년을 만들어버렸다"는 허구 드라마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박근혜는 1974년 육영수 총격 사망 이후, 정치 권력 전면에 등장했고, 박정희의 '원 분조 分朝' 권력 하에 '소 분조' 권력체를 최순실의 아버지 최태민과 같이 만들어 냈다. 박근혜가 애초에 최태민을 발탁했고, 최가 박근혜 측근이 된 원인은 박근혜의 정치적 욕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최태민은 육영수 사망 이후, 박근혜를 만난 자리에서, 육영수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박근혜가 해야 한다고 역설함으로써 박근혜의 '눈'에 들었고, 이 둘의 '정치적 동맹'의 출발점이 되었다. 삼국지의 '도원결의'와 같은 정도의 강렬함이 시작된 것이었다. 


이러한 최태민과 박근혜는 1975년 구국선교단의 십자군을 창설하고, 정치, 경제, 군사,외교,국방, 종교, 학계까지 권력의 손을 뻗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박정희 '원 분조 (청와대)' 권력을 보좌하면서 동시에 미래 권력을 창출하려는 '소 분조 (정부)' 를 꾸리고 있었다.


박근혜 역시 육영수 총격 사망시, 만 23세에 불과했지만, 박의 정치적 권력에 대한 야망을 지니고 있었고, 최태민과 구국선교단을 만들면서부터 박근혜의 정치적 대망은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박근혜-최태민, 최순실 가족의 정치적 동맹은 상호 이득을 추구했고, 최태민과 최순실 가족은 10.26 사건으로 박정희 권력이 붕괴된 이후에도, 1975년부터 1979년 재벌기업과 시민들로부터 착취한 돈과 건물, 땅으로 최씨 일가의 재산을 불릴 수 있었다. 


두번째, 박근혜가 최순실 일가와 보수우익의 '애완견 펫'이 아닌 이유는, 아무리 최순실이 전권을 휘두르고, 토지 빌딩 장사를 통해 부를 축적하고, 장관 인사까지 좌지우지 하고, 정부 예산 분배까지 결정했다하더라도, 박근혜의 '결제'가 없으면 불가능했다. 


형식적 권력 소재가 대통령인 박근혜에게 소속되었다는 말, 동어반복을 하려는 게 아니다. 적어도 장관 임명, 정부 예산 집행, 미르 재단, K스포츠 재단 설립에는 최순실이 일방적으로 결정한 것이 아니라, 박근혜와 최순실과 그 일당의 '공동 결정' 사안이라는 것이다. 


세번째는, 박근혜의 언어 실력, tv 토론 능력, 작문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예를 들면서, 전여옥의 증언 "박근혜의 언어 수준은 어린 아이와 같다" 등,  박근혜의 지적 능력의 낮음을 예로 들어, 보수우익과 최순실의 정치적 애완견이 박근혜라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심리적 설명도 박근혜가 1998년 이후, 한나라당의 정치적 위기 극복(천막당사 등)을 극복하고,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칭을 듣고, 2012년 이명박과의 대통령 경선 패배 이후 승복 결정을 한 사실 등을 간과해버렸다. 


오히려 박근혜를 '제도적'으로 접근하고 설명해야만, 박근혜 집권기 (2012년 이후 2016년 현재)까지 정치적 권력체로서 박근혜 체제의 위기를 설명할 수 있다. 어떻게 해서 박근혜의 정치적 강점들이 막상 박근혜 정부 그 체제 하에서 박근혜의 정치적 약점들로 바뀌게 되었는가? 


악녀 악마 최순실의 정치적 전략들이 2012년 12월 대선 이전에는 잘 먹혀들고 성공적이었고, 2013년 2월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악마 악녀 최순실의 정치적 계략들이 온갖 다 실패로 규정되었는가? 


설령 박근혜의 정치적 지능이 중학생 초등학교 학생 수준이라도 해도, 정치적 권력은 박근혜 손에 있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새누리당을 위시한 제도적 권력과 작동 메카니즘이 있었기 때문이고, 특정 지역의 정치적 몰표라는 시민사회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권의 민주적 통치 '정당성' 위기를 설명할 때, 단지 최순실에 박근혜가 심리적으로 의존했다는 것으로는 충분한 해석이 되지 않는다.




(이번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를 한겨레 신문과 더불어 심층 취재를 하고 있는 jtbc 뉴스와 손석희 사장 체제, 대한민국은 순실공화국이다, 이런 표제어는 저널리스트로서 이번 사건을 사실을 파헤치면서 내건 뉴스 구호이다. 그렇다고 해서 박근혜가 최순실의 '애완견'이라고 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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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최순실 뉴스를 처음 듣고, 최태민과 박근혜의 정치적 동맹 출발점을 조사하다가, 과거 뉴스를 읽게 되었다. 


1975년 5월 11일 <임진각>에서 박근혜의 대중 연설은 역사적으로 굉장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아마 이 연설이 박근혜의 최초 큰 집회, 대중 연설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당시 박근혜와 동년배 20대 학생들은 유신독재에 반대하는 데모를 하고 있었고, 최태민과 박근혜는 이들을 친북 사회혼란 세력이라고 매도하는 맞불 집회를 <임진각>에서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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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증구

    Jtbc 걔썤 끼 들아 누가 무슨 책을 읽던지
    왜 비판하고 지 랄들이냐

    2017.10.11 18:01 [ ADDR : EDIT/ DEL : REPLY ]

최태민은 박근혜가 박정희 후계자가 되길 바랬을 것이다. 최태민에게 김재규의 10.26 반란은 최악의 적이었다. 최태민의 구국선교단이 1975년 세상 바깥으로 나올 수 있었던 계기는 당연히 민주적 정통성이 없는 박정희 유신체제였다. 


따라서 당시 최태민과 박근혜의 정치는 어떤 독립적인 세력이라기 보다는 박정희 체제의 혹과 같은 조직이었다. 차지철 박정희 비서실장이 독일 나치 SS 근위대 흉내를 낸 것과 또 다른 종류의 정신넋나간 정치 행태가 바로 최태민의 구국선교단이었다. 


물론 최태민의 꿈은 박근혜를 근혜양 퍼스트 레이디 대행에서 대통령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최태민의 딸 최순실은 박근혜 정부 출범 전부터 정치,외교, 국방, 경제, 문화, 행정부 인사까지 깊숙이 개입했다. 이러한 최순실의 정치 행태의 '기원'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최순실은 최태민을, 박근혜는 박정희를 흉내냈다.  과연 최태민은 포괄적인 정치 기획을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최태민의 구국선교단이 내세운 공식적인 정치 입장들을 당시 신문을 통해 알아보자.


1. 1975년 4월 23일자 동아일보 7면, 조그마한 기사. 


최태민은 박근혜를 앞세워, 구국선교단 총재가 되었다. 박근혜 당시 나이는 23세 (만)였다. 구국선교단 선언문에서는 냉전 체제 하에서 북한과 중국을 주적을 내세웠다. "김일성의 중국 방문은 전쟁을 도발하기 위한 노골적인 행위이니, 일부 정치인 재야인사 종교인 학생들은 극한 투쟁이나 정치 혼란만을 꾀할 것이 아니라, 반공 기치 아래 뭉치자"고 말했다.


- 최태민 구국 선교단에서 지목한 내부 적들은 바로 박정희 유신독재에 저항했던 대학생, 재야인사, 야당, 민주화 운동을 하던 종교인이었다. 

- 반 유신독재 , 반 박정희 세력이 북한과 중국 편이라고 최태민은 주장했다.

 




2. 1975년 5월 12일자, 경향신문, 


최태민의 구국선교단이 임진각에서 기독교 초교파 구국 기도회를 개최했다. 5천명이 참가했고, 박근혜도 참석했다. 


당시 대학가는 박정희 유신체제 반대로 휴강하고 있었고, 이에 대한 신문기사가 박근혜 사진 옆에 실렸다. 


최태민은 "승리를 위해 경제력 배양과 아울러 사상적 무장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기독교인들이 십자가를 짊어지고 총화단결해 하나가 되자"고 했다. 

- 자유와 양심을 사랑하는 정의사회 구현 

- 공포의식과 사회불안감을 타파하고 사회윤리의식을 정화하여 '명랑사회 건설'

- 조국의 통일과 복음국가 건설 등 5개 항이었다.



(정의사회 구현은 제 5공화국 전두환 기치,

명랑사회 건설은 독특하다. 딴지일보도 아니고.

복음국가 건설은 이명박 정권과 유사하다)


- 당시 박정희 정권은 기독교는 물론이고, 불교 세력까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안보 기원 법회"를 개최하게 했다.







3. (국방 외교 정치 개입) 


1975년 5월 22일, 최태민은 그의 부하들을 이끌고 병영 생활 체험을 한다.





4. 1975년 6월 15일. 최태민 구국선교단, 전국 조직화 박차를 가하다. 인천 2000명 


"나의 행복, 내 가족만의 행복을 위한 기도는 진정한 기도가 아니다"  "기독교인들이 민족과 조국을 위해 " 기도해야 한다고 주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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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6월 22일, 40만명이 박정희 유신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동원되었다.


대한 기독교 장로회 등 18개 개신교가 참가했다.


"온 국민이 방황, 허용, 부정의 잠에서 깨어나라고" 기도했다.


"자유 위해 나라 지키자" 




5.  구국 선교단 군사 조직을 표방하다. 


1975년 6월 23일, 최태민 구국선교단 자신감 보여주다.

20만 구국십자군 목표로 설정하다.


구국선교단 십자군 창설하다.


서울에 사령부를 두고, 각 시도 단위로 군단, 각 개체, 회단위로 분단을 조직, 매주 토요일 정기적으로 기본군사 훈련을 실시한다.





6.  1975년 8월 8일자 신문, 


최태민 구국선교단 강화 특수 군단 발단.

멸공대, 기동대, 전도대 각각 500명씩 1천 500명 군단 대원 발족식을 하다.


- 위기에 처한 조국을 구하자 (*이는 박정희 유신 독재가 저항에 부딪히고 있는 것을 '위기'라고 함)


- 기독교인들이 순국하는 자세로 조국을 지키자


- 기독교의 선과 미로써 조국 성업에 총매진하자.








7.  1975년 10월 31일자, 최태민 구국선교단, 통일 표방, 학계를 조직화하다


최태민은 형식적으로 대한구국선교단 부설 조국 통일 문제 연구원을 만들었다. 

통일문제연구소 원장에 한태수 박사 (한양대 정법대학장)가 임명되었다. 







8.  1975년 12월 10일자 , 동아일보.


최태민 구국선교단과 서울시 의사회가 "야간 무료 진료 센터"를 열었다. 그러나 실제 의료 혜택을 볼 수 있으려면, 최태민의 구국선교단 소속 목사의 추천을 받아야 한다.

영세민 대상은 새마을 취로 사업 대상자이고, 구국 선교단에서 지정한 교회의 목사가 그 영세자를 추천해야만 야간 무료 진료 센터에서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구국선교단의 조직을 확대하고, 조직원의 정체성을 강화하기 위해서 "야간 무료 진료 센터"를 만든 것이다.


- 시민사회에서 의사회를 조직하고, 간호사등 노동력을 동원해냈던 구국선교단, 최태민.

박근혜와 박정희 지원과 허가없이 서울시 의사회를 움직일 수 있었겠는가?






사진 자료: 부산 (멸공이라는 단어가 보인다) : 친절, 청결 


야간무료진센터, 1976년 5월 15일 개원

부산시 의사회

부산시 본부

부산직할시 십자군 부산 ...

차량: 대한 구국 선교단 야간 무료 진료 센타 

차량 번호는 : 가 7528 


부산: 무슨 동? 인지는 모름. 




8.

1976년 박정희와 최태민, 박근혜


구국선교단 야간 진료 센터를 방문했다던 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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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최후의 보디가드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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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돗개를 가리켜 정씨라고 불러다 !

박근혜 대통령은 7일 정윤회씨 등 비선개입 논란을 두고 “실세는 없다. 실세는 청와대 진돗개”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고 (진시황제 시절 환관) 지록위마 


조고는 진시황의 적자 '부소'를 이사 등과 모의해 자결하게 만들고 서자 '호해'를 얼굴마담으로 황제로 앉힌다. 당시 조고 벼슬은 환관으로서 '낭중령'이었다. 이사는 '승상 (총리)'이 되었다. 그 이후 이사는 조고의 무소불위 권력을 비난하는 글을 호해 황제에게 올리자, 조고는 이사를 역모죄로 몰아 세우는데 성공해, 이사의 3족 (부호, 형제자매,처자)를 멸하고, 다섯가지 형벌(오형: 얼굴에다 글씨를 쓴대로 찢고 먹무을 칠하고, 코를 베고, 다리를 절단하고, 생식기를 도려내고, 머리를 쪼개는 형벌)을 받고 죽임을 당한다. 


조고는 낭중령에서 '중 승상'으로 승진한다. 그러나 이에 만족하지 않고 호해 황제를 자결케 만들고 황제가 되려 했으나 실패하고, 진시황의 손자 자영에게 황제 옥새를 준다. 자영은 조고를 두려워해 정사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척 했고, 다른 환관 한담, 그리고 한담의 아들과 더불어 조고를 살해할 계획을 수립한다. 한담은 자영을 알현온 조고를 칼로 찔러 죽이고, 조고의 삼족을 멸했다.

이렇게 환관 조고 피의 통치는 끝났다.


조고는 재임 시간, 진시황 아들 왕자 12명, 공주 10명 모두 죽였는데, 공주들의 사지를 찢어서 죽이는 만행을 저질렀다. 부소를 자결케하고 호해를 황제로 등극시킨 모반의 동지 이사 (승상)도 1000대 매질을 가했을 정도로 극악 무도했다. 조고는 황제 호해에게 '감궁천'에 깊이 살면서 정치와 거리를 둘 것을 명했고, 실제 호해 황제는 감궁천에서 사냥이나 하고, 실정은 조고에게 맡겼다. 


이게 중국 진시황 사후 벌어진 역사적 사건이다. 2천년이 넘은 이후, 코리아 페닌슐라에서 조고의 지록위마가 재현될 줄이랴 ~


승상 이사를 제거한 후, 실권자가 된 조고가, 궁 안에 사슴을 풀어놓고, 신하들에게 "이게 사슴이지?" 묻자, 신하들이 "말이옵니다"라고 대답했다. 호해 황제는 정신이 나가 버렸고, 조고에게 압도당해 자기 스스로 '내가 미친 것 같다'고 했다 한다. (출처: 사마천 <사기> 이사 열전)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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