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history)2016. 1. 14. 19:41

결론부터 말하면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 책은 현재 아베-박근혜 합의 논란에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그리고 와싱턴 심포지엄에 박유하가 발표한 글 역시, 전쟁 성노예 근절과 한-일 및 아시아-일본 화해의 대안이 될 수 없다. 일본제국주의 군대에서 성노예 및 성노동 착취를 당한 여성들은 조선을 비롯한 아시아 10여개 국가의 문제이기 때문에, 중국 대만 필리핀 등을 포함한 모든 해당 국가들과 일본이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만들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우선 박유하의 와싱턴 심포지움의 기초가 된 그의 <제국의 위안부>의 주장과 결론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축약될 수 있다.


(1)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제국주의 국가(일본 천왕)나 군부가  공식적으로 매춘부를 군대로 차출하라는 명령을 내린 적이 없다. 혹은 역사적인 고증 자체가 어렵다.

    (2)  전쟁 성노예 매춘부 모집 주체는 조선인 혹은 일본인 포주 업자들이다.  

    (3) 그리고 조선여성들은 가난에서 탈출하고자 한 성인 취업자들이었지, 소녀들이 아니었다. 따라서 평화비 소녀상은 역사적 사실 왜곡이다.

     (4)  이렇게 역사적 왜곡에 기초한 정대협 민족주의과잉과 냉전적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정치외교적으로도 정대협의 해법은 한-일 화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의 전제와 논리에 따르면, 지금 한국사람들이 해야할 가장 중요한 일은 그 당시 포주 업주들을 찾아내 단죄하던가 사과를 받아내는 일이다.  현재 한국의 희생자들과 정대협이 주장하는 일본 국가와 정부의 법적 사과는 문제해법이 아니라는 게 <제국의 위안부> 해법이다.

   

이런 논리는 전쟁상황과 군사작전에 대한 무지에 가깝다. 일본제국주의 군부가 성 매춘부를 아시아 국가들로부터 모집하라는 공식 문서를 남겼겠는가? 이 문서 존재 여부를 고증해야 하는 책임이 조선인과 아시아 국가들, 네덜란드 전쟁 성노예 여성들에게 있지 않다



(일본제국주의 군대 성노예 및 성노동 착취당한 조선 여성들이 아래 <일본의 전력> 관점에 따르면 '일본군'과 '낭자군'으로 규정된다.)


이 사진의 여성이 진짜 '왜 웃었는지?'는 역사적으로 규명되어야 할 주제이다. 그런데 박유하의 주장 "망향의 염을 떨쳐버리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가 다 맞다고 가정하자. 

조선인 성노예 (박유하 주장대로 위안부, 혹은 자발적 매춘부)들 중에서 1명을 제외하고 이렇게 다 '낭자군'이고 '일본군'의 멤버이고, 이렇게 웃었다고 가정해보자. 

만약 한 명의 조선 여성이 전쟁터에 강제로 끌려갔고 성노예 노동을 강요받았다면 <제국의 위안부> 주장은 그래도 설득력이 있는가?

만약 저렇게 웃고 있는 조선 여성들이 당시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혹은 정신적 충격으로 인해서, 모든 것을 체념하면서 지은 웃음이라면, <제국의 위안부>의 주장은 그래도 타당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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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나오는 문단은 <제국의 위안부>의 관점과 연구 방법론에 해당한다.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는 사관을 다루는 역사책이라기 보다는 '에세이' 나 신문 사설에 가깝긴 하지만 굳이 연구 방법론과 전제를 따지자면 아래와 같다. 





<제국의 위안부> 책의 핵심적인 주장은 37쪽에 나온 다음과 같은 전제와 주장이다.


박유하 <제국의 위안부>는 처음부터 끝까지 조선인 위안부를 강제로 전쟁터로 끌고간 직접적인 주체는 매춘 업자들이었다고 강조한다. '직접적인 주체'는 조선인 혹은 일본인 매춘업자이고, '간접적인 주체는 일본제국주의나 군부가 된다. 

이러한 주장이나 전제 모두 순서가 바뀐 것이다. 


박유하는 위안부의 본질은 일본인 창녀의 고통과 같다고 주장한다. 또한 "조선인 위안부가 불행한 원인은 민족요인 보다는 가난과 남성우월주의적 가부장제와 국가주의였다"고 주장한다.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는 '민족주의 (민족요소)'와 민족국가의 주권을 구별하지 못하고 있다. 반사실적 상황과 문장을 생각해보자. 만약 당시 조선이 주권을 행사할 수 있었더라면, 박유하가 말한 '가난', '남성우월주의적 가부장제'가 작동하더라도 조선인 여성들이 일본제국주의 군대에 동원되거나 강제로 끌려가는 것을 막거나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일본인과 조선인 중간 포주나 매춘알선업자도 조선 주권과 법률의 이름으로 처벌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박유하의 '가난한 조선여성'이 새로운 설명인가? 아니다. 당시 조선에서 부자들의 딸들이나 교육수준이 높은 조선 신여성들이 가난하고 교육수준이 낮은 조선여성들보다 더 많이 일본제국주의 군대 성노예로 자발적으로 혹은 강제로 끌려갔겠는가? 전혀 아니다. 이는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 이전 역사적 연구에서도 이미 다 해명되었다.

그리고 "남성우월주의적 가부장제와 국가주의"가 문제의 본질이라고 했는데, 여기에서 주체가 빠졌다. 일본의 국가주의가 문제지, 주권을 상실한 '조선의 국가주의'가 성노예 노동 착취 책임자일 순 없다.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에서 저자가 사용하고 있는 개념들은 명료하게 정의되지 않았다. 서울 일본 대사관 앞에서 수요집회를 하고 일본정부의 사과를 요구하는 정대협과 조선인 피해자들이 '민족주의'에 경도되고, 냉전적인 사고에 빠져있다고 비판하는 것이 박유하 <제국주의>의 목표라서 그런지, 일본제국주의의 '국가주의'와 식민지 조선의 '국가 주권 상실' 개념의 중요한 차이를 간과해버렸다.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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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history)2015. 11. 7. 03:15


박천홍 지음 : 매혹의 질주,근대의 횡단


토지 매입가격, 철도 건설 과정 인력 동원에서 막대한 이득을 챙긴 일본제국주의


당시 세계 철도 건설 비용 : 1마일당 16만원

조선에서 철도 건설 비용은,   1마일당 6만 2천원 - 일제 인력 비용 절감했다.

철도 건설 과정에서 조선인들의 저항이 있었는데,일제 경찰은 이러한 저항하는 조선인들을 죽이고 처형시키기도 했다. 








1886년 경인철도 부설권 미국으로 이양.

조선인들에게 진보와 폭력적 지배로 다가온 철도 부설

조선인들의 주권 박탈이 가져온 철도 건설 결과





"철도는 전통의 구속으로부터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진보의 과학이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식민과 제국의 모순을 구현한 제도적 폭력의 상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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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 철도 건설에 필요한 토지 매입과 건설과정에서 이를 방해하는 조선인들을 처형하는 일본 지배자들




토지 매입가격, 철도 건설 과정 인력 동원에서 막대한 이득을 챙긴 일본제국주의


당시 세계 철도 건설 비용 : 1마일당 16만원

조선   6만 2천원 - 일제 인력 비용 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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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의주간 철도건설 과정, 

농민들, 부녀자들, 어린이 강제 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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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 3월 22일, 경인철도 기공식 


참고사항:


철도 역사 : 


영국 : 1814년 7월 25일 Stevenson "Blucher" 철도 기관차 

1822년 석탄 연료 기차 


미국 1830년 철도 건설

프랑스 1832년

아일랜드 : 1834년

이탈리아 1837년

멕시코 : 1850년

인도 1853년

일본 : 1872년


조선: 1899, 5월 17일 : 동대문과 홍화문 전차 street car 

1899년 9월 18일 인천-노량진 철도 


1897년 경인철도 기공식, 삽질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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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9월 18일 서울 노량진, 경인철도 개통식






조선 최초 기관차 (모가 1호) Locomo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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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1914년 대구역 개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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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선 철도 건설, 일본 대신이 직접 공사장을 돌며 노동자들을 격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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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전쟁 준비 철도 ; 전쟁 교두보 압록강 철교 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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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논문들:

손정목 <개항기 일본인에 의한 도시지역의 부동산 침탈> 
<일제 강점기의 도로와 자동차에 관한 연구, 1989>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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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도와 계급



 출처: Walter L. Arnstein(1983) Britain Yesterday and Today: 1830 to the Present, 1983 : 왈터 아른스타인, 영국 어제와 오늘: 1830년부터 오늘날까지. 


영국 철도 역사

1. 철도 보급 시작 1825년 9월 27일

2. 처음 운영 주체는 정부나 국가가 아니라, 개인 사유화 : 1825년 ~ 1947년까지. 117년간 개인회사 소유


3. 1947년~1994년 정부소유 (국유화) 

4. 1994년~2006년: 존 메이어 보수당 수상 당시, 다시 사유화 

5. 그 이후 다시 공유화: 



Nov 06, 2015 6:24pm


Nakjung Kim shared a link.



어린시절 우리동네에도 철도가 있었고, 젓가락을 철로 위에 몰래 올려 놓아, 기차바퀴에 눌린 칼을 만든 친구를 부러워하기도 했다.
 
냇가에서 목욕하던 어린 우리들에게 그 카리스마 넘치는 기차의 위용이란 적군을 물리치러 가는 장군마냥 대단했다.

 그래도 사람을 싣고 가는 기차가 석탄을 싣고 가는 검정색 기차보다는 더 이쁘고 뭔가 안정되어 보였다. 읍내에서 멀리 떨어진 기차역은 별로 가 볼 일이 없었으나, 어쩌다가 가 볼 때면, 분위기가 시컿맸다. 
어디서 날라왔는지 석탄같은 게 많았다. 연탄 파는 가게들처럼 기차역이 그랬다. 


그래도 기차 철로 양쪽으로 심어져 있던 소나무들의 행렬은 버드나무들 마냥 나름 질서를 갖추고 있었고, 단아한 모양새였다. 동네 철도도 일제시대부터 있었을 것인데, 어떻게 지어진 지도, 누가 지었는지도 몰랐다. 


디 에이치 로렌스의 소설 '아들들과 연인들', 주인공 폴의 아버지는 석탄 캐는 광부였는데, 19세기 영국 자본주의 문명은 '석탄'과 '증기기관차'를 빼놓고 설명할 수가 있었겠는가?

 세계를 지배하게 된 물질적 요소가 스티븐슨이 1814년에 만든 로코모티브, 블러처 blucher. 영국 제국은 철도와 석탄으로 UK 영국연방을 만들어나갔고, 대영제국을 건설해나갔다. 이에 비해 조선에서 철도 건설은 토지 박탈, 강제 노동력 징발, 처형과 폭력 등을 수반한 '진보'였다. 영국에서도 계급적 차별이 심각했지만, 조선은 계급차별과 주권침탈이 동시에 민중들을 괴롭혔다. 


데이타와 통계에 포함시켜야 할 요소들이 무엇인가? 잠시 생각해보다.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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