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훈 목사 헌금 시간 찬양, 그 이유는? 

전광훈은 근거가 부족한 문재인 하야를 선동했지만, 실제로는 '헌금 비지니스'를 하고 있었다.




"오늘 이 행사 중에 가장 기쁜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무슨 시간이냐고요? 헌금하는 시간입니다. 헌금하는 시간......우리가 다 주머니를 털어서 하나님의 영광과......"


전광훈 헌금함 공지사항

 본 헌금은 전광훈 목사님의 모든 사역을 위하여 드려지며, 헌금의 처분권한을 전목사님께 모두 위임합니다.


전광훈의 집회 발언 내용.


전광훈의 발언 "오늘 이 시간부로 문재인은 대통령에서 탄핵이다 ! 저새끼들이 (박근혜) 불법으로 탄핵했고 언론이 선동했다."


이 내용은 지난 지난 6월 한기총 명의로 발표한 시국선언문과 내용이 동일하다. 


"자랑스런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이 문재인 정권으로 인해 종북화, 공산화돼 지구촌에서 사라질지도 모르는 위기를 맞았다"고 전광훈은 주장하고, 문재인의 하야를 요구했다. 



최용준씨의 주장이다.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무너뜨리고 사회주의,공산주의 국가로 가게 하려는 시도를 막아주시옵소서."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전광훈의 발언 "오늘 이 시간부로 문재인은 대통령에서 탄핵이다 ! 저새끼들이 (박근혜) 불법으로 탄핵했고 언론이 선동했다."





어떤 기독교 단체의 '반 문재인' 근거, 최용준씨의 주장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무너뜨리고 사회주의,공산주의 국가로 가게 하려는 시도를 막아주시옵소서."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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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 한심한 기자양반아
    이 정권이 종북좌파주사파정권이라는 것은 자유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인데 기자가 되가지고 너만 모르냐 ㅈㅈ

    너는 누가 돈 달라하면 그냥주냐
    선한일에 자기 복받고 나라 바로 세워보겠다고 자발적으로 헌금하는데 웬 시비
    꼭 헌금 안하는 넘들이 남 돈에 간섭을 해
    할일 없으면 집에가서 빈데떡이나 부쳐먹어

    2019.10.04 20:33 [ ADDR : EDIT/ DEL : REPLY ]

책/노트(독후감)2018. 11. 21. 15:50

독일 코뮤니즘이 급속도로 발전해 나가다. 독일 코뮤니즘의 급진전 

Rascher Fortschritt des Kommunismus in Deutschland ( I ) Friedrich Engels, 13. Dezember 1844

......


 Wir hoffen jedoch, daß uns in kurzer Zeit die arbeitenden Klassen unterstützen werden, die immer und überall die Stärke und den Hauptbestandteil der sozialistischen Parteien bilden müssen und die durch Elend, Unterdrückung und Arbeitsmangel wie auch durch die Aufstände in den Industriegebieten Schlesiens und Böhmens[76] aus ihrer Lethargie gerissen worden sind. 


Lassen Sie mich bei dieser Gelegenheit ein Bild von Hübner, einem der besten deutschen Maler, erwähnen, das wirksamer für den Sozialismus agitiert hat als hundert Flugschriften. 


Es zeigt einige schlesische Weber, die einem Fabrikanten gewebtes Leinen bringen, und stellt sehr eindrucksvoll dem kaltherzigen Reichtum auf der einen Seite die verzweifelte Armut auf der anderen gegenüber. 


Der gutgenährte Fabrikant wird mit einem Gesicht, rot und gefühllos wie Erz dargestellt, wie er ein Stück Leinen, das einer Frau gehört, zurückweist;


 die Frau, die keine Möglichkeit sieht, den Stoff zu verkaufen, sinkt in sich zusammen und wird ohnmächtig, umgeben von ihren zwei kleinen Kindern und kaum aufrecht gehalten von einem alten Mann; 


ein Angestellter prüft ein Stück, dessen Eigentümer in schmerzlicher Besorgnis auf das Ergebnis warten; 


ein junger Mann zeigt seiner verzagten Mutter den kärglichen Lohn, den er für seine Arbeit bekommen hat; 


ein alter Mann, ein Mädchen und ein Knabe sitzen auf einer Steinbank und warten, daß sie an die Reihe kommen; 


und zwei Männer, jeder mit einem Packen zurückgewiesenen Stoffes auf dem Rücken, verlassen gerade den Raum, einer von ihnen ballt voll Wut die Faust, während der andere die Hand auf des Nachbarn Arm legt und zum Himmel zeigt, als ob er sagt:


 Sei ruhig, es gibt einen Richter, der ihn strafen wird. 


Diese ganze Szene spielt sich in einem kalt und ungemütlich aussehenden Vorsaal mit Steinfußboden ab; nur der Fabrikant steht auf einem Stück Teppich, während sich auf der anderen Seite des Gemäldes, hinter einer Barriere ein Ausblick in ein luxuriös eingerichtetes Kontor mit herrlichen Gardinen und Spiegeln öffnet, wo einige Angestellte schreiben, unberührt von dem, was hinter ihnen vorgeht, und wo der Sohn des Fabrikanten, ein junger Geck, sich auf die Barriere lehnt, eine Reitgerte in der Hand, eine Zigarre raucht und die unglücklichen Weber kühl betrachtet. 


Dieses Gemälde ist in mehreren Städten Deutschlands ausgestellt worden und hat verständlicherweise so manches Gemüt für soziale Ideen empfänglich gemacht. 


Zur gleichen Zeit hatten wir die Genugtuung, daß der hervorragendste Geschichtsmaler unseres Landes, Karl Lessing, sich zum Sozialismus bekehrte. 


Tatsächlich nimmt der Sozialismus schon jetzt in Deutschland eine zehnmal stärkere Position ein als in England.


 Gerade heute morgen habe ich einen Artikel in der liberalen „Kölnischen Zeitung" gelesen, dessen Verfasser aus verschiedenen Gründen von den Sozialisten angegriffen worden war; 


er verteidigt sich in dem Artikel, und worauf läuft seine Verteidigung hinaus? 

Er bekennt sich selbst zum Sozialismus, mit dem einzigen Unterschied, daß er mit politischen Reformen beginnen möchte, während wir alles auf einmal haben wollen.


 Und diese „Kölnische Zeitung" ist in bezug auf Einfluß und Verbreitung die zweitgrößte Zeitung Deutschlands



(English Translation)


We, however, hope to be in a short time supported by the working classes, who always, and everywhere, must form the strength and body of the Socialist party, and who have been aroused from their lethargy by misery, oppression, and want of employment, as,well as by the manufacturing riots in Silesia and Bohemia.


79 Let me on this occasion mention a painting by one of the best German painters, Hübner, which has made a more effectual Socialist agitation than a hundred pamphlets might have done.


 It represents some Silesian weavers bringing linen cloth to the manufacturer, and contrasts very strikingly cold-hearted wealth on one side, and despairing poverty on the other. 


The well-fed manufacturer is represented with a face as red and unfeeling as brass, rejecting a piece of cloth which belongs to a woman; 


the woman, seeing no chance of selling the cloth, is sinking down and fainting, surrounded by her two little children, and hardly kept up by ar old man; 


a clerk is looking over a piece, the owners of which a e with painful anxiety waiting for the result; 


a young man shows to his desponding mother the scanty wages he has received for his labour; an old man, a girl, and a boy, are sitting on a stone bench, and waiting for their turn; and two men, each with a piece of rejected cloth on his back, are just leaving the room, one of whom is clenching his fist in rage, whilst the other, putting his hand on his neighbour's arm, points up towards heaven, as if saying: 


be quiet, there is a judge to punish him.


 This whole scene is going on in a cold and unhomely-looking lobby, with a stone floor: only the manufacturer stands upon a piece of carpeting; whilst on the other side of the painting, behind a bar, a view is opened into a luxuriously furnished counting-house, with splendid curtains and looking-glasses, where some clerks are writing, undisturbed by what is passing behind them, and where the manufacturer's son, a young, dandy-like gentleman, is leaning over the bar, with a horsewhip in his hand, smoking a cigar, and coolly looking at the distressed weavers. 


The painting has been exhibited in several towns of Germany, and, of course, prepared a good many minds for Social ideas. 


At the same time, we have had the triumph of seeing the first historical painter of this country, Charles Lessing, become a convert to Socialism. 


In fact, Socialism occupies at this moment already a ten times prouder position in Germany than it does in England. 


This very morning, I read an article in a liberal paper, the Cologne Journal,3 the author of which had for some reasons been attacked by the Socialists, and in which article he gives his defence; 


and to what amounts it? He professes himself a Socialist, with the only difference that he wants political reforms to begin with, whilst we want to get all at once



.....




Carl Wilhelm Hübner, Die Schlesischen Weber, 1844 (칼 빌헬름 휩너, 슐레시안 직조공, 1844)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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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18. 8. 26. 18:29

2008.03.14 01:56


총선 슬로건 고민되는 이유 (솔직한 심정)


원시 조회 수 1845 댓글 4 조회 수 1845 ?수정삭제


딱딱한 말이다. 산뜻하지 않다. 총선 슬로건을 담기 위한 말이 무엇일까? "공정한 분배가 민주주의다." 떠오르는 말이다.  한국 정치사에서 좌파나 진보가 말해야 하는 슬로건은, 전혀 새롭지도 않다. 산뜻한 대중용 홍보 문구를 생각하기 전에, 우선 슬로건을 생각해보는 수밖에 없다. 물론 총선용 홍보 카피는 아니고, 정책적인 차원이다. 


"공정한 (공평한) 분배가 민주주의이다" 


일해서 돈벌고 집사고 아이들 가르칠 수 있는 시대는 97년으로 끝났다. 87년 이전은 분명 "민주주의 의미는 독재타도 (자유) 민주주의 정부 탄생"이었다. 87년 이후 지금까지 아니 향후 30년, 40년은 민법에 나와 있는 사유재산과 관련된 제도, 법, 사회관행, 사람들 의식들을 바꾸고 고치는 것이 진보와 좌파의 정치적 임무가 될 것이다. 


공정한 분배, 혹은 공평한 분배는 아주 기본적인 사회주의적 가치이다. 130년 전 이야기나 지금이나 사실 달라지지 않은 것도 있다. 맑스는 "고타 강령 비판"에서 두가지 분배원리를 이야기한다. 


하나는 능력에 따라 분배한다는 것이다. 즉 일한 시간이나 그 결과에 비례해서 가져간다는 원리(사회정의 구현)이다.  두번째는 자기와 가족의 필요에 따라서 분배한다는 공산주의적 삶의 원리이다. 이는 전자의 형식적 양적 사고 방식을 뛰어넘는 실질적인 분배원리이다.  이 두번째 원리는 능력이나 집안 배경 학연등과 상관없다. 공동체 구성원 각자가 자기 필요와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공산주의이다. 이는 어쩌면 영원한 유토피아인지도 모르겠지만, 의미가 있는 포기할 수 없는 정치적 목표이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은 소위 사회복지국가를 서유럽처럼 경험하지 못한 채, 97년 IMF 위기를 겪었다는 데 있다. 97년 이후 지난 10년간 가장 악날하고 살벌한 형태의 미국식 자본주의, 적대적 인수합병(M&A)이 쿨한 합리적인 경영방식이라고 떠들어 대고 있고, MBA 학위가 대졸자들의 필수품이 되었다. 미국은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아직도 한국으로 말하면 70년대 공동체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 유학파들 보면, 미국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장님 코끼리 만지는 식으로 그 이해가 아주 피상적이다) 


그런데, 한국은 미국 그러면 다 뉴요커 아니면 샌프란시스코로 이해된다. 한국 미 유학파 (주로 서울대, 연고대 등이 60~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의 병폐 중에 하나가, 미국을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친미는 하되, 미국을 모르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오륀지 껍질"로 맛사지나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향후 사회학적 연구주제이므로 더 연구해서 발표하기로 하자)


다시 분배 문제로 돌아오자. 일상생활에서 공정한 공평한 분배 방식, 분배 게임 규칙이 사라졌다. 사람들은 단순하다. 왜 박정희 시대를 회고적으로 재해석하고 따르는 무리들이 생겨났는가? 그것은 바로 성장에 대한 자기 긍정적인 체험 때문이다. 박정희 집권 18년간 마이너스 성장도 없었고, 연평균 7~8% 고속성장을 한 것이다. 한국 경제는 88년 이후, 7% 성장이 어렵게 되어 있다. 임계점에 도달되어 있는 것이다. 전두환 시절 소위 3저(저달러 저유가 저금리) 호황으로 잠복된 위기는 해소되고, 그 위기는 97년에 터진다. 


소위 사회복지 황금기 시절에도 선진자본주의 국가 평균 성장율이 2~3% (현재 미국은 2%면 대성공이다)에 그친다. GDP 크기 산출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의 삶의 질을 문제 삼아야 한다. 이명박 정부가 무식하다는 게 아직도 경제성장율 6~7%로 사람들을 현혹시키려는데 있다. 한국경제 규모나 질을 봐서는, 3~4% 성장하더라도 사실 성공이다. 이명박 정부는 기대만 잔뜩 키웠지만, 그 기대는 충족시키지 못할 것이다.  


[진보를 말하는 사람도 힘들다]


자 그렇다면, 우리들에게 객관적 상황은 유리한가? 일상 생활의 측면에서 사람들의 의식 측면에서 보자.


진보를 말하는 사람들에게, 또 정치적으로 사회주의나 사회복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어려운 상황이 놓여져 있다. 사람들의 마음이 그 장벽이다.  일해서 돈벌고 자아 성취하겠다는 70-80년대 88올림픽 정신(^^)은 이제 사라지고 있다. 특히 97년 IMF 위기 이후, 보통 사람들 마음 속까지도 "니가 하면 투기, 내가 하면 투자", 그리고 자본주의적인 삶의 원리가 대놓고 당당하게 노골적으로 사람들 마음에 자리잡아 가고 있다. 


인간 공동체 복원 (회고, 복고, 혹은 노스탈지아 향수)을 외쳐야 하는가? 사실 복고, 복원은 시대조류에 맞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이다. 예를들면 펀드 (9천개나 되는 펀드회사)가 하나의 생활양식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데, 이것은 60-90년까지 돈 모으는 양식 (저축 정기 적금, 집 장만, 주식투자 등)과는 또다른 형식이다. 여기서 열심히 일해서 돈벌자만을 강조하는 것은 순진하다. 오히려 70년대 개발독재하 새마을 운동하자는 것, 프로테스탄트 금욕주의 삶의 원리를 강요하는 것이나, 천리마 운동, 스타하노프 따라하기 운동과 다를 게 없다.


노동, 일하는 것과 노동소득이 분리되고 있다. 노동이 돈을 낳는 것이 아니라, 돈이 돈을 낳는다. 아버지 어머니가 아들 딸들을 낳는 것이 아니라, 아들 딸 스스로 자기를 복제해내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새로운 것도 아니다. 인류역사상 화폐가 생긴 이래, 고리대금업자가 주욱 있어왔으니까. 칼 맑스도 이자 낳는 자본 (M-M')이 자본주의의 한 본질을 드러낸다고 말했으니까. 최근 금융화 등장이나, 미국 경제의 위기도 추상적이고 본질적인 측면에서 말하자면, 일상생활에서 말하는 돈, 시장에서 자본은 과거 산업자본시대와 다르게, 자본이 노동이나 산업과 아예 분리되거나 연결점을 찾기 힘들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일상 생활관점에서 보면, 그럼 새로운 진보적인 삶의 가치는, 노동과 돈을 다시 붙이자는 것인가? 도대체 한국에서 그럼 무엇이 일하는 사람들의 삶을 어렵게 만드는가? KBS TV에 지난 15년간 사라졌던 "새마을 운동 노래"가 다시 등장했다. "허리띠 졸라매고 삽질 100번에 허리 1회 펴기" 운동 신호탄이다.


굳이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를 철학적으로 정의하지 않더라도, 진보적인 삶의 가치는, 노동시간 증대가 아니라, 자기실현하는 노동시간이 아닌, 강제된 노동시간 (자녀 사교육비 때문에 잔업하는 것도 강제노동이다)을 단축하는 것이다. 물론 주식투자 시대에서, 정보전쟁을 하느라 신경이 날카로운 보통시대 노동자들도 자발적으로 노동 (신문보기 자료찾기 정보전쟁등)이 아니냐?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게임과 노동이 구별이 없어졌으니까.


그렇다면, 일을 열심히 하자. 그러면 성공할 것이다. 이런 이명박 자기체험, "너도 성공하려면 4시간만 자고, 아침형 인간이 되라," 70년대식 초가집 뜯어내기 운동 논리와 달라야 하는, 삶의 가치는 무엇인가? 이명박 삽질 경제는 자기 모순이다. 1973년 이후 자본주의는 소위 포스트-포디즘 (포디즘: 대량생산 대량소비 체제의 종말과 그 다음 다품종 소생산 단계로 이행) 성격을 지닌다. 그러나 이명박 삽질경제 운하파기 운동은 1914년 형성된 포디즘, 그리고 45년부터 73년까지 전성기를 누린 그 포디즘 삶의 방식을 다시 강요하는 것이다. 입으로는 지식경제, 정보경제, 인터넷 디지털 자본주의를 외치지만, 실제 삶의 철학은 70년대 새마을 운동이다.


다시 우리 현실을 보면, 70년대식 새마을 운동 논리도 통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면 잘 산다는 말도 다 거짓말 아니냐? 실제로 강부자, 강금실 행정내각에서도 드러났듯이, 영어 오륀지, 미국유학파, 고려대, 소망교회, 영남, S 라인, 등 지난 60년간 쌓여온 온갖 쓰레기들 (친미 지식인 기독교 보수동맹, 학연, 지역주의, 부동산 투기 등)이 다 모여있는 게 이명박 행정부이다. 


그러면 우리 진보진영을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가? 


첫번째, 노동과 소득이 분리됨으로써 피해를 당하는, 구조적인 손실을 보는 계급 계층들을 적확하게 뽑아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아직도 산업시대를 사는 노동자들,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도시 중소 영세 상인들의 이해관계, 손익계산서를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두번째, 이러한 노동을 통한 소득 증대 방식을 한편으로는 강구해야 하고, 두번째로는 자산 증식에 대한, 재산을 늘려 나가는데 게임규칙들을 공정하게 만들어 나가야 한다. 


정책적으로 이명박 정부 "작은 정부, 비지니스 친구 정부"를 비판하고 넘어서기 위해서는, 사실 쓸 수 있는 정책들은 그렇게 새롭지 않다. 


1) 건강 의료 서비스에서, 돈벌이 대상으로 전락된 병원들을, 인간을 위한 의료로 바꿔야 한다. 쉬운 일이 아니지만, 건강 보험과 관련해서 최고의 피해자들은 돈없고 가난하고 뒷줄 없는 사람들, 어린이, 노약자들이다. 


2) 교육, 계급 재생산, 가난 대물림의 합법적인 통로가 되어 있다. 이는 반드시 새로운 진보정당의 제 1 선결 과제로 책정되어야 한다. 중장기 계급투쟁은 바로 교육에서 시작된다. 자궁에서 무덤까지 계급투쟁이다. 이 계급투쟁을 심화시키는 정책들에 대해서 세밀하게 싸우지 않으면 오히려 패배할 수 있다. 서울대 폐지론이 정치적 힘으로 발전되지 못한 이유들에 대해서 냉정하게 고민해보자.


3) 소득 재분배 수단으로서 세금 정책 세분화해야 한다.

노동을 통한 소득증식, 그리고 이 이후 소득 재분배는 세금을 통해서 '평등화' 지수를 높일 수 있다.

절대적 빈곤과 상대적 빈곤감 해소를 위한 정책들 역시 필요하다.


우선 일상 영역에서 시급하게 나서는 문제들만 이야기했다. 비정규직 문제도, "공정한 분배가 민주주의이다"라는 슬로건과 연관되어 있다. 


[ 새로운 진보 정당 ]은 구- 정치 주제들 (경제 성장, 공정한 분배, 소득 재분배, 자산 재분재, 국방 안전 등)과 신-정치 주제들 (성 평등, 인종차별 폐지, 소수자 인권 인정, 다원주의적 문화 삶의 가치 인정 등 정체성 정치, 생태운동 등과 같은 신사회운동 등)을 어떻게 결합시킬 것인가?


2008년 3월, 이명박 정부와 맞서 싸우고, 대안의 세력으로 우리가 사람들 앞에 서기 위해서는, "공정한 분배가 이제 민주주의 가치이다"라고 말해야 한다. 


그런데, 이 "공정한 분배가 우리가 실현해야 하는 민주주의 가치이다"는 분명히, 이론적으로 말하자면, 구 정치, 구 좌파의 핵심 내용이고, 보다 세밀하게 말하면, 사회복지국가 협약에 해당한다. 그래서? 개량주의라고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이론이 현실을 재단해서는 안된다. 


지금 한국 좌파가 부딪혀 있고, 당면한 정치적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평한 분배, 공정한 분배가 민주주의이다"라고 말해야 한다. 사실 보통 사람들, 라면값, 자짱면값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정치적 과제가 절실하고 생존의 문제이다. 생태, 평화, 성평등, 소수자 인권을 이야기와 어떻게 결합시킬 것인가? 더 고민을 해야겠다. 그런데, 한국 자본주의 현실과 일상생활에서 피부로 느끼는 경제적 불안과 압박감은, 계급 계층 분화에 따라, 더 심각하다. 


"공정한 분배가 민주주의이다"


일한 만큼 대접받는 사회,

노동 소득으로도 집사고 아이들 가르칠 수 있는 사회


이것이 어렵다. 한국 자본주의가 얼마나 잔인하고 악날하게 굴러갔으면 이런 소박한 꿈도 이룰 수 없단 말인가? 세계에서 가장 강도 높게 일하고, 노동 시간도 가장 길고, 스트레스도 가장 많이 받는 한국 사람들이 이 소박한 꿈도 못 이룬다는 게 말이 되는가? 이 오륀지 껍데기 같은 인간들아 답 좀 해라!


새로운 진보정당이 추구해야 할 여러가지 가치들 (평등, 생태, 평화, 연대, 자유 등)이 기계적으로 나열되지 않기 위해서, 가치들의 연관, 혹은 갈등지점들을 이론적으로 실천적으로 분리시키고 설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화학적 결합으로 이뤄지지 않고, 새로운 창조는 불가능하다.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의 문제이다. 


그러나 고민이 계속된다. 정치적 과제로서는 "공정한 분배가 참 민주주의이다" 우리가 이제 실현해야 할 민주주의 가치이다. 이것이 지금 현 상황에서 가장 적절하다. 그런데, 어떻게 다른 가치들을 포괄할 수 있을까? 구호 속에서 말이다. 이게 고민이 된다는 것이다. 하나의 으뜸 구호로는 여러 가치들을 포괄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좋은 생각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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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4'

페페 4.00.00 00:00

민주주의의 확장, 진보신당이 좌파정당의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필히 가져야 하는 문제의식이라 생각한다. 오랜만에 진지한 글을 제대로 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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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 4.00.00 00:00

페페/ 워~미, 난 늘 진지한 글을 쓰고 있는디 이거 시방 머시여?~~ 사실 '민주주의 확장' 그것은, 김영삼 정부 들어서고 나서 이야기한 것인데요, 참...우리가 90년대 더 빨리 정신 못차리고, 다운 당한 시절이 아쉽습니다. 민주주의 문제는, 꾸준하게 새롭게 재해석해야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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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ngo 4.00.00 00:00

정치적으로 유의미하면서도 현실적이고 실용적이기도 한 제안과 아이디어가 많다는 측면에서, 원시님의 글을 늘 잘 읽고 생각하고 잇습니다. '공정한 분배가 민주주의다'라는 슬로건은, 슬로건으로서는 밋밋하지만 이명박 정권 5년 후 한국의 미래를, 특히 인민의 경제적 생존의 문제와 관련해서 볼 때 진보신당이 반드시 의제화 해야할 문제라고 생각하며 님의 고민에 동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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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 4.00.00 00:00

tango님/ 내가 좋아하는 춤인디~ 어려워서 그렇지. 탱고님. 슬로건은 다시 만들어야지요. 정책적으로 딱딱하게 말한 것이고, 슬로건은 따로 만들어야 할 듯 합니다. 좋은 생각 있으면 주세요~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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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철학2016. 4. 26. 01:01

새로운 진보를 말하기 전에 "진보"라는 말의 의미를 한번 다시 생각해보자는 취지에서,


[진보개념] 손석희-노회찬 인터뷰 중에서


 글쓴이 : 원시 등록일 : 2004-04-20 21:13:07 조회 : 801 


진보라는 말이 나왔길래 잠시 생각해봅니다. 


⊙ 노회찬 / 민주노동당 사무총장 : 진보라는 말은 상대적 개념입니다. 

그래서 우리 시대, 이 시대 진보는 무엇인가 이런 점에서 봐야된다고 보는데 민주노동당이 추구하고 있는 진보적 가치라는 것은 민족 문제에 있어서 그리고 분단문제 해결에 있어서 평화, 절대적 평화적 방식과 또 이 평화를 조속히 실현하는 문제, 그리고 우리 사회의 구조 문제에 있어서 평등을 지향하는 것, 특히 사회적 재분배를 통한 평등의 실현을 중시하고 그리고 더 많은 민주주의, 민주화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국가보안법이나 여러 가지 반인권적인 제도와 관행들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보다 더 많은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것, 이 세 가지가 진보정당으로서 민주노동당이 지향하는 가치다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손석희 시선집중 프로그램> 



 노회찬 사무총장님이 쓰고 있는 <진보>라는 것은, 정치적 가치로 좁게 쓰였다. 


우리는 진보라는 말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 것이고, 어떠한 고민을 더 해야 하며, 어떻게 발전시켜야 하는가,잠시 생각해 봅니다. 


첫번째, '진보'라고 했을 때는, __________보다 낫다 _________보다 향상되었다. 라는 말로도 쓰이고, 예를 들어서 낫보다는 트랙터가 벼베기를 더 빨리 할 수 있고 많이 할 수 있다. 생산성의 향상을 가져온 기술의 발달 결과로, '진보'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석유를 써야 하는 트랙터 도입으로 엔트로피와 공기 오염은 증가함으로 뭐 그게 '진보'냐? 라고 다른 각도의 '진보' 기준을 가져다 댈 수도 있습니다. 이 논의는 다른 논의이므로 여기서 배제하고요. 


진보는 '역사적으로 ____________발전했다."라는 개념으로 사용되는데, 그럼 '진보'의 반대말이 무엇인가? 지금 세계 역사의 방향은 어디를 향해 가는데 (종착역) 그런데, 이런 진보의 방향과 역행하는 사회 세력은 누구냐? 이런 부분을 염두해 둬야 한다고 봅니다. 한국에서 '진보'의 반대 세력은 누구입니까? 라고 물을 수 있겠지요? <문제> 진보의 기준이 뭐냐는 것이 우선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엄밀하게 정의하고 '진보'를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은 아닙니다. 단지 문제가 되는 것은, 역사 발전기준이 뭐냐? 이런 질문에 답변을 해야 하는 부담은 분명히 있는 것이고, '진보'라는 말은 '역사적으로 실현되는 이성'이라는 강한 전제 위에서 나온 말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부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이성>이라는 주제 자체가 무의미한 논쟁은 아니라고 봅니다. 적어도 어떤 시대정신에 대한 통찰은 할 수 있으니까요. 두번째 노선으로 갈 수 있습니다. 역사적 이성이나 어떤 역사 진보의 '기준'을 제시하지 않고도, 사회정의나 자유/평등/자립/통일 등 사회정치 운동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경우도 그 운동의 기본적 이념은 윤리적 전제들을 깔고 있기 때문에, '진보'와는 다른 형태로 이념에 대한 정당화 연습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여기서 윤리라는 것은, 고정화된 삼강오륜과 같은 어떤 도그마가 아니라, 물질적-정치적 구조 변동이나 문화적 의식의 변화와 동시에 움직이는 인간의 판단의 기초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대안> 잠정적으로 전 '진보'라는 말을 가급적 구체적인 정치 용어로 바꿔서 사용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러한 정치적 주장과 정치적 서술들에 대한 윤리적 정당화 작업 역시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과학 science >에 대해서 간단히 언급합니다. 독일 말 번역어 Wissenschaft (인문과학, 자연과학 다 합친 말, political science 이런 것도 다 그런 맥락입니다) 


그런데, '민중적 입장'을 대변한다는 것이 '과학적'인가? 그럼 산수나 '자연과학'과는 어떻게 다른 '과학'인지를 말해줘야 합니다. 안 그러면, '과학'이라는 이름 하에 맑스-레닌주의 연구소 만들어 놓고 저질러진 실책을 다시 범할 수 있다고 봅니다. 물론 요새는 그 '과학 과학 하시던' 분들이 다 어찌된 게 한나라당 가 있고 (김문수 일당) 그 보좌관에다, 또 반대로 __대장님을 외치던 분들은 '열린 우리당 꼬마 수령님들'이 되어있더군요. 


그 과학의 결과 자칫잘못하면, 80년대 자칭 '과학적 사회주의'이름하에 지난 소련사회주의가 범했던 정치적 범죄 (특히 외교나 유 에스 알 내 소수민족 탄압은 거의 사회주의 이념과 정반대로 실천함...그 증거는 도서관 1 트럭분 책도 넘음)을 묵과하는 무기로 사용될 수도 있습니다. 


이미 사회과학에서는 과학이라는 말보다는, '증거' '논거' '통계' '사회적 필드 조사', 그리고 그 전제들을 문제삼는 '윤리학' '관점' '직관'등으로 대체되어 있고, 이런 주제들을 더 자세히 다루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80년대는 데모하느라고, 소련이나 중국 북한에서 수입된 것, 혹은 일본 공산당원들이 보던 책 번역해서 봐서 정신없이 무반성적으로 거기 씌여진 '단어'를 외웠지만, 이미 그런 단어들은 지난 100년간 세계사와 국제 정치사를 반영하기에는 너무 그릇이 적고 개념들은 폭발되었다고 봅니다.


 아직도 과학 외치시고, 그 과학이라는 형용사를 '사회주의'와 결합시키려는 분들은 오히려 '생물학' '천문학' '물리학' '지구과학' 등이나 '수학'을 배우셔가지고, 수학적 사회주의, 혹은 생물학적 사회주의 이런 단어를 쓰는게 낫다고 봅니다. 아예 정확하게 '예측'을 해버려야지요. 공리를 사용해서, 순서도로 알고리듬 만들어서, 답이 똑 떨어지게끔 말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의식과 동기, 규범을 수반하는 사회적 현상을 다루는 사회과학에서 '연역적 가설모델'은 분명 한계를 지닙니다.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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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요즘음 좌파와 우파의 기원부터 변화에 대한 성찰이 없습니다.
    진보와 보수도 어떻게 생겼고 변화해왔는지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러다 보니 정당마저 정체성이 없는 것을 추구하고 정치철학에는 나오지 않는 중도라는 말을 당연하게 씁니다.
    더 큰 문제는 자유와 자유방임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 그래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이해가 턱없이 부족한 것입니다.

    또한 근대국가의 출발에 대해서도 전혀 인지하지 못합니다.
    국가라는 것을 빼고 정치철학과 이념을 뺄 수 없는데 그것에 대해서도 너무 무지합니다.

    과학에 대한 공부는 마르크스의 한계와 오류를 뛰어넘어 그의 성찰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해줍니다.
    양자역학을 경험해보지 못했고, 진화론의 한계도 경험해보지 못했기에 마르크스의 성찰은 오히려 진보좌파를 진부한 집단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세상이 변하고 과학기술이 변했고, 신자유주의도 좌파와 우파적 기원이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2016.04.26 15:3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자연과학 (양자역학, 진화론 한계와 의미) 등과 마르크스 성찰과의 관계는 어떤 의미로 말씀하시는것인가요?

    2016.04.27 00:4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정책비교/노동2014. 11. 19. 08:08

단병호 탈당이 던지는 의미




알포드 계급 투표 지수의 경향적 저하와 한국의 노동 현실




발표 : <레디앙> 2008. 02. 21.



(* 고 이재영의 원고청탁으로 쓴 글) 



단병호 의원(이하 의원 생략)의 민주노동당 탈당 선언에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단병호가 말한 민주노동당 위기의 본질은 무엇인가라는 주제이다. 두 번째는 민주노동당이 노동자의 정치세력화에 실패했다면, 향후 어떠한 새로운 진보정당이 그 정치세력화를 가능케 할 것인가, 라는 질문이다.


단병호는 민주노동당 위기의 본질은,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들이 민주노동당 정치활동의 주체가 아니라, 재정, 인력 동원의 수단으로 전락한 데 있다고 평가한다. 또한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 간의 접착을 강화하기 위해 만든 시멘트, 즉 민주노총의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와 노동 부문 할당제가 잘못된 거래로 종결되고, 그 접착제 역시 불량품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가교역할, 그 접착제 역할을 자처하고 나선 민주노총 소속 민주노동당 간부들은 당 발전에 100원 어치 기여하고, 10,000원 어치 보상받으려는 불공정거래, 즉 반칙을 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단병호는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공은 가까이 하려 하면서도 과와 책임은 멀리하려고 합니다.” 위와 같은 단병호의 위기진단은 지난 4~5년 간 민주노동당의 위기원인들을 전체 포괄하는 것은 아니지만, 민주노총과 당과의 잘못된 역할분담에 대해서는 올바르게 평가하고 있다고 본다.


한국 노동자계급은 과연 진보정당에 계급투표를 할 것인가?


단병호의 민주노동당 위기 진단은 신 진보정당에게 어떠한 정치적 주제들을 던져주는가? 과연 한국 민주노총과 더 나아가 한국 노동자계급은 과연 좌파적 성격을 띤 진보정당 혹은 사회주의 성향의 정당에 계급투표를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다면 그게 언제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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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에서는 계급투표율과 알포드 지수가 하락하고 있다. 사진은 연대노조의 발원지였던 폴란드의 조선소.

한국 노동자의 계급투표의 현실에 대해서 냉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부터 시작해야 한다. 한국의 노동운동가, 좁게는 민주노총 소속 간부들의 계급투표에 대한 기대와 실천은 과장되었다.


그리고 지난 10년 간 선거에서 그 과장됨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의 80만 노총조합원들이 800만 표를 획득하자는 구호, 현실은 민주노동당 권영길이 71만표 획득하는데 그쳤고, 그 중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기여도는 20% 내외로 추정된다.


소위 기대와 결과의 격차, E-R Gap의 표본사례가 한국 노조와 노동운동에서도 나타난다는 것이다. 정치가로서 이석행 위원장을 비롯한 민주노총 간부들의 개인적인 결의와 업적 홍보와 정반대로, 현실에서는 냉혹한 정치적 실패로 판명되었다. 이러한 기대와 결과의 심연의 격차는 정치적 공언과 무책임을 의미하고, 이석행의 정치적 무능을 드러낸 것이다.


한국 노동자계급은 과연 민주노동당을 지지하고 투표로 답했는가? 실제 지난 2000년 이후, 민주노동당에 투표한 사회 계급 계층을 분석해보면, 제 1위가 화이트칼라(도시 거주 30대 직장인, 80년대 민주화운동 경험 도시 신중간층), 그 다음이 20대 학생, 도시 자영업자, 블루칼라 노동자, 주부, 농수산업자 순이다. 한국노총의 이명박 지지에 대해서는 별도의 분석이 필요한 것 같아 언급을 생략하겠다.


맑스가 살아있었다면, “전 세계 노동자여 단결하라!”를 외치면서 동시에, 왜 단결이 안 되는가를 평생 연구했을 것이다. 여의도 국회도서관에 매일 출근도장 찍으면서, 가제로 책을 만든다면 『한국 노동자들이 진보정당에 표를 안 던지는 100가지 이유』였을 것이다.


실제로 서유럽 사회복지국가 모델의 황금기, 1945~1975년 시절에, 정치, 사회, 경제학자들이 한 작업들이 대부분이 위 주제들과 연관되어 있다. 그 한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알포드 계급 투표 지수와 신 진보당의 임무


아이러니컬하게도, 과거 8년 간 민주노동당의 지지 계급 계층 분석은, 서유럽 사회복지국가 황금기 시절에 나타난, 알포드 계급투표 지수(Alford Class Voting Index : 노동자 계급이 좌파정당에 투표한 퍼센트와 중간층 및 중산층이 좌파정당에 투표한 퍼센트의 차이를 지칭한다. 예를 들어, 노동자계급의 70%가 좌파정당에 투표했고, 중산층의 20%가 좌파정당에 투표를 했다면, 알포드 계급투표 지수는 50이다) 경향적 저하와 일치하고 있다.


서유럽 사회복지국가 모델(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등 사회주의 북구형, 독일 가족 중심형, 프랑스 예외형)에서 2차 세계대전 이후, 계급투표(class voting)는 전반적으로 하락한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2차 세계대전 이후, 서유럽 전체 사회민주주의 당 득표율은 30~31%이다. 민주노동당은 8년 정치적 경험을 했기 때문에, 일국 한국과 여러 국가들의 좌파정당들을 단선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무리이다. 그리고, 한국은 80년대 민주화 운동과 노동운동 경험을 거쳤다는 것 역시 서유럽과 다르고, 사회복지국가 모델, 즉 노사정위원회의 타협 모델도 없다는 점도 우리는 고려해야 한다.


이런 한국과 유럽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계급투표 경향 한 가지 흐름만을 언급하겠다. 알포드 계급투표 지수의 역사적 사례들을 보자. 알포드 계급투표 지수의 역사적 사례들을 보자. 좌파들이 즐겨쓰지는 않더라도 이미 한국의 진보정당이 제도권 안에서 활동하는 한 이 알포드 계급투표 지수는 참고할 만하다.


스웨덴의 경우 알포드 계급투표 지수는 1948년경 50에서 1986년에는 35 전후로 떨어진다. 영국의 경우 1948년 40 전후인데, 1980년대 들어와서는 20으로 하락된다. 서독의 경우 같은 기간 30에서 10으로, 프랑스는 33에서 15로, 미국의 경우는 2차 세계대전 전후로는 45에서 72년 3으로 현격히 떨어졌다가 1980년대는 8~9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소위 진보적인 사회복지국가 북구형(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 등)에서는 계급투표가 아직도 건재하면서 동시에 하락 경향을 보이지만, 미국이나 캐나다는 계급투표 결과가 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없을 정도이다.


이것은 잘 알려졌다시피 노동조합 가입율과 좌파 정당의 유무에서 그 차이가 기인한다. 서유럽에서 알포드 계급지수가 경향적으로 저하하는 이유는, 노사 타협으로 인해서, 계급투쟁의 휘발성이 약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좌파 정당 역시 전통적인 노동자계급 뿐만 아니라 소위 신사회운동 주체들을 정당의 주요한 간부들로 흡입했다는 것을 반영한다.


알포드 계급투표 지수를 한국 상황에 가정적으로 적용해보자. 2007년 대선 71만 표를 분석할 때, 과연 전체 노동자의 몇 퍼센트가 민주노동당을 지지했고, 중산층 몇 퍼센트가 민주노동당을 지지했으며, 그 차이는 몇 퍼센트겠는가?


답은 물론, 북유럽형도 아니고, 미국 캐나다 형도 아닐 것이다. 추측해보건대, 수치상으로는 한국은 미국형에 가까울 수 있다. 물론 90년대 후반 이후, 미국 역시 서비스 영역에서 조합 활동(SEIU)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한국과 미국의 단선적 비교는 정치적으로 별 의미가 없을 수 있다.


단선적이고 환원주의적 계급정치 강조는 무의미하다


정치적 판단으로 이야기를 돌리자. 국민파, 현장파, 중앙파, 실리파 등 정파를 막론하고, 민주노총 지도자들은 한국 노동자들의 계급투표 행위에 대해서 과장해서는 안 된다. 맑스와 사회주의자들이 150년 전에 말한 “노동자계급은 자본주의를 갈아엎을 혁명의 주체이다”라는 명제를 종교적으로 암송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오히려 맑스가 『헤겔 법철학 비판 서문』에서 말한 “가장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피압박을 당하는 사람들이 누구인가?”라는 주제로 옮아가야 하고, 그 억압 주체들과 장치들에 대한 분석, 그리고 문제 해결 집단들의 구체적인 행위 지침을 제시해야 한다.


정치 혁명과 변혁의 주체는 계급분석에 반드시 기초해야 하지만, 계급과 일치하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서 어떠한 특정 계급의 정치적 우월성이나 선차성 관념(제1주력군, 제2주력군, 제1보조군, 제2보조군 등)등은 인간의식을 계급적 존재에 귀속시켜 버리는 결정주의적 사유방식의 잔재이다.


이런 식이라면, 제2인터내셔널이 맹신한 자본주의 붕괴론에 근거한 정치 실천으로 귀결될 확률이 높다. 그리고 이미 여러 나라들에게 실패한 교조적인 좌익 정치 패러다임들이다. 모든 사회 활동에서 계급정치의 싹들을 발견해야 하고, 직접적인 행동과 정치 실험들을 존중해야 한다. 그리고 신 진보정당의 주체로 인입해야 한다.


그렇다면, 계급 기반 정치(class-based politics)에서 가치 기반 정치(value-based politics)로, 구 정치에서 신 정치 주제들로 옮아가자는 것인가?


2008년 한국 정치 현실에서는 이러한 형식적 구별은 별 의미가 없다. 전 세계적으로도 이미 1945~1975년 유럽 황금기 사회복지모델도 신자유주의와 자본축적구조의 변동으로 그 모형 자체가 변모되고 있다.


한국의 경우 2007년 대선에는 계급기반 정치 주제들(경제 성장, 정치 안정, 국가 안보 등)이 소위 신정치 주제들(가치 기반 정치 주제들, 환경, 여성, 인종, 반핵평화 등)을 압도하고 말았다. 그럼 두 가지 다 고려해야 한다는 것, 너무나 당연하다. 한국에서 새로운 진보정당 역시 지난 8년 한국에서 자생적으로 발전되어 온 여러 시민운동 성과들, 신정치의 가치 기반 주제들을 포함해야 한다.


이러한 계급 기반 정치와 가치 기반 정치 결합은 새로운 이야기도 아니다. 역사적으로도 프랑스 사회당의 경우, 정통 맑스주의와 단절을 선언한 이후, 로카르의 사회개혁주의와 미테랑의 민주적 사회주의의 당내 대결에서도 여전히 맑스주의에서 배운 전통적 사회주의적 흐름(정책에서야 사민주의 경향)과 68년 이후 신사회운동의 주제들을 결합했었다. 그게 미테랑과 최근 한국을 방문한 죠스팽의 정치 노선이었다.


독일의 경우도 녹색당과 사민당의 연정정부와 그 실패 사례도, 동일한 연장선상에 있다. 독일에서 녹색 적색 연정이 실패했다고 해서, 우리가 녹적 연대를 하지 말자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왜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가는 진지하게 배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윤리교과서 사회주의자에 그치고 말 것이다.


교과서 사회주의 안 되려면 현실에서 배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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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거리를 기다리는 퀵서비스 노동자들. 대부분의 비정규직에게는 잔업도, 잔업수당도 머나먼 이야기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사회민주당이나 사회주의적 성향 당이 집권한 적이 없다. 그리고 미국식 2당 체제가 한국 정치판을 압도해 온 것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신 진보당은, 당연히 계급 기반 정치와 가치 기반 정치 주제들을 창의적으로, 능동적으로 예민하게 결합시켜야 한다. 최근 한국 타이어 노동자들의 어이없는 죽음을 보더라도 안전, 환경, 노동 문제가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신 진보당 주체들이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에서 간략하게 언급한 알포드 계급투표 지수, 한국 민주노총의 투표 행태, 민주노동당과의 관계 등에서, 유의미한 실천적 결론은 다음과 같다.


신 진보당은, 민주노총 조합 자체가 한국의 가장 억압된 계급 계층, 차별을 가장 많이 받는 사회계급 계층들로부터 정치적 지지를 받지 못한 상황을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또한 비정규직 내부 분화들에 대한 고려와 더불어, 정형화되지 않았지만, 지역, 일반 노조 등과의 직접 연대 행동 조직화에 더 신경을 쏟아야 한다. 왜냐하면 비정규직 노동자의 존재 형태들과 의식수준들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신 진보당은 당연히 계급투표를 독려하고, 그 투표율을 올릴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하지만, 지난 8년 간 민주노동당 민주노총과의 비대칭성은 피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단병호의 진단, 배타적 지지는 정치적으로 의미가 없다는 지적이 옳다. 그리고 노동 부문 할당제는 폐지되어야 한다.


세 번째, 한국에서 계급투표 증가는 오히려 진보정당의 정치 참여 폭의 증대와 비례 관계가 있다. 이는 한국의 정치 주체들의 정치적 경험, 80년대 민주화 운동, 90년대 자생적인 시민운동들, 2000년대 민주노동당 운동들의 활성화가 노동운동 발달의 호조건을 형성할 것이다.


신 진보정당은 프랑스 공산당이 좌파적 성향의 프랑스 노동총동맹(CGT)을 정치적으로 완전히 장악한 1947년 이후에도, 친 소련 노선을 노골화시키고, 변화하는 프랑스 젊은이들의 의식을 따라잡지 못해서 결국에 사회당에 밀리고 말았다는 사실을 배울 필요가 있다. 민주노총과 신 진보당 내지는 사회주의 당)의 아름다운 역할 분담은 당연한 이야기라서 여기서 생략하겠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새로운 진보정당은 더욱 더 구체적으로 한국 노동자의 의식과 생활을 이해하고 분석해야 한다. 정치적 선언이나 당위를 넘어서야 창의적인 노동운동, 실제 지역 행정을 진보적으로 책임질 주체로 발돋움 할 수 있다.


노동자의 해방, 추상적인 이야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 아들 딸 학원 보내기 위해서 정규직 노동자들이 잔업을 하는 게 한국 현실이다. 아들 딸 노동자 되지 말라고, 전문직 자영업자 되어야 한다고 밥상머리에서 매일 이야기하고, 자기 계급을 부정하고 마는 것이 한국적 현실이다.


자식 학원 보내려 잔업하는 정규직, 잔업도 못하는 비정규직


비관을 이야기하고자 함이 아니다. 우리가 진보정당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하루 8시간, 6시간 일해서, 그 노동이 사회공동체의 유지 발전에 기여한다면, 그 사람은 한국의 정치적 시민으로 동등한 자격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이 냉혹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자식들 학원비를 위해서 잔업도 못하고, 정규직 노동자들은 그나마 장시간 노동이라도 할 수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치적 시민 대열에서 탈락 낙오되고 있다는 것이다.


신 진보당, 한국에서 노동자도 다 똑 같은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 냉혹한, 살벌한, 냉정한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계급 기반 정치와 가치 기반 정치를 결합한다고 선언하든, 푸른 진보, 역동적 진보, 아름다운 역할 분담을 이야기하든 다 좋다. 그러나, 신 진보당, 보다 더 고개를 숙여 한국 현실을 살아가는 노동자의 삶의 공간들을 확대시켜 들여다 봐야 한다.


신 진보를 노래하는 분들이여, “난 너에게, 넌 나에게” 마음을 열어라. 그대들이 마음의 대문을 여는 만큼 새로운 진보의 따뜻한 바람은 얼어붙은 진보의 마당을 녹일 것이다. 신 진보당, 더 나눠야 한다. 신 진보당, 손을 더 내 밀어야 한다. 특히 언론에 집중조명을 받고 있는 심상정 노회찬의원은 그 조명의 51% 가량을 신 진보정당을 노래하는 이들에게 비춰줘야 할 때이다.






* 선거 데이타 자료들: 




독일 사민당 (에스.페.데)이 총선에서 받은 득표율 변화, 1871년부터 1933년까지 







(자유당 지지자들이 '노동당'으로 돌아선 비율: 1924년이 가장 높고, 대공황 후 1931년은 조금 줄었다가 1935년에 다시 늘어났다)







1906년부터 1935년 선거에서 노동 계열이 받은 득표율 변화 1922년에 최초로 30%에 진입했다.






(유럽 국가들의 '사회민주주의 계열 정당들'이 총선에서 받은 득표율 변화 1870년대 출발할 때는 10% 미만이었으나 1920년대 후반 이후 평균적으로 30% 득표율을 유지하고 있다. 다당제 multiparty system 에서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보수당, Liberal 정당, 정통적 공산당, 기독교 계열 정당과 경쟁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뜻한다)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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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노트(독후감)2014. 9. 6. 15:30

체 게바라 이야기를 하는 것은, 쿠바에 대한 찬양도 아니고, 밀림으로 들어가자, 현장으로 돌아가자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다. 체 게바라가 사교육 시장이 일상 곳곳에 뿌리내린 한국 에 왔다면 아마도 무기를 버리고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론이나 진지전 (war of position)을 사회변혁 전술로 채택했을 지도 모르겠다. 체 게바라를 이야기하는 건 쿠바 사회주의나 사회주의 개념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개인적인 의미이다. 체 게바라의 삶에서 보고 배운 것, 어떤 통찰력 같은 것을 보게 된다. "인생의 끝은 어떠해야 하는가?" 유종의 미에 대한 실천이 어떠해야 하는가? 그 질문에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는 답을 준 사람이기 때문이다. 518 광주 항쟁 윤상원 선생도 마찬가지 유형의 인물이다. 


1959년 쿠바 혁명이 완결되고 나서, 체 게바라가 강조한 대목은 "교육이 사회주의 건설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이다. 체 게바라가 강조했던 교육의 중요성, 그 정치적 목표는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을 것 같다. "운동을 통해서 자기가 변해야 한다고, 새로운 사회는 어차피 새로운 습관으로 가득 차야 한다." 





1990년대 중반까지. 불온서적 관리부가 도서관에 있었다. 2014년 한국도 다른 나라도 체 게바라를 언급한다고 해서, 그의 노래를 듣는다고 해서, 그 주장과 연설을 소개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급진파가 되거나 혁명적으로 되지 않는다. 특히 한국처럼 사교육과 대학입시, 중앙집권적 관료주의 사회, 자본과 신분제도가 교육을 통해서 정치적 통제력을 발휘하는 나라에서는 더욱더 그럴 것 같다. 책을 보다가 우연히 발견한 "불온 간행물 관리번호 5496." 이것이 상징하는 바는 무엇일까?  한국 지식인들은 좌-우 균형을 겸비할 기회를 박탈당했다. 우측으로 기울게 하여버린 불행한 비극적인 역사가 1945~1953년 내전과 국제전쟁 (한국전쟁)을 통해서, 그 이후에도 더 강화되고 지속했기 때문이다. 



쿠바와 남미 사회주의 건설에서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인가? 국가가 어떻게 교육을 책임질 것인가? 그런 질문을 던졌다. 내 독서 독후감 메모장에는 이 대목이 교육자와 피교육자 구분이 종국적으로 없어지는, 교육자 역시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 마르크스 포이에르 바흐 테제 일부와 연관이 있다고 적혀져 있다. 체 게바라 혹은 20세기 사회주의 국가에서 교육 담당 주체로 "교육부"나 "국가" 혹은 공산당, 사회당이 있었지만, 사실상 과거 자본주의 국가에서 행해진 교육과 큰 차별성을 가져오지 못했다. 왜냐하면 교육 주체와 피-교육자를 엄격히 구분하는 이분법적인 방법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 스스로 사회주의자들임에도 불구하고. 


교육 문제는 그 중요성에 불구하고, 체 게바라에게도 우리에게도 쉽지 않는 주제임에는 틀림없다.




2014년 친구같은 지도자도, 전위의식을 가진, 다시 말해서 대중의 이해관계에 기반하되, 그 의식들을 선도해 나가는 선구자적인 전위들이 실종되었다. 그게 2014년 현 주소이다.


 "전위 뱅가드는 미래를 볼 줄 알아야 하고, 미래가 가져다 줄 성취와 보답이 뭔지도 알아야 한다" 이렇게 체 게바라가 이야기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정치적 기획과 실천이 가져올 정치적 성취가 뭔지에 대해서 미리 미리 알지 못하고서는 지도자가 되지 못한다. 이게 가능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연습과 노력이 필요하다. 




2000 년 가을 독서 노트




"전 세계 혁명가들이 체 게바라의 미소를 잊지 못할 것이다."


사람은 미소를 남기고 죽기도 힘들다... 그건 도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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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노트(독후감)2014. 3. 3. 20:17

와일드 "사회주의 하에서 정신(쏘울)" / 복지를 넘어서 진정한 개인주의를 향해

2010.07.05 15:16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1854-1900)는 정치학이나 경제학, 법학자는 아니고, 소설,시인, 작가인데, "사회주의 하에서 정신"- 국가와 개인의 역할에 대해서 쓴 게 있더군요. 사회관습과 보수적인 문화풍토에 저항하기도 하고, 귀족 아들 알프레드 더글라스와 동성애로 (당시 와일드를 Somdomite 로 언론에서 부름) 2년간 중노동에 처해지기도 했습니다. 오스카 와일드의 사회주의와 개인주의에 대한 생각을 아주 도식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제 이해입니다만), 사회주의 하에서 "창의적인 개인"의 창출이야말로 그가 생각한 이상적인 공동체였다고 봅니다.


이 오스카 와일드가 국가 (사회주의)와 개인의 역할을 둘로 나누는 부분이 조금 인상적이고, 또 당시 영국에서 가난한 사람들 돕는 자선행위에 대해서 "(자본주의적) 사유 재산권"을 지키면서 남 돕는 것 = (요새 말로 복지)에 대해서 비판한 대목이 기억에 남네요.

대강 발췌해서 번역했으니까요, 재미로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사회주의 하에서 인간의 쏘울/영혼/정신) / 오스카 와일드 1891년


대부분의 사람들이 빈곤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보면, 가난한 사람들이 죽지 않고 살 정도로만 한다. 혹은 조금 진일보한 사람들의 경우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위안거리나 즐거움을 제공하는 정도로 빈곤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빈곤을 타파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빈곤문제를 더 악화시킨다. 진짜 우리가 목표로 해야 할 것은 “빈곤은 있어서는 안된다”는 토대위에 우리 사회를 재구성하고 그런 사회를 실험해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타적인 덕목들이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는데 오히려 방해가 되어 왔다. 가장 나쁜 노예주는 그 노예들에게 친절을 베푸는 노예주인 것처럼, 그리고 그렇게 친절을 베풂으로써, 영국에서 일어나고 있듯이, 그 (노예) 체제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역설적으로) 실현하고 있는 그 체제의 공포, 그 노예체제에 대해서 깊은 인식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미 알려진 그 체제의 공포를 차단-예방해버리는 것처럼, 가장 해악을 끼치고 있는 사람들이란 바로 가장 최고로 좋은 일을 하려고하는 사람들이다.


마침내 이 빈곤문제를 실제적으로 연구해온 괄목할 만한 사람들의 업적이 있었고, 빅토리아 런던의 가장 가난한 동네에 사는 교육받은 사람들이, 그 동네 공동체에서는 자선이나 자비와 같은 이타적인 충동들을 억제했다. 왜 그렇게 행동했냐면, 그러한 자선이나 자비가 사람들의 존엄성을 상실하게 하고 도덕적으로 해이하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들의 생각은 옳았다, 왜냐하면, 차선이나 자비행위가 죄악들을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이렇게도 해석된다. 사유재산제도에서 발생하는 끔찍한 악(빈곤같은)을 누끄러뜨리기 위해서 사유재산을 사용한다는 것이 비-도덕적이다. 이는 비도덕적이면서 동시에 불공평하다는 것이다.

사회주의에서는 이러한 문제가 다 고쳐질 수 있다…. (중략)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사회의 행복과 부를 나눠가질 수 있다.

다른 한편 사회주의는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회주의는 개인주의로 향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유재산을 “공동/공공 부”로 전환시키고, 경쟁을 “협동/협력”으로 대체함으로써, (우리가 이름을 뭐라고 붙이건 간에) 사회주의, 공산주의는, 한 사회를 완전히 건강한 유기체(organism)로 복구시킬 것이고, 또 공동체 구성원들의 물질적인 행복을 보장해줄 것이다. 이러한 사회주의, 공산주의는 우리가 살아가는데 (인생에서) 삶의 기초와 적합한 환경을 제공해 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인생의 최고로 완벽한 양식에 이르기까지 우리 삶을 완전히 발달시키기 위해서는 뭔가 더 있어야 한다. 더 필요한 이 뭔가가 바로 개인주의이다.

1) 사회주의가 만약에 권위주의적이고, 2) 지금 (대영제국) 정부가 정치권력을 가진 것처럼, 경제력을 장악하고 있는 정부가 있다고 한다면, 3) 우리가 산업 독재체제들을 가져야 한다면, 마지막이 처음 것 보다 더 나쁠 것이다.


(…중략…그렇다면 국가와 개인의 관계와 역할은?)

(자발적 결사체로서 사회주의) 국가는 노동을 조직하는 자발적인 조직(협회)가 될 것이고, 국가는 매뉴팩쳐가 될 것이고, 필요한 상품들의 분배자가 될 것이다. “국가는 (우리에게) 필요하고 유용한 것을 만드는 것이다. 개인은 아름다운 것을 만드는 것이다”

(중략…) 기계는 인간의 허드렛 일을 대신해주고, 인간은 창조적인 활동 (철학, 과학, 문학, 문화 등)을 할 수 있도록 “여가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진화는 인생법칙이고, 개인주의를 향한 것없이 진화란 없다.

신-개인주의 (이를 위해서 사회주의가 복무해야 하는데, 물론 사회주의가 하려고도 할 것이고 하지 않으려고도 하겠지만)는 이제 완벽한 조화를 의미한다.

(고대 아테네처럼 노예노동을 착취하지 않아도 되고, 르네상스 시대처럼 노예를 굶어죽게 할 필요도 없고, 이제 사회주의 국가가 물질적 행복을 구성원들에게 제공해주는 제 3단계 시대가 왔기 때문이다)


오스카 와일드 (사회주의 하에서 인간의 정신: 1891)

Oscar Wilde: The Soul of Man Under Soci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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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새로운 지도자들이 탄생하지 못하고 있는가


원시:2005.10.05 09:38:46

 http://dg.kdlp.org/250403


첫 번째 이유는, 20세기 사회주의 세계가 그 사람들이 우파나 자유민주주의 세력과 대별점을 긋지 못한 것과 비슷하다. 입으로는 평등을 외쳤으나, 그 평등이라는 것이 배 안고플 정도의 밥그릇 크기, 도톨이 크기 재기에 그쳤다.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복종형 인간을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왜 사회주의 사회 역시 그 체제에 복종하는 인간형들을 만들어냈는가는 너무 큰 주제들이기 때문에, 능력범위에 있는 이야기는 우선 줄이겠다. 다만, 진보정당을 하기 위해서는, 당원 한 사람의 능력/개성/직업/특수성 들에 대한 명료한 고려와 더불어 그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발전전략과 실행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


민주노동당이 정치적 권력을 획득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민주노동당 안에 전반적으로 암암리에 불고 있는 '부동의 자세', '버티면 그래도 본전은 찾는다'는 복지부동의 철학과, '니는 내 편이제?'식의 김영삼 통치철학. 민주노동당의 지도자들을 자처하는 사람들 뼈속에 무엇이 박혀있는지 뒤돌아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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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권 정당에서 승리관건은 기획에서 실행까지 완벽한 협력체제를 갖추는 것이다)


두번째 이유는, 운동권들이 (지금은 무슨 대중운동가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불량스럽고 진실성이 떨어지지만. 반면에 정치적 자살 -분신 등-하신 분들의 죽음이 정치적으로 발전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 마치 천국이나 손오공 구름 위에 살고 있다가, 민주노동당이라는 타이탄 호타고 마치 한국사회 유람이나 관광온 것처럼 정치를 하고 있지 않은가? 밑바닥 지역위원회에서 필요한 정치적 자양분들은 공급할 능력은 결여되어 있으면서, 무슨 지도자들을 자처하는가?


현재 민주노동당내에 새로운 정파들이 일어나고 있고, 정치활동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었다고 본다. 왜냐하면, 사회는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고, 한국인들의 의식은 엄청난 빠른 속도로 분화발전되고 있는 반면에, 민주노동당의 지도자들을 자처하는(혹은 후보들은) 보통 직장인들보다 더 사회생활 경험이 부족한데다, 정치적 문제 해결능력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가느다란 희망]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지도자군 후보 선출하는데, 1인 2표제를 다시 들고 나오는 이 조폭보다 더 못한 수준을 지닌 민주노동당에서 어디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겠는가? 어떤 특정 정치계 조직(거의 아파트 부녀회 수준인 그들)을 위해서, 조폭정치를 민주노동당에 도입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우리가 어디에서, 한국 진보정당의 미래 지도자들을, 각 지역의 진보행정을 책임질 사람들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민주노동당은 아직 피를 덜 흘렸다.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에 간판이나 한국식 명암따위를 내밀 수 없는 어정쩡한 위치에서, 열린우리당보다 조금 덜 떨어지는 떡고물들을 찾아서 민주노동당에 왔는가?


과연 지금 민주노동당의 국회의원, 최고위원(*이름 바꿔야 함) 등을 꿈꾸는 자들이, 민주노동당의 미래를 걱정하면서, 10대, 20대 당원들을 키울 계획이나 세우고 있는가? 어디 데모나 집회 있으면, 앞자리 앉아서, 카메라 발 안받나? 꽃다발 안주나? 그게 꿈이지 않은가? 어디 누구 하나 제대로 정치활동 보고서를 쓰고, 민주노동당의 각 지역위원회가 성장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는가?


민주노동당은, 정치적 희망을 만들기 위해서, 자기 이름이나 우선 수동적으로 지킬 준비를 해야겠다.

복종형 인간군상을 거부해야 한다.

무능력한 얼굴마담들은 이제 민주노동당에서 발붙여서는 안된다.


지금과 같은 민주노동당 조건에서는, 새로운 정파 100개가 쏟아져 나온다고 해도, 미래 꼬레아의 8천만 삶을 진보적으로 만드는데 기여할 지도자들, 개미건 장군이건 간에, 그런 지도자들을 만들어낼 수 없다는 것을 똑바로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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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철학2013. 6. 23. 02:49


일하는 사람들의 당을 표방했는데, 정작에 자기 일터에서 노동과정, 희로애락 이야기는 빠져있다. 


정책은 독일 녹색당, 좌파당, 스웨덴 사회민주노동당, 공자, 마르크스가 말한 '문자'만 나열한다고 만들어지지 않는다. 


 현재 한국내에서 '진보 비지니스화' 로 퇴락한 사민주의나 '복지론'은 정치적으로 민주당이나 보수-새누리당을 이기는데 기여하지 못할 것이라고 본다. 


사회복지정책은 보수당도 민주당 리버럴리스트도 다 쓸 수 있다. 


사회주의자 좌파들의 독점물이 결코 아니다. 그렇다면 보수파와 민주당과의 차이는 어디에 있는가?  


당의 모든 정책들은 일터, 쉼터, 놀이터, 일상생활 터전과 동네에서 솟구쳐 나와야 한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주체적인 필수 조건은, 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체취가 정책에 담겨져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민주당 새누리당과 구별되는 우리 정당 정책의 제 1차적 원자료는 일터에서 노동자들이 느끼는 '감정', 희로애락이 되어야 한다.

노동자들 자기 이야기, 일터에서 자기들이 느낀 점들, 그것은 우리들의 붉은 피이다. 과거 민노당과 진보신당에는 그 붉은 피가 흐르지 않았다. 아까쟁끼(머크로크롬액: 상처났을 때 바르던 빨간 액체 약)는 좀 발랐다고 해서 그건 붉은 피는 아니다. 예를들어 
파업장 방문이나 민노총 협조 재정후원 받기 및 교류 등.  


노동이란 허드렛 일이나 로봇이 대신 하면 좋을 그저 귀찮은 일만은 아니다. 학교에서, 경찰서에서, 비누 공장에서, 어부, 농부의 일, 지하철 기관사, 판사의 판결문 작성,  구청장의 업무, 소녀시대 가수들까지  모든 게 다 노동이고 일이다. 노동을 제조업이나 상점 서비스업에 국한시켜서는 안된다. 


97년 IMF의 신자유주의적 통치와  긴축정책이후 변화된 한국 자본주의 축적 양식과 노동자들의 의식 변화 등에 대해서 정치적 사회학적 분석이 필요하다.


 87년 "우리는 공돌이 공순이가 아니다. 우리도 인간이다. 노동 3권이 인권이다" 이 슬로건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천 발전되어야 하는지 설명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새롭게 노동에 대한 철학적 태도를 수립해야 한다. 


불안정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도시 저임금 서비스 노동자의 급격한 증가로 인해서, 임금인상, 고용안전과 같은 노동기본권이 다시금 중요한 현안으로 떠올랐다. 


이러한 경제적 활동 기본권리와 더불어, 일터에서 노동과정에 대한 노동자들의 자기 표현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노동과정 속에서 진정한 노동해방이 실현되어야 하고, 또 노동자들의 자유가 표현되기 때문이다.  


노동운동과 진보정당 위기론 대두 이후, 현재 한국에서는 '노동'에 대한 개념이 잘못 쓰이고 있다. 


한쪽에서는 '노동중심성'을 외치고, 다른 한쪽에서 '탈-노동' 및 비-노동 정치가치들을 나열하고 있다. 


이 양자의 오류들 중에 하나의 공통점이 발견되는데, 그것은 바로 노동과정에 대한 정치적 중요성을 전혀 말하지 않고 연구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양자 모두 노동자들(교사, 제조업, 서비스업, 과학자)과 도시 자영업자들(정규직 해고자들이나 도시 빈민층)의 노동 과정에 대한 정치적 분석을 제출하지 못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일터에서 '노동 과정'의 중요성을 한번 살펴보자. 


20세기 사회주의 경제 체제의 문제점은 자본주의 시장제도에 비해 비효율적이었다 (는 평가는 우파들의 시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점도 공정하게 토론되어야 하는 주제이다). 


하지만 이 주제와 더불어 보다더 중요하게 다뤄야 할 주제는, 구 사회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노동 통제의 대상’이었다는 점이다.


 계획경제  하에서, 실제로 노동자들은 당관료나 행정관료의 ‘명령과 지시’를 따르는 또다른 정치적 소외의 대상이었다. 


(*계획경제는 사회주의자 마르크스주의자의 전유물이 더 이상 아니다. 이건 삼성 이건희도 삼성경제 연구소 만들어서 자본주의의 무정부성의 약점을 보완하고자 하고 넓은 의미에서 계획경제의 자본주의적 도입이다. 혼합경제 = 사회민주주의 하자는 입장도 마찬가지로 계획경제를 수용하고 있고, 국가나 정부가 직접 생산,유통,교환,소비의 주체가 된다)



안타깝게도 20세기 사회주의국가들의 오류가 한국 진보정당과 좌파정당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2000년 이후 민주노동당, 사회당, 진보신당의 공통된 약점과 문제점은 어디에 있는가? 


노동자들의 노동과정, 자기 일에 대한 자기 표현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표현)이 없거나, 무시되었다는 것이다. 정책 정당을 표방했으나, 노동자들의 일터에서 노동자들 스스로 말하고 표현한 것에 기초해서 정책을 수립하지 못했다. 생산과정, 노동과정, 직장 일터에서 자기 일에 대해서 스스로 말하지 않는 자는, 대안사회의 주체가 될 수 없다.


우리들은 과연 이 한국의 모든 일터들을 우리들이 '대안의 일터'로 만들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일터에 있는 사람들의 살아 있는 목소리들을 '정치적으로' 승화시키고 '수정체'로 만드는 일이 바로 정당이 할 일이다.


1.


1988년 일본, 게이샤, 이동하는 차량에서 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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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958년 중국, 충칭, 짐을 나르는 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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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002년 인도네시아, 동부 자바, 카와 일렌 화산, 유황을 짊어진 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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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2001년 캄보디아, 승려들이 지뢰를 제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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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989년 중국 광조우, 출근하는 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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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2002년 예멘, 호데이다, 사막에서 농사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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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1985년 페루, 카하마르카, 소 도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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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1980년 인도네시아, 자바, 논 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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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2004년 아프리카 콩고, 벌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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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947년 영국 에섹스 Essex, 자동차 수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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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997년, 그리스 파콕스, 올리브 채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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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966년, 프랑스 파라, 루브르 박물관, 모나 리사 유리 액자 청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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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996년 러시아, 아이 출산원,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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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2005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크라구에박, 자스타바 자동차 공장 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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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2001년 터어키. 광산 노동자들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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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991년,이태리 밀라노 , 패션쇼 

지오지오 마르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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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2003년 슬로바키아, 로마 Roma 정착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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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1998년 루마니아, 면직물을 자아내는 할머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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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1920년대 프랑스 아낙네들, 동네 공동 우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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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1936년, 포르투갈, 리스본, 구두 닦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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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002년, 프랑스, 파리. 길거리 음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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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2000년 터어키, 어선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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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1977년 독일 돼지 도축장 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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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1994년, 이태리 베니스, 곤돌라 배 노젓는 뱃사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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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1999년 영국 런던, 버킹엄 궁전 경비 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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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000년 러시아, 라보제로, 얼음 낚시 후 집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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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1887년-1889년: 프랑스 파리 에펠탑 Eiffel Tower 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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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1986년 브라질, 세라 페라다, 금광 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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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책 출처 


제목: 노동 Work. 


사진작가: 퍼디난디 프로츠만 Ferdinandd Protz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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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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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비교/노동2013. 6. 22. 19:22


노동운동, 정당운동의 위기 이유 : 주체적 관점에서 : 

일하는 사람들의 당을 표방했는데, 정작에 자기 일터에서 노동과정, 희로애락 이야기는 빠져있다. 정책은 독일 녹색당, 좌파당, 스웨덴 사회민주노동당, 공자, 마르크스가 말한 '문자'만 나열한다고 만들어지지 않는다. 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체취가 담겨야 있어야 한다. 



노동, 일 = 허드렛 일, 귀찮은 일이 아니다. 학교에서, 경찰서에서, 비누 공장에서, 어부, 농부의 일, 지하철 기관사, ... 모든 게 다 노동이고 일이다. 

그리고 정당 정책의 제 1차적 원자료는 일터에서 노동자들이 느끼는 '감정', 희로애락이다. 

노동에 대한 철학적 태도를 올바로 세우자.


노동과정에 대한 노동자들의 자기 표현이 진정한 노동해방이자 노동자들의 자유를 실현하는 것이다. 


지금 노동당에 대한 찬성파나 반대파나, 모두다 노동 개념에 대해서 잘못 쓰고 있는 대목이 하나 있다. 그것은 노동자들(교사, 제조업, 서비스업, 과학자)과 도시 자영업자들(정규직 해고자들이나 도시 빈민층)의 노동 과정에 대한 정치적 분석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20세기 사회주의 경제 체제의 문제점은 자본주의 시장제도에 비해 비효율적이었다 (는 평가는 우파들의 시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점도 공정하게 토론되어야 하는 주제이다). 하지만 이 주제와 더불어 보다더 중요하게 다뤄야 할 주제는, 구 사회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노동 통제의 대상’이었다는 점이다.


 계획경제 (*이건 삼성 이건희도 삼성경제 연구소 만들어서 자본주의의 무정부성의 약점을 보완하고자 하고 넓은 의미에서 계획경제의 자본주의적 도입이다. 혼합경제 = 사회민주주의 하자는 입장도 마찬가지로 계획경제를 수용하고 있고, 국가나 정부가 직접 생산,유통,교환,소비의 주체가 된다) 하에서, 실제로 노동자들은 당관료나 행정관료의 ‘명령과 지시’를 따르는 또다른 정치적 소외의 대상이었다.


2000년 이후 민주노동당, 사회당, 진보신당의 공통된 약점과 문제점은 어디에 있는가? 노동자들의 노동과정, 자기 일에 대한 자기 표현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표현)이 없거나, 무시되었다는 것이다. 정책 정당을 표방했으나, 노동자들의 일터에서 노동자들 스스로 말하고 표현한 것에 기초해서 정책을 수립하지 못했다. 생산과정, 노동과정, 직장 일터에서 자기 일에 대해서 스스로 말하지 않는 자는, 대안사회의 주체가 될 수 없다.

우리들은 과연 이 한국의 모든 일터들을 우리들이 '대안의 일터'로 만들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일터에 있는 사람들의 살아 있는 목소리들을 '정치적으로' 승화시키고 '수정체'로 만드는 일이 바로 정당이 할 일이다. 


<보충> 임영일 외 (한국의 신자유주의와 노동체제: 노동운동의 고민과 길찾기), 노동의 지평, 2013. 책 중에, 제 9장 <대안적 노조운동의 모색: 정일부 저>를 보면, 노동운동의 현주소와 위기원인들에 대해서 포괄적으로 잘 분석했다. 노동 조직율, 노-노갈등, 세대 고령화, 산별노조의 과제, 조직 경직성, 실용주의적 노동조합, 사회정치활동 공간 부재 등.

그러나 이 책 전체적으로 다루고 있는 주제들 (한국 자본주의 축적 방식 변화, 노동통제전략 변화, 노동조합, 민노총에 대한 자기반성, 노동조합과 정당과의 관계, 노동법의 변천사 등) 중에, 중요하게 하나 빠뜨린 것이, 바로 과거 12년간 정당 활동 중에서, 노동자 스스로 자기 일터에서 생긴 일, 그것을 바탕으로 자기체험, 노동과정에 대한 생각들을 '정책' '정치기획'으로 까지 발전시켰는가? 그 주제들이 빠져있다는 것이다. 

참고 자료 정일부님의 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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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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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타리 사진. <일 work> 이라는 주제. 사진 저널리스트 페르난드 프로츠만 사진을 예를들어 보자. 


(* 캐나다 어부 : 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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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호주, 양털 깍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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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이리안 자야 Irian Jaya , 예술 페스티발, 아스마트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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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2003년. 담배공장. 담배잎을 상자에 담고 있는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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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라스베가스, 제논 가스 전등을 교체하는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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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 프랑스 폴리네시아, 굴 양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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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홍콩, 건설, 대나무 스캐폴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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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중국. 이탈리아 가죽 제품 공장, 어린이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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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미국, 뉴욕, 출근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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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멕시코. 메노나이트 Mennonite  소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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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미국 테네시 댐. 바위 뚫기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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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쿠바, 이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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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캐나다, 캐리지 휠을 고치는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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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코스타리카, 거북이 알을 수집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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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저지아 Georgia , 목화 면직 공장에서 일하는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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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미국 유타 Utah 주, 삽질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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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미국 와싱턴 D.C  레이건 내셔널 공항. 관제탑 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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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와싱턴 주 (미국)  핵발전소 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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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미국 콜로라도 주, 천연가스 시추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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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 Yemen, 간호사가 주사를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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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사우디 아라비아, 양탄자 깔다. 기도 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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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이라크. 바그다드. 전쟁 통에, 한 여인이 짚으로된 매트리스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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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이집트, 전통적인 방법으로 한 여인이 빵을 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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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시리아 syria, 구리로 된 그릇에 문양을 박아 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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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이란, 컴퓨터를 배우고 있는 이슬람 종교 지도자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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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시리아. 빗자루를 팔고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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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예멘, 여성들이 클로버를 채취하고 있다. 소 먹이용으로 쓰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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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미국 알라스카, 버려진 트랙터. 폐광된 구리 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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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미국 미주리 주, 납을 채취하는 광산, 자동 채굴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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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남아공, 광산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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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우크라이나, 염전 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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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석유 채굴, 영국 브리티스 가스 . 파이프 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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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인도, 채광된 탄을 기차로 이동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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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남아공. 굴삭기 노동자가 낮잠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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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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