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 노트 Notes on the Politics of Korea

단병호 탈당이 던지는 의미




알포드 계급 투표 지수의 경향적 저하와 한국의 노동 현실




발표 : <레디앙> 2008. 02. 21.



(* 고 이재영의 원고청탁으로 쓴 글) 



단병호 의원(이하 의원 생략)의 민주노동당 탈당 선언에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단병호가 말한 민주노동당 위기의 본질은 무엇인가라는 주제이다. 두 번째는 민주노동당이 노동자의 정치세력화에 실패했다면, 향후 어떠한 새로운 진보정당이 그 정치세력화를 가능케 할 것인가, 라는 질문이다.


단병호는 민주노동당 위기의 본질은,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들이 민주노동당 정치활동의 주체가 아니라, 재정, 인력 동원의 수단으로 전락한 데 있다고 평가한다. 또한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 간의 접착을 강화하기 위해 만든 시멘트, 즉 민주노총의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와 노동 부문 할당제가 잘못된 거래로 종결되고, 그 접착제 역시 불량품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가교역할, 그 접착제 역할을 자처하고 나선 민주노총 소속 민주노동당 간부들은 당 발전에 100원 어치 기여하고, 10,000원 어치 보상받으려는 불공정거래, 즉 반칙을 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단병호는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공은 가까이 하려 하면서도 과와 책임은 멀리하려고 합니다.” 위와 같은 단병호의 위기진단은 지난 4~5년 간 민주노동당의 위기원인들을 전체 포괄하는 것은 아니지만, 민주노총과 당과의 잘못된 역할분담에 대해서는 올바르게 평가하고 있다고 본다.


한국 노동자계급은 과연 진보정당에 계급투표를 할 것인가?


단병호의 민주노동당 위기 진단은 신 진보정당에게 어떠한 정치적 주제들을 던져주는가? 과연 한국 민주노총과 더 나아가 한국 노동자계급은 과연 좌파적 성격을 띤 진보정당 혹은 사회주의 성향의 정당에 계급투표를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다면 그게 언제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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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에서는 계급투표율과 알포드 지수가 하락하고 있다. 사진은 연대노조의 발원지였던 폴란드의 조선소.

한국 노동자의 계급투표의 현실에 대해서 냉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부터 시작해야 한다. 한국의 노동운동가, 좁게는 민주노총 소속 간부들의 계급투표에 대한 기대와 실천은 과장되었다.


그리고 지난 10년 간 선거에서 그 과장됨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의 80만 노총조합원들이 800만 표를 획득하자는 구호, 현실은 민주노동당 권영길이 71만표 획득하는데 그쳤고, 그 중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기여도는 20% 내외로 추정된다.


소위 기대와 결과의 격차, E-R Gap의 표본사례가 한국 노조와 노동운동에서도 나타난다는 것이다. 정치가로서 이석행 위원장을 비롯한 민주노총 간부들의 개인적인 결의와 업적 홍보와 정반대로, 현실에서는 냉혹한 정치적 실패로 판명되었다. 이러한 기대와 결과의 심연의 격차는 정치적 공언과 무책임을 의미하고, 이석행의 정치적 무능을 드러낸 것이다.


한국 노동자계급은 과연 민주노동당을 지지하고 투표로 답했는가? 실제 지난 2000년 이후, 민주노동당에 투표한 사회 계급 계층을 분석해보면, 제 1위가 화이트칼라(도시 거주 30대 직장인, 80년대 민주화운동 경험 도시 신중간층), 그 다음이 20대 학생, 도시 자영업자, 블루칼라 노동자, 주부, 농수산업자 순이다. 한국노총의 이명박 지지에 대해서는 별도의 분석이 필요한 것 같아 언급을 생략하겠다.


맑스가 살아있었다면, “전 세계 노동자여 단결하라!”를 외치면서 동시에, 왜 단결이 안 되는가를 평생 연구했을 것이다. 여의도 국회도서관에 매일 출근도장 찍으면서, 가제로 책을 만든다면 『한국 노동자들이 진보정당에 표를 안 던지는 100가지 이유』였을 것이다.


실제로 서유럽 사회복지국가 모델의 황금기, 1945~1975년 시절에, 정치, 사회, 경제학자들이 한 작업들이 대부분이 위 주제들과 연관되어 있다. 그 한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알포드 계급 투표 지수와 신 진보당의 임무


아이러니컬하게도, 과거 8년 간 민주노동당의 지지 계급 계층 분석은, 서유럽 사회복지국가 황금기 시절에 나타난, 알포드 계급투표 지수(Alford Class Voting Index : 노동자 계급이 좌파정당에 투표한 퍼센트와 중간층 및 중산층이 좌파정당에 투표한 퍼센트의 차이를 지칭한다. 예를 들어, 노동자계급의 70%가 좌파정당에 투표했고, 중산층의 20%가 좌파정당에 투표를 했다면, 알포드 계급투표 지수는 50이다) 경향적 저하와 일치하고 있다.


서유럽 사회복지국가 모델(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등 사회주의 북구형, 독일 가족 중심형, 프랑스 예외형)에서 2차 세계대전 이후, 계급투표(class voting)는 전반적으로 하락한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2차 세계대전 이후, 서유럽 전체 사회민주주의 당 득표율은 30~31%이다. 민주노동당은 8년 정치적 경험을 했기 때문에, 일국 한국과 여러 국가들의 좌파정당들을 단선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무리이다. 그리고, 한국은 80년대 민주화 운동과 노동운동 경험을 거쳤다는 것 역시 서유럽과 다르고, 사회복지국가 모델, 즉 노사정위원회의 타협 모델도 없다는 점도 우리는 고려해야 한다.


이런 한국과 유럽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계급투표 경향 한 가지 흐름만을 언급하겠다. 알포드 계급투표 지수의 역사적 사례들을 보자. 알포드 계급투표 지수의 역사적 사례들을 보자. 좌파들이 즐겨쓰지는 않더라도 이미 한국의 진보정당이 제도권 안에서 활동하는 한 이 알포드 계급투표 지수는 참고할 만하다.


스웨덴의 경우 알포드 계급투표 지수는 1948년경 50에서 1986년에는 35 전후로 떨어진다. 영국의 경우 1948년 40 전후인데, 1980년대 들어와서는 20으로 하락된다. 서독의 경우 같은 기간 30에서 10으로, 프랑스는 33에서 15로, 미국의 경우는 2차 세계대전 전후로는 45에서 72년 3으로 현격히 떨어졌다가 1980년대는 8~9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소위 진보적인 사회복지국가 북구형(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 등)에서는 계급투표가 아직도 건재하면서 동시에 하락 경향을 보이지만, 미국이나 캐나다는 계급투표 결과가 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없을 정도이다.


이것은 잘 알려졌다시피 노동조합 가입율과 좌파 정당의 유무에서 그 차이가 기인한다. 서유럽에서 알포드 계급지수가 경향적으로 저하하는 이유는, 노사 타협으로 인해서, 계급투쟁의 휘발성이 약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좌파 정당 역시 전통적인 노동자계급 뿐만 아니라 소위 신사회운동 주체들을 정당의 주요한 간부들로 흡입했다는 것을 반영한다.


알포드 계급투표 지수를 한국 상황에 가정적으로 적용해보자. 2007년 대선 71만 표를 분석할 때, 과연 전체 노동자의 몇 퍼센트가 민주노동당을 지지했고, 중산층 몇 퍼센트가 민주노동당을 지지했으며, 그 차이는 몇 퍼센트겠는가?


답은 물론, 북유럽형도 아니고, 미국 캐나다 형도 아닐 것이다. 추측해보건대, 수치상으로는 한국은 미국형에 가까울 수 있다. 물론 90년대 후반 이후, 미국 역시 서비스 영역에서 조합 활동(SEIU)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한국과 미국의 단선적 비교는 정치적으로 별 의미가 없을 수 있다.


단선적이고 환원주의적 계급정치 강조는 무의미하다


정치적 판단으로 이야기를 돌리자. 국민파, 현장파, 중앙파, 실리파 등 정파를 막론하고, 민주노총 지도자들은 한국 노동자들의 계급투표 행위에 대해서 과장해서는 안 된다. 맑스와 사회주의자들이 150년 전에 말한 “노동자계급은 자본주의를 갈아엎을 혁명의 주체이다”라는 명제를 종교적으로 암송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오히려 맑스가 『헤겔 법철학 비판 서문』에서 말한 “가장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피압박을 당하는 사람들이 누구인가?”라는 주제로 옮아가야 하고, 그 억압 주체들과 장치들에 대한 분석, 그리고 문제 해결 집단들의 구체적인 행위 지침을 제시해야 한다.


정치 혁명과 변혁의 주체는 계급분석에 반드시 기초해야 하지만, 계급과 일치하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서 어떠한 특정 계급의 정치적 우월성이나 선차성 관념(제1주력군, 제2주력군, 제1보조군, 제2보조군 등)등은 인간의식을 계급적 존재에 귀속시켜 버리는 결정주의적 사유방식의 잔재이다.


이런 식이라면, 제2인터내셔널이 맹신한 자본주의 붕괴론에 근거한 정치 실천으로 귀결될 확률이 높다. 그리고 이미 여러 나라들에게 실패한 교조적인 좌익 정치 패러다임들이다. 모든 사회 활동에서 계급정치의 싹들을 발견해야 하고, 직접적인 행동과 정치 실험들을 존중해야 한다. 그리고 신 진보정당의 주체로 인입해야 한다.


그렇다면, 계급 기반 정치(class-based politics)에서 가치 기반 정치(value-based politics)로, 구 정치에서 신 정치 주제들로 옮아가자는 것인가?


2008년 한국 정치 현실에서는 이러한 형식적 구별은 별 의미가 없다. 전 세계적으로도 이미 1945~1975년 유럽 황금기 사회복지모델도 신자유주의와 자본축적구조의 변동으로 그 모형 자체가 변모되고 있다.


한국의 경우 2007년 대선에는 계급기반 정치 주제들(경제 성장, 정치 안정, 국가 안보 등)이 소위 신정치 주제들(가치 기반 정치 주제들, 환경, 여성, 인종, 반핵평화 등)을 압도하고 말았다. 그럼 두 가지 다 고려해야 한다는 것, 너무나 당연하다. 한국에서 새로운 진보정당 역시 지난 8년 한국에서 자생적으로 발전되어 온 여러 시민운동 성과들, 신정치의 가치 기반 주제들을 포함해야 한다.


이러한 계급 기반 정치와 가치 기반 정치 결합은 새로운 이야기도 아니다. 역사적으로도 프랑스 사회당의 경우, 정통 맑스주의와 단절을 선언한 이후, 로카르의 사회개혁주의와 미테랑의 민주적 사회주의의 당내 대결에서도 여전히 맑스주의에서 배운 전통적 사회주의적 흐름(정책에서야 사민주의 경향)과 68년 이후 신사회운동의 주제들을 결합했었다. 그게 미테랑과 최근 한국을 방문한 죠스팽의 정치 노선이었다.


독일의 경우도 녹색당과 사민당의 연정정부와 그 실패 사례도, 동일한 연장선상에 있다. 독일에서 녹색 적색 연정이 실패했다고 해서, 우리가 녹적 연대를 하지 말자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왜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가는 진지하게 배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윤리교과서 사회주의자에 그치고 말 것이다.


교과서 사회주의 안 되려면 현실에서 배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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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거리를 기다리는 퀵서비스 노동자들. 대부분의 비정규직에게는 잔업도, 잔업수당도 머나먼 이야기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사회민주당이나 사회주의적 성향 당이 집권한 적이 없다. 그리고 미국식 2당 체제가 한국 정치판을 압도해 온 것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신 진보당은, 당연히 계급 기반 정치와 가치 기반 정치 주제들을 창의적으로, 능동적으로 예민하게 결합시켜야 한다. 최근 한국 타이어 노동자들의 어이없는 죽음을 보더라도 안전, 환경, 노동 문제가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신 진보당 주체들이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에서 간략하게 언급한 알포드 계급투표 지수, 한국 민주노총의 투표 행태, 민주노동당과의 관계 등에서, 유의미한 실천적 결론은 다음과 같다.


신 진보당은, 민주노총 조합 자체가 한국의 가장 억압된 계급 계층, 차별을 가장 많이 받는 사회계급 계층들로부터 정치적 지지를 받지 못한 상황을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또한 비정규직 내부 분화들에 대한 고려와 더불어, 정형화되지 않았지만, 지역, 일반 노조 등과의 직접 연대 행동 조직화에 더 신경을 쏟아야 한다. 왜냐하면 비정규직 노동자의 존재 형태들과 의식수준들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신 진보당은 당연히 계급투표를 독려하고, 그 투표율을 올릴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하지만, 지난 8년 간 민주노동당 민주노총과의 비대칭성은 피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단병호의 진단, 배타적 지지는 정치적으로 의미가 없다는 지적이 옳다. 그리고 노동 부문 할당제는 폐지되어야 한다.


세 번째, 한국에서 계급투표 증가는 오히려 진보정당의 정치 참여 폭의 증대와 비례 관계가 있다. 이는 한국의 정치 주체들의 정치적 경험, 80년대 민주화 운동, 90년대 자생적인 시민운동들, 2000년대 민주노동당 운동들의 활성화가 노동운동 발달의 호조건을 형성할 것이다.


신 진보정당은 프랑스 공산당이 좌파적 성향의 프랑스 노동총동맹(CGT)을 정치적으로 완전히 장악한 1947년 이후에도, 친 소련 노선을 노골화시키고, 변화하는 프랑스 젊은이들의 의식을 따라잡지 못해서 결국에 사회당에 밀리고 말았다는 사실을 배울 필요가 있다. 민주노총과 신 진보당 내지는 사회주의 당)의 아름다운 역할 분담은 당연한 이야기라서 여기서 생략하겠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새로운 진보정당은 더욱 더 구체적으로 한국 노동자의 의식과 생활을 이해하고 분석해야 한다. 정치적 선언이나 당위를 넘어서야 창의적인 노동운동, 실제 지역 행정을 진보적으로 책임질 주체로 발돋움 할 수 있다.


노동자의 해방, 추상적인 이야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 아들 딸 학원 보내기 위해서 정규직 노동자들이 잔업을 하는 게 한국 현실이다. 아들 딸 노동자 되지 말라고, 전문직 자영업자 되어야 한다고 밥상머리에서 매일 이야기하고, 자기 계급을 부정하고 마는 것이 한국적 현실이다.


자식 학원 보내려 잔업하는 정규직, 잔업도 못하는 비정규직


비관을 이야기하고자 함이 아니다. 우리가 진보정당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하루 8시간, 6시간 일해서, 그 노동이 사회공동체의 유지 발전에 기여한다면, 그 사람은 한국의 정치적 시민으로 동등한 자격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이 냉혹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자식들 학원비를 위해서 잔업도 못하고, 정규직 노동자들은 그나마 장시간 노동이라도 할 수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치적 시민 대열에서 탈락 낙오되고 있다는 것이다.


신 진보당, 한국에서 노동자도 다 똑 같은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 냉혹한, 살벌한, 냉정한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계급 기반 정치와 가치 기반 정치를 결합한다고 선언하든, 푸른 진보, 역동적 진보, 아름다운 역할 분담을 이야기하든 다 좋다. 그러나, 신 진보당, 보다 더 고개를 숙여 한국 현실을 살아가는 노동자의 삶의 공간들을 확대시켜 들여다 봐야 한다.


신 진보를 노래하는 분들이여, “난 너에게, 넌 나에게” 마음을 열어라. 그대들이 마음의 대문을 여는 만큼 새로운 진보의 따뜻한 바람은 얼어붙은 진보의 마당을 녹일 것이다. 신 진보당, 더 나눠야 한다. 신 진보당, 손을 더 내 밀어야 한다. 특히 언론에 집중조명을 받고 있는 심상정 노회찬의원은 그 조명의 51% 가량을 신 진보정당을 노래하는 이들에게 비춰줘야 할 때이다.






* 선거 데이타 자료들: 




독일 사민당 (에스.페.데)이 총선에서 받은 득표율 변화, 1871년부터 1933년까지 







(자유당 지지자들이 '노동당'으로 돌아선 비율: 1924년이 가장 높고, 대공황 후 1931년은 조금 줄었다가 1935년에 다시 늘어났다)







1906년부터 1935년 선거에서 노동 계열이 받은 득표율 변화 1922년에 최초로 30%에 진입했다.






(유럽 국가들의 '사회민주주의 계열 정당들'이 총선에서 받은 득표율 변화 1870년대 출발할 때는 10% 미만이었으나 1920년대 후반 이후 평균적으로 30% 득표율을 유지하고 있다. 다당제 multiparty system 에서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보수당, Liberal 정당, 정통적 공산당, 기독교 계열 정당과 경쟁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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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 복지국가>조건 (1) 전쟁발발 (2) 지금보다 10배 정치투쟁 폭발해야

 2011.01.20 02:15:34

원시 https://www.newjinbo.org/xe/964150


아래 글에서 <보편적 복지국가 regime ->  국가 체제를 일컫음> 문제를 언급하면서,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잘못된 <보편적 복지국가> 용어 사용에 대해서, 그 정치전략의 문제점에 대해서 주장했다. 요약하면 비교 정치/비교 정책학자 다이앤 세인즈베리가 서유럽 복지국가 모델을 비교하고자 분석적으로 분류한 <잔여적 모델>과 <보편적 모델>을, 한국에서는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오용하고, 이를 정치동맹까지 승격 승화시킴으로써, 한국의 좌파와 진보정당에게는 공허한 정치전략으로 될 가능성이 높다.

1. 형용사 <보편적> 이라는 말이 무엇인가? - 아직도 실은 사람마다 다 다르게 쓰는게 <보편적>이라는 말이다.

보편적 복지 프로그램이란, 자산 조사 (means-test 테스트)을 하지 않고, 또 (어느 정도) 필요, 노동여부에 따라 규정되지 않는다. 그 사회, 공동체, 국가의 시민이면 “누구나 다”에 혜택이 돌아가는 프로그램을 지칭한다. 그러니까 "대한민국 시민이면 누구나 다 복지프로그램 수혜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보편적 복지> 주제 영역은,  의료혜택,  공공교육, 가족 수당, 노인 기금(노후 안전기금; 65세이상 노인이면 누구나 받는 것: 기초노령 9만원인가요?) , 실업보험, 노동자 보상, 우체국 서비스, 무료 대중교통 이용, 도로 눈 비 치우기 등이다.

이러한 영역들이 지금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오건호 연구원이 주장하는 "사회적 임금" (시장임금이 아닌) 주제에 해당한다. 스웨덴의 경우는 그 재원 조달방식이 "비례 (누진) proportional taxation" 이고, 그 수혜 혜택은 중간층에 맞춰져 있다.  

그렇다면,  생각해야 할 문제가 도출된다.  <보편적 universal> 이라는 형용사를, 과거 사회주의자들이 외친 노동해방 <사회주의> 혹은 정치적 유토피아로 승격시키자는 것인가? 

헛논쟁이나 주장이 있다. <1> 사회주의만이 <보편적 복지>와 같은 것을 실현할 수다. 그렇지 않다. 
http://www.newjinbo.org/xe/958791 셈수호르/ 복지국가는 보수주의,자유주의,사민주의도 다 실현가능합니다. 

<2>  <보편적 복지> 모델과 한국의 <정치 동맹>을 혼동하고, <보편적 >이라는 형용사로, 민주당과 진보정당의 정치 동맹을 주장하는 경우이다. 

<2>번과 같은 주장은, 한국 진보정당에게 실제로 필요한 정치적 메시지를 주지 못하거나 왜곡시킬 가능성이 농후하다. 일종의 정치적 설레발 오프 사이드이다. (100번을 찬스를 잡아도, 한 골도 못 넣을 것이다. 왜? 다 규칙위반이니까) 안타깝다. 

왜 제목을 <보편적 복지국가>의 조건은 (1) 전쟁 발발이라고 썼는가? 한국 진보정당이나 좌파가, 서유럽이나 캐나다와 같은 복지국가 체제에서 유의미한 정치적 정책들, 정치전략들을 주체적으로 채택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맥락 (정치적 주체들에 대한 연구를 포함한)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과연, 20세기에 서유럽에서, 그 제국주의자들 국가에서, 1차, 2차 세계대전이 없었다면, <리버벌 - 케인지안
복지 정책들>을 보수당이나 자유당이 수용했을 것인가? 1,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인들에게, 사회내부 갈등요인 제거 (사회계급격차)에 대한 합의가 절실하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1947년 6월 5일: 미국은 마샬 플랜에 기초해서, 유럽 국가들에 130억 달러를 지원한다. 이는 전후 유럽국가들의 경제적 부흥에 크게 기여했다. 이는 사회복지체제의 기초가 되었다. 마샬 플랜과 더불어, NATO 북대서양 조약기구로 인해서 유럽국가들은 소련등 공산주의 국가와의 경쟁에서, 미국이 준 원조금 25억 달러를 20년간 받을 수 있었다. NATO 창설로 유럽국가들은 국방예산의 원조를 미국으로부터 받을 수 있었다. ) 

 또한 서유럽 국가들에서 1875년부터 1945년 사이 탄생한 사회주의, 마르크스주의 운동, 그리고 사민주의 정당의 탄생, 노동조합의 합법화, 그 결과로 계급타협이라는 사회적 조건이 없었다면, <복지 정책들과 체제>가 들어섰겠는가? 그렇지 않다는 것은 누구다 다 알지 않는가 이제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보자. 

2. 우리는 특정 국가의 복지 모델이나 정책들, 혹은 <보편적 = 선>, <잔여적 = 악> 이러한 이분법을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 정책을 참고하려고 한다면, 각 특정 국가들의 정책들을 구체적으로 하나씩 떼어서 비교 연구를 해야 한다. 스웨덴 단독 모델 의미없다. 또 핀란드 교육이 좋다하여 그거 단독으로 가져다 쓸 수 없다. 이런 단순 무식한 방법은 그만 써야 한다. 

2002년 민노당 시절에 <세금의 정치학> 제안하면서 언급했던,  에스핑 안데르센 (Esping-Andersen)의 사회복지 국가모델을 보더라도, 최소한 4가지, 5가지로 분류된다. 특정 국가 모델을 언급하는 것은 큰 정치적 의미가 없다.   우리에게 유의미한 정책들이 있다면, 보다 더 많은 국가들의 정책들을 샅샅이 공부하는 게 더 낫다. 그리고 왜 다른 정책들이 나오게 되었는지, 계급투쟁, 정당간 경쟁, 종교, 문화, 스포츠 등을 연구해보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경제정책 하나 딸랑 내세우면, 복지국가 체제가 되는가? 축구 11명 하는데, 복싱 선수 나온 격이다. 

(1) 범주: 보수적 사회복지 국가모델(오스트리아, 벨기에,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2) 사회민주주의적 복지국가 모델(덴마크, 핀란드, 네덜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3) 자유주의적 복지국가 모델(오스트랄리아, 캐나다, 일본, 스위스, 미국, 
(4) 나머지 (아이어랜드, 뉴질랜드, 영국) * 다른 분류법도 있음)

3. 최소한 중도파, 자유주의 정당이, 노동자 계급의 정치적 요구와 타협해야 한다.

위 복지국가 모델에서, 유럽의 경우: 공통점 =>  중도파 자유주의 정당이나 카톨릭 정당들이 유럽의회주의 내에서 산업노동자들의 정치적 요구와 타협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핵심이 뭐냐? <노. 사.정 위원회>에서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수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어느 정당에서 <노.사.정 위원회>의 정상화와, 그 장기 플랜을 가지고 정치적 구호로 외치고 있는가?


4. 서유럽 국가들의 복지 모델이 나오게된 정치적 필요조건은,  1920년대 후반 1930년대 대공황과 더불어, 사회민주주의 정부가 하나의 사회 주흐름으로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우리 한국 좌파에게 정치적으로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사회 복지 정책>을 지방 정부 차원에서라도 우리가 직접 실천해보지 않고서, 다시 말해서 우리 당의 정책적 체험을 시민들에게 제공해주지 않고서, <정책>이라는 말로만 하는 것은 무게가 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민들도, <한나라당 복지 70%>짜리를 선택할 수도 있고, 민주당의 <복지: 아직 실체가 묘연함: 당내 내부 논쟁도 정리가 안된 상태임>를 선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5.   특히 유럽에서는 사회주의 경향과 카톨릭등 기독교 중도파들의 연맹이 두드러져 사회안전망 구축에 대한 합의가 강력하게 형성되었다. 

우리가 하나 고려해야할 사항은 한국시민사회의 특징과 종교영역이다.  시민사회와 종교 영역에 대해서, 지금 한국 기독교처럼 양분화되어 있고, 또 보수종단의 노골적인 친미-친재벌-친-보수당 세력이 있는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이다. 이러한 시민사회의 개혁없이는, 종교 개혁없이는 <복지모델>도 사회문화 현상으로 사람들 의식속으로 들어가기는 힘들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6.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사회주의와 대별되는) 정부 집권의 배경에는, 노동운동과 강력한 노조활동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사회주의건, 개량적 사민주의건, 코포라티즘이건, 노동운동과 노동조합이 발달될 필요성)

한국에서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오건호 연구원이 말한 <사회임금> 투쟁을 더 확대해야 한다, 그래야 노동운동도 살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 이상 넘어서 <민주당>과의 정치동맹 주장으로 이어질 필요는 없다. 

7. <복지 모델>, 앞으로 수십만명이 될 소위 다문화 가족 구성원들, 아시아 이주 노동자들 <복지 문제>에 대해서, 실질적인 대책이 없으면 안된다. 한국의 진보정당들, 지금 어디에 신경을 써야 하는가? <보편적 복지> <복지>만 외칠 것이 아니라, 실지로 이 다문화 가족들, 이주 노동자들을 정치적으로 포용하고 조직화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작업은 하는가? 

위에서 설명한 것은, 다 <혁명>도, 사회주의 노선도 아니다. 비교 정치나 비교 정책학에서 다루는 내용들일 뿐이다. 

우리가알 수 있는 것은, <복지 정책들>에 해당하는 것들도, 아래로부터 정치 투쟁하지 않으면 결코 사회적 합의로, 계급타협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할 일은 <이것이 복지 정책이다> <이것이 보편적인 복지 국가이다>라고 위에서 아래로 "관료주의적이고 행정가적인 케인지안들"처럼, 마치 청와대 경제평론가처럼 행세하는 데 있지 아니하다. 

<복지제도>라는 제도가 어떻게 가능한지, 어떻게 누가 실천할 수 있는지, 그 사회적 물적 조건이 무엇인가를 먼저 주체적으로 형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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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파의 <정치의 선차성? the primacy of politics> 단상


2011.02.09 17:11:30

원시https://www.newjinbo.org/xe/994047


2011년에 왜 우리는 미국 대학에서 <비교정치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쓴 <유럽 정당 역사>를 읽어야 하는가? 

왜 1980년대 한국 운동권은 NL이건 CA, PD건, ND건, SS건, 소련 사회과학 아카데미나, 평양 정부에서 "검인정 교과서"로 만들어낸 <변증법적 유물론>, <사적 유물론>, <과학적 사회주의> < 정치경제학>을 읽었어야 하는가? 박정희시절에 만들어진 검인정 <반공 방첩 국민윤리교과서>와 정반대 형식을 띠고 있는 검인정 교과서들이다. 

마르크스는 정작에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단어를 거의 쓰지도 않았다. 그런데다 <변증법> 번역도 오해의 소지가 더 많다.  무슨 무슨 <법 law >그래서, 우리가 따라야 하는 규칙, 필연적 불변의 진리 이런 뉘앙스까지 있지 아니한가? 80년대 말, 소련, 동유럽 체제가 흔들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독일 등 유럽에서 유학하고 있었던 한국 지식인들이 위 소련, 동독 사회과학 아카데미에서 나온 4종 세트를 번역했다. 왜 그랬나? 한국 운동권들에게 팔린다는 이유 때문에(?) 혹은 역사적 사명감과 80년 광주의 부채 때문에(?), 혹은 요새 막스 베버주의자들의 부활과 더불어 엄청나게 깨지고 있는 "절대적 신념" 때문에? 

마르크스는 <자본: 정치경제학 비판> 1권에서 "나의 변증적 방법", 즉 연구-조사, 그리고 서술의 방법 이런 단어는 쓴다. 그러나 그걸 기계적이고 도식적으로 <윤리 교과서> <종교학 교과서>로 만들어버린 사람들이 여럿 있는데, 그 중에 한 명이 조세프 스탈린이다. (*이런 마르크스 이야기는 나중에 더 하기로 하자)

우리 <진보신당> 당원들은 워낙 <명품> <브랜드> <정통> 혹은 명망있는 "청와대" 이런 네임밸류에 익숙해져서, 마크르스는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구제역으로 파묻힌 돼지, 송아지 취급도 하거나? (연민, 무관심, 체념 등) 혹은 마르크스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당원들에게 "너 좌파지? 너 절대적인 신념 정치에 가득차 있는 무능력한 정치질도 못하는 진보지?" 욕설이나 해대는 게 지적 문화이다. 

누굴 탓해서 뭐할 것인가?  이 69억이 살아가는 이 어마어마한 복잡한 시대에, 자식들 먹여살릴 돈이 없어서, 자기 아버지가 남긴 유산을 좀 받아보려는 마음으로, 네덜란드에 자기 어머니와 외삼촌을 찾아갔다가, 퇴짜맞고 어머니와 외삼촌에 대한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마르크스. 여튼 이런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이 69억 지구인들의 삶을 어떻게 알겠는가? 마르크스에게 그도 모르는 것을 물어볼 필요도 없는 것이다. 
 

본론으로 들어와서, 

 <정치가 가장 중요하다 the primacy of politics>라는 책이 한국에 번역된 모양이다. 저자 셰리 버먼은 65년생으로 비교정치학을 전공하고 유럽정당사와 이데올로기를 주로 가르친다.
 
진보신당에도 <복지파>들이 사민주의 책이라고 해서, 제목부터 잘못 번역된 <정치의 선차성>이라는 책이 써클 내부에서 유행인 것 같다.
 
셰리 버먼 Sheri Berman 의 전제 자체도 문제가 많다. 이 녀교수가 말하는 주제는 이미 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다. 소위 <경제 결정론 economic determinism>에 대한 비판, 좌파로 좁히면 제 2 인터내셔널의 <경제환원주의적 사고: 자본주의 자동붕괴론>에 대한 비판에 기초하고 있다. 이것은 굳이 셰리 버먼이 아니더라도, 좌파 내부에서도, 또 사회과학.인문학 기초교양이 있는 사람들은 다 비판이 가능하다.
 
두번째, 셰리 버먼이 주장하는 <고전적 자유주의>와 <정통교조적 마르크스주의: 카우츠키가 만든 교과서류를 지칭함>가 모두다 <경제 결정론>, 즉 경제가 정치보다 더 중요하다, 이런 주장이었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두가지이다. 엄밀하게 따지면, <고전적 자유주의>는 서유럽의 정치사를 보면, 실제 정치에서는 "국가 (정부, 군대)"가 제국주의자로서 역할을 하던 시절이다. 마치 서유럽 자유주의자들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태리 등)이나 자본가들은 그 국가와 독립된 것처럼 서술하는 것은 오류이다. 이런 프레임 자체 (국가와 경제를 분리하는 것)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두번째, 아무리 레닌이 죽은 개가 되었다하지만, 레닌 역시 이러한 <경제결정론>적 사고를 비판하지 않았는가? 굳이 사민주의자들의 흐름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이미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것도 까먹지 말았으면 한다.
 
그리고, 한국의 사민주의를 "이념" 모델로 말로 안되게 수입하는 사람들이 알아야할 사실은, 서유럽 북미 등에서 관찰되는 사민주의는, 역사적으로 자본주의 태동과 "제국주의"의 탄생, 세계 1차, 2차 세계대전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독일에서 군부와 사민주의자들 <동맹>이 로자 룩셈부르크와 칼 리프크네히트를,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유관순 누나를 죽이던 그 해 죽였다는 이런 역사적 사실은 차치하자. 셰리 버먼의 책을 통해서, 논문들을 통해서, 정보나 자료, 셰리의 주전공이 유럽 정당사이니까, 비교 정치학의 관점에서 접근하면 될 일이다. 이걸 무슨 대단한 <정치적 발견>인양 할 필요가 있는가?
 
그리고 학적으로 따지면 셰리 버먼의 마르크스에 대한 이해 (저술이나 연구방법)는 깊지 아니하다. 북미 비교정치학자들의 이론적 깊이가 대부분 그걸 요구하지도 않는다. 셰리 버먼의 책도 그 예외는 아니다. 



----------------- 우선 여기까지 적고 ----------, 모 신문사 기자와 쪽글대화

모씨: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이념모델로서의 사민주의'를 찾으려고 해봤어요. 대학 때 독일이데올로기, 경철수고, 선언 등등 읽듯이 한번 공부해볼까 했죠. 

여기 도서관에 가서 가장 유명한 스웨덴 사민주의자들 이름 넣고 검색을 해봤죠. 근데 자료가 너무 없어요. 아직은 가설 단계인데, 적어도 한국의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학습'하던 방식과 사민주의가 유통되는 방식은 다른 것 같습니다. (-> 사민당 사람들 만나서 알아볼 향후 과제)...

원시 사민주의라는 말 자체는 크게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각 나라들별로 다 다르니까요. 유럽에 언어가 250개가 넘고, 또 종교와 정당과의 관계도 우리나라와 다르고...캐나다의 경우, 각 주마다 다르지만, 온타리오주는 보수당이 한 40년 독재하면서 top 10안에 드는 정도의 복지모델을 만들어놨음 2차대전이후 - 1990년까지. 정책만 놓고 보면 보수당과 자유당이 큰 차이가 없을 지경이었으니까요. 근데 이게 나라별로 다 다르니까요.


원시 이념모델, 아 그거 좋은 지적이네요. 학생운동권의 학습교재에 대해서는 나중에 한번 더 이야기할게요. 소련에서 나온 변유, 사유 읽어보고 이것은 한국 고딩에서 배운 검정-국민윤리 교과서의다른 버전이구나 해서다 불태워버리고...그냥 단행본을 읽음. 헤겔 마르크스 책들은 다 역사적인 맥락이 있고, 논투 구조로 되어 있어서 생각하는데 도움이 많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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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걸 무슨 대단한 <정치적 발견>인양 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원시님 주장에 대한 제 생각입니다조회 수 257 추천 수 0 / 0 2011.02.11 15:39:44
    가슴아파도https://www.newjinbo.org/xe/996640

    <정치가 우선한다>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셰리 버먼의 책을 읽은 독자로서 "이걸 무슨 대단한 <정치적 발견>인양 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원시님 주장에 대한 제 생각입니다.



    진보신당의 당원들 중 40대가 넘는 분들, 광주세대의 대부분은 스탈린주의자들입니다. 정작 본인은 알지 못한 채 말입니다. 그것은 원시님 말씀처럼 스탈린 시대에 만든 "소련, 동독 사회과학 아카데미에서 나온 4종 세트를 번역"한 책들로 공부를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사상의식을 처음으로 세례 한 것이 스탈린에 의해 각색된 ML주의였습니다. 사민주의자를 욕처럼 쓰던 시대에 학습을 했고 그 영향은 사민주의에 대해서 공부하지 않게 했습니다. 카우츠키나 베른슈타인을 떠올리면 ‘배신자’나 ‘수정주의자’라는 접두어가 자연스럽게 입에 붙었을 뿐 그들이 마르크스의 주장에 가진 문제의식을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시대였습니다. 공부에 게으른 개인들의 탓이 크겠으나 첫 세례의 영향력은 상상할 수 없이 강력합니다. 고백하자면 저 역시 그렇습니다. 그러나 셰리 버먼의 <정치가 우선한다>를 보면서 지금의 스웨덴을 설계하고 만들었던 사람들도 우리와 꼭 같은 고민을 안고 살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마르크스의 후계자임을 자임했고 자신들의 정치활동이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교의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파에게 <국민>의 마음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맑스주의 두 개의 기둥, 사적유물론과 계급투쟁을 버리고 <민족>을 우파보다 먼저 선점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우파에게서<국민의집>을 빼앗아오기에 이릅니다.

    특히 주목한 것은 닐스 칼레비의 <소유권>에 대한 분석입니다.
    닐스 칼레비는 <소유권>을 분리할 수 있는 “여러 권리가 묶여있는 하나의 다발로”규정하고 “사회적.경제적 자원에 대한 자본가들의 통제를 제한하는 모든 개혁은 사회주의 사회로 가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요컨대 “개혁은 단순히 사회 변화를 준비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것 자체가 사회의 변화”라고 제시했던 것입니다. 칼레비의 주장은 사민당의 당원들에게 “해방감”을 느끼게 했습니다. 저도 “해방감‘을 느꼈습니다.


    91년 신노선 이후로 우리는 사민주의자입니다. 그러나 커밍아웃 없는 변신이었습니다.
    20년이 흐른 지금에 까지 우리는 사민주의의 몸에 스탈린주의라는 외투를 껴입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정체성은 이미 20년 전<아웃팅>당했으나 정작 스스로는<커밍아웃>하지 못하고 왜곡된 채로 지내온 세월이 너무 깁니다. 기괴하지 않습니까?

    우리들이 제기한 이슈가 법과 제도의 개선으로 현상되지 않는다면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소위 소금정당으로 남는 길을 택한다면 이슈의 생산만이 가능한 정당으로 남겠지만 그런 건 정당의 형태가 아니어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복지문제를 이슈화하고 의제를 선점하고 있는 곳은<복지국가 소사이어티>아닙니까. 우파들의 재집권을 결사적으로 막고자 하는 자유주의 세력의 위기감이 팽배한 요즘입니다. 진보신당에게 강제된 기회이기도 위기이기도 하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지역에서 사는 당원이고 제 주변의 당원들은 20여년전의 셰례에서 아직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때에 <정치가 우선 한다>라는 책은 “학적으로 따지면 셰리 버먼의 마르크스에 대한 이해 (저술이나 연구방법)는 깊지 아니하다”라는 원시님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원시님 처럼 마르크스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은 우리들에게는 반드시 ‘필독’하고 고민해야 할 책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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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시
    2011.02.11 17:13:03

    가슴아파도/ 님, 예전에 남긴 글인데, 이렇게 글로 답변을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여러가지 토론주제들이 많이 써져 있군요.

    1. <정치가 가장 중요하다 the primacy of politics> 에서 논쟁거리가 되는 것은, 그리고 또 앞으로도 생각해볼 것은,
    1) 경제가 정치를 규정하거나 결정할 때도 있고 -> 97년 IMF 외환 위기의경우, 위기 동인들
    2) 그런데 꼭 경제가 정치를 규정하지 않을 때도 있고, 그런 사례들도 있고, -> 97년 IMF 위기시, 미국 행정부 클린턴의 지시와 IMF 총재의 명령이 한국정부에 그대로 전달되는 경우.

    경제와 정치 관계, 또 경제와 다른 문화, 스포츠, 법등과의 관계들에 대한 "규정, 결정, 선차성" 문제는 여전히 남습니다.

    2. 제가 님의 견해에, 위글에서 하시고자 하는 이야기에 공감하는 것은, "20년 전 공부한 책들로부터, 생각하는 법으로부터 우리 당원들, 혹은 한국의 진보적인 좌파나, 사람들이 자유롭지 못하다", 이 부분입니다. 제가 누굴 탓하고 있을 시국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언젠가 다시 조금 언급하겠지만, 이미 20년 전에도 소련-중국-북한교과서에 대한 비판은 했고, 커리큘럼도 폐기했습니다. 그러나, 운동권 자체가 이미 조직화되었고, 정파별로 굳건한 성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정파 조직별로 다 다를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한국은 91년 이후, 거의 1997년 IMF 위기가 터져 나올 때까지, 지적인 암흑기를 거치게 됩니다. 지금도 정치 정당은 있지만, 실천을 정리하고 결정체로 남길 "철학"이나 "사상", 그리고 "정치노선"에 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뒤떨어져 있습니다. 이 부분은, 우리가 앞으로 채워야할 부분입니다. 늦었더라도 해야죠.

    3. 사회민주주의에 대해서는, 전 마르크스주의자도 사민주의자도 아닙니다. ---- 어떠 어떠한 방법론을 차용할 수는 있지만, 특정 인물의 주장이나 방법론을 따를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한국 현실 reality"을 진단하는 "인식론"이나, 사회과학 방법론은 우리 스스로 만들어야 합니다.

    아울러, 2002년 이후, 계속해서 반복해서 하는 이야기지만, 전 특정 국가의 모델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위 세리 버먼의 책도 당연히 보면 좋죠. 그리고, 하나의 참고 도서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나라 국가 사회 공동체 체제들에 대해서, 많이 공부하면 할수록 좋다는 게 제 입장이고 제가 해온 방식입니다.

    세리 버먼은 <비교정치>, 그 중에서도 유럽 정당사가 주 전공입니다. 그런데, 세리 버먼의 책이나 연구는 그냥 참고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왜 스웨덴만 참고해야 합니까? 그럴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정책연구들은 가급적 많은 나라들 많은 사례들을 수집한다 + 한국의 좌파정당, 진보정당의 발전 프로그램과 연결시킨다 + 한국의 정치적 지형과 시민,노동자들의 정치적 요구를 고려한다. 등등, 해야할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4. 정책 입안에서는 사민주의 정당이나 사민주의 정책들 (1945년 - 1975년 서구 유럽 사민주의 국가에서 소위 혼합경제 mixed economy, 코포라티즘 체제에서 나온 산물들)에 대해서 당연히 참고하고 있습니다. 이건 이미 2000년 이후 민노당 시절부터 지금 진보신당까지 해오던 작업이고요. 그래서 특별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책을 참고한다고 해서 <우리가 사민주의자이다>라고 규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또 다른 나라 정책들이 그대로 한국에 적용되는 그런 시절도 아니며, 그렇게 될 수도 없습니다.
    정치적 실천을 해 나가는데, 참고 자료가 된다는 것이고, 우리들의 정치적 상상력을 키우는데 도움이 되는 연구들, 특정 하나의 국가의 사례가 아니라, 여러나라 법률과 정책들을 학습해야 합니다.

    5. 진보정당의 주체형성과, <복지국가 소사이어티>의 정책 생산과는 다른 차원입니다.
    진보정당의 실천 기획은 더 포괄적입니다. <복지국가 소사이어티> 연구야 의미가 당연히 있겠죠. 그러나 그런 정책연구는 정당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닙니다. 아울러 제가 케인지안에 대해서 2가지로 나눠서 설명을 드린 적이 있는데요, 좌파가 아니더라도, 케인지안이나 포스트-케인지안은 한국에서 진보정당활동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케인지안들도 1개만 있는 게 아닙니다. 행정-관료-테크노크라트 케인지안이 있고, 또 사회적 케인지안도 있습니다. 여러가지 다양한 흐름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책>을 공부하고, 남의 나라 경험들을 가져올 때는, 반드시 <역사적인 고민>이 있어야 합니다.

    6. 우리 스스로 한국 도시들, 지역, 사람들, 자본주의, 대기업, 은행 등에 대해서 연구하고 조사하고, 정치적 기획들을 만들어 내는 게 또한 중요한 일입니다. 이건 우리 정당에서 해야합니다. 이러한 정치적 실천 없이는, <정책>만 남의 나라에서 받아들인다고 해서 <정책 정당>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마르크스 문제는 다음에 기회가 되는대로 더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앞으로 많은 주장, 토론 해주시기 바랍니다.

복지파의 <정치의 선차성? the primacy of politics> 단상


 2011.02.09 17:11:30

원시 https://www.newjinbo.org/xe/994047


2011년에 왜 우리는 미국 대학에서 <비교정치학>을 가르치는  어떤 여교수가 쓴 <유럽 정당 역사>를 읽어야 하는가? 

왜 1980년대 한국 운동권은 NL이건 CA, PD건, ND건, SS건, 소련 사회과학 아카데미나, 평양 정부에서 "검인정 교과서"로 만들어낸 <변증법적 유물론>, <사적 유물론>, <과학적 사회주의> < 정치경제학>을 읽었어야 하는가? 박정희시절에 만들어진 검인정 <반공 방첩 국민윤리교과서>와 정반대 형식을 띠고 있는 검인정 교과서들이다. 

마르크스는 정작에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단어를 거의 쓰지도 않았다. 그런데다 <변증법> 번역도 오해의 소지가 더 많다.  무슨 무슨 <법 law >그래서, 우리가 따라야 하는 규칙, 필연적 불변의 진리 이런 뉘앙스까지 있지 아니한가? 80년대 말, 소련, 동유럽 체제가 흔들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독일 등 유럽에서 유학하고 있었던 한국 지식인들이 위 소련, 동독 사회과학 아카데미에서 나온 4종 세트를 번역했다. 왜 그랬나? 한국 운동권들에게 팔린다는 이유 때문에(?) 혹은 역사적 사명감과 80년 광주의 부채 때문에(?), 혹은 요새 막스 베버주의자들의 부활과 더불어 엄청나게 깨지고 있는 "절대적 신념" 때문에? 

마르크스는 <자본: 정치경제학 비판> 1권에서 "나의 변증적 방법", 즉 연구-조사, 그리고 서술의 방법 이런 단어는 쓴다. 그러나 그걸 기계적이고 도식적으로 <윤리 교과서> <종교학 교과서>로 만들어버린 사람들이 여럿 있는데, 그 중에 한 명이 조세프 스탈린이다. (*이런 마르크스 이야기는 나중에 더 하기로 하자)

우리 <진보신당> 당원들은 워낙 <명품> <브랜드> <정통> 혹은 명망있는 "청와대" 이런 네임밸류에 익숙해져서, 마크르스는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구제역으로 파묻힌 돼지, 송아지 취급도 하거나? (연민, 무관심, 체념 등) 혹은 마르크스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당원들에게 "너 좌파지? 너 절대적인 신념 정치에 가득차 있는 무능력한 정치질도 못하는 진보지?" 욕설이나 해대는 게 지적 문화이다. 

누굴 탓해서 뭐할 것인가?  이 69억이 살아가는 이 어마어마한 복잡한 시대에, 자식들 먹여살릴 돈이 없어서, 자기 아버지가 남긴 유산을 좀 받아보려는 마음으로, 네덜란드에 자기 어머니와 외삼촌을 찾아갔다가, 퇴짜맞고 어머니와 외삼촌에 대한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마르크스. 여튼 이런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이 69억 지구인들의 삶을 어떻게 알겠는가? 마르크스에게 그도 모르는 것을 물어볼 필요도 없는 것이다. 
 

본론으로 들어와서, 

 <정치가 가장 중요하다 the primacy of politics>라는 책이 한국에 번역된 모양이다. 저자 셰리 버먼은 65년생으로 비교정치학을 전공하고 유럽정당사와 이데올로기를 주로 가르친다.
 
진보신당에도 <복지파>들이 사민주의 책이라고 해서, 제목부터 잘못 번역된 <정치의 선차성>이라는 책이 써클 내부에서 유행인 것 같다.
 
셰리 버먼 Sheri Berman 의 전제 자체도 문제가 많다. 이 녀교수가 말하는 주제는 이미 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다. 소위 <경제 결정론 economic determinism>에 대한 비판, 좌파로 좁히면 제 2 인터내셔널의 <경제환원주의적 사고: 자본주의 자동붕괴론>에 대한 비판에 기초하고 있다. 이것은 굳이 셰리 버먼이 아니더라도, 좌파 내부에서도, 또 사회과학.인문학 기초교양이 있는 사람들은 다 비판이 가능하다.
 
두번째, 셰리 버먼이 주장하는 <고전적 자유주의>와 <정통교조적 마르크스주의: 카우츠키가 만든 교과서류를 지칭함>가 모두다 <경제 결정론>, 즉 경제가 정치보다 더 중요하다, 이런 주장이었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두가지이다. 엄밀하게 따지면, <고전적 자유주의>는 서유럽의 정치사를 보면, 실제 정치에서는 "국가 (정부, 군대)"가 제국주의자로서 역할을 하던 시절이다. 마치 서유럽 자유주의자들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태리 등)이나 자본가들은 그 국가와 독립된 것처럼 서술하는 것은 오류이다. 이런 프레임 자체 (국가와 경제를 분리하는 것)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두번째, 아무리 레닌이 죽은 개가 되었다하지만, 레닌 역시 이러한 <경제결정론>적 사고를 비판하지 않았는가? 굳이 사민주의자들의 흐름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이미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것도 까먹지 말았으면 한다.
 
그리고, 한국의 사민주의를 "이념" 모델로 말로 안되게 수입하는 사람들이 알아야할 사실은, 서유럽 북미 등에서 관찰되는 사민주의는, 역사적으로 자본주의 태동과 "제국주의"의 탄생, 세계 1차, 2차 세계대전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독일에서 군부와 사민주의자들 <동맹>이 로자 룩셈부르크와 칼 리프크네히트를,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유관순 누나를 죽이던 그 해 죽였다는 이런 역사적 사실은 차치하자. 셰리 버먼의 책을 통해서, 논문들을 통해서, 정보나 자료, 셰리의 주전공이 유럽 정당사이니까, 비교 정치학의 관점에서 접근하면 될 일이다. 이걸 무슨 대단한 <정치적 발견>인양 할 필요가 있는가?
 
그리고 학적으로 따지면 셰리 버먼의 마르크스에 대한 이해 (저술이나 연구방법)는 깊지 아니하다. 북미 비교정치학자들의 이론적 깊이가 대부분 그걸 요구하지도 않는다. 셰리 버먼의 책도 그 예외는 아니다. 




----------------- 우선 여기까지 적고 ----------, 모 신문사 기자와 쪽글대화

모씨: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이념모델로서의 사민주의'를 찾으려고 해봤어요. 대학 때 독일이데올로기, 경철수고, 선언 등등 읽듯이 한번 공부해볼까 했죠. 

여기 도서관에 가서 가장 유명한 스웨덴 사민주의자들 이름 넣고 검색을 해봤죠. 근데 자료가 너무 없어요. 아직은 가설 단계인데, 적어도 한국의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학습'하던 방식과 사민주의가 유통되는 방식은 다른 것 같습니다. (-> 사민당 사람들 만나서 알아볼 향후 과제)...

원시 사민주의라는 말 자체는 크게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각 나라들별로 다 다르니까요. 유럽에 언어가 250개가 넘고, 또 종교와 정당과의 관계도 우리나라와 다르고...캐나다의 경우, 각 주마다 다르지만, 온타리오주는 보수당이 한 40년 독재하면서 top 10안에 드는 정도의 복지모델을 만들어놨음 2차대전이후 - 1990년까지. 정책만 놓고 보면 보수당과 자유당이 큰 차이가 없을 지경이었으니까요. 근데 이게 나라별로 다 다르니까요.


원시 이념모델, 아 그거 좋은 지적이네요. 학생운동권의 학습교재에 대해서는 나중에 한번 더 이야기할게요. 소련에서 나온 변유, 사유 읽어보고 이것은 한국 고딩에서 배운 검정-국민윤리 교과서의다른 버전이구나 해서다 불태워버리고...그냥 단행본을 읽음. 헤겔 마르크스 책들은 다 역사적인 맥락이 있고, 논투 구조로 되어 있어서 생각하는데 도움이 많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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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의원들께 (2)] 통합의 맹점: 4월 총선 낙선자들에게 부활은 없다

 2011.09.04 14:15:12

원시 http://www.newjinbo.org/xe/1820880

3.27 당대회, 5.31합의서, 6.26당대회, 8.28 합의문이 말하지 않은 것, 그리고 4월 총선 낙선자들


그동안 글들에서는 <독자> - <통합> 논의틀이 잘못되었다고 비판했다. 3.27 당대회, 5.31 합의문, 6.26 당대회, 8.28 합의문, 정치적 의미도 동시에 한계도 너무나 분명했다. 


그러나 한 가지가, 아주 중요한 한 가지가 빠졌다. 그것은 통합당이 만들었다고 가정했을 때, 또 이런 <독자>-<통합>틀에 근거한, 새 정당 건설이 되었을 경우, 2011년 4월 총선에서 낙선된 정치 그룹들은, 새 통합당에서 계파정치 사다리에서 완전히 미끄러져 나갈 것이다. 


2007년 권영길 민노당 후보 패배 이후, 2008년 진보신당, 민주노동당, 사회당 등의 리더쉽은 거의 계파정치화되었다. 거칠게 말하면, 리틀 김영삼 YS 상도동계, 리틀 김대중 동교동계가 되었다. 내부 혁신의 기회를 다들 놓쳤다. 2008년 촛불 항쟁시에도 당게시판에서도 문제제기를 하고 토론주제로 삼았지만, 전면화되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민주노동당 2000-2007년 역사에 대한 선택적 자기 해석의 결과였다. 자기가 유리할 대로 보고 해석해버리는, "나는 늘 예외고, 잘못은 저 다른 정파 놈들이 범했다"는 오만때문이다. 


이번 새진보당 건설논의에서 가장 핵심적으로 논의되어야할 것이 빠졌다. 바로 그게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회당> 각 정파들, 리더들의 자기 반성이다. 민주노동/진보신당 정파대표들의 반성과 성찰로 이어져야 http://bit.ly/oDAHlz

원내교섭단체 20석 달성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예상되는 경로는 이것이다. 지금과 같은 기초가 탄탄하지 않는 통합, 새 정당 만들기 (졸속이라는 논거는 5.31 합의문 다시 써야] 진보정당, 보수파들보다 더 보수적으로 당 만들어야 http://bit.ly/rchUgb ) .... 그 4월 총선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가?


2012년 대선, 후보전술, 민주당과의 연립정부 논쟁, 6.15 공동선언,국참당 문제만이 아니다. 


새 통합정당의 특성은, 한국 진보정당 역사상 가장 확고한 계파정치 (각 정파 수장과 그 아래로 피라미드 형식을 이루는 서열 체제)가 들어설 것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진보신당은 노.심당이라고 하지만, 정확한 명칭은 노.심 따로당이다. 계파정치의 예행연습기간이었다. 강상구 대변인 인터뷰시, 강 대변인은 "진보신당 3년 진보재구성이 거짓말이라는 게 드러났다"고 고백했는데, 그 거짓말의 주체는 누구인가를 더 상세하게 분석해야 한다. 


두번째, 통합 정당의 주체들은 민노당 다양한 계파들, 수장들, 그리고 진보신당보다 훨씬 더 수직 서열화된 정당 문화를 고려한다면, 통합정당의 주체들은 그러한 계파들에 의해서 좌지우지될 것이다. 패권주의에 대한 제도적 장치는 어떻게 작동될 지 모른다. 왜냐하면, 내 밥그릇은 내 철학과 주기도문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2004년 10석 의석이 생긴 이후 민노당과 진보신당에서 증명된 현실이다. 


국참당 참여가 확실해지면, 계파 정치는 보다더 활성화될 것이다. 문제는 4월 총선에서, 누가 당선되느냐 낙선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헤게모니 전쟁은 시작되는 것이다. 


지금 5.31 합의문, 8.28 합의문은 부도 어음이 될 확률도 높다. 왜냐하면, 4월 총선에 낙선하는 계파들은 새 통합당에서 발언권이 대폭 감소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총선에서 낙선하더라도 계파 지분을 줄 것이다. 계파의 투견들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원내교섭 단체 20석이라는 현실적 목표 하에 모여든 새통합당 계파들은, 4월 총선이 끝나면, 당선자들의 "진보 대합창"이 될 것이다.


진보신당 3년 당원들의 정체성들, 그 통일성을 높이지 못했다. 그  단적인 사례가  노.심 따로당, 그리고 게시판 사태이다. 그런데, 하물며, 국참당이 정치적 친정인 이정희 대표, 민주노동당 계파들, 진보신당 당원들이 모여서 <게임규칙>도 명료하지 않은 채, 정체성 통일성 수준도 낮은 상황에서, 당원들을 통제할 도구는 장치는 무엇인가? 그것은 <국회의원 당선>이다. 그래서 4월 총선 낙선자 계파들과 그 당원들의 발언권은 엄청나게 축소될 가능성이 많다. 당선되어도, 계파정치는 지금보다 더 훨씬 강도높게 활개를 칠 것이다. 


인정사정없다. 진보신당 2008년 총선 패배 후, 심상정 노회찬 지못미는 더이상 없다. 친구들 가족들 핵심 후원자들은 지못미할 지도 모른다. 

너무 비관적이냐고? 지난 11년간의 역사를 보라. 우리는 우리가 11년간 실천한대로, 연습한 대로, 실전에서도 그대로 드러날 것이다. 


민주노동당 당권파를 악마화시키거나 (독자파 일부), 들어가서 같이 모여서 그들과 노선투쟁을 감행한다는 (통합파 일부), 그건 한국 현실 정치와 우리가 걸어온 길들을, 과거 역사의 길들을 주관적으로,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골라 보는 망원경으로 확대, 축소시키는 것이다. 


누가 정치적 동료인가? 어떻게 해야 장기적으로 민주노동당과 정치적 신뢰를 회복할 수 있겠는가? 통합하자 말자, 안하자 절대로 안된다 해야 한다 그게 논쟁의 핵심이 되어서는 안된다.  


내가 <독자>-<통합> 틀 자체가 잘못되어있다고 말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지난 3년간 진보신당의 진보재구성 실천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도 제대로 반성하지 않은 채, 그 이유들도 합의를 보지 못한 채, 새 정당을 만든들 뭐가 잘 되겠는가? 새로운 계파 정치하러 가는 것 아니라면 말이다. 4월 총선에서 낙선되면, 그 계파정치 사다리에서 인정사정 볼 것없이 나락으로 떨어뜨려질텐데, 그 때는 어느 누구도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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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 실현문제를 통해서 본 사민주의, 자유주의의 기만성/ 셈수호르 2011.01.12 13:59

위 글을 읽고 몇 가지 토론용으로 소감을 씁니다. 셈수호르님이 올린 글들이 토론이 많이 되면 좋을텐데, 찬반 동의여부를 떠나서 말입니다. 그 점이 아쉽긴 합니다.  비판적으로 보면, 진보신당은 사적인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모래알처럼 서로 서로를 그 자기 목적에 필요하니까 모여있는 사적인 "계" 성격을 많이 띠고 있습니다. 하나의 팀으로, 무지갯빛을 띠건 모자이크를 하던 하나의 도자기로 빚어진 팀이 아닙니다. 내 입맛에 맞으면 씹고 넣고, 안 맞으면 욕하고 무시하고 뱉어버리는 문화가 팽배해 있습니다. 앞으로 이런 정당은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셈수호르님이 올린 글들, 활동들에 대해서 잠시 볼 수 있는데까지 봤습니다. 제가 아는 범위에서 하나 생각나는 것은, 셈수호르님과 같은 정치적 입장을 가진 분과 조금 유의미한 논쟁,토론,학습을 하려면, 케인지안과 마르크스 방법론에 대한 비교 같은 것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혹시 여력이 되면 짧게라도 번역소개와 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마크 세터필드 (Mark Setterfield)가 쓴 "케인즈의 변증? Keynes's dialectic? " (Cambridge Journal of Economics 2003, 27, 359-376)인데요, 주로 케인즈와 마르크스 연구방법을 비교해놓은 것입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위에 쓰신 "사민주의, 자유주의 기만성"의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마르크스의 아이디어인 자본의 확대재생산 
C=c +v+s (잉여가치) 에서 이 잉여가치에 해당하는 몫에 대한 비례정의적 배분 (법인세 80조), 불로소득 (이자소득 255조+지대소득 40조), 고소득 자영업자 세금 (50조), 국방비 절감(18조) 등을 합쳐서 대략 450조의 돈을 복지국가 건설에 사용하자  = >  400만 실업자, 150만 무급가족 종사자 150만에게 일자리를 창출하자.  

실은 이러한 아이디어에 동의하지 않을 진보/좌파는 없다고 봅니다. 이론적으로도 실천적으로 몇 가지 고려사항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첫번째는,  위와 같은 아이디어는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오건호씨가 프레시안에 발표하는 GDP 중에 사회복지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한국이 멕시코 (꼴지) 다음 꼴지이다 (GDP 9% 등), 이런 기획과 큰 차이는 없다고 봅니다. 아니 오건호씨도 셈수호르님의 아이디어에 동의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논리상 그렇다는 것입니다. 증세와 재원 마련에 대한 아이디어는 수치로 제시할 수밖에 없고, 이를 두고 해석의 차이가 있고, "급진성" 정도 차이만 낳게 되는 것입니다.  논리전개상 그렇다는 것입니다. 정치실천이 어떻게 다르냐는 별개로. 

두번째로, 셈수호르님이  "근본적인 변혁"을 뭐라고 규정을 하지 않았는데요, 생산수단의 사회화 = 자본주의 사회 지양을 만약 주장하는 줄 알았는데, 다시 재원 문제를 언급하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셈수호르님이 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하는 것은 무의미하지만, 이론적 부담은 남는다고 봅니다. 더군다나, 셈수호르님이 모델로 상정하지 않더라도, 기존 소련사회주의에서도 생산수단의 사회화라는 이름하에 국유화가 있었고, 소위 소련식 계획경제 (Planning board)가 있었지 않습니까? 만약에 사회주의적 복지 실현이 소련식은 아니고, 다른 어떤 가능한 형식이 있다고 전제한다면 위에서 말한 셈수호르님의 "증세," 복지 "재원" 마련책일 것입니다. 

세번째, 셈수호르님 주장에 조금 유의미한 부분을, 조금 더 부각시켰으면 하는 것은, 자본주의 극복/비판이라는 주제에서, 정치적으로 어려운 투쟁이긴 하지만, 재산(자산) 재분배 (private property)을 어떻게 다양한 방식으로 가능할 것인가? 저는 이 주제가, 님의 보수주의, 자유주의, 사민주의자와, "근본적 변혁을 추구하는" 셈수호르님의 차이가 될 것이라 봅니다. 

네번째는, 복지국가는 정치적으로야 셈수호르님이 주장한 아이디어가 "더 많은 복지" 정책일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 공정하게 말하자면, 보수주의도, 자유주의도, 사민주의 (이 개념이 모호한데, 유럽식이나 캐나다-호주식 이런 정도로 지역적으로 제한을 하겠습니다. 한국식도 있는데 어떻게 개념규정을 해야할지 모르겠군요.)도 자기 정치 원칙에 따라서 복지정책을 펼친다고 봅니다. 

이미 복지국지 체제라는 것이 역사적으로 "자본주의 복지국가 capitalist welfarism"이지 않습니까? 저는 셈수호르님처럼 "보수주의, 자유주의, 사민주의에서 제안하고 실시하는 복지는 기만이고, 사회주의자들이 추진하는 복지는 참된 것이다" 이렇게 논의하면, 1) 논쟁이 안된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2) 역사적으로 실제로 등장한 사회복지국가들에서 그 복지정책들을 실시한 주체들은, 보수당, 자유당, 사민주의, 사회주의자 등이고, 아직도 게임이 끝나지 않았다고 봅니다. 

이미 우리가 이러한 자본주의 복지국가 체제 게임룰에 들어와 있는데, 보수-자유-사민주의자 복지는 허구이고 환상이다, 우리가 진짜다, 이렇게 가는 것은, 아니 정책적으로야 찬성하지만 정치 투쟁하는데, 실제 보수-자유당과 경쟁하는데는 전술적으로 큰 의미는 없다고 봅니다. 

- 박용진 당원이 "한나라당에서 복지 하니까, 우리는 이제 안하자는 것이냐?"고 묻는 것도 올바르지 않고, 그 반대 논리 "너희들은 환상이고, 우리가 진짜다" 이런 논리도 전 올바른 전술은 아니라고 봅니다. 

다섯번째, 저는 오히려, 한나라당-민주당식 복지와 차별점이 있는 것은, 정책 뿐만 아니라, "누가 어떻게 자본주의 체제 문제점들을 고치고 있는가? 바꾸고 있는가?" "실종된 비례적 사회정의 (비정규직 노동자 차별 문제)"에 저항하고 그 제도와 법률을 해체시키고 있는가? 이 정치적 실천 주체에 주목해야 한다고 봅니다. 셈수호르님이 지적한 지금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우리도 정규직이다. = 이건 사람마다 해석이 다르지만, 참여 노동자들이 다 속마음이 다르겠지만, 겉으로는, 우리는 현대, 삼성, 한진 중공업의 정규직 임금노동자가 되고 싶다"라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자본주의 사회복지 차원도 아니고, 그야말로 자본주의 체제의 임금노동자로 되겠다 이거 아닙니까? 셈수호르님이 말한 "개량의 쟁취"죠. 

            (절대적 빈곤과 상대적 빈곤율을 해결해야 한다는 이중적 과제를 안고 있는 한국 좌파)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어디에 방점을 찍고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는가?

단순하게 말하면, 직접 민주주의 정신의 최소한, 또 최대한 실천입니다. 임금노동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공동체의 주인으로서 자기 문제 (비정규직 임금 노동자의 부당성)를 스스로 깨치고 저항하고 실천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이니까요. (이걸 구구절절 설교해서 미안합니다) 

제가 자꾸 케인지안도 2가지 종류가 있다. "관료기술적 케인지안"과 "사회적 케인지안"을 구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지금 진보정당안에서 나오는 사민주주의는 거의 "관료기술주의적 케인지안" 아류작이고, 정치적으로는 진보성을 많이 탈각했다고 봅니다. (* 사회복지를 꿈꾸던 테크노-케인지안 "정운찬과 MB의 아름다운 매치"
http://www.newjinbo.org/xe/826457)  앞으로 제 2의 정운찬, 제 3의 정운찬은 많이 나올 것입니다. 특히 경제평론가를 자처하는 사람들. 

정치적으로 유의미하다는 것은, 한나라당 박근혜가 법인세 30조를 더 걷어서 위에서 아래로 나눠주는 것보다, 저는 노동자 시민들 스스로 정치적으로 실천해서 1조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입장입니다. 굳이 2가지 중에서 뭘 선택해야 하겠느냐라고 묻는다면 !  

제가 박근혜 30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지금 복지 논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함입니다. 재원 마련, 증세 방법 등에 제한되어서는 안됩니다. 2002년 민주노동당 서울시장 선거 (이문옥 후보출마)할 때, 세금의 정치학에 대해서, 갑종근로소득세 내는 시민들에 대한 타켓에 대해서 저 또한 강조했습니다. 부유세나 사회복지세는, 창구일뿐입니다. 정치투쟁의 창구이지, 공공 재정학 (public finance) 교과서 주제별 강의하는 것에 진보정당의 할 일이 국한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여섯번째, 지금 한국에서 사민주의는 실체도 없습니다. 유럽이 우리의 기준은 아니지만, 비교 정치에서 말하는 사민주의 정의에서 하나의 공통점은 코포라티즘 (노.사.정 위원회의 타협모델)이지 않습니까? 이 노.사.정 권력 균형을 위해서 누가 투쟁하고 있습니까? 지금 서유럽에서 2차 세계대전 전후로 만들어진 이 노.사.정 권력균형이나 그 타협들에 버금가는 정치 투쟁이나 기획은 하지 않고, 사민주의 정책들만 여의도 국회에서 뿌려대면 되는 것입니까? 지금 한국 계급 계층 권력관계는 코포라티즘도 허용하지 않을만큼 반-노동자 정당들이 힘을 가지고 있는 게 현실인데, 이에 대한 지적을 하고 있는 사민주의자들이 있나요? 있다면, 손을 덥썩 잡아야 한다고 봅니다. 그 정도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굳이 이 주제를 언급하는 이유는, "복지 정책"을 "수혜자 recipient"= 행정관료의 고객으로 간주해버리는 수준에 끝나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를 자꾸 양의 문제로, 재원 마련이나, 수혜 혜택의 돈 크기로 "네가 더 진보다, 내가 더 진보다" 잣대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양의 문제, 재원의 문제는 필요조건이지, 우리가 바라는 민주주의 정신, 셈수호르님이 정의한 사회주의의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복지국가를 보수당에서 만든 한 사례 (캐나다 온타리오 주 수상 배출: 진보보수당 Progressive_Conservative)
2차 세계대전 이후에 "PC 진보보수당 출신" 온타리오 주 수상들이 당시 UN 기준 탑 10 안에 드는 사회복지제도를 만들어놨습니다. 캐나다와 한국이 자꾸 다르다 이렇게 강조하지만 말고, 논리적으로 그리고 실천적으로, 박근혜도 한나라당식 복지도 가능합니다. 그게 선별적이건, 부분적이건, 민주당도 마찬가지입니다. 

셈수호르님이 주장한대로, "양적 차이"만 있는 것입니다. "복재 재원" 문제로 자꾸 정치 논쟁점을 축소시켜버리면, 오히려 한국 진보정당이 성장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고, 올바른 실천도 아닙니다. (위에서 주장한대로) 우리의 목표는, 국민들을 시민들을 "복지 혜택의 고객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공동체의 시민이 되어 "참여 예산" 설계와 "집행"의 주체가 되도록 도와주는 게 우리 정당의 임무입니다.


ontario_premier_pc1.jpg 

ontario_premier_pc2.jpg 
(파란 색 원안은 캐나다 보수정당 보수-진보당 출신 온타리오 주 수상들이다: 참고로, 온타리오 수상 중에 캐나다 사민주의 정당 출신 밥 래 Rae가 1990년-1995년 통치했으나, 경제는 악화되고 민심은 나빠져, 아직까지 재집권에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밥 래는 그 이후 자유당으로 이적하고 말았다. NDP  밥 래 사례 교훈은, 한번 잘못 집권하면, 50년 집권 못할 수 있다는 게 중론이다. ) 


당원들에게:

첨가 1. 캐나다식 복지면, 보수당이면 어떻냐, 민중이 국민이 요구하면 하는거지. 이런 식 논리로 접근하지 말기 
바랍니다.

첨가 2. 박근혜가 복지하겠어? 민주당 손학규가 하겠어? 그런 이야기는 지금부터 할 필요가 없는 이야기입니다.
아울러, 박근혜가 복지 (선별적이건 뭐건 간에)하면, 손 잡고 합당하고, 민주당 손학규가 정동영이 복지하면 손잡고 합당하고 그럴 것입니까? <복지국가 소사이어티> 이상이교수의 잘못된 정치적 주장이 바로 이런 "복지 동맹" 만사형통론입니다. 정당을 만들고 선거제휴를 하고 그 주제가 "복지" "재원 마련" 그거 하나에 있습니까?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이론적으로 실천적으로 증빙서류도 없는 그런 낭설은 이제 그만합시다.









 



댓글
2011.01.13 22:40:50
셈수호르

 내일 자동차 출투를 나가야 하기 때문에 오늘은 힘들고요.  내일 오전에 제 생각을 올리겠습니다.  아직 동지의

글도 제대로 못 읽어봤습니다.  죄송합니다.

댓글
2011.01.13 22:46:52
원시

시간날 때 천천히 답글 주십시요. 


워낙 토론도 안되고 해서 쓴 글이고, 진보정당 <정체성> 문제 때문에 쓴 것입니다. 

댓글
2011.01.13 23:28:11
원시

부가 설명을 붙이자면,


복지 재원을 둘러싼 <한나라당>과 <민주당>과의 정책대결,경쟁도 당연히 해야한다. 하지만, 진보정당의 자기 정체성은, 직접 노동자들과 시민들이 그 "복지"주제들을 스스로 쟁취하게끔 만드는데 있다. 

2012년 총선 구호, 대선 구호로 "복지국가 건설"은 부적합하다. 한나라당-이명박 정권의 문제점 중에 하나가 "절차적 민주주의" 파괴부분도 다 포함되어야 한다. 

"다 같이 잘 사는 것이 민주주의다" - 이게 우리의 정치적 슬로건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1) 민주주의 (87년 형식적 절차적 민주주의 가치)의 적자는 우리 진보정당이기 때문이다. 

2) "이제는 다 같이 잘 사는 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민주주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97년 한국 자본주의와 친-자본주의 정권들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등)에 대한 차별점이 그것이다. 

"복지" 용어는 너무 좁은 개념이다. 한나라당식, 민주당식 복지국가 충분히 가능하다. 이론적으로도 실천적으로도.

댓글
2011.01.13 23:53:12
가장자리(김선아)

진보정당의 자기 정체성은, 직접 노동자들과 시민들이 그 "복지"주제들을 스스로 쟁취하게끔 만드는데 있다. 


빙고!!

눈물 나도록 반갑습니다. 

'주체'가 빠지는 순간, '내가 다 해주께'라는 보수정당과 차별성을 잃어버립니다.

당원들을 '대상화'하고, 민중들을 '대상화'하는 가장 핵심을 잘 짚어주셨네요^^

댓글
2011.01.14 11:13:19
카르킨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솔직히, 누가하든간에... 개인의 성장기회가 있는 말 되는 소리 한다면...

그건 보수정당이든 진보정당이든... 하다못해, 변형된 국가사회주의정당이든 상관이 없습니다.

막판에 거의 막말같은 개념까지 언급한 것은...

제가 봐선, 이 사회가 그만큼 '순환구조'에 문제가 생겼다 보기 때문입니다.
100년 50년이 문제가 아니라 당장 10년 20년에 극단적으로 빠질 것 같다라는 우려입니다.

그 내용은 뭐냐? 그때가서는 극단적 폭력수단을 동반하지 않으면... 세대가 계급이 된다라는 겁니다.

다시 말합니다. 세대가 계급이 된다라는 개념입니다. 더 걱정인것은 퍽이나 우리가 인정하겠습니다라는 겁니다.

당근 계급에는 착취구조가 세대간 사회구조로 공고화된다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 착취세대는 바로 부정할 수 없이... 나라는 겁니다.

이딴소리 그때까지 떠들고 있으면 온갖 변명에 이유에 과정에 설명에 탓에...

더군다나 마지막 권위주의적 사고를 가진 파열음이 아직도 튀어나오는 통에...

그래서 더... 정말 역겨운 사람 됩니다.

우리가 흔히 투쟁의 사안이라고 하는 것들에 대하여 20대가 갖는 냉소가 왜인가는

걔네가 무개념이라서가 아니라 "그래서 뭐?, 너넨 기회가 있었잖아?" 기 때문 입니다.

10대촛불소녀들에게 그래서 더 희망있다고요? 참말로??

내가 봐선 이러다가 까딱 잘못하면 세상사 치이다가 차라리, 박정희 팬덤 될 거 같은데?

 

주변국가에 염치를 지킬 수 있는 선이라면 그게 뭐가 되든 상관이 없다는 겁니다.

이놈의 언어와 관념의 짬뽕으로 선을 긋는 어휘가 머리를 굳게하고 따지고보면... 책은 많이 읽되

상상력은 더 배제되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솔직히, 이건 나이와도 상관 있습니다.

나이라는 것은 결국 과거지향을 의미하니 말입니다.

인정하고 경계해야지 자꾸 우리는 틀린 존재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여튼간에, 그런 길을 찾는 영광된 역할이 이곳이면... 기쁜 일입니다.

단지 그것입니다. 박근혜가 가짜니 내가 진짜니가 중요한게 아니라...

누가 말되는 소리를 하여 불꽃을 튀게 하느냐가 중요한 거라는 겁니다.

애들 시집장가를 결심하게끔 하죠? 사회진출하는 애들이 월세로 노인의 공적부조하는 것에 대한 분노도 좀 읽고?

왜 이제 사회진출하는 애들이 노인네들의 복리후생비를 감당하냔 말입니다. 하다못해, 내가 아니라 말입니다.

캐나다도 호주도 노르웨이도 월세를 주고 산다고요? 이보쇼!!! 걔네 교육비며 첫주택구입자금에 대한 부분이며 최저임금이며 직종별최저임금이며 정작! 더 중요한건 애들이 스스로 사회진출할 수 있는 저항력도 키워주질 않았잖소? 말로는 부모의 역할이니 해서 '나중에 애들 억박지를 속편한 입속에 쳐넣기'만 했고. 그런 수단과 방안에만 골몰했지 철학이 없었잖소? 하다못해 우리부모보다 말이쇼...  뭐 이런거 등등등 안 했잖소? 핸드폰 새거 갖고싶게만 만들었지... 씨잘대기 없이 쓰고버리는 재화만 더 넘치게 하는걸 선진입국이라 여겼고 지금도 그리 생각하고... 아니 그렇소?

 

이바닥에 어짜피 족보란 없고... 누구든 씻으면 깨끗해질 수 있는거고...

그전과 다른 모습이라도 진정성을 보이면, 기회가 있는 곳입니다. 족보 없어요...

위의 글은 그래서 의미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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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 실현문제를 통해서 본 사민주의, 자유주의의 기만성/ 셈수호르 2011.01.12 13:59

위 글을 읽고 몇 가지 토론용으로 소감을 씁니다. 셈수호르님이 올린 글들이 토론이 많이 되면 좋을텐데, 찬반 동의여부를 떠나서 말입니다. 그 점이 아쉽긴 합니다.  비판적으로 보면, 진보신당은 사적인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모래알처럼 서로 서로를 그 자기 목적에 필요하니까 모여있는 사적인 "계" 성격을 많이 띠고 있습니다. 하나의 팀으로, 무지갯빛을 띠건 모자이크를 하던 하나의 도자기로 빚어진 팀이 아닙니다. 내 입맛에 맞으면 씹고 넣고, 안 맞으면 욕하고 무시하고 뱉어버리는 문화가 팽배해 있습니다. 앞으로 이런 정당은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셈수호르님이 올린 글들, 활동들에 대해서 잠시 볼 수 있는데까지 봤습니다. 제가 아는 범위에서 하나 생각나는 것은, 셈수호르님과 같은 정치적 입장을 가진 분과 조금 유의미한 논쟁,토론,학습을 하려면, 케인지안과 마르크스 방법론에 대한 비교 같은 것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혹시 여력이 되면 짧게라도 번역소개와 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마크 세터필드 (Mark Setterfield)가 쓴 "케인즈의 변증? Keynes's dialectic? " (Cambridge Journal of Economics 2003, 27, 359-376)인데요, 주로 케인즈와 마르크스 연구방법을 비교해놓은 것입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위에 쓰신 "사민주의, 자유주의 기만성"의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마르크스의 아이디어인 자본의 확대재생산 
C=c +v+s (잉여가치) 에서 이 잉여가치에 해당하는 몫에 대한 비례정의적 배분 (법인세 80조), 불로소득 (이자소득 255조+지대소득 40조), 고소득 자영업자 세금 (50조), 국방비 절감(18조) 등을 합쳐서 대략 450조의 돈을 복지국가 건설에 사용하자  = >  400만 실업자, 150만 무급가족 종사자 150만에게 일자리를 창출하자.  

실은 이러한 아이디어에 동의하지 않을 진보/좌파는 없다고 봅니다. 이론적으로도 실천적으로 몇 가지 고려사항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첫번째는,  위와 같은 아이디어는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오건호씨가 프레시안에 발표하는 GDP 중에 사회복지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한국이 멕시코 (꼴지) 다음 꼴지이다 (GDP 9% 등), 이런 기획과 큰 차이는 없다고 봅니다. 아니 오건호씨도 셈수호르님의 아이디어에 동의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논리상 그렇다는 것입니다. 증세와 재원 마련에 대한 아이디어는 수치로 제시할 수밖에 없고, 이를 두고 해석의 차이가 있고, "급진성" 정도 차이만 낳게 되는 것입니다.  논리전개상 그렇다는 것입니다. 정치실천이 어떻게 다르냐는 별개로. 

두번째로, 셈수호르님이  "근본적인 변혁"을 뭐라고 규정을 하지 않았는데요, 생산수단의 사회화 = 자본주의 사회 지양을 만약 주장하는 줄 알았는데, 다시 재원 문제를 언급하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셈수호르님이 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하는 것은 무의미하지만, 이론적 부담은 남는다고 봅니다. 더군다나, 셈수호르님이 모델로 상정하지 않더라도, 기존 소련사회주의에서도 생산수단의 사회화라는 이름하에 국유화가 있었고, 소위 소련식 계획경제 (Planning board)가 있었지 않습니까? 만약에 사회주의적 복지 실현이 소련식은 아니고, 다른 어떤 가능한 형식이 있다고 전제한다면 위에서 말한 셈수호르님의 "증세," 복지 "재원" 마련책일 것입니다. 

세번째, 셈수호르님 주장에 조금 유의미한 부분을, 조금 더 부각시켰으면 하는 것은, 자본주의 극복/비판이라는 주제에서, 정치적으로 어려운 투쟁이긴 하지만, 재산(자산) 재분배 (private property)을 어떻게 다양한 방식으로 가능할 것인가? 저는 이 주제가, 님의 보수주의, 자유주의, 사민주의자와, "근본적 변혁을 추구하는" 셈수호르님의 차이가 될 것이라 봅니다. 

네번째는, 복지국가는 정치적으로야 셈수호르님이 주장한 아이디어가 "더 많은 복지" 정책일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 공정하게 말하자면, 보수주의도, 자유주의도, 사민주의 (이 개념이 모호한데, 유럽식이나 캐나다-호주식 이런 정도로 지역적으로 제한을 하겠습니다. 한국식도 있는데 어떻게 개념규정을 해야할지 모르겠군요.)도 자기 정치 원칙에 따라서 복지정책을 펼친다고 봅니다. 

이미 복지국지 체제라는 것이 역사적으로 "자본주의 복지국가 capitalist welfarism"이지 않습니까? 저는 셈수호르님처럼 "보수주의, 자유주의, 사민주의에서 제안하고 실시하는 복지는 기만이고, 사회주의자들이 추진하는 복지는 참된 것이다" 이렇게 논의하면, 1) 논쟁이 안된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2) 역사적으로 실제로 등장한 사회복지국가들에서 그 복지정책들을 실시한 주체들은, 보수당, 자유당, 사민주의, 사회주의자 등이고, 아직도 게임이 끝나지 않았다고 봅니다. 

이미 우리가 이러한 자본주의 복지국가 체제 게임룰에 들어와 있는데, 보수-자유-사민주의자 복지는 허구이고 환상이다, 우리가 진짜다, 이렇게 가는 것은, 아니 정책적으로야 찬성하지만 정치 투쟁하는데, 실제 보수-자유당과 경쟁하는데는 전술적으로 큰 의미는 없다고 봅니다. 

- 박용진 당원이 "한나라당에서 복지 하니까, 우리는 이제 안하자는 것이냐?"고 묻는 것도 올바르지 않고, 그 반대 논리 "너희들은 환상이고, 우리가 진짜다" 이런 논리도 전 올바른 전술은 아니라고 봅니다. 

다섯번째, 저는 오히려, 한나라당-민주당식 복지와 차별점이 있는 것은, 정책 뿐만 아니라, "누가 어떻게 자본주의 체제 문제점들을 고치고 있는가? 바꾸고 있는가?" "실종된 비례적 사회정의 (비정규직 노동자 차별 문제)"에 저항하고 그 제도와 법률을 해체시키고 있는가? 이 정치적 실천 주체에 주목해야 한다고 봅니다. 셈수호르님이 지적한 지금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우리도 정규직이다. = 이건 사람마다 해석이 다르지만, 참여 노동자들이 다 속마음이 다르겠지만, 겉으로는, 우리는 현대, 삼성, 한진 중공업의 정규직 임금노동자가 되고 싶다"라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자본주의 사회복지 차원도 아니고, 그야말로 자본주의 체제의 임금노동자로 되겠다 이거 아닙니까? 셈수호르님이 말한 "개량의 쟁취"죠.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어디에 방점을 찍고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는가?

단순하게 말하면, 직접 민주주의 정신의 최소한, 또 최대한 실천입니다. 임금노동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공동체의 주인으로서 자기 문제 (비정규직 임금 노동자의 부당성)를 스스로 깨치고 저항하고 실천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이니까요. (이걸 구구절절 설교해서 미안합니다) 

제가 자꾸 케인지안도 2가지 종류가 있다. "관료기술적 케인지안"과 "사회적 케인지안"을 구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지금 진보정당안에서 나오는 사민주주의는 거의 "관료기술주의적 케인지안" 아류작이고, 정치적으로는 진보성을 많이 탈각했다고 봅니다. (* 사회복지를 꿈꾸던 테크노-케인지안 "정운찬과 MB의 아름다운 매치"
http://www.newjinbo.org/xe/826457)  앞으로 제 2의 정운찬, 제 3의 정운찬은 많이 나올 것입니다. 특히 경제평론가를 자처하는 사람들. 

정치적으로 유의미하다는 것은, 한나라당 박근혜가 법인세 30조를 더 걷어서 위에서 아래로 나눠주는 것보다, 저는 노동자 시민들 스스로 정치적으로 실천해서 1조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입장입니다. 굳이 2가지 중에서 뭘 선택해야 하겠느냐라고 묻는다면 !  

제가 박근혜 30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지금 복지 논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함입니다. 재원 마련, 증세 방법 등에 제한되어서는 안됩니다. 2002년 민주노동당 서울시장 선거 (이문옥 후보출마)할 때, 세금의 정치학에 대해서, 갑종근로소득세 내는 시민들에 대한 타켓에 대해서 저 또한 강조했습니다. 부유세나 사회복지세는, 창구일뿐입니다. 정치투쟁의 창구이지, 공공 재정학 (public finance) 교과서 주제별 강의하는 것에 진보정당의 할 일이 국한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여섯번째, 지금 한국에서 사민주의는 실체도 없습니다. 유럽이 우리의 기준은 아니지만, 비교 정치에서 말하는 사민주의 정의에서 하나의 공통점은 코포라티즘 (노.사.정 위원회의 타협모델)이지 않습니까? 이 노.사.정 권력 균형을 위해서 누가 투쟁하고 있습니까? 지금 서유럽에서 2차 세계대전 전후로 만들어진 이 노.사.정 권력균형이나 그 타협들에 버금가는 정치 투쟁이나 기획은 하지 않고, 사민주의 정책들만 여의도 국회에서 뿌려대면 되는 것입니까? 지금 한국 계급 계층 권력관계는 코포라티즘도 허용하지 않을만큼 반-노동자 정당들이 힘을 가지고 있는 게 현실인데, 이에 대한 지적을 하고 있는 사민주의자들이 있나요? 있다면, 손을 덥썩 잡아야 한다고 봅니다. 그 정도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굳이 이 주제를 언급하는 이유는, "복지 정책"을 "수혜자 recipient"= 행정관료의 고객으로 간주해버리는 수준에 끝나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를 자꾸 양의 문제로, 재원 마련이나, 수혜 혜택의 돈 크기로 "네가 더 진보다, 내가 더 진보다" 잣대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양의 문제, 재원의 문제는 필요조건이지, 우리가 바라는 민주주의 정신, 셈수호르님이 정의한 사회주의의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복지국가를 보수당에서 만든 한 사례 (캐나다 온타리오 주 수상 배출: 진보보수당 Progressive_Conservative)
2차 세계대전 이후에 "PC 진보보수당 출신" 온타리오 주 수상들이 당시 UN 기준 탑 10 안에 드는 사회복지제도를 만들어놨습니다. 캐나다와 한국이 자꾸 다르다 이렇게 강조하지만 말고, 논리적으로 그리고 실천적으로, 박근혜도 한나라당식 복지도 가능합니다. 그게 선별적이건, 부분적이건, 민주당도 마찬가지입니다. 

셈수호르님이 주장한대로, "양적 차이"만 있는 것입니다. "복재 재원" 문제로 자꾸 정치 논쟁점을 축소시켜버리면, 오히려 한국 진보정당이 성장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고, 올바른 실천도 아닙니다. (위에서 주장한대로) 우리의 목표는, 국민들을 시민들을 "복지 혜택의 고객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공동체의 시민이 되어 "참여 예산" 설계와 "집행"의 주체가 되도록 도와주는 게 우리 정당의 임무입니다.


ontario_premier_pc1.jpg 

ontario_premier_pc2.jpg 
(파란 색 원안은 캐나다 보수정당 보수-진보당 출신 온타리오 주 수상들이다: 참고로, 온타리오 수상 중에 캐나다 사민주의 정당 출신 밥 래 Rae가 1990년-1995년 통치했으나, 경제는 악화되고 민심은 나빠져, 아직까지 재집권에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밥 래는 그 이후 자유당으로 이적하고 말았다. NDP  밥 래 사례 교훈은, 한번 잘못 집권하면, 50년 집권 못할 수 있다는 게 중론이다. ) 


당원들에게:

첨가 1. 캐나다식 복지면, 보수당이면 어떻냐, 민중이 국민이 요구하면 하는거지. 이런 식 논리로 접근하지 말기 
바랍니다.

첨가 2. 박근혜가 복지하겠어? 민주당 손학규가 하겠어? 그런 이야기는 지금부터 할 필요가 없는 이야기입니다.
아울러, 박근혜가 복지 (선별적이건 뭐건 간에)하면, 손 잡고 합당하고, 민주당 손학규가 정동영이 복지하면 손잡고 합당하고 그럴 것입니까? <복지국가 소사이어티> 이상이교수의 잘못된 정치적 주장이 바로 이런 "복지 동맹" 만사형통론입니다. 정당을 만들고 선거제휴를 하고 그 주제가 "복지" "재원 마련" 그거 하나에 있습니까?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이론적으로 실천적으로 증빙서류도 없는 그런 낭설은 이제 그만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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