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 노트 Notes on the Politics of Korea

복지파의 <정치의 선차성? the primacy of politics> 단상


2011.02.09 17:11:30

원시https://www.newjinbo.org/xe/994047


2011년에 왜 우리는 미국 대학에서 <비교정치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쓴 <유럽 정당 역사>를 읽어야 하는가? 

왜 1980년대 한국 운동권은 NL이건 CA, PD건, ND건, SS건, 소련 사회과학 아카데미나, 평양 정부에서 "검인정 교과서"로 만들어낸 <변증법적 유물론>, <사적 유물론>, <과학적 사회주의> < 정치경제학>을 읽었어야 하는가? 박정희시절에 만들어진 검인정 <반공 방첩 국민윤리교과서>와 정반대 형식을 띠고 있는 검인정 교과서들이다. 

마르크스는 정작에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단어를 거의 쓰지도 않았다. 그런데다 <변증법> 번역도 오해의 소지가 더 많다.  무슨 무슨 <법 law >그래서, 우리가 따라야 하는 규칙, 필연적 불변의 진리 이런 뉘앙스까지 있지 아니한가? 80년대 말, 소련, 동유럽 체제가 흔들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독일 등 유럽에서 유학하고 있었던 한국 지식인들이 위 소련, 동독 사회과학 아카데미에서 나온 4종 세트를 번역했다. 왜 그랬나? 한국 운동권들에게 팔린다는 이유 때문에(?) 혹은 역사적 사명감과 80년 광주의 부채 때문에(?), 혹은 요새 막스 베버주의자들의 부활과 더불어 엄청나게 깨지고 있는 "절대적 신념" 때문에? 

마르크스는 <자본: 정치경제학 비판> 1권에서 "나의 변증적 방법", 즉 연구-조사, 그리고 서술의 방법 이런 단어는 쓴다. 그러나 그걸 기계적이고 도식적으로 <윤리 교과서> <종교학 교과서>로 만들어버린 사람들이 여럿 있는데, 그 중에 한 명이 조세프 스탈린이다. (*이런 마르크스 이야기는 나중에 더 하기로 하자)

우리 <진보신당> 당원들은 워낙 <명품> <브랜드> <정통> 혹은 명망있는 "청와대" 이런 네임밸류에 익숙해져서, 마크르스는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구제역으로 파묻힌 돼지, 송아지 취급도 하거나? (연민, 무관심, 체념 등) 혹은 마르크스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당원들에게 "너 좌파지? 너 절대적인 신념 정치에 가득차 있는 무능력한 정치질도 못하는 진보지?" 욕설이나 해대는 게 지적 문화이다. 

누굴 탓해서 뭐할 것인가?  이 69억이 살아가는 이 어마어마한 복잡한 시대에, 자식들 먹여살릴 돈이 없어서, 자기 아버지가 남긴 유산을 좀 받아보려는 마음으로, 네덜란드에 자기 어머니와 외삼촌을 찾아갔다가, 퇴짜맞고 어머니와 외삼촌에 대한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마르크스. 여튼 이런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이 69억 지구인들의 삶을 어떻게 알겠는가? 마르크스에게 그도 모르는 것을 물어볼 필요도 없는 것이다. 
 

본론으로 들어와서, 

 <정치가 가장 중요하다 the primacy of politics>라는 책이 한국에 번역된 모양이다. 저자 셰리 버먼은 65년생으로 비교정치학을 전공하고 유럽정당사와 이데올로기를 주로 가르친다.
 
진보신당에도 <복지파>들이 사민주의 책이라고 해서, 제목부터 잘못 번역된 <정치의 선차성>이라는 책이 써클 내부에서 유행인 것 같다.
 
셰리 버먼 Sheri Berman 의 전제 자체도 문제가 많다. 이 녀교수가 말하는 주제는 이미 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다. 소위 <경제 결정론 economic determinism>에 대한 비판, 좌파로 좁히면 제 2 인터내셔널의 <경제환원주의적 사고: 자본주의 자동붕괴론>에 대한 비판에 기초하고 있다. 이것은 굳이 셰리 버먼이 아니더라도, 좌파 내부에서도, 또 사회과학.인문학 기초교양이 있는 사람들은 다 비판이 가능하다.
 
두번째, 셰리 버먼이 주장하는 <고전적 자유주의>와 <정통교조적 마르크스주의: 카우츠키가 만든 교과서류를 지칭함>가 모두다 <경제 결정론>, 즉 경제가 정치보다 더 중요하다, 이런 주장이었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두가지이다. 엄밀하게 따지면, <고전적 자유주의>는 서유럽의 정치사를 보면, 실제 정치에서는 "국가 (정부, 군대)"가 제국주의자로서 역할을 하던 시절이다. 마치 서유럽 자유주의자들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태리 등)이나 자본가들은 그 국가와 독립된 것처럼 서술하는 것은 오류이다. 이런 프레임 자체 (국가와 경제를 분리하는 것)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두번째, 아무리 레닌이 죽은 개가 되었다하지만, 레닌 역시 이러한 <경제결정론>적 사고를 비판하지 않았는가? 굳이 사민주의자들의 흐름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이미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것도 까먹지 말았으면 한다.
 
그리고, 한국의 사민주의를 "이념" 모델로 말로 안되게 수입하는 사람들이 알아야할 사실은, 서유럽 북미 등에서 관찰되는 사민주의는, 역사적으로 자본주의 태동과 "제국주의"의 탄생, 세계 1차, 2차 세계대전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독일에서 군부와 사민주의자들 <동맹>이 로자 룩셈부르크와 칼 리프크네히트를,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유관순 누나를 죽이던 그 해 죽였다는 이런 역사적 사실은 차치하자. 셰리 버먼의 책을 통해서, 논문들을 통해서, 정보나 자료, 셰리의 주전공이 유럽 정당사이니까, 비교 정치학의 관점에서 접근하면 될 일이다. 이걸 무슨 대단한 <정치적 발견>인양 할 필요가 있는가?
 
그리고 학적으로 따지면 셰리 버먼의 마르크스에 대한 이해 (저술이나 연구방법)는 깊지 아니하다. 북미 비교정치학자들의 이론적 깊이가 대부분 그걸 요구하지도 않는다. 셰리 버먼의 책도 그 예외는 아니다. 



----------------- 우선 여기까지 적고 ----------, 모 신문사 기자와 쪽글대화

모씨: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이념모델로서의 사민주의'를 찾으려고 해봤어요. 대학 때 독일이데올로기, 경철수고, 선언 등등 읽듯이 한번 공부해볼까 했죠. 

여기 도서관에 가서 가장 유명한 스웨덴 사민주의자들 이름 넣고 검색을 해봤죠. 근데 자료가 너무 없어요. 아직은 가설 단계인데, 적어도 한국의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학습'하던 방식과 사민주의가 유통되는 방식은 다른 것 같습니다. (-> 사민당 사람들 만나서 알아볼 향후 과제)...

원시 사민주의라는 말 자체는 크게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각 나라들별로 다 다르니까요. 유럽에 언어가 250개가 넘고, 또 종교와 정당과의 관계도 우리나라와 다르고...캐나다의 경우, 각 주마다 다르지만, 온타리오주는 보수당이 한 40년 독재하면서 top 10안에 드는 정도의 복지모델을 만들어놨음 2차대전이후 - 1990년까지. 정책만 놓고 보면 보수당과 자유당이 큰 차이가 없을 지경이었으니까요. 근데 이게 나라별로 다 다르니까요.


원시 이념모델, 아 그거 좋은 지적이네요. 학생운동권의 학습교재에 대해서는 나중에 한번 더 이야기할게요. 소련에서 나온 변유, 사유 읽어보고 이것은 한국 고딩에서 배운 검정-국민윤리 교과서의다른 버전이구나 해서다 불태워버리고...그냥 단행본을 읽음. 헤겔 마르크스 책들은 다 역사적인 맥락이 있고, 논투 구조로 되어 있어서 생각하는데 도움이 많이 됩니다.

Comment +1

  • "이걸 무슨 대단한 <정치적 발견>인양 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원시님 주장에 대한 제 생각입니다조회 수 257 추천 수 0 / 0 2011.02.11 15:39:44
    가슴아파도https://www.newjinbo.org/xe/996640

    <정치가 우선한다>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셰리 버먼의 책을 읽은 독자로서 "이걸 무슨 대단한 <정치적 발견>인양 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원시님 주장에 대한 제 생각입니다.



    진보신당의 당원들 중 40대가 넘는 분들, 광주세대의 대부분은 스탈린주의자들입니다. 정작 본인은 알지 못한 채 말입니다. 그것은 원시님 말씀처럼 스탈린 시대에 만든 "소련, 동독 사회과학 아카데미에서 나온 4종 세트를 번역"한 책들로 공부를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사상의식을 처음으로 세례 한 것이 스탈린에 의해 각색된 ML주의였습니다. 사민주의자를 욕처럼 쓰던 시대에 학습을 했고 그 영향은 사민주의에 대해서 공부하지 않게 했습니다. 카우츠키나 베른슈타인을 떠올리면 ‘배신자’나 ‘수정주의자’라는 접두어가 자연스럽게 입에 붙었을 뿐 그들이 마르크스의 주장에 가진 문제의식을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시대였습니다. 공부에 게으른 개인들의 탓이 크겠으나 첫 세례의 영향력은 상상할 수 없이 강력합니다. 고백하자면 저 역시 그렇습니다. 그러나 셰리 버먼의 <정치가 우선한다>를 보면서 지금의 스웨덴을 설계하고 만들었던 사람들도 우리와 꼭 같은 고민을 안고 살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마르크스의 후계자임을 자임했고 자신들의 정치활동이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교의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파에게 <국민>의 마음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맑스주의 두 개의 기둥, 사적유물론과 계급투쟁을 버리고 <민족>을 우파보다 먼저 선점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우파에게서<국민의집>을 빼앗아오기에 이릅니다.

    특히 주목한 것은 닐스 칼레비의 <소유권>에 대한 분석입니다.
    닐스 칼레비는 <소유권>을 분리할 수 있는 “여러 권리가 묶여있는 하나의 다발로”규정하고 “사회적.경제적 자원에 대한 자본가들의 통제를 제한하는 모든 개혁은 사회주의 사회로 가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요컨대 “개혁은 단순히 사회 변화를 준비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것 자체가 사회의 변화”라고 제시했던 것입니다. 칼레비의 주장은 사민당의 당원들에게 “해방감”을 느끼게 했습니다. 저도 “해방감‘을 느꼈습니다.


    91년 신노선 이후로 우리는 사민주의자입니다. 그러나 커밍아웃 없는 변신이었습니다.
    20년이 흐른 지금에 까지 우리는 사민주의의 몸에 스탈린주의라는 외투를 껴입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정체성은 이미 20년 전<아웃팅>당했으나 정작 스스로는<커밍아웃>하지 못하고 왜곡된 채로 지내온 세월이 너무 깁니다. 기괴하지 않습니까?

    우리들이 제기한 이슈가 법과 제도의 개선으로 현상되지 않는다면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소위 소금정당으로 남는 길을 택한다면 이슈의 생산만이 가능한 정당으로 남겠지만 그런 건 정당의 형태가 아니어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복지문제를 이슈화하고 의제를 선점하고 있는 곳은<복지국가 소사이어티>아닙니까. 우파들의 재집권을 결사적으로 막고자 하는 자유주의 세력의 위기감이 팽배한 요즘입니다. 진보신당에게 강제된 기회이기도 위기이기도 하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지역에서 사는 당원이고 제 주변의 당원들은 20여년전의 셰례에서 아직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때에 <정치가 우선 한다>라는 책은 “학적으로 따지면 셰리 버먼의 마르크스에 대한 이해 (저술이나 연구방법)는 깊지 아니하다”라는 원시님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원시님 처럼 마르크스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은 우리들에게는 반드시 ‘필독’하고 고민해야 할 책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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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시
    2011.02.11 17:13:03

    가슴아파도/ 님, 예전에 남긴 글인데, 이렇게 글로 답변을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여러가지 토론주제들이 많이 써져 있군요.

    1. <정치가 가장 중요하다 the primacy of politics> 에서 논쟁거리가 되는 것은, 그리고 또 앞으로도 생각해볼 것은,
    1) 경제가 정치를 규정하거나 결정할 때도 있고 -> 97년 IMF 외환 위기의경우, 위기 동인들
    2) 그런데 꼭 경제가 정치를 규정하지 않을 때도 있고, 그런 사례들도 있고, -> 97년 IMF 위기시, 미국 행정부 클린턴의 지시와 IMF 총재의 명령이 한국정부에 그대로 전달되는 경우.

    경제와 정치 관계, 또 경제와 다른 문화, 스포츠, 법등과의 관계들에 대한 "규정, 결정, 선차성" 문제는 여전히 남습니다.

    2. 제가 님의 견해에, 위글에서 하시고자 하는 이야기에 공감하는 것은, "20년 전 공부한 책들로부터, 생각하는 법으로부터 우리 당원들, 혹은 한국의 진보적인 좌파나, 사람들이 자유롭지 못하다", 이 부분입니다. 제가 누굴 탓하고 있을 시국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언젠가 다시 조금 언급하겠지만, 이미 20년 전에도 소련-중국-북한교과서에 대한 비판은 했고, 커리큘럼도 폐기했습니다. 그러나, 운동권 자체가 이미 조직화되었고, 정파별로 굳건한 성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정파 조직별로 다 다를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한국은 91년 이후, 거의 1997년 IMF 위기가 터져 나올 때까지, 지적인 암흑기를 거치게 됩니다. 지금도 정치 정당은 있지만, 실천을 정리하고 결정체로 남길 "철학"이나 "사상", 그리고 "정치노선"에 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뒤떨어져 있습니다. 이 부분은, 우리가 앞으로 채워야할 부분입니다. 늦었더라도 해야죠.

    3. 사회민주주의에 대해서는, 전 마르크스주의자도 사민주의자도 아닙니다. ---- 어떠 어떠한 방법론을 차용할 수는 있지만, 특정 인물의 주장이나 방법론을 따를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한국 현실 reality"을 진단하는 "인식론"이나, 사회과학 방법론은 우리 스스로 만들어야 합니다.

    아울러, 2002년 이후, 계속해서 반복해서 하는 이야기지만, 전 특정 국가의 모델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위 세리 버먼의 책도 당연히 보면 좋죠. 그리고, 하나의 참고 도서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나라 국가 사회 공동체 체제들에 대해서, 많이 공부하면 할수록 좋다는 게 제 입장이고 제가 해온 방식입니다.

    세리 버먼은 <비교정치>, 그 중에서도 유럽 정당사가 주 전공입니다. 그런데, 세리 버먼의 책이나 연구는 그냥 참고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왜 스웨덴만 참고해야 합니까? 그럴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정책연구들은 가급적 많은 나라들 많은 사례들을 수집한다 + 한국의 좌파정당, 진보정당의 발전 프로그램과 연결시킨다 + 한국의 정치적 지형과 시민,노동자들의 정치적 요구를 고려한다. 등등, 해야할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4. 정책 입안에서는 사민주의 정당이나 사민주의 정책들 (1945년 - 1975년 서구 유럽 사민주의 국가에서 소위 혼합경제 mixed economy, 코포라티즘 체제에서 나온 산물들)에 대해서 당연히 참고하고 있습니다. 이건 이미 2000년 이후 민노당 시절부터 지금 진보신당까지 해오던 작업이고요. 그래서 특별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책을 참고한다고 해서 <우리가 사민주의자이다>라고 규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또 다른 나라 정책들이 그대로 한국에 적용되는 그런 시절도 아니며, 그렇게 될 수도 없습니다.
    정치적 실천을 해 나가는데, 참고 자료가 된다는 것이고, 우리들의 정치적 상상력을 키우는데 도움이 되는 연구들, 특정 하나의 국가의 사례가 아니라, 여러나라 법률과 정책들을 학습해야 합니다.

    5. 진보정당의 주체형성과, <복지국가 소사이어티>의 정책 생산과는 다른 차원입니다.
    진보정당의 실천 기획은 더 포괄적입니다. <복지국가 소사이어티> 연구야 의미가 당연히 있겠죠. 그러나 그런 정책연구는 정당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닙니다. 아울러 제가 케인지안에 대해서 2가지로 나눠서 설명을 드린 적이 있는데요, 좌파가 아니더라도, 케인지안이나 포스트-케인지안은 한국에서 진보정당활동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케인지안들도 1개만 있는 게 아닙니다. 행정-관료-테크노크라트 케인지안이 있고, 또 사회적 케인지안도 있습니다. 여러가지 다양한 흐름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책>을 공부하고, 남의 나라 경험들을 가져올 때는, 반드시 <역사적인 고민>이 있어야 합니다.

    6. 우리 스스로 한국 도시들, 지역, 사람들, 자본주의, 대기업, 은행 등에 대해서 연구하고 조사하고, 정치적 기획들을 만들어 내는 게 또한 중요한 일입니다. 이건 우리 정당에서 해야합니다. 이러한 정치적 실천 없이는, <정책>만 남의 나라에서 받아들인다고 해서 <정책 정당>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마르크스 문제는 다음에 기회가 되는대로 더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앞으로 많은 주장, 토론 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