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 노트 Notes on the Politics of Korea

518광주는 '비극'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온갖 고름들이 터져나온, 아니 터뜨린 진정한 생존의 출발점이다. 유행처럼 번진 힐링(치유)은 고립된 자기 성공철학으로 귀결되기 십상이다. 멘토 비지니스는 획일화된 성공기준을 사회적으로 승인받는 고대 그리스 소피스트들의 상업적 정치적 공연이 되어가고 있다. 


518광주는 비극이 아니다. 518 광주, 5월 18일부터 5월 27일, 10일간의 벌어진 비극적 사건이 아니다. 518광주를 진정한 생존의 출발점이라고 했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 살아가는 방식, 우리 모두는 아닐지라도 518 참여자들의 크고 적은 실천들의 파장은 우리들의 살아가는 방식을 바꿨다.  518 이전의 정치, 국회, 노동, 미국식 자유민주주의, 군부, 도시 빈민, 아줌마, 공동체 정신, 좌익, 한국역사 등에 대한 관점을 바꾸게 된 것이다.


518 광주, 그 10일간은 우리가 이상화할 수 있는 공동체 정신, 이 세상의 모든 고등종교에서 '경전화했던' 개념들, 예수의 '이웃사랑', 부처의 '자비', 공자 맹자의 '측은지심'과 '시비지심'이 광주 금남로와 충장로에 모인 사람들을 통해서 현실로 드러났다. 



(1980년 5월 광주항쟁 당시, 계엄군이 퇴각하고 난 후에, 광주 시민들이 밥을 해서 서로 나누주고 있다. 시민군의 총은 쌀과 밥과 떨어질 수 없다. 밥을 하는 사람들이 왜 길거리로 나왔는가? 그들의 정치적 행동 뒤에 숨은 정치철학은 무엇인가? 우리가 2013년 518 광주를 살아있는 정치로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 


힐링과 멘토 비지니스는 고립화된 개인들의 이야기와 전략들을 기계적으로 병렬적으로 나열할 뿐이다. 현실에서는 힐링과 멘토 전략들을 서로 싸우고 상출하고 원리적으로 또다시 대립할 수 있다. 왜냐하면 힐링과 멘토의 출발점이 고립된 자아, 이 세상과 맞서 싸우는 파편화된 '나'라는 것에서 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힐링과 멘토의 주인공인 파편화되고 고립된 '나'는 금남로와 충장로라는 요새 유행하는 '파크', 혹은 '광장'과 거리가 멀다. 그 힐링 멘토 비지니스는 우리 개별화된 파편화된 여러 '나'들, 다시 말해서 공적인 '자아'의 행복에 대해서, 또 공동체의 보호와 방어에서 출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518 광주를 '피상적으로 정치'하는 사람들이, 김대중 전 대통령과 연관짓는다. 또 반대로 김대중과 노무현을 '좌파'라고 매도하는 일본 아베식 한국우파들이 있다. 518 광주를 고정된 1980년 광주로 고정시킨다면 김대중 전대통령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33년이 지난 518 광주를 뒤돌아볼 때, 그 518 광주의 실천주역들이 남긴 '정치 철학', 즉 자기 공동체의 수호와 방어, 그리고 쌀 한톨이라도 나누려는 공생의 철학은, 고 김대중 대통령의 실제 통치와는 오히려 정반대였다. 1997년~2002년 고 김대중 대통령의 재임기간, 한국사회는 역설적이게도 김대중을 탄압했던 박정희 독재시절보다 더 친미적으로(어메리칸 스탠다드라는 이름으로) 돌진했다. 또 미국식 자본주의의 삶의 방식(강자를 숭배하고 약자는 그저 루저가 되는)이 우리 일상 곳곳에 파고들었다. 아이들까지도 '너희집 아파트는 몇 평이냐?'가 친구되기 직전에 확인해야 하는 질문이 되었다. 


518 광주는 그 사실에서부터 정치적 의미까지 새롭게 해석되어야 한다. 새롭게 해석되기 전에 역사적 진실 역시 계속해서 발굴되고 발표되어야 한다. 이름없이 죽어간 사람들부터, 발포자까지 밝혀내야 한다. 박근혜 정부만을 그 비판대상으로 삼고, 그 나머지는 다 '우리편'이라는 발상과 실천은 무의미하다. 안철수 멘토 비지니스 몰아주기에 불과할 것이다. 518 광주를 재해석하자는 취지는 옳다.  


'숭배받지 못한, 알려지지 않은 영웅들 Unsung Heroes/Heroines' 이 있다. 이들 모두가 실은 윤상원이다. 


518 광주는 비극이 아니다. 10일간 광주를 움직인 사람들, 경찰서, 군대, 공무원 조직 등 기존 지배질서가 없어도 광주는 세계에서 가장 평화로운 마을, '정'을 나누고 '밥'을 나누고 '김치'를 나누는 삶의 터전이었다. 왜냐하면 광주와 광주 인근 전남 도민들은 임진왜란 (조일전쟁)처럼, 마치 왜적이 침입한 것으로 그 광주사태를 인식했기 때문이다. 


(한 영화감독에 의해서 재조명된 광주 항쟁 다큐멘타리, 오월애. 포스터가 인상적이다. 518 광주의 진정한 부활은, 한정된 몇개의 공간, 예를들어서 광주 도청 등에만 촛점을 맞추는 게 아니라, 수많은 미시적 공간들에서 자기 역할을 해낸 주체들이 왜 그런 실천을 해냈는가를, 그들 스스로 말하게 하고, 아니면 우리가 찾아서 발굴해야 한다. ) 



518 광주 현재적 의미는, 상품화된 힐링과 멘토를 넘어선 적은 실천, 나눔의 삶, 그것이다. 이 공자같은 말씀, 부처님같은 평범한 말, 2000년 민주노동당 이후 2012년 통합진보당 패배와 붕괴까지 삶을 뒤돌아본다면, 이 나눔의 삶이 얼마나 힘든가를 우리는 알 수 있다. 518광주 정신을 계승했다던 진보정당들이 자기 스스로 얼마나 이 나눔의 실천을 행동으로 옮겼는지 뼈저리게 반성해야 한다.  518 광주, 밥해주는 사람들의 저 사진 속의 주인공들의 무심한 표정, 그냥 무던한 표정이 부끄러울 뿐이다. 그래서 2013년 518 광주, 그 나눔의 삶이 뼈아프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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