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itical leadership2014. 3. 10. 17:44

박은지 님을 추모하면서 


일부 언론들이 박은지 사망 사건을 두고 자극적인 기사를 내보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수천 겹의 고뇌와 삶의 무게가 (고) 박은지 님의 어깨 위에 있었을 것이다. 비록 짧은 생으로 마감했지만, 그에게는 꿈과 희망이 있었다. 박은지 님이 말하는 자기 이야기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 다음

10분 정도의 인터뷰는 (고) 박은지 노동당 부대표가 29세의 나이로 진보신당 언론국장을 시작하면서 밝힌 포부이다. 



 


2008년 박은지 언론국장 (진보신당) 인터뷰 편집을 하면서 <넌 할 수 있어 / 강산애 노래> <은지 / 배따라기> 두 곡을 삽입했다. 당시 <당원이라디오> 인터뷰 목적은 다음과 같았다.
29세의 나이로 차 세대 진보정치가로, 당원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당직자로 꿈을 펼치기를 바랬다. 한국에서도 진보정당이 20-30대 청년들에게 미래 직장으로서 자리잡을 수 있기를 희망했다. 
 




http://www.laborparty.kr/bd_member/571473

2008.10.01 14:50

 [당원이 라디오 10 ] 중앙당 25시: 다른 정당에는 없는 발 - 박은지 편


조회 수 564 댓글 13


진보신당 중앙당 25시, 그 네번째 순서로, 당 대변인실 언론국장 박은지씨를,  낭만자객, 쟈넷 김수경이 만나고 왔습니다. (9월 30일)  

질문 : 당에서 하고 계신 일은요? 

박은지:  저는 중앙당 대변인실에서 언론국장일을 하고 있구요 박은지라고 합니다 (냉장고 입니다.^^) 
             2008년 7월 9일부터 당직자로 일하고 있고, 2달 좀 넘어서 3달 째 되고 있습니다

질문 : 그 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박은지: 학교에서 국어를 중학생들 한테 가르쳤고 학원강사 일도 했습니다.

질문 : 진보신당 들어와서 당직자로서 보람을 느낄 때는? 

박은지: 촛불정국 이후에, 언론에서 당이 멀어지는 상황이라서... 당에서 제가 하는 일은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이쁘게 포장해서 보도자료화 하는 일을 주되게 하고 있는데요... 작은 보도자료라고 해도 다른 언론사에서 취재를 하려고 하는 점에서 보람을 느낌니다

질문 : 내가 이것만큼은 남보다 더 잘 할 수 있다. 노골적인 자랑질 한번 해주세요.

박은지:  뻔뻔함..마구 들이대는 거...ㅎㅎㅎ

질문 : 중앙당에서 일하면서, 가장 힘들거나 스트레스 받는 일은?

박은지: 능력이 부족한거죠...워낙 전문적인 능력이 요구하는 일인데... 아직 제가 준비도 덜 되어 있고, 또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서 미숙하고, 부족한 것도 있고...

질문 : 어떠한 능력이 필요하신 것 같아요?

박은지: 정치적 감각이겠죠...언론에 이렇게 이야기하면 언론에서 잘 받겠다 하는 이러한 판단...주력해서 그때 그때 하는 판단... 아직은 경험이 부족하고 경험 좀 더 쌓여야 할 것 같습니다.

질문 : 다른 당직자들과 비교해서 어떤점이 부족하다고 느끼시지?

박은지 : 그냥 (중앙당 다른 당직자) 옆에 계신 분들과 비교하고 있습니다. 

(동작구 지역 모임 중에서, 리얼리스트 사진작가 황정연, 맹명숙 등과)
질문 : 네트워크 실력은? 대변인실의 언론 담당의 활동하는데,  당 안팎에서 도와줄 분들이 있다면?

박은지: 당 내부에서는 중앙당 체계에 맞게 돌아가는 것이고, 모니터링에 대해서는 외부 혹은 직장생활 하시는 이른바 평당원들... 제가 살고 있는 동작 당원들이 말해주는 내용을 모니터링받고요...

기자들에 대해서는 나름 친해지려고 하고 있습니다

질문 : 본인이 맡고 있는 일을 더 잘 하기 위해서, 어떤 공부를 하나?

박은지 : 보도자료 작성하는 법...언론사 입시생들을 위한 강의등을 듣고 있고... 독서모임이나 세미나 등을 하고 있습니다

질문 : 중앙당과 지역당에서 가장 친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친구나 멘토역할을 하는 분이라면?

박은지 : 누구라고 말하면 다른 분들이 서운해 하실텐데...개인적인 감정을 말할 수 있는 멘토와 일과 정치적 관점에 대한 멘토는 떨어지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우리 당에는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다. 굳이 말하라고 하면, 저랑 비슷하게 들어오고, 나이도 비슷한 나영정 동지와 교감을 나누고... 지역에서는 연배가 높은 직장생활을 하시는 당원들로 부터 이야기를 나누고 조언을 받고 있습니다

질문 : 일하면서 가장 힘든점은...아기있으시죠?

박은지: 26개월 아기가 있는데...남편과 나눠서 보는데...쉽지도 않지만 어렵게 느끼지도 않습니다...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이 대단히 힘들고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질문 : 당직자 선발될 때 어떤 절차를 거쳐서 오게 되었습니까?

박은지 : 민노당때 당직자 그만둔 상태에서 총선을 맞이하였고 지역선거운동을 하면서 정치적으로 진보신당 활동을 열심히 하고자 생각했습니다. 동작구 선거운동을 하면서, "내가 참 정치적 발언을 못하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대학원에 갈까, 뭐를 할까 경험있는 분들한테 조언을 구했고요. 중앙당에서 일하는 것이 어떻겠냐? 이런 의견이 있어서, 6월 공채에 응시를 하게 되었고, 7월부터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질문 : 월급에 만족하나요?

박은지 : 매우 만족(?)합니다. 기본급 120만원에 수당이 조금 붙는 정도인데...일반 사회단체, 비정규직 혹은 영세상인 당원에 비해서, 비정규직 노동자에 비해서 결코 적은 금액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질문 : 전문가 그룹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적정한 급여는 아닐텐데요?

박은지 : 상대적인 것이고 절대적으로 적정한 금액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평당원들도 일상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비교해 보았을때 많은 어려움이 있으신데 적은 금액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질문 : 언론국장으로서 포부는?

박은지: 당원들은 언론에 비치는 모습에 관심이 많으신것 같습니다. 진보신당이 정치적인 뉴스에서 소외되는 상황인데 다른 당에서는 할 수 없는, 대표적으로는 당원들의 자발성을 이쁘게 꾸며내서 자료화할 것인가? 그것 많이 생각하고요, 장기적으로는 거창한 것보다 나도 즐겁고 다른 분들도 즐거운 그런 당생활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부지런하게 움직이면 그렇게 되지 않을까? 소박한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발 (슬리퍼가 상당히 인상적임). 진보신당 당원들의 활동을 알려내는데, 부지런한 발의 활약을 기대해봅니다.



제작: [당원이 라디오] 시험방송 제공:  새로운 데모 연구회: 
   http://cafe.daum.net/new-demo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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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진보정치’ 꿈 접고 떠난 박은지 노동당 부대표, 무엇이 젊은 그를 좌절케 했나
    이명희 기자 minsu@kyunghyang.com-
    입력 : 2014.03.12 13:43 수정 : 2014.03.12 14:27인쇄글자 작게글자 크게
    고 박은지 노동당 부대표 걸개그림. 노동당 제공
    고 박은지 노동당 부대표 걸개그림. 노동당 제공

    “한 해 동안 아이는 키가 9.4cm 컸고, 방과 후 학교 어딘가에서 수업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냈으며, 가방 한 번, 실내화 주머니를 두 번 잃어버렸다 다시 찾았고, 꿈을 기관사에서 딱지장사로 바꿨다…”

    고 박은지 노동당 부대표(35)가 지난달 1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긴 “아이가 1학년을 무사히 마쳤다”로 시작하는 글이다.

    ‘싱글맘’으로 홀로 아들을 키워오던 그는 사랑하는 아들을 남긴 채 지난 8일 오전 서울 사당동 자택에서 목을 매 숨졌다. 그의 아들은 이제 겨우 아홉살. 자신 역시 서른 다섯살에 불과했던 젊은 진보 정치인은 예고도 없이 일찍 세상을 떠났다.

    경찰 조사 결과 박 부대표는 우울증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그는 무엇 때문에 우울해야 했을까.

    박 부대표는 유서를 남기지 않았다. 그가 왜 우울했는지는 그의 과거를 통해 유추하는 방법 밖에 없다.

    사범대학을 나와 교사를 꿈꿨던 그는 학원 강사를 하면서 89통의 이력서를 쓴 뒤에야 서울의 한 중학교 교사가 됐다. 하지만 정규직 교사가 아닌 기간제 교사였다. 계약한 지 6개월 만에 임신을 했다는 이유로 해고 통보를 받았다. 계약기간은 1년이었지만 기간제 교사였던 그는 이 기간을 채울 수 없었다.

    정규직 여교사들은 출산휴가, 육아휴직 등 ‘모성애를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지만 기간제 교사들이 이런 권리를 누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임신한 기간제 교사가 고민한 것은 오로지 ‘어떻게 해야 퇴사를 피할 수 있을까’ 뿐이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있지만 그의 해고를 막지 못했다. 박 부대표는 당시 전교조도 전체 교사 중 15%에 해당하는 기간제 교사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다고 한 인터뷰에서 밝힌바 있다. 전교조 교사가 돼서 참교육을 실천하고, 조합의 일원으로 운동도 하고 싶었던 박 부대표는 교사의 꿈을 접고 그렇게 학교를 나왔다.

    그는 생활을 위해 다시 학원 강사를 시작했다. 아이가 생겼으니 다른 곳으로 눈 돌릴 여유도 없었다. 학원 강사를 하며 돈도 제법 모았지만, 마흔이 넘어서까지 학원 강사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진보정당에 희망을 걸고 2008년 진보신당 공채에 지원해 정치에 입문했다, 이후 18대 총선 동작을 김종철 후보 수행비서, 언론국장, 대변인을 거쳐 19대 총선에서 진보신당 비례대표 후보로 활동했다. 지난해 2월에는 노동당(전 진보신당) 부대표로 당선돼 대변인까지 겸직했다.

    그러나 진보정당 당직자로 생활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박 부대표는 지난해 11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웬만한 전문직, 고소득직이 아닌 이상에야 아이를 키우면서 살기 어렵다. 진보 정치 활동하는 사람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고 이혼 후 혼자 아이를 키우며 진보정치 활동을 하는 어려움에 대해 토로한 바 있다. 당시 인터뷰에서 그는 “현재 노동당은 최저임금만 주고 있다”며 “학원 강사 시절 모아둔 돈을 조금씩 조금씩 뜯어서 쓰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아이와 2층 침대를 쓰는 것도 가스비를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나온 발상”이라며 “어떻게든 한 방에서 자야 될 것 같아서”라고 하기도 했다.

    노동당이 활동가들에게 최저임금밖에 줄 수 없는 이유는 한국의 정치 구조 때문이다. 현재 정당들에게 배분되는 국고보조금과 운영지원금의 경우 총액의 50%를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우선 나눠 갖는다. 나머지 50%는 양당을 포함한 모든 정당이 의원 수 비례로 나눈다. 의원을 배출하지 못한 노동당은 국고보조금과 운영지원금을 한 푼도 받을 수 없다.

    노동당이 운영비를 기댈 수 있는 곳은 당비뿐이다. 그러나 당원이 많지 않은 노동당은 이마저도 큰 금액을 기대할 수는 없다. 한 진보정당 관계자는 “관변 단체들도 1년에 수억원의 국고보조금을 받고 있다”며 “의석수가 많아야 지원금도 더 많이 받는 ‘승자독식’ 구도인 현행 정치자금법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가 업무를 맡았던 언론도 진보정당에 무관심했다. 원외 정당이 된 노동당에 대한 기사를 써주는 언론은 거의 없었다. 박 부대표가 지난 1월17일 대변인직을 사임하면서 자신의 트위터에 남긴 글은 “지난 2년여의 대변인직을 마무리하며 언론인들께 한가지 간곡한 요청을 드린다”로 시작된다. 그는 “진보정치의 겨울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은 현재 노동당의 열악한 모습과 다르지 않다”며 “비록 지금은 작은 원외 정당이지만 노동당이 갖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믿고 작은 관심이라도 기울여주시기 바란다”고 호소했다.

    그의 한 지인은 블로그에서 “박 부대표가 진보신당 대변인 시절 전 국민에게 대출을 권하는 ‘김미영 팀장’ 수준으로 기자들에게 문자 폭탄을 돌렸다”고 전했다. 진보신당이란 이름이 단 한번이라도 언론에 더 언급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가 택한 전략이었다.

    그는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는 세상이 변할 거라고 믿었다고 한다. 그러나 세상의 변화는 느렸다. 그러는 사이 박 부대표에게 우울증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는 늘 유쾌하고 화통했기에 주위 사람들은 그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대부분 알지 못했다.

    진보신당 시절 박 부대표와 활동했던 정의당 관계자 ㄱ씨는 지난 10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행복해야 운동도 실천도 할 수 있다”며 “진보정치가 존재감을 잃어가고 있는 현 상황에서 우울증을 앓거나 이혼한 사람도 많이 있다”고 전했다. 그는 “박 부대표를 옆에서 좀더 살펴봐주지 못해 무엇보다 미안한 심정”이라며 “나보다 박 부대표와 더 가까웠던 지인들 중에 이런 생각들로 자신을 자책하며 고민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텐데 이 점도 걱정”이라고 했다. 실제 박 부대표의 한 지인은 자신의 블로그에 “지난번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힘들다고 했을 때 좀더 관심있게 봤어야 했는데 미안하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ㄱ씨는 박 부대표가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에 대해 “희망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희망이 있으면 현실이 힘들어도 얼마든지 버틸 수 있다”며 “현재 노동당이 한국 사회에서 차지하고 있는 존재감에 대해 누구보다 고민이 많고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런 불행한 일이 또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주변 사람들도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 10일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열린 박은지 노동당 부대표 영결식에서 참석자들이 헌화하고 있다. 노동당 제공
    지난 10일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열린 박은지 노동당 부대표 영결식에서 참석자들이 헌화하고 있다. 노동당 제공

    동지를 잃어버린 노동당 역시 분위기가 우울했다. 박 부대표와 진보신당 시절부터 함께 한 이봉화 노동당 부대표는 11일 경향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박 부대표가 우울증을 앓고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불안한 사회에서 우리 모두 힘겹게 살아가며 우울감을 겪고 있는게 아니냐”며 “그의 죽음에 대해 뭐라고 얘기하기 조심스럽다”고 밝혔다. 다만 “그동안 진보 진영이 계파 등으로 분열을 겪었지만 함께 운동해왔던 선·후배들의 도움으로 따뜻하게 장례를 치뤄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부대표의 영결식은 지난 10일 오전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치러졌다. 이용길 노동당 대표는 이날 추도사에서 “죄송합니다. 우리가 그대를 아프게 했습니다. 우리가 그대에게 고통의 짐을 함께 짊어지도록 요구했습니다. 동지는 기꺼이 그 짐을 함께 짊어졌고, 늘 웃는 얼굴로 오히려 주위 동지들을 챙겼습니다. 그 웃음 뒤에서 동지가 어떤 아픔을 인내해야 했는지, 그 아픔의 깊이가 어떠했는지 우리는 미처 가늠하지 못했습니다”라고 안타까워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노동당’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포털사이트에서 ‘노동당’이 인기 검색어에 오르기도 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야.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403121343091#csidx1fd5418233a7a90b1a24858f1010489

    2019.10.12 16:0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도시계획2012. 7. 8. 18:04

설날 <동작 당협>의 창의적인 플래카드를 보고 -

원시

http://www.newjinbo.org/xe/9809082011.02.01 03:14:575222

설날 <동작 당협>의 창의적인 플래카드를 보고 - : solidarity_small_self_employment2.jpg

사례 1 > 9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북미(캐나다와 미국 북쪽 일부 주)에서는 일요일에는 대형수퍼마켓이 영업을 할 수 없었습니다. (종교적 이유도 있고, 서비스 노동자들도 주말이면 쉬어야 하고 등: blue law, retail business holidays act ) 토요일 같은 경우도 오후 5시면 문을 닫고, 심지어 금요일도 6시면 문을 닫곤 했습니다. 


그 결과 동네 길목 코너에 있는 소매 가게들은 상대적으로 장사가 잘 되었는데요, 90년대 중반 이후 법률이 개정되기 시작해서, 소매상들이 대형 수퍼와 할인점과 경쟁해야 하는 현실입니다.




맥도날드 커피?  > 통큰치킨, 피자 사건, 이런 현상은 아주 공격적인 한국식 자본주의 특질로 해석됩니다. 햄버거 맥도날드 회사에서 작년부터 느닷없이 $ 1 달러 커피를 팔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피자>사건에 비하면 애교더군요. 스타벅스 커피 회장이 공개적으로 수익금을 이스라엘 수호운동에 보내는데...가급적이면 <스타벅스>커피는 피하는 게 낫겠다 싶군요. 




동네 상인들의 공동체에 대한 책임의식을 높이는 정치운동 > 할인점, 대기업형 수퍼에서 800원주고 딸기 아이스크림을 한 개 사먹었다. 우리 동네는 1000원짜리 딸기 아이스크림이다. 그러면 문제는 우리 동네에서 1000원 내고 딸기 아이스크림을 한 개 사먹는 게, 기업형 수퍼에서 동일제품 800원짜리를 사먹는 것보다 <그 뭔가 더 낫다>는 게 증명이 되었으면 합니다. 동네 상인들도 그 동네 주민들을 위한 <공적 사업>을 할 수 있는 <진보정당>에서 유도를 해나가고 등등. 그게 동네 정치, 동네 생활터전의 진보정치화의 핵심이 아닐까 합니다.




각 당협별로 다 보지는 못했지만, 당게시판에 올라온 것 중에서 훑어보니까, <동작 당협>에서 내건 플래카드가 눈에 띄입니다. 이재오보다 더 일찍 일어나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건, 발로 걷던, 동네를 샅샅이 방청소하듯이 밀고 닦으면, 구청장도 언젠가는 운영하게 되어 있다고 봅니다. 




solidarity_small_self_employment.jpg




(근데 사진을 다시 유심히 보다: 저 좁은 거리로 차가 저렇게 위험하게 막 지나가네요? 사람들 다치면 어떡할라고? )




향후 30년은 한국의 정치적 좌파에게 <도시 계획>과 관련된 주제들이 정치적 숙제로 남을 것이다. 최근 한국의 노쇠해버린 운동권들이 <철학적 정체성>을 거의 상실해버렸는데, 그건 실제 우리 삶의 터전에 대한 연구나 고민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말로만 87년 체제, 97년 IMF위기 이후 달라진 한국자본주의와 삶의 양식에 대해서 말하지, 실제로 도시 공간에 대한 연구, 그에 대한 정치적 기획은 발전되지 못하고 있다. 




도시 공간 자체가 계급이고 계층이고, 우리들의 행복과 희로애락이 담겨진 정치적 공간이다. 우리는 이제


이러한 도시공간 (서울이면 서울, 인천이면 인천 공간을 10m, 100m 단위로 자르고 끊어서) 그 공간의 "사적 소유 재산권, 자산"에 대한 반성적 해체 및 재구성을 해야 한다. 




일상생활에서 이 사적인 재산권을 세밀하게 다시 분해해서, 시민들의 자아실현, 자유와 평등, 인권과 행복을 실현하도록 하는 것이다. 세금의 정치학, <복지> 담론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서울의 경우 45%가 자기 집이 없는 주민들이다. 500만 인구는 <문화적 정착세대>가 아닌 셈이다. 이 문제를 선차적으로 해결해야 하고, 두번째는 도시 주민들의 노동소득의 격차를 줄이고, 노동시간과 노동강도를 줄이고 완화시켜야 한다. 


 


<도시공간>에 대한 좌파적 실천을 조금 단순화를 시키자면 "삶의 터전"을 자유와 평등의 터전으로, 우리들의 행복의 터전으로 바꾸는 것이다.


      (1) 일 터  (2) 놀이 터 (3) 쉼 터 (4) 집 터 


 


이러한 삶의 터전들을 우리들이 내세우는 삶의 지표나, 정치철학이 실현되는 삶의 공간으로 바꾸자는 게, 추상적으로 이름 붙이자면, 21세기 좌파가 이뤄내야 할 자유,평등, 연대의 사회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일터에서는 노동자도 친구도 없다. 정규직 비정규직 갈라져 있고, 유니폼도 다르고, 소득도 다르다.


      쉼 터, 놀이 터, 집 터 역시, 97년 이전과 현격히 구별되는 "있는 자" 대 "없는 자"로 갈라져 있다.


 


이런 사회 균열과 계급계층화를 디자인해오고, 조장해 온 정치 집단은 누구인가? 이명박 정부 MB 하에서, "미워도 다시 한번, 민주당, 노무현 회상" 이라고들 하지만,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철저하게 우리들의 "삶의 터전"이 돈과 자본의 논리에  종속되도록 그렇게 만들어 놓았다. 이명박 정부하에서 더 노골적으로 조금 더 거친 방식으로 무식하게 전개되고 있다.


 


solidarity_small_self_employment2.jpg 




(길거리에 차가 엄청 많군요? 여긴 차없는 거리 만들기는 불가능할 것같다 ㅜ.ㅜ) 




위 플래카드가 눈에 들어온 정치적 이유 ->




87년 6-10 항쟁, 길거리 정치에서 이제 "삶의 터전"의 정치로 무게 중심을 이동할 때 !


 


      97년 이후, 이제는 "삶의 터전"의 정치를 해야 하고, 그 속에서 자유, 평등, 연대의 가치들을 발견하고 실천해야 한다. 이 삶의 터전에 뿌리박힌 수많은 이해관계들, 물질적 정신적 문화적 법률적 이해관계들의 복잡성들을 공부하고 이해하지 않으면, 삶의 터전을 끊임없이 침입하는 자본, 돈, 부당한 권력을 막아내고 물리칠 수 없다.


 


87년 독재타도를 위해서 길거리에서 돌, 화염병, 물통을 들었다면,


이제 "삶의 터전"에서 나만의 행복이 아니라, "우리모두의 행복, 공적 행복"을 실현시키는데 필요한 모든 사회적, 법률적 수단들을 들어야 한다. 일터에서 재산권, 노동소득을 다루는 법률, 집터에서 도시계획, 아파트 용적율, 재테크 부동산 집 뉴타운 등, 쉼터에서 여가문화와 관련된 모든 사회제도들, 놀이터에서 문화, 예술, 스포츠 활동들과 그 사회적 기반시설과 계급계층 차별 해소 등...87년과 대비해서, 우리들이 상대해야 할 적들이 분화되었고, 수십가지 수백가지인데, 자꾸 역사적인 퇴행을 부추기는 세력들과도 싸워나가야 한다.




<도시공간>에서 정치적 좌파의 실천을 찾아나가고 연구하는 것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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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011.02.01 15:54:26

맹명숙

아이구, 이런 영광이~ 원시님께 발탁되었다는 것으로도 영광입니다.^^ 요즘 생태도시 아바나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도시농업, 공간 활용, 지구온난화 방지와 함께 모든 수출, 수입, 공급이 중단되는 국가적 위기 상태에 몰리게 될 때 우리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구요. 쿠바의 국가적 위기와 극복은 앞으로 지구온난화 또는 신자유주의 체제의 몰락과 경제적 침체에 맞닥뜨렸을때 우리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에 대한 총체적 대안을 진보정당이 먼저 마련해야 한다는 경종으로 받아들여야 할 거 같습니다.


쿠바의 실험은 먹거리생산뿐만 아니라 국민식습관, 의료, 교통 수단, 환경 처리 등 국민 생활과  인프라 전범위에 걸쳐  영향을 주었더군요. 그래서 녹색위원회에서 제안한 도시농업 실험을 진보신당이 전당적으로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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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 수정 댓글2011.02.02 13:55:43

원시

플래카드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굳이 정치적 구호나 표어만을 써 넣을 필요 없다고 봅니다. 




쿠바는 제가 가 본 적이 없고, 많이 공부해보지 않아서 전 아직 드릴 말씀은 많이 없습니다. 


다만 쿠바, 브라질, 멕시코, 칠레, 베네수엘라 등은 한국의 경제구조, 산업구조, 또 도시 등이 많이 달라서, 정책들을 고민할 때,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도심 속에 농업, 혹은 도시와 자연의 공존>이라는 프로젝트는 반드시 우리가 앞으로 30년 동안 <복부인의 나라> <부동산 투기>와 완전히 대조되는 그런 삶의 양식을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럴려면, 우리나라 도시에 대한, 자기 동네에 대한 연구보고서부터, 동네지도부터 작성해야 한다고 보는데요...




맹명숙님이 말씀하신 <녹색위원회>, <도시농업 실험> 등을 어린이, 청소년, 노인, 여성등 더 민감한 타겟 계층과 더불어 동네에서, 또 일터까지도 그게 확산이 되도록 했으면 합니다. 




이거 거의 노다지 판이라서요, 할 일이 태산일 것입니다. 삶의 양식을 바꾸는 문제이기 때문에요.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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