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창고/20122019. 1. 24. 19:53

2012.12.21 04:57


[대선3 빅텐트론 한계] 지역 투표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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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원들도 의견을 주시기 바라면서... 아래와 같은 소 결론을 얻었는데, 그 이유는 다음 글에서 밝히겠습니다




소 결론: 




1) 대통령 선거 야권 단일화, 즉 진보정당 후보 사퇴 전술은 현 시점에서 지역 기반으로 하는 정치 연합에 비해서 큰 정치적 효과는 없다. 


 a. 단적인 사례로 2002년 노무현과 2012년 문재인 비교시, 울산은 플러스 4.5% 효과에 지나지 않고, 


 b. 호남지역은 오히려 마이너스 효과를 가져오고 박근혜 새누리당 득표율이 더 올라가는 현상이 발생함


 c. 야권연대론에 대항해, 박근혜 새누리당은 모친 육영수의 고향이 충북 옥천이라는 사실을 이용, 이인제(충남 논산) + 이회창을 비롯한 구 자민련, 자유선진당과 연대를 가져옴. 




* 표는 다음 글에서 제시함. 




2) 결선 투표제가 없는 상황에서, 영남 지역을 핵심 기반으로는 새누리당을 고립시키는 전술은 진보정당 후보 사퇴나 민주당 지지가 아니라, 진보정당을 보다 더 강한 정당으로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새누리당을 고립 해체시키는 다양한 방식을 정치적으로 계발할 필요성이 있다. 민주당과 진보좌파당이 각자의 정치적 영역을 개척해서 새누리당의 눈과 발바닥을 공략할 필요성이 있다.




3) 아울러 진보좌파 정당은 한국 유권자들의 지역투표 성향에 대한 단기, 중기, 장기적 대처법이 있어야 한다. 계급투표가 정착되지 않고 있고, 알포드 계급지수가 현격하게 낮은 한국 선거 행태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통해 현실적인 전략을 짜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좋은 것은 지역 시의회(구의회;광역의회)와 행정(자치단체장)에서 모범을 만들어 보수 유권자들가지도 진보좌파 당원들 일 잘한다고 칭찬을 받는 게 가장 빠른 길이다. 지역 투표와 계급 투표의 접합지점들을 발견해서 그 지역의 정치 현안들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예를들어서 서울-지역과 격차, 서울-토호 세력의 동맹과 부정부패 고리 근절 방안들.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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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민주당2014. 8. 9. 15:43

한홍구 강연이 놓치고 있는 역사적 사실


1. 민주당 투쟁근육을 좀 먹었는가를 설명하지 못했다. 역사적으로 투쟁하는 야당의 성공담을 흑백 다큐멘타리로 틀어주었으나, 민주당(새정련)이 그 투쟁하는 야당 근육을 만들어낼 지는 의문이다. 8월 5일 강연회 직후, 세월호 진상 규명 특별법을 서둘러서 새누리당에 헌납한 것은 불길한 징조이다.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 한홍구 <어제의 야당>은 민주당(새정련)과 민주당 의원들이 왜 박정희 전두환 독재시절에 가지고 있었던 투쟁근육을 다 잃어버렸는지 그 원인들을 ‘역사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하에서, 그리고 이명박 박근혜 정부 하에서도 민주당 대다수 의원들이 새누리당 의원들이 누리는 기득권을 동일하게 누린 사실들을 빠뜨리고 있다. 박정희 전두환-노태우 독재에 저항하는 야당 투쟁근육이,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어떤 정치적 측면과 저항해야 하는가?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박정희-전두환과 동일한 군사파쇼 정부가 아니지 않는가?


특히 한국정치사 경제사에서 1997년, 전세계적으로 가장 혹독한 IMF 긴축 정책을 수용했던 김대중 정부 이후, 2014년 지금까지 소위 민주당 야당의원들은 과거 신민당-평민당과 달리, 한나라당-새누리당 의원들이 누린, 다시 말해서 박정희-전두환 시절보다 더 혹독해진 한국 자본주의 성과를 그들의 정치 경쟁자 새누리당과 같이 향유했다.


박정희-전두환 독재 하에서 상층 20%가 소유한 재산보다 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를 거치면서 상층 20%가 소유한 재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4배,5배까지 증가했다. 그만큼 상대적으로 하층, 중산층은 붕괴되거나 상대적 박탈감에 빠지고 말았다. 


OECD 각종 소득 통계나 세금 이후 가처분소득 통계를 봐도 상위층과 하위층의 격차는 박정희-전두환 독재 치하보다 5배~7배 이상 벌어졌다. 심지어 2014년 통계를 보면, 한국 소득 상위 1%가 전체 소득의 16.6%를 차지할 정도가 되었다. 전체 국민 소득 구간를 5개로 나눴을 때, 최상 20%가 최하 20%의 소득 격차가 2.5배 이상 발생해서는 안된다. 진보좌파야 소득격차를 1에 가깝게 하기 위해서 노력하겠지만, 최소한 민주당과 같은 리버럴 정당 (liberalist ) 에서는 2~3배 사이로 막아야 한다.


민주당의 투쟁 근육이 좀먹거나, 그 근육이 주근깨, 혹, 반점, 지방덩어리로 변질된 이유는, 박정희-전두환 군부독재와 싸웠던 그 치열한 투쟁정신만큼, 1997년 이후 한국 사람들을 병들게 만든, 노동의욕을 감퇴시키고, 살 맛 떨어지게 만들었던, 이 소득 격차, 일해도 가난해지고 상대적 박탈감만 생기는, 한국 자본주의 병폐와 투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자본주의 병폐와는 좌파만 투쟁하는 게 아니라, 전 세계 각국 리버럴리스트 정당들도 어느 정도 (타협적으로 하더라도) 실제 사회복지 정책들을 도입한다.


한홍구 <어제의 야당> 강연이 시사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왜 민주당 의원들이 97년 이후 새누리당 (한나라당) 의원들과 별반 차이가 없는가? 과거 386-486 학생회장 민주당표 국회의원들이 실제로는 한나라당-새누리당 의원들과 일상 생활에서 향유하는 경제적 성과물, 다시말해서 절대적 상대적으로 박탈당한 노동소득의 격차 그 기반 위에 서 있다는 역사적 사실을 <어제의 강연>이 말했어야 했다.


인간은 당연히 경제적 동물만은 아니다. 월급 총량이 정치적 의식을 100% 규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 배가 부르는데 배고픈 자의 심정을 알기 역시 쉽지 않다. 박정희-전두환 고문정치, 최루탄 정치, 중앙정보부-안기부 정보정치, 반공-반북 사상 이데올로기 정치에 맞서는 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어려운 정치가 바로, 자본주의의 소득 격차 문제이고, 그것을 가능한 법률적 사회적 교육 문화 제도 장치이다. 





한홍구 교수 강연 내용 요약: by 원시


제목: 어제의 야당

글쓴이: 한홍구(성공회대학교)

발표 시간 및 장소: 2014년 8월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

주제: 야당 어디로 가야 하는가

http://www.polinews.co.kr/news/article.html?no=211559


1. 핵심 주장:

헐거워진 허벅지 투쟁근육을 튼실하게 하라. 투쟁하는 야당 (투야)가 되어라.


2. 한홍구의 진보정당 인식: 2004년 총선과 노무현 탄핵 국면에서 야당지지자들이 열린우리당을 제 1당으로 만들어주고 그에 덤으로 민주노동당에 10석을 준 것이다.


3. 투쟁하는 야당 강연 역사적 논거:


1971년 8대 선거에서 신민당 의석수를 그 이전 40석에서 89석으로 늘려줌 (투쟁 대상은 박정희 영구집권 획책인 유신헌법 반대)

1985년 신민당 제 1야당 전격 진격 (사쿠라 야당인 민한당을 대체할 반-전두환 독재 투쟁 야당 신민당 승리)

1992년 총선에서 공룡보수-민자당 (김영삼+노태우+김종필) 221석을 149석으로 만들고,

김대중 평민당과 꼬마민주당에 97석을 주었다.

그 이후 총선과 대선에서도 마찬가지로 투쟁하는 야당을 유권자들이 지지했다.


4.대안

정치 주체 386-486들이 각성하라. 비육지탄(髀肉之嘆)

30년간 학생회장이지 정치적 ‘성인’이 되지 못했고, 애늙이로 전락했다.

광주 정신과 DJ 김대중 정신을 계승하고, 호남 정치를 복원하라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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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철학2012. 11. 28. 21:29

가수 수지 suzy 씨가 영화 <26년>을 추천했다. 그리고 가수 이승환씨도 제작비가 없어서 4년이나 완성이 연기된 <26년>의 투자자라고 한다. 이제 이런 분들이 과거와 현재 운동권들보다 시대를 더 앞서 나가는 것 같다. 


역사를 늘 재해석하지 않는 정치세력들은 퇴보하게 되어 있다. 현재 진보파나 정치적 좌파들이 한국정치에서 퇴보하거나 썩는 이유들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역사에 대한 재해석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모든 정치적 운동은 지적 운동이다. 조야한 민중주의도 서유럽 파리 베를린 런던 좌파 흉내나 복사는 우리의 대안이 아니다. 


2010년 하나의 에피소드. 80년 광주 항쟁 당시, 마지막까지 민주주의의 성지였던 전라남도 도청을 사수하다가 계엄군의 총에 맞고 사망한 분이 윤상원 선생이다. 그 아버지가 윤석동옹인데, 대학시절 맺은 인연으로 가끔 전화통화를 하는데, 올해는 하지 못했다. 돌아가시기 전에 다큐멘트로 남겨야 하는데 마음 뿐이다.


2010년 윤상원 선생 여동생(막내), 남자 동생 분과 전화연결이 되었다. 윤상원 선생 살아온 이야기를 물어보았다. 그런데 최근 가족들이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했다. 대구에 살고 있는 여동생분이 이런 말을 했다 "큰 오빠가 지금 살아있었다면, 다른 사람들처럼 변절을 했을까? (국회의원되거나 518운동정신을 망각한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 같음) 차라리 그 때 도청에서 나오시지 않고 그렇게 가신 게 어쩌면 그 분 명예를 위해서 더 나을 수도 있겠다"

명절이면 윤상원선생 가족들이 모여서 이런 이야기도 이제 한다는 것이다. 30년이 지났기 때문에 이렇게 한 숨 돌리고 고인에 대해서, 가족의 슬픔을 초월해서 이렇게 저렇게도 이야기해본다는 것이다. 


우리의 게으름, 내 자신이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는 광주 연구. 80년 광주 문제가 어찌 윤상원선생 가족들만의 문제이겠는가. 대구 살고 있는 윤상원 열사 막내 동생은 20여년 전 윤상원 생가에서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그 때 큰 오빠를 생각하면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세월의 무게,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이제는 농담아닌 농담도 그 가족들이 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이 말이 이렇게 어려운 줄을 새삼  깨닫는다. 


[5.18 이야기] 큰 오빠 그리고 큰 아들 윤상원


http://www.newjinbo.org/xe/566714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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