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창고/20112019. 1. 26. 17:49

2011.01.18 19:51


셈수호르/ 기계적 도식적인 사고는 현실에서 정치운동을 축소시킬 수 있습니다.


원시 조회 수 950 댓글 12 ?


새진보당 논의나, 통합관련 토론은 따로 이야기하기로 하겠습니다. <통합 논란> 문제의 원인들은 여러가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노동정치를 포함해서)  당내에, 당게시판에서, 잘못된 이분법, 노동정치 강조=진보신당 사수파이고, 나머지는 통합파 이런 식 논의는 문제의 복잡성을 너무 단순화시킨 것입니다. 올바른 문제진단도 아니고, 해법도 <속칭 묻지마 만사형통 통합파>와 비생산적인 논의만 불러일으킬 가능성도 있습니다.


중간계급과 노동자계급(진보신당이 당 통합 논의에 휘둘리는 이유)

셈수호르 2011.01.18 16:29:48 691 / 0 2

http://www.newjinbo.org/xe/962415 


셈수호르님의 글을 읽었습니다.  열심히 데모하고,공장노동자들과 같이 정치사업을 하시는 분에게, 비판을 가하려니 기분은 좋지 않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고전적인 (좋은 의미로)" 활동가시라는 느낌도 받습니다. 


요새 당게시판, 그리고 한국 좌파들,진보정당들, 정치인들, 셈수호르님이 "이론적인 마르크스 해설서" 언급하시면서 중산층/중간계급, 이런 것과 과연 얼마나 상관이 있을까? 셈수호르님은 <중간계급 middle class : 중산층, 중간층 이렇게 해도 무방하다고 봄> 틀로 설명해보려 하지만, 1) 그런 시도는 의미도 있겠다 그런 생각도 듭니다만 2) 너무나 많은 다른 논쟁들이나 사회조사가 필요로 하는 방향으로 가버릴까 우려됩니다.


1. 셈수호르님의 글에서 나타난,  "노동자 계급", "계급과 정치의식"의 관계에서, 기계적이고 도식적인 사고를 엿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현재 한국에서 고민해야 할, 또 전세계적으로 생각해봐야할 지점은, "노동자 계급이 혁명적이다"는 명제에 대한 신념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것인가?", 혹은 "왜 노동자들은 한나라당에 투표하고, 민주당에 투표하고 있는가?" 이에 대한 우리의 정치적 답변이 있어야 합니다. 


또 구체적으로 현대자동차 노조, 기아자동차 노동조합 선거 패턴은 왜 "1차 투표에서 비운동권 1위, 2차 결선투표에서는 1차 투표에서 2위를 한 운동권 정파가 다시 이기는가? (실용주의파가 이긴 적도 있지만)" 87년 투쟁, 97년 IMF 위기 이후 그 차이는 뭐고, 왜 한국의 노동조합 노조도 "완장과 계층 상승"의 논리 앞에 무기력한가? 이런 "정치의식"에 대한 원인 분석과 답변, 실제 피튀기는 실천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셈수호르님은 아니 정규직 말고, 다른 어떤 순수한 계급의식을 말하고자 합입니까?


2. 셈수호르님의 정치적 주장 (통합논의 등)에 대해서 공감은 가지만, 이를 증명하는 방식은 별로 답변이 못된다고 봅니다. 


초등학교 야구배울 때, 코치님이 "직구 이외에 변화구나 커브를 못 던지게 합니다." 그러나 프로야구에 와서, 야구 투수들의 어깨와 팔의 성장이 어느정도 멈추기 시작한 시점에서는 "변화구, 체인지 업, 슬라이더, 포크볼, 팜 볼, 스플릿" 등 직구가 아닌 다른 구종들을 장착하게 합니다. 


계급분석 직구입니다. 계급과 정치의식의 관계, 또 계급과 거리가 실제 존재하는 (상대적 자율성이건) 정치의식에 대한 설명은, 야구투구와 비유하자면,  변화구, 커브, 체인지 업, 슬라이더, 포크볼, 팜 볼, 너클 볼, 스플릿 등입니다. 


(*한국의 좌파 수입업자들 중에, 알튀세의 "over-determination: A라는 결과를 낳는 원인이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한 가지 이상일 될 수 있고, 정치적 정세에 따라서 어느 특정 원인이 더 부각되거나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있다라는 의미 = 다-원인 결정 이라는 의미인데요. 이걸 중층결정론이라고 번역을 해서, 한국말이 이상해짐. 여튼 인간의 정치 의식을, 계급 계층의 정치의식을 결정하거나 규정하는 요인이 무엇인가? 에 대한 질문에 대한 한 대답이라고 봄) 


고전적인 의미에서 "노동자 계급의식은 외부에서 - 전위 정당, 조직 정당- 주어지는 것이다 (레닌)", "노동자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주체적 능동성을 강조한 (로자 룩셈부르크)"의 대립각이 해결된 적은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그람시와 다른 좌파들이 70년, 60년 전에 던졌던 질문 "왜 노동자계급들은 공산당에 투표하지 않고, 다른 정당들에 투표하는가?" 이런 문제들도 지속적으로 우리가 해결해야 할 주제들입니다. 


3. 한국 정치사에서, 반독재 저항운동, 노동운동, 시민운동 등에 대해서 실사를 하게 되면, 위와 같은 셈수호르님의 도식적인 계급 = 의식의 일치 공식은 이에 대한 합당한 사례들보다는, 반례들이 더 많을 수 있습니다. 

아울러, 우리가 앞으로 더욱더 고려해야 할 정치적 주제들은, 도시들 안에 거주하는, 다양한 계급 계층들이 가지고 있는 정치의식들입니다. 공장 플랜트 안에서만 일하는 "노동자 계급의식"이 아니라, 도시 전체 삶의 공간과 인적 네트워크에서 움직이는 노동자 시민들에 대한 정치적 문화적 의식들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런식으로 노동정치가 확장되지 않으면, 셈수호르님의 분류법이나 계급=의식 일치/상응 공식은, 오히려 노동정치를 축소시킬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위 글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를 쓴 것입니다. 세세한 것은 시간이 허용하는대로 올려보겠습니다만...당원들과 같이 토론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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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2'

카르킨 2011.01.18 20:31

다른 나라에 계시는 분이라 설정이 아니라 


일부라도 실현을 하고 있는 그곳에서 본대로 얘길하시네요.


 댓글

셈수호르 2011.01.18 21:21

 제 글에 대한 코멘트 감사하게 받아들입니다.  아쉬운 점은 제가 의도하지 않았던 부분에 대한 평가라는 점에


있습니다.  저는 계급 분석만 했지 그들의 정치의식을 단 한번도 분석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유일하게 했던 


것은 한국 사회의 구성 계급을 양적 크기로 분석해본 것이 고작입니다.   제가 당게에 글을 쓰는 것은 노동자 

대중을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아실 것입니다.  당원들에게 호소하고 설득하기 위해 쓰는 것입니다.


저는 아직까지 단 한번도 노동자계급은 노동자 의식을 가진 존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다만 자신의


존재적 위상이 노동자라는 것 뿐이지 그들이 노동자 의식으로 무장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그런 불일치를 해결해가는 것이 우리들의 임무이기도 하지요.  자동적으로 존재와 의식이 일치하면 우리들이


구태여 정당을 만들고 활동을 할 이유는 하나도 없겠지요.  그들이 알아서 해결할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원시님은 저에 대한 평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원시님 자신의 의견을 올리시는 것이 좋겠네요.


저는 비록 노동자계급과 사회주의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강조하지만 그들이 그것을 쉽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들의 이야기보다 사회 전체가 강요하는 의식의 강력함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런 점에서 저는 지속적인 실천을 강조합니다.  말이 아니라 실천!  우리 당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죠.


우리가 어떤 정책과 공약을 내놓아도 노동대중들은 그저 괜찮구나! 하는 수준에서 그냥 흘려보냅니다.


마음을 안 열고 있는 것이지요.  자본주의 사회의 지속적인 강력한 세뇌가 그들의 마음을 우리로부터


닫아버리게 하는 것입니다.  그 닫힌 마음을 열게 하는 것은 제가 볼 때는 바로 신뢰! 그 자체입니다.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실천을 통해 우리들이 믿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확인시켜야 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그들은 우리들에게도 마음을 열고 우리의 주장을 들어보게 됩니다.  그렇게 하여 자본주의


사상과 우리의 사상이 경쟁하게 하는 것이지요.  


"공장 플랜트 안에서만 일하는 "노동자 계급의식"이 아니라, 도시 전체 삶의 공간과 인적 네트워크에서 움직이는 노동자 시민들에 대한 정치적 문화적 의식들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마치 그람시적인 목소리로 들리는군요.  그런데 전 그런 접근법에 대해선 하등 관심이 없습니다.  패배자의 변명같은 느낌이 강해서 말입니다.  저는 학자적인 분석에 현실을 꿰어맞추는 것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것이 부족해서 우리 운동이 질곡에 빠졌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오히려 바람보다 먼저 눕는 풀잎처럼 원칙조차 지키지 않고 끊임없이 개량화하는 운동가 자신이 운동을 망쳤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라서 입니다.


 댓글

잘살자 2011.01.18 23:21

원시님의 말은 '시의적절하게 변화구도 필요"함을 강조하는 것인데요.

 댓글

원시 2011.01.18 23:25

셈수호르님/ http://www.newjinbo.org/xe/824120 => 여기서 쓰신 내용이 정운영<가치론>에 나오는 이야기랑 비슷합니다. 아니면 셈수호르님과 정운영님이 우연찮게 똑같은 책이나 비슷한 글을 읽은 것 같군요. 




우리 운동을 회생시키기 위한 조건들은 많다고 봅니다. 


이론이 뭐를 의미하는지 모르겠지만, 필요한 공부는 늘 하는 것을 셈수호르님이 부정하는 것은 아닐테고요. 




학습의 범위는 무궁무진하고 다양하다고 봅니다. 그것까지 부정하실 필요가 있나요? 


셈수호르님도 계속해서 이론적 용어도 사용하고, 비판도 하면서 쓰시는 용어들도 다 어떤 특정 이론적 사유나, 관점이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네 현실에서 팩트 팩트 사실 사실 이런 게 있나요? 




학습과 이론공부라? 이렇게 개명된 세상에 그 두 개가 분리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삼성이 바보여서 <경제연구소> 만들어서 수십명 조사원 데려다가 월급주고 고용하는 게 아닙니다.


셈수호르님은 누구랑 싸우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정치적 적들과 싸워서 이기기 위해서는 뭐가 필요한지?


비정규직 노동자들 교육시켜서? 박사만들어서 <삼성경제연구소>에 대적하자? 그게 아닙니다. 




누가 우리의 정치적 적이나, 경쟁자인지 생각해보자는 것입니다. 




그 정도입니다. 




알튀세니 뭐니 그건 에피소드에 불과하고요. 


 댓글

셈수호르 2011.01.18 22:37

 죄송한데요.  정운영씨의 책은 읽어본 적도 없네요.  저는 이론적인 부분은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이론이 


우리 운동을 회생시켜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람시 이후부터인


것 같군요.  그래서 알튀세도 전혀 와닿지 않았습니다.  실천적으로 패배하고 실패하니 그것에 대해 자꾸만 


정당성을 부여하려고 하는 것이 위와 같은 이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학습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런 학습은 기본적인 수준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기본이 어디까지인지가 문제긴 하지만요.




원시님은 지금 학습과 이론 공부를 혼동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댓글

원시 2011.01.18 21:41



"오히려 바람보다 먼저 눕는 풀잎처럼 원칙조차 지키지 않고 끊임없이 개량화하는 운동가 자신이 운동을 망쳤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라서 입니다."




=> 좋은 사례들을 올려주시면 좋겠습니다.  그게 알려졌건, 알려지지 않았건, 큰 성공이건, 적은 성공담이건, 그런 일을 잘 하시는 분들도 소개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셈수호르님이 학자적인 분석에 관심이 없다고 하면서, 학자들이 말하는 것을 쓰고 있지 않나요? 정운영"가치론"을 요약해서 올린 것도 있던데요. 셈수호르님 용어가 학자적이라고 봅니다 "자본주의 사상"이 뭔지, 거기에 경쟁하는 우리의 "사상"이 뭔가? 이건 학자적 용어가 아닌가요? 님이 예를 든 마르크스는, 자기 고향 트리어에서 가까운 "본 Bonn"대학에 입학했는데, 본인 의지이건 부모님 권유인지 모르지만, 당시 프러시아에서 유명한 대학인 베를린 대학으로 "편입"합니다. 




님이 자주 쓰시는 마르크스는 실천가이자 학자입니다. 그래서 셈수호르님의 "실천 강조"를 이해 못함이 아닙니다.


전 지구 끝까지라도 가서, 우리에게 필요한 경험이나 이론이 있다면, 정치적 지혜가 있다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우리 운동이 질곡에 빠진 이유들이 뭔지 계속해서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마르크스가 살았던 시대에는 문맹률이 높았습니다. 지금 한국의 노동자들은 마르크스 시대 학자만큼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어떻게 정치 정당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고민을 했으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학자와 노동자를 구별하지 않습니다. 


자본주의시대건 공산주의시대건, 학자도 지식 노동자입니다. 이미 대학 교수도 노조원이니까요. 


그리고, 전 노동자들이 학자가 쓰는 용어를 쓰는 게 하나도 어색하지 않는 그런 시대가 왔으면 합니다. 




셈수호르님이 쓰시는 "학자" 개념 규정은 위에서 제가 말한 게 아니다, 라고 하실 수 있지만,


전 그런 대립구도도 찬성하지 않습니다.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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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조직 성장 연구 주제 : 개신교에서 카톨릭으로 개종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교황 프란시스 영향으로, 카톨릭이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역사적으로는 파쇼와 독재, 혹은 왕족과 손잡은 적이 많았다. 한국에서도 민주화 운동의 도우미로 알려진 김수한 추기경도, 정치적으로는 보수적이고, 노동자나 교사들의 정치적 행동에 대해서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김영삼 정부 편을 들기도 했다. 말년이 아쉬운 게 아니라, 그의 일관된 정치학이 개혁보수였기 때문에 이해가 간다.


그런데 주목할만한 현상이 하나 있다. 전 세계적으로 기독교 인구는 줄어들고 있고, 아시아만이 최후 보루 성장 지대로 남아있다. 미국에 유학온 중국대학생들이 교회를 다니는데, COOL 쿨 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과거 한국사람들처럼.


카톨릭 신자들이 한국에서 증가하고 있다? 이건 새로운 현상이다. '조직가'로서 카톨릭이 왜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는가? 정치가들이 배울 필요가 있다. 특히 신념과 이념에 기초해 정치를 한다는 그룹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1) 자율성의 파괴

2) 관용 부족

3) 교회가 '승진'과 '계급 서열'로 다시 얼룩짐.


진보정당과 교회는 다르지만, 조직의 파괴 원인과 유사하다. 1) 개인들이 당에 들어와서 오히려 비판의식과 창조적 학습능력은 삭감되고, 관료적 집중제와 분파적 행위만을 배운다. 자기 공간의 부재, 이는 미래 비전의 부재로 연결된다. 

2) 자기 자신이나 자기정파의 내용이 빈곤한데, 이를 만회하기 위해 다른 의견을 가진 정파를 공격하거나 탓하는데 시간을 더 많이 할애한다. 

3) 정치적 이념과 가치의 확대에 필요한 정당 바깥 사람들을 당 안으로 끌어들이는 노력보다는, 자기나 자파의 지위 확보에 더 신경을 쓴다. 지난 12년간 진보정당이 쇠퇴한 내부적 요인이다. 9급 공무원 승진 체계보다 더 낙후된 당 운영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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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인 왜 가톨릭으로 개종하나? / 목회사회학연구소 주최 포럼

2006/12/01 (금) 10:38 ㆍ추천: 0

개신교 인구 감소의 원인과 가톨릭 인구의 상대적 증가 현상을 통해 한국 현대인이 어떠한 종교적 심성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 고찰해보는 뜻 깊은 시간이 마련되었다.

‘목회사회학연구소’(소장 조성돈 교수)와 사회학과 신학자들의 연구모임인 ‘일상과초월’은 11월 30일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에서 ‘2005 인구주택총조사 그 이후, 현대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가톨릭 성장’이라는 제목의 포럼을 공동개최했다.

주최측은 이날 포럼이 “지난 2005년 5월 개신교 인구가 지난 10년 동안 14만 4천명이 줄었다는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 대해 어떻게 하면 한국교회가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에서 시작되었다”고 밝혔다.


가톨릭측, “청렴성과 타문화에 대한 유연성이 성장 이끌었다”


가톨릭은 인구주택총조사 결과 지난 10년 동안 74.4%나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날 포럼에서는 개신교의 쇠퇴와 대비되는 천주교의 성장을 통해 현대인들이 어떠한 종교적 심성들을 가지고 있는가를 천주교와 개신교 목회자와 학자들의 연구조사를 통해 분석했다.


첫 번째 발표자로 나선 오경환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명예교수)는 천주교에 대한 호감의 원인으로 첫째 ‘천주교회의 결속력’을 꼽았다. 한국 천주교회는 서울, 인천, 의정부, 수원 등 15개 지역교구로 나눠지는데, 모든 천주교 신부들은 교구장의 허락 하에 인사 및 활동이 이뤄지며 교구 공납금 제도 등을 비롯한 재정운영에도 강력한 결속력을 보인다는 것이다.


오 신부는 둘째로 ‘천주교회의 청렴성’을 호감요인으로 소개했다. 독신생활을 하는 천주교 신부들과 수녀들은 주택을 소유하거나 재산을 모으는 일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에 신자들에게 성스러운 체험과 함께 신뢰를 쌓는다는 것이다. 또 천주교회가 각 성당의 수입과 지출을 신자들의 관리하에 투명하게 처리하고, 신자들의 헌금액을 절대 공개하지 않는 점도 호감요소로 지적했다.


셋째 요소로는 ‘천주교회의 정의와 인권활동’이 거론되었다. 1968년 강화도 한 직물공장에서 가톨릭노동청년들의 노동운동으로 시작된 천주교의 정의활동은 1972년 유신헌법 때 더욱 강력해졌고, 1987년 개헌까지 계속되었는데, 이때의 정의활동이 사람들에게 호감으로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실제 전국 15개 교구 중 정의활동에 적극적이었던 교구가 그렇지 않은 교구에 비해 신자 증가율이 높은 등 정의활동이 가톨릭 신자 증가에 실질적이었다고 오 신부는 설명했다.


오 신부는 넷째로 ‘조상제사와 장례예식에 대한 유연한 태도’를 호감요인으로 꼽았다. 한국 천주교는 1958년 이후 시체나 사진, 죽은 이의 이름이 적힌 위패 앞에서 절하고 향을 피우고 음식을 차려놓는 행위를 허용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유연성이 유교 문화에 젖어있는 많은 한국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고 천주교로 입교하겠다고 결심하는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는 설명이다.


오 신부는 마지막 호감요인으로 ‘타종교에 대한 열린 태도’를 꼽았다. 천주교회는 1930~40년대까지만 해도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타종교에 대해서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자세를 견지해왔으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 이후 비그리스도교 전통들의 의미와 가치를 깊게 성찰하고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대표적으로 천주교의 ‘비그리스도교에 관한 선언’ 제2항에서는 다른 종교들에 대해 “비록 가톨릭교회에서 주장하고 가르치는 것과는 여러 면에서 서로 다르다 해도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진리를 반영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고 언급하고 있다.


개신교측 “한국교회, 성장 이데올로기에 빠져 성스러움 상실했다”


개신교인 입장에서 개신교인 이탈현상을 분석한 박영신 교수(실천신학대학원 석좌교수, 연세대 사회학 명예교수)는 “개신교회는 적어도 외형으로는 다른 집단과 구별되지만, 그 외에는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는 물질주의와 경제지상주의의 이념과 가치와 궤를 같이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즉 교회 밖의 사람들이 바라고 꿈꾸고 얻고자 하는 모든 것을 교회와 교인들도 가감없이 바라고 꿈꾸고 얻고자 한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또 “교인이 많아야 헌금이 많이 들어오고, 당연히 교회를 증축하고 재건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한국교회의 성장 이데올로기 현실을 비판했다. 한국교회가 번듯한 대형 교회 건물을 올려놓으려는데 관심이 집중되고 있으며, 그것이 이른바 목회 성공의 잣대이며 성공한 교회의 평가기준이 되어버렸다는 지적이다.


박 교수는 아울러 한국교회의 ‘성스러움의 상실’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특히 목회자들의 설교에 대해 “(신도들은) 진실성을 찾기 힘든 말만 되풀이하여 늘어놓고 싸구려 농담과 반말과 비속어에 신물이 났다”고 비판하며, “바깥에서 요란을 떠는 온갖 소리들과는 뜻과 지향성에서 다른 구별된 말씀에서 성스러움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목회사회학연구소는 이날 포럼에 앞서 개신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14명을 심층 면접조사해 한국인의 종교성을 ▷정체성이 약한 종교인 ▷가족주의라는 문화적 토대에 근거한 집단적 종교활동 ▷개인적이지만 성스러운 것을 추구하는 종교인으로 분석했다.


이날 포럼은 개신교 목회자와 신자, 가톨릭 관계자들 등 3백여명이 참석했으며, 기독교계 언론 등 다수의 취재진이 참석해 개신교 위기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대변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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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개신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14명 심층면접조사 결과 분석을 요약한 내용이다.


1. 개신교가 밀어내는 요인

▶개신교는 ‘표현’의 종교 - 자신의 내면의 모습을 성찰하고 성경의 가르침을 묵상하기보다는 빠른 박자의 찬양을 부르며 자신의 신앙을 표출하기에 애쓴다는 것이다. 설교나 성경에 대한 가르침에 대해서도 깊이 숙고하기보다는 ‘덮어놓고 믿는 식’이라며, 목사님 말씀에는 “할렐루야”, “아멘”하고 외치라고 하고, 하지 않으면 왜 “아멘”이라고 하지 않느냐며 다그친다는 것이다.


▶외형에 치중하는 교회, 자리싸움하는 교인 - 유아세례를 받고 30대까지 교회 생활을 하다가 개종한 한 여성은 교회에서 헌금 그래프를 그려놓으며 헌금을 많이 내도록 강요했고, 헌금을 많이 한 어떤 교인이 교회에 출석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금세 집사가 되는 것을 보고 크게 실망을 해 교회를 떠나게 되었다고 말한다. 유명 교회에서 집사로 구역장을 지내다가 권사 후보에 오른 후에 성당으로 옮긴 한 개종자는 “자기 교회와 같은 좋은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을 무시하면서 쓸데없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하나님보다는 목사님을 하나님같이 섬기며 장로나 권사가 되려고 선거운동 하는 모습에 질렸다”고 말한다.


▶가족 같은 교회, 시댁 같은 교회 - 개신교회 구성원들은 서로 간에 매우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며 가족과 같은 분위기에서 신앙생활을 하는데, 이것은 친근감을 준다는 좋은 점도 있지만 사생활의 영역이 침범 당한다는 느낌을 주어 불편하게 하기도 한다. 특히 중보기도회와 같은 자리에서 은밀하게 나눈 기도제목조차 다른 사람들에게 공개되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람이 다가와서 “내가 기도하고 있다”는 말을 들을 때면 고맙다기보다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라는 것이다.


2. 천주교가 끌어들이는 요인


▶세속스러운 교회, 성스러운 성당 - 성당의 엄숙한 분위기는 개신교의 화려하고 활기차지만 ‘시끄럽고 가벼운’ 교회 분위기와 대비된다. 천주교의 엄숙한 분위기에 있다 보면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더 나아가 용서받는 것 같은 감동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개신교의 목사들이 일반 성도들과 같이 가정을 이루고 자식도 낳고, 그래서 돈의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세속적일 수밖에 없지만, 반면 결혼을 하지 않고 그만큼 경제문제로부터 자유로운 신부나 수녀들은 훨씬 더 성스러운 생활을 하고 존경할 수 있다고 말한다.


▶피곤한 교회, 자유로운 성당 - 인터뷰한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갔을 때 교인들이 자신들에게 보이는 친절이 진정성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신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가식처럼 느껴진다고 말한다. 그에 비해 천주교는 ‘미온적’이고, ‘너는 너, 나는 나’로 깊이 사생활 침해는 안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한다. 물론 천주교도 개신교처럼 조직이나 구역으로 다 나누어져 있지만, 활동이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에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는 것이다.


▶흑백 논리의 교회, 융통성 있는 성당 - 많은 사람들이 천주교에는 술과 담배에 대한 규제가 없다는 것, 제사를 허용하고 있다는 점, 다른 종교에 대해 관용적인 태도 등을 지적하고 있다. 이것은 다원주의적인 현대 사회에서 폐쇄적인 개신교에 비해 천주교는 개방적이고 융통성이 있다는 이미지를 갖게 한다.


조준영 eunbi@newsp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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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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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999

    다 각설하고 카톨릭이 잘해서가 아니라 개신교가 똥을 싸고 미쳐서 입니다.

    2014.12.29 12:04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