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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조직 성장 연구 주제 : 개신교에서 카톨릭으로 개종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교황 프란시스 영향으로, 카톨릭이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역사적으로는 파쇼와 독재, 혹은 왕족과 손잡은 적이 많았다. 한국에서도 민주화 운동의 도우미로 알려진 김수한 추기경도, 정치적으로는 보수적이고, 노동자나 교사들의 정치적 행동에 대해서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김영삼 정부 편을 들기도 했다. 말년이 아쉬운 게 아니라, 그의 일관된 정치학이 개혁보수였기 때문에 이해가 간다.


그런데 주목할만한 현상이 하나 있다. 전 세계적으로 기독교 인구는 줄어들고 있고, 아시아만이 최후 보루 성장 지대로 남아있다. 미국에 유학온 중국대학생들이 교회를 다니는데, COOL 쿨 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과거 한국사람들처럼.


카톨릭 신자들이 한국에서 증가하고 있다? 이건 새로운 현상이다. '조직가'로서 카톨릭이 왜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는가? 정치가들이 배울 필요가 있다. 특히 신념과 이념에 기초해 정치를 한다는 그룹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1) 자율성의 파괴

2) 관용 부족

3) 교회가 '승진'과 '계급 서열'로 다시 얼룩짐.


진보정당과 교회는 다르지만, 조직의 파괴 원인과 유사하다. 1) 개인들이 당에 들어와서 오히려 비판의식과 창조적 학습능력은 삭감되고, 관료적 집중제와 분파적 행위만을 배운다. 자기 공간의 부재, 이는 미래 비전의 부재로 연결된다. 

2) 자기 자신이나 자기정파의 내용이 빈곤한데, 이를 만회하기 위해 다른 의견을 가진 정파를 공격하거나 탓하는데 시간을 더 많이 할애한다. 

3) 정치적 이념과 가치의 확대에 필요한 정당 바깥 사람들을 당 안으로 끌어들이는 노력보다는, 자기나 자파의 지위 확보에 더 신경을 쓴다. 지난 12년간 진보정당이 쇠퇴한 내부적 요인이다. 9급 공무원 승진 체계보다 더 낙후된 당 운영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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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인 왜 가톨릭으로 개종하나? / 목회사회학연구소 주최 포럼

2006/12/01 (금) 10:38 ㆍ추천: 0

개신교 인구 감소의 원인과 가톨릭 인구의 상대적 증가 현상을 통해 한국 현대인이 어떠한 종교적 심성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 고찰해보는 뜻 깊은 시간이 마련되었다.

‘목회사회학연구소’(소장 조성돈 교수)와 사회학과 신학자들의 연구모임인 ‘일상과초월’은 11월 30일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에서 ‘2005 인구주택총조사 그 이후, 현대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가톨릭 성장’이라는 제목의 포럼을 공동개최했다.

주최측은 이날 포럼이 “지난 2005년 5월 개신교 인구가 지난 10년 동안 14만 4천명이 줄었다는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 대해 어떻게 하면 한국교회가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에서 시작되었다”고 밝혔다.


가톨릭측, “청렴성과 타문화에 대한 유연성이 성장 이끌었다”


가톨릭은 인구주택총조사 결과 지난 10년 동안 74.4%나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날 포럼에서는 개신교의 쇠퇴와 대비되는 천주교의 성장을 통해 현대인들이 어떠한 종교적 심성들을 가지고 있는가를 천주교와 개신교 목회자와 학자들의 연구조사를 통해 분석했다.


첫 번째 발표자로 나선 오경환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명예교수)는 천주교에 대한 호감의 원인으로 첫째 ‘천주교회의 결속력’을 꼽았다. 한국 천주교회는 서울, 인천, 의정부, 수원 등 15개 지역교구로 나눠지는데, 모든 천주교 신부들은 교구장의 허락 하에 인사 및 활동이 이뤄지며 교구 공납금 제도 등을 비롯한 재정운영에도 강력한 결속력을 보인다는 것이다.


오 신부는 둘째로 ‘천주교회의 청렴성’을 호감요인으로 소개했다. 독신생활을 하는 천주교 신부들과 수녀들은 주택을 소유하거나 재산을 모으는 일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에 신자들에게 성스러운 체험과 함께 신뢰를 쌓는다는 것이다. 또 천주교회가 각 성당의 수입과 지출을 신자들의 관리하에 투명하게 처리하고, 신자들의 헌금액을 절대 공개하지 않는 점도 호감요소로 지적했다.


셋째 요소로는 ‘천주교회의 정의와 인권활동’이 거론되었다. 1968년 강화도 한 직물공장에서 가톨릭노동청년들의 노동운동으로 시작된 천주교의 정의활동은 1972년 유신헌법 때 더욱 강력해졌고, 1987년 개헌까지 계속되었는데, 이때의 정의활동이 사람들에게 호감으로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실제 전국 15개 교구 중 정의활동에 적극적이었던 교구가 그렇지 않은 교구에 비해 신자 증가율이 높은 등 정의활동이 가톨릭 신자 증가에 실질적이었다고 오 신부는 설명했다.


오 신부는 넷째로 ‘조상제사와 장례예식에 대한 유연한 태도’를 호감요인으로 꼽았다. 한국 천주교는 1958년 이후 시체나 사진, 죽은 이의 이름이 적힌 위패 앞에서 절하고 향을 피우고 음식을 차려놓는 행위를 허용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유연성이 유교 문화에 젖어있는 많은 한국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고 천주교로 입교하겠다고 결심하는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는 설명이다.


오 신부는 마지막 호감요인으로 ‘타종교에 대한 열린 태도’를 꼽았다. 천주교회는 1930~40년대까지만 해도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타종교에 대해서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자세를 견지해왔으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 이후 비그리스도교 전통들의 의미와 가치를 깊게 성찰하고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대표적으로 천주교의 ‘비그리스도교에 관한 선언’ 제2항에서는 다른 종교들에 대해 “비록 가톨릭교회에서 주장하고 가르치는 것과는 여러 면에서 서로 다르다 해도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진리를 반영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고 언급하고 있다.


개신교측 “한국교회, 성장 이데올로기에 빠져 성스러움 상실했다”


개신교인 입장에서 개신교인 이탈현상을 분석한 박영신 교수(실천신학대학원 석좌교수, 연세대 사회학 명예교수)는 “개신교회는 적어도 외형으로는 다른 집단과 구별되지만, 그 외에는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는 물질주의와 경제지상주의의 이념과 가치와 궤를 같이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즉 교회 밖의 사람들이 바라고 꿈꾸고 얻고자 하는 모든 것을 교회와 교인들도 가감없이 바라고 꿈꾸고 얻고자 한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또 “교인이 많아야 헌금이 많이 들어오고, 당연히 교회를 증축하고 재건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한국교회의 성장 이데올로기 현실을 비판했다. 한국교회가 번듯한 대형 교회 건물을 올려놓으려는데 관심이 집중되고 있으며, 그것이 이른바 목회 성공의 잣대이며 성공한 교회의 평가기준이 되어버렸다는 지적이다.


박 교수는 아울러 한국교회의 ‘성스러움의 상실’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특히 목회자들의 설교에 대해 “(신도들은) 진실성을 찾기 힘든 말만 되풀이하여 늘어놓고 싸구려 농담과 반말과 비속어에 신물이 났다”고 비판하며, “바깥에서 요란을 떠는 온갖 소리들과는 뜻과 지향성에서 다른 구별된 말씀에서 성스러움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목회사회학연구소는 이날 포럼에 앞서 개신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14명을 심층 면접조사해 한국인의 종교성을 ▷정체성이 약한 종교인 ▷가족주의라는 문화적 토대에 근거한 집단적 종교활동 ▷개인적이지만 성스러운 것을 추구하는 종교인으로 분석했다.


이날 포럼은 개신교 목회자와 신자, 가톨릭 관계자들 등 3백여명이 참석했으며, 기독교계 언론 등 다수의 취재진이 참석해 개신교 위기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대변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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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개신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14명 심층면접조사 결과 분석을 요약한 내용이다.


1. 개신교가 밀어내는 요인

▶개신교는 ‘표현’의 종교 - 자신의 내면의 모습을 성찰하고 성경의 가르침을 묵상하기보다는 빠른 박자의 찬양을 부르며 자신의 신앙을 표출하기에 애쓴다는 것이다. 설교나 성경에 대한 가르침에 대해서도 깊이 숙고하기보다는 ‘덮어놓고 믿는 식’이라며, 목사님 말씀에는 “할렐루야”, “아멘”하고 외치라고 하고, 하지 않으면 왜 “아멘”이라고 하지 않느냐며 다그친다는 것이다.


▶외형에 치중하는 교회, 자리싸움하는 교인 - 유아세례를 받고 30대까지 교회 생활을 하다가 개종한 한 여성은 교회에서 헌금 그래프를 그려놓으며 헌금을 많이 내도록 강요했고, 헌금을 많이 한 어떤 교인이 교회에 출석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금세 집사가 되는 것을 보고 크게 실망을 해 교회를 떠나게 되었다고 말한다. 유명 교회에서 집사로 구역장을 지내다가 권사 후보에 오른 후에 성당으로 옮긴 한 개종자는 “자기 교회와 같은 좋은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을 무시하면서 쓸데없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하나님보다는 목사님을 하나님같이 섬기며 장로나 권사가 되려고 선거운동 하는 모습에 질렸다”고 말한다.


▶가족 같은 교회, 시댁 같은 교회 - 개신교회 구성원들은 서로 간에 매우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며 가족과 같은 분위기에서 신앙생활을 하는데, 이것은 친근감을 준다는 좋은 점도 있지만 사생활의 영역이 침범 당한다는 느낌을 주어 불편하게 하기도 한다. 특히 중보기도회와 같은 자리에서 은밀하게 나눈 기도제목조차 다른 사람들에게 공개되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람이 다가와서 “내가 기도하고 있다”는 말을 들을 때면 고맙다기보다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라는 것이다.


2. 천주교가 끌어들이는 요인


▶세속스러운 교회, 성스러운 성당 - 성당의 엄숙한 분위기는 개신교의 화려하고 활기차지만 ‘시끄럽고 가벼운’ 교회 분위기와 대비된다. 천주교의 엄숙한 분위기에 있다 보면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더 나아가 용서받는 것 같은 감동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개신교의 목사들이 일반 성도들과 같이 가정을 이루고 자식도 낳고, 그래서 돈의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세속적일 수밖에 없지만, 반면 결혼을 하지 않고 그만큼 경제문제로부터 자유로운 신부나 수녀들은 훨씬 더 성스러운 생활을 하고 존경할 수 있다고 말한다.


▶피곤한 교회, 자유로운 성당 - 인터뷰한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갔을 때 교인들이 자신들에게 보이는 친절이 진정성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신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가식처럼 느껴진다고 말한다. 그에 비해 천주교는 ‘미온적’이고, ‘너는 너, 나는 나’로 깊이 사생활 침해는 안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한다. 물론 천주교도 개신교처럼 조직이나 구역으로 다 나누어져 있지만, 활동이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에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는 것이다.


▶흑백 논리의 교회, 융통성 있는 성당 - 많은 사람들이 천주교에는 술과 담배에 대한 규제가 없다는 것, 제사를 허용하고 있다는 점, 다른 종교에 대해 관용적인 태도 등을 지적하고 있다. 이것은 다원주의적인 현대 사회에서 폐쇄적인 개신교에 비해 천주교는 개방적이고 융통성이 있다는 이미지를 갖게 한다.


조준영 eunbi@newspower.co.kr

ⓒ 2003-2006 뉴스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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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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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999

    다 각설하고 카톨릭이 잘해서가 아니라 개신교가 똥을 싸고 미쳐서 입니다.

    2014.12.29 12:04 [ ADDR : EDIT/ DEL : REPLY ]

한국정치2014. 1. 11.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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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4일 박종철 열사 27주기를 맞아, 좌천당한 윤석열 검사, 권은희 수사과장을 생각하다.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던 경찰 검찰 공무원이 박근혜 독재와 싸운다?


현재는 진행중인 역사이고, 역사는 현재의 시작점이다. 그러나 역사적 사건이 현실에서 그대로 반복되지는 않는다. 박근혜 정통성 부재는 516군사 쿠데타와 닮았고, 박근혜 공약사기 사건은 박정희가 쿠데타 이후 군대로 복귀할 것이라는 거짓말,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이번이 마지막 출마입니다”라고 말해놓고 당선되자 유신헌법을 만들어 영구집권 획책했던 박정희의 거짓말과 닮았다.


그러나 실상을 보면, 박근혜의 친-자본 정책은 관료주의적 자본통제를 했던 아버지 박정희를 서서히 죽일 것이다. 또한 박근혜의 유신독재로의 회귀라는 평행이론이 있지만, 표창원 경찰대 교수, 권은희 수사과장, 윤석열 검사 등이 지난 1년간 보여준 ‘대통령 권력에 대한 저항’과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공정성 실천은 이 암울한 ‘대박’의 얼음장 밑으로 온천수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1987년 1월 14일, 시위하는 학생 노동자 시민들을 잡아 가두던 전두환 파쇼의 용역깡패였던 ‘치안본부’ 대공수사단은 박종철(당시 서울대 언어학과 대학생)군을 물고문해서 죽인 날이다. 경찰과 검찰의 상징적 이미지는 한국 현대사에서 독재와 자본권력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법과 질서’의 이름으로 구속시키고, 손해배상 청구를 통해, 사람 피를 말려 죽게 만드는 고문관의 이미지였다.



( 6월 민주화 운동의 촉매제가 된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 장례식에서 아버지 박정기 옹의 '종철아 잘 가 그래이... 아부지는 아무 할 말이 없대이. 말씀은 많은 이의 눈물을 적시게 했다)

그런데 2012년 12월 대선의 중대선거 범죄 사건를 고발하고 그 진실을 구사한 권은희 수사과장과 윤석열 검사는 기존의 경찰과 검찰의 독재-꼭둑각시가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윤석열 검사는 헌법질서를 파괴하는 중대한 선거범죄자(국정원)를 구속 수사해야 한다고 국감장에서 역설했다. 그런데 그 국감장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은 윤석열 검사가 상명하복 규율을 위반했다고 역공을 취했다. 그리고 그 이후 윤석열 검사는 1개월 중징계를 받았고, 급기야 어제 검찰 인사에서 대구고검이라는 한직으로 좌천되었다. 권은희 수사과장도 사법고시 합격자 출신들은 대부분 무난하게 도달한다는 총경 승진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1987년 1월 14일 한국의 경찰은 민주화운동을 하던 대학생 박종철을 고문 치사시켰다. 그 이후 27년, 한국 경찰과 검찰 공무원 권은희 수사과장, 윤석열 검사 공히 “상부의 위법한 지시는 따르지 않는다”고 말했다. 권은희 수사과장은 “당신이 광주의 경찰이냐”고 욕을 하던 새누리당 의원을 향해 “대한민국의 경찰”이라고 답변하기도 했다.

표창원 교수, 권은희 수사과장, 윤석열 검사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아직 한국 경찰 검찰 수사독립권과 그 제도의 민주화 길은 멀다.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도를 증명해 준 하나의 사건으로 기록될, 권은희 수사과장: 그는 대선 과정에서 국정원의 댓글 사건을 수사하지 말라는 김용판 서울경찰청장의 외압이 있었다는 것을 양심적으로 증언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지 않은가? 민주당 지도부를 비롯해서 진보정당 (심지어 좌파까지도)은 상대적으로 국정원과 국군의 대 시민 온라인 전투 수행의 심각성과 그 위법성에 대해서 둔감하게 대처한 점이.


지금까지 언론에 보도된 대선 중대선거범죄 사건을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사건과 비교해 보자.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다가올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에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발언을 했다.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이 발언을 문제삼아 대통령 탄핵을 했다. 단순히 “지원하겠다”는 미래 의지 표명으로도 탄핵을 당했다. 2012년 대선에서는 국정원과 국군을 비롯한 다른 국가기관들이 명백히 대선에 개입했다는 실제 증거들이 있었다. 만약 현재 야당들이 국회의원 3분의 2 이상 의석을 가지고 있었다면, 박근혜 당선자를 탄핵하거나 당선 무효화를 선언할 수 있다.




(이번 대선 선거 중대 범죄 사건을 알리는데는, 80년대 반독재 민주화 투쟁의 주체들과는 상당히 다르게, 경찰, 검찰, 경찰대학 교수 등 공무원들의 양심적인 업무 수행에서부터 폭발되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사진은 중도보수임을 표방하는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

많은 비교정치학자들이나 법학자들이 지적했듯이 한국이 대통령제가 아니라 유럽정당정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의원내각제를 취하고 있었다면, 현행 의회를 해산하고 선거를 다시 치를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현실과 한국 대통령제도와 국회 제도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현실적으로 취할 수 있는 행동은 무엇인가?



모든 야당들은 의원직을 내던질 각오로 싸워야 한다. 대선 선거 중대범죄 문제를 선차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헌정질서 파괴자들을 엄중 처벌하고 나서 그 이후에 '민생 현안'을 놓고 새누리당과 경쟁해야 한다.


민주당이나 심지어 진보정당에서도 박근혜가 말한 것을 그대로 따라하는 경우도 있다. “국정원이나 국군 사이버 사령부 댓글이 대선 결과에 미친 영향은 지극히 미미하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정신은 결과 지상주의가 아니다.


또 이런 전략전술가들 이야기도 있다. 대선을 다시 할 수는 없다고들 한다, 대선을 해도 새누리당이 이긴다고 한다. 지금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는 부차적인 문제이다. 민주당 후보 문재인이 당선되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에 지금 대선 선거 중대 범죄자 처벌하자는 게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국정원과 국군이 국민을 상대로 심리적 전투를 벌였다는 것이다. 양심과 정치적 자유를 향해 M 16 총알을 난사했다. 민주주의 기본권인 정치의 자유권을 지키자는 것이다. 1961년 516 박정희 군사 쿠데타에서 시작해서 1993년에서야 종식된 군사독재 하에서 수많은 희생과 투쟁을 통해 획득한 그 민주주의 참정권과 자유권리를 지키자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민주당 김한길대표는 ‘대통령 선거 결과 불복’은 아니라고 했다가, 국정원 수사 특검을 2013년 안에 실시하라고 했다가, 갈팡질팡하다가, 결국 새누리당과 '국정원개혁' 누더기 법안 타협해 버리고 말았다. 1월 13일 기자회견에서 특검수용하라고 '공갈포'를 쏠 예정이라고 한다. 많은 이들이 민주당 김한길 대표의 진짜 의도가 뭔지 의심하고 있고, 이번에도 억지춘향처럼 끌려나와 천막 농성 시늉하는 것 아닌가? 불안해 하고 있다.




(법과 질서를 강조하는 보수 우익의 논리 앞에서, 오히려 현행 법대로 수사하다 보니, 국정원 댓글이 선거 중대 범죄였다고 증언하고 있는 윤석열 검사. 그는 국정원 진실 증언으로 1개월 정직 중징계를 당하고, 대구 고검으로 좌천 발령되었다.) 


다른 한편 진보정당이라고 자임하는 정의당, 노동당 등은 대선 중대 선거범죄 사건을 ‘절차적 민주주의’나 ‘87년 6월체제’ 틀에 국한시키고, 일부 민주당 지지 촛불 시민들의 정치적 아우성 정도로 격하시키는 오류를 범했다. 2013년 여름까지 수사가 진행되지도 못한 상황에서 뉴스타파 등 언론보도 정도에서 터져나올 때까지, 국정원 국군의 대 시민 심리전투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윤석열 검사 등이 국감장에서 밝힌 증언은 국정원과 국군 사이버 사령부 등이 2012년 대선에서 ‘헌정 질서’를 파괴하고 대한민국 헌법 자체를 유린했음을 보여주었다.


양심적 시민의 입장에서 13일 김한길 기자회견 하는 날, 민주당 점거라고 하고 싶은 심정이다. 검찰청 경찰성 인사과에 가서 항의 방문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한국정치사에서 검사란, 검찰청이란, 독재 반대, 노동자 해방과 인권을 주장하면 '용공,종북' '빨갱이' '국가보안법' '집시법위반' '손해배상청구'로 시위자들과 노동자들을 구속했던 자들이다. 그런데 그렇게 각인된 검사나 떡검찰청에서, 윤석열 검사같은 '그냥 법대로' 수사하고 보니, 12월 대선은 중대 선거 범죄가 발생했으니, 국정원 직원들 4명을 구속수사해야 한다고, 국정감사장에 나와서, 7시간을 넘게 증언했다.


이런 광경을 지난 40년, 아니 한국 정치사에서 본 적이 있는가? 1월 14일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한 지 27년이 되는 날이다. 1987년 그 날은 치안본부 대공수사단이 박종철을 물고문 전기고문했고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고 하던 날이다. 한국 정치사에서 검찰 검사란, 이렇게 경찰이 고문한 것을 용인하고 명령하던 권력이었지 않은가? 독재의 시녀였던 검사들이 대선선거가 중대범죄이고 선거법위반이라고 전 국민들 앞에 나와서 TV 로 생중계해주고 있지 않은가?




(양심적인 종교인들과 진보정당들이 대선 불법 선거 엄정 처벌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집권 1년도 채 되지 않아 이러한 정권 정통성 논란이 된 것은 유례가 없었다) 


절차적 민주주의건 형식적 민주주의건 민주주의 발전 없이는 노동운동, 좌파정치 성장할 수 없다. 87년 6월 항쟁없이 7월8월 노동자 대투쟁 있을 수 있었겠는가? 노동운동 진보정당 운동없이 민주주의 내용이 심화되고 실질적인 민주화 방향으로 전진할 수 있겠는가? 기계적인 이분법과 도그마화한 선차성 (형식보다 내용, 정치적 민주화보다 경제적 민주화)을 단순도식화하지 말라 ! 절차적 형식적 민주주의 쟁취를 위해서도 수많은 희생과 피가 필요하고 한국사에서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격언성 문장도 있지 않았는가?



박근혜는 특검 수용하지 않는다. 원세훈 김용판 법정 판결 이후에 다시 한번 거짓말과 허언으로 이 상황을 모면하려 할 것이다. 진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전면에 나서서, 현재 모든 야당들 대표는 사퇴할 각오로, 모든 현직 국회의원들은 사퇴할 각오가 없다면, 박근혜의 정통성 시비 싸움에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다.


1987년 1월 14일 전두환 독재의 시녀였던 경찰은 23세의 청년 박종철의 민주화 희구와 그 양심을 물 속에 처박아 질식시켜 죽였다. 27년 이후 그 독재 시녀임을 거부하는 경찰 표창원, 권은희, 검찰 윤석열 검사 등은 공무원의 ‘양심’과 ‘자존심’을 우리들에게 보여줬다.


역사는 단순히 반동으로 복고로 회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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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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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학규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첫번째 사진설명을 좀 바꿨으면 합니다. 호헌선언이전에 박종철군고문치사사건이 발생했습니다~~

    2014.01.11 15:57 [ ADDR : EDIT/ DEL : REPLY ]
    • 예. 문장이 그렇게 해석될 수도 있겠군요. 전두환 호헌 선언은 아마 제 기억에도 4월이었던 것으로... 원래 문장에서는, 6월 항쟁을 더 촉발시키는 역할을 한 것이 박종철 열사의 죽음이었다. 전두환 호헌 발언 이후에. 이런 의미였습니다.

      2014.01.11 22:01 신고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