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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별/2011

프랑스 사회당 사례: <집권>의 최소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 지방행정정부의 15% 장악과 3차례

by 원시 2019. 1. 26.


2011.01.21 22:02

조승수대표/ 대선 <민주당>과 연정, 진보정당 급격 추락 가능성이 더 높다



원시 조회 수 1043 댓글 0 ?

 


진보정치 대통합과 새로운 진보정당건설을 위한 진보진영 대표자 1차 연석회의 개최 (이하 새 진보당 건설)에서 조승수 대표의 모두 발언을 읽고 후기를 씁니다. 

 


조승수 대표의 발언이 외교적인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애매하다. 모호하다. "인생 새옹지마, 남향의 햇볕 많이 들 집, 미래를 성찰하자?, 집권은 수단이라고 하면서도 또 집권을 가훈으로 쓸 때가 되었다."

 

이게 다 모호하고 애매한 발언이다.  8자 회담이외에 민노당+진보신당 (사무총장 1인 + 부대표급 1인 = 4인 회동 소위구성)에서 얼마나 실질적으로 투명하게 논의될 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1) 과거 청산이 민노당만 반성하라 (대북정책, 패권주의 등)으로 축소되어 있고 2) 민노, 사회, 진보신당 3당의 자기 반성 주제들은 없다 3) 집권이라는 대야망, 근거없는 낙관만 그리고 있다. 

 


<민노-진보신당 4인 회동>안은  <경로 고민: 정종권 안>에서도 말한 "협상 과정 자체가 정치적 주목을 받을 기획"으로 드라마화되어야 한다?는 방안도 아니다. (사무총장 1인 + 부대표급 1인 = 4인 회동 소위구성) 혁명적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감흥 드라마" 실패일 것이다. 이 문제는 차후에 논의하고, 우선 2012년 대선 승리와 집권에 대해서 비판하고자 한다. 


민노당 국회의원 5명가지고 3년내내 4%~5%, 진보신당 2%, 사회당 0.4%라는 위기의식을 가진 진보정당들이 느닷없이 또 2012년 대선에서 <민주당과 연립정부> 집권의 꿈을 꾼다. 이것이 지금 상식적으로 가능한 <미래 상상>이며 <창발적 아이디어>인가?  대선에서 후보 전술들은 몇 가지 안되지만, 2~3가지 정도는 된다. 그러나, <민주당>이 실제로 정권교체에 성공한다고 해도, <연립정부> 구성안은 한국의 진보정당의 수명을 오히려 단축하고, 성장발전에 저해가 될 것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위 주장의 배경은, [전략2] 조승수 의원은 왜 침묵하시나? "승수 모델"과

집권 시간

 

원시-참고. 그리고 대략적으로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1. 현재 민노, 진보신당, 사회당 등은  <집권>의 최소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 지방행정정부의 15% 장악과 3차례 (12년 운영 경험) 선거 승리를 경험하지 못했다. 다음 글에서 설명하겠지만, 프랑스 공상당이 1981년 사회당과 연립정부 수립할 물적조건도 지방행정정부 집권 경험 뿐만 아니라 (특히 10만 도시 규모), 중앙 의회 점유율도 평균 14%에 이르렀다. 

 


2. 비-한나라당 민주당 연립정부의 성공 가능성이 그렇게 크지 않다. 2012년 한나라당 (이명박류) 정권 도저히 못보겠다. 갈아보자. 최소한 정치적 민주주의 (여론 형성 집단인 언론사, 한겨레, 경향, MBC, KBS 등 노조가 진보적인 언론사 노동자들 여론은 정권교체 열기가 대단함 90% 이상임)만이라도 보장하자. 이건 맞다. 그러나, 이러한 정권교체 열망과, 그 이후, 민주당표 정부의 성공 (개혁) 가능성은 그렇게 높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실제 민주당 정부 세력들의 자체 실력의 자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도 복지 문제로 내부 분열중) 세계경제도 지금보다 당장에 좋아질 게 없다. <노.사.정 위원회의 테이블>을 형성하면서 소위 코포라티즘 성공 가능성이 그렇게 높지 않다. 


현재 <새 진보당> 건설 논의에서, 2012년 이후 정권의 성공 가능성을 논하지 않고서, 총선, 대선 전략을 짜는 것은 위험하다. 우리 진보정당에 결코 바람직한 전술이 아니다. 

 


3. 민주당과의 연립정부 수립에서 (2012년 이후) 행정 내각 몇 자리 (프랑스 사회당 + 공산당에서 공상당 출신이 4명 행정 장관으로 들어감) 내 준다고 해서, 전체 정부 정책의 효과를 가져올 수 없다. 이는 개인적 인사 발탁 정도에 그칠 것이며, 5년 임기 내내 <진보정당> 몫이 보장되지 않는다. 장관 임기 1년, 2년에 그치는 경우를 보라. 막연한 "집권 " 희망에 들떠서는 안된다. 민주당 연립정권의 실패시, 한국의 진보정당의 위상 추락과 자체 내부 분열은 더욱더 가속될 것이고, <적은 정당>에서 도약할 여지조차 없앨 가능성이 더 크다. 

 

 

 

왜 그런가? 다른 나라 사례들은 다음 글에서....

 

2011.01.21 23:25

 

연립정부 실패 후, 후유증 심각 사례 (프랑스 사회당과 공산당)

 

원시 조회 수 3266 댓글 6 ?

 

이 글을 올리는 배경: 현재 새 진보당 건설 논의에서, 현 정파와 정당들의 자기 반성과 성찰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들은 연구되거나 발표되지 않고 있다. 2012년 총선에서 20석 달성, 2012년 대선에서 <연립정부>수립, 정권교체라는 <스튜피드 가든>의 꿈만을 발표하고 있다. 이는 진보 올드 보이 올드 걸들의 회갑잔치 계획에 불과할 것이다. 

 

 

 

현재 찌들대로 찌든 관성 (철학, 정치노선, 정치활동 방식, 조직화 방법, 언론 활동, 세대간 차별 격차, 차세대 혹은 진보적인 여성정치가 육성 프로그램 부재 등)에 대한 극복 의지없이,주어진 정치일정에 수동적으로 대응한다면, 2012년 대선 이후에 더 큰 후유증이 더 클 것이다.  

 

 

 

1981년 5월 프랑스 사회당과 공산당은 연립정부 (4개 장관을 공산당에게 줌) 를 수립했다. 그러나 1984년 봄, 사회당과 공산당은 연정을 파기했다. 실패로 돌아간 것이다. 그 이후 공산당은 89년~91년 소련해체 영향도 있었지만 쇠락의 길을 가고, 프랑스 사회당 미테랑 이후 지도자 배출과 리더쉽 실패로, 우파에게 정권을 양보하기도 했다. 지금 우파 사르코지가 집권하게 된 뿌리가 미테랑 사회당 정부의 우경화와 실패이다. 

 

 

 

프랑스 사회당과 공산당의 연정 수립과 파기에 대해서.  (프랑스 정당사를 공부하신 당원들의 부연설명을 기대함) 

 

 

 

1981년 5월 10일, 프랑스는 제 5공화국 헌법 하에서 최초로 사회당 대통령을 만들어냈다. 6월 총선에서 사회당은 국회에서 사회당 + 공산당이 다수당을 이룸으로써, 대선 삼수생 프랑소아 미테랑은, 대통령 권한과 의회 권력을 동시에 쥐게 되었다. 당시 공산당  국회의원은 44석 (15% 득표율), 프랑스 최대노조 (CGT)를 장악하고 있었다. 

 

 

 

첫번째 연정 실패이유는, 사회당+공산당 등이 기대했던 것만큼 프랑스 시민사회와 국가(행정) 개혁 속도는 빠르지 못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 정당 정치에서 오랫동안 경쟁관계를 이룬, 노조들, 좌파 조직들, 각종 정치 분파들이 사회당 미테랑 정부를 뒷받침하지 못했고, 오히려 갂아 먹었다. 그래서 미테랑 정부 역시 “케인지안 재분배 정책”을 집행하는데 필요한 여러가지 시민사회의 도움들을 받지 못했다. 특히 지방정부 차원에서 정책 집행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함으로써, 미테랑 사회당 정권의 구심력은 떨어지게 되었다. 

 

 

 

전통적으로 프랑스에 내려오던 국가주의 (Etatism)도 미테랑 정부에서는 제약을 받게 되었고, 특히 시민사회의 조직적인 지원이 없었기 때문에, 미테랑 사회당 + 공상당 연립정부의 경제/사회 개혁 정치는 큰 성공을 낳지 못했다. (프랑스는 좌파건 우파건, 프랑스 애국주의, 프랑스 예외주의 (복지정책 등)가 있음) 

 

 

 

두번째 이유는, 1984년 6월 유럽 선거에서, 사회당은 21%, 공산당은 11% (장 마리 르 펜 Le Pen 신-파시스트 당보다 조금 앞섬)을 받는 졸전을 함. 3년간 동거 (4개 장관을 공산당이 역임함)은 파기되었다. 연정 해체의 경제 사회적 원인이 있는데, 당시 국제 경제, 유럽 경제와 정치상황으로부터 사회당+공산당 정부 역시 자유롭지 못했다. 그 결과 사회당 (미테랑)은 보다 더 오른쪽으로 가게 되고, 공산당은 연립정부로터 탈퇴하게 된다. 

 

 

 

이러한 프랑스 사회당 공상당의 연립정부 실패로 인해서, 유권자들 사이의 분열은 더욱더 심각해졌다. 서로 각자 살길을 찾아 나서게 된다. 사회당의 주축 ( 중간층 기술자와 중산층 관리자층)과 도시 신중간층들 사이에도 분열이 생겨나게 되었다. 긴축재정으로 인한 세금인상은 중산층도 분열시켰다. 다른 한편, 공산당 측은 기존 전통적인 노동자들의 불만을 달래기 위해서 1984년 봄에, 사회당+공상당 연립정부에서 탈퇴했다. 연정이 실패하자, 각 정당들이 살아 남기 위해서 줄 달음을 친 것이다. 이러한 연정 실패 이후, 프랑스 속담처럼, 유럽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선진적이고 진보적임을 자랑하는 "프랑스 유권자들도, 왼쪽에 심장을 달고, 오른쪽 호주머니에 투표했다” 

 

 

 

* 참고 자료: Hall, Peter (1986). 피터 홀. '제 8장 프랑소와 미테랑이 사회주의 실험' "경제 통치: 영국과 프랑스에서 국가 개입 정치:  Governing the economy : the politics of state intervention in Britain and France "

 

 

 

 

<도표 1> 프랑스 국회: 프랑스 공산당이 지난 57년간 평균 13.6% 의석 차지.

 

이는 최소한의 <연립정부> 의 물적 조건이다. 비교:  한국 진보정당 11년 경험에 평균 지지율 4~7% 사이이다. 

 

 

 

 

french_communist_party_legislative_since1924_average.jpg 

 

 

 

2.  대통령 선거와 의회 선거: 프랑스 사회당 성적표

 

집권 조건은 평균 26% 지지율 확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울러, 대통령 선거에서 결선 투표제도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1981년 1차 투표에서는 미테랑이 1등이 아니고, 우파 지카르 데스테가 1위였으나, 2차 결선 투표에서 1위가 됨  

 

 

 

 

 

french_socialist_party_26.jpg

 

 

 

 

 

 

 

 

 

 

원시 2011.01.21 23:36

 정치 경제적 배경

 

 

 

1. 81년 5월 당시, 프랑스 사회당 내 3가지 정파들:

 

 

 

사회당 내 3개 분파들이 있었다.  (1) Jean-Pierre Chevènemen:  신-마르크스주의자 : 국가개입 강조, 국유화, 보호 관세하에서 성장 강조 등 민족주의적-사회주의 색채가 강함. ( 81-83년 프랑스 연구조사-산업부 장관 역임. 83년 장관 사임 이유는, 미테랑 대통령과 의견 충돌. 그 내용은 유럽 통화 제도(EMS : European Monetary System) 에 프랑스가 편입하자는 미테랑과 의견을 달리함. 거칠게 말하면 미테랑은 유럽 연합파이고, 쟝 피레 세브네멩은 민족적 사회주의자임. 93년 사회당 탈퇴, 민족주의적-공화주의자-사회주의 활동. 현재 71세로 벨포르 시장임. 

 

 

 

 (2)  반-마르크스주의자 (autogestion 주창: 자율적인 시민사회에서 노동자들의 자율적인 참여 주장) : 미테랑이 민주적 사회주의자임을 자처하고, 로카르는 사회민주주의자를 자처했는데, 이 반-마르크스주의 사민주의자들이 로카르 (Rocard)지지자들임. 당내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미테랑에게 짐.  

 

 

 

(3) 프랑소와 미테랑이 속한 절충주의적 사민주의자들, 이들은 특히 케인지안 경제 정책의 혁신과 같은 구조적 개혁도 옹호하지 않았고, 또 사회복지와 같은 재분배 정책에 대해서도 적극적이지 않았다. 이들 그룹은 사회당 지방행정 경험이 많은 당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주의사항:  그러나 실제 미테랑이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에는, “재 분배적 케인지안 정책”을 적극적으로 채택했다. 

 

 

 

2. 초기 "케인지안 재분배 정책" 드라이브:

 

 

 

1981년 봄, 프랑스는 그야말로 사회당 미테랑 대통령의 개혁정책에 들떠 있었다.  가족수당 (두 아이 가족에게는 81%, 세 아이 가족은 44% 증가) , 주거 보조비 (저소득층에 주거보조비 25% 증가), 의료 보험이 비정규직과 실업자들에게까지 적용, 최저임금 (15% 증가), 노동시간 단축 (주 40시간에서 39시간) 과 일자리 나누기 정책 (정년 55세-60세 조기 은퇴 장려책으로 청년 일자리 창출)으로, 81년과 82년 사이에 20만 일자리 창출.

 

 

 

그 결과 경제 성장은 2%, 실업 증가율이 억제되고어 실업율은 4% 증가율을 보였다. 82년 한 해 동안, 미국은 실업율 증가율 22%, 독일은 실업 증가율 29%를 보인 것과는 확연히 대조되었다. 

 

 

 

3. 딜레마에 빠지다. 

 

 

 

부작용: 그러나 부 작용은 그 이후에 나타났다. 그 원인은 국제 시장 (유럽경제)에서 오는 제약과, 프랑스 그 이전 정부 (드 골과 리온 블름 Leon Blum 하에서)가 가지고 있던 국가 채무와 지불 위기 때문이었다. 600억 프랑  부채가 있었는데, 국제 통화 시장에서 프랑스 화폐 (프랑) 가치를 더 이상 절하지 못해서, 그 채무를 갚아야 하는 압박에 시달렸다. 

 

74년 석유위기로 프랑스의 경우도 68만 4천명 실업자가 발생했다. 그래서 미테랑 사회당 정부에서 신규 채용을 하더라도 한계에 봉착했다. 

 

 

 

지스카르 데스테(Giscard d'Estaing: 74-81 프랑스 우파 대통령) 가  추구한 “외교 수출: 군사무기, 항공, 턴키 플랜트 수출”과 자본투자 (전화, 원자력 발전소, 초고속 철도) 등은 프랑스 인프라구조를 향상시키겼지만, 무역 적자를 발생시켰다.  이 정책의 결과는, 국제 시장에서도 프랑스의 지위가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독일 일본과의 경쟁 (자동차 전기 전자제품 등에서)  독일과 일본에 밀리고, 제 3세계로부터 싼 상품 수입에 가격경쟁에서 프랑스가 밀리게 되었다.  

 

 

 

4. 프랑스 사회당 + 공산당 연정: 전통적인 케인지안 딜레마에 빠지다: 

 

 

 

1981년 "재분배적 케인지안 개혁" 드라이브 역시, 전통적인 케인지안 재분배정책 딜레마에 빠짐 (수요를 진작시키기 위한 정책들, 즉 정부가 투자와 고용에 직접 참여하는 것, 그러나 국가 채무 문제 발생하게 된다. 재정위기와 지불위기. 600억 프랑 부채 짊어짐 (1) 

 

 

 

만약에 노동자임금 인상도 억제하고, 기업 법인세를 낮춤으로써 이윤수준을 높이려고 한다면, 사회당 미테랑 정부는 노동자들의 자발적 협력을 받거나 아니면 사회복지비를 대폭 깎아야 한다. (2) 

 

 

 

더군다나, 미테랑에게 부과된 정치적 과제: 실업율 낮추기와 일자리 창출이라는 두 가지가 과제를 해결해야 했다. 세금 증가로,  중간층에게 부담을 지워야 했다. 

 

 

 

이러한 과제들 수행 중에, 1984년 유럽 선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유권자들의 지지도 시들어지고, 사회당 공산당 지지자들, 그 각 정당안 지지자들 분열, 2중 분열에 시달리게 되었다.

 

 

 

 

 

 

 

 

 

 

 

 

 

 댓글

철이형 2011.01.22 00:43

현 정파와 정당들의 자기 반성과 성찰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들은 연구되거나 발표되지 않고 있다...

 

현재 찌들대로 찌든 관성 (철학, 정치노선, 정치활동 방식, 조직화 방법, 언론 활동, 세대간 차별 격차, 차세대 혹은 진보적인 여성정치가 육성 프로그램 부재 등)에 대한 극복 의지없이...

 

 

 

원시님이 지적하는 부분이 대단히 설득력이 있고 올바른 지점이 많습니다.

 

분당이전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왜 당은 원시님의 제안을 수용하고 구현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지 답답했습니다.

 

 

 

원시님, 말씀하신대로 현재 진보신당이 무얼 책임지고, 주동성을 발휘하고, 극복할 의지가 보여지는 게 크나요? 내가 보기에는 솔직히 아니올시다입니다. 이미 지난 3년 분당의 실험정치는 끝났다는 판단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관념이 아니라 솔직한 자질과 역량의 고백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괜시리 작은 것 하나 어떻게 해 볼 능력도 없고 계획도 없으면서 이바구로 세월을 보내는 건 인민에겐 또 다른 고통일 수 있으니까요.

 

특히나 도친개친 민주노동당, 사회당 등 제반 진보세력과 별반 차이도 없으면서 깃발만 높이 올린다고 해서 세상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을테니까요.

 

나는 이제 지난 시절 우리가 가졌던 계급, 이념성으로부터 과감히 탈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거 그렇게 강조하면서 목소리 높이지 않아도 우리는 너무도 계급적이기도 하고 이념적이기도 하니까요.

 

구호소리 높은 투쟁하는 당이기 전에 정치하는 당, 인민의 삶을 책임질 수 있는 당으로 역량과 위상을 세우는데 더욱 집중해야 합니다. 그 길에 더욱 큰 하나가 될 수 있도록 진보대통합과 새로운 정당은 절대적 필요과제라 생각합니다. 큰 하나가 되지 않고서는 우리가 그토록 떠받드는 인민의 작은 고통 하나도 해결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해결 이전에 자기만의 만족으로 일생을 아름답게 사는데 만족해야 하겠지요...

 

 댓글

원시 2011.01.22 00:54

철이형 님/ 계급, 이념성으로부터 탈피하자는 철이형님의 주장 + 인민의 삶의 구체성으로 들어가보자. => 이 문제를 저는 어떻게 해석하냐면요,  

 

 

 

실은 계급, 이념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계급, 이념"이 고정된 게 아니라, 매일 매일 자본주의 변모 속도로 변화되고 있다는 것을 따라잡지 못하는 게 문제입니다.  예를들어서, 노동자들이 다 같은 노동자들입니까? 자본가들(해외 투기자본이건 국내 재벌이건)은 노-노 갈등을 연구하는데 돈을 엄청 투자합니다. 교수도 데려다가 쓰고 등등...

 

 

 

근데, 우리는 노동자들의 분화 속도, 실제 상황에 대한 연구도 많지 않고, ... 그러니까, <계급> <이념>이 낡았다고 판단해 버린다고 봅니다. 

 

 

 

끊임없이, <계급> <이념>은 자기 운동을 하고, 우리가 구체적으로 사회조사를 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우리 생활이기도 하고요. <이념 = 사회주의, 공산주의, 마르크스 레닌주의 교과서> 이런 식으로 이해하면 안되는 것인데...그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는거죠. 실천을 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고인이 된 87년 해고노동자 상징 권용묵씨인가요? 그 권씨도 테러도 당하고 그렇게 전투적으로 싸운 사람도, 나중에 뉴라이트로 전환하다가....이런 게, 현장에서 전투성만 강조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운동하는 <자본> <계급> <이념>에 대한 근본적인 연구와 고민이 부족해서 생긴 결과라고 봅니다. 단순히 변절이라고 하면 할 말은 없고요.

 

 댓글

원시 2011.01.22 01:00

진보대통합과 새로운 정당은 절대적 필요과제라 생각 (철이형) => 에 대해서는, 지금 제가 계속해서 강조하는 게

 

 

 

1) 사회당, 민노당, 진보신당 구 대표들, 현 대표단, 리더들, 각 정파 대표들이 철저한 반성과 성찰을 담은 글들을 발표해서,

 

 

 

=> 당원들이 읽은 다음에, 토론에 부치고, 이를 기초로 해서 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진보당 하려면

 

그런데 지금까지도 막연히 2012년 총선 승리나 대선 승리만 이야기하지, 이런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2) 지금 <진보신당>의 능력에 대해서, 저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비참한 수준입니다. 

 

이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없이, 그냥 또 새 정당 만드는데 나아가면, 또 똑같은 오류를 범할 것입니다.

 

 

 

3) 인민이 문제를 해결한답시고 <민주당>과의 통합이나, <국참당>과의 연합을 이야기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일에는 순서가 있다고 봅니다. 우리가 어디까지 어떻게 인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지금 구청장 하나 제대로 운영해본 경험이 없습니다. 그러면 <민주당>에게서 양보받아서, 구청장 당선되는 게 방법인가? 그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선거 전술이야 다양하게 쓸 수 있겠지만, 우리 스스로 준비를 해야 합니다. 

 

 

 

4) 아울러, 6.2 선거 과정에, 심상정 전 대표처럼, 당 운영원리를 무시하는 행동이 진보정당 안에서 발생해서는 안됩니다. 

 

이론적으로도 실천적으로도 설득력이 없다고 봅니다. 지금까지 행보도 마찬가지입니다.

 

 

 

 

 

 

 댓글

원시 2011.01.22 01:02

철이형 당원님의 평가

 

<원시님이 지적하는 부분이 대단히 설득력이 있고 올바른 지점이 많습니다.

 

분당이전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왜 당은 원시님의 제안을 수용하고 구현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지 답답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저도 실은 잘 모릅니다. 그리고, <철이형>당원처럼 제 의견을 그렇게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나요? 

 

저는 온라인으로만 당의 정보를 접하는 게 대부분이라서, 모르는 내막이 많습니다. 뭔 사연은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또 제 아이디어나 글이나 주장이 불명료하거나 흐릿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합니다.  

 

 

 

 

 

 

 

 댓글

라스 카사스 2011.01.22 13:49

원시님의 지적에 저도 100% 공감합니다.

 

그리고 구체적인 자료와 실증적 결과를 가지고 글을 쓰시는 것에 대해 항상 감탄을 합니다.

 

계속해서 좋은 글을 부탁드립니다.

 

많이 배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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