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인터뷰: 2010년 5월 18일 오전 8시 45분
(기록: 당원이 라디오/ 새로운 데모 연구회 http://cafe.daum.net/new-demo
인터뷰 진행: 원시 )
윤석동 (86세: 광주시민군 윤상원 대변인의 아버지: )
인터뷰를 하게 된 이유: 첫번째는, 고 윤상원 광주 시민군 대변인 아버지 살아생전에, 그 아버지에게 기억된 윤상원 대변인의 모습을 무엇인가를 기록하는 것입니다.
(광주 항쟁 당시, 도청 안에서, 광주 관련 신문을 읽고 있는 윤상원 시민군 대변인: 태연하게 담배를 피우면서 읽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두번째는 광주항쟁발발 30년이 지났고, 민주화운동 기념식도 총리/대통령이 하게 되고, 이제 시민군도 "폭도"에서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공식적으로는 광주 시민들에게 발포를 명령한 책임자는 누구인지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이러한 정치 역사적 배경에 촛점을 맞추는 것도 중요하고, 늘 재해석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30주년이 되는 날, 윤상원 대변인의 가족들에게 그 존재 의미는 무엇일까? 그 내부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듣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정치적 이해관계, 입장을 우선 괄호치고, 우리 주변 이웃들 중에 한 명, 그리고 그 한 명의 가족들에게 비친 윤상원 대변인의 모습을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윤상원 대변인의 부친 윤석동님이 이제 늙으셔서 귀가 잘 안들린다고 하십니다. 2004년 전화통화를 할 때만 해도 정정하셨는데요. 인터뷰 내용을 들으시면 아시겠지만, 전남대학교 교문 (5.18 시-발-점)을 새로 바꿔버린 것, 도청 별관 문제에 대해서 많이 서운해하시더군요.
(2010년 윤상원 대변인이 살아있었다면 60 회갑이라고 부친은 말씀하셨다. 80년 당시 30세, 영정사진이 젊다)
전화 인터뷰 2: 2010년 5월 18일 오전 10시
진행: 원시
윤승희씨 (42세: 대구에서 가족과 거주: 윤상원 대변인의 막내 여동생)
80년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윤승희씨가 기억하고 있는 큰 오빠, 3남 4녀의 큰 아들로서 윤상원에게 거는 가족들의 기대, 가난한 집안의 기둥이었던 큰 오빠에 대한 어린 시절 기억, 가족들을 생각하지 않고, 아버지 어머니 보다 일찍 죽은 큰 오빠가 이해가 되지 않고, 그게 큰 충격과 상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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