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history)381

1980년 5월 21일 전두환 공군헬기를 타고 광주에 가서 정호용과 '사살 작전'을 논의했다. 1980년 5월 21일 전두환은 공군 헬기 Uh-1H를 타고 직접 광주에 가서 정호용 등과 광주 시위대에 대한 사살명령을 내리고 그날 서울로 복귀했다. 공군 706보안부대장의 운전병이던 오원기씨 증언에 의하면, 1980년 5월 21일 오전 전두환은 용산 미 8군 헬기장에서 공군 UH-1H 헬기를 타고 광주로 갔다. 5월 21일 광주 도청앞 집단 사살 명령이 있었던 날 오전 서울에서 정호용 특전사령관, 조홍 헌병감, 그리고 전두환이 비밀리에 헬기를 이용해서 점심시간 쯤 광주에 도착했다. 당시 미 정보요원 김용장 증언에 따르면, 전두환이 5월 21일 광주 K57 비행장에 도착해서, 광주 상무대 전투병과 교육사령부에서 정호용 등과 회의를 했다. 그 회의 내용은 '총기 사용'과 '사살명령'이었을 것으로 김용장과.. 2019. 5. 17.
전두환과 김진태는 왜 518 광주 문제에 대해 우파가 결코 물러서면 안된다고 주장하는가? 518 망언,막말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518을 둘러싼 현재진행형 권력투쟁이다. 정의당의 논평도 너무 밋밋하고 역사의식이 결여되어 있다. 극우파지만 김진태가 어떤 측면에서는 정치를 잘 알고 있다. "우파가 광주 518에서 밀리면 안된다. 꼬리내리지 마라"는 김진태 발언은 광주 518에 대해서 우리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해왔다는 것을 보여줬다. 518 광주는 이미 다 정리된 것처럼 마치 419혁명처럼 그렇게들 생각한다. - 김대중-김영삼의 전두환 노태우 사면은 518광주항쟁을 '정치적 거래'나 '현금보상' '지역간 화해' 문제 따위로 축소시켜버렸다. 현재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가 아무리 518 광주기념식을 성대하게 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 2019년 518 주간에 한국 저널리스트들이 전노사면의 정치적 문.. 2019. 5. 16.
광주시민 사살명령자 전두환을 '적시'하는 게 왜 중요한가? 419 혁명, 최인규, 곽영주 , 홍진기 발포 책임 사형 선고. 518 광주 시민 사살명령자를 '전두환'으로 밝혀내는 일이 왜 중요한가? 1996년 전두환 노태우 재판에서도 '전두환'을 1980년 5월21일 도청앞 사살 명령자로 규정하지 않고, 재판부는 전두환 무기징역과 노태우 22년 형을 언도했다. - 419 혁명 이후 시위대 발포책임자들 최인규,곽영주가 사형된 사례가 있다. 전두환-노태우 범죄조직이 '사살명령'을 극구 감추려는 이유가 바로 '사형'을 면하기 위해서였다. - 1960년 419 혁명 당시, 4월 23일 경무대 발포로 21명 사망하고, 전국적으로는 185명이 죽고, 1500명 넘게 부상을 입었다. 당시 내무부장관 최인규는 사형, 현 jtbc 사장 홍정도의 할아버지, 홍석현의 아버지, 이건희의 장인이었던, 당시 법무장관 홍진기도 사형을 언도받았다. -홍진.. 2019. 5. 16.
광주 518 진실, 전두환-박희도 신군부 거짓말. 박희도 태극기부대 활동 2017년 전두환 노태우를 사면해준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적 오류는 2019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 폄훼로 나타나고 있다. 전두환 범죄조직단체가 극우 집회에 나가서 광주시민들이 북한군의 소행에 속아서 일으킨 폭동이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라고 외치고 있다.박희도, 이상훈 등 1212 군사쿠데타 주역들도 전두환을 찬양하며 518 광주학살을 정당화하고 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아직 시민들을 향한 사살명령자가 누구인지 밝혀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두환과 박희도 등 신군부 세력은 아직도 광주 민주화 운동을 북한군의 소행이라고 주장하고 다닌다. 전두환 학살자 범죄조직은 아직도 각종 극우 집회와 조직에 열성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김진태, 김순례, 이종명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 2019. 5. 16.
광주 518 민주화운동, 당시 경향신문 보도 지침, 동아일보 보도 지금 경향신문의 논조는 진보적으로 바뀌었지만, 1980년 당시 경향신문은 전두환의 보도지침 때문인지, 신문사 사장단의 입장인지 몰라도, 광주 518을 '폭도'와 '무질서 난동'으로 묘사하고, 평온을 되찾아야한다는 논조를 유지했다. 518 광주항쟁의 원인, 범죄자 전두환 노태우 정호용 집단에 대한 보도는 거의 없었다.  동아일보 1980년 10월 25일 보도  광주사태, 5월18일 전남대 학생데모가 발단이 돼 폭도들의 무장난동으로 번진 광주사태는 열흘동안 광주일원을 무법천지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1980년 518 당시 이희성 계엄사령관의 '포고령 10호 전문'                 1980년 5월 29일자. 경향 신문. 2019. 5. 16.
광주 518의 진실, 1988년 허장환 505 부대 상사의 증언, 전두환이 5월 21일 광주에서 정호용과 함께 사살 명령을 내렸다. 전두환이 1980년 5월 21일 오후에 광주 송정리에 와서 정호용 등과 회의를 하고 광주 시민들을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증언한 허장환은 당시 505부대 상사였다. 허장환은 이미 1988년 12월에 평민당을 방문, 전두환의 사살명령 사실을 증언했다. 허장환은 당시 보안사 광주지구 505보안부대 소속 계급은 '상사', 그의 직속 상관은 서의남 중령, 이재우 대령이었다. 허장한 상사의 임무는 광주사태 처리 수사국 특명반 수사관. 허장환의 중요한 증언. (1) 전두환이 5월 21일 광주 K57 비행장에 도착 광주 상무대 전투병과 교육사령부에서 정호용 등을 만나 '총기 사용'과 '사살 명령'에 대해서 논의했다. (2) 1980년 5월 16일 보안사에서 이학봉 대공처장 주도로 회의 개최. 확대 계엄은 광주로 .. 2019. 5. 16.
1980년 518 광주민주화 운동 당시, 5월 18일~28일 사이 동아일보 보도 내용 1980년 5월 18일부터 5월 28일까지 동아일보 제 1면과 사회면은 광주항쟁을 어떻게 보도했는가? 신군부 전두환 보안사령관과 중앙정보부장 서리가 언론을 완전히 장악했기 때문에, 언론은 518 광주를 철저히 왜곡하거나 축소보도 했다. (1) 김대중 내란 음모와 김재규 사형 뉴스를 518 광주보다 더 크게 보도했다. (2) 광주 민주화 운동을 '광주사태', '소요'로 보도하면서 일부 시민들의 폭력과 일탈로 묘사. (3) 5월 21일 계엄군이 도청 앞에서 시민들을 집단 사살한 것은 전혀 보도 하지 않음. - 동아 일보 1면 제목과 주요 내용 5월 19일 동아일보 제 1면 보도, "김종필, 김대중 등 26명 연행" 5월 20일, 김재규 사형 확정 보도. 대법원은 10.26사건 상고를 기각. 5월 21일, 신.. 2019. 5. 14.
[위헌, 독재 단어 오용] 나경원 의원~ 이것이 진짜 위헌이다.1954년 이승만 식 위헌 Nakjung Kim March 16 · 나경원 의원~ 이것이 진짜 위헌이다. 시민이 판사 출신 나경원 의원에게 헌법을 강의해야 하는 '웃도 울도 못할 일(1954년 12월자 경향신문 사설 제목)' 자유한국당 정치 스타일- 이승만 시절 '난투극' 정치가 되돌아 온 것 같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새구호 "#위헌,위헌,위헌" 그 위헌의 유래. 이승만 사사오입, 사람 엉덩이를 잘라내 반올림해버리다. 기가 막힌 수학자들. 양승태의 정신적 지주는 위헌을 직접 행동과 테러로 몸소 보여준 이승만과 박정희다. 이승만은 1954년, 박정희는 1969년과 1972년 위헌을 자행했다. 나경원은 이승만과 박정희가 어떻게 위헌을 교묘하게 했는가를 더 배워야 한다. - 최근 온라인은 이미 백색테러 수준이고, 광장에서 거의 365일.. 2019. 5. 2.
노트르담 성당 화재 이후, 노틀담의 곱추 소설이 독일에서 인기 문학서적이 되다. 빅토 위고 소설 "노틀담의 곱추"가 화요일, 독일 아마존 온라인 서점에서 가장 사랑받는 고전 문학 2위를 차지했다. tagesschau 4 mins · Victor Hugos „Der Glöckner von Notre-Dame“ hat am Dienstag die Spitze der Verkaufscharts von Amazon in Frankreich erklommen. Auch weltweit landete die englische Übersetzung des Romans bei Amazon an der Spitze zweier Bestsellerlisten für historische Literatur. Bei deutschen Amazon-Kunden stand das Buch am Diensta.. 2019. 4. 17.
2018년 9월 브라질 자연사 박물관 대형화재, 시민들 정부 부정부패와 예산 삭감 비난 문화재 화재 원인들은 전쟁, 자연재해, 화재, 그리고 관리소홀과 무관심 등이다. 7개월에 걸친 화재 원인 조사팀 발표를 보면, 브라질 국립박물관 화재 원인은 정치 무능, 예산 삭감, 관리 소홀이었고, '인재' 그 자체였다. 1만 1천 500년 전에 살았던 여성 해골 '루치아 Luzia' 등 귀중한 문화재들이 소실되어 버렸다. (1) 리오 데 자네이로 국립박물관 화재 원인은 에어컨 결함 때문이었다. 2018년 9월 2일 화재 발생 이후 7개월간 화재 원인을 조사한 이후에 조사팀이 내린 결론이었다. 그런데 왜 에어컨에서 불이 붙었는지 그 원인은 규명하지 못했다. 에어컨에 공급되어야 하는 전류가 적정 강도를 넘었기 때문에, 에어컨에 불이 붙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아오스 강당에서 발화가 시작되어 전체 건물로 .. 2019. 4. 17.
1992년 군 지정 불온간행물 도서목록(총574종) 군 지정 불온간행물 도서목록(총574종) [문화>출판 | 문화>학술_문화재] 1992-04-25 ▷공산주의 고무 도서◁(총 214종, 국내 166, 국외 48) △가격과 빈곤(헌트) △개인과 공동체(백산서당 편집부 역) △개인과 휴머니즘(김여숙 역) △게오르그 루카치(파킨스 리히트하임) △경제분석 입문 △경제사 기초지식(김호균) △경제사 입문(근동칠생) △경제사 총론(일월서각 편집부 역) △경제성장과 후진국(유임수 역) △경제학 개론(안병직, 장시원 역) △경제학 기초이론(백산서당 편집부 역) △경제학 원론(도미즈 카로조) △계급과 계급구조(헌트) △공동체의기초이론(이영훈 역) △공황론 입문(김성구 역) △과학으로서의 경제학(민병두 역) △구주문학 발달사(부다다 밀막스 모프래체) △구체성의 변증법(카렐 .. 2019. 3. 28.
죽은 조비오 신부가 산 전두환을 잡다 - 조비오 신부 증언을 욕한 전두환 죽은 조비오 신부가 산 전두환을 잡다. 김영삼과 김대중 대통령이 정치적 셈법으로 풀어준 전두환을 고 조비오 신부가 다시 정의의 심판대에 세우다. 죽음이 삶을 이길 수 있는 건, 오직 인간사회만에서 가능한 것인가를 잠시 생각하다. 일제 시대 일본제국주의에 대항해 싸우면서 죽을 때, 조선인들은 그 죽음의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죽음'이란 '새로운 정신의 지평'이라 했던 헤겔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조야하게 말하면 죽은 자가 산 자를 이길 수도 있는 게 사회적 삶의 현실이다. 산 자가 죽은 자와 싸워 패배할 수도 있다. 전두환과 그 비서 민정기씨는 민심을 역행했다. 왜 전두환 깡패 패거리들은 '전두환 회고록'을 출간하는 오만을 연출했는가? 그리고 헬기 사격을 은폐하려고 고 조비오 신부를 "가면을 쓴 사탄이다.. 2019. 3. 16.
80년 5월 21일 광주 헬기 사격 증언 - 정선덕 씨 "남의 나라와 전쟁하는 줄 알았다" 증언자: 정선덕 헬기 사격 목격 장소: 광주 도청에서 가까운 광주천을 따라, 무장한 헬기가 기관총을 세차례 난사했다. 헬기 기종: 무장헬기 500MD 로 추정함. http://mn.kbs.co.kr/news/view.do?ncd=4158882 [단독] “5월 21일, 내가 헬기 사격 받았다”…목격자의 생생 증언입력 2019.03.15 (21:17)수정 2019.03.15 (21:55)뉴스 9[앵커] 전두환 씨 재판의 쟁점, 1980년 5월 21일 광주천 상류 부근에서 헬기 사격이 있었느냐 여부죠. 당시 그 장소에 있었던 목격자가 있습니다. 계엄군에게 총상을 입은 남편을 찾아헤매던 정선덕 씨는 당시 그 자리에서 헬기 사격을 직접 봤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박지성 기자의 단독 보도입니다. [연관기사][단독].. 2019. 3. 16.
1980년 5월 21일 전두환은 광주 공군 제1전투 비행단에서 정호용을 만나, 도청앞 발포 명령을 내렸다. 김용장 증언 내용 (KBS 보도) 1. 1980년 5월 21일 전두환이 광주에 와서 머물렀던 장소는 공군 제1전투 비행단이었다. 5월 21일 오후 1시 광주 도청 앞 계엄군의 집단 발포 직전 전두환이 광주에 직접 찾아와, 정호용을 만나 광주 시위대를 향한 집단 발포를 명령한 것이다. 당시 광주 도청앞 계엄군은 비무장한 광주 시민들을 향해 "앉아 쏴" 자세로 사격했다. 이는 퇴각할 때 "서서 쏴" 자세가 아니라, 정조준해서 시위대를 사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2. 헬기 기관총 난사 사실 여부: 헬기 기종 UH1H1980년 5월 21일: M60 기총사격이 있었고, 5월 27일 광주천 상류 양림동에서도 있었다. 출처 기사: http://mn.kbs.co.kr/news/view.do?ncd=4158885또 다른.. 2019. 3. 16.
80년 5월 21일 전두환이 광주에서 정호용 이재우 등과 회의 후, 사살명령 내렸다 (증언 김용장: 전 주한 미군 방첩 정보요원) 김용장씨 증언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전두환의 부정과 반대로, 5월 21일 전두환이 직접 광주에 와서 도청 시위자들을 향한 발포 명령을 내렸다. 손석희 인터뷰 내용이다. 전두환이 1980년 5월 21일 점심시간에 헬기를 타고 광주에 도착, 정호용 특전사령관과 505 보안부대장 이재우 대령과 익명의 한 인사를 만나서, 광주 도청 시위자들을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김용장은 누구인가? 1980년 5월 18일 당시 직업은 "주한 미군 방첩 정보요원"이었다. 김용장씨가 한 일은 무엇인가? 광주에 거주하면서 모든 정치적 사건들, 즉 핵심 인물들과 시민들의 움직임을 미국 군대에 보고했다.김용장이 손석희에게 말한 내용은 서류로 남아 있는가? 아직 모른다. 미국에서 공개하지 않는 한, 아직 그 실체는 알 수 없다.. 2019. 3. 15.
전두환 광주재판 - 86년 헬기 조종사 양심선언 헬기사격명령 증언, 89년 조비오 신부 국회 증언 전두환이 23년만에 다시 법정에 섰다. 2019년 3월 11일. 고 조비오 신부는 1989년 국회에서 518 광주 항쟁 당시 헬기 사격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이에 대해 전두환이 "조비오 신부는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했고, 조비오 신부 가족들이 전두환을 죽은 자 (사자) 명예훼손죄로 전두환을 형사고발했다. sbs 보도에 따르면, 고 조비오 신부와 광주 시민들이 1980년 5월 21일에 헬기에서 기관총 난사가 있었다는 것을 증언했는데, 실제 그 목격을 입증해준 사람은 한 헬기 조종사였다. 그는 1980년 광주 민중 항쟁 당시 무장 헬기 조종사였고, 육군 항공대 1여단 소속 정조종사였다. 퇴역 이후, 그는 1986년 천주교 광주 대교구 사제 피정 때 양심선언, 즉 내부 고발을 했다. 그의 양심선언으로 인해, 5.. 2019. 3. 11.
[전두환 광주 재판] 1980년 5월 21일, 계엄군 헬기로 군병력 도청 투입 실패 과정에서 기관총 난사. 전두환 계엄군 광주 헬기 사격 증언들 공격헬기 500MD의 기관총알로 추정되는, 총탄 흔적들이 광주 도청 앞 전일빌딩 건물 천정에서 발견되었다. 또한 헬기에서 기관총을 난사하는 것을 보았다는 광주시민들 증언들이 나오고 있다. 아래 sbs 뉴스 보도를 보면 21일 발포된 헬기 기관총탄들의 사용목적과 작전 실패를 알 수 있다. 결과적으로 1980년 5월 21일, 전두환 계엄군은 헬기를 동원해 상무 20사단 병력을 도청으로 이동하는데 실패했다. 그 실패 이유는 21일 도청 앞 집단 발포로 60여명이 넘게 광주시민이 죽자, 시민들이 시내버스 택시를 동원해 계엄군에 격렬하게 저항했기 때문이다. 계엄군은 21일 도청 발포 이후에 병력을 도청에 더 추가 배치하려고 했다. 상무대 20사단 병력을 헬기로 이동하기 위해, 광주 도청 근처에 흐르는 광주천을 따.. 2019. 3. 11.
1925년 3월 18일 임시정부 이승만 대통령 면직, 호외 신문 발견 - 홍재하 보관 사료. 참고. 이승만 임시정부 대통령 탄핵 알린 '독립신문' 호외 최초 발견 송고시간 | 2018-12-13 05:45 페이스북트위터카카오스토리 더보기 인쇄 확대 축소 재불독립운동가 홍재하 유품서 나와…차남이 佛 브르타뉴지방 자택서 보관국사편찬위, 조사팀 프랑스에 급파…국내로 가져와 보존처리해 공개 예정"학계에 알려지지 않은 미보고 사료…임시정부 연구에 의미 커" "이승만 탄핵" 독립신문 호외(파리·생브리외[프랑스]=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1925년 3월 이승만의 임시정부 대통령 탄핵 사실을 알린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의 호외가 최초로 확인됐다. 학계에도 알려지지 않은 미발굴 사료다. [장자크 홍 푸안 씨 소장자료/촬영=국사편찬위원회] (파리·생브리외[프랑스]=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이승.. 2018. 12. 13.
1962년 2월 2일~4일, 박정희 울산공업 쎈터 기공, 516 쿠데타 정당화 시작 박정희는 516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후, 군대로 복귀한다고 국민들에게 발표했다. 그러나 그의 실제 행보는 1963년 대통령 선거 출마에 맞춰져 있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박정희는 1962년 정초에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발표하고, 울산공업 쎈터 시공식을 했다. 연설 제목이 "빈곤에 허덕이는 겨레 여러분"이었다. 울산공업쎈터는 민족의 빈부의 판가름이 날 것이라며, 서독 라인강의 기적인 '루르의 기적'을 초월해 신라의 영성을 재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516 군사쿠데타를 한 목적은 정권야욕이 아니라 빈곤을 추방하고, 번영과 복지를 마련하기 위해 필요한 경제재건을 위함이라고 밝혔다. 울산공업도시 건설은 516세력의 상징적 웅도이며, 국민은 이를 위해 각성,분발,협동하라고 주장했다. 울산공업도시에는 석유.. 2018. 11. 14.
박근혜와 김기춘이 양승태에게 지시해, 일제 강제징용 조선인 피해자 권리를 박탈했다. 삼권 분립 포기, 대법원과 법관이 박근혜와 김기춘의 시녀로 전락, 한국외교부의 굴욕, 강제 징용 피해자 인권 말살이다. 박근혜와 김기춘이 양승태와 차한성에게 지시해서, 일제 강제 징용 피해자들의 판결을 지연시키고 추가소송을 막아라고 했다. 양승태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 차한성은 김기춘의 지시대로 행동했다.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에게 배상을 하라고 주장했는데, 박근혜와 양승태는 이를 차단하고, 한국과 일본이 '재단'을 만들어서, 배상액을 축소해 수백만원 정도를 지급하려는 작전을 짰다.--------------- 강제징용 '푼돈 배상' 시나리오까지…"박근혜 지시"임찬종 기자 cjyim@sbs.co.kr 작성 2018.11.07 21:28 -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해 배상 .. 2018. 11. 12.
2017년 김종필 "당선되면 김정은을 만나러 간다고, 빌어먹을 자식"이라고 문재인을 비난했다. "영원한 제 2인자" "임자", 당신들이 말한 "풍운아" 김종필이 "빌어먹을 자식"으로부터 받은 무궁화장 훈장, 한국정치의 현주소다. 박정희와 같이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를 자행한 김종필의 판단은 시대착오였다. 1960년 이승만 독재자의 부정선거에 항거한 한국 시민들의 항쟁 정신을 무시하는 시대착오적인 반동정치였다. 2017년 냉전의 섬을 해체하자던 문재인의 발언을 '빌어먹을 자식'이라고 욕한 김종필의 발언 역시 시대착오였다. 김종필의 정치 시작과 끝은 시종일관 시대착오적이었다. 평범한 외국 시민들도 '넌센스'라고 말하는 70년 남북 분단과 냉전의 섬을 해체하는 것을 지지하고 있다. 제 2의 박정희, 박근혜, 김종필이 코리아 정치의 주인공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한국 시민들이 모두다 시험공부.. 2018. 6. 26.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