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민 사살명령자 전두환을 '적시'하는 게 왜 중요한가? 419 혁명, 최인규, 곽영주 , 홍진기 발포 책임 사형 선고.
518 광주 시민 사살명령자를 '전두환'으로 밝혀내는 일이 왜 중요한가? 1996년 전두환 노태우 재판에서도 '전두환'을 1980년 5월21일 도청앞 사살 명령자로 규정하지 않고, 재판부는 전두환 무기징역과 노태우 22년 형을 언도했다. - 419 혁명 이후 시위대 발포책임자들 최인규,곽영주가 사형된 사례가 있다. 전두환-노태우 범죄조직이 '사살명령'을 극구 감추려는 이유가 바로 '사형'을 면하기 위해서였다. - 1960년 419 혁명 당시, 4월 23일 경무대 발포로 21명 사망하고, 전국적으로는 185명이 죽고, 1500명 넘게 부상을 입었다. 당시 내무부장관 최인규는 사형, 현 jtbc 사장 홍정도의 할아버지, 홍석현의 아버지, 이건희의 장인이었던, 당시 법무장관 홍진기도 사형을 언도받았다. -홍진..
2019. 5.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