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기후 대선’은 왜 실패했는가
등록 :2022-03-08 17:54
[최우리의 별 헤는 지구]
후보들 10대공약에 ‘탄소중립’ 등 담았지만
기후·에너지 정책 경쟁 사실상 없어
“체감 어렵고, 득표 연결 안되는 탓” 분석도
“내일 대선이 끝난다니, 허탈하고 조금은 처참한 기분이다.”
20대 대통령 선거를 하루 앞둔 8일, ‘모두의 기후정치’ 캠페인을 진행한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 윤현정(18)양은 초조하게 투표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습니다.
2004년생이지만 생일이 지나지 않아 1~3월에 태어난 친구들과 달리 투표를 하지 못하지만, 기후운동을 하면서 지난 8~9개월 동안 대선만을 바라봤다고 합니다. 과학자들이 말하는 대로 지구의 운명이 결정되는 임계점이 2030년 즈음이라면 앞으로의 5년이 기후위기 대응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후보가 10대 공약에 기후위기 공약을 넣었다는 성과는 있지만 누가 당선되든 기후 문제만큼은 걱정 없기를 기대했다. 후보들이 한 마디라도 할까 봐 토론회도 열심히 보고 에스엔에스(SNS) 팔로우도 열심히 했다. 그런데 기후변화 문제가 생각만큼 대선판에서 확장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대선 후보들이 기후변화만을 주제로 토론을 열어주기를 촉구했던 청년기후단체 활동가들도 허탈해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초 티브이(TV) 방송 토론회에서 재생에너지만 사용하겠다는 기업들의 캠페인인 아르이백(RE100)과 관련한 논란 정도가 기후·에너지 토론의 전부였기 때문입니다.
모든 후보들의 열띤 기후 토론회를 요구해왔던 청년기후단체네트워크 ‘플랜제로’의 임재민 에너지전환포럼 사무처장은 “(외국 사례를 봐도) 기후위기 대응 과정이 결코 쉽지 않고 부담이 크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 사회에서 더 많은 토론과 심층적인 논의를 해야하는데 대선 과정에서 이러한 논의들이 심층적으로 이뤄지지 못한 게 매우 아쉽다”고 말했습니다.
비호감·네거티브 대선, 정책 검증은 사라진 한계는 있지만…
조 바이든 대통령이 당선된 2020년 말 미국 대선도 기후변화 대응은 주요 쟁점이었습니다. 지난해 9월 산유국인 노르웨이도 석유 생산과 시추를 이슈로 총선을 치렀고, 지난해 11월 독일 총선 역시 6개 정당 중 5개 정당이 기후 대응을 주요한 과제로 꼽으면서 ‘기후 총선’이라고 불렸습니다.
한국도 이번 대선의 주요 후보들 모두 기후대응을 10대 공약에 포함하기는 했지만, 기후위기 상황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기보다는 특히 주요 양당 후보들 경우 시장의 확대를 통한 재생에너지 확대(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원전 최강국 건설(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등 산업적 측면의 전환만을 고민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2022년 한국에서 기후대선은 왜 불가능했을까요.
위기감이 적고 주변의 문제로 인식…표에 도움 안 돼서?
여전히 주변부 문제로 간주되는 탓이란 지적이 우선 나옵니다. 한 연구기관 직원은 “수출입에 의존하는 유럽 등 외국의 경우 현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에너지 안보 위기 상황과 기후위기를 매우 밀접하게 연관해본다.
하지만 한국은 에너지 자원이 현재로서는 안정적이어서, 에너지 안보 문제와 관련한 위기감이 적어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한 정부기관의 기후 연구자는 “환경 관련 이야기를 하면 반감을 갖거나, 그냥 ‘있어 보인다’는 평가를 받거나 둘 중 하나 아닌가.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환경은 주변의 문제로 여기는 것 같다. 탄소중립 선언을 하고 계획을 짜고 어느 정도는 이슈화가 되었지만 중심부의 생각까지 달라졌다고 느끼지 않는다. 솔직히 (기후문제에 관심이 많은 미래세대로의) 세대교체를 해야 달라질까 이런 생각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기후 문제가 난해하고, 득표로도 잘 연결되지 않는다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김승완 충남대 전기공학과 교수·(사)넥스트 대표는 “재생에너지와 원전 등 에너지 시스템의 일부만 정쟁화되었고 종합적인 기후위기 대응·전력시장 개편 문제까지 나아가지 못한 점은 다소 안타깝다. 너무 어려웠거나 표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논의가 잘 되지 않았다고 본다”고 분석했습니다.
청년기후단체네트워크 플랜제로 활동가들이 지난 1월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 계단에서 연 ‘기후대선 실현을 촉구하는 2030 청년세대 긴급 기자회견’에서 각 당 대선후보에게 기후위기 토론회 개최를 촉구하는 상징극을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거대 양당 중심 선거제도·후보자들 말을 쫓는 보도
양당 중심의 선거제도를 근본적 요인으로 꼽기도 합니다. 기후변화를 부른 탄소배출 중심의 현재 문명을 ‘전환’하는 것이 기후위기 담론의 핵심이란 점에서 다른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시민·지식사회 중심으로 이어져 왔는데, 양강 대결 국면에서 이런 목소리가 다른 분야에 밀리기 너무 쉬운 구도라는 설명입니다.
전국을 돌며 ‘기후대선 전국행동 기후바람’ 활동을 진행해 온 기후위기비상행동의 황인철 집행위원장은 “양당 모두 성장 중심의 경제 체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다. 전환보다는 성장에, 시민의 권리보다는 기업의 이익을 대변한다. 이들에게는 기후위기 대응이 피상적인 장식품이 될 뿐 진지하게 다뤄질 수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또한 “기후위기 문제를 토론 주제로 제대로 다루지 않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한계도 드러났다. 대부분의 언론이 후보자의 입만 쫓는 보도 행태를 보여 기후 의제의 공론화가 가로막혔다”고 말했습니다.
윤양은 정치권에서 좀 더 쉬운 용어로 정치가 삶의 문제라는 것을 더 체감하도록 노력해야 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이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것을 느꼈다.
정치가 대선 후보라는 소수 엘리트가 하는 행위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누가 더 나쁘다는 도덕성 검증에 매몰됐다. 하지만 ‘에너지 고속도로’나 ‘원전 최강대국’처럼 어렵고 추상적인 용어가 아닌 시민들 삶의 문제로 느끼게 단어를 바꿔 실제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공약집을 냈다면 어땠을까.”
경북 울진과 삼척 일대에 대형산불이 계속된 지난 5일 저녁 경북 울진군 북면 하당리에서 한 주민이 민가 가까이 다가온 산불을 바라보고 있다. 울진/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추상적·기술적 용어 대신 삶의 문제로 여겨지도록 노력해야
체감형 공약 제시에 실패했다는 평가에, 기후위기 대응 과제를 가장 포괄적·적극적으로 제시한 정의당의 이헌석 공동선대본부장도 일정 부분 인정했습니다. 이 본부장은 “(기본적으로 에너지 전환 과제가 어렵기 때문에) 재생에너지 확대 전략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때마다 곤란함을 느끼고는 했다. 그래서 누가 설치할 것인지로 구체적으로 설명하려고 노력했다”고 답했습니다.
결국 기후 문제가 사회 정의의 문제라는 인식이 더 확산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권원태 전 아펙(APEC)기후센터 원장은 “기후 문제는 매우 큰 영역이라 참 다루기가 어렵다. 짧은 기간 동안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라고 생각해서 5년 임기의 대통령이 당면한 과제라고 국민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아쉬워했습니다.
그러면서 “기후 문제는 사회 정의의 측면에서 봐야 한다. 많이 가진 사람들과 선진국이 많은 탄소를 배출하고 약자와 약소국이 피해를 보고 회복하기 어려워지는 불평등 문제가 발생한다. 미래세대와 생태계가 겪는 피해에 대해서도 더욱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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