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동 개발 부동산 "떴다방" 조직 - 성남의뜰 이사회를 보다가. 도시로 몰려든 한국인들 현재 자화상.
그리고 1866년 잉글랜드. 마르크스와 엥엘스의 노동자 주거, 건강 연구.
마르크스는 연구자로서 '이념'과 '실사구시'를 동시에 구비한 보기드문 사람이다. 유치한 시절, 마르크스를 '경제 결정론자, 경제적 환원주의'로 볼 것이냐 말 것이냐를 놓고 토론한 적도 있었다. 이제는 누가 알아주지도 않으니, 마르크스에 대한 욕질이나 하지 않으면 고마울 정도이다.
이러한 마르크스의 실사구시, 현장학습은 그의 친구 프리드리히 엥엘스의 조언과 연구 영향을 받은 것이다. 대학 1학년 때 누가 번역했는지도 모르겠지만, 프리드리히 엥엘스의 "영국노동자 계급의 상태"라는 책은 구구절절하고 세부적인 잉글랜드 노동자들의 삶, 일상 생활의 공간들을 사실대로 묘사했다.
2021년 전 세계적으로 플랫폼, 앱 노동자들에 대한 보고서가 쏟아져 나오듯이, 1840~1880년 사이 잉글랜드에서도 노동자 실태 보고서가 쏟아져나왔다.
마르크스 표현에 따르면, 다정하고 온순한 (잔프트 sanft)한 리버럴리스트들도 노동자 실태 보고서를 발간했고, 워낙 열악한 주거,보건 환경을 바꿀려고 법안들도 발표하기도 했다. 물론 노동시간 단축을 놓고, 단축했다가 반대했다가 그 전투는 지속되었다.
1866년 잉글랜드 브래드포드 노동자 주거와 건강 실태 보고서를 칼 마르크스가 읽다.
아일랜드와 잉글랜드 농업노동자들은 먹고 살기 위해 산업 도시들로 이주했다.
마르크스는 룸펜이 된 아일랜드 사람들과 퇴락한 잉글랜드 농업 노동자들이 산업도시들로 떠밀려 들어오는 광경을 "메뚜기 떼"로 묘사했다.
리즈와 맨체스터 사이에 있는 브래드포드도 예외가 아니었다. 문제는 주거 조건이었다. 주택, 방, 침대, 화장실 등이 부족했다. 아래 자료를 보면, 방 1개에 18명도 살고, 최소 10명이 살았다.
지하실 방 1개에 6명에서 8명이 살았다.
1866년 '공중 보건 8차 보고서 Public Health, 8th Report'에 따르면,
233채 주택, 1450명 거주자, 챔대 435개, 화장실 36개.
평균적으로 침대 1개 당 3.3명. 많은 경우 침대 1개당 4~6명이 잠을 자야했다. 침대도 없이 자야 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이들은 그냥 바닥에서 옷을 입은 채 잤다. 젊은 남녀, 기혼자와 비혼자 구분도 없었다.
자본 1권, Das Kapital. MEW 23, 691-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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