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배운 단어: 비행기가 공항에서 후진을 자체적으로 할 수 있지만, 먼지 형성 방지, 엔진 보호를 위해 견인차을 이용해서 비행기를 이동시킨다. 공항에서 보면 조그마한 녀석들이 큰 비행기들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던데, 그 견인차 영어 명칭이 tow tractor 였다.
승무원 출신 권수정 후보 “배현진 같은 사람이 정치하다니…”
진보정당 소속 시의원으로서 어떤 역할이 가능할까요.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자유한국당과 더불어민주당이 전국 대부분의 광역의회와 기초의회 선거구를 3인이나 4인 선거구에서 2인 선거구로 줄이는 걸 확정했습니다. 민주당이 잘하고 있지만, 결국 밥그릇이 걸렸을 때 어떻게 돌변하는지 보여준 사례라고 봅니다.
누군가는 잘못된 것을 지적해야 합니다. 정의당 소속 서울시 의원의 역할 중 하나라고 봐요. 비행기를 후진시키려면 토잉카(공항에서 비행기를 견인하는 트랙터)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기존에 잘 안되고 있는 부분을 찾아 제대로 된 방향을 설정해주고, 잘 밀어갈 수 있는 힘을 가진 토잉카(towing car)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지난 4월22일, 아시아나항공 승무원인 권수정 씨가 정의당 서울시의원 비례대표 1번 후보로 확정됐다. 정의당은 당원 투표를 통해 6.13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공직 후보자를 선출했는데, 권 후보는 70%(2122표)나 되는 득표율을 기록했다. 권 후보는 “정의당 당원들이 노동과 여성 분야를 대변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선택해준 것 같다”고 말했다.
1995년 아시아나항공 승무원으로 입사한 그는 2010년 아시아나항공 노조위원장과 2014년 민주노총 여성위원장 등을 지낸 이력이 있다. 항공업계 쪽에선 여성 승무원에게 요구되는 과도한 외모규정을 지적하고, 아시아나항공 바지 유니폼 도입에 앞장선 인물로 알려졌다.
여전히 자신을 “‘승무원 권수정’이라고 소개하는 게 익숙하다”는 그가 정치에 도전한 까닭은 뭘까. <한겨레>는 2일 권 후보를 만나 단도직입적으로 그 이유를 물어봤다.
■왜 정치를 하게 됐나
-많은 여성이 선호하는 직업인 항공 승무원으로 근무하다 직접 정치를 하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항공사 승무원이 여성들한테 선망의 직업 중에 하나라고 평가받는 건 굉장히 고마운 일입니다. 어떻게 보면, 너무 잘 포장돼 있어서 내면이 드러나지 않은 부분이 있어요. 비행기 객실 안 기압은 정상 1기압보다 20% 정도 낮은 0.8기압 정도인데요.
이 기압을 견뎌야 하는 노동조건을 비롯해 야간 노동문제, 성희롱, 감정노동 등의 실태가 잘 드러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아시아나항공 입사 뒤 여러 노동이나 인권문제와 관련해 꾸준히 문제를 제기했어요.
아시아나항공만 머무르지 않고, (민주노총 여성위원장 등을 맡아) 회사 밖에서 활동한 기간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내부와 외부를 아우르는 힘 있는 목소리를 내고 싶다는 욕구가 자랐던 부분도 있고, 주변에서 그런 요구도 있어 정치 출마를 결심하게 됐습니다.”
-최근 배현진 전 문화방송(MBC) 아나운서가 자유한국당 소속으로 서울 송파을 국회의원 재선거에 출마한 것을 보고 씁쓸해했는데요.
“배현진 후보는 그동안 권력을 맘껏 휘두르던 사람들에게 편승해 갑에 위치에 있던 사람입니다. (문화방송에서 퇴사한 이유에 대해) 본인을 갑질의 피해자다, 자유롭지 않은 삶을 살았다고 말하는데, 그가 을의 위치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아픔을 얼마나 겪어봤고 아는지 화가 나더라고요.
말로만 을을 대변하겠다고 하는데, 을의 입장을 대변하던 입장에서 보면 배현진 후보 같은 사람이 정치하게 두면 안 되겠다는 울분이 생겼습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의 자세와 기본이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호 발의 조례는 ‘서울시 남녀 임금 격차 해소’
-만약 서울시 의원이 된다면, 1호로 발의할 조례는 뭔가요.
“‘서울시 남녀 임금 격차 해소’를 1호 조례로 발의할 예정입니다. 서울시만 해도 남성 평균임금이 310만원, 여성이 196만원을 받아요. 여성이 불안전 노동에 훨씬 많이 시달리고 있습니다. 여성을 좀 더 사회 안전망 속으로 데리고 들어오는 작업을 기초적으로 할 생각입니다. 가장 먼저 공공기관에서 임금 격차 해소를 강제하는 조례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노동 외에도 장애인·여성 분야에 대한 고민이 많은 것 같습니다. 어떻게 접근하고 활동할 계획인가요.
“누구도 배제돼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활동을 하고 싶습니다. 당장 장애인과 여성 정책들은 많은데, 결과적으로 그 제도들을 어떻게 실행할 것인가에 대한 부분은 미흡해요. 점검자의 역할을 하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또 인권조례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박원순 시장도 안 하는 부분인데요.
기존 지지층과 부딪쳐 말 못하고 있는 부분이라, 한 명이라도 그 의제를 놓치지 않고 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배제를 시작하면 그다음 배제 대상이 줄을 서야 합니다. 이번에 어떤 대상을 배제하면, 그다음에 어떤 대상을 늪에 넣을까 고민하는 게 우리 세상입니다. 누구도 배제되지 않도록 하는 게 정의당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민주당이 이번 지방선거 공천에서 여성 30% 할당제를 얘기했는데, 결국 (광역자치단체장 후보 가운데) 여성 후보가 한 명도 없는 게 현실입니다. 정의당도 여성 후보가 여전히 부족하죠. 표면적으로 비례대표 후보 홀 수번을 여성으로 채웠고, 여성이 당의 대표이긴 하지만 더 노력해야 합니다.”
■“승무원은 객실 내 안전을 책임지는 사람”
-대형 항공사 소속 정규직 승무원으로 근무했습니다. 그렇다 보니, 비정규직이나 작은 사업장 노동문제에 대해 얼마나 헤아릴 수 있을지 의구심을 제기하는 시선도 존재하는 것 같아요.
“2004년 공공연맹에서 활동할 때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이 원주에 있는 노인복지시설입니다. 조합원 6명이 활동하면서 노인들이 감시카메라가 설치된 곳에서 발가벗고 목욕하는 걸 막으려고 노력하고, 가족 경영 비리로 얼룩진 시설을 바꿔나가려고 노력하는 곳이었어요. 이후에도 천막도 없이 농성하는 곳들과 연대하면서 다양한 노동현장을 찾았습니다.
아시아나항공 내에서도 잘 나갈 수 있는 길을 선택하기보다는 신입 승무원이나 밤샘 근무해도 휴식 보장 못 받는 정비사들과 연대했어요. 신입 승무원 후배들이 들어오면, 1년씩 비정규직으로 일하면서 어떤 애환을 갖고 있는지 학자금 대출부터 어떤 고통을 받고 있는지 얘기를 들어봤어요.
객실 승무원은 인턴 기간 동안 아파도 쉬지 못하고 손님들과 문제가 생기면 안 좋은 평가를 받습니다. 각종 성추행을 당해도 이런 문제를 관리자한테 얘기하는 순간 ‘그건 네가 일을 못 했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돌아와요. 인턴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걸 감내하고 있습니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에서 활동했다고 해서 비정규직이나 소규모 사업장 노조를 바라보는 시선이 다른 건 아닙니다.”
-승무원은 승객의 안전을 책임지는 사람입니다. 국내 항공사들을 보면, 유독 서비스와 외모 등을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항공사들은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요? 승객들은 어떻게 달라지면 좋을까요?
“전 세계적으로 경쟁해야 하는 항공업계에서 한국은 후발 주자입니다. 안전과 장비 부분은 거의 균일하게 자본이 투입됩니다. 한국 항공업계는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부분을 ‘서비스’라고 판단한 것 같아요. 동양 쪽이 특히나 심각해서 베트남 항공은 승무원들에게 비키니 수영복을 입히고 광고를 하기도 했어요.
최근 대한항공 ‘갑질’ 사태로 대한항공을 이용하지 않겠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승무원들은 친절하고 훌륭한데, 한진그룹 총수 일가 때문에 대한항공을 이용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승객들도 항공기를 이용할 때 ‘승무원의 친절함. 훌륭한 서비스’라고 판단하는 것인데요.
그런데, 어디까지 승무원에게 요구할 수 있는 노동인가는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승무원들은 기본적으로 객실 내 안전을 책임지는 사람입니다. 비행 중 아주 긴박한 상태에서 내 목숨을 살려줄 사람이 승무원이라고 생각한다면, 비행기 내에서 승무원에게 행패를 부리거나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하지 않을 것 같아요. 항공사도 노동하는 사람들한테 안전장치를 마련해주는데 더 고민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난 3월,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아시아나항공 여성 승무원들에게 자주 부적절한 신체접촉을 했다는 폭로가 나왔습니다. 아시아나항공 발 ‘미투’는 어떻게 봤나요?
“언론에서 목소리를 낼 기회를 줄 때마다 (아시아나항공 미투) 사례를 얘기해왔는데, 당시에는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지금이라도 이렇게 드러나서 다행입니다. 박삼구 회장이 미투 사건 이후 사과문을 냈습니다. 박 회장은 전형적으로 ‘나는 의도가 없었다, 하지만 직원들이 힘들어했다면 사과한다. 재발 방지하겠다’는 태도를 보인 건데요. 구체적인 재발 방지책이 나온 건 하나도 없는 상황입니다.”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세례 갑질’ 사건 이후, 박창진 전 대한항공 사무장과 1인 피켓시위를 벌였는데요.
“2014년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이 벌어졌을 때, 대한항공 내부에서 아무도 도움을 주지 않았습니다. 다른 항공사 승무원이었지만, 응원했었어요. 조금 안타까운 건 지금껏 한목소리를 내며 옆에 있었는데, 정의당이라는 옷을 입고 나서 저를 바라보는 시선은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기존 정치에 대한 실망과 혐오로 일부분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다른정치 바른정치에 대해 응원해주고 그 정치를 국민들이 적극적으로 이용해주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그게 바로 촛불의 완성이라고 생각합니다.”
-2014년 땅콩 회항 이후 ‘갑질’ 문제가 또 발생했는데, 재발 방지 대안이 있을까요?
“갑질 폭력을 행한 사람에 대해서는 강력한 처벌이 필요합니다. 반면, 피해자를 위한 강력한 보호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부적으로 민주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합법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것도 꼭 필요합니다. 땅콩 회항 사건이 벌어졌을 때, 박창진 전 대한항공 사무장 옆에 제대로 된 노동조합이 함께 했다면 피해자의 고통을 방치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더불어 대한항공이 사기업이라고 하지만, 대한항공이 이용하는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은 국민 세금도 투입된 공간이에요. 기업의 잘못으로 피해가 발생했다면, 전 국민이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번 ‘갑질’ 사태로 대한항공에서 일하는 노동자뿐만 아니라 국민 전체가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박수진 기자 jjinpd@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43316.html?_fr=dable#csidx2c49d68f3a47e778036d1dabbb460b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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